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인희의 북유럽 신화 2 - 죽음의 예언에서 라그나뢰크까지, 영원한 상징의 세계
안인희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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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 마블사의 만화 "천둥의 신 토르"가 영화화 되어 개봉됐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저 재미있게 봤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그 영화를 다시 돌아보는 것은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라그나로크(국내에서도 어쩐지 저녁의 이명진 작가의 동명의 만화가 있다. 나중에 인터넷 게임으로 만들어졌다.)의 플롯을 유지한다. 아스가르트의 반대 세력으로 로키를 전면에 내세운 것까지는 신화와 동일하나 세부 내용은 다르다. 신화에서 로키와 대항하는 신은 하임달(영화 중에 칼을 들고 중무장하고 서 있는 흑인 배우)이지만 영화에서는 단순한 선악의 구도를 위해서 토르와 대항하는 존재로 로키가 전면에 등장한다. 안소니 홉킨스가 오딘으로 등장했으며 토르는 몰니르를 빼앗기고 인간이 되어서 인간계로 추방된다.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적대 세력(아마도 신화의 거인족과 난쟁이족을 의미하는 것 같다) 디스트로이어라는 황당한 힘에 대항하기 위하여 토르는 묠니르를 얻기 위하여 갖은 고생을 한다. 그리고 묠니르를 얻고 원래의 힘을 회복한 토르는 무식한 본래의 모습대로 디스트로이어는 물론 로키까지도 무찌르고 천상과 지상에 평화를 가져 온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할리우드에서 토르와 라그나로크를 팔아먹은 전략이다. 할리우드는 신화의 커다란 모티브를 그대로 유지하지만 세부적인 것들은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볼거리로 바꾸어 버렸다. 거인족 대신에 왠 로봇이 등장할 때는 깜놀했다.  

  몇년전 유명했던 영화 반지의 제왕도 마찬가지이다. 톨킨이 북유럽 신화에서 중요한 모티브들을 따와서 만든 신화. 과거에는 모르고 지나갔던 것들이 다시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반지의 제왕도 마찬가지로 라그나로크라는 커다란 틀은 유지한다. 다만 선악의 대립이 신과 거인이 아니라 중간계와 요정의 연합군이라는 선과 트롤과 난쟁이 같은 지하 세계의 몬스터들을 지휘하는 사루만과 그를 배후에서 조종하는 사우론이라는 악으로 바뀐 정도? "마이 프레셔스"를 시도 때도 없이 외치는 골룸은 아마도 "안드바리"에게서 영감을 얻은 것이 아닐까? 나중에 나오는 유령 군단은 "무스펠의 아들들"에게서 혹은 "아인헤리"에게서 영감을 얻은 것이 아니겠는가? 

  이 뿐만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북유럽 신화의 원래 모습을 발견하기는 어렵지만 이들을 이리저리 비틀어서 가지고 노는 장면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일본 만화 중에 "오 나의 여신님"이라는 만화가 있다. 그 만화에 등장하는 세 명의 여신이 있는데 그들의 이름이 "올드, 베르단디, 스쿨드"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 아닌가? 그렇다. 북유럽 신화에서 운명의 실을 잣는 운명의 여긴 노르네들의 이름이다. 오딘의 명을 따라 죽은 전사들을 발할로 인도하는 처녀신들의 이름은 발키리이다. 발키리는 게임에서 종종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의 이름 내지는 직업이다. 비프뢰스트는 아스가르트로 들어가는 무지개 다리의 이름인데 이것은 창세기전이라는 국산 게임에 등장하는 비공정(비행기의 일종)의 이름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로 철저하게 북유럽 신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외에도 잘 몰라서 그렇지 우리 주변을 가만히 둘러보면 북유럽 신화의 그림자들이 수두룩하다. 거기에서 모티브를 따오기도 하고, 단순히 이름을 따오기도 하고, 재해석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가장 재미있게 만들어 팔고 있는 것이 할리우드요, 문화 산업이다. 그들의 상업성이 신화를 이리꼬고 저리꼬는 것이 아쉽고 거부감이 들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꼴 수 있는 그들의 능력이 한없이 부럽다. 그렇게 이리 꼬고 저리 꼬아서 팔아먹을 수 있는 것도 결국은 신화의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신화를 제대로 즐길 줄 안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그 내공이 한없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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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인희의 북유럽 신화 1 - 신들의 보물에서 반지전설까지, 시대를 초월한 상상력의 세계
안인희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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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회를 참 좋아한다. 생굴은 물론 익힌 굴도 비린내가 나서 싫다고 입에도 대지 않는 나이지만 유독 생선회는 정말 좋아한다. 곁들여 나오는 여러가지 음식들(스키다시)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오로지 회에만 집중해서 지인의 지갑을 상당히 가볍게 만든 일도 있다. 비린 것을 싫어하는 내가 왜 그렇게 회에 집중하게 되었는가? 회가 가지는 매력이 무엇이기 때문인가? 조리법 때문이다. 신선한 회는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말장난 같지만 회는 선이 살아있는 생선(生鮮)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선이 살아 있는 생선을 가지고 그것이 가지고 있는 재료 원래의 맛을 아주 감각적으로 끌어 내는 것이 회의 조리법이다. 일견 아무렇지도 않게 썰어 놓은 것 같지만 생선의 종류에 따라 회를 뜨는 칼의 종류도, 칼을 넣는 부위와 기술도 모두 다르다. 일례로 복어는 최대한 얇게 뒷면의 접시가 비칠 정도가 되어야 하지만 우럭이나 광어의 회는 약간 두툼한 것이 좋다. 복어처럼 회를 뜨면 우럭과 광어가 가지고 있는 맛이 사라져 버린다.(갑자기 침이...) 

  뜬금없이 회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 책을 보면서 비슷한 불만을 느꼈기 때문이다. 생선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맛을 가장 잘 끌어내는 것이 회를 조리하는 목표이듯이 나는 이 책이 북유럽 신화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맛을 잘 끌어냈기를 바랬다. 오딘, 토르, 로키 등등 북유럽 신화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투박함을 생생하게 전해 줄 것을 기대했는데 그 기대감이 철저하게 무너졌다. 막상 뚜껑을 열어본 책은 온갖 조미료로 뒤범벅이 되어 있는 매운탕이었다. 생선이 원래 가지고 있는 맛을 고춧가루와 미원 설탕 같은 양념들로 잔뜩 치장해 놓아 새로운 맛을 만들어낸 그러한 매운탕 말이다. 매운탕이 나름대로 맛은 있지만 생선 고유의 맛은 찾아보기 어려운 것처럼, 이 책은 북유럽 신화에 대하여 설명은 하고 있지만 북유럽 신화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투박함을 저자의 생각과 신화학이라는 온갖 양념으로 버무려 놓았다. 그 결과 북유럽 신화가 가지고 있는 그 맛이 사라져 버렸달까? 

  저자의 표현대로 북유럽 신화는 그리스 신화에 비하여 투박하다. 그리스 신화가 도시의 세련된 맛을 가지고 있다면 북유럽 신화는 촌의 순수함과 투박함이 아직 남아 있다. 아직은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사람들에 북유럽 신화가 가지고 있는 원래의 맛을 잘 느낄 수 있도록 원전을 충실하게 번역한다거나 혹은 줄거리를 자세하게 기록한다거나, 최소한 부록으로라도 중요한 내용들을 번역해서 붙여 놓는 것은 어떨까 생각한다. 그것도 아니라면 저자의 생각이나 판단을 과도하게 집어 넣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싶다.  

  북유럽 신화와 그리스 신화를 같을 수가 없다. 문화나 신화의 속 뜻이 아니라 순수하게 인지도라는 면에서 그렇다. 그리스 신화도 처음부터 그렇게 세련되었던 것은 아니다.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이 접하고 원문이 무엇인지 여러 번역을 통해서 접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평가나 해석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재료의 맛에 대해 어느 정도의 파악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비교적 잘 알려진 그리스 신화이기 때문에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와 같은 책들도 사색을 하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낯선 북유럽 신화를 이런 식으로 읽는다는 것은 자칫 신화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심어 줄 수 있는 위험부담이 크다. 마치 단군신화를 사회 시간에 배운 그대로 한기지로만 해석하는 한국 사람들처럼 말이다. 게다가 저자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故 이윤기 선생에 비하여 말발이 딸린다. 좀체로 집중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게다가 대약 270페이지 정도의 분량 가운데 40페이지는 거저 먹은 것 같아 아깝다. 저자의 말과 용어 해설은 1권이나 2권이나 동일하다. 편집도 그렇고 용지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15000원이라는 책값이 약간은 비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내용이 쉽다는 점에서는 초반 입문서로 권할만 한데, 저자의 판단과 개입이 많다는 점에서는 자칫 신화에 대한 선입견이 생길까 조심스럽다. 만약 북유럽 신화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소위 말하는 중급자 이상이라면 굳이 잃어야 할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북유럽 신화에 입믄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러한 점을 감안하고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일단 신화가 가지는 재미는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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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교양강의 - 자신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고 세상살이의 즐거움을 만끽하라 돌베개 동양고전강의 5
푸페이룽 지음, 정광훈 옮김 / 돌베개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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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자가 진심편에서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君子三樂)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첫째 즐거움은 양친이 다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요.(父母俱存 兄弟無故)

  둘째 즐거움은 우러러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고 구부려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요. (仰不傀於天 俯不作於人) 

  셋째 즐거움은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이다.(得天下英才 而敎育之) 

  이중 셋째 즐거움 "득천하영재 이교육지(得天下英才 而敎育之)"는 바로 맹자 자신을 가르치는 이야기가 아닐까? 만약 공자가 살아 있어서 맹자를 직접 가르쳤다면 바로 이러한 즐거움에 푹 빠져 살지 않았을까? 공자에게 두 가지 애석함이 있었다면 시대가 그를 알아보고 사용받지 못했다는 것이요, 둘째는 맹자와 같은 영재를 얻어 직접 가르치는 즐거움을 맛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맹자는 가르치는 재미가 쏠쏠한 영재요, 공자의 가르침을 잘 이해하고 나아가 발전시켰다. 오죽하면 유교를 일컬어 공맹의 도라고 하겠는가? 

  유교에서 맹자가 가지는 의미는 어떤 것인가? 그의 가르침은 굳이 내가 리뷰에서 하나하나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이고(책을 보면 알 것을 굳이 요약하고 싶지는 않다.), 그가 왜 공자의 뒤를 잇는 사람으로 인정되는지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공자를 일컬어 창업자라고 한다면 맹자는 개량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공자가 천재적인 번뜩임으로 인간의 도리에 대한 사상을 주창했다면, 맹자는 그렇게 내려온 가르침을 충분히 터득하고 체계화하고 더 쉽게 풀어냈다고 하겠다. 누가 더 천재적인 사람이냐를 묻는 것은 참 미련한 질문이겠지만 굳이 둘 중에 하나를 꼽아보자면 개인적으로는 공자에게 한표를 주고 싶다. 창조형 천재와 개량형 천재의 기가 막힌 조합은 가끔 놀라운 일들을 일으키는데 동양의 유교와 서양의 기독교가 가장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예수의 가르침이 바울을 만나 체계화되고 발전되어 널리 퍼져나갔듯이 공자의 가르침이 맹자를 통해 체계화되고 발전되고 널리 퍼져나갈 수 있었다. 이렇게 본다면 춘추 전국 시대 백가 중에서 사라져 버린 많은 사상들은 사상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맹자와 같은 걸출한 인물을 얻지 못한 불행에도 어느 정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맹자를 만나 체계화 된 유교는 이후 오랜 세월 동안, 심지어는 오늘까지 사회의 규범이 되었고, 근간이 되었다. 비록 저자가 주장하듯이 장구한 역사 속에서 많은 국가들이 유교를 간판으로 걸었지만 실제로는 법가에 기울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말이다.  

  다른 길로 빠지는 것 같지만 한가지 더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은, 저자의 강변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유교가 왜 고리타분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하는 점이다. 맹자와 같은 유형의 천재들이 계속 등장하지 못하고 과거에 매였기 때문이 아닐까? 철저하게 삶과 관련된 유교의 가르침을 달달 외워서 과거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얻으려는, 그래서 좋은 벼슬을 얻으려는 단기적인 이익을 목표로 일로매진했던 선비들이 대부분인 곳에서 유교가 딱딱하게 굳어져가고 생명력을 잃어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삼강오륜의 의미가 무엇인지, 실제 삶에서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지 않고 그저 문자적인 의미만을 머리 속에 집어 넣는 것이 과거 내가 경험한 유교 교육의 전부이다.) 오늘날 교육이 전혀 교육적이지 않고 공부 기계, 좋은 점수 획득을 위한 스킬을 습득하는데 올인한 결과가 어떤 것일지는 유교의 역사를 살펴 보는 것으로 충분히 예상 가능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참 묘한 것이 공자와 맹자의 관계가 "공자 교양 강의"와 "맹자 교양 강의"에서도 똑같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예전에 "공자 교양 강의"를 보고 난 후에 생선 토막을 보고 생선을 알았다고 하지 않듯이 토막토막 내 놓은 이 책을 보고 공자를 알았다고 할 수 없다고 평했었다. 새롭고 뭔가 심오한 가르침들을 담고 있지만 아무리 열심히 봐도 깔끔한 맛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은 유가의 가르침들을 10가지 주제에 맞추어서 유교에 대하여 깊이 공부하지 않은 일반인들도 알 수 있도록 깔끔하게 서술해 놓았다. 마음의 양식은 풍성하게 얻었는데도 군더더기를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다. 마치 냉모일을 한 그릇 먹고 난 후 배는 부르지만 입맛은 깔끔한 것처럼 말이다. 유교의 가르침에 대하여 입문 지식을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공자 교양 강의"보다는 "맹자 교양 강의"를 읽어 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ps.푸페이룽의 "장자 교양 강의"가 먼저 나왔는데 몰랐다가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저자의 글솜씨에 반해서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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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교양강의 돌베개 동양고전강의 4
리둥팡 지음, 문현선 옮김 / 돌베개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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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비, 관우, 장비, 제갈량, 손견, 손책, 주유, 감녕, 태사자, 노숙, 조조, 하후돈, 하후연, 조인, 조홍, 순욱, 순유, 가후, 정욱, 여포, 동탁, 이각, 곽사, 초선, 장료, 장합, 허저, 마초, 한수, 마등, 방덕, 방통...대략 생각나는 사람들의 이름만 이정도이다. 사실 더 생각이 나는데 리뷰를 사람들의 이름으로 전부 도배를 할 수 없는지라 여기에서 멈춘다.  

  서양 사람들이야 잘 모르겠지만 동양에서, 그것도 중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에서는 고전 중의 고전이요 상식 중의 상식이다. 도원결의와 관문 돌파를 읽으면서 의리를 배웠고, 관우와 장비의 죽음을 보면서 얼마나 애태웠는지 모른다. 제갈량의 출사표를 읽으면서 충성과 애국이란 이런 것임을 배웠고, 유비 중심의 저자의 관점을 보면서 비판적 시각이 필요함을 배웠으며,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사람들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반적인 삼국지와 이문열 평역의 삼국지, 거기에다가 이학인 씨의  조조 중심으로 다시 그린 창천항로라는 만화를 보면 저자의 관점이 역사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알게 된다. 한국 사람들에게 삼국지는 빼놓을 수 없는 고전 중의 고전이다. 그런데 의외로 한국 사람들은 나관중의 삼국지 연의를 정사 삼국지로 잘못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진수의 삼국지에다가 수많은 민간 설화를 짬뽕시켜 만든 재미있는 소설책이 삼국지 연의라는 사실을 알고 책을 읽는 사람도 드물고 설혹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 중에 어느 것이 사실이고 어느 것이 허구인지 알아 차리는 것은 매우 어렵다. 더군다나 정사조차도 누가 썼는지에 따라서 신빙성이 달라진다고 하니 중국사를 깊이 공부한 사람이 아닌 일반 독자로서는 더 알아채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나관중의 삼국지 연의를 사실로 믿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 아닌가? 

  여기에 반박하여 역사적인 진실을 밝힌다고 나온 책들이 대부분 딱딱하고 읽기가 재미없다는 사실 또한 일반인들로 하여금 나관중의 삼국지 연의를 아무 저항없이 받아들이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겉으로 보여지는 삼국지 교양 강의 또한 마찬가지다. 처음 이 책을 구매했을 때, 두께에, 다음으로는 교양이라는 말에 겁을 집어먹는다. 삼국지라는 말에 혹해서 샀지만 두께와 교양이라는 말 때문에 괜히 샀다는 후회가 밀려온다. 그런데 읽어가면서 이러한 두려움이 노파심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막대한 분량을 다루기에 600페이지는 어찌보면 부족하기도 하다. 중요한 인물 한 사람당 할당 된 페이지가 많아야 20~30페이지이니 두께는 두껍지만 그렇게 많은 분량이 아니다. 교양이라는 말에 딱딱한 강의를 생각했지만 이 책의 원제가 세설 삼국지(쉽게 말해 이야기 삼국지)이니 그렇게 딱딱하지만도 않다. 게다가 역사적인 사실을 주저리 주저리 늘어 놓는 역사 수업이 아니라 익히 잘 알고 있는 삼국지의 이야기와 배경을 설명하면서 그것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 사실 유무를 밝히니 읽기에 그렇게 딱딱하지도 않다. 게다가 지금까지 진수의 정사 삼국지가 전부라고 생각해 왔던 나에게 진수의 삼국지도 사실은 100% 믿을만한 것이 아님을 여러 역사책을 통하여 밝혀 주고 있으니 삼국지를 읽어가는 재미 도한 쏠쏠하다. 논어 교양 강의를 읽을 때와는 달리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한장씩 넘겨가며 읽어가는 재미에 어느샌가 600페이지가 넘어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다음으로 맹자 교양 강의를 살까 고민 중인데 그 책이 만약 이 책처럼 재미있게 읽힌다면 열일 제쳐두고 사고 볼 일이다. 

  역시 삼국지는 재미있다. 역사적인 내용을 알고 삼국지 연의의 사건들을 비판하면서 읽는 것 또한 재미있다. 게다가 이 책이 더 재미있는 이유는 이 책의 저자도 전통적인 중국인인지라 유비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 있기 때문에 책에 대한 저항감 또한 적다는 것이다. 이문열 평역의 삼국지를 읽을 때에는 이문열씨의 평역들이 괜히 딴지를 거는 것 같아서 불편했던 적이 많았다. 역시 어린 시절부터 머릿 속에 세뇌당한 것은 쉽게 변하지 않나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중국 지리에 빠삭한 중국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읽는 것이 더 쉽겠지만 중국 지리에 대해 문외한인 사람들은 지도를 보지 않고는 이해하기 어렵다. 춘추 전국 이야기 1권에 보면 춘추 전국 시대의 지도를 부록으로 제공해 줬었는데 이러한 배려가 조금 모자라는 것이 아쉽다. 

  오타를 찾는 것이 어느 순간부터 귀찮아져서 발견된 오타를 굳지 기록하지 않았는데 않았는데 책의 후반부에 자꾸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있어서 적어본다. 오타라기보다는 이름을 잘못 기록한 것 같아서 말이다. 조조 집안의 가계도를 이야기하면서 자꾸 조등과 조숭에 대하여 헷갈려 하는 것 같아서 말이다. 조숭은 조조의 아버지로 조등의 양자이다. 조숭이 하후씨가 아니라 아마 조등의 조카나 일가 피붙이였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 같은데 조숭 대신 자꾸 조등을 기록하고 있다. 545p 11번째 줄 "조등의 친하버지"는 "조숭의 친아버지" 같은 베이지 밑에서 7번째 줄 "조등의 친아버지"도 "조숭의 친아버지"가 문맥상 맞다. 저자의 실수인지 아니면 번역상의 실수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부분은 사소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부분이기에 주의를 기울여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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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데이지 2011-05-07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것에 대한 아쉬움을 생각했었어요..아~ 삼국지는 좋은데...중국지리에서 꽉 막혀버리는...ㅋㅋ

saint236 2011-05-08 10:50   좋아요 0 | URL
그렇죠. 지도에 대한 아쉬움이...좀 더 신경을 쓴다면 가계도나 사건에 대한 도표도 첨가하면 좋겠죠.
 
지식 e - 시즌 6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6
EBS 지식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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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번 기다려온 지식 e이다. 예약 이벤트를 할 때마다 어차피 사게 될 것을 몇번씩 고민해본다. 결국 이벤트로 끼워주는 DVD가 탐이나서 예약을 한다. 그래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어느 책들을 회를 더할수록 감동이 옅어지는데 이 책은 회를 더할수록 더 깊은 감동을 나에게 선사하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의 주제는 무엇일까? 사람다움이 아닐까? 도대체 사람답다는 것이 무엇이냐?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며 인간답게, 존엄하게 하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을 던지면서 지식e 시즌 6의 첫장을 연다. 

  "공짜 밥!" 

  항상 그렇지만 지식 e는 민감한 사안들로 첫 장을 연다. 그리고 결코 돌아가는 법이 없다. "공짜 밥"이라는 에필로그의 제목에 그냥 눈물이 왈칵 난다. 마음이 아려온다. 에필로그를 읽어가면서 아릿한 마음은 쪽팔림으로 바뀌어 간다. 그렇다. 괜시리 쪽팔리다.  


공짜 밥 

하필이면 왜 날까 이런 생각에 밤낮 고민합니다.
선생님 얼굴 보기가 부끄러워요. 

“새 학년이 될 때마다 이런 게 무섭습니다.
 담임선생님의 말씀과 가정 통신문을 볼 때마다 매우 떨립니다.”

“동사무소에 가서 한 부모가정 증명서라는 것을 떼어오라는데
 그런 거 떼는 거 어떻게 말해야 해요? 저, 진짜…바보같이
 부끄러움이 많고…정말 바보같이…좀 알려주세요.” 

“그러면 그냥 종이를 작게 접어서 손으로 안 보이게 가린 다음에
 선생님께 몰래 내세요.” 

“오늘도 엄마한테 전화하면서 울었습니다. 너무 창피하다고.” 

“선생님이 칠판에 ‘급식지원신청서 제출’이라고 쓰시기에
 가슴이 철렁했지요. 제 이름을 부르실까 봐요.” 

“아이들이 눈치채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요?
 경험자 분들 꼭 대답해주세요.” 

“진짜 급식비 지원받으라고 교무실로 부르는 거 싫어요.
 교무실에 가면 저랑 같이 급식비 지원받는 애들도 있고 창피하거든요.
 급식비 지원 안 받는 방법 좀 제발 알려 주세요.” 

“저는 제가 먼저 신청했어요. 지원 안 받는다고 하면 안 해줘요.
 님, 그럼 만날 점심 굶고 다니실 거예요?
 애들이 넌 왜 밥 안 먹냐고 하면 뭐라고 하실 건가요?
 창피한 건 잠깐이예요. 그 순간만 참으면 되고요.” 

그렇게 얻은
1,800원
2,500원
3,000원짜리 

“공짜 밥” 

“공짜로 먿는데 많이 먹을 땐
 다른 아이들한테 미안해요.” 

그리고… 

“지금 저보다 더 어렵게 사는 친구들도 많잖아요.
 나중에는 정부, 사회의 손이 안 미치는
 그런 애들을 찾아서 돕고 싶어요.”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기까지 얼만 많이 힘들어 했을 것이며, 얼마나 많이 창피했을까? 이제는 면역이 되어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하지만 왠지 공짜 밥을 먹는 것 같아서 친구들에게 미안해한다는 그 한마디에 그만 눈물이 났다. 왜 어린 나이에 먹고 사는 문제로 친구들에게 미안해 해야 하는걸까? 그것이 룰인 사회도 문제가 있지만 그 룰을 꿈을 키워가야 할 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더 큰 문제가 아닌가?  

  몇달 전에 신문에서 이런 자극적인 기사를 읽었던 적이 있다. 오세훈 시장 "내 팔뚝을 넣어서라도 무상급식을 막을 것" 도대체 그 놈의 팔뚝을 왜 무상급식을 막는데 넣는단 말인가? 배고픈 애들 뺨이라도 때리는데 그 대단하신 오시장님의 팔뚝을 사용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 너무나 당당하게 말하는 오시장의 사진에 침이라도 한번 뱉어주고 싶고, 욕이라도 한바가지 퍼 부어 주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어 속으로만 씩씩거렸다.  

  그 후로 며칠 뒤 큰 처형과 함께 무상급식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이 문제에 대하여 언급했고, 실제로 현장에서 교사로 일하는 처형은 무상급식은 문제라고 말했다. 절대로 처형이 오시장 팬이라서 그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보수적이라서 그런 것도 아니다. 현장에서 일하다보니 무엇인가 지금 이야기되는 무상급식의 미진한 점을 보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교육 현장에서 일하지 않는 나는 현실적인 것들을 잘 모르겠다. 그런 것들을 정책을 만드는 양반들이 알아서 할 일이고, 내가 기본적으로 고민하는 것은 지금이 먹고 살 것이 없어서 고생하는 60년대도 아니고 도처에 버려지는 음식들, 낭비되는 돈들이 많은데 왜 최소한 학생들이 먹고 사는 문제(그것도 점심 한끼)로 쪽팔리지 않도록 못해주는가라는 것이다. 그 정도도 안되는 대한민국이라면 G20이 무엇이고, 세계 무역 규모 13위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까짓거 개나 줘 버려라. 

  공짜 밥으로 시작하여 구제역으로 끝이 나는 이번 권은 정말 시리도록 눈물겹고, 그럼에도 아름다운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진선미라는 세 챕터로 구성된 6권을 읽어가며 무엇이 진이고,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선인지 고민해 본다.  

  진이란 무엇인가? 장기려 박사의 꼭지에서 진이란 인간의 도리와 상식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의사는 진실과 동정을 가지고 환자를 대하면 죽을 때까지 남에게 필요한 존재로 일할 수 있다."는 장기려 박사의 말, "창씨 개명을 한 장선생이 여전히 사람을 살리는 의사인 한 장기려는 나의 친구입니다. 하지만 창씨 개명을 하지 않았더라도 사람을 살리지 못하는 의사라면 장기려는 나의 친구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창씨개명을 거부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충실하지 못한 함석헌은 장기려의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라는 함선헌 선생의 말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진리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보여준다. 나는 과연 인간의 도리, 기독교인으로서의 도리를 잊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묻다가 창피해서 눈을 감는다.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소망하지만 세속의 때가 너무 많이 묻어 있음에 부끄러워 어디라도 숨고 싶다. 

  선이란 무엇인가? 안나 폴리트코프스카야의 말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발견한다. "물론 두렵습니다. 하지만 그 구덩이 안에서 알았습니다. 가장 절망적인 순간은 사태를 변화시키기 위해 어떤 말이나 행동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입니다." 그렇다. 선이란 진리의 실현을 위해서 용기를 가지고 무엇인가를 해 내는 모습이다. 이런 잣대로 오시장을 판단해 본다. 그는 선한가? 굳이 대답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현실의 벽 앞에서 순응하고 있지는 않은가? 사회가 주는 신화를 거부감없이 그저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은가?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용기를 가지고 진리의 길을 걸어간 그 사람들의 삶이 선이요, 희망이다. 

  미란 무엇인가? "강한 것이 아름답다"는 천박한 사상이 우리 안에 난무한다. 정말 강한 것이 아름다운 것인가? 권력자가, 부자가 아름다운 것인가? 상위 1%가 아름다운 것인가? 아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진을 실현하기 위해 선하게 살다가 넘어지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는 삶이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 진짜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다. 추신수, 슈마허, 밥 말리, 네루다, 패러데이, 메스너, 가우디와 후원자들, 워렌, 미치오가 아름다운 이유가 무엇인가? 실패에도, 현실을 막아선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칠전팔기의 정신으로 끊임없이 도전했기 때문이 아닌가? 설혹 그들이 실패했을지라도 도전하는 그들의 삶 자체가 진정한 아름다움이 아니겠는가?   

  지식이는 진선미에 대하여 내면의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진정한 진선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당신은 그 진선미를 실천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묻는다. 현실이라는 장벽, 이 사회가 던져주는 신화를 깨고 당당하게 앞으로 나갈 준비가 되어 있냐고 묻는다. 그렇기 때문에 추천사에서 지식e를 매트릭스에서 발견한 빨간약이라고 명명하고 있는 것이다.  

  자 이제 빨간약을 삼키고 깨어나자. 한 아이의 자존심마저도 팔뚝을 넣어서라도 막겠다는 자본의 매트릭스 속에서, 3개월만에 청정국 재진입을 위해 수십 수백만의 생명마저도 가볍게 살처분해 버리는 맘모니즘의 메트릭스 속에서, 진실을 요구하는 국민들에게 신화를 주입하고 믿을 것을 강요하는 신화의 매트릭스 속에서, 강한 것이 아름답다는 적자생존의 매트릭스 속에서 깨어나자. 지식e라는 빨간약을 먹고 매트릭스 속에서 깨어날 때 무엇인가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 변화가 희망으로, 보다 나은 내일로 이러지지 않겠는가? 

ps. 자기보다 못한 아이들이 너무나 많다고, 그래서 공짜 밥을 먹는 미안함을 나중에 그 아이들을 돕는 것으로 돌려 주겠다는 아이들의 말이 귓가에 계속 맴돌아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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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3-24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식e, 몇권은 제가 구입하고 몇권은 얻고 그랬었는데...요번 건 아직이에요.
공짜밥 얘기라니 꼭 봐야겠어요.
그래도 요즘은 선생님들도 많이 생각하고 궁리하셔서, 저희 아들 같은 경우 무상급식을 해야하는 애들 뿐만 아니고 모두에게 신청서를 적어오라고 하더라구요~

팔뚝을 물어뜯는 사냥견들 어디서 뭘하나 몰라요.
아직까지 그 팔뚝 멀쩡한 걸 보면...
하긴 요즘 개들도 생각 있어서 아무거나 먹지 않을지도~^^

saint236 2011-03-24 15:29   좋아요 0 | URL
글쎄 말입니다. 잘못먹으면 광견병 걸리니까요.

순오기 2011-03-29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는 무상급식이든 학비지원이든 모두 인터넷 원클릭으로 신청합니다.
아마도 원클릭 신청을 못해서 혜택을 못받는 아이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놓고 몇 군데 살펴보곤 아직 제대로 못 읽었어요.

saint236 2011-03-30 11:42   좋아요 0 | URL
다행입니다. 최소한 아이들의 마음이 다칠 일이 적어질테니까요. 물론 그래도 암암리에 선생님들이 신경쓰셔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