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나무의 시간 - 내촌목공소 김민식의 나무 인문학
김민식 지음 / 브.레드(b.read)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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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충격이었다. 저자는 1970-80년대부터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목재 딜러, 컨설턴트로 일한 장인에 가까운 아니 장인이다. 그 시절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0달러에서 1,000달러로 급성장할 때였고, 세계 최대 합판 수출국이었단다. 그 한국의 합판을 팔기 위해 휴스턴에서 만난 상황이 한국 합판 10장에 50달러인데, 같은 면적의 영국 바닥은 5만 달러였다. 이 하나의 사건으로 저자는 나무 제조사 원산지를 미친 듯이 조사하며 나무에 빠졌고, 그의 그런 세월이 이 책을 출간하게 만든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이 책에 그토록 몰입하게도 만들었다.

왜 같은 면적의 '나무'라는 재료로 만든 물건이 1,000배의 차이가 날까? 그것은 나무의 문제에서 확장해서 한국산과 영국산, 한국과 영국의 모든 차이로 뻗쳐 나갔다. 익숙한 공산품 또는 백화점에 즐비한 명품의 이야기라면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이다. 나무로 만든 고급 가구였다면 끄덕였을 것이다. 그런데 나무 바닥이 1,000배의 가격 차이라니.이건 억울한 상황이었다. 획일화된 교육의 폐해로, 2차 3차 산업만이 부국을 만든다는 주입식 교육의 폐해로 나는 이런 나무를 아예 모르고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반까지 점입가경이다. 고대문명부터 열강의 시대 유럽, 현대의 미국까지 모두 나무로 흥하고, 나무로 망하고, 나무를 약탈하고, 나무로 지배한다.

레바논의 국기에 있는 나무가 삼나무이고, 그것은 그들의 조상이 카르타고와 한니발의 알파벳을 최초로 사용한 페니키아인이었고, 그들 조상은 모두 삼나무로 갤리선을 만들어 로마를 공포에 빠뜨렸지만, 나무가 고갈되어 쇠락해버렸다.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그리고 로마까지 지속적인 남벌이 붕괴의 큰 원인이었다고 한다.

18~19세기 유럽의 교회, 공공건물, 배의 내부는 모두 인도차이나,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의 진귀한 티크, 마호가니, 로즈우드, 흑단으로 도배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나무들은 모두 원산지에서 멸종되었다. 유럽 열강이 대항해 시대 이후 수백 년간 수탈해서 밀림이 슬픈 열대로 남아 있다고 한다.


"나무가 사라진 곳에서 문명은 황폐해 갔다." p31

"문명 앞에는 숲이 있었고, 문명 뒤에는 사막이 따른다." p32


이 책과 저자가 이 문장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 같다. 그리고  저자의 역사, 미술, 문학, 건축, 음악, 경제, 문화의 아주 넓고 깊은 그리고 구석진 곳의 지식은 굉장한 설득력을 더해준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지? 저자는 잡식성이긴 한데, '나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어야 한다. 즉, '나무'가 들어간 것은 그 어떤 것이든 삼켜서 본연의 큰 나무라는 도메인 용광로에 녹인다.

시와 소설에 등장한 나무와 그 나무의 스토리를 재미있게 들려주며, 나무의 경제성에 대해서도 경제학자처럼 깊은 지식으로 호소력 있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세계 목재 산업의 중심인 미국을 한참 이야기하다, 일본의 나무에 대한 자부심과 장인 정신, 장기적인 조림의 결과로 이룩한 숲을 부럽게 보여준다.
그의 목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한 번쯤 배워보고 싶다. 특히, 안도 다다오의 빛의 교회는 숨이 막혔다.

( Tadao Ando, https://en.wikipedia.org/wiki/Tadao_Ando)

<이미지 출처: https://gokodama.com/visiting-tadao-andos-church-of-the-light/>


그의 활자로 쏟아지는 나무 이야기는 주제나 목적 없는 그저 넓은 지식이 아닌 강렬한 하나의 주제인 나무로부터 그 뿌리처럼 온 세상으로 뻗어 나가 다시 나무로 귀결해서 푸르르고 풍성해진다. 억울함 마저 든다. 이 장대한 나무의 이야기를 나는 왜 하나도 모르고 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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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0-09-04 05: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에서도 이스터섬의 붕괴 원인을 자원의 남획에서 찾았던 기억이 나네요. 지나친 욕심으로 인해 파멸에 이르지 않도록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겠습니다...

초딩 2020-09-04 13:21   좋아요 1 | URL
^^ 네 유현준교수님의 ‘어디서 살 것인가‘에 이스트섬 및 지나치게 거대한 건축물로 붕괴한 문명의 사례가 나옵니다.
어떻게 읽다 보니, 유현준 교수님의 책과 이 책을 비슷한 시기에 읽어는데, 두 분이 마치 한 저자 같았습니다. ㅎㅎㅎ
^^ 좋은 하루 되세요~

하나 2020-09-04 08: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빛의 교회 참 좋아요. ^^ 초딩님은 한 가지 주제에 천착하는 책을 잘 발견하시는 거 같아요. 덕분에 저도 두 권 따라사서 요즘 틈틈이 읽고 있는데 곧 리뷰 남길게요~ 좋은 하루 되시길!

초딩 2020-09-04 13:23   좋아요 1 | URL
^^ 어떻게 읽다 보니, 요즘 도시, 건축에 관한 책과 물리, 양자역학에대한 좋은 책들을 만나게되었습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을 비록한 북풀의 책을 사랑하시는 분들 덕분입니다 ^^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