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에 시집온 칭기즈칸의 딸들 표정있는 역사 3
이한수 지음 / 김영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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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찰자 뒤웅박이라는 말이 있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바가지는 박을 전반으로 쪼갠 것인데 이것 말고 한부분만 잘라내어서 그 안에 물건을 담아둘 수 있도록 만든 박이 있다. 이것을 뒤웅박이라고 한다. 네이버를 뒤져서 뒤웅박 이미지는 가져왔다.

 

 

  이렇게 생긴 것을 뒤웅박이라고 한다. 여자팔자를 왜 뒤웅박이라고 했냐면 뒤웅박은 그 안에 물건을 담아두게 만든 바가지로 부자집에 시집을 가면 그 안에 곡식을 담아두고, 가난한 집에 시집을 가면 그 안에 여물을 담아 둔다는 의미란다. 여자가 어떤 남자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그 인생이 달라진다는 뜻인텐데 벌써부터 기분나빠하시는 여성 알라디너들의 눈초리가 무섭게 마음에 꽂힌다. 여자팔자만 뒤웅박은 아니다. 남자팔자 또한 뒤웅박이다. 어떤 상대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그 일생이 달라진다는 것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모두 동일하다.

 

  뜬금없는 뒤웅박 이야기를 왜 하고 있는가? 이 책에 나오는 몽골 공주들과 고려 왕들의 신세가 꼭 뒤웅박이기 때문이다. 몽골과의 항쟁에서 생각보다 끈질기게 버텼던 고려는 자신들을 비싸게 몽골에 팔 수 있었다. 고려는 국호를 유지했다느니 왕조를 유지했다느니 하면서 고려를 몽골의 독립국으로 보는 것은 자기 위안일 뿐이다. 생각보다 끈질긴 항쟁의 대가가 국호와 왕조유지였으며, 나머지는 몽골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몽골은 다루가치라는 몽골인 관리를 두어 고려의 국정을 감시했으며, 이것으로 부족해서 고려를 자신들의 편으로 묶어두기 위하여 혼인정책을 시작했다. 왕이 될 사람을 몽골 부인과 혼인하게 하여 고려를 친몽골 성향의 국가로 묶어두기 위해 애썼다. 물론 고려의 왕 또한 몽골의 공주와 혼인함으로 인해 몽골 제국 내에서의 서열이 급상승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양자의 필요에 의해서 몽골의 공주들은 고려로 시집을 오게 되었다.

 

  이 일이 반복되면서 벌어진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초반에는 여자가 억지로 시집을 가게 되었지만 점점 시간이 갈수록 왕위를 노리는 고려의 왕자들이 자청해서 몽골의 공주와 결혼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공민왕 또한 고려의 왕이 되기 위하여 노국공주와 결혼했음은 신돈이라는 드라마를 통해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누가 뒤웅박이란 말인가? 아마도 고려의 왕자들이 뒤웅박이지 않았을까?

 

  몽골의 공주가 아니라 칭기스칸의 딸들이라는 제목을 사용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의 삶은 결코 평탄한 것이 아니었으며, 그들의 성품은 우리가 알듯이 조용하고 순종적인 것이 아니었다. 이례적으로 관계가 좋았던 공민왕의 부인 노국공주도 결코 얌전하게 운명에 순응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공민왕의 모든 개혁정책과 반몽골 정책을 뒷받침하고 흔들리는 왕권을 강화할 수 있도록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주었던 사람이다. 노국공주만 그러한가? 아니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여인들의 삶이 결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일반적인 공주상은 아니다. 예쁘고, 갸냘프고, 하늘거리는 드레스만 입고다니는 디즈니풍의 공주가 아니라 말을 타고, 정치감각이 뛰어나고, 거칠고, 남편 이외의 남자를 선택할 정도로 자유분방한 인물들이었다. 결코 남자 입장에서는 좋아할만한 성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고려의 왕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아 단순히 고려에 볼모로 잡혀 온 것도, 도매금에 팔려온 것도 아니다. 물론 전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이 왕 못지않은 권력을, 오히려 왕보다 더한 권력을 휘둘렀던 경우도 있었다. 간혹 왕의 부재시에 왕을 대신해서 정무를 보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는 화냥년이라는 기억만 가지고 있다. 조선시대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아픈 사람들에 대한 기억조차 잊기 위해서 일부러 그 시대의 역사를 추억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다보니 그 당시 지배자들의 입장에 서 있던 사람들의 삶을 기억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고려에 시집왔던 몽골 공주들의 삶이 이런 것이었구나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많아서 꽤 흥미로웠다. 권력을 휘둘렀던 그들이지만 꼭 승자만은 아닌 것 같은데... 이들에 삶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하게 조명해 보는 것도 꽤 재미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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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2012-11-17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책이네요. 역사를 새롭게 보게 해줍니다.. ^^

saint236 2012-11-17 23:30   좋아요 0 | URL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시리즈 꽤 재미있습니다. 역사의 전면에 나오지 않은 사람들을 불러내거든요. 역사 속의 첩자라든지, 왕을 낳은 후궁이라든지...시리즈 제목도 표정이 있는 역사입니다.

다크아이즈 2012-11-18 0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인트님 정녕 이런 책이 있단 말이지요. 흥미롭습니다. 역사 이면의 역사, 관심 많은데 굉장히 재미있고 의미있겠네요. 일단 보관함으로 담습니다. 고맙습니다. 세인트님.

saint236 2012-11-18 16:03   좋아요 0 | URL
저도 우연한 기회에 건진 것인데 꽤 재미 있습니다. 아들뻘인 고려왕에게 강간당했던 몽골 공주도 있고, 이 때문에 그 고려왕은 왕에서 쫓겨나 유배를 가다가 죽었고. 우리가 잘 모르던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춘추전국 이야기 1 - 최초의 경제학자 관중 춘추전국이야기 (역사의아침) 1
공원국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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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 대통령을 표방하면서 대통령에 당선된지 벌써 5년이 되어간다. 성공한 CEO라는 포장 속에서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기업들이 투자를 늘릴 것이고, 경제는 살아날 것이며, 서민들은 살기 좋아질 것"이라는 취지의 연설을 수도 없이 했던 것으로 기억하다.(나꼼수 초반 에피소드를 듣다보면 본인의 육성으로 이 부분을 확인할 수 있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대통령이 되면서 747 공약을 자신있게 내세웠던 것으로도 기억한다. 국민들도 이명박 후보가 흠이 많은 사람이지만 경제는 살려 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욕쟁이 할머니가 등장했던 CF도 기억이 난다. 그렇지만 결과가 무엇인가? 매년 7%의 경제 성장, 1인당 4만달러 시대, 세계 7대 강국이라는 그의 정책은 5년간 합계 성장율 7%가 아니냐는 조롱을 받고 있다.

 

  어느덧 5년이 흘러서 새로운 대통령을 뽑을 때가 되었다. 모든 후보들이 경제 민주화를 이야기한다. 심지어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도 경제 민주화를 이야기한다. 물론 새누리당의 경제 민주화라는 것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은 얼마전 김종인씨를 통해서 만천하에 공개 되었다. 시사인 265호 10페이지에 아주 멋있는 캐리커처와 함께 이에 대한 김종인씨의 발언이 기록되어 있다.(시사인을 구독하다 보니 시사인을 인용한 것뿐이니 색깔론 공세를 펼치지 말 것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전까지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모두 재벌 개혁, 경제 민주화를 주장했고, 문재인과 안철수는 여전히 이 부분에 대한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런데 말이다. 거창하게 경제 민주화를 말하고, 재벌 개혁을 주장하지만 문재인이나 안철수나 모두 이렇다할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책이라고 내놓은 것들이 뜬 구름 잡는 식이다. 오히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심상정과 노회찬이 독보적이다. 다만 그들은 통진당 사태를 통해서 치명타를 맞았기 때문에 회복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대선은 경제가 전부였고, 이번 대선에도 마찬가지다. 복지를 말하는데 복지라는 것도 결국은 경제 문제와 같이 가는 것이니, 이번 대선도 경제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북 통일 문제는 한번도 입에 오르내리지 않고 있으며, 오로지 복지와 경제에 관한 말뿐이다. 내가 판단컨대 이대로라면 문재인이 가장 불리하지 않겠나 싶다. 문재인 선거 참모들을 보면서 답답함을 느끼는 것은 그들이 왜 통일과 안보 문제에 대해서는 조용하면서 박근혜와 안철수가 선점한 경제 프레임 속으로 들어가서 정신을 못차리느냐는 것이다. 이 때 통일과 안보 문제를 가지고 새로운 프레임을 구축하는 것이 문재인에게 가장 효과적이지 않겠는가?(어찌되었거나 그는 특공대 출신이 아닌가?)

 

  이야기가 딴 길로 샜지만 경제와 복지를 말하는 이번 대선 후보들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벤치마킹해야 할 사람이 있으니 관중이다. 관중에 대한 공원국의 평가대로 그는 최초의 경제학자이자, 철저한 현실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삼국지를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제갈공명은 자신을 "관중과 악의"에 비견한다. 관중은 최초의 경제학자로 국가를 잘 경영한 사람이요, 악의는 전쟁터에 나가서 국가의 안보를 지킨 지용을 겸비한 장수다. 행정과 군무, 즉 경제와 안보를 모두 중요하게 여기겠다는 제갈공명의 포부를 볼 수 있다.

 

  각설하고 왜 공원국은 관중을 최초의 경제학자라고 하는가? 제환공을 천하의 패자로 만든 관중의 힘이 어디에서 연유되었는가? 그의 현실감각이다. 관중에 관한 여러 에피소드를 읽다보면 관중은 참으로 기회주의자요, 비겁한 사람으로 평가절하될 수도 있다. 포숙아와 같이 사업을 하면서 더 많은 이익을 가져가거나 뒤로 물러나거나, 혹은 같이 죽지 않고 살아서 적군이었던 제환공의 신하가 되었거나 하는 모습들을 보면 관중은 참 비루한 사람이요, 변절자로 보이지만 그의 변절과 비루함은 철저하게 현실에 그 기반을 둔다. 능력이 안되면서 체면을 차리느라 무리하지 않고, 자기를 가장 잘 써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현실적으로 판단한다. 그런 그가 내놓은 경제 정책의 핵심이 무엇인가?

 

  백성이란 근심과 고생을 싫어하니, 나는(군주는) 그들을 즐겁게 해줘애 한다.

  백성이란 가난과 비천을 싫어하니, 나는 그들을 부유하고 귀하게 해줘야 한다.

  백성들이란 위험에 떨어지는 것을 싫어하니, 나는 그들을 안전하게 보존해야 한다.

  백성들이란 자신이 죽고 후대가 끊어지는 것을 싫어하니, 나는 그들이 수명을 누리고 후대를 잇도록 화육해야 한다.(p232)

 

  좋은 금속(양질의 청동)으로는 검과 극을 만들어 개나 말로 예리함을 시험하고, 나쁜 금속(불순물이 많은 청동)으로는 호미 등의 농기구를 만들어 땅을 가는데 시험하십시오.(p233)

 

  관중은 현실주의자답게 욕망을 긍정한다. 그렇다고 뉴라이트처럼 엉뚱하게 욕망을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욕망을 긍정한다. 그리고 그 욕망을 위해 자본을 어떻게 투자해야할지를 판단한다. 물론 투자 판단의 기준은 긍정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가장 효율적인 것이 무엇인가이지 누구처럼 사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강바닥에다 쓸어 붓는 무모한 일은 하지 않는다. 현실을 고려한 경제 정책은 이런 것이다.

 

  대선후보들이 경제를 말하고 싶다면 현실에 기반한 경제정책을 세워라. 버스값 70원 드립을 치면서 대통령이 되겠다는 판타스틱한 경제관념이 아니라, 부자되세요라면서 개인의 부정적인 욕망을 자극할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상생할 수 있는 긍정적인 욕망을 먼저 생각하라. 747 같은 탁상공론식 정책이 아니라 서민들의 삶이 무엇인지를 먼저 챙겨라. 선거철이 되면 떡볶이, 순대 한번 먹고, 시장에서 물건 한번 살 것이 아니라 촌놈의 삶이 무엇인지를 알았던 관중처럼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 전셋사는 사람들의 애환을 경험해 봐라. 박세일이나 김문수처럼 택시기사라도 해봤다면 최소한 버스값 70원 드립은 치지 않았을 것이다. 등록금을 반값으로 줄이는 것이 아니라 부담을 반으로 줄이겠다는, 혹은 주어가 없다는 궁색한 변명을 하지 말고, 얼마나 힘들게 등록금을 벌어서 대학을 다니는지, 최저 임금이 4500원 수준임을 먼저 알려고 노력해라. 최저임금 5000원 발언하면서 복지와 일자리를 이야기하고, 쌍차를 저렇게 절단내면서 전태일 다리를 찾아가는 그런 체면차리기식 정치를 내세우지 마라. 사람들이 왜 기존 정치인들에게 분노하는지 진정 모르는가?

 

  관중의 현실 정치는 자신의 한계를 정확하게 안다. 과도하게 몰아붙이지 않고,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하지 않고 관리하는 차원에서 머문다. 과도하게 통제를 하려고 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방임해서도 안된다. 적절하게 균형을 맞춘 관리가 필요하다. 자기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자만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너무 몰라서 나 몰라라 해서도 안된가.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정부는 극과 극을 달린다. 이미 권력은 시장에 넘어갔다면 재벌의 막강한 권력을 방임하다가, 어느 순간에는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면서 모드 것을 통제하려고 한다. 이런 통제가 재벌에 대한 통제가 아니라 국민과 언론에 대한 통제인 것이 문제다. 경제도, 정치도, 외교도 자기가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내가 최고라는 생각을 버려라. 관중은 자신의 한계와 제나라의 한계를 냉철하게 인식했기 때문에 패자라는 새로운 정체를 만들어 낸 것이다.

 

  대선이다. 곳곳이 시끄럽고 네거티브 공세가 판을 친다. 경제를 말하지만, 복지를 말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현실적인 대안은 없다. 박근혜는 그네를 타면서 땅으로 내려와 현실을 직시할 생각이 없다. 그저 공기를 밟고 있다. 문재인은 문제를 제기하지만 대안이 없는 것이 문제다. 안철수는 영희의 도움으로 잠시 한숨을 돌리고 있지만 경제와 정치 바이러스를 치료할 백신을 아직 내놓지 못하고 있다. 고만고만한 지지율들이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삼국시대를 열고 있다. 누가 국민의 선택을 받을 것인가? 관중을 통해 현실 감각을 배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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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5 1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28 0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int236 2012-10-28 17:28   좋아요 0 | URL
자신과 자기 당에서 뭐든지 다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독재라는 말이겠죠.
 
항우 강의
왕리췬 지음, 홍순도.홍광훈 옮김 / 김영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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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발산 기개세(力拔山氣蓋世)!

  가진 힘은 산을 뽑을 정도이고 기개는 세상을 덮을 정도로 기력이 웅대(雄大)함을 이르는 말이다.

 

  사면초가(四面楚歌)!

  '사방에서 들려오는 초나라의 노래'라는 뜻으로, 사방이 적에게 포위당하여 고립되어 있거나 곤경에 처한 상태를 비유하는 말이다.

 

  홍문지연(鴻門之宴)!

  음모와 살기가 가득찬 연회, 혹은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위험한 자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수자부족여모(豎子不足與謀)!

  어린 자식과는 더불어 일을 꾀할 수 없다는 말로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사람과는 큰 일을 도모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유하면목견지호(有何面目見之乎)!

  '무슨 면목이 있어 이들을 보겠는가?'라는 말로 볼 낯이 없다는 뜻이다.

 

  서초패왕(西楚覇王)!

  진시황의 진나라를 멸망시켰지만 유방과 첞를 놓고 다투다가 패하여 자결한 항우를 가리킨다. 위에 열거한 많은 말들은 모두 서초패왕 항우를 가리키는 말이다. 항우는 역사적으로 패자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듯이 패배한 자들은 황음무도라고 인간 이하의 존재로 그려지고 조작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광해군이나 연산군의 경우를 보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악명의 대부분은, 아무리 양보를 한다고 할지라도 절반 정도는 본인들의 행적과는 무관한 조작이라는 것이 사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역사책에 기록되어다고 있는 그대로를 믿는다면 그 사람은 역사를 공부할 자격도 없으며, 역사를 공부해 보지도 않은 사람일 것이다.

 

  대개 역사의 패자들은 이렇게 억울한 누명을 쓰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가, 집권자들의 필요에 의해서 소환 당하여 욕을 먹고 다시 사라지는 것이 운명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패배자이면서도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항우이다. 중국 사람들의 사상을 확립한 나라는 한(漢)이라고 하며 두고두고 지도자의 귀감이 되는 사람으로 꼽히는 것이 한고조 유방(劉邦)이다. 그런 유방과 다투어 패한 항우인데도 불구하고 묘하게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캐릭터 중에 하나이니 신기할 따름이다. 얼마나 인기가 좋으냐? 중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경극 중의 하나가 패왕별희인데 항우와 항우가 사랑한 여인 우미인이 가슴아프게 헤어지는 장면이 이 경극의 내용이다. 과거 장국영이 예쁘게 여장을 하고 나왔던 그 영화가 바로 이 경극을 내용으로 한다.

 

  그렇게 인기가 있던 항우의 몰락 원인이 무엇인가? 어떤 이들은 정치적인 원인에서, 어떤 이들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인재풀에서, 어떤 이들은 그의 성격에서 찾는다.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이 책은 항우의 성격을 분석하여 그가 패망한 원인이 "교만"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뼈대 있는 가문(초나라의 대장군 집안)에서 태어나 선천적으로 교만할만한 기질(좋게 말하면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고귀함이요, 나쁘게 말하면 자기 잘난 맛이다)을 가지고 있다. 이 기질이 초반에는 항우에게 부정적인 영향보다 긍정적인 영향을 끼쳐서 자신감으로 나타났고, 그의 성공을 도왔지만 정점에 오른 순간에는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영향을 더 많이 끼쳐서 제 잘난 맛에 사는 교만함으로 나타났다. 이는 필연적으로 부하들과의 소통 부재를 불러왔고, 현실을 정확하게 직시할 수 있는 안목을 빼앗아갔다. 이런 데미지가 4년 동안 쌓여 항우는 유방에 비하여 가지고 있었던 어마어마한 유리한 고지들을 다 빼앗기고 초라하게 몰락했다. 쉽게 말해 제 잘난 맛에 살다가 자폭해 버렸다는 이야기인데, 성공 요인 속에 실패의 요인이 있다는 금과옥조와 같은 말이 다시금 실감이 된다.

 

  책에 대한 감상은 이 정도로 하고 이 책을 읽어가면서 생각나는 한 분이 계신다. 그분이 누구인지 수수께끼를 내니 맞춰 보시라. 다음에 열거하는 것은 그 분의 주옥같은 어록들이다.

 

  “내가 어린 시절 노점상을 해봐서 여러분 처지 잘 안다. 가게 앞에 있으면 옆으로 가라고 해서 계속 쫓겨 다녀 돈만 벌면 가게 사는 게 소원이었다. 저는 여러분의 마음을 이해하는 편이다.”

  - 2008년 12월 23일. 연말에 어렵지만 열심히 사는 서민 250여명을 청와대로 초청, 오찬을 하며

 

  “천안함, 내가 배를 만들어봐서 아는데 파도에도 그리될 수 있다. 높은 파도에 배가 올라갔다가 떨어지는 과정에서도 생각보다 쉽게 부러질 수 있다. 사고 가능성도 있다.”

  - 2010년 4월 1일 청와대에서 남미지역 특사를 맡은 한나라당 의원들과의 오찬에서

 

  “학생 때 나도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면서 고통을 겪었던 민주화 1세대이다. 어젯 밤 열린 6.10 민주항쟁 집회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 2008년 6월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중소기업 성공전략회의에서

 

  “나 자신이 한때 철거민, 비정규직이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 2009년 2월 12일 한나라당 청년위원회 관계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가진 비공개 만찬에서

 

  “나도 체육인이다. 15년 수영연맹 회장을 했고 세계체육연맹 집행위원을 하면서 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었다.”

  - 2008년 8월 26일 베이징올림픽 선수단을 청와대로 초청해 연 오찬 행사에서

 

  “내가 비즈니스를 해봐서 아는데... 스물네살 때부터 아세안 각국을 다니면서 비즈니스를 했기 때문에 아세안 국가들과는 깊은 인연을 갖고 있다. 아세안 거의 모든 나라에서 일 한적도 있다.” 

  - 2009년 5월 31일 한·아세안 CEO 서밋에서 참석한 기업인들과 만나

 

  “나도 환경미화원 해봐서 아는데...”  과거 이태원시장에서 환경미화원을 했던 경험, 고향인 포항에서 노점상을 했던 경험 등을 소개한 후 “정치하는 사람들이 서민들 고생 많다고 말은 하지만 나는 체감하고 있다. 내가 환경미화원의 대부” 

  - 2009년 6월 25일 동대문구 이문동 골목상가를 방문해 상인대표들과 불낙버섯전골을 먹으며

 

  내가 해병대 있는 도시에서 자랐기 때문에... 젊었을 때 해병대가 있는 도시에서 자랐기 때문에 해병대와는 아주 친숙하다.”

  - 2010년 2월 10일 서부전선 최전방 해병대2사단(청룡부대)를 찾아 장병들을 격려하며

 

  내가 비정규직 노동자 출신이었기 때문에... 나와 내 가족 전체가 비정규직 노동자 출신이었기 때문에 나의 꿈은 고정적 일자리를 얻어서 꾸준히 월급을 받는 것이었다.”

  - 2010년 11월 10일 서울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방한한 국제노동계 대표들과의 면담에서

 

  내가 치킨 2주에 한 번 먹는데 (프랜차이즈 치킨을) 2주에 한 번 시켜서 먹는데 비싸다는 생각이 든다.”

  - 2010년 12월 15일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열린 업무보고 전 일부 참석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나는 원래 불교와 가까운 사람... 나는 원래 불교와 매우 가까운 사람으로, 불교계에 친구도 많다.”

  - 2008년 9월5일 불교계의 "종교 편향" 논란이 일자 김형오 국회의장, 이윤성 문희상 국회부의장과 만찬을 하면서

 

  나도 한때 수재민이어서 아는데... 마음 편안하게 먹어요. 기왕 이렇게 된 거.”

  - 2010년 9월22일 서울 양천구의 수해 피해 현장을 방문하여 수재민에게

 

  이 외에도  나도 서울시장을 해봐서 아는데”, 내가 대통령 해 보면서 느낀건데”, 내가 조기에 (구제역)백신 접종하라 했는데”등이 있다.(너무 많아서 발췌했다는 한 블로거님의 글을 살포시 옮겨 온다.)

 

  항우처럼 주옥같은 어록들이 많은 이분은 사면내곡동가(부동산에 얽힌 비리가 폭로되자 내곡동 가까이를 들으면서 멘붕 상태에 빠졌음을 의미함)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분은 또한 만화 주인공으로도 자주 등장하신다. 대표적으로 프레시안의 손문상 화백의 그림을 옮겨온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2&aid=0001969502

 

  항우의 몰락 원인이 자기가 뭐든지 다 알고 있다는 자기 잘난 맛, 교만이었듯이 이 분에게서도 같은 낸새를 느낀다. 이 분이 몰락의 길로 가는 것도 자기 경험에 충만한 자기 잘난 맛 때문이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이 한마디면 되는데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이유가 무엇이며, 현명한 사람을 구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저 자기 말 잘듣는 똘마니들만 있으면 되지 않겠다. 마치 항우가 그랬듯이 말이다. 이분이 항우 강의를 읽어봤다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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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 2012-09-22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누군지 그 사람 정말 모르는게 없군요.
-_-;;;

saint236 2012-09-22 14:15   좋아요 0 | URL
슈퍼맨이시죠...^^

다크아이즈 2012-09-24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아침에 쉼보르스카에 대해서 쓰고 있었는데 그녀가 말했지요. 진정한 시인이라면 '나는 모르겠어'를 되풀이해야 한다고. 그분과 넘 대조되네요.

'내가 해봐서 아는데~' 만큼 위험한 생각은 없지요. 내가 해봐서 아는 것 이면의 90퍼센트는 모른다는 것을 전제한 교만이겠지요.
세인트님 아침부터 한 수 배우고 갑니다.

saint236 2012-09-24 08:37   좋아요 0 | URL
한 수씩이나...항상 그분의 "내가 해봐서 아는데"이 말 다음에 이어지는 지독선 독선 때문에 걱정이 됩니다. 한편으로는 기대가 되더라고요..무얼 상상하든지 그 이하를 보게 될 것이다.^^;;

2012-09-24 0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int236 2012-09-24 08:36   좋아요 0 | URL
가져가세요. 저도 열심히 검색해서 찾은 것인데...인터넷에서 너무 유명해서 글의 원 출처를 아무도 모르는 것 같네요.^^

2012-09-24 1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transient-guest 2012-09-27 0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분이 항우만큼이나 straight하다면 이 꼴은 아니었겠죠. -_-:

saint236 2012-09-27 09:39   좋아요 0 | URL
이분은 항우의 교만함에 유방의 음험함을 갖추신 불세출의 영웅이시죠...여러모로...^^

transient-guest 2012-09-28 01:35   좋아요 0 | URL
정확한 진단입니다..ㅎㅎ

내가~ 2013-01-07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내가 봐서 아는데 아무하고도 비교한됩니다
 
조선 왕을 말하다 2 - 이덕일 역사평설 조선 왕을 말하다 2
이덕일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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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왕하면 권력의 대명사이다. 그러나 조선왕을 말하다1권과 2권에서 특별히 2권에서 발견하게 되는 조선왕은 권력의 대명사라기보다는 반쪽짜리이다. 특별히 세조 이후 공신에 휘둘린 조선의 왕들은 간신히 반쪽짜리일 뿐이다. 이덕일이 세조에 대해서 그렇게나 비판적일 수밖에 없는 것도 이해가 된다. 태종이 자기의 사돈과 처남까지 사형시키면서 강화한 왕권을 세조는 자기의 야망을 위하여 그대로 공신 계층에 상납했으니 말이다. 여하튼 세조 이후로 조선의 왕은 공신들 위해 서 있던 존재에서, 공신들과 야자하는 관계로, 다음으로는 공신들에 의해서 택함을 받는 반쪽짜리 존재로 전락해 버렸다.

 

  조선의 왕을 말하다 1권에서 리더에게 요구되는 덕목을 보았다면 2권에서는 왕을 둘러싸고 있는 정치 지형과 왕과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왕권까지도 우습게 볼 수 있는 권력자들이 나타났을 때 국가가 어떻게 반쪽으로 갈라졌는지, 권력자들이 정당성을 가지고 있던 왕들을 어떻게 무너뜨렸는지에 대해서 2권은 사실에 근거하여 합리적으로 비틀어 보고 있다.

 

  공신, 서인, 노론으로 이어지는 기득권층은 왕권보다 당론을 먼저 앞세우고, 자기의 당론에 맞지 않는다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갈아치웠고, 그것이 불가능하면 왕궁에 자객을 파견하기도 했다. 액션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일들이 정조를 대상으로 일어났었음을, 그것도 세 가지 방법이 모두 동원되었음을 역사는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들에게 백성은 자신들의 생각을 포장하기 위한 포장지일뿐이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 왕위를 계승한 사람들도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될 때에만 왕으로 생각했다.

 

  역사는 돌고 돈다고 했는가? 어디에서 많이 보던 모습이 아닌가? 불과 10년 전부터 우리 사회 속에서 생긴 모습이 아닌가? 김대중 대통령까지야 그래도 국민들이 모두 대통령으로 받아들였지만, 노무현 대통령 시절부터는 온전한 대통령이지 못했다. 보수쪽에서는 자국의 대통령을 무너뜨려야할 적으로 규정하지 않았던가? 무슨 사건만 생기면 "이게 다 놈현 탓"이라 하지 않았는가? 당시 한나라당은 어떠했는가? "환생경제"라는 연극을 통해서 자국의 대통령을 육시럴놈, 부랄값도 못하는 놈이라 막말을 던지지 않았던가? 그것으로 부족해서 정말로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 내리도록 등떠밀지 않았던가? 그들에게 노무현은 자국의 대통령이 아니라 제거해야하는 필생의 대적일 뿐이었다. 마치 서인에게 정조처럼 말이다. 책을 읽는 내내 경종에게서 노무현의 그림자를 본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경종의 죽음과 영조에 대한 반격이 소론에 의해 시작된 것처럼 이명박 대통령 이후에 진보 진영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물론 그 반격을 받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국정을 망쳐놓기는 했지만 대통령으로서의 권위는 이미 예전에 사라져 버렸고, 좌와 우로 나뉘어 서로를 찍어 누르기 위한 공방만이 치열할 뿐이다. 12월에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된다고 할지라도 이런 상황이라면 여전히 반쪽짜리 대통령이 될 뿐이다. 이미 새누리당에서 반쪽짜리 후보 운운하지 않았던가?

 

  모르겠다. 언제까지 이렇게 소모적인 행태들이 지속될지. 어찌되었건 여러모로 잠재력을 깎아 먹는 행위인데. 나와 남을 가르는 그들의 눈에는 국민의 뜻도, 적법한 절차에 의해 선출된 선출직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없애버려야하는 장애물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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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을 말하다 - 이덕일 역사평설 조선 왕을 말하다 1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위즈덤하우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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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도래했다. 국내적으로 올해는 총선과 대선이 겹치 흔하지 않은 해이다. 또한 전세계적으로도 중요한 국가들의 대선이 맞물리는 묘한 시기이기도 하다. 얼마전 프랑스에서는 대선을 통하여 좌파 정권이 권력을 차지했고, 미국도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과 민주당이 신경저을 벌이고 있다.

 

  국내에서도 일찌감치 새누리당은 지금까지 누린 것으로 부족해 새로 한번 더 누려보겠다면서 박근혜를 대선주자로 일찌감치 선정해 놓았다. 재오형은 들러리가 싫다고 대선 후보 경선에 참가하지 않았고, 그의 인생에서 아주 드문 만사올통이라는 재치있는 말을 했던 문수형은 다시 도지사로 고백하셨고, 몽준이 형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닥치고 버로우하셨다. 새누리당은 스머페티와 스머프처럼 박근혜를 중심으로 모였고, 그 중심에는 백설공주를 보좌하는 일곱난장이 칠인회가 고리타분한 장막을 치고 있다. 부일장학회, 5.16과 인혁당 등 과거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박근혜 대선주자는 여전히 수첩에 정리된 내용 외에는 노코멘트로 일관하고 있다. 혹자의 말마따나 묵언수행이 아닌 묵언정치를 하고 있다.

 

  민주당은 어떤가? 도대체 몇 사람이 나왔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정세균, 김두관, 손학규, 문재인의 4강 구도가 잠시 형성되었다. 4강 구도라고 하기에는 인지도가 너무 떨어지는 정세균이야 그렇다고 치고, 김문수와는 대비되게 도지사 자리를 박차고 나선 이장에서 장관까지 김두관과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슬로건만 멋졌던 손학규를 물리치고 문재인이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선정이 되었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노무현의 남자라는 프레임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그리고 진실하지만 스킬이 부족한 그의 말발이 얼마나 발전하였는지는 주체크 대상이다. 고무적인 것은 서울 시장 선거에 비해서 문재인의 유머러스함과 스피치 기술이 대폭 발전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문재인의 가장 큰 문제는 보좌관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부터 정책을 가다듬기에는 시간도 보좌관도 썩 훌륭해 보이지는 않는다.

 

  다음으로 안철수가 있다. 그가 오늘 3시에 대선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은 상식이다. 특별히 새로울 것도 없고, 뛰어난 것도 없다. 그저 원칙에 입각한 상식이다. 사람들이 안철수에 쏠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상식과 참신함! 그렇지만 그의 약점도 여기에 있다. 상식은 바꿔말하면 특별한 정책이 없다는 말과 통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실제 정치에서 무엇을 이루었는가, 콘텐츠가 없다는 식의 안철수에 대한 공격을 이 부분을 비집고 들어간 것이다. 개인적으로 걱정이 되는 것은 대북 정책과 외교 정책에 대한 그의 생각을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복잡하게 얼키고 설켜 있던 모든 사람들이 정리가 되고 지금은 3강 구도로 굳어지는 추세이다. 아마도 야권 단일화라는 틀 속에서 문재인과 안철수에게 단일화하라는 압박이 들어오겠지만 무작정 그렇게 따라서는 안된다. 진지하게 고민해봐야할 문제이다. 어느 정도 공통 분모를 가진 상태에서 단일화하지 않는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통진당을 통해서 충분히 경험했으니 말이다.

 

  정치의 계절에 누구를 찍어야 할 것인가 진지하게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사람에게 국정을 맡겨야할 것인가? 조선의 왕을 말하다 1권을 읽으면서 진지하게 물어본다. 이 나라의 정치인은 어떤 자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가?

 

  정치가 무엇인가? 다수의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조율하는 것이다. Policy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의 polis라는 말에서 유래했듯이 대중들의 의견을 조율하여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동양에서 말하는 政治라는 말은 더 적극적인 통치의 의미를 지닌다. 政은 바르지 못한 것을 바르게 잡는다는 의미이며, 治는 물이 넘쳐서 피해를 입는데 이것을 수습하고 물을 잘 다스려 피해를 막는다는 의미가 있다. 잘못된 것을 바르게 잡고, 사람들의 생각을 잘 조율하여 적절한 선택을 내리는 것이 정치이며, 그 정점에 서 있는 것이 대통령이다. 

 

  그런 대통령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무엇일까? 혈통? 웃기는 소리다. 이미 왕조가 무너진지 오래된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의 정당성은 국민의 지지로부터 나온다. 박근혜를 일컬어 위대한 영도자 박정희의 딸이네, 혹은 독재자의 딸이네 운운하면서 옹호하고 공격하는 것은 시대 착오적인 발상이다. 박정희의 딸이라서 찍고, 박정희의 딸이라서 반대하는 것은 박근혜의 정당성을 혈통에 두고 그를 우리의 왕으로 모시겠다는 말인가? 학력?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후로 학력도 대통령의 정당성을 담보해 주지 못한다. 과거 권양숙 여사를 일컬어 상고중퇴가 어떻게 국모가 될 수 있는가라는 아주 웃기지도 않는 농담을 진담처럼 하신 분들이 계신데 이 또한 나는 바보요 자랑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 경험과 신화, 연륜이 필요한가? 내가 해봐서 아는데로 여기에 대한 답변은 예전에 끝났다.

 

  대통령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소통과 균형 감각이다. 끊임없이 상대편과 소통하고, 국민과 소통하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각! 나는 이것이 대통령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MB야 말할 것도 없고, 토론을 즐겨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막판에 균형감각을 잃고 폭주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문재인의 "운명"이라는 책을 통해서도 이 사실의 단편들을 발견하게 된다. 대연정이라든지 FTA라든지 중요한 이슈에 대해서 참모들도 모르던 차에 갑작스럽게 발표되었다는 말은 그가 균형감각을 잃고 폭주했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1권에 기록된 태종과 세조, 연산군, 광해군, 선조, 인조, 성종, 영조 8명의 임금은 성격도 정치색도 모두 다르다. 어떤 이들은 성군으로, 어떤 이들은 폭군으로 평가를 받았지만 이들의 공통된 특징이 있는데 균형감각을 상실한 그 순간부터 폭주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8명의 왕 중에서 자기에 맡겨진 역사적인 사명을 기억하고 마지막까지 비전과 균형감각을 잃지 않았던 태종을 제외하고는 모든 왕들이 자파의 권력과 이익을 위해서, 혹은 개인의 콤플렉스 해소를 위해서 발버둥치면서 균형감각을 상실했고, 이는 국가적인 손실로 나타나게 되었다.

 

  성종에 대해 권력을 줍는 행운을 누릴 수는 있지만 성공한 정치가가 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평가를 내리는데 대선주자들은 이 말을 가슴 속에 새겨두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균형감각을 가진 대선후보, 그리고 기꺼이 소통 하려는 열린 마음의 자세! 이것이 다른 무엇보다, 콘텐츠보다, 혈통보다, 인재풀보다 앞서는 대통령의 덕목임을 기억하고 소중한 한표를 행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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