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인문학 - 클레멘트 코스 기적을 만들다
얼 쇼리스 지음, 이병곤.고병헌.임정아 옮김 / 이매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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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ㅇ 정몽준 중앙선대위위원장의 유세말씀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존경하는 계룡시민 여러분들, 안녕하세요. 그동안 보고 싶었습니다. 사랑합니다. 계룡시는 작은 도시이지만 대한민국 전체를 지키는 튼튼한 안보도시입니다. 대한민국의 경제를 튼튼히 하고 국가안보를 튼튼히 하는 정당은 한나라당이 최고인 것을 알고계십니까. 제가 20여년 전에 이 계룡시가 처음 됐을 때 13, 14대 국회의원으로서 제가 국방위원회에 있었습니다. 그 당시 계룡시를 자주 왔었는데 오랜만에 이렇게 와서 계룡시민 여러분들 건강하신 모습을 뵈니까 아주 반갑습니다. 계룡시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그저께 저녁에 우리나라 대표축구팀이 일본과 축구시합을 한 것을 보셨습니까. 우리 선수들이 그날 참 잘했는데 그 중에서 특히 박지성, 박주영 선수가 잘했지 않습니까. 우리 계룡시 발전을 위한 박지성과 박주영은 이기원 시장, 박해춘 도지사가 아니겠습니까. 박지성, 박주영, 박해춘 다 박씨인 것을 꼭 기억하세요. 무조건 박씨에 꽉꽉 누르면 됩니다. 우리 박해춘 도지사 후보님을 자세히 한번 보십시오. 얼마나 믿음직합니까. 별명도 코뿔소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추진력에 있어서 대한민국에서 따라올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아십니까. LG카드, 국민연금, 우리은행 등 문제가 있는 곳에 가서 그 문제를 코뿔소처럼 전부 해결해서 붙은 별명인 것을 알고 있습니까. 우리 박해춘 후보님은 경제를 튼튼히 하고 국가안보를 튼튼히 하는 정당인 우리 한나라당이 자랑스럽게 충남도민 여러분들에게 제시한 후보입니다. 우리 박해춘 후보와 경쟁하는 다른 후보는 어떻습니까. 이곳에서 나온 민주당의 안희정 후보는 우리 한나라당 같았으면 공천신청할 자격도 없는 후보가 아니겠습니까. 그다음 선진당에서 나온 박상돈 후보는 지난 17대 때 열린우리당에 있다가 지금 선진당으로 갔습니다. 정당을 옮기는 데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그것까지는 봐준다고 해도 열린우리당과 선진당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정당이라는 것을 아셔야 됩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관한 인식이라든지 정당의 정책, 정당의 주요정책의 목표가 전혀 다른 정당인데 열린우리당에 갔다가 이번에 선진당으로 간 것은 정말 이상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희들이 지금 대전에서 왔는데 대전에서 선진당의 시장후보로 나온 후보가 염홍철 후보입니다. 그 염후보라는 분이 선진당의 후보인데 불과 2년 전에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자유선진당을 심판하자고 했던 사람입니다. 심판 받아야할 정당이 선진당이라면 이런 정당의 후보로 나온 사람을 찍으면 안 됩니다. 제가 대전, 충남에 와서 들은 얘기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얘기를 가족분들에게도 꼭 말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우리나라 영화배우들이 있습니다. 송강호, 이병헌, 또 키 크고 잘생긴 정우성이라는 배우가 셋이 모여서 만든 재미있는 영화가 있는데 제목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입니다. 대전도 그렇고 이곳 충남에 와보니까 중요한 후보가 세 명이 있는데 우리들이 볼 때는 ‘좋은 후보, 나쁜 후보, 이상한 후보’가 아니겠습니까. 여러분들께서 이제 며칠 후면 여러분들의 소중한 한 표를 투표하시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인정에 끌려서 동정에 끌려서 투표하시면 계룡과 충남의 발전은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값싼 인정과 동정에 이끌려 투표하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앞으로 4년 동안 계룡 시민, 충남 도민 여러분들은 다른 사람들의 동정을 받고 살게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이왕 살면서 남을 도와주면서 살아야지 우리 충남 도민 여러분들이 남의 동정이나 받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곳에 와서 보니까 선진당은 ‘충남의 자존심’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것을 두고 우리는 ‘충남의 망신살’이라고 이야기해야 되질 않겠습니까. 우리 이기원 시장님이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면 잘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이기원 우리 시장 후보께서 어떤 길을 걸어오셨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곳 계룡 역에 KTX를 이기원 시장 후보께서 벌써 정차하도록 만든 것을 아십니까. 이곳 계룡시는 경찰청, 세무서, 교육청 이런 것이 없습니다. 이런 게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조금 전에 축구 선수 박지성, 박주영이 잘 한다고 했습니다. 박지성, 박주영이 어떻게 골을 넣었습니까. 그래도 수비수, 미드필더가 패스를 해주니까 골을 넣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명박 대통령과 박해춘 도지사 후보께서 패스를 해주면 이기원 후보가 골을 확실히 넣지 않겠습니까. 중국의 관영언론에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서 ‘북한이 정말 천안함 사태를 일으키지 않았다면 일으키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분명히 사과해라.’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좀 늦었지만 중국이 잘한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우리 국회에서 북한이 잘못했다고 하는 결의안을 아직도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앞으로 이런 것을 못하게 하는 확실한 방법은 우리 계룡시민, 충남도민, 대한민국 국민들이 한마음으로 확실히 단결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계룡시민, 충남도민 여러분, 오랜만에 만나 뵙게 돼서 정말 반갑습니다. 우리는 이번에 투표할 때 투표의 기준을 계룡시와 충남도의 미래의 발전을 보고서 투표를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이기원 시장, 박해춘 도지사 후보와 함께 우리 한나라당 정말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도와주세요. 고맙습니다. 좋은 후보, 나쁜 후보, 이상한 후보, 좋은 후보에 확실하게 투표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ㅇ 한편, 박해춘 충남도지사 후보는 “저는 대한민국 최고의 경제 전문가이다. 정치는 잘 모르지만 경제 하나는 자신이 있다. 서울보다 잘 사는 서민충남, 일등충남을 만들겠다. 이완구 지사가 추진해 오던 일을 차질 없이 중단 없이 추진하겠다.”라고 지지를 호소하였다. 

 

2010.  5.   27
한  나  라  당   대  변  인  실 


  조금 짜증나고 길지만 인용해 봤다. 출처는 알다시피 한나라당 대변인실이니 나중에 딴 말 하지 못할 것이다. 지난 기초 단체장 선거때 한나라당의 공략은 위에서 보듯이 "여러분, 잘 살게 해 드리겠습니다."였다. 도지사 후보가 한말은 더 가관이다. “저는 대한민국 최고의 경제 전문가이다. 정치는 잘 모르지만 경제 하나는 자신이 있다. 서울보다 잘 사는 서민충남, 일등충남을 만들겠다. 이완구 지사가 추진해 오던 일을 차질 없이 중단 없이 추진하겠다.” 지금 정치를 할 기초 단체장을 뽑자는 것인데 스스로 자기는 정치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한다. 경제 하나는 자신있다고 한다. 서울보다 잘사는 충남을 만들 자신이 있다고 한다. 이런걸 일컬어 젊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대박" 

 

  정몽준 의원이 한 말은 이것뿐 아니다. 정확하게 잘 기억이 안나지만 아마 검색해 보면 나올 것이다. 그 당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을 대강 옮겨보자면 이런 것이다. "여러분, 물류 창고 필요하시죠? 저희가 해드리겠습니다. 여러분 대형 냉장고 필요하시죠? 저희가 해드리겠습니다." 어떻게 이런 공략을 가지고 자기들을 뽑아달라는 것인지 모르겠고, 어덯게 이런 말을 듣고 지방 자치단체장을 뽑는지 모르겠다. 내용의 요지는 너무 간단하지 않는가? "잘 먹고 잘 살게 해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찍어주세요." 

 

  비단 기초 단체장 선거만이 아니다. 지난 대선에 외신들은 하나같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대한민국의 대선은 정치문제는 모조리 외면하고 오직 경제 문제만을 가지고 대통령을 선출했기 때문이다. "잘 먹고 잘 산다"는 말이 경제적인 부유를 의미하는가? 잘 먹고 잘 산다는 말이 부유하게 산다는 것이라면 뭔가 대단히 큰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희망의 인문학은 이러한 사람들의 고정 관념에 돌을 던지는 책이다. 실제로 미국에서 벌어졌던 인문학 코스를 소개하는 책이다. 빈민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친다? 하루하루 벌어 먹기도 살기 힘든 사람들에게 인문학은 대지 목에 진주 목걸이라는 것이 우리들의 편견이다. 그렇지만 얼 쇼리스는 이러한 편견에 당당히 짱돌을 던진다.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것이 단순히 먹고 사는 것인가?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이 되면 행복할 수 있는가? 한국 정치인들은 Yes라고 하는 말에 쇼리스는 No라고 말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 인간을 그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끌어 올리는 것은 자기가 정치적인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데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 쇼리스의 기본 생각이다. 

 

  매우 흥미로운 주제이기 때문에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을 나에게 소개시켜 준 것은  지식 e이다. 희망이 없는 사람들에게, 빈곤층에게 소크라테스의 말, 프라톤의 말, 아리스토 텔레스의 말은 정말 깜깜한 밤에 아랫도리 벗은 사람들에게 건전지 떨어진 플래쉬하나 주고 저기가 너희들의 목적지라고 가르쳐 주는 삭구라에 가깝다. 빈곤의 포위망에 사로잡혀, 게으른 사람으로 낙인찍히고, 도덕적으로도 결함이 있는 사람으로 이해되는 이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상기시켜주는 인문학이란 어찌 보면 말도 안되는 조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구라가 아니다. 오히려 구라같기에 더 진실에 가깝다.  

 

  쇼리스의 실험은 이 진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직장도 없고, 패배감에 사로 잡혀 있던 사람들이 인문학을 배우면서 생각의 폭을 넓혀간다. 자신들의 존재 의미를 자각한다. 그리고 미래를 꿈꾼다. 희망의 인문학이라는 책의 제목은 바로 여기에서 착안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스 신화에 보면 사람을 최후의 최후까지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희망이라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희망을 고문이라고도 말한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도 힘겨운 사람들이 미래는 무슨 미래며, 꿈은 무슨 꿈이냐, 헛소리 말아라 말한다. 그나마 있던 희망도 꺾는다. 경제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잘 먹고 잘 살면 장땡이라 말한다. 그러나 정말 장땡일까? 최소한 대한민국에서 그런 말은 더 이상 진리가 아니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경제적인 부유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지난 2년간 경험했다. 

 

  한국에서 클레멘트 코스를 실시해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서 이 책을 번역했다고도 들었다. 궁금하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과정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그리고 얼마나 국내 실정에 맞게 변형 시켰는지? 

 

  학생때의 일이다. 써클 후배들을 앉혀놓고 공산당 선언을 읽혔다. 써클 자체가 노동 운동을 하는 PD 계열인지라 내 생각에 공산당 선언은 필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처참했다. 왜 이런 것을 읽느냐고 불만들이 많았다. 사유, 변유를 가르치고 사구체를 읽혀도 마찬가지다. 간신히 1~2명 읽어 올 뿐이다. T(우리는 써클 세미나를 이렇게 불렀다.)도 간신히 간신히 유지하다가 2년 뒤에 사라졌다. 내가 여러가지 일로 써클에 정나미가 떨어져서 포기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마지막가지 견뎠던 사람들을 아직도 만나고 있으며, 그들을 만나면 치열한 토론의 자리가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나는 사람들은 목숨걸고 투표를 한다. 물론 날당을 찍는 사람은 없다. 

 

  당시에는 쓸데없다고 투덜거리던 인문학이지만, 그것들이 오늘날 우리의 정신과 판단의 기준이 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요즘 너무 쓸모 있는 것들만 찾는다. 여기서 말하는 쓸모는 돈이 된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쓸모없는 것들이기 쉽다. 인문학의 위기와 맞물려 사회의 위기, 도덕과 가치관의 붕괴가 일어났음은 우연이 아니다.  

 

  오늘도 인문학 책을 읽는 이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현명한 선택을 했다고 칭찬하고 싶다. 지금은 비록 티가 나지 않지만 그것이 희망의 불씨가 되어서 머지않아 내 인생과 생각을 풍요롭게 할 것이며, 나를 더 인간답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분 잘 살게 해드리겠습니다." 흥, 엿이나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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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타 2020-03-18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희정같은 위선자에 대해선 어떤 생각이신지?

saint236 2020-03-19 20:25   좋아요 0 | URL
그냥 그분에 대해서는 언급을 패스합니다
 
<플레이,즐거움의발견>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플레이, 즐거움의 발견 - 우울한 현대인이 되찾아야 할 행복의 조건
스튜어트 브라운 & 크리스토퍼 본 지음, 윤미나 옮김, 황상민 감수 / 흐름출판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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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릴 때 신나게 놀았다. 송골매의 노래처럼 아침부터 무여서 놀고, 저녁까지 놀았다. 조금 더 커서 외박을 해도 될 나이가 되었을 때는 밤새도록 놀았다. 시험 기간에는 시험은 쉬엄쉬엄하는 것이라 놀았고, 시험이 끝나고 나서는 끝났다고 놀았다. 비싼 등록금을 내고 대학을 다녔지만 강의실에 있었던 시간보다는 운동장에서 있었던 시간이 더 많다. 오후 수업을 마치고 나면 기숙사에서 축구공을 튕기면서 "공차자"그러면 여기저기에서 문이 열리면서 한발이라도 더 앞서 나오기 위해 경쟁했다. 학교 운동장이 작은 관계로 정식 축구는 못하고 6:6 혹은 7:7 정도로 미니 게임을 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공을 못찼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기다. 왜 그렇게 노는데 목숨 걸었는지, 공차는 것이 뭐라고 남보다 한발 더 앞서 나가려고 노력했는지. 학점에 그정도로 목숨 걸었으면 누구 말마따나 장학금을 탔을테지만 학점은 관심밖이었다. 그때 공부 열심히 한 사람이나 논 사람이나 열심히 살기는 매한가지다. 왜 놀았을까? 이유가 무엇일까? 나가서 다치고, 공차다 까지고 들어오면서도 왜 그렇게 발끈하고 미친듯이 뛰었을까? 아무 이유 없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한살한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왜라는 질문을 많이 던진다. 왜 할까? 왜 해야하지? 이 일의 목적이 무엇이지? 목적이 뚜렷하지 않으면 그 일을 하기 싫어진다. 그렇지만 목적이 뚜렷한 일은 일을 해야할 동기가 분명하기에 끝까지 그 일을 할 수 있고 어느 정도 가시적인 성과를 얻을 수 있지만 재미는 없다. 목적이 분명한 것으니 놀이가 아니라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수단을 통하여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 이게 일이다. 놀이는? 어떤 수단 자체가 그 일의 목적이다. 무목적성이 놀이의 특징이다. 왜 놉니까? 걍! 이 한마디면 끝난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이 놀이의 목적을 찾는다. 

  이 책은 놀이는 무목적성이 그 특징이라고 말하면서도 놀이의 목적성을 찾는 이들을 설득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말을 가져다 붙인다. 서글프다. 노는 것도 목적이 있어야 놀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논다는 사실 자체가 즐거움이기 보다는 피해야할 타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요즘 뭐하세요? 놀아요. 청년 실업 백만 시대에 이 말만큼 사람을 쪼그라들게 만드는 말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자기가 왜 노는지 설명한다. 취업준비해요, 유학가려고요, 공부 더 하려고요 등등등. 그러니 놀지 못하는 참 재미없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것이다. 물론 나도 포함해서 말이다.  

  굳이 나에게 왜 노냐고 묻는다면 사회성을 배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라다이언갱이라는 영화가 있다.  



  산타모니카의 소년원의 보호캄찰관 포터는 수감자들을 데리고 미식축구팀을 결성한다. 없는 예산에 어렵게 장비를 구입하고, 재소자들을 모아서 팀을 결성하고 연습하지만 연습시합을 받아주는 팀이 없다. 어렵사리 시합을 하지만 실망만을 맛볼 뿐이다. 주변의 시선은 더 싸늘하다. 그렇지만 포터는 이들을 데리고 미식축구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이들은 고교 미식축구 리그에 참가할 수 있게 되고 좋은 결과를 거둔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인데 실제로 청소년들의 재범율을 낮추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한다. 

  미식축구도 하나의 놀이이다. 이것을 통하여 돈이 생기는 것도, 수감 기한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그냥 즐겁게 노는 것이다. 남아 도는 시간과 에너지를 치고 박고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팀을 이뤄 무엇인가를 해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사회성을 배운다. 자기를 희생하는 법, 어려움을 이기는 방법, 목표를 향하여 돌진하는 방법을 배운다. 사회 생활하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사회성을 배운다. 놀이는 그저 즐거움을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바꾼 것이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놀이의 이유이다. 

  요즘 학교마다 스포츠 팀이 하나씩은 있다. 리틀 야구단도 있고, 역도부도, 수영부도 있다. 그런데 학원 스포츠가 그렇게 긍정적으로만 비춰지지 않는 것 같다. 폭행, 성폭력, 줄서기 등등 여러가지 부정이 저질러 진다. 스포츠가 놀이가 아니라 돈이요 진학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또 다른 의미의 사회성을 배우는 것이 아닐까? 아이들의 순수한 놀이 욕구를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하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즐거워야할 놀이가 다른 목적을 위한 과정이 되어버리면 아무리 즐거운 것도 일이 되어 버린다. 그냥 즐겁게 놀게 해줄 수는 없는 것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함께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책이 있다. 하나는 호이징거의 "호모 루덴스"이고 다른 하나는 마흐마노비치의 "놀이, 마르지 않는 창조의 샘"이다. 조금은 방향이 다르치만 루트번스타인 부부의 "생각의 탄생"도 읽어 보면 이 책을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송골매의 "모여라"를 들으면서 즐겁게 읽는다면 더 즐겁지 않을까? 

  나에게는 여기에 글을 쓰는게 노는 것이다. 저자가 분류한 놀이의 유형 중에 "창조자 혹은 예술가" 스타일이라고 해야 할까? 예전에 그렇게도 하기 싫었던 인문학 책을 읽는 것이 이젠 더할 수 없는 즐거움이 되었다. 이것을 통해서 학점을 더 잘받겠다는 목표가 사라지고 그저 읽고 서평을 쓰는 것에 집중하다 보니 즐거워지는 것이다. 이유? 없다. 그냥 한다. 

  놀이는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사람들이 묻는다. 왜 노세요? 걍! 그저 즐길 수 있는 대상을 찾기 바란다. 창의성이나 생산성이라는 경제적인 말을 들먹이지 않을지라도 삶이 즐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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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6-09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슬퍼요, 그쵸?
노는것에서도 목적을 찾다니...
노는게 노는게 아니라는...

저도 이렇게 알라딘에서 노는게 참 즐거워요^^

saint236 2010-06-09 09:50   좋아요 0 | URL
글쎄 말입니다. 놀이에 목적을 찾기 시작하면 놀이가 놀이가 아니라 일이 되는데 왜 그걸 모르는지...
 
<우울의 심리학 / 꿈꾸는 20대, 史記에 길을 묻다>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우울의 심리학 -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우울증에 관한 심리 치유 보고서
수 앳킨슨 지음, 김상문 옮김 / 소울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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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울의 심리학 

  왠지 딱딱할 것 같은 제목의 책을 받았다. 표지도 우울하고 제목도 우울하고. 이게 과연 재미가 있을까?  또 책임감에 책을 읽는 것은 아닐까? 호르몬이 이렇구 저렇구 하면서 생화학적으로 분석하는 책은 아닐런지, 혹은 정신분석학적으로 접근하는 책은 아닐런지. 불안한 마음에 책을 열었다. 그런데 어렵지 않을까, 딱딱하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과는 달리 책이 쉽다. 자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씌여진 책이기에 훨씬 설득력이 있고 실용적이다. 우울증으로 힘들어 하는 사람에게 혹은 지인이 우울증을 앓고 있어 고민하는 사람에게 정말 도움이 될만한 책이다.  

  군대에 있을 때의 일이다. 36개월을 군복무하면서 많은 녀석들을 만났다. 하나같이 20대 초반의 나이에 입대했는지라 생각이 어리고 단순하다. 더군다나 개인의 개성을 철저하게 무시하는 군대이다보니 더 단순해진다. 자대에 전입하고 3달이 지나기 전까지, 즉 100일 휴가를 나가기 전까지 부대에서는 이 녀석들을 관리하느라고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인다. 혹 여자 친구와 헤어졌는지, 결손 가정인지, 빚은 있는지 개인의 신상에 대해서 세세하게 묻고 또 묻는다. 그래서 신교대에 있으면서 가장 힘든 것이 "나의 성장기를 작성하는 것"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어디를 가나 적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소위 보호관심병사로 분류하여 특별히 관리한다. 

  이들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사회에서 알면 깜작 놀랄 정도이다. 거의 1주일에 한번씩 면담을 하고 심리검사를 하며, 집단 상담 프로그램을 실행한다. 미술치료, 음악치료, 놀이치료 등등 사회에서는 특별히 그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만 알 수 있는 것을 기초적이나마 알아야 한다. 심리 검사는 PAI, MBTI, MMPI, Ego-OK 검사, 기질 검사, 우울증 검사, 스트레스 지수 검사가 기본적으로 행해진다. 왜 이렇게 많은 심리검사를 행하냐면 우울증이 있는 녀석들을 구별해 내기 위해서이다. 원래부터 우울증이 있는 경우도 있고 군대라는 특수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받아 우울증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일단 우울증상이 있는 것으로 판별되면 그 때부터 군종병과 인사병과 그리고 의무병과와 함께 전방위적으로 이 녀석들을 관리한다. 상황이 호전되면 자대로 돌려보내지만 호전되지 않고 더 심각해 지는 경우는 의가사 전역을 시키기도 한다. 혹은 제대할 때까지 자대와 병원을 오락가락한다. 

  언뜻 비정해 보이지만 이렇게 하는 이유가 있다. 우울증상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들이 간혹 생기기 때문이다. 내가 군대에 있는 36개월 동안 자살한 사람이 3명이고, 자살을 기도했다가 실패한 사람들도 여럿 된다. 하나같이 군대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오는 스트레스, 혹은 가정 문제나 여자 친구와의 이별이 스트레스가 되어 충동적으로 저지른 사건들이다. 그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몰라 고민했다. 그저 "힘드냐? 나도 힘들다. 누구나 다 힘든 문제 한두개씩은 있다." 말 몇 마디와 함께 데리고 나가 밥 사주고 자주 만나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 뿐이었다. 그런데 그 녀석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놀랍게도 자기 이야기를 털어 놓기 시작했다. 내가 말 잘해서가 아니라 내 안에도 똑같은 상처가 있다는 것을 그녀석들이 알았기 때문이다. 어떤 녀석은 아침마다 안부 전화하는 녀석도 있었다.(워낙 사고를 많이 치니까 이거 가지고 조용히 있으라고 대대장이 휴대폰 사용을 허락한 녀석이었다.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군대 갔다온 사람은 다 안다.) 

  상처받은 사람은 같은 상처를 경험한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경청한다. 그들의 조언을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나의 아픔을 공감해 주기 때문이다. 실연, 방황, 자살미수, 고1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것, 어머니의 우울증과 정신분열로 인한 입원 등등 내 인생도 참 파란만장했다. 그래서 내 인생이 참 싫었고, 나도 우울증 초기 증상을 앓았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일 때문에 그 녀석들을 도울 수 있었던 것이다. 같은 경험을 한 내가 하는 말과 전혀 경험이 없는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의 무게가 달랐던 것이다. 아니다. 무게가 다른 것이 아니라 그들이 받아들이는 정도가 달랐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해본다. 그 때 내가 이 책을 읽었더라면 더 좋은 충고, 더 적절한 위로를 해줄 수 있었을텐데. 그렇지만 지금이라도 이 책을 읽게된 것이 참 감사하다. 이번 알라딘 서평단 책 중에서 건진 가장 큰 수확같다. 

  요즘도 어머니를 모시고 한달에 한번 병원을 찾는다. 정신과 진료를 받기 위해서이다. 어머니게서는 한사코 약을 드시지 않겠다고 하시지만 나와 동생들은 꼭 드셔야 한다고 우긴다. 어머니께서 안드시겠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깜짝 놀랐다.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본다는 것이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까지 하면서도 실제 우리 나라에서는 미쳤다는 한마디 말로 모든 것을 판단한다. 몸이 아프면 병원을 찾듯이 정신적으로 이상 증세를 보이면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고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당연한데 실제로 그렇지가 않다. 그래서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과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이중으로 고통을 당한다. 병 그 자체뿐 아니라 미쳤다는 편견이라는 또 다른 사회적 질병을 앓는다. 그래서 자기의 경험을 털어 놓기 힘들고 같은 경험을 한 사람으로부터 적절한 도움을 받기도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참 소중하다.

  우울증을 암벽등반으로 비유하여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설명하는 것이 이 책의 구조이다. 각 장마다 우울증에 대한 여러가지 분석이 있고(물론 이 분석이 딱딱해서 읽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처방이 있으면 구체적인 실천 방안까지 제시되어 있다. 저자가 우울증을 앓았던 경험이 없었다면 이 정도로 세심한 책을 쓰지는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각 단원들이 절대 길지 않다. 우울증 환자의 집중능력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읽어보도록 권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나도 한권 구입해서 어머니께 드리려고 생각중이다. 게다가 왠만한 자기계발서보다 더 훌륭하기 때문에 인생의 의미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두고두고 읽어볼만한 책이다. 간만에 별 다섯개의 별점을 준다.

오타 150p 3번째 줄 (같지는 같았다.=>같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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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 2010-05-27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소울 출판사입니다. 올려주신 서평 감사드립니다.
<우울의 심리학>이 이야기하는 메시지를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이해하시고 글을 써주셨네요~
우울증을 직접 경험하고 극복한 저자가 쓴 책이라
기존에 의사나 심리치료사들이 의학적으로 접근하여 쓴 책들과는 내면의
깊이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남몰래 우울증을 앓고 있는, 우울증에 힘들어하는 모든 이들에게
극복해낼 수 있는 희망의 빛이 되기를 바라면서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saint236님의 서평으로 이 책이 더욱 빛을 발하네요~
소중한 글 너무 감사드리구요... 앞으로도 저희 소울 도서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saint236 2010-05-27 23:07   좋아요 0 | URL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된 책입니다. 앞으로 좋은 책들 부탁드리겠습니다.

행운 2010-07-05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지금 우리 작은 아들이 자대배치를 받은지 2주가 지났는데 우울증이 심각한 것 같아서 오늘부터 상담과 병원 치료를 병행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부대에서 아들을 만나고 난 부모의 심정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마음이었습니다. 아무런 의욕이 없고 죽고만 싶다는 아들의 말에 정말 할말을 잃었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심정이네요.죄송하지만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saint236 2010-07-05 13:47   좋아요 0 | URL
원래 우울증이 없던 사람도 군대라는 공간에 들어가면 우울증이 생깁니다. 특히 자대배치 받고나면 낯선 환경, 자기 존재감의 상실 등 여러가지 스트레스로 우울증을 앓게 됩니다. 아마 상담은 군종장교가 주로 하게 될 것 같구요, 정신과 진료 받으면서 안정제류의 약을 복용할 것 같습니다. 상담도 약도 안정을 위한 한 방편이고요 이 시간만 잘 넘기면 부대에 적응잘 하게 되고 우울증도 사라져 버립니다. 부모님께서는 아드님이 마음을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세요. 혹 아들이 어디 근무하나요? 혹 메일 주소를 적어 주시면 더 자세하게 답변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힘내세요.
 
<인문 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 - 이론의 쓸모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이택광 지음 / 글항아리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무례한 복음이라는 책을 통하여 이택광씨를 처음 접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 사회를 사로잡고 있는 경제 지상주의에 대하여 비판하면서 이것들을 무례한 복음이라고 명명하였다. “경제만 살린다면”이라는 지난 대선의 가치판단이 오늘 한국 사회를 이렇게 천박한 곳으로 만들어 버리지 않았는가하는 반성과 더불어 열심히 읽었던 책이다. 이 책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던 차에 이택광씨의 새로운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것도 “인문 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라는 흥미있는 제목을 달고 나왔다. 마치 “저를 사주세요.”라며 간절히 애원하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서 장바구니에 넣고 빼기를 몇 번 했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알라딘 서평단에서 보내준 책이 이 책임을 알았을 때 마치 로또에 당첨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 기분은 책을 펴고 몇 장을 읽지도 않아서 철저하게 깨졌다. 너무 어렵다. 다시 제목을 보니 이젠 “나는 겁내 어려운 책이니 함부로 보지 마시오.”라는 거만한 눈빛으로 나를 쏘아본다. 책을 읽어가면서 메멘토의 주인공이 되어버렸다. 뒷부분을 읽으면 앞부분을 까먹고 앞부분으로 다시 돌아가면 뒷부분을 까먹고. 전체적으로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지만 각 부분들의 내용들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저자는 한국의 인문학의 현주소에 대하여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면서 이 책을 시작한다. 외국에서는 노숙자들에게 자존감을 심어주기 위하여 인문학을 공부시키는 프로그램도 있는데 한국에서 인문학은 돈도 안되는 천덕꾸러기 신세이다. 먹고사니즘이라는 무례한 복음에 의해서 이공계도 찬밥신세가 되는 마당이니 돈 안되고 머리만 복잡한 인문학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인문학을 한다고 말을 했을 때, 그 학생은 굶어죽기 십상이라는 말을 다반사로 들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 하나의 상식으로 굳어진 사회에서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결단일 수밖에 없다. 인문학이 효용성을 가질 때는 입시나 경영에 도움이 되는 경우이다. 논술과 인문경영은 최근 한국 사회에서 인문학이 어떤 교환가치를 가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물론 이런 가치 체계는 고전적인 인문학의 역할이기도 했다. 조정에 기여할 관료들을 양성하고 군주의 통치술을 보필하는 ‘동양적 인문학'의 유령을 여기에서 발견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11p) 

  되도록 돈 생각은 하지 마라. 학문에 뜻을 둔 사람이라면 아무리 돈을 벌려고 해도 돈을 벌 수 없을 것이니 아예 생가하지 않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학비 면제를 위해 부득이 연구조교 정도는 맡을 수 있겠으나, 그 이상 나아가서 행정조교를 맡는다거나 하는 무모한 직은 하지 마라.(327p) 

  자본주의 사회에서 학문을 하겠다면 자기 학문활동을 극대화해야 한다. 돈을 많이 버는 자본가가 항상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끝까지 살아남는 자본가야말로 성공한 자본가다. 학문활동의 이윤율을 높이기 위해 시간을 집약적으로 사용하라. 글쓰기의 속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몇 년에 걸쳐 원고지 1000장을 쓰는 장인정신은 부르주아 계급 출신이라면 권장할 만하다. 21세기에 더 이상 예비 학자의 물적 토대를 마련해줄 너그러운 페트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먹고살기 위해 쓰되, 글로 먹고살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 역설적 메커니즘을 잘 타고 넘는 연습을 미리 해둬야 나중에 뒤탈이 없다.(328p) 

  인문학자가 된다고 했을 때 부모들은 팔 걷어 붙이고 나서서 자식들을 말릴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부모들은 자식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하여 논술 학원에 보낼 것이고, 글쓰기를 연습시킬 것이며, 책을 읽힐 것이다. 그렇지만 부모들이 인문학을 용인하는 것은 딱 거기까지이다. 대학에 들어가는 순간 이 모든 것은 금지당한다. 대학에라는 문턱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인기있는 과에 들어가기 위하여 학점에 목을 매고 토플 점수 1점이라도 더 받기 위해서 전력투구해야 한다. 철학을 논하고,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사색을 하는 것은 배부른 소리일 뿐이다. 살아남기 위해 글로 먹고 살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오늘날 인문학자의 현주소이다. 글쓰기 책이 난무하지만 자기 생각을 조리있게 표현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현상이 당연한 것인가? 그냥 이대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먹고사니즘이라는 무례한 복음의 세례를 받고 거기에 경도되어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가? 지난 2년간 우리 사회가 걸어온 발자취를 돌아보면 결론은 뻔하다. 재개발이라는 논리가 철거민의 생명보다 앞서는 것이, 광우병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보다 FTA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더 중요한 가치로 인정받는 것이 한국의 현주소이다.  

  돈만 된다면 무엇이라도 내다 팔 수 있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인문학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가? 작은 희망이라고 본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아무리 굶어죽을 지경이 되어도 다음해 파종할 종자만큼은 까먹지 않았다. 그것을 까먹는다면 더 이상 미래는 없기 때문이다. 인문학이란 종자와 같다. 먹고사니즘이라는 무례한 복음에 빠져서 인간성마저 팔아버리려는 절망적인 순간에 최소한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가 하나쯤은 있어야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내가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요, 책을 읽는 이유이며, 내 아이들에게 책을 사주고 싶은 이유이다. 결국 저자가 말하는 인문좌파란 현실에 휩쓸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비판을 가하고 더 나아가 비판에 대한 비판을 가하는 사람이다. 분명 이런 사람은 모든 것이 완벽한 슈퍼맨이 아니다. 그렇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용기있는 사람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고 싶다. 

  책이 너무 어렵다.(별표를 두개준 이유가 여기있다.) 320페이지밖에 안되는 이 책에 마르크스, 루카치, 프로이트, 벤야민, 라캉, 헤겔, 사드, 칸트, 지젝, 데리다, 네그리, 랑시에르, 바디우, 사르트르, 알튀세르 등등 수없이 많은 학자들의 의견을 다루기 때문이다. 각주를 충실하게 달고, 참고서적을 밝혀놓는다고 할지라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론 가이드라는 거창한 제목에 비하여 포스트 모던 시대의 철학자들의 사상에 대한 간략한 소개정도에 머무르는 것이 책의 내용이다. 그래서 더 어렵다. 각 사상가들의 사상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몇 페이지 안되는 짧은 공간에 그들의 개념과 사상을 우겨 넣었으니 당연한 결과다. 차라리 시간을 들여서 원전을 읽는 것이 훨씬 더 이해가 잘 되지 않겠는가?

  오타 210p 4번째 줄 (포기한다는 것은=>포기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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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좋아 2010-05-13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읽다가 덮었어요. 서문은 나름 읽을만 해서 기대 좀 했는데 점점 힘들어지더라구요. 초반에 마르크스는 어떻게든 이해해 보려고 읽다가, 이해 안되면 돌아가서 다시 읽고 또 앞 문단으로 가서 읽고 반복했는데 중반 넘어가니 알지도 못하는(이름만 아는) 철학자 뭐라 뭐라 했다는 식이고 또 그 말을 근거 삼아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니 반박도 못하겟도..... 솔직히 접수불가입니다. '난 이 책이 무슨말 하는지 못 알아 듣겠다.'하고 외치고 싶은 참에 반가운 리뷰 만나서 푸념 좀 했습니다 ㅎㅎ
좋은 말도 안 나올거 같은데 이 리뷰 쓸까 말까 고민입니다.

물론 제 앎이 부족하기 때문이란걸 생각하더라도 불친절한 책 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아요.

saint236 2010-05-13 22:35   좋아요 0 | URL
정말 불친절한 책입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을 꾸겨 넣었다는 생각에. 간서치님이 그러시더라구요. 독자의 난독증은 저자의 책임이다. 맞는 말입니다. 욕심이 과한 책이었던 것 같아요.

L.SHIN 2010-05-13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왠만하면...왠만하면...(부들부들 ㅜ_ㅡ) 세인트님 리뷰를 안 보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나도 인문 서평단 하고 싶었는데 못 하는 슬픔'이 되새김질 되기 때문에!!!
아흑...미치겠어요. 인문쪽은 내용이 다양하니까 쓸 말도 많을 거 같은데..
경영은...다 거기서 거기잖아요. 아,놔. 숙제 해야하는데...머리가 굳었어요.

saint236 2010-05-13 22:38   좋아요 0 | URL
그런데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듯이 이번 인문 서평단은 많이 약합니다. 개인적으로 지난 인문 서평단이 최고였던 기억이. 밀려드는 책을 주체하지 못해서 힘들었었는데 이번에는 외도도 해가면서 널널하게 읽고 있습니다. 여전히 그 강아지와 불평등 경제학, 그리고 정조가 무슨 말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메두사의 시선 - 예견하는 신화, 질주하는 과학, 성찰하는 철학
김용석 지음 / 푸른숲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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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과 과학과 신화가 만난다? 아무리 생각해도 묘한 조합이다. 조합 자체가 불가사의하고, 절대 불가능할 것 같다. 책의 표지에 적힌 각각의 특징은 이렇다. 예견하는 신화, 질주하는 과학, 성찰하는 철학. 이렇게 서로 다른 분야가 만나서 과연 어떤 것들을 만들어 낼 것인가? 그저 그렇고 그런 따로 국밥이 될 것인지, 아니면 모든 재료가 조화를 이루어 새로운 맛을 창조하는 비빔밥이 될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면서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금찍한 키메라를 만들어 낼 것인지? 설레임 반, 두려움 반으로 책을 폈다. 기대는 상상이상이다. 정말 재미있다. 만화책처럼 술술 넘어가는 철학책이 있을 줄이야. 첫페이지부터 시작하여 마지막 페이지까지 숨가쁘게 달렸다. 도대체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철학과 신화, 그리고 과학이 각자의 특징을 지키면서 상대방에 대하여 열린 태도로 임하게 될 때 세가지 모두가 풍성해 진다는 저자의 관점 때문이다. 저자는 머릿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신화-과학-철학의 연기는 각 분야의 개성을 전제한다는 점만 은유적으로 짚고 넘어간다. 신화는 즐겨 진리의 놀이를 하고, 과학은 아직 천진난만하게 자연의 거울이기를 바라며, 철학은 현실의 베일을 끊임없이 벗겼다 덮었다 한다.(P.5) 

  진리를 놀이로 말하는 신화, 자연을 비춰보면서 진리를 탐구하는 과학, 현실의 베일을 끊임없이 벗겼다 덮었다 하는 철학. 세가지가 상대방을 무시하고 갂아내리지 않고 용납할 때, 각자의 개성을 존중할 때 이렇게 재미있고 아름다운 책이 만들어 질 수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 이 책은 철저하게 이 관점으로 씌여졌기 때문이다. 철학과 신화와 과학을 접목했다는 구성뿐만이 아니라 주제 자체도 결국은 상대방을 용납하는 열린 자세가 우리가 추구해야할 덕목이라는 것이다. 

  이 서평의 제목이 되는 슬픈 미노타우로스는 이 책의 7장의 제목이다. 미노타우로스에 대한 전설은 이렇다. 크레타의 미노스 왕이 왕이 되기 전에 포세이돈 신에게 이런 기도를 한 적이 있다. "내가 신들의 가호를 받는다는 증거로 바다에서 황소를 보내주십시오. 그러면 그것을 잡아서 제물로 바치겠습니다." 포세이돈 신이 황소를 보내주었지만 그 황소가 너무 멋이 있어서 차마 잡을 수 가 없었던 미노스 왕은 다른 황소로 대신하여 제사를 드리고 그것을 자기의 소유로 삼았다. 화가 난 포세이돈 신이 벌을 내려 그의 아내 파시파에스는 황소에게 욕정을 느끼게 되고 다이달로스의 부탁을 받아 황소와 관계를 갖고 미노타우로스라는 반인반수를 낳게 된다. 미노스 왕은 다이달로스를 시켜 미로를 만들어 미노타우로스를 가두었고 크레타의 침공을 받은 아테네는 9년마다 남녀 7명식을 제물로 바치게 된다. 어느날 아테네 왕의 숨겨진 아들 테세우스가 자처하여 크레타의 미궁에 들어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게 된다. 이때 테세우스에게 반한 미노스 왕의 딸 아리아드는 실 한뭉치를 주었고 그 실 때문에 테세우스는 무사하게 미궁에서 빠져 나온다.  

  저자는 미노타우로스 신화를 영웅 테세우스가 아닌 미노타우로스에게 맞춘다. 자신이 원하지 않았지만 신의 벌을 받아 왕비와 황소 사이에서 태어나 미노스 왕에 의하여 미궁에 갇히고, 테세우스에 의하여 죽임당한 슬픈 존재 미노타우로스. 미노타우로스는 철저하게 타인에 의하여 타자화된 대상일 뿐이다. 인간과 황소 사이에서 태어난 키메라, 왕의 치부를 드러내는 존재, 인간이 아닌 몬스터, 흉폭한 괴물 등 온갖 악한 존재로 타자화 되었다. 그 결과 테세우스라는 영웅에 의하여 미노타우로스가 죽임을 당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가 된다. 만약 이 신화를 미노타우로스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어떻겠는가? 만약 자신과 다른 존재를 용납하지 못하고 가두어 버리는 미노스 왕의 옹졸함과 적으로 규정하고 제거해 버리는 테세우스의 과격함에 촛점을 맞춘다면 어떨까? 아마도 조지 프레드릭 와츠라는 화가는 이런 생각을 했나 보다. 런던 테이트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는 그의 작품 미노타우로스는 너무나 슬프고 처연하다. 128p에도 이 그림이 실려 있다. 

 

  너무나 슬픈 미노타우로스의 눈망울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왜 나를 이곳에 가두었는가? 내가 당신들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 그렇데 용납하기 어려운 일인가? 나를 당신들과 조금 다른 모습을 가진 존재로 이해하고 당신들의 공동체 일원으로 받아들여 줄 수는 없는 것인가?" 물론 외모라는 말을 입장이나 태도, 정치적인 견해 등으로 바꾸어도 무방하다. 저자는 슬픈 미노타우로스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공상 과학의 수준으로까지 생각을 넓히지 않더라도, 별난 개체들의 미래에 대한 물음은 생명체의 공존 능력에 관한 물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생명의 세계가 존재할 수 있는가에 관한 물음이며, 그것이 곧 존재론적인 것이다. 이는 '있음은 있다'라는 동일성 논리에 머무는 게 아니라, '함께 있을 수 있음이 곧 있음'이라는 것을 깨닫는 일이다. 동일자의 존재론이 아니라 차이로서 공존론이다. 개체와 개체들의 사이가 곧 차이라면, 각 가치는 차이들 사이에서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러려면 인간 중심주의를 체념해야 한다.(P.129 ~ 130)  

  결론은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말이다. 만약 공존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편가르기를 계속한다면 우리는 지속적으로 미노타우로스라는 존재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다. 현대 사회 속에서 우리가 만들어 내는 미노타우로스는 신화 속에 나오는 황소의 모습을 한 반인반수가 아니라 나와 입장을 달리하는 상대편이다. 미노타우로스를 만들어낸 우리는 용맹스러운 테세우스가 되어서 가꺼이 미노타우로스를 제거하려고 한다.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 테세우스들이 존재하는가? 자유주의라는 테세우스, 민주주의라는 테세우스, 시장주의라는 테세우스, 민족주의라는 테세우스, 지역주의라는 테세우스, 조중동이라는 테세우스 등등등. 이 많은 테세우스들은 기꺼이 미노타우로스를 만들어 낸다. 빨갱이라는 미노타우로스를 시작으로 하여 좌파 미노타우로스, 민노당 미노타우로스, 반기업 미노타우로스, 호남 미노타우로스 등등등. 사회 곳곳에 스스로가 아니라 타인에 의하여 타자화 된 미노타우로스들이 넘쳐 난다. 그리고 그들은 오늘도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려는 용맹한 테세우스들에 의하여 철저하게 배제 당하고 죽임을 당한다.  

  끊임없이 미노타우로스를 만들어 내는 체제. 이것이 바로 메두사의 시선이 아니겠는가? 사회 곳곳에서 느껴지는 메두사의 전투적인 시선 때문에 미노타우로스는 오늘도 슬프다. 그리고 오늘도 두려움에 떨며 하루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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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그레이효과 2010-05-12 0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용석 선생님의 <일상의 발견>이었나. 그걸 '진중문고'로 읽은 기억이 나네요. 그 이후로 도통 못 읽었는데..반가운 리뷰 잘 읽었습니다.^^

saint236 2010-05-12 09:51   좋아요 0 | URL
일상의 발견이라. 땡기는데요. 한번 구해서 읽어봐야겠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그런데 님 아이디를 예전부터 보면서 궁금했던 것인데 혹시 얼그레이가 홍차 얼그레이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