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인간이 될 수 있을까>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로봇이 인간이 될 수 있을까? - 수수께끼와 역설의 유쾌한 철학퍼즐 사계절 1318 교양문고 14
피터 케이브 지음, 남경태 옮김 / 사계절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한번 손에 들면 내려 놓을 수 없다. 철학적 문제와 사고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필독서(임레 리더, 케임브리지 트리니티칼리지의 수학교수) 

  피터 케이브의 책은 활기가 넘친다. 흥미로운 아이디어, 까다로운 수수께끼, 난해한 퍼즐, 재미있는 역설로 가득하다. 12세에서 112세까지 개방적인 태도와 탐구 정신을 기진 모든 사람들, 그리고 철학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 놓은 사람들이 읽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이 책을 읽고 생각에 잠기지 않는다면 당신은 이미 죽은 사람이다.(티모시 채플, 런던 개방대학 철학 교수) 

  흥미와 재치가 가득한 책, 즐겁게 읽는 가운데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마이클 클라크, 노팅엄 대학 철학 석좌 교수) 

  책날개에 달린 이 책을 추천하는 글들이다. 하나같이 재미있다, 뛰어난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고 생각이 없다면 죽은 것과 마찬가지이다라고 하면서 책을 칭찬하는 말 일색이다. 물론 책을 추천하면서 비평하고 비판하는 안좋은 글을 실을리 없지만 왠지 죽은 사람이라는 말에 딴지를 걸고 싶어진다. 이것만 해도 이 책은 충분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던 책날개의 책 소개 글에 딴지를 걸고 싶어지게 만드니 말이다. 

  나는 알라딘 서평단 3기로 활동하면서 피터 케이브의 "왜 사람을 먹으면 안된느가?"라는 책을 접해 보았다. 처음 그 책을 접했을 때 참 신선했다.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철학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철학에 대해서 가볍게 생각할 만한 질문들을 던진다는 생각에 즐거운 마음으로 읽어 내려갔었다. 그러면서도 한가지 아쉬웠던 것은 이 책이 철학에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 책은 될지언정 사람들에게 철학적인 사고의 깊이를 더해주지는 못할 것이라 사실이다. 철학적인 깊이를 더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묻고 따지고 그 안으로 깊이 침잠해야 하는데, 이 책은 그럴 성질의 것이 못되었기 때문이다. 꺼리는 말고, 실생활에 접하는 철학적인 고민들은 많이 소개가 되었는데 지면상의 이유인지, 아니면 책 구성상 가질 수밖에 없는 문제인지 너무나 간략하게 소개하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렸다. 나같이 이해력이 딸리는 사람은 도무지 이 주제에 대해서 이 책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반론을 제기할 수도 없고 이해하면 이해하는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못하는대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큰 불만이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의 불만을 맛본다. "로봇이 인간이 될 수 있을까?"라는 제목과 표지에 철학에 관한 깊은 질문을 던지고 있는가 기대를 했다. 마음 한편으로는 매트릭스에 대한 분석일까, 혹은 터미네이터나 기계전사 109같은 사이보그에 대한 철학적인 분석일까? 두근두근 기대하면서 책을 폈지만 어디서 많이 보았던 틀이었다. 급하게 이름을 보는 순간 이런 젠장. "피터 케이브"였다. 역시나 같은 틀, 같은 저자, 같은 아쉬움을 주는 책이었다. 

  책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 역시 본편만한 속편은 없어라는 궁시렁 거림 속에 책 날개에 적인 추천사가 눈에 띄인 것이다. 울고 싶은 아이 뺨 친다고 불편한 심기에 딴지를 걸만한 꺼리를 제공해 준달까?  

  책을 읽으면서 생각에 잠기기보다는 잠에 잠기는 나는 과연 죽은 사람인가? 생각이 없는 사람인가? 아니다. 그저 딱딱해도 좋지만 조금은 더 깊은 철학의 세계로 내려가고 싶은 사람일뿐이다. 만약 피터 케이브가 똑같은 스타일로 세번째 책을 낸다면 그닥 사서 읽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책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마릴린 보스 사반트의 몬티홀 딜레마와 같다고 하겠다. 수학의 주류에서 벗어나 수학자들을 조롱하며 수학을 수수께끼의 수준으로 끌어 내려 대중과 공유한 그처럼 철학을 퍼줄과 수수께끼의 수준으로 끌어 내려 일반 대중과 공유하려는 것이 책의 목적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논란이 많은 몬티 홀 딜레마처럼 논란 거리가 많은 책이지 않은가?

PS. 몬티 홀의 딜레마는 영화 21에도 등장한다. 미키 교수가 주인공을 시험하면서 냈던 퀴즈가 바로 몬티 홀 딜레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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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폰, 잔폰, 짬뽕>을 읽고 리뷰해주세요.
차폰 잔폰 짬뽕 - 동아시아 음식 문화의 역사와 현재
주영하 지음 / 사계절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한중일의 음식이 어떤 재료로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지 마라. 분명히 말하지만, 이 책에서 VJ 특공대식의 음식문화 기행을 원한다면 실망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이런 음식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주목적이 아니라 한중일 삼국의 음식들이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그리고 오늘날 각국의 음식들은 어떤 과정을 밟아가면서 변화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의 미래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분석하는 인문학 책이다. 내용이 묵직하지만 소재가 너무 친숙한 것이라 가볍게 느껴질 뿐이다. 

  중국집에서 식사를 하기로 결정하고 메뉴를 정하다보면 항상 갈등하는 것이 있다. 짜장면이냐, 짱뽕이냐는 것이다. 짜장면(표준어는 자장면이라고 되어 있지만 그 이유 자체가 골때리기 때문에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 게다가 말도 짜장면이라는 것이 더 입에 붙어서 일부러 짜장면이라고 쓴다.)을 선택하자니 얼큰한 국문에 쫄깃한 면발로 유혹하는 짬뽕이 울고, 짬뽕을 선택하자니 기름지 좔좔 흐르는 검윤 윤기의 짜장면을 거절할 수 없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나만이 아니었던지, 인자하신 중국집 사장님은 짬짜면이라는 획기적인 음식을 내놓았지만 여전히 짜장면과 짬뽕 사이에서 갈등아닌 갈등을 하게 된다.  

  누구나 살면서 수없이 하게 되는 갈등인데, 짜장면과 짬뽕이라는 이름에, 특히 짬뽕이라는 이름에 한중일 3국의 문화 현상이 담겨 있다는 것은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잘 몰랐던 사실이다. 중국에서는 차폰이라고 불리던 것이, 일본에 유행하면서 잔폰으로 불리게 되고, 이것이 한국에 수입되면서 짬뽕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사실 한가지만으로도 신기한데 저자는 여기에서부터 출발하여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이 서로 영향력을 주고 받으면서 문화를 발전시켜왔음을 설명한다. 한류와 더불어 일본에서 유행하는 김치 붐, 전주비빔밥의 유명세, 일본식 매운맛, 중국식 매운맛, 한국식 매운맛이 복잡하게 얽혀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변화하고 있는 음식문화의 변화는 비단 음식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각국의 경제, 문화, 더 나아가 민족성에게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이렇게 경계를 넘나드는 음식문화는 드디어 민족주의, 국가주의에 포섭되어 선별과 도태의 과정을 겪게 된다. 지금까지 중국에 55개만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소수민족이 사실은 수백개가 넘는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을 통치하기 쉽게 인위적으로 55개의 소수민족으로 중국당국이 묶었다는 사실, 그 결과 각 민족들은 고유의 문화를 잃어가게 되었고, 남아 있는 소수민족들의 문화도 결국은 관광상품화하여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는 것을 저자는 분명히 지적한다.  

  한국에서도 비슷하세 제주도의 향토 음식이 사라져 버리고, 어디에 가나 똑같이 볼 수 있는 횟집이 제주도의 해변을 점령하고 있으며, 그 결과 사라져버린 제주도의 문화와 교란된 생태계를, 일본에서는 사쓰마 번에 의한 아마미 군도의 수탈과 이 과정에서 망가져버린 아마미의 문화를 이야기한다. 음식문화가 사라져 버린다는 것은 단순히 음식 하나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음식을 만들어 먹던 문화가 주변부로 밀려나 소멸하게 되는 것이며, 일부 살아남은 것들은 껍데기는 있지만 의미는 사라져버리고 관광 상품이라는 소비의 대상이 되어 버린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던 삼국의 음식 문화, 그리고 주변부로 밀려나 도태되고 소비의 대상이 되어버린 소수민족의 문화와 향토문화의 예를 살펴보면서 한국 문화가 지향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한다. 그 대안으로 아야초의 로컬푸드 시스템을 제안하면서 한국도 앞으로는 먹거리의 안정과 자급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농업정책을 진행해야 한다는 진단을 내린다. 

  이 책의 결론은 음식도 결국 문화라는 것이다. 문화는 다양성이 생명이다. 만약 문화라는 것을 도식화하고, 범주화하고, 우열을 가린다면 필경 낮은 문화로 평가받은 문화는 주변부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과연 그 문화가 진정으로 급이 낮은 문화인가? 아니다. 급이 낮은 문화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문화는 각자가 처한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한 형태로 변화해왔고, 변화해 나가고 있다. 다만 그 문화권에 속하는 사람들이 강자이냐, 약자이냐는 것이 문제가 될 뿐이다. 만약 그 문화권에 속한 자들이 강자라면 그 문화는 다른 문화에 비하여 살아남을 확률이 크다. 결론은 힘을 가진 이들이 타인의 문화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취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한국에서 농업을 바라보는 모습은 어떠한가? 말로만 농자천하지대본이다. 말로만 신토불이이다. 이미 중국산 농산물이 시장을 점령하고 있으며, 판로가 막힌 농부들은 쌀과 채소를 그대로 갈아업는다. 서민들은 치솟는 식료품 값을 보면서 농부들이 배가 불러서 밭을 갈아업는다고 생각한다. 정치인들은 식량의 위기라는 말로 외국에서 농산물은 물론 육류까지 수입하고 있다. FTA는 자동차를 팔기 위하여 농업을 내어주는 빅딜을 성사시켰다. 이제 한국의 식문화는 어디로 가는가? 30년 후에도 우리 자식들은 쌀밥과 김치를 먹고 있을 것인가?  

  멜라민 파동, 불량 색소 첨가물, 가짜 달걀, 폐지 만두. 도대체가 안심하고 먹을 먹거리가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식량을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날이갈수록 농촌의 인구는 고령화되어 가고 있다. 30년후면 농촌은 아마 자연스럽게 소멸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농협은 농민으로부터 이익을 취하기 위하여 혈안이 되어 있으며, 정부는 농지를 공업용지로 바꾸려고 노력한다. 요즘은 물길을 정비한다고 수조원의 돈을 쓰겠다고 하면서도 농가부채는 나몰라라 한다. 30년 후 한국의 식문화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확실한 것은 이대로는 안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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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식 세계화? 2030년 식탁이 더 걱정이다
    from 날아라! 도야지 2009-11-17 17:48 
    차폰 잔폰 짬뽕 카테고리 역사/문화 지은이 주영하 (사계절, 2009년) 상세보기 최근 정부(농림수산식품부 한식세계화추진팀)는 ‘한식 세계화’ 일환으로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인을 사로잡을 수 있는 메뉴로 떡볶이, 비빔밥, 막걸리, 김치를 4대 대표메뉴로 선정했다고 한다. 2009년을 ‘한식 세계화’ 원년으로 선포한 정부의 당찬 계획임에 틀림없다. ‘한식 세계화’는 드라마로 대표되는 한류 열풍의 산물이다. 특히 [대장금]의 일본, 대만을 시작으로 동..
 
 
 
<심리학이 결혼을 말하다>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심리학이 결혼을 말하다 - 두려움과 설레임 사이에서 길을 찾다
가야마 리카 지음, 이윤정 옮김 / 예문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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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은 꼭 해야 한다. vs 결혼은 미친 짓이다. 

  도무지 결론이 나지 않은 이러한 대결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은 왠만한 용기로는 불가능하다. 결혼을 꼭 해야 한다는 말을 한다면 결혼이란 미친 짓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공격을 받을 것이요, 반대의 경우라면 결혼을 무시한다 해서 결혼을 꼭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공격을 받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복잡하면서도 어려운 주제에 대하여 용감하달까, 아니면 무모하달까 나서서 말하는 사람이 생겼다. 그것도 심리학이라는 복잡다단하고 미묘한 프리즘으로 말이다. 내가 이 책을 열면서 기대를 가졌다면 바로 여기에 있다. 

 가을만 되면 온갖 곳에서 청첩장이 날라온다. 친구들에게서, 아는 사람에게서, 직장에서 등등등. 청첩장을 처지하는 것도 곤란하고, 모든 결혼식에 다 챙겨서 가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꼭 가야하는 사람들에게는 전화를 통하여 사정상 가지 못함을 미리 양해를 구하고 신혼 여행을 다녀와서 보거나, 축의금만 통장으로 보내준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축의금 또한 무시못할 규모라면 더더욱 결혼이 반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인간은 관계를 맺어가는 존재이고, 나 또한 이들에게 같은 일을 강요했던 전적이 있으니 말이다.  

  주변에서 행해지는 결혼식을 바라보면서 결혼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한때는 누군가와 같이 살아간다는 것이 부담이 되어서 결혼을 하고 싶지 않았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지금에도 결혼이 무엇인가 정의를 내린다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또한 결혼을 꼭 해야 하는가, 아니면 결혼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를 말한다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이다. 그렇지만 힘들다고 해서 말하지 않아도 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니 결혼이라는 주제가 다루기 힘든 것이 아니겠는가? 

  인간의 일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단계 중의 하나가 결혼인데 왜 많은 이들이 이 부분에 대하여 침묵하거나, 행복이 아니라 고통으로 받아들이는가? 저자는 결혼이란 개인의 문제인데 이 개인적인 차원의 것을 사회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려서 개인들에게 두려움을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결혼이란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의 것이니 결혼을 하고 안하고는 자신이 결정하라, 고민하거나 걱정하지 말라 결론을 내린다. 잔득 기대감을 가지고 책을 읽어 온 나에게 뭔가 마뜩치 않은 결론이지만, 이 외에 더 좋은 구체적인 결론이 날 수 없으니 유구무언일 수밖에. 

  네 멋대로 해라는 결론에 이르고만 책이지만 결혼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 혹은 등떠밀려서 결혼하는 사람에게 한번쯤은 권하고 싶은 책이다. 물론 결혼에 대한 심리학적인 분석을 구하는 사람이라면 그다지 권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결론을 내자면 심각한 주제에 대하여 일반적이고도 뻔한 내용을 개인적인 경험을 통하여 분석하고 네 멋대로 해라는 결론에 이른 용두사미식 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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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책쟁이들>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한국의 책쟁이들 - 대한민국 책 고수들의 비범한 독서 편력
임종업 지음 / 청림출판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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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책쟁이들이라? 

  제목에서부터 부러움이 밀려온다. 얼마나 책에 미쳤으면 쟁이라는 어미를 붙였을까? 기대감을 가지고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신문 상에 실렸던 그들이었는지, 내용들은 여러사람들의 이야기를 짧게짧게 옮기고 있다. 그들이 어떻게 책에 몰두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생각으로 책을 읽어 나가고 있는지, 어떻게 책을 모아 놓고 있는지. 잔잔한 삶의 이야기들을 전하면서 그들의 철학과 오늘날 한국에서 사라져 가는 헌책방들과 문화들, 독서문화에 대하여 저자는 자신의 철학과 그들의 철학을 잘 버무려서 우리에게 들려준다. 

  언제, 어느 방송이었는지는 정확하게 생각이 나지 않는다. 방송이 아닐 수도 있다. 신문기사일 수도 있다. 아니 둘다 일수도 있다. 세계의 여러나라들의 독서에 관한 보고서를 인용하여 한국 사람들은 책을 너무 안 읽는다고 지적했던 것이 기사의 내용이었다. 그 기사의 내용을 보면서 안타까웠고, 그렇게 책을 많이 읽지 않는 내가 부끄럽기도 했다. 그 뒤로 열심히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고, 게으름을 부렸지만 어느덧 올해 읽은 책이 60권을 넘었다. 물론 신앙서적을 포함하지 않은 권수이기에 이것까지 포한함다면 80~90권쯤 되지 않을까?  

  이쯤이면 되겠지라는 교만한 마음이 어느새 내 안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하여 그 자만심이 무참하게 깨져나갔다. 이들의 독서량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기에. 책벌레라는 말이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러운 것도 사실이다. 남들은 꽉 막혔고, 고리타분하다고 할지라도 모르겠지만, 그들은 각자의 세상 가운데, 각자의 철학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조금은 이해가 안되는 면도 있다. 그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나의 입장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임을 분명히 밝혀둔다. 책을 열심히 모아 두는 습관들과 헌책방을 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솔직하게 나도 책을 좀 사는 입장이지만 이상하게 옛날 책들은 잘 보지 않게 된다. 종이의 질도 그렇고, 요즘 나오는 책들이 훨씬 번역이 매끄러운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아마 이 책에 등장하는 책쟁이들이 보면 무식하다고 펄쩍 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찌되었건 책이 있어서 세상이 행복한 사람들, 그 사람들이 참으로 부럽다. 

  ps. 책의 전체적인 느낌은 한국의 고집쟁이들과 비슷하다. 물론 신문기사를 다듬어서 편집한 책이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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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권력과 욕망을 말하다>를 리뷰해주세요.
건축, 권력과 욕망을 말하다 - 역사를 담은 건축, 인간을 품은 공간
서윤영 지음 / 궁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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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도심 한 복판을 걸어가면서 곳곳에 설치되어있는 CCTV를 본다. 어느 것은 방법용, 어느 것은 과속방지용, 어느 것은 교통 수집용, 어느 것은 쓰레기 무단투기 방지용. 용도는 다양하지만 그것들이 모두 사람들의 행동을 감시하는 CCTV라는 것은 분명하다. 만약 이 CCTV가 제 기능이 아니라 특정인이나 특정 단체를 감시하기 위하여 동원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일 것이다. 이글아이나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라는 영화에서 보듯이 감시를 받는 특정인물은 그 어디에도 숨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조지 오웰이 이야기했던 빅 브라더의 감시와 지배가 이미 시작되고 있다고 걱정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건축! 

  나에게 있어서 건축이란 그저 예전에 아르바이트를 위하여 막노동판에서 일했던 정도? 딱 그정도이다. 그 안에 숨겨진 의미도, 그것이 어떻게 지어졌는지도 관심이 없다. 그저 깨끗한가, 아닌가? 예쁜가, 그저 그런가? 특이한가, 아니면 모양이 천편 일률적인가? 대개 이정도의 수준에서 머물러 있다. 건축물은 그저 크고 넓고 입지 조건이 좋으면 된다는 것이 우리 일반인들이 건축물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시각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 책은 건축물의 다른 부분에 촛점을 맞춘다. 건축물 그 자체가 대상이 아니라 그 안에 은밀하게 숨어있는 인간의 권력과 욕망을 포착한다. 건축물이 발신하고 있는 은밀한 메시지, 건축물을 통하여 건축주나 건축가가 사람을 어떻게 통제하고 강제하는지에 대하여 폭넓은 이해를 제공해 주고 있다.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하여, 벤담의 판옵티콘, 호모하빌리스, 유교의 제왕남면 등 건물의 곳곳에 숨어있는 통제와 감시의 기재들을 하나씩 끄집어 내놓는다. 마치 여행지에 여행객을 데리고간 가이드처럼 자세하게 하나하나 풀어가면서 그 안에 숨겨진 은밀한 비밀들을 하나씩 끄집어 내고 있다. 교도소와 병원, 학교가 판옵티콘이라는 같은 원리로 지어지고 지탱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는 왜 그렇게 학교와 병원이 답답했는지 이해가 갔으며, 어느샌가 가운데 공간을 두고 사면으로 둘러싸는 아파트들의 모습이 단순히 면적을 줄여 땅값을 아끼기 위한 차원이 아니라 상호 감시를 통한 범죄율 억제의 정책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또한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을 끄집어내는 저자의 설명을 들으면서, 왜 많은 사람들이 쓸데없이 넓은 집에 열광을 하고, 대기업의 로비는 텅비어 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결국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건축 또한 상호 감시와 남보다 나은 위치에 서고 싶어하는 개인들의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이 아닌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유롭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 분위기를 조장하고 강화하는 주범 가운데 하나가 건물이 아닌가? 타워 팰리스를 선호하고, 카드키로 현관을 열고 들어가는 아파트들도 결국 인간의 욕망, 허영의 한 표현이 아니겠는가? 

  아마 오늘부터 당분간은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그냥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저건 또 어떤 의미인가, 저건 또 무슨 의도로 저렇게 지어진 것일까? 혼자만의 생각 속에 빠져서 의심어린 눈초리로 멀쩡한 건물을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건물을 높이가 아니라, 넓이와 가격이 아니라 개인의 권력과 사회적인 감시와 통제, 그리고 인간의 오감으로 읽게 해준 상당히 재미있는 책이었다. 

PS. 내가 알기론 판옵티콘이 표준어 같은데, 이 책에서는 신기하게도 파놉티콘으로 적고있다. 그것도 일관되게 파놉티콘으로 적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에는 판옵티콘으로 적기도 하는데, 분명히 이 부분은 수정을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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