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좋고 열매도 좋은 석류화石榴花

간밤에 비 오더니 석류꽃이 다 피겠다

부용당芙蓉堂 가에 수정렴水晶簾 걸어 두고

뉘 향한 깊은 시름을 못내 풀려 하노라

*조선사람 상촌象村 심흠申欽의 시조다. 머리속에 한편의 풍경이 지나간다.

“석류는 본래 서역西域에서 나는 것으로, 한나라 때 장건張蹇이 안석국安石國에서 가져왔다 하여 석류石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석류는 꽃이 좋을 뿐 아니라 그 열매가 볼 만하고 또 먹을 만하여, 예로부터 흔히 재배해 왔다.”

다음은 강희안의 ‘양화소록養花小錄’에 나오는 석류에 대한 내용이다.

“층층이 뻗은 가지가 위는 뾰족하고 밑은 퍼진 것은 백양류柏樣榴, 즉 잣석류라 한다. 줄기가 곧고 위쪽은 성글어 가지가 마치 일산日傘을 펼친 것 같은 것은 주석류柱石榴, 곧 기둥석류라 한다. 몇 그루가 덤불로 나서 가지가 뒤엉긴 것은 수석류藪石榴, 즉 기둥 석류라고한다.”

옛사람들의 그림 속에도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열매 속에 씨앗이 많아 다산을 상징하는 의미를 나타낸다고 한다.

퇴근 후 길을 가다 눈을 사로잡는 꽃이 있다. 담장 아래 초록 잎이 무성한 키 작은 나무에 붉은 꽃이 몇 개 보인다. 차를 돌려 다시 그곳에 멈춘다. 자세히 보니 석류나무다. 다가섰다 물러섰다 눈맞춤 하는 사이 할머니 한분이 다가와 비시시 웃는다. 할머니 얼굴에도 석류꽃이 피었다. 속류는 붉은 것이 과하지 않아 친근감이 있고 수줍은 듯 빼꼼히 속내를 보여주는 열매도 좋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듯 석류꽃은 향기가 없다.

*문일평의 '화하만필'을 정민 선생이 번역하고 발간한 책, '꽃밭 속의 생각'에 나오는 꽃이야기에 내 이야기를 더하고자 한다. 책의 순서와 상관 없이 꽃 피는 시기에 맞춰 내가 만난 꽃을 따라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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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과나무
무엇보다 향기로 기억되는 나무다. 울퉁불퉁하게 생긴 열매가 담고 있는 향기는 적당히 강하고 달콤하며 때로는 상큼하기까지 하다.

구름무늬 모양으로 얼룩진 나무껍질의 아름다움에 통과의례 처럼 손으로 쓰다듬는다. 무늬가 선명하고 색감이 전하는 느낌도 좋다. 사계절 차가움을 전하는 시원함도 한몫한다. 붉그스레한 꽃도, 노오란 열매도 때마다 놓칠 수 없는 즐거움으로 눈맞춤 한다.

중국이 원산지인 모과는 "나에게 모과를 보내주었으니 아름다운 패옥으로 보답코자 하나니······"로 시작하는 시경의 위풍편에 실려있을 정도로 오래된 과일나무다. 이처럼 모과는 친구나 애인 사이에 사랑의 증표로 주고받았다는 것이다. 2~3천 년 전에도 모과는 이렇게 귀한 물건이었다고 한다.

뒷산에서 얻어온 나무가 커서 이제는 열매를 맺는다. 목과(木果)라고도 한다. 못 생겼다고 하는 열매에서 의외의 향기를 얻어서일까. '괴짜', '조숙'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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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읽는수요일

모란꽃 이우는 날

생각은 종일을 봄비와 더부러 하염없이

뒷산 솔밭을 묻고 넘쳐오는 안개

모란꽃 뚝뚝 떨어지는 우리 집 뜨락까지 내려,

설령 당신이 이제

우산을 접으며 방긋 웃고 사립을 들어서기로

내 그리 마음 설레이지 않으리,

이미 허구한 세월을

기다림에 이렇듯 버릇 되어 살므로

그리하여 예사로운 이웃처럼 둘이 앉아

시절 이야기 같은 것

예사로이 웃으며 주고받을 수 있으리

이미 허구한 세월을

내 안에 당신과 곁하여 살므로

모란은 뚝뚝 정녕 두견처럼 울며 떨어지고

생각은 종일을 봄비와 더부러 하염없어

이제 하마 사립을 들어오는 옷자락이 보인다

*5월은 모란와 관련된 시를 모아본다. 유치환 시인의 시 '모란꽃 이우는 날'이다. 삼백예순 날을 기다려 겨우 열흘 남짓 모란은 그렇게 지고 만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통밀천연발효빵 #들깨치아바타 #곡성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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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나섰다.
멀리 사는 이들이 '내일이야'는 한마디에 주저없이 나선 길이다. 곡성과 옥천, 울진과 서울에서 출발은 달랐지만 정해진 시간에 한곳에 모였다. 초봄 제주에 이어 오랜만이다.

김밥을 사고 물을 챙기고 누군가는 배낭을 메고 다른이는 지팡이를 챙기는 동안 모두는 신발끈을 조였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꽃을 찾으며 걷는 중에는 혹 힘들어하는 이는 없는지 속도를 조절하며 산길을 걷는다. 누구 한사람 무엇인가를 발견하면 서로를 부르며 눗맞춤 할 기회를 놓치지 않게 하는 것은 기본이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대상으로 삼은 꽃만이 아니다. 풀이든 나무든 익숙하거나 생소한 것도 가리지 않고 나누다 보면 어느순간 같은 장소에 함께 머문다.

서두르거나 재촉하지도 않으면서 각자 독특한 자세와 방법으로 꽃들과 눈맞춤하고 있다. 시선이 향하는 곳은 달라도 마음이 닿는 곳은 하나임을 알기에 묵묵히 지켜볼 뿐이다.

그렇게 함께 보낸 시간이 쌓여 벗들의 마음 가득 꽃 닮은 미소가 넘친다. 표정만 봐도 그날의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사정이 있어 함께하지 못한 벗들의 마음을 배려하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전설적인 나무 주목 앞에 섰다. 나무가 건너온 시간을 눈으로만 짐작하기에는 정성이 부족하기에 품에 들어 가만히 안겨 본다. 안기는 내가 안았지만 어디 나무의 시간이 내어준 품의 풍덩 빠지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을 함께 한 꽃친구들의 품에 안긴듯 한없이 포근한 든든하다. 나무를 안거나 안겨본 이들만이 공유하는 느낌이리라.

모두는 서로에게 이런 나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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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컴맹 2024-05-29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람한 만남과 우정. 모두 행복한 동행 같습니다
 

탱자나무
뽀쪽한 가시로 중무장 했다. 지겨야할 무엇이 있기에 날카로움을 밖으로 세웠다. 단단한 나무고 깊숙히 열매를 품고 있기에 나름 방비를 갖췄다고 여겨지지만 가시까지 무장한 것으로 봐선 지키고자 애쓰는 것이 꼭 자기자신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풀어헤쳐진 꽃잎의 자유분방함에 하얀색으로 유독 빛난다. 윤기나는 연초록 잎과 눈부시도록 하얀 꽃의 어울림이 서로를 더욱 빛나게 한다. 여기에 향기까지 있어 탱자나무가 가지는 그 넉넉함은 넓고 깊다.

탱자나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위리안치圍籬安置다. 귀양 보내 주거지를 제한하는 형벌로서 집 주위에 탱자나무를 빙 둘러 심어 바깥출입을 못하게 한 것을 말한다. 시골 마을엔 울타리용으로 가꾼 흔적은 지금도 더러 남아있다.

열매, 뿌리, 껍질 등은 약재로도 쓰였고 요즘은 열매로 차를 담아 음용한다. 또한 소리꾼의 북을 치는 북채로는 탱자나무로 만든 것을 최고로 친다. '추억'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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