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제1낙樂

맑은 창가에 책상을 깨끗이 정돈하고,
향을 피우고,
차를 달여놓고,
마음에 맞는 사람과 더불어 산수를 이야기하고,
법서法書와 명화名畵를 품평하는 것을
인생의 제1낙樂으로 삼았다.

*조선시대 장서가와 서화수장가로 유명했던 담헌 이하곤李夏坤(1677~1744)의 말이다. 출사하여 입신양명을 중요한 가치로 치던 조선시대에 출세에 미련을 버리고 마음 맞는 사람과 그림을 감상하는 것을 최고의 즐거움으로 삼았다.

무엇에 대한 가치도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지만 
사람이 마음의 벗을 찾아 함께 누리고 싶은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가 아닌가 싶다. 깊어가는 가을이 주는 정취는 자기를 돌아보게 하며 사람과 사람의 사귐에 대해 성찰을 요구하는 시간이다.

나에게 있어 인생의 제1낙樂은 무엇일까.

'침잠沈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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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네가 있어 마음속 꽃밭이다
-나태주, 열림원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시 '풀꽃'의 시인 나태주의 산문집이다. 등단 50주년을 맞이하여 그동안 발표했던 열권도 넘는 산문집 중에서 가려 뽑은 글들로 모은 산문 선집이다.

'시로서 쓸 수 없는 말이 있어' 산문을 쓴다는 시인의 문장 속으로 가을 나들이를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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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에세이 -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
부희령 지음 / 사월의책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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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아침 안개 속을 걷는 듯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의 변화를 아침 안개의 상태를 신호로 삼는다밤을 건너온 자욱한 안개 속으로 힘없는 햇살이 스며들며 천천히 깨어나는 아침은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다양한 감정을 품고 있다.보일 듯 말 듯 열린 농로를 따라 안개 너머의 세상으로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는 마음으로 하루를 맞이한다.

 

안개 세상은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대상과 나를 가르는 벽인 듯 싶지만 결코 단절은 아니다대상을 멀리 두는 거리감을 가졌지만 또한 서로를 이어주는 넓은 품을 가졌다차갑게 다가오는 듯 싶지만 때론 온전히 감싸주는 아늑함이 있다안개의 매력 속으로 빠져드는 계절을 건너는 중이다.

 

이 가을아침 안개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글을 만났다작가 부희령의 책 무정에세이가 담고 있는 문장에서 얻는 느낌이 그렇다작가 부희령과는 이 책으로 첫 만남이다아니 페이스북 친구이니 글을 만나는 것은 처음은 아닐지도 모른다저자와 책에 관한 정보 없이 손에 든 책을 펼친다여기저기서 올라오는 책 소개 덕분이다.

 

여섯 가지 테마로 엮은 글을 조심스럽게 펼친다별로 꾸미지 않은 문장에 이런저런 일상을 건너오는 생각을 잔잔하게 드러내고 있다속내를 드러내기에 망설여질 법도 한 내용 있고지극히 사소한 작가의 가정사를 비롯한 개인이야 뿐만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아픈 마음을 나누는 이야기도 있다.

 

무심한 듯 펼쳐놓은 이야기들을 따라 가다보면 안개 속을 걷는 것처럼 서늘함과 아늑함이 공존한다내 발밑을 보지 못하고 순간순간 걸려 주춤거리듯 읽던 문장에서 넘어지는 순간을 마주한다문장이 품은 온도는 따뜻하나 곁은 내주지 않은 무심함이 앞서는 것일까아니며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될 속내를 드러내서 읽는 이의 부끄러운 마음을 까발리는 솔직함에서 오는 불편함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이유가 무엇이든 문장에 감정들이 걸려 넘어지는 순간마다 안도의 숨을 내쉬게 한다묘한 끌림의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쉽게 가시지 않은 감정의 무게를 남겼으니 작가와의 첫 만남은 성공적이다여물어가는 가을에 묵직한 문장을 만났으니 계절을 건너가는 발판으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짙은 안개 속을 걷다보면 안과 밖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

 

결국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은 내 안에서 하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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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은 사람을 그윽하게 하고, 술은 사람을 초연하게 하고, 돌은 사람을 준수하게 하고, 거문고는 사람을 고요하게 하고, 차는 사람을 상쾌하게 하고, 대나무는 사람을 차갑게 하고, 달은 사람을 외롭게 하고, 바둑은 사람을 한가롭게 하고, 지팡이는 사람을 가볍게 하고, 미인은 사람을 어여삐하게 하고, 중은 사람을 담박하게 하고, 꽃은 사람을 운치롭게 하고, 금석정이金石鼎彛는 사람을 예스럽게 한다.

그런데 매화와 난은 거기에 참여시키지 않았다. 옛사람이 어찌 애지중지할 줄 몰랐으리요만 평범한 꽃에 운치를 비교할 수 없고 특히 한 글자로써 적당히 표현할 수 없으므로 거기서 빠뜨린 것이다.

나는 한 글자를 뽑아내러 그것에 해당시기를 '수壽'라고 한다. 수의 뜻은 눈을 감고 한번 생각해 볼 것이다."

*우봉 조희룡(1789~1866)의 글이다. 매화에 벽이 있을 정도로 좋아해 매화 그림을 많이 그려 '매화화가'로 불렸던 사람이다. 작품으로 '매화서옥도'와 '홍매대련' 등이 있다. 이글은 '한와헌제화잡존'에 있다. 조희룡은 '수壽'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달도, 거문고도, 꽃도 좋아하고 물론 매화도 관심이 많은 사람이지만 조희룡의 이 글에 다 공강하는 것은 아니다. 좋아해서 관심을 갖고 그 주목하는 바가 벽癖이 생길 정도라면 혹 다를지도 모르겠다. 

어찌보면 치癡나 벽癖이 없는 사람은 그 삶이 무미건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무엇에 그토록 관심을 갖고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며 복이라는 생각에 공감한다.

자신을 잊어버릴 정도로 몰입할 대상이 있는가? 나이들어 갈수록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하는 대상이 늘어난다. 그러니 틈이 생긴 만큼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꽃, 나무, 악기, 책?. 이 혼자 있는 시간을 무엇과 함께 어떻게 누려야할까. 

나는 혼자서도 잘 놀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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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
가을 숲은 빛의 천국이다. 겨울을 준비하는 마음에 온기로 스미듯 달려드는 가을볕의 질감이 대상을 더 빛나게 한다. 황금빛을 빛나는 들판이 그렇고 요란스러운 단풍이 그렇다. 그 가운데 꽃보는 묘미를 빼놓을 수 없다.


짙은 청색의 색감이 주는 신비로움이 특별하다. 먼 하늘로 땅의 소리를 전하고 싶은 것인지 세워둔 종모양의 꽃이 줄기끝이 모여 핀다. 가을 햇살과 잘 어울리는 꽃이다.


용담龍膽은 용의 쓸개라는 뜻이다. 그만큼 약재로 유용하게 쓰였다는 의미일 것이다. 약초꾼이 아니기에 이쁜 꽃일 뿐이다. 가을 산행에서 놓칠 수 없는 꽃이다.


아름다운 꽃에는 유독 슬픈 꽃말이 따라붙는 경우가 많은듯 하다. '당신의 슬픈 모습이 아름답다'는 꽃말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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