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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에 시집온 칭기즈칸의 딸들 ㅣ 표정있는 역사 3
이한수 지음 / 김영사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여자찰자 뒤웅박이라는 말이 있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바가지는 박을 전반으로 쪼갠 것인데 이것 말고 한부분만 잘라내어서 그 안에 물건을 담아둘 수 있도록 만든 박이 있다. 이것을 뒤웅박이라고 한다. 네이버를 뒤져서 뒤웅박 이미지는 가져왔다.
이렇게 생긴 것을 뒤웅박이라고 한다. 여자팔자를 왜 뒤웅박이라고 했냐면 뒤웅박은 그 안에 물건을 담아두게 만든 바가지로 부자집에 시집을 가면 그 안에 곡식을 담아두고, 가난한 집에 시집을 가면 그 안에 여물을 담아 둔다는 의미란다. 여자가 어떤 남자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그 인생이 달라진다는 뜻인텐데 벌써부터 기분나빠하시는 여성 알라디너들의 눈초리가 무섭게 마음에 꽂힌다. 여자팔자만 뒤웅박은 아니다. 남자팔자 또한 뒤웅박이다. 어떤 상대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그 일생이 달라진다는 것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모두 동일하다.
뜬금없는 뒤웅박 이야기를 왜 하고 있는가? 이 책에 나오는 몽골 공주들과 고려 왕들의 신세가 꼭 뒤웅박이기 때문이다. 몽골과의 항쟁에서 생각보다 끈질기게 버텼던 고려는 자신들을 비싸게 몽골에 팔 수 있었다. 고려는 국호를 유지했다느니 왕조를 유지했다느니 하면서 고려를 몽골의 독립국으로 보는 것은 자기 위안일 뿐이다. 생각보다 끈질긴 항쟁의 대가가 국호와 왕조유지였으며, 나머지는 몽골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몽골은 다루가치라는 몽골인 관리를 두어 고려의 국정을 감시했으며, 이것으로 부족해서 고려를 자신들의 편으로 묶어두기 위하여 혼인정책을 시작했다. 왕이 될 사람을 몽골 부인과 혼인하게 하여 고려를 친몽골 성향의 국가로 묶어두기 위해 애썼다. 물론 고려의 왕 또한 몽골의 공주와 혼인함으로 인해 몽골 제국 내에서의 서열이 급상승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양자의 필요에 의해서 몽골의 공주들은 고려로 시집을 오게 되었다.
이 일이 반복되면서 벌어진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초반에는 여자가 억지로 시집을 가게 되었지만 점점 시간이 갈수록 왕위를 노리는 고려의 왕자들이 자청해서 몽골의 공주와 결혼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공민왕 또한 고려의 왕이 되기 위하여 노국공주와 결혼했음은 신돈이라는 드라마를 통해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누가 뒤웅박이란 말인가? 아마도 고려의 왕자들이 뒤웅박이지 않았을까?
몽골의 공주가 아니라 칭기스칸의 딸들이라는 제목을 사용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의 삶은 결코 평탄한 것이 아니었으며, 그들의 성품은 우리가 알듯이 조용하고 순종적인 것이 아니었다. 이례적으로 관계가 좋았던 공민왕의 부인 노국공주도 결코 얌전하게 운명에 순응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공민왕의 모든 개혁정책과 반몽골 정책을 뒷받침하고 흔들리는 왕권을 강화할 수 있도록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주었던 사람이다. 노국공주만 그러한가? 아니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여인들의 삶이 결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일반적인 공주상은 아니다. 예쁘고, 갸냘프고, 하늘거리는 드레스만 입고다니는 디즈니풍의 공주가 아니라 말을 타고, 정치감각이 뛰어나고, 거칠고, 남편 이외의 남자를 선택할 정도로 자유분방한 인물들이었다. 결코 남자 입장에서는 좋아할만한 성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고려의 왕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아 단순히 고려에 볼모로 잡혀 온 것도, 도매금에 팔려온 것도 아니다. 물론 전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이 왕 못지않은 권력을, 오히려 왕보다 더한 권력을 휘둘렀던 경우도 있었다. 간혹 왕의 부재시에 왕을 대신해서 정무를 보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는 화냥년이라는 기억만 가지고 있다. 조선시대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아픈 사람들에 대한 기억조차 잊기 위해서 일부러 그 시대의 역사를 추억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다보니 그 당시 지배자들의 입장에 서 있던 사람들의 삶을 기억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고려에 시집왔던 몽골 공주들의 삶이 이런 것이었구나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많아서 꽤 흥미로웠다. 권력을 휘둘렀던 그들이지만 꼭 승자만은 아닌 것 같은데... 이들에 삶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하게 조명해 보는 것도 꽤 재미난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