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공부 -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는 삶을 위한 가장 평범하지만 가장 적극적인 투쟁
장정일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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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흔 넘어 새삼 공부를 하게 된 이유는 우선 내 무지를 밝히기 위해서다. 극단으로 가기 위해, 확실하게 편들기 위해, 진짜 중용을 찾기 위해!”


 ‘공부 가운데 최상의 공부는 무지를 참을 수 없는 자발적인 욕구와 앎의 필요를 느껴서 하는 공부다.’(-서문-)고 말하는 『장정일의 공부』대한민국 10만 인을 공부시킨 우리 시대 인문학 고전이며, 출간 10주년 개정판이라고 한다. 늦게라도 자신의 ‘무지’를 되새기며 공부를 시작한다는 것은 대단히 용기 있는 행동이다. 우리에게 흔한 말이 된 ‘중용’이라는 단어를 대충 편하게 와전시켜 사용하는 단어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예를 들면, 모를 때는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 라는 말로 합리화시키면서 말이다. 어찌 보면 그냥 모르는 것을 시인하기 싫어서 감추기 위한 장치로 둔갑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많은 그의 저서들이 나왔지만, 왠지 강한 인상의 얼굴에 선뜻 다가서는 것이 쉽지 않아 처음 읽게 되는 장정일 작가의 책이다. 역시 입담이 세다. 거침없고 후련하다고 할까. 우리가 이미 겪은 IMF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생각지 못한 쪽의 시선으로 파헤쳐 드러낸다.


 이 책을 통해 박노자(귀화한 러시아인)는 처음 알게 되었는데, 외국인의 시선으로 한국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은 불편하면서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외국인'이라고 한다. 그는 '난 한국인'이고, 그가 귀화한 것은 스스로 한국사회에서 국적, 또 외국인과 내국인이라는 장벽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리트머스지가 될 것을 결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과 실험정신(?)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흔히 사이비 종교로 치부하는 여호와 증인들의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은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다. 살인을 하지 마라든가 종교적인 이념의 실천(?)으로 수감 중인 사람이 60년 건국 이래 1만 여 명이었다는데. 국민의 4대 의무에 속하는 병역의무에 대한 법률을 개정하지 않는 한 그들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옳다는 것을 어떤 원리로 설명할 것인가, 궁금해졌다. 또 ‘군대 문제는 사회 문제다’는 사안은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대체복무의 문제, 복종과 폭력으로 규제된 군대를 개혁하지 못하는가에 대해 박노자는 “한국 지배층이 그래도 징병제를 신성시하고 성역화 하는 것은, 그들이 ‘노동력의 질’보다 ‘노동력의 충성심과 맹종’을 더 중시”(『당신들의 대한민국』)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 군대에서는 전쟁을 치르지 않는데도, 연간 수백 명씩의 장병이 죽는다. 2000년도 국정감사에 의하면 매년 300여 명이 사망하고 그 중 100여 명이 자살했다. 매년 사고사, 의문사, 자살, 구타와 정신병으로 죽거나 다치는 숫자가 소규모 전쟁터에서 죽는 숫자보다 더 많다고 한다. 이러한 통계자료도 그렇지만, 현실에서도 잊을 만하면 들리면 군인의 사망 소식을 접할 때마다 안타깝다.

이러한 국가주의의 전횡을 당연시하는 한국인의 속성과 함께 그가 한국에 와서 받은 충격 가운데 하나는 유럽 사회나 러시아 지식인들이 당연시하는 비판적인 사회의식을 가지려면, 이 나라에서 ‘운동권’이라는 일종의 ‘반란자’ 대열게 속해야만 한다는 낯선 현실이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우리 사회에 익숙하게 젖어들어 외면하거나 정당한 것처럼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지도 모른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것을 외국인의 시선으로 본 관점이 오히려 정확하게 정곡을 찌르는 점에 놀라기도 한다. 어쩌면 저자가 서문에서 꺼낸 ‘중용’이라는 것에 타성적으로 빠져 사는 건 아닌가 싶다. 정작 잘 모르거나, 어려운 사안에 대해서는 무신경함으로써 중용을 지키는 삶을 살지는 않았을까.


 다양한 책을 읽은 독후감의 소견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렇게 단순한 주제만은 아니다. 교육, 군대문제, 조선 최고의 당쟁가 송시열, 세계대전에서 프랑스의 군사적 패배의 원인을 분석하는 등 다양한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레지스탕스 역사가 마르크 블로크의 입을 빌어 “이 세상은 새로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것”이라고 말한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과거의 추억에 집착하는 나른한 사고방식에서, 프랑스의 군사적 패배가 야기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또한 부르주아와 노동 계급의 반목, 정치에 대한 반감도 일조했음은 물론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사회란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 “개인들의 의식의 합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라고 묻는 ‘심성’에 대한 이야기는 사회, 국가에 대한 더 깊은 사유로 안내한다. 이렇게 사회 구성원의 ‘심성’을 만드는 수단은 “가치 체계의 합리적 변화”로 이끄는 교육이 자연스럽게 도마 위로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왕조시대에 약소국들의 일상이었던 ‘조공’이 지금도 행해지는 것을 알고는 놀라웠다. 바로 미국의 제국주의적인 행태이다. 미국이 참전하는 각종 전쟁에 군비를 각출하기, 미제 무기구입하기, 아랍의 석유 생산 지역을 미국의 통제권에 맡기고 미국의 다국적 석유 기업의 지위 인정하기, 달러를 세계의 기축 화폐로 인정하기 등이 전 세계로부터 거둬들이는 현대판 ‘조공’이라는 것이다. 외부 세계에 대한 정치적 지배를 통해서 안정적인 부를 축적한다는 것이다. 사회, 문화, 정치적 현상의 분석을 통해서 사회를 알아야 할 중요성을 인식하게 하고, 철학자 하이데거는 왜 나치에 가담하게 되었는지 배경을 설명하는 부분은 철학적 사유의 필요성을 안겨준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으로 모르고 넘어갈 뻔 했던, 조봉암을 둘러싼 이승만 정권의 권력을 위한 암투가 지저분하게 얼룩진 우리의 정치 현대사도 알게 되었다. 수동적으로 알았고 세뇌되었던 고정관념을 깨주는 통찰력 있는 시각에 접근할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언어학자로 알고 있던 촘스키가 실천하는 양심의 지식인이면서 이름난 반미주의자라는 사실도 경이로웠다. 진정한 공부란, 진정한 책읽기란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나로부터 시작하여 세상으로 시야를 넓혀주는 공부다.


 “나이 50 이전까지 나는 정말 한 마리 개와 같았다.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어 대자 나도 따라 짖어 댄 것일 뿐, 왜 그렇게 짖어 댔는지 까닭을 묻는다면, 그저 벙어리처럼 아무 말 없이 웃을 뿐이었다.”는 『분서』(焚書)의 저자이자, 중국 사상사 최대의 이단아 이탁오의 「성인의 가르침」이라는 이 짧은 글을 보고 눈물이 핑 돌았다는 장정일 작가. 우리 대다수도 멋모르고 남을 따라 휩쓸리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은 지 돌아다 볼 일이다. ‘왜?’라는 질문으로 스스로를 다지며 살아가는 태도와 자세가 절실하지 않을까, 생각되는 의미 있는 공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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