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4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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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위에 던져져 있는 책을 아이와 함께 정말 우연히 같이 바라봤을 때, "제발 `존재`가 무엇인지 물어보지 말아다오"라고 중얼거리게 되는 그 `존재` 때문에 `참을 수 없는` (어떻게 보면 참 생리적인 표현) 과 `가벼움` (말 그대로 가벼운)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말로 둔갑해버린 책 제목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


밀란 쿤데라의 결코 가볍지 않은 두께 (507 페이지)의 그 책을 읽었다.


이 책 첫 페이지의 시작인 "영원한 회귀란~"의 여섯 글자는 서점에서 이 책을 가볍게 들어 펼쳐 본 최소 만명 이상의 손님은 순식간에 이 책을 다시 내려놓게 했을 것이고, 다시 여덟 글자 후에 나타나는 "니체" 두 글자는 훨씬 더 많은 손님을 다음 책으로 급히 안내했을 것이다.


St Charles Bridge, Prague


그 유명한 축구 선수 파블 네드베드가 있는,

저 아름다운 St Charles Bridge가 있는 - 그래서 언젠가는 꼭 저기서 꼭 저 구도로 사진을 찍어 보고 싶은 -

체코가 소련의 침공을 받았을 때를 배경으로 한,

네 남녀의 참을 수 없는 번잡한 사랑 이야기다.


2015년도 아침 드라마의 소재로 쓰여도 손색없을 이 네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_-; 야한 장면도 많아 어른들을 위한 영화 감독마저 탄복할 만한)


기원전 6세기 파르메니데스,

50프랑을 빌려주고 그 돈을 갚으라고 하니, 빌린 사람이 "그래야만 하는가?"라고하자 "그래야만 한다!" 라고 했고,

이것을 자신의 작품번호 135 마지막 4중주 4악장의 핵심으로 만든 베토벤 -_-;

이름만으로도 심연에 빠뜨려주시는 니체,

또봇의 근원이신 `변신`의 카프카,

남녀의 참 기괴한 주제에서 단골로 나오시는 오이디푸스,

6세 이하의 (특히) 남자아이들이 듣기만 해도 까르르 넘어가는 "똥" 문제로 죽은 스탈린의 아들까지

정말 어마어마한 인물들의 사상과 일화로 버무려지고


베르나르의 "나무"에 나오는 생각만 하고 싶어 자신의 모든 신체 기관을 없애고 유리병에 뇌만 남아 생각에 생각을 수십만 층의 깊이만큼 하는 사람과 같은 밀란 쿤데라가 1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위에 거론된 철학가, 사상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자신의 생각을 또 버무린다.


게다가 세상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쉽게 만들어져 문자가 없는 아프리카 몇몇 국가에서 사용되고 출장 온 인도인은 일주일 만에 배운다는 한글을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언어 중의 하나인 아이슬란드 어로 둔갑시켜 번역한 것도 이 책의 무거움에 제대로 한몫을 한다.

(이 책의 이런 못마땅해 보일 어려운 번역이 나쁘지만은 않다. 처절한 상황에서 더 처절한 상황이 계속되면 희열을 느끼듯이)


이런 참을 수 없는 무.거.움. 으로 쿤데라는 - 그리고 역자도 동조해서 - 우리 인생의 덧없는 가벼움을 이야기한다.


무엇인가 정의하는 가장 쉬운 방법 중의 하나가 그 반대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는 아래와 같은 대목으로 인생의 가벼움을 정의해주었다.


"진정 심각한 질문들이란 어린아이까지도 제기할 수 있는 것들뿐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가장 유치한 질문만이 진정 심각한 질문이다"


Milan Kundera


1929년 생인 이 거장의 다음 문장은


"프란츠의 아버지가 느닷없이 어머니를 버리고 떠나 어느날 문든 어머니 혼자 남게 되었던 것은 그의 나이가 열두 살쯤 되었을 때였다.

프란츠는 뭔가 심각한 일이 벌어졌다고 의심했지만, 어머니는 그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평범하고 차분한 말투로 비극을 감추었다.

시내를 한 바퀴 돌자고 아파트를 나오는 순간, 프란츠는 어머니가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

그가 고통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흰 종이에서 활자들이 살아 튀어나와 그 `고통`을 나에게 내 피부밑 가슴에 내던져주는 것만 같았다.


나를 한밤의 거리로 내몰아 무수한 사색에 잠기게 한,

밑줄을 많이 그어 아끼는 연필이 몽땅 연필이 될 운명에 처하게된 만든,

책 귀퉁이를 너무 많이 접어 나팔바지가 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을 다시 또 읽어봐야겠다.

"진정 심각한 질문들이란 어린아이까지도 제기할 수 있는 것들뿐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가장 유치한 질문만이 진정 심각한 질문이다"

"프란츠의 아버지가 느닷없이 어머니를 버리고 떠나 어느날 문든 어머니 혼자 남게 되었던 것은 그의 나이가 열두 살쯤 되었을 때였다.
프란츠는 뭔가 심각한 일이 벌어졌다고 의심했지만, 어머니는 그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평범하고 차분한 말투로 비극을 감추었다.
시내를 한 바퀴 돌자고 아파트를 나오는 순간, 프란츠는 어머니가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
그가 고통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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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5-07-03 0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봐야 하는 책들을 모두 미뤄두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집어들어서 첫 문장을 확인했습니다:-)
음.... 그러게요. 책을 내려놓게 만들 첫문장이로군요. ^^;;(새삼스러운 사실을 확인하고!ㅋㅋ)

저도 밑줄을 정말 열심히 그어놓았네요. (비록 모두 까마득 하지만. ㅜㅜ) 제에게(그 당시) 최고의 페이지는 477P, 이후 인 것 같은데 따로 댓글에 옮기고 싶은 구절이 있어서 남길래요. ^-^

˝전체주의적인 키치 왕국에서 대답은 미리 주어져 있으며 모든 새로운 질문은 배제된다. 따라서 전체주의 키치의 진정한 적대자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인 셈이다. 질문이란 이면에 숨은 것을 볼 수 있도록 무대장치의 화폭을 찢는 칼과 같은 것이다.˝(364P)

수많은 사유들이, 독자의 상황에 따라서 진하게 자극을 주네요. 이래서 쿤데라,쿤데라 하나봐요. (저는 책의 연보를 확인하기 전만해도......쿤데라씨가 살아있는 작가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ㅜㅜ 왠지 너무 고전같은.....무거운 존재감...^^ )

프레이야 2015-07-02 0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먼저 책 나중, 으로 접한 이 작품. 단연 최고의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저 인용구는 기억에서 지워졌지만 들춰보면 저도 밑줄들이 대열을 이루고 있을 겁니다. 페이퍼 재미나게 읽었어요. 카렐교의 저 풍경은 미명이나 해 질 녘이라야 할까요? 아로님 페이퍼 재미나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