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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권력과 욕망을 말하다 - 역사를 담은 건축, 인간을 품은 공간
서윤영 지음 / 궁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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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도심 한 복판을 걸어가면서 곳곳에 설치되어있는 CCTV를 본다. 어느 것은 방법용, 어느 것은 과속방지용, 어느 것은 교통 수집용, 어느 것은 쓰레기 무단투기 방지용. 용도는 다양하지만 그것들이 모두 사람들의 행동을 감시하는 CCTV라는 것은 분명하다. 만약 이 CCTV가 제 기능이 아니라 특정인이나 특정 단체를 감시하기 위하여 동원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일 것이다. 이글아이나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라는 영화에서 보듯이 감시를 받는 특정인물은 그 어디에도 숨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조지 오웰이 이야기했던 빅 브라더의 감시와 지배가 이미 시작되고 있다고 걱정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건축! 

  나에게 있어서 건축이란 그저 예전에 아르바이트를 위하여 막노동판에서 일했던 정도? 딱 그정도이다. 그 안에 숨겨진 의미도, 그것이 어떻게 지어졌는지도 관심이 없다. 그저 깨끗한가, 아닌가? 예쁜가, 그저 그런가? 특이한가, 아니면 모양이 천편 일률적인가? 대개 이정도의 수준에서 머물러 있다. 건축물은 그저 크고 넓고 입지 조건이 좋으면 된다는 것이 우리 일반인들이 건축물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시각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 책은 건축물의 다른 부분에 촛점을 맞춘다. 건축물 그 자체가 대상이 아니라 그 안에 은밀하게 숨어있는 인간의 권력과 욕망을 포착한다. 건축물이 발신하고 있는 은밀한 메시지, 건축물을 통하여 건축주나 건축가가 사람을 어떻게 통제하고 강제하는지에 대하여 폭넓은 이해를 제공해 주고 있다.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하여, 벤담의 판옵티콘, 호모하빌리스, 유교의 제왕남면 등 건물의 곳곳에 숨어있는 통제와 감시의 기재들을 하나씩 끄집어 내놓는다. 마치 여행지에 여행객을 데리고간 가이드처럼 자세하게 하나하나 풀어가면서 그 안에 숨겨진 은밀한 비밀들을 하나씩 끄집어 내고 있다. 교도소와 병원, 학교가 판옵티콘이라는 같은 원리로 지어지고 지탱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는 왜 그렇게 학교와 병원이 답답했는지 이해가 갔으며, 어느샌가 가운데 공간을 두고 사면으로 둘러싸는 아파트들의 모습이 단순히 면적을 줄여 땅값을 아끼기 위한 차원이 아니라 상호 감시를 통한 범죄율 억제의 정책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또한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을 끄집어내는 저자의 설명을 들으면서, 왜 많은 사람들이 쓸데없이 넓은 집에 열광을 하고, 대기업의 로비는 텅비어 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결국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건축 또한 상호 감시와 남보다 나은 위치에 서고 싶어하는 개인들의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이 아닌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유롭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 분위기를 조장하고 강화하는 주범 가운데 하나가 건물이 아닌가? 타워 팰리스를 선호하고, 카드키로 현관을 열고 들어가는 아파트들도 결국 인간의 욕망, 허영의 한 표현이 아니겠는가? 

  아마 오늘부터 당분간은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그냥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저건 또 어떤 의미인가, 저건 또 무슨 의도로 저렇게 지어진 것일까? 혼자만의 생각 속에 빠져서 의심어린 눈초리로 멀쩡한 건물을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건물을 높이가 아니라, 넓이와 가격이 아니라 개인의 권력과 사회적인 감시와 통제, 그리고 인간의 오감으로 읽게 해준 상당히 재미있는 책이었다. 

PS. 내가 알기론 판옵티콘이 표준어 같은데, 이 책에서는 신기하게도 파놉티콘으로 적고있다. 그것도 일관되게 파놉티콘으로 적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에는 판옵티콘으로 적기도 하는데, 분명히 이 부분은 수정을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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