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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 강의
왕리췬 지음, 홍순도.홍광훈 옮김 / 김영사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역발산 기개세(力拔山氣蓋世)!
가진 힘은 산을 뽑을 정도이고 기개는 세상을 덮을 정도로 기력이 웅대(雄大)함을 이르는 말이다.
사면초가(四面楚歌)!
'사방에서 들려오는 초나라의 노래'라는 뜻으로, 사방이 적에게 포위당하여 고립되어 있거나 곤경에 처한 상태를 비유하는 말이다.
홍문지연(鴻門之宴)!
음모와 살기가 가득찬 연회, 혹은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위험한 자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수자부족여모(豎子不足與謀)!
어린 자식과는 더불어 일을 꾀할 수 없다는 말로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사람과는 큰 일을 도모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유하면목견지호(有何面目見之乎)!
'무슨 면목이 있어 이들을 보겠는가?'라는 말로 볼 낯이 없다는 뜻이다.
서초패왕(西楚覇王)!
진시황의 진나라를 멸망시켰지만 유방과 첞를 놓고 다투다가 패하여 자결한 항우를 가리킨다. 위에 열거한 많은 말들은 모두 서초패왕 항우를 가리키는 말이다. 항우는 역사적으로 패자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듯이 패배한 자들은 황음무도라고 인간 이하의 존재로 그려지고 조작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광해군이나 연산군의 경우를 보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악명의 대부분은, 아무리 양보를 한다고 할지라도 절반 정도는 본인들의 행적과는 무관한 조작이라는 것이 사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역사책에 기록되어다고 있는 그대로를 믿는다면 그 사람은 역사를 공부할 자격도 없으며, 역사를 공부해 보지도 않은 사람일 것이다.
대개 역사의 패자들은 이렇게 억울한 누명을 쓰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가, 집권자들의 필요에 의해서 소환 당하여 욕을 먹고 다시 사라지는 것이 운명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패배자이면서도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항우이다. 중국 사람들의 사상을 확립한 나라는 한(漢)이라고 하며 두고두고 지도자의 귀감이 되는 사람으로 꼽히는 것이 한고조 유방(劉邦)이다. 그런 유방과 다투어 패한 항우인데도 불구하고 묘하게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캐릭터 중에 하나이니 신기할 따름이다. 얼마나 인기가 좋으냐? 중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경극 중의 하나가 패왕별희인데 항우와 항우가 사랑한 여인 우미인이 가슴아프게 헤어지는 장면이 이 경극의 내용이다. 과거 장국영이 예쁘게 여장을 하고 나왔던 그 영화가 바로 이 경극을 내용으로 한다.
그렇게 인기가 있던 항우의 몰락 원인이 무엇인가? 어떤 이들은 정치적인 원인에서, 어떤 이들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인재풀에서, 어떤 이들은 그의 성격에서 찾는다.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이 책은 항우의 성격을 분석하여 그가 패망한 원인이 "교만"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뼈대 있는 가문(초나라의 대장군 집안)에서 태어나 선천적으로 교만할만한 기질(좋게 말하면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고귀함이요, 나쁘게 말하면 자기 잘난 맛이다)을 가지고 있다. 이 기질이 초반에는 항우에게 부정적인 영향보다 긍정적인 영향을 끼쳐서 자신감으로 나타났고, 그의 성공을 도왔지만 정점에 오른 순간에는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영향을 더 많이 끼쳐서 제 잘난 맛에 사는 교만함으로 나타났다. 이는 필연적으로 부하들과의 소통 부재를 불러왔고, 현실을 정확하게 직시할 수 있는 안목을 빼앗아갔다. 이런 데미지가 4년 동안 쌓여 항우는 유방에 비하여 가지고 있었던 어마어마한 유리한 고지들을 다 빼앗기고 초라하게 몰락했다. 쉽게 말해 제 잘난 맛에 살다가 자폭해 버렸다는 이야기인데, 성공 요인 속에 실패의 요인이 있다는 금과옥조와 같은 말이 다시금 실감이 된다.
책에 대한 감상은 이 정도로 하고 이 책을 읽어가면서 생각나는 한 분이 계신다. 그분이 누구인지 수수께끼를 내니 맞춰 보시라. 다음에 열거하는 것은 그 분의 주옥같은 어록들이다.
“내가 어린 시절 노점상을 해봐서 여러분 처지 잘 안다. 가게 앞에 있으면 옆으로 가라고 해서 계속 쫓겨 다녀 돈만 벌면 가게 사는 게 소원이었다. 저는 여러분의 마음을 이해하는 편이다.”
- 2008년 12월 23일. 연말에 어렵지만 열심히 사는 서민 250여명을 청와대로 초청, 오찬을 하며
“천안함, 내가 배를 만들어봐서 아는데 파도에도 그리될 수 있다. 높은 파도에 배가 올라갔다가 떨어지는 과정에서도 생각보다 쉽게 부러질 수 있다. 사고 가능성도 있다.”
- 2010년 4월 1일 청와대에서 남미지역 특사를 맡은 한나라당 의원들과의 오찬에서
“학생 때 나도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면서 고통을 겪었던 민주화 1세대이다. 어젯 밤 열린 6.10 민주항쟁 집회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 2008년 6월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중소기업 성공전략회의에서
“나 자신이 한때 철거민, 비정규직이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 2009년 2월 12일 한나라당 청년위원회 관계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가진 비공개 만찬에서
“나도 체육인이다. 15년 수영연맹 회장을 했고 세계체육연맹 집행위원을 하면서 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었다.”
- 2008년 8월 26일 베이징올림픽 선수단을 청와대로 초청해 연 오찬 행사에서
“내가 비즈니스를 해봐서 아는데... 스물네살 때부터 아세안 각국을 다니면서 비즈니스를 했기 때문에 아세안 국가들과는 깊은 인연을 갖고 있다. 아세안 거의 모든 나라에서 일 한적도 있다.”
- 2009년 5월 31일 한·아세안 CEO 서밋에서 참석한 기업인들과 만나
“나도 환경미화원 해봐서 아는데...” 과거 이태원시장에서 환경미화원을 했던 경험, 고향인 포항에서 노점상을 했던 경험 등을 소개한 후 “정치하는 사람들이 서민들 고생 많다고 말은 하지만 나는 체감하고 있다. 내가 환경미화원의 대부”
- 2009년 6월 25일 동대문구 이문동 골목상가를 방문해 상인대표들과 불낙버섯전골을 먹으며
“내가 해병대 있는 도시에서 자랐기 때문에... 젊었을 때 해병대가 있는 도시에서 자랐기 때문에 해병대와는 아주 친숙하다.”
- 2010년 2월 10일 서부전선 최전방 해병대2사단(청룡부대)를 찾아 장병들을 격려하며
“내가 비정규직 노동자 출신이었기 때문에... 나와 내 가족 전체가 비정규직 노동자 출신이었기 때문에 나의 꿈은 고정적 일자리를 얻어서 꾸준히 월급을 받는 것이었다.”
- 2010년 11월 10일 서울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방한한 국제노동계 대표들과의 면담에서
“내가 치킨 2주에 한 번 먹는데 (프랜차이즈 치킨을) 2주에 한 번 시켜서 먹는데 비싸다는 생각이 든다.”
- 2010년 12월 15일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열린 업무보고 전 일부 참석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나는 원래 불교와 가까운 사람... 나는 원래 불교와 매우 가까운 사람으로, 불교계에 친구도 많다.”
- 2008년 9월5일 불교계의 "종교 편향" 논란이 일자 김형오 국회의장, 이윤성 문희상 국회부의장과 만찬을 하면서
“나도 한때 수재민이어서 아는데... 마음 편안하게 먹어요. 기왕 이렇게 된 거.”
- 2010년 9월22일 서울 양천구의 수해 피해 현장을 방문하여 수재민에게
이 외에도 “나도 서울시장을 해봐서 아는데”, “내가 대통령 해 보면서 느낀건데”, “내가 조기에 (구제역)백신 접종하라 했는데”등이 있다.(너무 많아서 발췌했다는 한 블로거님의 글을 살포시 옮겨 온다.)
항우처럼 주옥같은 어록들이 많은 이분은 사면내곡동가(부동산에 얽힌 비리가 폭로되자 내곡동 가까이를 들으면서 멘붕 상태에 빠졌음을 의미함)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분은 또한 만화 주인공으로도 자주 등장하신다. 대표적으로 프레시안의 손문상 화백의 그림을 옮겨온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2&aid=0001969502
항우의 몰락 원인이 자기가 뭐든지 다 알고 있다는 자기 잘난 맛, 교만이었듯이 이 분에게서도 같은 낸새를 느낀다. 이 분이 몰락의 길로 가는 것도 자기 경험에 충만한 자기 잘난 맛 때문이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이 한마디면 되는데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이유가 무엇이며, 현명한 사람을 구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저 자기 말 잘듣는 똘마니들만 있으면 되지 않겠다. 마치 항우가 그랬듯이 말이다. 이분이 항우 강의를 읽어봤다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