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뒤흔든 아버지와 아들
이종호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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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는 쉬는 날이었다. 몇 주 무리를 해서인지 거의 죽기 직전의 상태였다. 아이들과 영화를 보러 가자고 약속해 놓고 잠시만 눈을 붙인다는 것이 하루가 다 지나가 버렸다. 아이들이 와서 "아빠 놀아줘"를 간절히 외쳐도 몸이 일어나지 않는다. 억지로 일어났지만 아이들과 돌아줄 힘이 없어서 다시 잠이 들었다. 아직도 몸 상태가 회복이 되지 않았지만 아내가 여간 화가 난 것이 아니다. 집에서 매일 피곤하다며 방다닥과 친구 삼아 지내는 내가 맘에 안들었던 것이다. 언젠가 아빠가 아들과 몸으로 잘 놀아줘야 아이 인성 발달에 좋다고 말은 하지만 그게 쉽지가 않다. 아이들하고 기껏 놀아주는 것이 책을 읽어 주는 것이 전부다. 뭐라고 변명을 하고 싶지만 아내에게는 정말 변명일 뿐이다.

 

  내 신세를 한탄하는 이야기가 되어 버렸지만 자녀와 부모의 관계 특별히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중요함을 말하고자 함이었다. 이 책은 조선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했던 부자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사람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의 이유에 대해서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찾고 있다. 아버지와 똑같은 길을 간 아들, 아버지와는 정 반대되는 길을 간 아들, 아버지의 의심을 받아서 요절한 아들, 아버지 때문에 평생을 의지한 스승과 갈라선 아들 등 주제 자체는 꽤나 흥미롭다. 이성계와 이방원에 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살펴보았기 때문에 이 책도 꽤 재미를 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주제가 흥미로움에도 불구하고 내용은 상당히 평이하다. 내가 평이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 내용이 정치적으로, 인간적으로 깊이 파고 든 것이 아니라 표면적인 내용을 서술하는데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한 예를 들어보자. 인조와 소현세자의 내용을 보면 인조와 소현세자가 갈라지게 된 원인을 청에 의해서 아버지는 조선에 아들은 청나라에 있었기 때문이고, 여기에 더하여 소현세자가 행실을 잘못하였고, 인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소현세자를 참소하여 갈라지게 되었으며 이때문에 인조는 소현세자가 죽었을 때에 그렇게 큰 슬픔을 내비치지 않았다고 기록한다. 강빈 또한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죽임을 당했고, 소현세자의 아들들이 죽게 되었다고 기록한다. 조선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리가 없는 내용들이다. 굳이 이 책을 사서 읽을 정도의 사람이라면 대체로 역사덕후일 것이고, 그런 사람들에게 마치 교과서에서 이야기하듯이 수박 겉핥기식으로 서술하는 것은 불필요한 사족일 뿐이다. 소현세자라는 소설책만도 못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렇게 흥미로운 주제도 이렇게 평이하게 기록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이는 분명하다. 다만 이 영향력이  아버지의 교우관계, 정치적인 입장 등에 의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아들에게 영향을 끼쳤는지를 자세하게 찾아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물론 이 책에서도 이 내용을 다루지만 지나가는 말로 표면적으로만 서술하고 있다. 게다가 정작 중요한 부자 관계가 빠져있다. 조선을 뒤흔들었다고 한다면 송시열에 관한 내용보다는 이성계와 이방원, 이방원과 양녕과 충녕, 영조와 사도세자, 사도세자와 정조, 대원군과 고종을 빼놓고 서술한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허협과 허균보다는 이러한 부자 관계에 대해서 기록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주제에 맞지 않았을까? 사람들이 잘 모르는 내용을 찾아보려는 의도는 좋았다만 자세하거나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없다면 이렇게 평이하게 끝나버릴 것이라는 점은 몰랐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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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제국 가야 - 잊혀진 왕국 가야의 실체
김종성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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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라는 이름에서 무엇을 떠올리는가? 연맹체? 김유신? 신라?

 

  사실 우리는 가야라는 나라가 존재했다는 것은 알지만 그 나라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건국되었고, 어떻게 성장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가야라는 나라 자체가 신라에 멸당당하고 흡수된지 오래고 중앙 집권 국가로 성장하지 못하여, 기록을 남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철을 정련하는 기술이 뛰어났고, 중앙 집권체로 성장하지 못하여 신라에 의하여 합병되었다는 정도만 알고 있다. 그마저도 김유신이라는 걸출한 가야계 인물이 없었다면 알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가야라는 나라에 대해서 여러가지 상상과 비약으로 그 공간들을 채울 수 밖에 없다. 모 드라마에서 이야기하던 가야계 사람들의 결사체에서부터 시작하여,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왕망의 후예에 의한 가야의 건설 이야기까지 가야는 좀처럼 그 실체를 유추할 수 없는 카더라는 이야기들이 넘치는 고대국가다. 물론 카더라는 유추가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한다면 모르겠지만 그 근거가 빈약하면 그것은 역사적인 추론이 아니라 역사 소설이라고 하겠다.

 

  이 책은 역사적인 근거와 거기에 기반한 그럴듯한 이야기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이야기들이 이리저리 섞여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부딪히게 되는 문제는 그렇게 많은 이야기들 가운데 어느 것을 선별할 것인가라는 점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가야가 왕망의 후예에 의해서 건국되었다는 이야기라든지, 일본의 야마대국 여왕 히미코가 김수로의 딸이라고 하는 부분은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부분이다. 재야 사학자 가운데 그러한 의견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어렴풋이 듣고는 있지만, 아직은 소수의 학설일텐데 이것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건대 저자는 이쪽 학풍을 이어 받은 것 같다. 아마도 흉노족의 역사와 일본의 역사를 한국의 고대사로 받아들이려고 시도하는 사학자들과 맥을 같이 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아무리 우리 고대사를 좋게 포장하려고 해도 그 근거가 희박해서야 오히려 역효과가 나지 않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고등학교 시절에 읽었던 환단고기가 생각이 난다. 아직 역사적인 판단 기준이 서 있지 않던 그 시절에(물론 지금이라고 역사적인 판간 기준이 명확하게 서 있다고 할 수 없는 역사 덕후이지만) 읽어도 환단고기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세상의 모든 민족이 한민족에서 시작되었다는 투의 이야기, 기독교의 하나님 여호와가 사실은 여와가 전해진 것이라는 이야기는 충격이었다. 이렇게 황당무계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에서 말이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환단고기에 근거해서 단군의 계보를 이야기한다든지, 우리 민족은 대단한 민족이었다는 투로 말하는 것은 역사적인 자기 위안을 넘어 자기 기만일 뿐이다. 이 책의 곳곳에서 이러한 부분들이 눈에 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도 있구나 정도로 치부하고 넘어가기를 권한다.

 

  이 책을 읽던 시기에 같이 읽었던 책이 가락국의 후예들이다. 이 책은 가락국의 성씨들의 역사를 추적하는 가문의 역사에 관련된 책이다. 그렇지만 이 책을 같이 읽었기 때문에 철의 제국 가야에서 이야기하는 부분들을 선별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혹 이 책을 읽기를 원하는 사람은 가락국의 후예들이라는 책도 같이 읽기를 권한다.

 

  역사는 자기 위안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부끄럽고 힘든 역사도 그대로 받아들이고 성찰해야 한다. 역사를 통하여 우리나라는 이렇게 대단한 조상들을 두고 있다는 식의 민족 사관은 우리 나라의 역사를 축소하는 식민사관만큼이나 위험하다. 다만 식민 사관만을 가르치는 현재의 교육은 꽤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둘을 모두 가르치고 비교하는 과정 속에서 역사의 진실을 파헤쳐 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까?

 

  나름대로 재미는 있지만 꽤나 아쉬움이 남는 책이다. 아쉬움에 방점을 찍을지 재미에 방점을 찍을지는 각자의 판단이지만 나는 재미에 방점을 찍었다. 머리가 복잡할 때 잠시 쉬어가는 책으로 읽기에는 이만한 책도 없을 것 같다. 이런 연구들이 축적이 되어서 언젠가는 가야사에 대해서 조선사나 고려사만큼이나 저서들이 축적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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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길, 이성계와 이방원 이덕일의 역사특강 2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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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는 변한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그렇지만 현실은 가끔 이렇게 당연한 이야기와는 엇박자를 보일 때가 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이 그렇다. 아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시대는 변하지만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2014년 대한민국의 지형도를 살펴보자. 남과 북으로, 동과 서로 갈라져 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이 갈라져 있고, 노와 소가 갈라져 있다. 왜 그럴까? 그 누구도 자기의 생각을 잠시 접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흔히 부모님 세대가 자녀 세대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아버지 어렸을 때는 그렇지 않았어!"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가 살아왔던 시대는 분명 우리가 사는 시대와 다르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우리 자녀 세대와는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바뀐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우리의 사고와 사고 방식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한 예를 들어보자. 몇년전 MB가 청년 실업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외쳤던 말이 있다. 젊은이의 생각을 바꿔라. 젊은이의 생각을 바꾸고 눈 높이를 조금만 낮추면 우리 주위에 얼마나 일자리가 많은가? 말 자체는 잘못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 말에 동의하는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자기 자녀에 대해서만큼은 이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시대가 바뀌었고,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 부모님 세대에는 먹고 사는 것이 가장 절실한 문제였다. 그것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었다. 게다가 당시 대학을 나온 사람은 인구의 한줌도 되지 않던 시대였다. 학교에서 부모님들의 학력을 조사하던 때의 일이다. 부모님 가운데 두분 모두 고졸만 되어도 많이 배우셨다고 놀라던 때가 있었다. 그렇지만 요즘은 고졸이라는 학력은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고등학교 졸업자의 80% 이상이 대학에 가는 시대에 고졸은 학력 계급의 최하층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부모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자기 자녀들을 수백만원짜리 등록금을 내면서 대학교에 보내는 이유가 최소한 자기들보다는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희망 때문이 아니겠는가?

 

  특히 정치 지도자들은 이 부분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자신들이 학생 시절을 떠올리면서 요즘 대학생이 눈이 높아졌다, 배가 부르다, 혹은 역사 의식이 없다고 비판하고 깎아 내리는 것은 "나 무식한 사람이요, 시대의 변화도 모르는 사람이요."라고 자인하는 것 밖에는 되지 않는다.

 

  사람들의 정치 의식은 또 어떤가? 과거에는 대통령을 무슨 대단한 사람이라고, 왕처럼 떠받들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대통령은 대통령이지, 왕은 아니라는 생각을 누구나 하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이 되는 사람은 자신이 충분히 욕을 먹고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과거 왕처럼 군림하려고 한다면, 대통령에 대한 비웃음이 도를 넘었다고 엄포를 놓는다면 개그의 소재가 될 뿐이다.

 

  이성계와 이방원만큼 이 사실을 담백하게 보여주는 경우는 없다. 흔히 우리는 이성계와 이방원을 해석하면서 이방원은 세종의 태평성대를 열기 위하여 온갖 악역을 자신이 감당한 결단의 군주로, 이성계를 자식 사랑에 치우쳐서 시대의 변화에 반동하는 사람으로 이해한다. 과연 그럴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덕일씨가 지적한 것처럼 이성계의 시대에도, 이방원의 시대에도 개혁을 진핸하는 가운데 부족한 점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속한 시대 속에서, 시대의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다. 다만 우리가 이성계에 대해서 그렇게 역사의 흐름에 반동한 인물로 해석하는 것은 그가 자기의 사고를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유연하게 갖고 가지 못한데 그 이유가 있다.

 

  이성계의 시대에는 고려의 멸광과 조선의 창업, 이 안에서 조선이라는 국가의 기틀을 어떻게 놓을지가 정치 판단에서 가장 고려할 사항이었다. 조선의 창업을 뒤흔든다면 아무리 명이라고 할지라도 충분히 대항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방원의 시대는 창업에만 멈추는 것이 아니라 이 창업을 어떻게 이어갈 것이며, 어떻게 발전의 단계로 나갈 것인가를 더 고려해야할 시대였다. 더군다나 명이 주체라는 강력한 권력자를 황제로 맞아들였다면 이 부분을 변수로 놓고 모든 것들을 판단해야 한다. 이성계는, 그리고 그의 정치적인 동반자였던 정도전은 이 부분을 간과했다. 자신들의 시대가 변화하는 것처럼 명도 변화하고 있는데 여전히 명을 과거의 명으로 판단하고 대처하고 있다. 괜히 민족적인 자존심을 가지고 그때 조선이 명과 한판 했더라면 요동을 재탈환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만약이라는 역사관과 미련은 말 그대로 미련일 뿐이다.

 

  이성계와 이방원 모두 시대의 흐름을 기민하게 알아챘다. 다만 두 사람이 파악한 시대라는 것 자체가 너무 다르다는데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이성계도 이방원도, 심지어는 존재감조차 없었던 정종도 나름대로 시대의 흐름을 따라갔기 때문에 세종의 시대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인조반정처럼 정말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바보는 아니라는 점을 기억한다면, 비극적인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지만 조선이 발전의 단계를 밟을 수 있었던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점이다.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는 변화하는 시대 앞에서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 나 어릴 때는, 내가 말단일 때는, 내가 청년일 때는 이런 말들로 훈계를 남발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다 보니 나라가 온통 분열과 갈등 투성이가 아닌가? 진보도 보수도 훈계질을 그만두고 시대의 흐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이다. 나는 이성계파요, 나는 이방원파요 편가르기를 그만두지 않는다면 시대는 우리에 대해서 입을 다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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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4-11-07 0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덕일씨의 새 책인가봐요. 구해서 읽어볼 책이네요. 이성계-이방원의 시대와 거사에 대한 단순한 이분법이 아닌 나름대로의 이유를 분석한 듯 합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꾸 자신의 옛시절을 지금 세대와 비교하여 평가하는 것은 꼰대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런 사고를 통해 지금 세대가 우리보다 힘들겠구나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소위 `배부른 소리한다`라고 결론짓는 사람들이 더 많죠.

끊임없이 변하는 시대와 세월에 뒤쳐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독서는 그런 의미로 매우 중요한 행위라고 생각하네요.

saint236 2014-11-07 17:28   좋아요 0 | URL
제일 확실한 꼰대짓은 ˝내가 해봐서 아는데˝죠...^^ 이덕일씨의 역사특강 시리즈 같습니다. 나온지는 몇달 되었고요..
 
페르시아 전쟁
톰 홀랜드 지음, 이순호 옮김 / 책과함께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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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잘빠진 남정네들이 떼거리로 몰려나와서 "This is sparta!"라는 말을 우렁차게 외치며 전투를 벌이는 영화! 매번 전쟁에서 지면서도 압도적인 물량과 비열한 꼼수로 그리스군의 숨통을 죄어 오면서 "나는 관대하다!"를 외치는 이상하게 생긴 페르시아 왕! 우리가 300이라는 영화를 통하여 만나게된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피상적인 모습이다.

 

  영화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관심이 있고, 그래서 영화 외적인 요소들까지도 찾아보는 사람들이면 이 영화가 당시 논란이 많이 됐었던 영화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에 이란과의 핵무기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던 시기였기 때문에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300이라는 영화는 서구의 대표를 자처하는 미국과 페르시아의 후예를 자처하는 이란의 대리전 양상을 띄게 되었다. 멋있고, 용기있는,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거는 스파르타는 미국을, 괴상한 외모를 가지고 있고, 비열하며 저열한, 그러면서도 자존심만 가득한 페르시아는 이란을 은연 중에 상징하게 되었다. 이런 설정이 확고해 졌으니 이제 스파르타의 패배는 단순한 패배가 아니라 장렬한 옥사로 미화가 된다.

 

  다만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 영화의 후속편 격인 300: 제국의 부활이 그리 흥행헤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리스가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것이 300의 모티브가 된 테르모필레 협곡 전투가 아니라 살라미스 해전이었음에도 말이다. 아마도 300에서는 대군 앞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전쟁을 벌이는 비장미가 느껴지는 반면, 후속편에서는 페르시아와 맞먹는, 아니 오히려 능가하는 아테네의 테미스토클레스 야비함 때문이 아닐까?

 

  영화 뿐만이겠는가?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 안에도 알게 모르게 이러한 사고 방식에 물들어 있다는 점을 말하기 위함이다. 요즘은 한국사도 논란이 되고 있지만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만해도 세계사와 국사는 필수 과목이었다. 그런데 세계사를 수업시간에 배워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철저하게 서구 중심적이라는 것이다. 조금 어려운 말로 오리엔탈리즘이라 부르지만 쉽게 말하자면 서구는 선, 미, 진리이고 이와 대척점에 동양을 놓고 악과 추, 야만으로 규정한다. 이러다 보니 서양애서 동양을 침략하는 것은 문명화를 위한 당연한 것이 되고, 동양에서 서양을 침범하는 것은 문명이 파괴되고 세상의 종말이 오는 것과 같은 수준의 재앙으로 여겨지게 되는 것이다. 훈족의 이동과 몽골족의 침입 앞에 서양의 여러국가들이 어떠한 태도를 취했었는지, 그리고 드라큘라 전설이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떠올린다면 좀더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렇게 책에 관한 리뷰를 시작하기도 전에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늘어 놓는 것은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입장도 기본적으로 이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페르시아의 침공은 자신을 신의 사자라고 생각하는 오만하고 미련한 절대 군주가 일으킨 불필요한 사건이요, 이에 대한 그리스의 반격은 자기 삶의 터전을 지키고 민주주의라는 절대 가치를 지키기 위한 것으로 표현한다. 물론 직접적으로 이렇게 표현하고 있지는 않다. 스파르타라는 나라가 끼어 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그렇게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책의 행간에 스며있는 내용들을 곱씹어 보면 직접적으로 말한 것보다 더 많은 분량을 이것을 위하여 할애하고 있다. 보다 객관적으로 페르시아 전쟁에 대한 사료를 제공하고 판단하게 하겠다는 의도와는 달리 그 사람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은 어쩔 수 없나보다.

 

  이런 시각이 던져주는 불편함, 많은 분량, 문체의 딱딱함, 낯선 이름들의 등장, 각 나라들의 역사를 개별적으로 설명하는 것들은 이 책을 읽는 일에 난해함을 더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읽은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페르시아 전쟁에 관한 사료들 자체가 상단히 한정적이고, 그러한 책들의 대부분도 대체로 살라미스 해전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살라미스 해전뿐만이 아니라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그리고 페르시아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성장하게 되었고, 그렇게 성장한 국가들이 왜 격돌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마라톤이라는 중요하지만 거의 언급이 없는 전투에 대해서도 어던 맥락 가운데, 어떤 양상으로 진행이 되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페르시아에 대해서 좀더 공부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단 오리엔탈리즘의 불편함을 걷어내야 한다는 수고로움은 따르겠지만 말이다. 마지막에 9.11 테러와 페르시아 전쟁을 연관시켜 생각하는 역자의 생각은 책을 덮는 순간까지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었다고 생각한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으로 그리스와 스파르타, 그리고 살라미스 해전에 관한 책들을 소개한다.

 

 

살라미스 해전 / 스파르타이야기 / 헤로도토스 역사 / 완전한 승리 바다의 지배자(차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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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10-31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학창시절, 세계사의 관점에 대해 불만이 많았습니다. 어디다 하소연할 데도 없고. 친구와 이것이 세계사인가, 서구 역사인가라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서구 사람들이야 자신들의 입장에서 그렇게 생각한다지만, 우리가 서구의 관점을 따를 필요는 없었는데도 말입니다.

saint236 2014-11-01 18:30   좋아요 0 | URL
어릴 때부터 몸에 배어온 습관이라는 것이 무섭지요. 또한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소구 유학파들이 결국 가지고 있는 베이스가 철저히 서구적이니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정도전과 그의 시대 이덕일의 역사특강 1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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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포세대라는 말이 있다. 혹시 알고 있는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라는 말이다. 청년들의 현 주소가 어떤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88만원 세대라는 말도 있다. 청백전(청년 백수 전성시대)이라는 말도 있다. 이태백(이십대의 태반은 백수)이라는 말도 예전 말이고 요즘은 이구백(이십대의 90%는 백수)이라는도 이젠 시절이 지난 말이다. 이 외에도 토익 폐인을 나타내는 토폐인, 사회 생활을 하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유턴족,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듯이 어렵게 취업한 학생을 나타내는 낙바생, 부모의 등골을 뺀다는 등골탑에, 청년의 태반이 실업자와 신용불량자라는 청년실신 등 인터넷에서 약간만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청년들의 열악한 현실을 나타내는 말들이 줄줄이 나온다.

 

  실제로 우리나라 통계로 볼 때에도 최근에 14년 만에 청년 실업율이 최악을 기록했다고 한다. 10.9%란다. 청년 100명 중 11명은 백수라는 뜻이다. 게다가 대학 졸업생 10명 중 4명이 백수라고 한다. 실업율을 어떻게 통계내는지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이고, 아는 사람들은 웃기시네라면서 썩소를 한번 날려 줄 것이다.

 

  이렇게 심각한 청년 실업 시대에 어떤 이들은 청년들이 배가 불렀다고 한다. 우리 때는 하루 벌어 하루 먹기도 힘들었다 일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했다는 말을 하면서 훈계를 한다. 대표적으로 전 대통령은 청년들에게 눈 높이를 낮추어서 직장을 잡으면 될 문제라고 하면서 자신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구구절절 이야기한다. 현 대통령이 해 본것이 너무 없어서 문제라면 전 대통령은 해본 것이 너무 많아서 문제였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힘들어 하는 이들에게 왜 짱돌을 들지 않는가라면서 청년개새끼론을 들먹인다. 어떤 이들은 아프지 괜찮아 원래 젊은은 아픈거야라면서 책 장사에 몰두한다. 모두다 청년들의 현실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들이 잘났다는 말을 하면서 청년들에게 자기 생각을 강요하는 꼰대짓을 열심히 한다. 나는 그나마 곤대짓도 할만한 위인이 안되어서 그냥 답답한 마음에 안스러워 할 뿐이다.

 

  책의 리뷰에 왜 이렇게 암울한 청년 실업 이야기를 꺼내는가? 청도전과 그의 시대 가운데 이덕일씨가 끊임없이 지적했던 부분들이 이 부분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덕일씨가 청년 실업을 이야기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가 했던 논의에서 토지에 관한 문제를 청년 실업의 문제라는 말로 바꾸어 버려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이덕일씨는 정도전의 시대를 토지 문제의 시대라고 규정한다. 고려 말기를 지나면서 우리가 국사책에서 배웠듯이 한토지의 주인이 3~4명이나 되고, 권문 세가들은 토지의 경계를 산천으로 삼고 있었다. 권력이 있는 자들은 자기의 땅을 한뼘 더 늘리기 위하여 애를 썼고, 이 과정 속에서 가난한 자영농들은 몰락하여 노비가 되는 방법 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군인들에게 봉급으로 내어줄 토지가 없으니 국방이 문란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요, 세금을 납부할 자영농이 없으니 국가 재정이 파탄으로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제 해결 방법은 하나 뿐이다. 왜곡된 토지 소유를 바로 잡는 것! 그렇지만 당시 권력층의 주류들은 왜곡된 토지를 바로 잡는 것을 결사 반대했다. 문제가 있다고 느낀 일부 권력층들도 토지 문제를 근본적으로 건드리기 보다는 약간만 수정하면 될 것이라고 한다. 청년 개새끼론을 외치는 이들이나, 괜찮아 아픈만큼 성숙하는 거야라면서 위하는 척하는 이들이 모두 문제의 핵심은 건드리지 않고 청년들에게 뽕을 놔주는 것처럼, 그들 모두 토지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현상 유지로 일관했다.

 

  토지 문제를 그대로 내버려 두고는 해결책이 없다고 생각한 정도전은 이성계와 손을 잡고 이 문제를 손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정도전은 꼼짝도 하지 않는 고려의 왕권을 무너뜨리고 조선이라는 새로운 국가를 건립하게 된다. 태종 이방원에 의하여 많이 왜곡되었지만 이덕일씨는 이렇게 왜곡된 부분들을 하나식 벗겨내면서 토지 문제를 통한 사회 개혁이라는 관점으로 정도전을 재해석하고 있다.

 

  이덕일씨의 책이 재미있기 때문에 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책을 읽어 내려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토지 문제를 청년 실업 문제로, 비정규직 문제로, 세월호법 문제로 치환하여도 그의 결론은 꽤나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무릇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백성들이 처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근본적으로 고치려고 하지 않고 기득권 유지에 급급하면 그 체제는 머지않아 몰락하게 될 것이다. 역사는 그렇게 발전해 왔고, 그렇게 흘러왔다. 우리 사회도 그러한 방향으로 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과정 속에서 우리 사회가 치르게 될 대가들이 너무 크다는 데 문제가 있다.

 

  나라의 지도자라는 사람들은 이 부분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을 했으면 좋겠다. 고려의 근간이 토지이듯이, 다음 세대의 근간은 청년이다. 그들을 착취해서, 비정규직으로 내 몰아서 이득을 취한다 한들 그것이 이 사회를 얼마나 유지시켜 나가겠는가? 청년 실업자와 그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심각하게 고민하고 해결책을 모색해도 시원찮을 판에 50대 정규직 8000명을 자르면 청년 백수를 2만명 넘게 고용할 수 있다는 수치를 내세우니 그저 답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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