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로 보는 세계사 - 인류의 역사가 새겨진 새로운 세계지도를 읽는다 지도로 보는 시리즈
미야자키 마사카츠 지음, 노은주 옮김 / 이다미디어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역사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50% 세일을 해서 파는 이 책은 충분히 구미가 당길법한 책이다. 그리하여 지도로 보는 세계사와 지도로 보는 중동사를 동시에 구매했다. 그런데 이 책을 보고 난 다음에 실수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프리카에서부터 시작하여 유럽, 중동 아시아, 이슬람, 인도를 거쳐 동아시아에 이르는 역사 서술은 뭐하나 참신할 것도 없고, 조선을 청의 속국으로 대놓고 이야기하는 점에서, 그리고 조선의 역사는 중국의 역사에 살짝 묻어가는 먼지 정도로 서술하고 지나갔다는 점에서 속이 상할 뿐이다. 일본사 역시 거의 다루고 있지 않지만 일본사야 국사로 따로 다룰 수도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논외로 친다면 결국 동아시아의 역사란 중국과 일본의 역사 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문득 과거에 들었던 친구의 에피소드가 생각이 났다.

 

  친구와 선배가 이스라엘로 여행을 떠났다. 돈이 있을 턱이 없으니 키부츠에서 일을 하면서 여행하는 방법을 택했단다. 한 도시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다른 도시로 이동하던 중에 히치 하이킹을 했단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 일이지만 당시에는 아무 생각없이 히치 하이킹을 했던 것이다. 동양인인 두 사람을 보면서 유창한 영어로 물아 봤단다. "Where are you from?" 아는 영어인지라 자신있게 Korea라는 답을 했는데 문제는 거기서부터 발생했던 것이다. 그 사람이 코리아가 어디 붙어 있는지 몰랐던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에 대해서 유창한 영어로 설명할 수 없었던 두 사람은 "Bottom China!"라는 말을 했단다. 다행이 이 말을 알아들은 그 외국인 왈 "Ah! Japaness!" 허걱한 두 사람은 다시 "Up Japaness!"했고 외국인은 "China?"했단다. 그렇다! 그 사람의 머릿 속에는 중국과 일본 밖에 들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두 사람은 중국인과 일본인 둘 중의 하나로 오해를 받게 되었단다.

 

  왜 이 이야기를 끄집어 내는가? 이 책이 꼭 그렇다. 유럽에 비하면 아프리카와 아시아는 없다. 아프리카는 그저 인류가 시작된 오랜 대륙 정도로, 그리고 훗날 유럽의 침략을 받는 무능력한 대륙 정도로 이해된다. 아메리카도 마찬가지다. 북아메리카는 다행이 유럽인들이 정착하여 캐나다와 미국이라는 강대국을 설립한 축복의 땅이 되며 가장 늦게 발견된 오세아니아도 마찬가지 이유로 축복의 대륙이 된다. 남아메리카는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있지만 뚜렷한 패자가 없어 혼란의 와중에 있으며, 유럽은 세계를 경영했던 축복의 대륙이 된다. 물론 유럽에서도 영국, 프랑스, 독일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동아시아사는 더 빈약하기 이를데 없다. 동아시아는 오래전부터 문명이 고도로 발달했지만 시대의 흐름에 뒤쳐져서 몰락한 이류 대륙이 되며 중앙 아시아의 역사는 아예 증발해 버렸다.

 

  한마디로 이 책에는 뚜렷한 역사관이라는 것이 없다. 지도로 보는 세계사인데 그저 지도만이 있을 뿐이며 지명을 통하여 그 지역에 최초로 정착했던 혹은 큰 영향을 주었던 유럽의 국가가 어디인지를 신변잡기처럼 말하고 있을 뿐이다. 국정 교과서만도 못한 빈약한 세계관으로 무장된 이 책에서 세계사를 읽기란 요원한 일일 뿐이다. 그저 지도를 보는 것으로 만족할 뿐인데 그 지도라는 것도 그렇게 특출난 것은 아니다. 칼라는 하나도 없고, 그렇다고 자세하게 작성된 지도도 아니고 딱 교과서에 들어가기 좋을 정도의 지도이다. 이 정도 책을 반값이지만 돈을 주고 샀다는 사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지도로 보는 중동사도 돈이 아까워서 보기는 해야하는데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물론 책의 편집도 손이 가지 않게 해 놓았다. 다시한번 역사책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의 열거가 아니라 뚜렷한 세계관으로 해석해 내는 것임을 깨닫게 해준 아주아주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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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호진맘 2012-05-28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아주 잘 읽었습니다. 뚜렷한 세계관을 가진 역사책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네요. 감사~~

saint236 2012-05-28 00:22   좋아요 0 | URL
뚜렷한 세계관이 없는 역사책은 읽으나 마나한 책이 되겠죠. 지도로 보는 중동의 역사를 샀으니 보기는 해야하는데 고민입니다.

paloma 2012-06-10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민했는데 고맙습니다

saint236 2012-06-11 15:32   좋아요 0 | URL
저도 미리 알았으면 안 구매했을 책입니다.
 
역사에게 길을 묻다
이덕일 지음 / 이학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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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때부터 역사를 꽤 좋아했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학교 곳곳마다 비치되어 있던 책들이 대부분 역사책이었기 때문이다. 위인전기를 비롯하여, 어린이 삼국사기, 어린이 삼국유사 등등 학급문고로 비치된 책들은 대부분 역사책이 아니면 세계 문학 전집이었다. 시골에서 읽을 거리가 많지 않았던 덕택에 이런 류의 책들을 거의 섭렵하게 되었고 그 덕일까? 중학교 고등학교 시간에 배우는 역사가 단순히 시험을 치르기 위한 암기 과목으로 생각되지 않았다. 친구들은 외울 것이 많아서 공부하기 싫다고 했는데 나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하나하나 배워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전혀 몰랐던 역사적인 사실을 배워간다는 재미가 쏠쏠했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역사를 해석하는 법을 배워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게다가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은 꽤나 독특하신 분이셨다. 지금까지도 역사 교사 모임에서 활동하고 계시고, 지역의 문화 유산이나 역사적인 유산들을 널리 알리는데 힘을 쓰고 계시는 분이다.

 

  역사가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수학 공식 하나, 영어 단어 하나를 외우기에도 빠듯한 고등학교 시절에 단재 신채호 선생의 책들이나 한단고기와 같은 책들을 구해서 읽게 되었다. 궁금한 것들은 수업시간에 묻기 위해서 역사 시간을 그렇게나 기다렸다. 역사 선생님도 보통은 왜 그런것 보냐 영어 단어 하나라도 더 외워라 하지 않으시고 정사와 야사, 식민사관과 민족사관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사람들의 이름이나 학파의 흐름이 어땠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공부하던 국정 교과서가 식민사관에 의해 만들어진 것임을 알게 되었다. 한사군의 위치에 대해서도 국사 교과서에서 이야기하는 한반도 설과는 다른 설이 존재함도 알게 되었다.

 

  대학을 들어가서도 역사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지연의 끈으로 얼떨결에 끌려 들어갔던 동아리가 맑시즘을 비롯한 인문사회 과학 서적을 읽던 동아리였기에 모든 것을 비판적인 눈으로 읽을 것을 주문받았다. 그러다 보니 역사서적을 보는 눈이 약간씩 삐딱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삐딱한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때론 역사 속에서 오늘을 보기도 하고, 이대로 가면 어떤 내일이 올지에 대해서도, 그리고 어떤 의도로 뜬금없이 역사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제 역사는 단순히 역사가 아니라 오늘을 비춰보는 거울이 된 것이다. 쉽게 말해 역사는 파워 게임의 연장선상에 있었던 것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이 단순히 고구려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술적인 목적이 아니라 고도로 정치적인 목적에 의하여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그 때쯤이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고구려를 주제로한 역사 드라마가 쏟아져 나온 것도, 담덕을 주인공으로 하는 만화책이나 소설책이 쏟아져 나온 것도 비슷한 때이다. 역사에 대한 고증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지를 한꺼풀 벗겨내니 그 안에는 치열한 영토 전쟁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서북공정도 독도문제도, 신장 자치구와 몽골의 문제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비단 타국과의 문제만이 아니다. 한국 내에서도 자신들의 정치적인 입장을 역사를 통하여 우회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과거사 청산의 문제는 단순히 친일 부역의 청산이 아니라 이로 인한 현 기득권의 재배치 문제가 민감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권을 잡는 이들은 자신들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역사를 역사 교육이라는 명분하게 교묘하게 주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렇게 주입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언제부터인가 이러한 정치적인 쇼맨쉽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국사를 선택 과목에 집어 넣으면서 국민을 우민화하기 시작했다. 과거 일제 시대에 교회 안에서 출애굽기를 읽거나 설교하지 못하게 했던 것과 같은 모습이다.

 

  이제 역사는 현실을 읽는 눈과 생각을 기르는 도구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 전락해 버렸다. 그러다 보니 드라마에서 역사적인 고증은 안드로메다로 날라가 버렸다. 미국의 마초 드라마 스파르타쿠스만 해도 역사적인 고증에 꽤나 공을 들여서 로마 군사들의 갑옷이나 무기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신경을 썼지만 한국의 사극들은 이러한 역사적인 고증은 개나 줘버린지 오래다. 하나같이 음모, 로맨스, 애국심이라는 볼거리들을 제공하면서 시청율 올리기에 급급하다. 한예로 내가 즐겨보던 선덕여왕이라는 드라마를 살펴보면 거기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실재 자체가 의문시 되는 이들이다. 역사적인 근거가 빈약해서 논란이 되는 화랑세기를 기본으로 삼은데다가 그마저도 이리저리 비비 꼬아 놨기 때문이다. 다만 미실과 덕만을 통하여 당시 정치권을 풍자했기 때문에 즐겨 봤던 것이지 나는 아직까지도 선덕여왕을 사극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풍자극 혹은 마당극 정도로 받아들인다. 최소한 중요한 부분들은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그리고 사극도 역사관은 있어야 한다는 이덕일 씨의 주장은 그런 의미에서 꽤나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역사에게 길을 묻는다. 책의 제목처럼 역사에서 오늘의 현실을 발견한다. 친인척 비리와 부정부패, 수사에 관해 다루고 있는 부분을 보고 있노라면 소름이 끼친다. 이덕일씨가 머릿글에 썼듯이 이글을 쓴지 벌써 10년이 지났다고 하는데(대략적인  배경은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초기이다.) 오늘날에도 거의 비슷한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과거나 현재나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골치를 썩고 있다면 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도 과거의 사안들을 하나하나 살펴 보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역사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면 바보라는 말을 왜 모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애써 무시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꼼수다를 비롯하여 정치 평론 서적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한극 사회가 어디로 가는가 걱정하며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은 미래를 모색하는 중이리라. 그렇다면 역사책을 같이 읽어 나가는 것은 어떨까? 처세술로 읽어도 좋고, 용인술로 읽어도 좋지만 역사의 진실한 가치는 현재 산적한 문제들을 바라보고 그에 대한 인과관계를 해석하고 더 나은 대안을 모색하는데 있지 않겠는가? 과거 지식인들이 역사 공부에 매진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역사가 재미있는 이유, 우리에게 유의미한 이유 또한 여기에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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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 이야기 4 - 정나라 자산 진짜 정치를 보여주다 춘추전국이야기 (역사의아침) 4
공원국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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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춘추시대도 중반으로 들어섰다. 초반 패권국 제의 시대를 넘어 진초의 양강 구도가 무너지면서 4권의 주인공 자산의 시대에는 중원의 진과 초라는 2강과 뒤를 따르는 제와 서방의 진, 초와 끊임없이 다투는 오, 강대국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외교로 목숨을 연명하는 정, 노, 채, 송 등등의 약소국들이 등장한다. 공원국의 말대로 2강 체제가 무너지고 다극화의 시기가 다가오면서 각 국가들은 강대국의 그늘에서 쫓겨나 각자가 살 길을 찾아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여전히 예라는 국제사회의 이데올로기가 작동하지만 제환공이나 진문공의 시절처럼 절대 이데올로기로 작동하지는 않는다. 제환공과 진문공 시대도 예라는 이데올로기가 무너지고 있던 시기였기에 자산의 시기에 이르러서는 간신히 명맥만 유지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실력(군사력과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예는 "송양지인"일 뿐이다. 한마디로 자산의 시대는 자국의 이익를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실리주의를 바탕으로 복잡한 외교전이 진행되던 시기이다. 전국 시대 말기의 대 진(서방의 진) 외교전인 합종연횡과는 성격을 달리 하는 외교전이 치열하게 전개된다. 채와 같은 국가는 강대국 사이에 끼어서 갈팡질팡하다가 멸망당했지만 묘하게도 자산의 정나라는 강대국들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강소국의 길을 걷게 된다. 2강 체제의 해체라는 국제정세가 자산의 정나라에게는 비상의 기회가 되었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특히 MB정권 이후 글로벌 호구라는 자조 섞인 말을 수시로 하고 듣고 있는 우리나라 외교라인들에게는 통렬한 반성과 함께 깊이 숙고해야 하는 책이다. 외교부의 인사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말한대로 "오랫동안 고슴도치가 되지 못하고 어정쩡한 처지에 처해 있었던 우리 자신을 돌아졸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두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하나는 위에서 말한대로 글로벌 호구라고 불리는 한국의 외교정책을 떠올렸으며, 다른 하나는 호구 정당 민주통합당을 떠올렸다. 혹 민주통합당을 지지하는 사람이 이 글을 읽으면서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지만 요즘 돌아가는 판을 보면 민주통합당은 그야말로 호구당이다. 독재와 싸워온 수십년 야당의 역사를 자랑하지만, 그래서 한 때는 여당이 되어 국가를 운영해 본 경험도 있지만 아마추어도 이런 아마추어가 없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시절은 넘어가자. 거기에 대해 냉정한 역사적인 비판과 자성의 모습이 안 보이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넘어가자. 대선에서 한나라당에 지고 다시 야당으로 돌아간 후의 정당 활동과 민주통합당으로 통합이 되어 지도부를 꾸리고 정당으로서 활동하는 지금의 모습만 지켜보자.

 

  민주통합당이 과거의 모든 역사를 통틀어서 거대당이었던 적이 있었는가? 내가 알기로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의 여파로 탄돌들이들이 국회에 대거 입성하면서 딱 한번 거대당이 된 적이 있다. 물론 당시에도 거대 여당으로서의 힘을 발휘하여 국보법, 사학법과 같은 중요 법안들을 통과 시키지 못하고 사분오열했다. 거대당이었던 경험이 없어서 그랬다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당시 사태를 보면서 나는 딱 한마디 했다. "여병추!"

 

  그런데 요즘 보면서 다시한번 "여병추!"을 외친다. 아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병신 삽질하네!"라는 심한 말을 날리고 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여기 저기서 들려오는 소식들이 "병신 삽질한다"는 말이다. 조중동같은 보수언론은 논외로 치자. 경향과 한겨레에서도 동일한 논조의 기사들이 실린다. 팟캐스트는 더 직설적이다. 나꼼수가 민주당 삽질한다고 비판한 것은 정봉주 의원이 사정없이 깔대기를 들이대던 초기부터요, 나꼽살도 FTA이야기를 하면서 지속적으로 하는 말이 민주당의 삽질이다. 김종배의 이털남 33회는 조목조목 민주통합당의 삽질을 비판한다. 그러면서 내린 결론이 "민주통합당은 국민의 도구이다. 제대로 못하면 국민들에게는 통합진보당이라는 도구가 있다."이다. 맞는 말이다. 솔직하게 나에게는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헷갈린다. 인적 구성도 어느 정도 겹치는 부분도 있고, 이름도 비슷하고, 정치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다르지만 얼핏보면 그놈이 그놈이다.

 

  민주통합당의 쇄신이라는 것이 김진표를 원내대표에 그대로 두고 한명숙을 당대표로 내세웠을 뿐이다. 모바일투표를 위해 많은 시민들이 경선에 참여한 것을 자기를 지지하는 줄 착각한다. 새누리당에 대한 반감은 곧 자신들의 지지율 상승이라고 생각하는 김칫국이 어이없다. 이슈는 여러가지가 많은데 야당으로서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 하는 짓마다 다 용두사미다. 그러면서 항상 내리는 결론은 자신들의 의석수가 적어서 그러니 다음 총선에서 자신들을 뽑아주면, 그래서 거대당으로 만들어주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삽질도 이런 삽질이 없다. 언제 자산이 우리 정나라는 작으니까 일단 크게 만들어 주면 강한 국가로 만들어 주겠다고 했는가? 오히려 자산은 우리에게 약자는 약자 나름대로 의 생존의 원칙과 기술이 있다고 말한다.

 

  약자의 생존 기술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약자는 강자들보다 국제관계에 훨씬 민감해야 한다. 그래서 강자들을 다루는 솜씨, 곧 언변이 필요한다. ---(중략)--- 두번째로 약자는 강해지기 위해 기존의 강자들보다 더 엄격한 수단을 써야 한다. 그 엄격한 수단이란 법을 뜻한다. 자산은 강대국들의 압박 속에서도 개혁을 지속적으로 수행했다. 그래서 춘추시대에 최초로 성문법을 만들어 국인들 모두에게 적용시키는 법가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그의 법 집행은 춘추시대의 기준으로 보면 매우 엄격한 명도 있었다.(p36-38)

 

  여대야소라고 신세한탄하지 말고, 당신들이 그렇게 뽑아 놓았으니 당신들이 피해를 보는 것 아니냐며 국민들 탓하지 말고, 그러니 다음에는 우리를 뽑아달라는 말로 표를 구걸하지도 말라. 작은 야당이라고 정치적으로 아무 힘이 없는 것이 아니다. 자유선진당, 민노당, 진보신당, 국참당 같은 당에 비하면 민주당은 거대야당이다. 민주당이 욕을 먹는 것도 그만한 덩치를 가지고도 매일 작다고 불평만 하지 제대로 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작은 야당이라고 생각이 든다면, 한나라당에 비하여 힘이 없다고 생각이 든다면 약자의 처세술을 기억해야 하지 않겠는가?

 

  첫째 약자는 강자보다 국제관계에 더 민감해야 하듯이 야당은 여당보다 국민의 정서에 더 민감해야 한다. 그런데 민주당이 국민 정서에 민감한가? 지금의 민주통합당이 국민 정서에 민감한가? 아니다. 국민들의 정서를 모르고, 그저 한나라당에 대한 반사 이익과 한나라당과의 야합을 통해서 얻는 정치적인 이익에만 민감하지 않은가? 무엇인가 국민의 정서를 살피고 대변하는 마음으로 보여준다면 국민들의 지지는 구걸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다. 다음 총선에서 민주통합당을 밀어줘야할 당위성이 무엇인가? 반MB, 반새누리당을 위한 선거 연대라는 명목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면 굳이 민주통합당으로 모일 이유가 무엇인가? 통합진보당도 있지 않은가? 미리 샴페인 터뜨리고 오만하게 구는 민주통합당의 삽질이 그거 우스울 뿐이다. 여병추!

 

  둘째 강자보다 엄격한 수단을 써야 한다. 즉, 강자보다 더 엄격하게 원칙을 지켜야 한다. 새누리당이 원칙을 어기면 원래 그런 곳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여타 야당이 원칙을 어기면 난리가 난다. 김어준은 진보의 결벽주의라고 평하지만 그런 결벽주의를 지향하는 것이 진보를 차별화 시킨다. 물론 결벽주의가 편협함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 한국 진보정치의 한계이다. 엄격한 원칙을 지키라는 것이 결벽주의 편협주의를 추구하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상황과 때에 맞추어서 포기하지 말아야할 것까지 포기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국민에게 약속을 했으면 약속을 지켜야지 정치적인 이해득실을 따져서 했던 말을 번복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민주통합당은 했던 말을 잘 뒤집는다. 초반부터 안해도 되는 말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FTA 날치기 안된다고 했으면 하지 말아야지 왜 합의는 해주는가? 김진표를 욕하면서 왜 김진표를 원내대표로 놓아두는가? 왜 자기들이 내세운 인사가 부결이 되도록 내버려두는가? 원칙이 없다. 기준도 없다. 그냥 주먹구구식이다.

 

  다음 총선에서 민주통합당이 거대야당이 될 확율? 물론 높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다음 대선에서도 승리할 확율? 꽤 낮아질 것이다. 왜냐? "병신 삽질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통합당이 자산에서 배웠으면 좋겠다. 물론 통합진보당도 마찬가지다.

 

ps. 자산은 정치가요, 안자는 비평가라는 공원국의 평이 꽤나 마음에 와닿는다. 묘하게 안자에게서 진중권이 떠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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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2-02-23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헷갈려서 민주통합당을 통합민주당으로 썼다. 다 고쳤는데 정작 제목은 안 고쳤으니 에라 모르겠다. 양해를 부탁드린다.

차트랑 2012-02-23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죄송해요~
기왕에 바꾸신거 제목도 바까주세요 ㅠ.ㅠ

그나저나 춘추전국시대가 저를 겁나게 유혹하는군요
미쵸요...

saint236 2012-02-23 21:58   좋아요 0 | URL
알았습니다. 바꾸지요. 요즘 춘추전국 이야기는 장난이 아닙니다. 이래서 역사를 공부하나 싶습니다.
 
조선 국왕의 일생 규장각 교양총서 1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엮음 / 글항아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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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 뿌리깊은 나무가 종영되었다. 그전에는 공주의 남자, 그 전에는 이산, 또 그전에는.... 지금까지 드라마나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왕들을 한번 열거해보자. "태조, 태종, 세종, 단종, 세조, 성종, 연산군, 선조, 광해군, 인조, 영조, 정조, 고종..." 정확하게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꽤 많은 왕들이 드라마에 단골 메뉴로 등장했다. 중국과의 역사 전쟁 때문에 고구려에 대한 열풍이 불기 이전 대부분의 사극은 조선이 배경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왕뿐 아니라 여기에 더하여서 등장하는 왕비, 후궁, 상궁, 내시 등등을 합치면 또 얼마나 많은 궁궐에 살던 사람들이 등장했는지 모른다. 그들을 통해서 우리가 상상하게 되는 궁궐의 모습은 명암이 분명하게 갈린다. 성군이 되어 국가를 잘 경영하든, 아니면 폭군이 되어 권력을 휘두르든 왕의 자리는 권력의 정점이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자리이다. 그렇지만 그 이면에서는 왕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혹은 왕의 최측근이 되어 권력의 한자락이라도 얻어보기 위해서 온갖 음모와 계략과 암투가 판을 친다. 무당을 불러서 저주 굿을 하고, 왕을 해치기 위해 은밀히 독살하는 것은 양반이요, 때론 직접적으로 무력까지 동원하기도 한다.

 

  우리가 상상하는 조선 왕과 궁궐의 모습이 대략이러한데 이것이 과연 사실인가? 모두가 틀렸다는 말이 아니라 개중에는 사실이 아닌 것도 있다는 점을 말하려는 것이다. 왕을 하늘의 아들, 성혈, 나랏님 등등 여러가지 말로 신성시하며 권위를 세우려고 하지만 결국 왕들도 희노애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이다. 조선 왕의 생각과 삶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으로서의 왕에 대한 이해 또한 필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역사서들은 인간으로서의 왕보다는 정치권력자로서의 왕에 집중하기 때문에 반쪽짜리 이해에 머무르기 쉽다. 그 결과가 허구로 재구성되는 사극에 혹하여 역사를 오해하는 일까지 발생하게 된다.

 

  이 책은 철저하게 정치권력자로서의 왕이 아니라 개인으로서의 왕을 소개하는데 치중하고 있다. 물론 정치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왕이기 때문에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정치적인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지만 최대한 정치적인 것들을 배제하고 출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는 왕의 일생에 대해서 소개한다. 한 주제에 대하여 20페이지 내외의 짧은 분량으로 설명하기 때문에, 게다가 이해를 돕기 위한 삽화를 많이 첨부하였기 때문에 읽기가 수월하다. 전문적인 학술서가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 읽히기 쉽게 만들었다는 취지에 적합하다. 실제로 책을 읽으면서 꽤 흥미로운 지식들을 얻기도 했다. 가령 왕이 공식적으로 술을 마시는 날이라든지, 혹은 왕이 어떤 음식들을 먹고 살았는지, 궁궐밖으로 왕이 행차한 이유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등등 교과서를 통해서 배우지 못하는 것들, 대부분의 역사서에서 다루지 않는 것들을 세세하게 알게 된 것이 이 책을 통해 얻게 된 소득이다. 역사를 공부하는 중고등학생들에게 교과서처럼 읽힌다면 꽤 유익할 수도 있겠다.

 

  다만 아쉬운 점은 규장각 교양총서가 가진 태생적인 한계이다. 첫째는 사람들에게 당시의 생활상들을 있는 그대로 알려 주다 보니 독자의 눈을 끌어 들일 수 있는 임팩트가 없다는 것이다. 꽤 유익하고, 그리 두껍지 않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진도가 안나간다. 손에서 책을 떼지 못하게 하는 흥미진진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시리즈의 책을 보기 위해서는 지적 호기심과 더불어 은근과 끈기가 필요하다. 둘째는 삽화가 많이 들어가다보니 종이질이 월등하게 좋다는 것이다. 종이질이 월등하게 좋은 것이 무엇이 문제가 되느냐면 하나는 책값이 비싸진다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눈이 아프다는 것이다. 비슷한 다른 책에 비하여 이 책은 꽤 고가이다. 예를 들면 조선 국왕의 일생은 290 페이지 책이 19800원이다. 선뜻 시리즈를 사모으지 못하고 한권씩 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눈이 아픈 이유는 무엇이냐? 밝은 대낮에 야외에서 이 책을 보면 괜찮지만 형광등 밑이나 스탠드 밑에서 보면 반사되는 빛으로 인해 눈이 심히 아프다. 혹 가능하다면 무광용지로 인쇄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별점이 두개인 이유는 순전히 이것 때문이다.

 

  이책을 읽고 내린 결론은 "왕 노릇하는 것도 참 쉽지 않다."는 것이다. 다시는 궁궐에 살게 하지 마소서라는 꼭지의 글이 마음에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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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12-01-01 0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 인터넷으로 읽을 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구입하고나서 후회한 책들이 더러 있습니다. 좋은 리뷰가 있었더라면...하는 아쉬움이 남을 때입니다. 그런 연유로 좋은 리뷰는 읽을 도서를 선정하는데 대단히 좋은 참고자료가 되어줍니다. saint님의 리뷰는 양질의 리뷰인지라 다수의 독자들에게 도움이 클 것입니다. 제게도 역시... 읽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리뷰를 쓴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만 saint님께서는 그 일을 해주시는군요. 새해 더욱 행복한 가정되시길 바랍니다.

saint236 2012-01-01 22:57   좋아요 0 | URL
이런 댓글에 제가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차트랑공님도 좋은 한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올해에도 알라딘을 굳건히 지키세요 화이팅

2012-01-01 0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1 2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BRINY 2012-01-01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규장각 교양총서, 쉽게 보관함에서 장바구니로 이동시키지 못하는 책입니다. 관심은 있는데 말입니다... 이런 건 신서나 문고본으로도 나와주면 안되는 것일까요. 아쉽습니다.

saint236 2012-01-03 10:19   좋아요 0 | URL
저도 보관함에 넣어두었다가 큰 맘먹고 한권씩 옮깁니다. 아마도 삽화 때문에 불가능하지 않나 생각해보네요. 삽화가 보조 수단이 아니라 중요도가 꽤 높습니다.
 
김종서와 조선의 눈물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節齋 김종서

 

  우리는 그를 대호라고도 부른다. 백두산 호랑이라는 의미이다. 세종의 명을 받아서 북방에 4군 6진을 개척한 인물로 고려의 윤관에 비견되는 인물이다. 우리는 백두산 호랑이라는 그의 별명 때문에 그를 거친 무장으로 오해하지만 당대의 석학이요,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그리고 세종 실록을 편판할 정도로 인정받는 사학자이다. 또한 맡겨진 직책이 무엇이든지 충실하게 해내는 뛰어난 관료이기도 하다. 그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어느날 갑자기 정승으로 등장한 것이 아니라 그의 이름에 비하여 꽤 많은 직책들을 그것도 하급 직책에서부터 정승이라는 최상급 지책까지 두루 섭렵한 사람임을 알게 된다. 다음 백과 사전에 나오는 김종서 항목을 살펴보면 이렇다.

 

  1390(공양왕 2)~ 1453(단종 1) 조선 초기의 문신·장군.

 

  지략이 뛰어나고 강직하였기 때문에 대호(大虎)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도총제(都摠制) 추(錘)의 아들이다.

 

  육진개척

  본관은 순천. 자는 국경(國卿), 호는 절재(節齋). 1405년(태종 5) 문과에 급제, 상서원 직장(直長), 행대감찰(行臺監察)을 거쳐, 1419년(세종 1)에 사간원우정언이 되었다. 이어 광주판관(廣州判官)·봉상판관(奉常判官)·의주삭주도(義州朔州道)의 진제경차관(賑濟敬差官)을 지냈으며, 1426년 이조정랑, 1427년 사헌부집의·황해도경차관 등에 올랐다. 1433년(세종 15)에는 좌대언(左代言)으로서 이부지선(吏部之選)을 맡았다. 이 무렵 북쪽 변경에서 우디거[兀狄哈]족을 비롯한 여진족의 침입이 끊이지 않아, 조정에서는 대책 수립에 부심하고 있었다. 이때 그는 북변 강화의 필요성을 강경하게 주장하여, 세종으로 하여금 북방 경영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게 했다. 마침 1433년 우디거족과 오도리[斡朶里]족이 서로 다투는 등 여진족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 국토 확장에 뜻을 두고 있던 조정에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이에 세종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던 그는 같은 해 12월 함길도도관찰사, 1435년 함길도병마도절제사가 되어 7, 8년간 북쪽 변방에서 여진족을 무찌르고 비변책(備邊策)을 올리는 등 6진(六鎭:종성·회령·경원·경흥·온성·부령)을 개척하여 국토확장에 큰 공을 세웠다. 이로써 1416~43년에 걸쳐 개척된 압록강 방면의 사군(四郡:여연군·자성군·무창군·우예군)과 함께 우리나라의 국토가 두만강·압록강 상류까지 넓어졌다(→ 색인 : 4군6진). 1440년 서울로 돌아와 형조판서·예조판서를 지내고, 그뒤 충청·전라·경상 3도의 도순찰사를 거쳐 1446년 의정부우찬성으로 임명되고 판예조사(判禮曹事)를 겸하였다. 1449년 8월에 달달(達達:Tatar) 야선(也先)이 침입하여 요동지방이 소란해지자 평안도도절제사로 파견되었다가 이듬해 돌아왔다.

 

  사서편찬

  그는 6진을 개척한 용장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한편으로는 〈고려사 高麗史〉·〈고려사절요 高麗史節要〉·〈세종실록〉의 편찬작업을 책임지는 등 학자·관료로서의 능력도 갖추고 있었다. 1451(문종 1) 좌찬성 겸 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로서 편찬한 〈고려사〉는 본래 1392년(태조 1) 정도전(鄭道傳) 등이 편찬한 것을 세종 때 몇 차례(1421, 1424, 1442) 개수한 끝에 완성한 것이었다. 〈고려사〉의 편찬이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조선 왕조 건국의 정당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던 데다가, 정도전 등 몇몇 개인의 가문을 지나치게 부각시키는 등 공정치 못하다는 여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김종서·정인지(鄭麟趾)·이선제(李先薺)·정창손(鄭昌孫) 등이 1449년부터 개찬에 착수하여, 1451년에 세가(世家) 46권, 지(志) 39권, 표(表) 2권, 열전(列傳) 50권, 목록(目錄) 2권의 기전체(紀傳體)의 정사(正史)로 〈고려사〉가 완성되었다. 같은 해 10월 우의정으로 승진, 편년체(編年體) 고려사 편찬을 건의하여, 이듬해인 1452년(단종 즉위년) 〈고려사절요〉 편찬에 참여했다. 같은 해 〈세종실록〉 편찬의 책임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계유정난(癸酉靖難:세조의 왕위찬탈사건)으로 위의 사서들에서 그의 이름은 모두 삭제되었다.

 

  계유정난

  그는 세종 때부터 임금의 신임을 받는 관료로서 성장했다. 문종도 죽음을 앞두고 영의정 황보인(皇甫仁), 좌의정 남지(南智) 등과 함께 우의정인 그에게 어린 단종을 부탁했다. 그러나 세종의 여러 왕자들이 다투어 세력 확장을 도모하는 가운데, 수양대군(首陽大君)은 자신이 왕위에 오르려는 야망을 실현시키는 데 가장 장애가 되는 인물로 그를 지목하고 제거하고자 하였다(→ 색인 : 세조찬위). 수양대군은 한명회(韓明澮)·권람(權擥) 등의 모사(謀士)를 얻은 뒤 홍달손(洪達孫)·양정(楊汀)·유수(柳洙) 등 무사들을 규합, 1453년(단종 1) 10월 13일에 거사하기로 하고, 이날 우선 서대문 밖 김종서의 집으로 가서 양정·임운(林芸) 등이 김종서와 아들 승규(承珪)를 살해했다. 뒤이어 이들은 단종에게 김종서 등이 반역을 도모하였기에 대역모반죄(大逆謀叛罪)로 우선 죽였다고 아뢰고, 왕명을 빌어 대신들을 소집한 다음 홍윤성(洪允成) 등을 시켜 황보인·조극관(趙克寬)·이양(李穰) 등을 죽였으며, 정분(鄭)·조수량(趙遂良) 등은 귀양 보내 완전히 권력을 장악했다. 1680년(숙종 6) 강화유수 이손(李巽)이 김종서의 억울함을 논하였으며, 1719년(숙종 45)부터 후손들이 다시 등용되기 시작하였다. 1746년(영조 22)에 그의 벼슬이 회복되었다. 종성의 행영사우(行營祠宇)에 제향되었다. 〈장백산에 기를 꽂고〉·〈삭풍은 나무 끝에 불고〉 등의 시조가 전한다.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태종 시대에 관료로 첫 출발을 하여 세종, 문종, 단종 4대를 섬긴 충신이다. 세종이 한글 창제와 문치라는 소프트웨어를 집현전 학사들과 함께 했다면 북방 영토 개척이라는 하드웨어를 함께 한 사람은 김종서이다. 세종이 세손 단종을 부탁한 인물들이 집현전 학사들과 김종서를 필두로 하는 대신들이었는데 전자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며 떨어져 나간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후자는 한명의 이탈도 없이 단종을 위해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들을 포기했다. 그 구심점에 선 사람이 김종서이다. 개인적인 성품이면 성품, 벼슬이면 벼슬, 배경이면 배경, 신념이면 신념 무엇하나 빠지지 않는 사람을 꼽자면 단연 김종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괜히 황희 정승이 김종서를 훈련시키기 위하여 쥐잡듯이 잡은 것이 아니다. 수양대군의 야심을 저지시킬 수 있는 대항마로 그가 지목된 것도 그냥 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한 것이 그의 일생을 다루고 있는 드라마가 한편 도 없다는 것이다. 세종과 단종 시대를 다루는 여러 드라마에 그가 비중있는 조역으로 출연하기는 하지만 단 한번도 그가 주연으로 출연한 적이 없다. 혹 있다면 나에게 가르쳐 줬으면 좋겠다. 만약 있다면 꽤 많은 시간을 들여서라도 찬찬히 살펴보고 싶다.

 

  원래 나는 김종서에 대한 이미지가 그다지 좋지 못하다. 융통성 없이 고지식한 사람, 조선이라는 나라를 좌지우지하려는 야심가, 혹은 단종이란 구체제를 옹호하는 사람 정도로 치부했었다. 이덕일씨가 들으면 미치고 팔짝 뛸만한 시각인데 이러한 시각을 나에게 심어준 것은 고등학교 때 접했던 한질의 소설이다. 드라마 작가 신봉승씨가 썼던 "소설 한명회"인데 나중에 드라마로 만들어져서 이덕화가 한명회 배역을 맡기도 했다. 그 책은 제목이 말해주듯이 철저하게 한명회의 시각에서, 그리고 수양의 입장에서 사건을 풀어나간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소설 한명회"도 구해서읽어보길 바란다. 꽤 오래전 책이라 지금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제법 규모가 있는 도서관이라면 아직 남아 있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한명회를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도 있다. 수양을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도 있다. 단종을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도 있고, 태종을 주인공으로 했던 드라마도 있다. 물론 얼마전 종영한 뿌리깊은 나무는 세종을 주인공으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종서를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는 찾아보기 어렵다. 매우 비중있는 조연 정도로 등장할 뿐이다. 쉽게 말해 김종서는 이름 값에 비하여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결론은 그의 인생이 드라마로 만들어질 정도로 임팩트를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철권 통치와 권력이라는 맥락에서 김종서를 보자면 태종이나 수양에 비하여 임팩트가 없다. 자식에게 안정적인 왕권을 물려주기 위하여 개국 공신을 비롯하여 처남은 물론 사돈까지 처형하면서 태조와 대립각을 세웠던 태종! 권력에의 의지를 불태우면서 자기 동생은 물론 조카까지도 죽이고 일가친척을 노비로 만든 수양! 두 사람에 비하면 김종서가 가지는 무인이나 장군, 권력자로서의 임팩트가 약하다. 문치와 조선의 전성기를 이끌었다는 측면으로 이해하자면 그의 임금이었던 세종에게 밀린다. 비극적인 죽음이라면 단종에게 밀리고, 충성이라는 측면으로 해석하자면 성삼문 박팽년을 비롯한 사육신에게 밀린다. 수양이 김종서를 너무 전격적으로, 전광석화처럼 처리했기 때문이다. 출세라는 면에서 보자면 권모술수의 대명사 한명회에게 밀린다. 그와 함께 했던 사람들에 비해 드라마 제작자들의 입맛을 당길만한 임팩트를 주지 못한다는 뜻이다.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가 잘못 살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드라마나 영화의 특성상 어느 한면을 부각시킬 수밖에 없는데 그럴만한 임팩트가 그에게 없다는 의미다. 물론 이러한 이유는 그가 너무 자신의 삶과 신념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세종의 파트너로서 오랜 세월 북방에 나가 맡겨진 일에 충실하였기에 중앙 정계에서 빗겨나 있었고, 중앙에 올라와서는 철저하게 세종과 문종 그리고 단종의 신하로서 충성을 다했으며, 그의 존재감 때문에 수양에 의해서 가장 먼저 살해당한 덕이다. 그의 인생 자체가 주인공으로 부각될만한 포인트가 없으며, 그렇다고 없는 사실을 꾸며내기에는 그가 남긴 족적이 너무 뚜렷하다. 결국 그는 왠만해서는 주연을 맡을 수 없다는 말이다. 인수대비를 보지는 않았지만 김종서에 대한 배역이 결코 조연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단 한번도 주인공이 될만한 요건을 갖추지 못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의 삶이 더 아름다운 것이 아니겠는가? 김종서가 추구한 삶의 가치라는 것이 철저하게 조연이기 때문이다. 그가 수양처럼 왕이 되려는 마음을 품은 것도 아니요, 한명회처럼 권력에의 의지를 불사른 것도 아니요, 세종의 아들 수양을 선제공격할 정도로 냉정한 것도 아니다. 그는 철저하게 태종, 세종, 문종, 단종의 신하로 남기를 원했다. 만약 그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싶었다면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음에도 節齋라는 그의 호처럼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삶이 더 아름다운 것이요, 오늘날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바가 큰 것이다. 김종서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책을 선택한 것이 결코 후회가 되지 않는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저자의 고질적인 문제이다. 이덕일의 책은 역사책답지 않게 읽기가 쉽다. 마치 소설을 읽는 것같아서 술술 넘어간다. 그렇다고 그의 책이 여타 소설책처럼 역사적인 허구를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니다. 철저하게 사료 중심으로 이만한 책을 쓴다는 것은 정말로 존경할만한 하다. 다만 이덕일의 책은 중간중간에 저자가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단점을 보인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열정이요 장점으로 비춰지겠지만, 나에겐 플러스 요인보다는 마이너스 요인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김종서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과 수양과 공신의 등장에 대한 분노를 고스란히 표출하는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시각이 한쪽으로 치우친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소설 한명회"를 같이 읽어보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곳곳에 김종서의 죽음과 공신의 등장은 헌정질서의 파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고 있는데, 조선에서 헌정질서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을까? 차라리 명분이라든지, 유교적인 가치관, 혹은 정당성이라는 말을 사용했다면 수긍이 가겠지만 왕조국가 그것도 입헌 군주제가 아닌 왕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조선에서 헌정질서 운운한다는 것은 잘못된 태도가 아니겠는가? 저자에게 약간의 자제심이 동반된다면 그의 책은 더 재미있고, 설득력을 갖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마지막으로 자기를 따르는 공신들을 책길 수밖에 없는 수양의 꼼꼼함에 어느 한 분이 생각나는 것은 나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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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2011-12-25 0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런데, 이덕일의 또 다른 책... 성공한 혁명과 실패한 혁명, 역사에게 길을 묻다...
를 보면... 이덕일이 왜 수양과 공신들에 대해 감정을 드러내는지...그 이유를 이해하게 됩니다.

saint236 2011-12-25 10:15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한번 구해서 봐야겠네요.

차트랑 2012-01-01 0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위의 책을 읽었습니다. 이렇게 정성의 들여 리뷰를 작성하시다니...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정성은 늘 감동을 동반하게됩니다. saint님의 글을 정성이 가득합니다. 감동받고 돌아갑니다.

saint236 2012-01-01 22:59   좋아요 0 | URL
조선 역사상 안타까운 인물 중의 하나가 김종서인지라 적다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조선 역사중 가장 관심이 가는 시대가 김종서의 시대와 정조의 시대입니다. 그 시대의 책들은 그냥 넘어가지 않네요.

차트랑 2012-01-03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종서의 시대도 매우 마음아픈 역사이고 정조의 정치사가 물거품이 되는 순간에도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깊이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