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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림과 울림 - 물리학자 김상욱이 바라본 우주와 세계 그리고 우리
김상욱 지음 / 동아시아 / 2018년 11월
평점 :
거대한 우주와 아주 작은 양자 두 세계를 보는 '물리'의 이야기이다. 유명한 영화와 그에 맞춘 책들, 텔레비전의 교양프로로 마치 대중적인 교양이 된 듯한 양자와 다르게 흐르는 시간, 탄생의 빅뱅 등을 인문학자 같은 김상욱 교수님이 매우 흥미롭고 쉽게 설명해주는 책이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빅뱅 전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우리의 정신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라는 두 질문에 과학은 답하지 못한다고 한다. 물론, 양자역학도 이 세상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고 힘으로 다르게 흐르는 여러 개의 시간도 과학은 아직 당황하고 황당해한다고 한다. 시간 가는 줄, 책장 넘기는 줄 모르게 읽으며 생각했다. 시공간의 기준 그리고 그 기준에 따른 측정은 인간의 관점에서 이루어져서 우리는 그런 것들을 아직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해하고 나면, 우리는 이미 우리의 존재를 초월하는 존재가 되어있을 것 같다.
과학자들은 죽음을 전기력으로 모인 원자들이 다시 흩어지는 것으로 본다고 한다. 그 대목을 보니, 그 흩어진 원자들이 다시 적절하게 모이면 인간이 되어 환생할 수도 있겠다고 막연히 생각해본다. 하지만 그 확률은 엔트로피 (복잡도)가 증가만 하듯이 아주 아주 낮을 것이다. 그래서 불교는 무수한 환생을 해야 다시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다고 했나 보다.
아주 놀라운 것은 고대의 그리스 철학자들이 세상을 구성하는 것, 시간, 천체의 운동에 대해 사유한 것들이 현대의 과학에서 일리가 있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아리스토텔레스의 상대적인 시간과 뉴턴의 절대적인 시간의 흐름을 아인슈타인이 합쳤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의 고대 선조들은 현대의 과학이 끙끙거리는 것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고 깨우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창밖을 내다본다. 나의 이 사유하는 정신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존재해서 어떻게 될까. 그리고 자꾸만 과거가 되고 다급하게 다가오는 미래와 잡을 수 없는 현재의 이 시간은 무엇이란 말인가. 밤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저 사람도 나와 같겠지?
그래서 우주보다 인간이 경이롭다. p207
인간은 '인지' 혁명이라는 첫 번째 혁명을 맞이해서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 등을 멸망시켰다고 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정보를 교류 공유할 수 있어서 그랬다고 한 것 같다. 다른 동물과 다르게 호모 사피엔스는 인지혁명을 통해 과학을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두 번째 농업혁명을 통해 정착해서 모여 살며 이 지식의 교류가 더 활발해졌을 것이다. 원시 시대부터 모든 현상을 신에게 돌리듯 종교가 세상을 보는 창이었는데, 어느 순간 인간은 '왜' 라는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신이 노해서 번개가 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번개가 칠까? 그것이 과학혁명이고 도시가 탄생해서 현재까지 왔다고 한다. 그래서 '과학'은 최소한 지구상에서 어느 다른 생명체도 하지 않는 인간만이 가진 사유일 것이고, 그리고 과학은 신과 종교라는 창을 대체한 세상을 보는 태도가 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또 의문하게 된다. 우리 인간은 왜 이런 과학이라는 창을 통해 세상을 그리고 지구를 벗어나 우주를 이해하려고 할까. 이 끝 없이 무한한 호기심을 왜 가지고 있을까? 소크라테스가 말하듯 인류의 모든 활동은 보존을 위한 것일까? 인류의 보존. 우리 인간의 종의 보존 방식일까?
과학은 지식이 아니라 태도니까 p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