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노플 함락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20
시오노 나나미 지음, 최은석 옮김 / 한길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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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오래전에 출판된 책이다. 로마인 이야기보다 먼저 나왔던 구판 책을 사려고 눈독을 들이고 있었으나 사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10여년을 끌게 되었다. 그러다가 신판이 나왔다길래 고민을 하다가 눈 딱 감고 질렀다. 전쟁 3부작의 책을 모두 샀다. 색깔로 표현되는 지중해의 3대 도시를 묘사한 책은 아직 사지 않았지만 머지않아 그것도 사려고 생각중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책은 참 재미있다. 그녀가 정통 역사학자가 아닌지라 그녀의 저작에 대하여 왈가왈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그정도쯤은 우습게 날려 버릴정도로 사료에 충실하다. 그렇다고 그녀의 책이 재미없게 역사적인 사실들만 늘어 놓았다는 말은 아니다. 역사적인 사료들로만 채워질 수 없는 부분들은 그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 해놓았다. 그러니 그녀의 저작들을 정통 역사서라고 하기에 조금은 무리가 있다는 말도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전쟁 삼부작을 기록하면서 시오노 나나미는 분명히 말한다. 그녀가 묘사하는 지중해 역사상 많은 전쟁들이 있지만 그녀는 세가지 전쟁에 대해서만 흥미를 느끼게 된다고. 그녀가 흥미를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전쟁의 규모 때문이 아니라 전쟁의 결과 때문이다. 전쟁의 규모만 놓고 본다면 3가지 전쟁보다 더 대단한 것들이 많이 있겠지만 전쟁이 초래한 결과를 놓고 본다면 나도 주저없이 3가지를 꼽을 것이다.  

  전쟁 3부작 중 첫번째인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은 서유럽이 고대 로마의 찬란한 영광을 붙잡는 중세로부터 벗어나 근대로 넘어오는 르네상스를 촉발시켰다는데 의의가 있다. 조금은 거친 감이 있지만 메메드 2세의 콘스탄티노플 함락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이 없었다면 서유럽에서 르네상스가 그렇게 활짝 꽃을 피우지 못했을 것이며, 대항해 시대가 열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총포로 대변되는 전술의 변화와 이에 따른 시민 계급의 성장도 없었을 것이다. 설령 있다고 할지라도 최소 몇백년은 더 흐른 후에나 가능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은 그 초라한 규모에 비하여 엄청난 후폭풍을 가져온 전투라고 평가할 수 있다. 투르크의 15만 군단이 대군으로 느껴지겠지만 지중해에서 벌어진 전쟁 가운데 15만쯤은 우습게 여길 정도로 많은 군사가 동원된 예들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방어측의 군사는 더더욱 초라할 뿐이니 말할 필요도 없다. 

  "새로운 발전을 위한 혼돈. 역사의 새판짜기"라는 말이 콘스탄티노플 전투의 숨겨진 의미이다. 실제로 이 후에도 투르크는 지속적으로 서쪽을 진출했고, 오늘날 터키의 기본적인 국경을 형성했으며, 이슬람과 기독교가 복잡하게 섞여 있는 세르비아 일대의 종교분포, 이탈리아 도시 국가의 쇠퇴와 민족을 중심으로 하는 근대 국가의 형성, 바다 사나이들의 로망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항해 시대, 무적함대, 넬슨, 엘리자베스 여왕, 네덜란드의 대두, 바르바로사 등등 수없이 많은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등장하게 된다.  

  벌써부터 2권이 기다려 진다. 이번에는 또 어떤 일들로, 그리고 어떤 결과로 자신의 존재를 강변하게 될지. 시오노 나나미라는 이야기꾼이 어던 이야기 보다리를 풀 것인지.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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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1권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1 - 진시황과 이사 - 고독한 권력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1
김태권 글.그림 / 비아북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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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왕자의 귀환이라는 책으로 익숙한 김태권씨의 역사만화다. 서양의 문명을 형성하는데 로마가 지대한 영향을 주었듯이 동양의 문화를 형성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한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초한지와 삼국지 사이의 역사에 대하여 무지한 것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저자의 말에 십분 동의한다. 국내 모 당의 당명과 동일하기 때문에 무시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저자의 걱정아닌 걱정때문에 저자의 말을 읽다가 파안대소했다. 정말 대단한 유머 센스가 아닐 수 없다.  

  먼저 이 책은 김태권이라는 이름값을 충분히 하는 책이다. 역사 책에 스록되어 있는 장비내지는 노지심스러운  이미지에서 벗어나 바늘하나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빈틈없고, 사람들에게 일벌레라고 비난을 받을 정도로 일중독적인 진시황의 모습을 얼짱으로 그린 것은 참신한 시도라고 하겠다. 개인적으로도 여러가지 사실을 종합하여 판단컨대 장비 내지는 노지심스러운 얼굴보다는 김태권씨가 그린 얼짱 스타일이 진시황에게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각 장이 마칠 때마다 사기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면서 사마천은 어떠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지, 그리고 후대의 역사가들은 이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 설명해 놓은 것은 이 책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재미요, 지식이다. 게다가 각 페이지마다 각주를 달아 인물의 복색에 대해서, 지위에 대해서, 말에 대해서, 그리고 인용된 그림에 대해서 분명히 출처를 밝히는 그의 태도는 이 책을 위하여 얼마나 공들였는지, 그리고 얼마나 연구를 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물론 저자의 말대로 책을 읽어가면서 각주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면 자칫 내용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기에 다 읽고 난 다음에 궁금한 점들만 찾아 내어 읽는 것이 각주를 대하는 바른 태도일 것이다. 

  1권은 한나라가 태동하기 전 진시황에 의한 중국의 통일과 그의 업적에 대해서, 이사와 조고, 호해에 의하여 어떻게 제국이 멸망해 가는지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여불위, 한비자, 진승, 오광 등 낯익은 이름의 등장, 그리고 이연걸 주연의 영웅(1995년에 나온 액션 영화가 아니다.)과 자객 형가의 이야기를 비교해 보면서 읽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왜 진시황은 폭군으로 묘사되는가 생각해본다. 서방의 세계에서 알렉산더는 위대한 정복왕이자 군주인데 같은 일을 한 진시황은 왜 분서갱유를 단행한 폭군이요, 장생술에 몰입하고 후계자를 잘못세운 얼치기 암군 정도로 이해가 되는가?  나는 그 이유로 크게 두가지를 꼽는다.  

  첫째, 그의 정치가 너무 솔직했기 때문이다. 진시황은 철저하게 법가에 치우친 사람이다. 그가 중용한 이사와 이사의 건의를 받아들여 제거한 한비자는 모두 법가의 사람이다. 군현제라는 중앙집권을 처음으로 실시하고 모든 도량형과 화폐를 통일하고 도로와 성벽을 점검하고 중수한 것은 분명 진시황의 업적이다. 분명 이러한 치적을 남기기 위해서는 엄격한 법과 제도가 필요한데, 진시황이 이것을 해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법가에 치우쳐 있었는지를, 또한 법치를 실행해낼 센스가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의 정치는 너무 솔직하다는 것이다. 사람들 앞에서 이리돌리고 저리돌리면서 좋은 말로 위로하고 뒤로는 호박씨를 깔 줄 몰랐다는 것이 진시황이 악평을 받게 된 가장 큰 원인이다. 솔직하게 중국 역사상 그 누가 법치를 포기했는가? 중국 사람들이 그렇게 존경해 마지 않는 한고조 유방도 말로는 인의 정치고 유교를 앞세웠지만 실상은 법가로 제국을 다스리지 않았던가? 결국 진시황과 한고조의 차이는 솔직담백이냐, 의뭉스러움이냐의 차이일 뿐이다. 진시황은 의뭉스러움이 부족했던 것이다. 조조와 유비의 예를 봐도 분명하다. 많은 치적에도 불구하고 조조가 중국 사람들의 미움을 받은 것은 그가 너무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기 때문이다. 수없이 많은 실책과 오만에도 불구하고 의뭉스러움 하나만으로 인의의 사나이라는 평가를 받은 유비야말로 유교를 정치 이념으로 내세우고 뒤로 호박씨를 까는 집권층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언론의 탄압이다. 분서 갱유는 진시황으로 하여금 무식한 폭군이라는 악명을 얻게 만든 유명한 사건이다. 그런데 솔직하게 말해서 얼마나 많은 유생들이 전설처럼 산매장을 당했는가? 그리 많지 않다. 말은 갱유이지만 영화에서 보듯이 무식하게 화살로 조나라의 서생들을 다 쏴죽이지도 않았고,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전국의 모든 유생이란 유생은 다 씨를 말린 것도 아니다. 실제로는 그에게 사기쳤던 방술사들 몇이 처형을 받았으며, 여기에서부터 불거져 나온 그의 정치를 비난하는 이들을 숙청한 것이 갱유의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진시황이 유생을 탄압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다만 그의 탄압이 상상만큼 대단한 것이 못됐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왜 갱유라는 악평을 받았는가? 펜을 굴리는 지식인을 상대로 싸웠기 때문이다. 요즘에도 기자들을 상대로 싸웠다가 망신당하는 정치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특히 한나라의 대통령마저도 동네 강아지보다 못한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 재벌 보수 언론의 작태를 우리는 이미 보지 않았는가? 

  진시황의 실책은 갱유보다는 분서에 있다고 본다. 농업서적 같은 실제적인 서적 외에 모든 사상서들을 몰수하여 불태워 버리는 일은 참 무식한 짓이다. 아무리 해도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사상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머릿 속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결국 영화에서도 실패로 끝나지 않았는가?(이퀼리브리엄) 진시황의 업적비는 사라졌지만 그가 불태웠던 책들은 오늘날까지 살아남지 않았는가?  

  진시황에게 폭군의 이미지를 씌운 것은 법가에 치우친 솔직한 정치와 더불어 사상통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말이다. 진시황과 같은 실책을 저지르는 사람을 우리는 보고 있다. 방송사의 사장들을 자기 측근으로 바꾼다. 맘에 들지 않으면 개그마저 경고한다. 도대체 무한도전에 무슨 사상이 있다고 반대하고 폐지하려는지 모르겠다. 왜 사람들이 동혁이 형의 말에 열광하는지 살펴보지 않고 동혁이 형의 샤우팅에 재갈물리려 한다. 인터넷에는 보안 검열이 강화되고, 트위터마저 검열한단다. 외국계의 유투브마저 검열하겠다는 만용을 부리고 있다. 분명한 것은 만용은 만용일 뿐이라는 것이다. 진시황의 만용이 그에게 악명만 가져다 주었듯이 집권층의 만용은 그들에게 장수만을 가져다 줄 것이다.(욕을 바가지로 먹으면 얼마나 더 오래살까?) 

  만화책 한권을 읽으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아져 복잡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한건 재미있다는 것이다. 2권이 기다려진다. 염치불구하고 알라딘 신간평가단에게 2권 원츄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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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천둥의 시대>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피와 천둥의 시대 - 미국의 서부 정복과 아메리칸 인디언 멸망사
햄프턴 시드 지음, 홍한별 옮김 / 갈라파고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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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피와 천둥은 미국이 서부를 개척하던 19세기에 인디언들과의 싸움을 소재로 하여 출판한 통속소설의 장르이다. 당연히 책의 내용은 미국이 어떻게 서부를 개척하고 인디언들을 몰아 내었으며, 인디언들이 어떻게 몰락했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 가운데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인디언 부족이 등장했겠지만 이 책은 키트 카슨이라는 미국인과 나바호라는 인디언 부족을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되고 있다. "하고 많은 사람 중에 키트 카슨일까, 하고 많은 인디언 중에 하필이면 나바호일까?"라는 의문은 아마도 내가 미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이기 때문에 갖게 되는지극히 당연한 생각일 것이다. 미국인에게 이순신과 선조,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낯설듯이 나에게도 키트 카슨과 나바호가 낯설다. 그저 나바호는 니콜라스 케이지 아저씨가 출연했던 영화 "윈드 토커"에서 미군의 암호병으로 등장했던 인디언 부족 정도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저자가 왜 키트 카슨과 나바호를 집중 조명했는지 책을 다 덮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키트 카슨과 나바호는 19세기 서부 확장의 시대에 정면으로 부딪혔던 두 문명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피와 천둥의 시대라는 책의 제목을 살짝 바꿔본다면 나는 헌팅턴 아저씨의 문명의 충돌이라고 바꾸고 싶다. 조금 더 의미를 곱씹어 가면서 제목을 붙이자면 서평의 제목인 19세기판 충격과 공포가 아니겠는가? 칼턴의 명령으로 키트 카슨이 나바호에 대하여 수행한 작전이 꼭 부시가 후세인을 향하여 행했던 충격과 공포라는 작전과 닯아 있기 때문이다. 사용하는 무기가 좀더 첨단이라는 것, 그리고 백인과 인디언이 미국인과 이라크로, 서부가 중동으로 바뀐 정도만 다를뿐이지 상대방을 굴복시켜 말 잘듣는 존재로 순화시키고 교정시키겠다는 오만함에서는 크게 다를바가 없다.  

  피와 천둥! 이 말만큼 19세기 미국의 서부를 잘 표현하는 말이 또 있을까? 일상적으로 피를 흘리고 약탈을 하고 습격을 하고 살인을 하고. 머스킷 총병과 기병대의 시기가 저물어 가면서 대포가 그 자리를 점차 대체하며 압도적인 화력으로 상대방을 깨부수고 복종시키는 힘과 폭력이 곧 질서인 시대. 예의도, 도덕도, 윤리도, 종교도 모두 없어지고 오직 피를 흘리는 폭력만이 최고의 가치관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 이 책이 묘사하고 있는 시대가 바로 이런 폭력의 시대이다. 민주주의의 대의도, 고귀한 인간성도 모두 사라져 버리고 오직 땅과 금, 명예로 그 자리를 대체했던 것이 우리가 "OK목장의 결투"를 보면서 로망을 꿈꾸는 세대의 실체이다.(이 책이 기록한 시대는 그보다 앞선 시대이므로 더 무법천지였을 것이다.) 

 모든 것은 자기들이 결정해야 한다는 백인의 오만함, 전통을 지킨다는 명분 하에 문명과 시대의 흐름에 너무 무지하여 무기력해지고 결국은 멸망을 향해 나아가는 인디언들, 서부를 너무 사랑하고 인디언을 잘 이해하지만 백인의 편에서 인디언의 몰락과 서부의 부패를 가져온 중간자들. 수많은 사람들이 삶이 얽히고 설킨 스토리는 서부시대의 명암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나바호의 몰락과 고향 땅으로의 귀환은 이 책의 클라이막스가 아닐까? 

 오만과 무모함의 충돌. 농경문화와 유목문화의 충돌. 자연을 정복과 이용의 대상으로 보는 서구 문명과 조화와 숭배의 대상으로 보는 인디언 문화의 충돌. 도저히 섞일 것 같지 않은 문명의 충돌이 가져온 비극과 그 결과 쌍방이 서로를 소진시키다가 적절한 타협을 찾아 상생의 길을 모색한 것이 이 책의 핵심이라면(물론 약자인 나바호 입장에서 본다면 강요된 양보이기는 하겠지만)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미군에 의해 수행되는 전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이 책을 보는 내내 들었던 질문이며,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한켠이 무거웠던 이유이다. 

  충격과 공포.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했을 때의 작전명이다. 압도적인 화력으로 상대방의 전의를 꺾은 다음 자기들의 입장을 강요해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 이 작전의 핵심이다. 목적이 무엇인가? 후세인이라는 독재자 타도와 이라크에 민주주의를 실행한다는 고귀한 명분을 걸지만 결국은 검은 금, 석유 때문이 아니던가? 나바호와 뉴 멕시코인의 평화라는 고귀한 대의 이면에는 칼턴의 명예욕과 금에 대한 욕심이 있었던 것과 너무 흡사하다. 칼턴이 나바호를 공격하여 초토화 시키고 그 과정에서 많은 여자와 아이들이 굶어죽어갔던 역사가 오늘날 이라크에서 그대로 진행되고 있지 않은가? 상대방의 문화를 도무지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은 오만한 미국의 모습과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무모함 하나만으로 덤벼드는 이라크인들의 끊이지 않는 투쟁. 보스케레돈도 평원의 실험은 바그다드에서도 계속되고 있다.(개인적으로 결말이 뻔한 이 실험에 우리나라가 지분을 넣으려고 하는 것이 속상하기만 하다. 결국 돈이 문제인 것이다.) 바그다드에서 지금 시행되고 있는 민주주의와 친미 성향의 정부를 세우는 것이 보스케레돈도 평원의 실험이라면 그 해법 또한 자명하지 않겠는가? 쌍방의 이해와 양보(물론 어느 한 쪽이, 이 경우에는 약자인 이라크가 더 많은 강요된 양보를 해야하겠지만) 외에는 다른 해법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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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여자들>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여자들 - 고종석의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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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은 책의 소재는, 표제에서도 드러나듯, 여자들이다. 피와 살을 지닌,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여자들. 이런 소재를 고른 것은 내가 여자를 좋아하고 존중하기 때문이다. 내가 페미니스트라는 뜻이 아니다. 나는 페미니스트도 마초도 아니다. 그저 남자에게보다 여자에게 더 친밀감을 느끼는 남자일 뿐이다. ---(중략)---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이 행성에 살다 죽은 수백억(?) 인류 가운데 철반 안팎은 여자였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쓰는 사람들은 그만한 비율을 여자들에게 할당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기록된 역사는 압도적으로 남자들의 역사다. 그 불공평함의 책임을 역사 기록자의 편견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모계사회(라는 것이 정년 있었을까?)가 막을 내린 뒤, 역사는 남자들의 역사였기 대문이다.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을 실천함으로써 역사를 만들어온 것은 주로 남자였다. 어떤 이유에서든, 역사의 실천ㅁ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소극적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여성을 남성보다 '덜 중요한 성'으로 만들었다. 그러니 공정한 역사 기록자라면, 역사 속에서 남녀가 제가끔 감당해온 기능부담량의 불공정성을 공정하게, 다시 말해 불공평하게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6~7페이지 책 앞에서 중에서 인용) 

  나는 서평을 쓰면서 책의 내용을 길게 인용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마 어릴 때부터 받아온 교육 탓일것 같다. 독후감을 쓸 때 책의 내용을 요약하지 말라고 지겹게도 이야기하시던 국어 선생님들 덕택인지 내용을 길게 인용하지 않는다. 책을 읽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하나의 놀이와도 같은 것이기 때문에 서평을 쓰면서 잘 쓰겠다는 강박관념이라든지, 책의 내용을 모두 아울러야 한다는 생각은 애초에 없다. 그저 책을 읽다가 마음에 와 닿은 부분을 끄적거려 보는 것이고, 받은 느낌을 가감없이 적어보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때의 서평은 꽤 조리있게 서지기도 하지만 어느 때의 서평은 내가 봐도 모를 정도로 복잡하게 쓰여지기도 한다. 잡설이 길어졌지만 이 책의 서평을 쓰기 위해 지은이의 말을 길게 인용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왜 이런 이례적인 일을 했을까? 써놓고 생각해본다. 왜 이런 짓을 했지? 왜 이 부분이 마음에 남았을까? 

  그렇다. 저자의 강박주의적인 입장 때문이었다. 왠지 책을 읽으면서도 껄쩍지근함을 느꼈던 것들이 바로 여기에 담겨 있었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역사는 남성들의 역사라고 말하면서 남성들의 공격성과 가부장적인 폭력성을 주장하는 전투적인 페미니스트들에게 동의하자니 남자라는 정체성이 울고, 그렇다고 된장녀, 개똥녀, 백일 휴가녀라는 말로 마녀사냥식을 행하는 몰지각한 마초들의 편에 서자니 상식이 없는 사람이 되고...결국 선택하게 되는 것은 균형주의자의 입장이 아니던가? 남성으로서의 자신을 포기하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여자를 무시하지도 않는...음...워랄까? 젠틀맨이라고 할까? 남자들끼리 모여서는 시시껄렁한 성적인 농담을 하고 여성 편력을 자랑하지만(실제로 없는 것들을 만드렁 내기도 한다.), 여자 앞에서는 한없이 부드럽고 예의바른 남자로 보이고 싶어하는 젠틀맨 콤플렉스랄까? 말로 설명하기 복잡하지만 남자라면 직감적으로 공감하게 되는 그런 애매모호함이 저자의 입장이다. 그렇다고 저자가 비겁하다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아니 전세계의 모든 남자들의 모습이 대체로 이럴테니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예의와 젠틀맨이라는 관념으로 이렇게 교육받고 길들여져 가고 있다.(그게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밝혀둔다.) 

  난 대학원에서 윤리학을 전공했다. 그러다보니 종종 페미니즘 수업을 들을 때가 있었다. 여성학이라는 기초 입문부터 시작해서, 페미니즘 윤리까지 수업을 들으면서 꼭 들어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내용이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여성 윤리학자들이기 때문에 페미니스트들의 생각이기 때문에 마음에 걸려서도 아니다. 물론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굳이 여성학이라서가 아니라 나와는 학문의 방향이 달라서였다. 그들의 사상을 배우고 토론을 하는 것은 무척 재미있었던 일로 기억이 된다. 그런데 내가 왜  페미니즘에 대한 수업을 들을가 말가 고민을 했냐면 말이다 여자 학우들 때문이었다. 요즘말로 "이뭐병"이라고 하나? 정말로 "이건 뭐 병신도 아니고"이 말이 딱 들어 맞는다. 어떤 사람들은 모든 것을 허용한다. 원래 그렇다고 반대로 어던 사람들은 전투적이다. 한국 남성들이 여자를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묶어버리고, 아내라는 이름으로 억압한다고. 마치 "때려잡자 공산당" 이런 분위기다. 왠지 남자 학우들은 죄인이 된 기본으로 수업을 들어야 했다. 그러니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남학생들이 학을 떼는 것이다. 여학생회를 마치 벌레 보듯이 보는 것이다. 대다수 남성들이 여성부를 바라보던 시각도 아마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최소한 내 생각에는 그렇다.) 

  자꾸 잡설이 길어지는데, 이런 상황에서 남학생들이 취해야할 행동은 오직 하나다. 죄인된 심정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순전히 남성이라는 죄) 앞으로는 여성들에게 충성을 다 바칠 것을 맹세해야 한다. 남성의 권리를 주장하면 전근대적인 사고를 가진 꼰대가 되는 것이고, 필요할 때마다 레이디 퍼스트를 외치는 것은 여성의 당연한 권리가 되었다.(기억해 보라. 벌칙에 흑기사는 있어도 흑장미는 없다.) 고종석이 자신을 자이노파일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남성이면서도 젠틀하고, 여성을 존중하면서도 페미니스트이기를 거부하는 균형잡인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나는 자이노파일이라는 말에서 읽었다. 여하튼 여자로서 살기 힘든 세상이지만 남자로서도 살기 힘든 세상이다. 

  이 책에는 고종석이 인정하고 호의를 표하고, 때론 존경할 수 있는 34명의 여자들이 나와있다. 그들의 삶에 대하여 아주 간략하게 기록하고 자신의 느낌을 적고 있다. 이 책의 분류가 역사인 것은 천만 뜻밖이다. 에세이집이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에 문학으로 분류 되어 있을 줄 알았다. 이 책을 역사로 분류한 것은 남성의 역사를 다분히 의식한 결과가 아닐까? 여하튼 그가 기록한 34명의 여자들 가운데 대다수는 역사를 움직인 사람들이다. 다만 여성이기 때문에(물론 이 이유만은 아니다. 대다수는 또한 좌파이다. 반공을 국시로 하는 대한민국에서 좌파는 척결대상이지 관조의 대상은 아니다.) 잊혀진 사람들이다. 그들의 역사적 평가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수준에서 이 책을 이해하면 될 것이다. 물론 소설 속의 주인공인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은 그냥 넘어가자. 어차피 허구의 인물들인데 누가 클레임을 걸 것인가?  

  단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그리고 이 책을 균형주의자이고 싶은 강박관념의 표현이라고 어찌 보면 평가절하하는 것은 사유리, 최진실 때문이다. 솔직히 사유리가 역사에 기록될만한 인물들인가? 내가 에세이라고 생각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진실이 로자 룩셈부르크와 같은 책에서 논의가 될 사람인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저 젠틀맨이고 싶은 강박관념의 표현이라고 비판을 받아도 어절 수 없지 않을까?  

  꽤 흥미로운 인물들도 많이 있고, 역사를 움직여간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내용의 깊이가 부족하다. 간단한 소개는 되겠지만 그들의 평가에 대해서, 사건의 개요에 대해서 깊이있게 다루지는 못했다. 아마도 너무 많은 사람을 다루다 보니 부딪치게 되는 자연스러운 한계가 아니겠는가? 저자가 바란 흥미를 끄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깊이에서는 실패한 책이 아닐까 한다. 

ps. 황인숙과 강금실 또한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지만 최진실과 사유리만큼은 아니다. 165페이지 6번쩨 줄 스물 살은 스무 살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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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그리스의 영광과 몰락>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고대 그리스의 영광과 몰락 - 트로이 전쟁에서 마케도니아의 정복까지
김진경 지음 / 안티쿠스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그리스!!! 

  신화, 영화, 뮤지컬, 맘마미야! 

  올림포스, 제우스, 헤라, 아폴론, 아프로디테, 아레스, 아테네, 헤라클레스, 오딧세이, 일리아드, 페가수스, 페르세우스, 아킬레우스, 헥토르, 별자리....음...또 뭐가 있을까? 마라톤전투, 살라미스해전, 아네테, 스파르타, 레오니다스, 페리클레스, 도편추방제, 테미도클레이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델로스 동맹, 펠레폰네소스 전쟁, 마케도니아, 필리포스, 알렉산더...그리스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것들이 참 많이 있다. 신화의 나라, 서양 사상의 출발점, 민주주의의 요람, 폴리스 등등 고대 그리스에 대해서 주워들은 것은 참 많다. 그러나 현대 그리스에 대해서 아는 것은? 2004년 올림픽 우승국, 유로 2004 우승국이라는 것 정도? 이상하게 현대보다 고대에 대해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나라가 그리스이다. 어찌보면 현대 그리스인들은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으로 행세하고 있는 신세가 아닌가? 

  고대 그리스에 대해서는 어떤가? 주워들은 이야기들을 정리해본다. 세계사 시간에, 신학을 공부하면서, 철학을 배우면서, 삭구라테스, 후라쉬, 아래도리털라스라는 고대 아테네의 3대 철인에 대해서 지겹게 공부하면서 참 많은 것들을 주워들었지만, 여전히 그리스하면 떠 오르는 것들은 신화에 관련된 것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올림포스 산에 살고 있는 12주신, 프로이드 심리학의 키워드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주인공인 오이디푸스, 거기에 더하여 saint-seia라는 일본 만화를 통해서 재미있게 접하게되 별자리. 요즘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는 올림포스 가디언까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고대 그리스는 서양 문명과 철학의 발상지가 아니라 여전히 신화의 나라요, 전설의 가득한 이야기 속의 나라이다. 

  이 책의 가장 큰 공헌은 이렇게 신화의 나라, 전설의 나라로 포장되어 있는 그리스를 그 포장지를 벗겨내고 역사의 언저리로 끌어 내렸다는 것이다. 끌어내렸다는 표현이 적절한 표현이 될 수 있을까? 여하튼 고대 그리스의 역사 안에 있었던 많은 상황들, 즉 미케네 문명과 도리스인의 도래, 페르시아와의 대립, 폴리스의 형성과 과두정과 민주정의 복잡한 대치 상황,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정치 투쟁 등을 있는 그대로 까발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리얼하게 보여주기 위한 저자의 수고와 노고에 감사하며 박수를 보낸다.  

  이 책을 보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날림으로 세계사를 배워왔던가하는 반성과 함께 이럴 수밖에 없는 한국 역사 교육의 현주소가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한때 역사 교사를 꿈꾸었고, 역사책이라면 닥치는대로 읽었고, 철학을 공부하면서 덤으로 아테네와 스파르파의 역사, 그리고 그리스 로마 신화에 심취해 있었던 나였지만 도대체가 수없이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정리할 수가 없다. 이 사람이 이사람 같고, 저 사람이 이 사람 같고. 이건 뭐하자는 것인지? 폴리스 하면 아테네, 아테네하면 직접 민주주의라는 도식을 머릿속에 그리고 살아왔던 나에게 아테네의 복잡한 정체 변화는 읽기에 무척 난해한 부분이었다. 만약 증보판이 나오게 된다면 각 장마다의 내용을 정리하는 도식을 첨가하는 것이 어떨까? 예를 들어 아테네의 정체 변화를 말한다면 처음 왕정으로 시작하여 어떤 사건을 통해 어떤 사람이 등장하게 되었고 어떤 식으로 변화하게 되었으며, 그 안에서 어떤 나라들이 연결되었는지 한두장으로 도식화 해준다면 훨씬 이해하기 쉽지 않을까?  

  지도를 넣어 놓았지만 지도가 분명하지 않은 것 또한 옥의 티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167p의 살라미스 해전 진행 상황도 첫 배치만 표시하고 있는 지도 한컷만 나와 있는데 초반, 중반, 후반으로 나누어 3~4컷으로 해 놓으면 더 이해하기 쉽지 않겠는가? 전쟁사에 대하여 기록한 책들에서 살라미스 해전을 다룰 때에도 대체로 이렇게 해놓았기 때문에 자료를 구하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320~321p에 있는 알렉산더의 원정 경로도 그 앞에서 설명은 해 놓았지만 지도 상에 "1, 2, 3" 이런 식으로 숫자를 같이 표시 해두면 더 명확하지 않을까? 

  430페이지라는 분량이 만만하지는 않았지만, 읽고 나서 괜히 읽었다는 후회가 결코 들지 않는 책이다. 초반에는 읽기가 조금은 어렵지만(역사적인 사건도, 그렇게 재미있는 부분도 없기 때문에) 읽어가면 갈수록 수박 겉핥기 식으로 배워왔건 것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도출된 결론인지에 알게 되는 재미가 쏠쏠하다. 고대 그리스에 관해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읽어도 좋을 책이라 생각한다. "살라미스 해전-세계의 역사를 바꾼 전쟁(배리 스트라우스/갈라파고스)"라는 영화와 함께 읽어도 재미있을 것이다. 300이라는 영화를 봤던 사람이라면 더욱 강추이다. 기독교인이라면 에스더에 나오는 아하수에로가 실은 크세르크세스이며, 느헤미야에 나오는 아닥사스다가 아르타 크세르크세스라는 것을 알고 성경의 배경 지식을 습득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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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09-11-25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4p 10번째 줄 헤일로타이 가운에 => 헤일로타이 가운데 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