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 2 - 세상을 깨우는 시대의 기록 역사 ⓔ 2
EBS 역사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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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역사뿐이다."

 

  연산군의 말에 이어서 역사e 시즌 2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을 표지에 실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단언컨대 이 한문장을 뽑아내는 실력만큼은 대단하다고 하겠다. 이 한마디의 문장만큼 역사의 중요성과 의미에 대해서 가르쳐 주는 말은 없을 것이다. 영광스러운 과거는 영광스러운대로, 수치스러운 과거는 수치스러운대로 기억하면서 피할 것은 비하고 부활시킬 것은 부활시키려고 애쓰는 것, 현재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지혜를 얻고 사례들을 점검할 수 있는 것이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일 것이다. 특별히 수치스러운 과거, 상처가 되었던 과거는 더더욱 기억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각 나라들은 이러한 역사들을 보존하고 기억하기 위하여 애를 쓴다. 특별히 감성적이어서도 아니라 그것이 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의무이고, 그것이 우리는 물론 우리 후손의 삶을 더 아름답고 좋은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독일은 아우슈비츠 형무소를 보존하여 나치의 등장을 경계하고, 베를린 장벽을 보존하여 분단의 아픔을 기억한다.

 

  오랜 세월 나라를 잃고 유랑했던 유태인들은 이러한 면에서 더 철저하다. 혹시 맛사다 요새를 아는가? 헤롯 대왕 시절에 만들어진 천연의 요새로 유사시에 피신할 목적으로 만들어 놓은 장소이지만 이곳이 유명한 이유는 로마에 항거하던 유태인들이 이곳을 근거지로 하여 몇년간 농성을 벌였기 때문이다. 농성을 벌이던 그들을 로마 군단은 압도적인 기술력을 사용하여 포위망을 구축하였고, 결국 함락시켰다. 성벽이 함락될 때 남아 있던 600여명의 사람들은 마지막가지 로마에 저항하기 위하여 투항하지 않고 집단으로 자결을 했다. 물론 자결은 율법에 금하는 것이기 때문에 극소수의 사람들이 대다수의 사람들을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형태로 자결이 이루어졌다. 신화와 같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오랜 세월동안 묻혀 있다가 맛사다 요새 유적을 발견하고, 지금은 그곳을 잘 보존하고 있다. 보존 자체도 훌륭하지만, 유태인들은 맛사다 요새의 비극을 기억하기 위하여 사관학교 생도들의 임관식을 이곳에서 실시하고 있다.

 

  통곡의 벽도 마찬가지이다. 구약 시대 성전의 대부분이 파괴되고 나중에 헤롯이 건축한 성전이 다시 파괴되었고, 남아 있는 서쪽 벽의 일부를 통곡의 벽이라고 부른다. 어느 책에서 우연히 읽었는데 그 벽에 대한 역사적인 진위가 의심된다는 말로 있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 통곡의 벽을 대하는 유태인들의 태도이다. 그들은 통곡의 벽을 성지로 여기고 그곳에서 율법을 읽으면서 기도를 한다. 그들의 기도는 단순한 종교적인 행위를 뛰어넘어, 아픔의 역사를 되새기고, 오늘의 현실로 받아들이는 행위가 된다. 이러한 역사의 되새김질은 미국의 지원이라는 이유 외에도 중동에서 이스라엘이 존재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힘이 된다.

 

  역사e를 읽으면서 많은 것들을 새롭게 알게 된다. 그런데 그 사실이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다. 그렇게 오랫동안 학교에서 국사를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접해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가 불편해서이다. 진정한 역사 교육이 되기 위해서라면 이러한 부분들을 수정하고 보완해도 부족할 판에 교학사 교과서를 새롭게 편찬하면서 좌편향으로 치우친 역사 교과서를 바로 잡겠다는 창조적인 사고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가끔 과거를 기억하는 것을 고리타분한 일이고, 성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본다. 혹은 과거는 사랑을 쓰는 것처럼 깨끗하게 지우고 다시 쓸 수 있는 것들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본다. 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과거를 조작하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교육하려고 애쓰는 사람들도 본다. 그렇지만 이 모든 행위들은 어느날 갑자기 생긴 흐름이 아니라 과거에서부터 지속적으로 있어왔던 일이다. 물론 이러한 행위들이 실패했음은 역사가 증언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그러한 유혹을 느끼고, 그런 시도들을 멈추지 않는 것을 보면 아마도 그들은 과거 국사를 선택으로 배웠든지, 아니면 기억할 의무를 저버린 것인지 모르겠다.

 

  아무리 아픈 역사라도 외면하지 말라. 깨끗하게 밀어버리고 번듯하게 짓는 것을 좋아하는 그러한 세태에 휘말리지 말라. 아무리 잘 복원을 해도 지금 남대문이 진정한 국보 1호일 수는 없다. 형태를 가지고 있는 남대문도 이럴진대 형태가 없는, 사람들의 기억에만 존재하는 역사적인 사실들, 의미들은 더더욱 우리가 기억하고 보존해야 한다. 이를 게을리했을 때 역사의 불행은 반복될 것이다. 아니다. 이미 반복되고 있다.

 

ps.차라리 역사e를 역사 교과서로 사용하는 것이 교학사 교과서보다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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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01-09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답고 알찬 모든 책을 다 교과서로 삼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saint236 2014-01-09 10:07   좋아요 0 | URL
글쎄 말입니다. 괜시리 이상한 책들 가져다가 교과서 한다니 그 저의가 의심스럽지요.

transient-guest 2014-01-23 0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국어와 국사교육을 등한시하는 나라는 아마도 현 대한민국 밖에는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드네요. 또다시 지난 시절의 굴욕과 독재를 다시 경험하게 될까봐 두렵습니다. 우리 시절,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던 사회/국사시간만큼의 교육도 지금의 학생들에게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네요. 저들이 하는 짓은 그야말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게 아닌가 싶은데, 무엇인가 개인적인 이득을 노리지 않고서야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답답한거죠

saint236 2014-01-28 12:09   좋아요 0 | URL
예전에 누군가 대한민국은 미국의 51번째 주라고 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춘추전국 이야기 2 - 영웅의 탄생 춘추전국이야기 (역사의아침) 2
공원국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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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오랫만에 밀린 숙제를 하는 기분으로 끄적거려본다. 어쩌다가 하나를 건너뛰게 되니 이 책의 리뷰는 계속 장성하기 못하게 되어서 올해가 다 가기 전에 마무리짓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다. 거기다가 더하여 영웅이라는 말이 요즘 내게 화두와 같은 단어이기 때문에 더더욱 끄적거릴 필요성을 느낀다.

 

  배트맨, 스파이더맨, 슈퍼맨, 엑스맨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렇다 이들은 Hero라고 부르는 물 건너온 영웅들이다. 유비, 관우, 장비, 항우 등등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물 건너오지는 않았지만 우리에게도 친숙한 옆 나라에 살고 있던 영웅들이다. 이순신, 권율, 광개토 대왕 등등은 우리나라에 살았던 영웅들이다. 국어 사전에 보면 영웅을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지혜와 재능이라는 부분이 물 건너온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는 초능력으로, 동양에서는 남다른 무력과 지혜, 혹은 인덕과 같은 것으로 나타나지만 공이 모두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이라는 데에는 동의할 것이다.

 

  역사상 많은 영웅들이 등장했었고, 오늘날에도 존재하며, 앞으로도 등장할 것이다. 영웅을 모티브로하는 콘텐츠들은 길가메쉬 서사시에서부터 맨 오브 스틸까지(최근에 본 영웅 영화가 맨오브 스틸인지라 이야기한 것이지 여기서 영웅이 끝난다는 말은 아니다.) 꾸준하게 팔리는 것들이며, 앞으로도 팔리게 될 것들이다. 한마디로 영웅이라는 콘텐츠는 꾸준한 수요를 가지고 있다. 아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가장 잘 팔리는 콘텐츠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왜 사람들은 영웅에 열광하는 것일까? 왜 영웅을 주인공으로 하는 콘텐츠는 영원한 블루오션이 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보통 사람이 하기에 어려운 일을 해내는"이라는 말 가운데 들어 있다. 그렇다면 영웅이 해내야 하는 보통사람들이 하기 어려운 일들은 무엇일까? 영웅이 등장하는 배경은 무엇인가? 배트맨에게는 고담시와 고담시의 악당이 있고, 슈퍼맨에게는 온갖 자질구래한 일에서부터 지구 멸망이라는 틍큰 스케일의 비극이 있다. 스파이더 맨에게는 고블린 맨이 있고, 토르에게는 천방지축 파더 콤플렉스 로키가 있다. 엑스맨에게는 매그니토와 그 일당들, 그리고 돌연변이를 무기화하려는 사악한 집단이 있으며, 유비 관우 장비에게는 난세가 있었고, 이순신과 권율에게는 임진왜란이, 광개토대왕에게는 중국과의 분쟁이 있었다. 무엇인가 필이 오지않는가? 영웅은 난세에 태어난다는 말이 있듯이, 영웅이 등장하는 시기는 전시 내지는 준전시의 상황이 전제가 되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춘추전국시대의 두번째 책 제목이 영웅의 탄생이라는 말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관중의 시대에만 해도 아직 낭만이 살아있고, 이상이 숨을 쉬는 시기였다면 진문공의 시기는 바야흐로 전쟁이 중국을 삼키는 춘추전국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는 것이다. 1권에 비하여 2권의 내용이 피비린내가 진하게 나고, 전차전과 병기의 발전이 비약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아직까지는 왕실을 떠받들고 분쟁을 조정하는 패자라는 이상이 존재하긴 하지만 군사력과 권력이라는 현실이 이상을 밀어 젖히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즉 비극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요즘들어 우리 사회에는 영웅 만들기에 열을 올리는 것 같다. 멀리는 6.25 전쟁시 육탄 10용사라는 영웅을 만들었고, 가깝게는 서해교전의 영웅을 만들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영웅을 거쳐서 신의 반열에 올라간 존재가 되었다. 아마도 카이사르가 본다면 자신과 똑같은 케이스를 만났다고 반가워할지도 모르겠다. 이뿐인가? 수능 만점자를 영웅 만들기에 급급한 나머지 언론이 사실을 왜곡하고 조작했다가 제대로 한방 먹기도 했다.

 

  왜 이렇게 영웅 만들기에 열을 올릴까? 이미 우리 사회가 보통사람으로는 평범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시기를 지나서 우리를 구원해줄 영웅을 기다리는 비극의 시기로 접어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청년 구직자 100명 중에 단 3.5명만이 정규직이 되는 시대, 대학을 졸업했지만 집이 없고, 직장이 없고, 결혼이 없는 삼무세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이 있을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전셋값 앞에서 빚을 내서 집을 사라고 강요당하는 30~40대에게 희망이 있을까? 100세 시대를 맞이했지만 빨라진 정년 은퇴를 앞둔 40 중반~50 중반에게 희망이 있을까? 오늘도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에게 희망이 있을까? 그 어디에도 희망은 없다. 오히려 비극만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자신들을 구원해줄 영웅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문제는 영웅은 기다린다고 오는 것이 아니다. 외계에서 지구로 보내진 슈퍼맨은 영화에만 존재한다. 현실의 슈퍼맨은 이마트와 홈플러스에 밀려서 멸종 직전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배트맨 대신 몸매 좋은 배트걸이 신문에 등장하고, 스파이더맨은 사라지고, 산 입에 거미줄 치는 사람들이 속속 등장한다. 곳곳에서 영웅을 자처하는 이들이 나타나지만 그들은 대체로 그네를 타면서 한번도 땅을 밟지 않는 이들이다. 말로만 영웅을 자처하지만 실제로는 영웅 세일즈에 열중하고 있다.

 

  이 비극의 시대에 과연 영웅은 존재할까? 앞으로도 존재할 수 있을까? 엄석대와 같은 영웅만 등장하지 않을까 싶어서 마음 한켠이 무거워진다. 너무 비극적인 이야기를 끄적거려서인지, 글도 두서없이 흘러가고, 그저 숙제를 마쳐서 홀가분하다는 마음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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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2-02 0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시에서는 일자리 없어서 걱정이지만
시골에서는 일꾼 없어서 근심이에요.

시골 아이들 너무 많이 도시로 갔고,
도시 아이들 하나도 시골에 안 오려 하니
이 틈을 잘 달래는 길을 열어야
서로서로 잘 살아갈 수 있으리라 느껴요..

영웅보다는~

saint236 2013-12-02 07:12   좋아요 0 | URL
보통사람에서 영웅의 시대로 퇴보해 버렸지요. 말로만 농촌을 살릴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현실적인 대책이 서지 않는 이상 사람들이 귀농하는 일은 특별한 케이스일뿐이지.
 
처음 읽는 일본사 - 덴노.무사.상인의 삼중주, 일본 처음 읽는 세계사
전국역사교사모임 지음 / 휴머니스트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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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교과서 논란이 거세다. 우편향이니, 좌편향이니 온갖 시비가 난무한 가운데 정치권에서는 본격적으로 교과서를 바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잘못된 내용을 바로 잡는 것이야 무엇이 문제가 있으랴만은 바르게 서술된 내용도 특정한 목적에 맞추어서 왜곡하려하니 그것이 문제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움직임이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라는데 있다. 과거에는 더 공공연하게 과거를 특정한 목적에 맞추어서 왜곡했고,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어느날 우리가 배워왔던 것들이 역사적인 사실과는 전혀 다른 것임을 알게 되었을 때의 느낌이란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성질의 일들이다. 가령 과거에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이나, 국화 옆에서의 미당 서정주 같은 시인이 친일파 중의 한 사람임을 알게 되었을 때 느끼는 배신감과 허탈함은 한국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아니겠는가?

 

  왜 역사 교과서를 특정한 목적을 위해서 수정하려고 하는가? 자기들의 역사적인 주장을 위해서라면 전문 서적을 내는 방법도 있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양 서적을 내는 방법도 있는데 왜 하필이면 아이들이 들여다 보기도 지긋지긋해 하는 역사 교과서인가? 그것은 교과서가 가지는 특징 때문일 것이다. 교과서는 대체로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만한 내용들을 상식적인 선에서 대략적으로 다룬다. 교과서의 목적은 역사적인 사안들을 학생들에게 자세하게 가르쳐 주기 위함이 아니요, 국가와 민족이라는 특정한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사관을 주입하기 위함이다. 바른 역사관이라는 말도 간단하게 말하자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만약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왜곡되고 수정된 교과서를 가지고 공부한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래서 그 교과서의 주장을 일반 대중들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그것은 현실이 되는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미화가 교과서를 통하여 이루어졌고, 그 결과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를 살린 대통령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지 않은가? 그것이 사실이냐 거짓이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렇게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교과서를 수정하려는 움직임은 비단 우리 나라뿐만이 아니라 모든 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과거 가해자였던 일본의 후쇼사 교과서는 너무 유명해서 그 내용이 무엇인지 몰라도 교과서 이름과 출판사 이름을 왠만한 한국 사람들이 알 정도이지 않은가? 반대로 한국에서 이번에 문제가 되는 교과서는 교학사 교과서인데 일본에서 나오는 평이 한국판 후쇼사 교과서라고 한다. 아마 일본 사람들에게도 한국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교학사라는 이름을 알고 있는 신기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지 않겠는가?

 

  역사를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왜곡하는 것도 불사하는 시대 속에서 자신의 역사도 아닌 타인의 역사, 그것도 과거 가해자였던 일본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안다는 것은 지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단 한국 사람에게 일본은 증오의 대상이요, 쪽바리인데 그들의 역사에 대해서 경외심을 가지고,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하여 접근한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처음 읽는 일본사"가 책을 풀어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면 아마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 아니겠는가? 일본에 대한 편견과 피해의식,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왜곡되고 우리에게 학습된 과거의 역사관들을 벗겨내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지 않겠는가? 전국역사교사모임에서 이러한 불가능에 도전한 것만큼은 높이 쳐줄 수 있다. 그들의 이러한 도전은 헛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꽤 유의미한 작억이라고 하겟다. 이 책은 역사 교과서 논란과 더불어서 우리에게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우리가 왜 역사를 공부하는 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들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들도 역시 한계를 벗어나기는 어려웠나보다. 자신들이 어려서부터 학습되어져 왔던 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또한 의식적으로 벗어나려고 하다보니까 오히려 더 그러한 굴레데 같힌 것은 아니겠는가?

 

  이 책은 여러가지 역사적인 사실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역사적인 사실들을 단편적으로 늘어 놓은 것은 아마도 왜곡된 역사관에서 탈피하기 위한 노력이 아닐까? 그렇지만 바로 그 순간부터 이들은 자신들이 탈피하고자 하는 역사관에 갇히는 것이다. 코기리는 생각하지 말라는 주문이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코끼리를 떠올리게 만드는 것처럼 자신들이 벗어나고자 의식했던 그 역사관 때문에 그들은 일본사를 서술 함에 있어서 자유가 구속받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역사는 해석의 문제일텐데 해석을 제외하고 역사적인 내용들을 늘어놓기에 급급한 책의 구성은 안타깝기만 하다.

 

  또한 역사 서술이 특정한 지배 계층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는 한계가 드러난다. 천황과 무사와 상인이 일본사를 만들었는가? 물론 그들이 일본사의 흐름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맞을 것이다.그러나 그들이 역사의 모든 사안을 결정한 것은 아니다. 덴노와 천황과 상인이 아무리 이런저런 일들을 만들어 간다고 할지라도 그 일을 이루어가고 반대하고, 때로는 뒤집기까지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백성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 책 어디에도 이런 백성들의 모습은 없다. 인물을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자칫 역사를 영웅에 의해 주도되는 것으로 해석하고, 그러한 영웅을 기다리는 역사관에 정당성을 주게 될 뿐이다. 마치 경제 대통령 MB를 기다리고, 반인반신이신 박정희 대통령님의 따님을 기다리는 것처럼 말이다.

 

  오해할까봐 분명히 말하지만 이 책이 잘못 씌여졌다는 것은 아니다. 왠만한 책보다 훨씬 더 낫다. 특히 중고등학생들에게는 읽히면 좋을 법한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기준이 높아서인지 아쉬운 부분을 조금씩 적어본다. 이 책에 대한 평가를 한마디로 하자면 "나는 다음에도 이러한 시리즈가 나오면 또 사볼 것이다."라는 말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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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3-11-28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에서부터의 역사이냐 아래로부터의 역사이냐는 오랜 논란꺼리지요. 하지만, 예로부터 자신은 높이고 상대는 낮추는 중국사관이나, 신화부터 전격적으로 날조하는 일본 (근대에 그리 됐다지요)에 비하면 우리에게는 그런 전통이 없었던 듯 합니다. 그런 것을 친일, 독재를 미화하려니 그런 무리수를 두는 것이지요. 그러다보니 한 나라의 총리가 '침략'과 '진출'을, '소탕'과 '학살'을 명확히 구분해서 답하지 못하는 정치적인 머저리가 되는 것이겠지요. 역사의 진실 이상, 가르치는 역사의 진실과 방향성 또한 중요합니다.

saint236 2013-11-28 13:44   좋아요 0 | URL
각하께 교시를 받아야만 하고, 상식적인 질문을 질문지에 없던 질문이라 나중에 답을 주겠다는 것은 도대체 어덯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

transient-guest 2013-11-29 09:30   좋아요 0 | URL
그저 무뇌충이나 무척추동물만이 가득한 정권입니다 그려..
 
페르시아 원정기 - 아나바시스
크세노폰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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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를 듣다가 빵터졌던 적이 있다. 정확하게 몇회인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진행자 이용이 시민에 관해서 말하면서 그리스 중장보병을 일컬어 깨시민이라 표현했었다. 그리스의 주축은 시민으로 구성된 중장보병이었고, 전시가 되면 그들은 국토 방위 혹은 영토 획득을 위한 전쟁에서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 댓가로 그들은 자신의 정치적인 발언권을 획득할 수 있었다. 물론 이 정치적인 발언이라는 것도 페리클레스와 같은 사람들이 등장하면서 교묘하게 이용당하는 것으로 전락해 버렸지만 원칙상 그리스는 시민으로 구성된 민회가 도시의 정치적인 사안들을 결의하게 되었다. 그리스 시민들의 참정권은 피를 흘리는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었다.

 

  물론 위에서 말한 것은 아테네와 같은 민주정체를 선택한 도시들에 해당되는 것이며, 스파르타와 같은 왕정을 체택한 나라들이나, 참주제와 같이 소수에 의해 통치되는 국가들에서는 정치적인 의결이라는 것은 일부 지도층에 의해서 이루어질 뿐, 일반 시민에게까지 주어지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시민들로 구성된 중장보병들이 주축을 이루어 국방의 의무를 진다는 사실은 동일하다. 이 중장보병들은 도시 국가들의 연합으로 이루어진 고대 그리스와 터키에서 인도까지 이르는 대제국 페르시아의 전쟁에서 그리스가 승리하도록 만들었다. 경무장을 한채로 강제로 동원되는 페르시아의 군대와 중무장을 하고 진형을 갖추어서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싸우는 그리스의 중장보병의 대결은 단순히 숫자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페르시아와의 전쟁! 그리고 끊임없이 식민 도시들을 늘려가기 위해, 그리고 그리스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그리스 민족 내부의 전쟁은 그리스 중장보병을 더욱 날카롭게 훈련시키는 장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그리스 중장보병의 전투력은 지중해 세계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페르시아를 물리친 그리스의 중장보병은 향후 이어지는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전쟁에 휘말려 더 많은 실전 경험을 쌓게 되었고, 반대 급부로 그리스 연합의 힘은 소진되었다. 그 결과 페르시아와 맞장을 뜨던 그리스의 영광은 사라져 버리고 막강한 전투력을 소지하고 있던 그리스의 중장보병은 용병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적대국 페르시아의 용병으로 말이다.

 

  페르시아 원정기는 이렇게 그리스의 자유를 지키던 자부심으로 충만했던 그리스 중장보병이 페르시아의 반란군 퀴로스의 용병으로 전락하여 고용되었고, 하루 아침에 고용주를 잃어버리고 실업자로 전락한 이들이 생존을 위해 투쟁하면서 고향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기록한 책이다. 아무리 좋게 봐줘야 위험한 전쟁을 벌이면서 이동한 기행문이고, 솔직하게 까놓고 말하면 퇴각기라고 하겠다. 그렇에도 불구하고 페르시아 원정기라는 말로 번역하는 것은 그리스 중장보병들의 입장을 반영하는 제목이라고 하겠다. 원제 아나바시스에도 불구하고 페르시아 원정기, 혹은 소아시아 원정기라고 번역한 것이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리스 중장보병의 입장을 대변하기에 충실한 제목이다.

 

  그리스 연합군의 진군로와 퇴각로를 지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쿠낙사 전투에서 그리스 군의 고용주인 퀴로스가 전사했기 때문에 쿠낙사를 기점으로 진군로와 퇴군로가 나뉘어 진다. 만약 이 책을 페르시아 원정기라고 부르고 싶다면 쿠낙사까지의 여정만을 지칭하면 되겠다.

 

 

  그리스 용병의 숫자가 처음에는 1만명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1만인의 진군이라고 부르는 것이며, 그리스 용병들이 왔던 길을 되돌아가지 않고 멀리 돌아갔던 것은 그들이 왔던 길로 되돌아 갈 경우 본인들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전투를 마치고 돌아갔을 때 병력이 6,000명이라고 하니 크세노폰은 생각보다 장군으로서의 자질이 뛰어난 것으로 보인다.

 

  크세노폰은 이 책을 기록하면서 지도자의 자질에 대해서 평을 한다. 그리스의 장군들, 페르시아의 왕인 아르타 크세르크세스 2세, 그의 동생인 퀴로스를 비교하면서 퀴로스를 가장 이상적인 지도자로 평한다. 크세노폰의 인물평은 그만의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의 일반적인 생각일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궁금하면 크세노폰이 퀴로스를 평하는 대목을 살펴보면 알게 될 것이다.

 

  난 이책을 읽으면서 크세노폰의 자기 위안을 발견한다. 과거 대제국과 맞짱을 떴던 영광스러운 모습은 사라져 버리고 한낱 용병으로 전락해 버렸지만, 그는 여전히 과거의 영광을 고이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다. 이는 크세노폰 뿐 아니라 당시의 그리스 지도층이 가지고 있던 일반적인 감정이었으리라. 비록 지금은 분열하여 돈을 받고 전쟁을 대신해주는 고용인의 입장으로 전락해 버렸지만, 페르시아의 지도층마저도 자신들의 전투력만은 인정해준다는 식의 서술이 책의 곳곳에 넘쳐난다. 이러한 크세노폰의 마음을 잘 알기 때문인지 번역서들이 하나같이 페르시아 원정기, 혹은 소아시아 원정기라는 제목으로 이 전쟁은 패배하여 퇴각한 것이 아니라 페르시아 원정을 잘 치르고 우여곡절 끝에 집으로 돌아온다는 의미를 부여한다. 그렇지만 냉정하게 따져보면 페르시아 원정기의 전쟁은 영광스럽지도, 주체적이지도 않다. 전쟁의 결정권자는 그들이 아니라 반란을 일으킨 퀴로스에게 있는 것이며, 그 퀴로스가 죽은 시점에서 그들은 한낱 패배한 사람들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들이 적대적인 지역을 뚫고 영광스럽게 귀환했을지라도 말이다. 제갈량이 위를 정벌하러 갔다가 일사분란하게 퇴각하여 병력의 손실을 입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제갈량은 위나라 정벌에서 실패한 것처럼 말이다.

 

  묘하게도 크세노폰의 입장은 소위 말하는 오늘날의 진보 진영과 많이 닮아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깨어 있다고, 시대를 변혁시킬 것이라고 말한다. 보수 진영에 의해 복지 이슈를 빼앗기지만 않았다면 선거에서 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과정이 어떻든 간에 선거에서 패배한 것은 사실이다. 물론 그 선거라는 것이 무리수가 많았고 반칙이 많아서 오늘날 문제가 되긴 하지만 선거에서 패한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진보진영에게 남겨진 숙제는 무엇인가? 선거 패배의 과정과 원인을 곱씹어 보고 다시는 패배하지 않을 장기적인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저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부정 선거가 없었더라면, 복지 이슈를 선점 당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말로 자기 위안을 삼을 것이 아니다. 우매한 대중들이 자신들을 몰라준다고 국민을 탓할 것이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철저한 자기 반성이지 자위가 아니다. 국민들이 진보 진영을 지지 않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겠는가?

 

  그리스 중장 보병이 막강한 전투력을 발휘한 이유는 신뢰와 이를 바탕으로 한 연대에 있다. 그리스 중장 보병도 그렇고 로마의 중장 보병도 그렇고 기본적은 동일하다. 기병의 중요성이라는 중요한 차이는 있지만 내 옆에 있는 이의 방패가 나를 보호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포지션을 지키는 것이 전술의 기본이다. 그리스와 로마의 중장 보병이 승리한 전쟁은 철저하게 자신의 포지션을 지키면서 대형을 흐트리지 않을 때 가능했다. 그리스와 로마의 중장 보병이 패배한 전쟁은 대개 밀집 대형이 흩어진 순간, 즉 자기 편에 대한 신뢰와 연대가 깨진 그 순간이다. 이 사실을 진보 진영에서는 눈여겨 봐야할 것이다. 과연 현재 진보 진영에는 연대가 있는가? 대안이 없지 않느냐는 이유로 고압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민주당,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서 독주하는 통진당,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진보 정의당, 오합지졸로 흩어져서 자기 목소리만 내기에 급급한 여러 진보 정당들! 신뢰와 연대가 필요한 진보진영은 이 부분을 간과하고 있고, 오히려 새누리당이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로 대변되듯이 날로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정치가 깨시민의 자기 위안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 진보 진영에게 필요한 것은 깨시민으로서의 딸딸이(이 말을 쓸까 말까 고민하다가 쓴다.)가 아니라 통렬한 자기 반성과 신뢰와 진정을 바탕으로 한 연대이다. 그들이 크세노폰의 입장에 멈추지 않기를 간절히 소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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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3-11-06 0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가하는데 의의가 있는 것은 초등학교의 운동회 뿐인 듯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딸딸이'는 이제 그만이라고 말하고 싶군요.ㅎㅎ 그나저나 이런 책도 있었군요. 읽어보고 싶네요.

saint236 2013-11-06 10:21   좋아요 0 | URL
그리스 로마 고전을 천병희씨가 꾸준하게 번역하시더라고요. 다른 것은 몰라도 가독율에서만큼은 천병희 역을 추천합니다.

transient-guest 2013-11-07 02:33   좋아요 0 | URL
정확한 번역으로 정평이 나 있는 분인 것 같습니다. 전집을 갖추는게 또 하나의 꿈이죠.

oren 2013-12-10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여러 고전에도 자주 등장하는 유명한 책이라서 저도 언젠가는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마음 먹고 있는 책인데, saint님께서 멋진 리뷰를 올려주셨군요. 잘 읽고 갑니다. 이달의 리뷰로 선정되신 것도 축하드리고요.

saint236 2013-12-10 14:3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전 이달의 리뷰라기에 뭔 소리지 하다가 11월 확인해 보고 알았습니다. 요즘은 천병희 님의 또 다른 번역서들에 입맛을 다시고 있습니다. 천병희 님의 번역은 일단 가독성만큼은 좋으니까요

[그장소] 2013-12-30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계속 읽고싶어서 들여다보는데..
노란방"은 어쩐지 눈을 자꾸 고단케합니다.
정독을 하고팠는데..속독해버게 만든달까요..
그것이 조금' 아주조금 아쉬운..^^;-부족한 소견였어요.....

saint236 2013-12-31 16:15   좋아요 0 | URL
ㅎㅎ 알았습니다. 다시 예전으로...^^
 
왕이 못 된 세자들 표정있는 역사 9
함규진 지음 / 김영사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난 역사책을 참 좋아한다. 과거를 성찰해 보면서 현재에 대해 예리하고 냉철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은 둘째로 치고, 일단 재미있다.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들, 그 안에 담겨 있는 여러가지 요소들을 살펴보는 것은 꽤나 흥미 진진한 작업이다. 마치 재미있는 추리소설을 읽는 기분이랄까? 이런 점들이 나를 역사덕후로 만들어 가는데 가끔 이런 나의 기대를 배신하는 책들이 있다. 역사적인 사실을 깡그리 무시하는 역사소설이라든지, 역사적인 사실들을 너무 간단하게 처리하고 넘어간 책들이라든지. 이런 책들을 접할 때마다 시간이 많이 아깝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데 이 책이 꼭 그렇다.

 

  제목이 왕이 못된 세자들이다. 권력은 너무 거대하기 때문에 부자 지간에도 나눌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또한 너무 거대한 권력을 가졌기 때문에 그 권력의 자리에서 미끄러졌을 때에는 목숨을 부지할 수 없다는 카피는 나의 흥미를 꽤나 자극하기 시작했다.

 

  첫페이지를 열었을 때 왕이 되지 못한 세자들도 공인이기 이전에 개인이기 때문에 개인의 심리적인 부분을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는 저자의 말에 꽤나 공감하면서 기대감을 품었다. 게다가 왕이 되지 못한 세자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은 꽤나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기 때문에 이 책이 나에게 줄 감동이 무엇인지 설레는 마음을 품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책을 다 읽고 나 이후의 감상이라는 것은 리뷰의 제목대로이다. 왕이 되지 못한 세자들에 대해서 다룬 이 책이 나에게 전혀 감동이 되지 못했다.

 

  첫번째 이유는 내용의 부실하기 때문이다. 11명의 세자를 다루면서 200페이지가 조금 넘는 부분을 할해한 것은 이정도면 된다는 저자의 자신감인지, 아니면 왕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만큼 사료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지 모르겠지만 내용이 부실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가장 단적인 예를 들자면 어렸을 때 죽어서 왕이 되지 못한 세자 5명을 다루면서 50페이지가 안되는 분량을 할애한 것은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기에 충분하다. 역사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면서 입문을 하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읽기에는 지나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둘째 이유는 내용이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사도세자에 관한 부분을 다루면서 역사학자들의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을 대하는 태도를 지적하였는데, 가장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이덕일씨이다. 이덕일씨는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을 철저하게 정치적인 입장에서 이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사도 세자가 죽은 그 날을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재구성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부분에 대해서는 한중록의 내용에 동의하지만 어느 부분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저자는 왜 어느 부분은 동의하면서 어느 부분은 동의하지 않느냐, 그것은 자기의 입맛에 맞는 부분만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겠는가라면서 비판한다. 역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일면 사료를 대할 때에 충분히 의심하고, 점검해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기본적인 것마저도 너무 심리적인 측면에 입각해서 부정한다는 것은 역사를 대하는 사람이 가장 조심해야할 태도가 아니겠는가?

 

  저자의 말대로 조선 시대 세자 양육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면 세자 양육 시스템이 어떤 것인지 보다 자세하게 다루고, 이러한 부분들이 과거의 왕조들이 가지고 있는 시스템과 중국이나 일본이 가지고 있는 시스템과 어떻게 다르고 어느 부분에 문제가 있는지 지적하는 것이 훨씬 짜임새 있는 구성이 아니었을까하는 아쉬움을 품어 본다.

 

  이 책에 대한 평가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콘텐츠는 충분히 매력적이나 콘텐츠를 부각시키는 방법이 적절하지 못했다고 하겠다. 만약 저자가 왕이 되지 못한 세자에 대해서 다시 다루고 싶다면 조선 왕조의 세자 양육 시스템에 대해서 보다 자세하게 다루는 것이 좋을 것으로 보인다. 표정이 있는 역사 시리즈 중에 가장 감동이 없는 책인 것 같아서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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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3-10-10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다가 보면 아무리 경험이 쌓여도 가끔씩은 제목에 낚이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위의 정리를 보니 저자는 이덕일씨와 같은 '재야'사학자를 비판하는 입장이거나 학파에 속해 있는 것 같네요. 환빠도 문제지만, 무조건적인 비판은 더 큰 문제입니다. 가뜩이나 역사교육이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우기. 세인트님께서 총대를 멘 덕분에 저는 제목에 낚여 이 책을 읽지는 않겠군요.

saint236 2013-10-10 13:13   좋아요 0 | URL
역사학 서적을 편찬하기에는 묘한 구석이 있긴 합니다. 꽤 많은 역사 관련 서적을 저술하였지만 서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입니다. 게다가 성대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정치 외교학 박사를 했네요. 역사학 관련해서는 어느 학파에 소속되었다고 하기가 민망할 정도이네요.

transient-guest 2013-10-11 03:08   좋아요 0 | URL
이덕일씨, 혹은 그 이전의 박은식이나 신채호 선생을 비판하는 글이나 책을 보게되면 저자들이 의외로 역사학과는 관련이 없는 사람들인 것을 봅니다. 이 저자분은 academic survivalist인가요? 학사-박사-현직-저술이 각자 다른 분야네요...

무해한모리군 2013-10-10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주제인데 엉성한가보네요.
저도 역사, 특히 실패한 영웅의 이야기가 늘 관심사예요.

saint236 2013-10-10 23:19   좋아요 0 | URL
주제를 뒷받침하는 설명이 너무 간결하다는 것이 흠이죠.

순오기 2013-10-26 0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관심대상이었는데 많이 엉성한가 봅니다.
역사를 파고드는 학자가 그리운 시절~~~~~~ ㅠ

saint236 2013-10-26 12:03   좋아요 0 | URL
역사를 입문하기 위함이라면 모를까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라면 많이 허전하지요. 표정이 있는 역사 시리즈 가운데에서는 처지는 족에 속한다고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