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의

신령스러움이니,

호랑이의

산어른다운

위세로다"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1745~1806)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

조선 18세기 후반, 비단에 채색, 삼성미술관 리움

 

고금을 막론하여 우리나라 최고의 사실주의 즉 극사실주의(極寫實主義) 그림으로 평가받고 있는 한국화가 바로 단원이 그린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이다. 풍속도로 유명한 김홍도의 지극히 섬세한 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긴 몸에 짧은 다리, 소담스럽게 큼직한 발과 당차 보이는 작은 귀, 넓고 선명한 아름다운 줄무늬와 천하를 휘두를 듯 기개 넘치는 꼬리, 세계에서 가장 크고 씩씩하다는 조선 범이다.”

 

예전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김홍도는 호랑이를 그리기 위해 실제 호랑이를 보고자 했고 막상 호랑이와 직면하였을 때 무서움에 꼼짝하지 못하면서도 반짝이는 눈으로 호랑이를 바라보던 김홍도의 눈을 잊을 수 없다. 그런 정신이 오롯이 담겨진 그림이다.

 

박지원의 소설 호질(虎叱)에서 썩어빠진 선비를 꾸짖고 호통치던 꼭 그 호랑이와 같다. 하지만 무서움을 넘어선 위엄이 자리 잡고 있다. 산 중의 어른이라고 하는 호랑이의 위엄이 그대로 살아 있다. 이는 우리 민족이 호랑이를 대하는 마음이 반영된 때문이리라.

 

오주석은 그의 다른 저서 한국의 미 특강에서 현재 보물이나 국보로 지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초국보급 작품이며 즉각 국보로 지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첫째, 호랑이를 화폭에 가득 차게 하는 균형 잡힌 구성과 여백으로 호랑이의 위엄이 절로 넘친다는 것. 둘째, 소재로 삼은 조선 호랑이 자체가 지구상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동물이라는 것. 셋째, 그림 자체의 초사실성에 있다. 넷째, 호랑이의 생태가 그림 속에 녹아 있다는 것이다.

 

이 그림을 통해 한국미에는 '무계획적' 또는 '자연 그대로의' 소박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극단적인 사실성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런 사실성이 한국미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최석조는 주장한다. 이에 더하여 송하맹호도의 호랑이와 같은 이런 걸작 미술품들이 박물관에만 걸려 있을 게 아니라 우리 피부에 살갑게 와 닿는 '촉촉한 생필품'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피력하고 있다. 우리 국가대표팀 유니폼에 붙는 마크를 송하맹호도의 호랑이를 사용하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이 그림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이 그림이 단원과 단원의 스승인 표암 강세황(豹菴 姜世晃, 1713~1791)의 합작품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오주석은 이런 이야기는 작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후세에 누군가 그림 값을 높이기 위해 조작했다는 것이다. 이 의견에 공감한다.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월간미술, 2009) 속의 그림을 다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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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5-02-01 23: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홍도가 이런 섬세한 그림도 그렸군요.
풍속도에서 보여지는 인물들의 생생한 표정과 옷의 주름을 표현하는 깔끔한 선과는 또 다른 느낌입니다.
윤곽을 이루는 가장자리의 털은(회색으로 표현된 부분이 가장 맘에 듭니다^^)윤두서의 `자화상`이 연상될 정도로 사실적이네요. 눈썹에 난 털까지도.
직접 보지 않고는 그려낼 수 없었겠죠? 사진으로 찍었어도 이런 장면이 나올까 싶네요.
김홍도의 또 다른 매력을 보고 갑니다.

무진無盡 2015-02-02 07:28   좋아요 0 | URL
김홍도의 풍속도 말고도 다른 그림 보면 마음에 드는 그림 많아요^^
 
조심 - 조심하라, 마음을 놓친 허깨비 인생!
정민 지음 / 김영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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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주인은?

마음은 자신이 사는 세상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자연환경을 비롯하여 사회 정치적인 조건에 따라 늘 변하는 것이 마음이다. 특히, 자의든 타의든 관여하고 있는 인간관계에 따라 왔다 갔다하는 것이 사람이 마음이다. 이렇게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따라 좌충우돌하는 마음을 어떻게 하면 안정시킬 수 있을까?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기에 선인들은 마음공부법을 비롯하여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기 위해 절치부심했다. 홀로 있을 때는 바른 몸가짐으로부터 사회적 존재로써는 정치와 사람 사귐에서 지켜야할 도리에 이르기까지 스스로를 조심하며 마음을 붙잡기 위해 노력했다.

 

정민 선생의 조심(操心)’ 은 바로 선인들의 마음 붙드는 법으로서의 조심을 이야기하고 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피는 것이 아닌 마음을 잘 붙들어 내가 내 마음의 주인이 되는 것이 조심이라고 한다.

 

몸가짐과 마음공부, 시비의 가늠, 세정과 속태, 거울과 등불 등 네 가지 주제로 묶인 백 편의 글이다. 마음을 잃어버린 사람들과 원칙이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묵직한 저울추가 되는 말씀들을 네 글자의 행간에 오롯이 담았다. 옛글 속에서 찾아낸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을 수 있는 내용의 사저성어를 골라 이에 대한 해설을 하고 있다.

 

“‘조심操心은 바깥을 잘 살피라는 의미로 쓰지만, 원래 마음을 붙든다는 뜻이다. 지금처럼 조심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는 때가 없다. 우리는 마음을 잃어버린 사람들과 원칙이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재앙을 경험하고 있다. 물질의 삶은 진보를 거듭했지만 내면의 삶은 더 황폐해졌다. 김매지 않은 마음밭에 쑥대만 무성하다.”

 

지유조심에서 소년청우까지 백 개의 묵직한 저울추를 통해 정민 선생의 해설은 책 속의 글귀에 머물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사회, 정치적 상황에 의해 늘 간섭받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것이기에 그런 현실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다. 모든 제목이 사자성어로, 좁은 행간 안에 깊은 뜻을 담아 촌철살인의 메시지를 전한다. ‘소음의 언어보다 안으로 고이는 말씀이 필요한 시대에 필요한 말씀을 담았다는 이야기다.

 

팽팽 돌아가는 세상은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다. 덩달아 일희일비하다 보면 내 안에 나는 없고 세상으로 꽉 차버린다. 나를 잃으면 허우대만 멀쩡한 쭉정이 삶이다. 조심하라, 마음을 놓친 허깨비 인생

 

내 인생이 허깨비 인생이 아니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할까? 짧은 글귀에 재미있는 이야기들로 짜여진 이 책은 그 허깨비 인생에서 탈출할 수 있는 비법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 자신의 현주소를 살펴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 받아 안을 수 있는지 없는 지는 결국 자신에게 달렸다. 가까이 두고 생각날때마다 한구절씩 펼쳐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다 좋다. 지극히 옳은 말이기에 토를 달 꺼리도 이유도 없다. 그렇지만 사족하나 달자. 마음 붙잡기가 왜 개인의 노력, 실천의 여부로만 집중되는 것일까? 그 개인이 속한 정치사회적 환경을 쏙 빼버리고 모든 것을 개인의 문제로 시작한다면 그 시작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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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5-01-31 2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감입니다. 제도적인 한계가 개인 탓으로 치부되어 버리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홍세화님의 「생각의 좌표」에서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는가`라는 구절이 나오는 데요,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 의해 주입된 생각을 마치 자신의 생각인양 착각하며 살아간다더군요. 생각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거죠.
한때 다른 카페에서 `내삶의 주인`이란 닉네임을 사용한 적이 있었는데요, 삶이든 마음이든 생각이든 주인이 된다는 건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마음에 대해 생각하다 잠시 북플에 들렀는데, 눈에 들어오는 제목에 끌려 두서없이 적어봅니다.

무진無盡 2015-01-31 23:52   좋아요 1 | URL
늘 깨어있는 삶이라면 마음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한 방법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나비종 2015-01-31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기가 필요한 동사로서의 삶인데,
생각보다 쉽지 않아 매순간 갈등을 많이 한답니다.

무진無盡 2015-01-31 23:59   좋아요 0 | URL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을 살아가다보니 갈등하는 순간이 줄어들더군요. 조건에 끄달리지 않은 자족의 삶이 가져온 결과가 아닌가 싶어요.

나비종 2015-02-01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삶을 살고 싶기도 하지만, 어제와 다른 오늘을 꿈꾸고 싶기도 해서요.
욕심이 많은 걸까요?

무진無盡 2015-02-01 00:15   좋아요 0 | URL
욕심과는 사뭇다른 느낌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에는 겉과 속의 조화가 기본이겠지만 때론ᆢ 이미 나이들었다는 반증일수도^^
오늘과 다르지 않을 내일이기에 고요합니다

나비종 2015-02-01 0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다처럼 더 깊고 넓어져야겠습니다. 많은 걸 품고 받아들여도 고요할 수 있도록.
 
김광석 포에버
구자형 지음 / 박하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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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전히, 그가 이토록 그리운 걸까

애써 기억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늘 곁에 머무는 사람처럼 언제라도 부르면 데답할 것 같이 너무도 가깝게 기억되는 사람이 있다. 굳이 이유를 들자면 몇 십 가지라도 나열할 수 있지만 그것 자체가 부질없는 짓이기에 그냥...이라 이름 붙여본다.

 

김광석을 기억하는 나만의 방법이다. 같은 시대를 살았으며 그 시대가 요구하는 정신에 반응하는 방법은 달라도 지향점이 같은 사람들 틈에서 살았기에 자연스럽게 젖어드는 공감이 있다. 하여 그가 불렀던 모든 노래에서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보았고 그렇게 그의 노래 속에서 살았다.

 

80년대 중반 대학을 다니던 시절 유행했던 노래모음집이 있었다. 서울대 노래패가 만들었던 메아리가 그것이다. 노래를 통해 시대의 아픔을 공감하고 그 아픔의 해결을 모색하는 노래운동의 시작과 함께 많은 이야기들이 만들어지던 때였다. 쉽게 구할 수 있는 노래책이 아니었기에 복사본을 다시 복사하여 손에 들고 다녔던 책이다.

 

그 시대를 김광석은 두발로 걸으며 목소리에 담아 노래했다. 한창 절정의 노래를 보여주며 관객과 호응하던 중 세상을 등진 아쉬움이 크지만 그것만이 그를 기억하는 것의 전부는 아니다. 생전 그가 불렀던 노래 속에 담긴 그의 진정성이 살아남은 사람들의 지친 마음에 위안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80년대 중반이후 90년대까지의 한국 민중가요와 포크음악의 중심에 서 있던 김광석은 그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방송작가이자 음악평론가 구자형의 김광석 유고 19주기 기념작 김광석 포에버는 그렇게 김광석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찾아 그들이 기억하는 김광석을 되살리고 있다. 박기영, 안치환, 김창기, 김목경, 이상호, 김숙이, 백창우, 이동은, 이민영, 양병집, 김현성, 김보성, 김제섭, 임종진, 안규철, 박혜정, 임창덕, 류근... 음악동료, 작곡가, 선 후배, 노래비의 조각가 김광석 위패가 안치된 청광사 주지 광조 스님까지 김광석과 직 간접적으로 인연을 맺었던 수많은 사람들과 김광석의 음악과 삶 속 기억되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특히, 백창우에 의해 전해진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밤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199616일 새벽 4, 아무런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난 김광석을 그들은 기억하는 김광석에서 매번 새롭게 살아나는 김광석을 본다. 추모음악회, 뮤지컬, 방송프로그램에 등장을 하고, 온갖 영화와 드라마 속 노래 부르기 등 기억하는 방식을 각기 다르지만 그 다른 방식을 통해 노래에 담고자 했던 김광석의 마음이 전해지고 있다. 김광석이란 가객을 끝까지 오롯이 지켜주지 못하고 떠나게 만든 시대를, 세상을, 그리고 자신을 자책하며 부르는 진혼가다.

 

유난히 힘들었던 2014, 슬픔에 잠긴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노래하나 가진 것 없어서 더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김광석, 그의 노래를 듣고 싶은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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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5-01-30 2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냥. . ˝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어오는 날입니다. . 오랜만에 `서른즈음에`를 듣습니다. .참 아리게 맑은 노래네요. .

무진無盡 2015-01-30 20:54   좋아요 0 | URL
녜..그냥이요

[그장소] 2015-01-31 0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치지않은 편지.혼자남은 밤.타는 목마름으로.신청곡..요!^^
 

"하루

맑고

한가로우면

그 하루가

신선이라네"

 

 

소당(小塘) 이재관(李在寬, 1783~1838년 이후) 오수초족도(午睡初足圖)

조선 19세기 초반, 종이에 수묵 담채, 삼성미술관 리움

 

평상 위에 놓인 책 더미에 윗몸을 기대고 왼쪽 다리를 오른쪽 무릎에 걸친 채 나이 지긋한 선비 한 분이 깜빡 낮잠이 들었다. 오수삼매(午睡三昧). 적당한 볕에 살랑거리는 바람까지 그야말로 단잠이 될 것이다. 깊은 산 속 시골집이다. 마당에 낀 푸른 이끼를 보아 여간해서 찾아오는 손님이 없는 고요함과 한가로움, 느긋함과 편안함이 전부인 곳에서 책 읽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책을 읽다가 쏟아지는 졸음에 잠깐 눈을 붙인다는 것이 그대로 잠이든 모습니다.

 

오수초족도(午睡初足圖)는 송나라의 당경(唐庚, 1071~1121)이란 사람의 글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그 첫머리는 다음과 같다.

 

"산은 태고인 양 고요하고 / 해는 소년처럼 길기고 하다 / 내 집이 깊은 산 속에 있어 / 매양 봄이 가고 여름이 올 때면 / 푸른 이끼는 섬돌에 차오르고 / 떨어진 꽃이파리 길바닥에 가득하네 / 문에는 두드리는 소리 없고 / 솔 그늘은 들쭉날쭉하니 / 새 소리 오르내릴 제 / 낮잠이 막 깊이 드네."

 

많은 옛 선비들이 꿈꿨던 삶이 아니던가. 자연 속 소나무와 학이 어우러지는 풍경 속에서 책 읽고 시 쓰는 선비의 일상에 차 한 모금은 그 무슨 호사도 아니리라. 속세를 벗어나 자연의 품속에서 은일의 삶을 누리고 싶은 선비의 마음이 가득하다. 그렇다고 모두가 속세를 벗어나 그림 속의 선비처럼 살 수는 없다. 하여, 이루지 못한 마음을 담아 그림으로라도 그 삶의 맛과 멋을 간직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새 소리 오르락내리락하는 중에 낮잠이 막 깊이 든(금성상하禽聲上下 오수초족午睡初足)” 모양이다. 화제 끝에 찍은 인장은 "필하무일점진(筆下無一點塵)"이다. "붓 아래 세속의 띠끌 한 점도 없다." 하루 맑고 한가로우면 그 하루가 신선이니까.

 

이재관(李在寬, 1783~1838년 이후)의 호는 소당(小塘)으로 작은 연못이라는 뜻이다. 태조 어진을 복원해 감목관(監牧官)을 지냈다. 산수, 인물, 영모, 초상에 모두 능했고 남종화법의 문인화를 즐겨 그렸다. 그의 산수 인물화는 소재와 분위기 등에 있어 이인상(1710~1760)과 윤제홍(1764~?)의 영향을 받았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했다. 그림은 전체적으로 대담하고 시원스럽다. 수묵은 묵직하고 투박한 듯 하지만 깨끗하고 맑은 담체를 곁들여 여유롭고 높은 정신의 세계를 잘 구현해 냈다. 일본인들이 좋아해 매년 부산에 들어와 작품을 사 갔다고 한다.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월간미술, 2009) 속의 그림을 다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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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5-02-04 15: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후감상화네요. 보기만 해도 여백의 삶이 그려내는 풍경이 부럽습니다. 점점 치열해지는 삶 속에서 가끔은 쉼표처럼 그려지는 시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러려면 욕심부리고 움켜쥐고 있는 많은 것들을 하나 둘씩 버려야겠죠? 사실 제 한 몸 살아가기에는 그리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거늘. . .
(이 와중에 저 인간의 신발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냐며. . ㅎ)

무진無盡 2015-02-04 20:50   좋아요 0 | URL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진다는...
(그러게요..잠에서 깬 것도 아니고 어디 갈 곳도 없는데 신발이 안중에나 있을까요? ㅎㅎ)

나비종 2015-02-04 2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 마음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주인이 맨날 일만 시킨다고 저 동자승필 나는 아이가 감췄거나, 아님 아궁이에 넣고 불 때는 중인지도. . 부채들고 눈치보는 중ㅎㅎ)

무진無盡 2015-02-04 21:16   좋아요 0 | URL
그 마음 달리 먹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
(여기도 갑을관계? ㅎ)

나비종 2015-02-04 2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장 바뀌기 어려운 것이 사람 마음인 것 같아요. 그러다가도 순식간에 바뀌기도 하구요.^^
(이런. . 그럼 이건 역사적인 관점이 도입되는 건가요? 낮잠자는 저 노인 중심으로 서술된 제목하며ㅋㅋ 구석에서 열라 일하는 저 아이는 그저 새들과 함께 배경화되어. .)
 
조선상고사, 국사 교과서가 가르쳐주지 않는 우리 역사
신채호 지음, 김종성 옮김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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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리가 아는 역사가 얼마나 진실일까?

역사에 관심을 갖고 독학(?)해온지 제법 시간이 흘렀다. 관심 분야의 책을 접하고 저자를 따라가며 하나 둘 알가는 사이에 똑 같은 질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바로 내가 알고 있는 역사가 진실일까? 하는 질문이다. 주요 관심분야가 조선사에 편중되기는 하지만 그 조선사는 우리의 역사 중에서 비교적 기록이 많이 남아 있어 역사를 이해하고 해석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으면서도 같은 질문이 떠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그보다 오래전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어떨까? 특히 고대사 영역에 해당하는 역사에 대한 기록의 진실성 여부는 우리민족의 시원의 관한 문제이기에 그 중요성은 더 높다고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알아갈수록 혼란스럽기만 하다. 이는 역사교과서의 기록과 다른 주장들이 제법 등장하고 그 주장들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조선의 실체, 고구려의 강역, 한사군 설치지역 등에 관한 이야기에서는 극명하게 다른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대한 그 진실성 여부도 도마에 오른다. 이러한 의문에 대한 제기는 조선시대 유득공의 발해고를 비롯하여 다수 있었지만 근대에 들어서 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닌가 한다.

 

신채호의 조선상고사는 독립운동으로 뤼순감옥에서 투옥 중인 신채호가 19316월부터 10월까지 조선일보조선사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글을 엮은 것으로, 신채호가 순국한 지 12년이 지난 1948년에 출간되었다. 조선상고사는 단군시대부터 백제부흥운동까지를 다루고 있으며, 1총론에서 제11백제의 강성과 신라의 음모까지 모두 11편으로 이루어져 있는 미완의 저서이다.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원문은 지금의 우리말과 큰 차이가 있어 내용을 이해하며 읽는 것이 쉽지 않고 또한 신채호의 기억력에 의지한 부분이 많다보니 연도나 명칭 등에 오류가 다소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역자 김종성에 의해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원문을 현대어로 바꾸고, 명백한 오류를 바로잡는 한편, 원문에 없는 해설과 주석을 별도로 추가함으로써 독자들이 보다 쉽고 정확하게 우리 고대사의 참모습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신채호는역사는 역사 이외의 다른 목적 때문에 기록해서는 안 되지만우리 상고사는 작자의 의도에 따라 많은 사실 관계가 달라진불완전한 역사라 규정한다. 특히 묘청이 유교도 김부식에 패배한 이후 이 땅에 유교도가 득세하게 되었으며, 그 영향으로 중국을 높이고 스스로를 낮춰 역사를 서술하는 경향이 지배하게 되었다고 단언한다. 이는 신채호가 유교도 김부식과 그가 서술한 삼국사기를 비판하는 주된 이유다. 또한 내란의 빈발과 외적의 출몰이 우리나라 고대사를 쓰러뜨리고 무너뜨렸다는 안정복의 의견에 대해 내란이나 외환보다는 조선사를 기록하는 사람들의 손에 의해 조선사가 쓰러지고 무너졌다고 밝힌 까닭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서 신채호는 단군, 기자, 위만, 삼국으로 이어지는 기존의 역사인식 체계를 부정하고, 대단군조선, 삼조선, 부여, 고구려로 이어지는 새로운 역사인식 체계를 설립했다는 점과 훼손된 단군의 시대를 재조명함으로써 고조선이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이었음을 명확히 규명했으며, 동부여와 북부여의 역사를 서술함으로써 두 나라를 우리 민족의 근원으로 포함시켰다는 점이 주목된다. 또한 김부식에 의해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루었던 백제에 대해 주목한 것도 기존의 역사서와는 다른 시각이다.

 

신채호는 그 당시 현존하는 서적들을 갖고 장단점을 파악하고 대조하여 1천 년 이상 역사에서 의도적으로 배제되거나 축소된 우리 고대사를 바로잡고자 했다. 신채호가 조선상고사에서 삼국사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단군의 시대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해 서술하고, ‘대중국 투쟁의 선봉에 선 고구려의 역사를 중요하게 기록한 것 등은 작자의 의도로 사실 관계가 달라진 불완전한 역사를 제대로 서술하고자 한 그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신채호 이후 한동안 묶여 있었던 우리 역사 바로 알기 차원에서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의 역사학자 이덕일이 의해 우리 안의 식민사관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 되고 있는 것도 신채호가 우리민족의 정체성을 올바로 정립하고자 했던 동일한 맥락에서 분명하게 주목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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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5-02-04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에 대한 시각을 제일 처음 바꿔준 책은 <하워드 진, 교육을 말하다> 였습니다. ˝모든 역사는 주관적이며, 하나의 관점을 대변한다.˝는 말은 이전까지는 교과서가 진리인 듯 배웠던 학창시절을 뒤흔들만한 충격이었죠. 왜 한 번도 의심해보지 않았을까 하는.
역사라는 분야는 제 관심 분야가 아니기는 하지만, 알고는 있어야 하고 여러 관점에서 쓴 사실들을 듣고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긴 그 `사실`이라는 것도 서술자의 시각에서 보는 진실이겠죠.
<삼국사기>에서 보여주는 과거가 다는 아니었군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사가 선주민들에게는 피빛 침략사가 되었던 것처럼.
역사를 기술하는 이들은 늘 힘이 있는 부류이기 때문에, 하층민이나 조명되지 않았던 이들의 삶을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는 게 안타깝습니다. 그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구요.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게 하는 글입니다.

무진無盡 2015-02-04 20:53   좋아요 0 | URL
2001년 [풍납토성, 500년 백제를 깨우다]라는 책을 보며 우리 역사학계의 현실을 접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럴싸한 직함을 가진 사학자들의 이면이 어찌나 구리던지요. 아마도 그후로부터 본격적으로 관심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