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소본능 - 환경부 2018 우수과학도서 선정, 국립중앙도서관 2018년 휴가철에 읽기 좋은 도서 선정
베른트 하인리히 지음, 이경아 옮김 / 더숲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저자 베른트 하인리히가 우리 시대의 소로’, ‘현대의 시튼으로 평가받는다는 문구만으로도 이 책에 대한 호기심은 나의 마음을 끌기에 충분했다. 지난 10월 초, 묵은 숙제 같았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읽고도, 아직도 잔물결 같은 여운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월든>이 자연주의와 참다운 인생의 길을 제시한 책이라면, 이 작품은 생물학자인 저자가 자연 속에서 살면서 투철한 직업의식에 대한 깊은 애정이 담긴 탐사 기록이라 할까. 실제로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메인주는 미국에서 가장 큰 삼림지대이며, 소로와 니어링 부부 등 많은 자연주의자들이 사랑했던 지역이었다. 늘 마음의 고향인 그 메인 숲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던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들이 본능적으로 특정 장소를 찾는 현상을 마주하면서 깊은 과학적 탐구를 시작한다.


 많은 이들이 한 번쯤은 지난 날 살던 곳이 궁금하거나 그리워서 찾아갔던 적이 있을 것이다. 고향은 말할 것도 없고, 고향이 아니더라도 어떤 특별한 추억이 깃든 곳이라면 살아가는 내내 마음속에 다시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십 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신혼 살림을 살던 여수에 다녀온 적이 있다. 거기서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내 고향에서는 볼 수 없는 깨끗하고 푸른 바다가 있었고, 정겨운 이런저런 추억이 많았다. 시립합창단원 이었던 남편의 공연을 보러 갔던 일, 클래식 음악 동호회에 음악 감상을 하러 갔던 기억,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동백꽃과 운치 있는 향일암이 있다. 우리 큰 아이가 생후 2개월쯤 되었을 때 이사를 왔다. 우리 가족이 동해안 여행을 하는 중에 들러본 우리가 살던 아파트는 그대로 있었고, 아이들도 신기해하였다. 이처럼 삶에 켜켜이 주름진 추억들이 우리를 부르는 건 아닐까 싶다.


 저자도 소로의 삶에서 어떤 영감을 얻었을까. 소로처럼 메인주의 숲에 오두막을 짓고 곤충들을 비롯하여 여러 동물들이 있는 자연 속에 온 감각을 기울인다. ‘귀소성을 주제로 한 자료를 수집하고 있던 중 고향이나 귀소성은 어떤 연관이 있는 건 아닐까 여기던 것이 이 책을 집필하는 계기가 된다. ‘귀소성이란 생존과 번식에 적합한 장소를 찾아 이동하고, 그렇게 찾아낸 곳을 자신의 필요에 맞게 만들고, 떠나갔던 보금자리를 찾아 되돌아오는 능력이라고 한다.


 1부는 태어난 곳, 옛집으로 귀향하다, 2부는 동물들이 집을 짓고 가꾸는 법, 3부는 왜 회귀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되어있다. 곤충이나 조류 등 여러 동물들의 귀향의 여정을 보여준다. 캐나다두루미 부부, ,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하는 제왕나비, 큰흰배슴새, 큰뒷부리도요, 정원솔새, 1만 킬로미터의 대장정을 거쳐 20년이 지나서 자기가 태어난 해변 근처로 되돌아온다는 붉은 바다거북 등 여러 사례를 보여준다. 밀폐된 상자에 넣어 기차와 비행기로 운반된 큰희배슴새는 어떻게 영국에 있는 자기 둥지로 돌아왔을까 놀랍기만 하다. 알래스카에서 호주까지 먹이는커녕 물도 안마시고 잠도 안자고 한 번도 쉬지 않고 비행한다는 큰뒷부리도요는 비행을 마쳤을 때 체중은 처음보다 절반 가까이 줄어들어 있었다. 이렇게 생명의 위험까지도 무릅쓰고 귀향하는 새들의 욕구와 몰입은 어떤 이유일까, 경이로움 그 자체다.


 새들이 떠나는 궁극적인 이유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먹이를 찾아 이동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겨울에는 먹을 것이 없는 환경적 조건 때문에 이동을 통해 욕구를 충족하고 행동 또한 여기에 맞춰 진화하며 적응해 왔을 것으로 추측한다. 인간과 오랫동안 친숙한 비둘기는 귀소성의 수많은 양상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 주었으며, 집에 대한 애착이 아주 강하다. 제비도 마찬가지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어릴 적, 처마 밑에 제비가 집을 짓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젖은 흙과 지푸라기 등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조합하여 어쩌면 그렇게 튼튼한 집을 지을 수 있을까. 모양 또한 예술이다. 이 책에서도 동물의 집짓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여러 곤충과 새들의 둥지 그림을 보여주는데 마치 예술품처럼 정교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보통 동물의 집과 집짓기 행위는 생존과 번식에 필수적인 특징일 텐데도 동물의 행동양식을 주제로 한 책 중에는 집짓기를 언급한 사례가 지극히 드물다고 한다.


 오랜 세월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방송 프로그램 동물의 왕국이 생각난다.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탐구정신으로 카메라에 포착된 실감나는 생생한 영상. 이 책 또한 저자의 세밀하고 집요한 땀과 노력의 결실이다. 함께 동거하며 관찰했던 헛간거미 샬롯에 대한 애정을 말하는 데는 웃음이 난다. 천생 생물학자다. 현대는 자신이 나고 자란 보금자리에 대한 정서적 유대는 느슨해지고 그 대용품에 대한 유대관계는 강화되는 경향이 있고, 옛날보다 자신을 키워준 지구에 막대한 해를 끼치는 쪽으로 바뀌었다는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새의 둥지는 상당한 비용과 기술을 필요로 하는 소중한 재산 목록일 수도 있다. 그럴 경우 둥지는 암컷을 두고 경쟁하는 혼수품이 되기도 한다.’(P178) 이처럼 집이란 대상은 동물의 세계나 인간의 삶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행복과 생존을 위한 본능, 귀소는 동물이든 인간이든 마찬가지다. 선천적인 방향정위 능력의 부족은 인간이 집에 머무는 걸 좋아하도록 진화했다는 증거라고 한다. 집이란 과거에 대한 이해, 미래에 대한 희망과 계획이 공존하는 곳이라는 저자의 생각에 깊은 공감이 간다. 그러면서 기억과 감정을 갖는 능력이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아메리카딱새가 겨울나기를 위해 떠나기 전 유난스레 울던 날, 마음에 드는 장소를 찾아두고 그곳을 기억에 저장하면서 이듬해 봄 둥지를 틀기 위해 되돌아왔을 때 기억이 되살아나기를 갈망하는 듯한 기억과 감정을 엿보았다는 저자. 자연에서의 삶의 기록이 시적인 문장으로, 유려한 필체로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사슴 사냥을 통해 얻는 기쁨, 놀람, 죄책감이 있는 슬픔도 솔직하고 담담하게. 주변에 흔한 거미줄을 보면 이제는 예사로 보이지 않을 것 같다. 미관상 좋지 않다고 마구 걷어냈던 행동이 좀 꺼려질 것 같다. 몰랐던 뭔가를 알아간다는 것은 아마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생물에 대한 이해와 관심의 폭이 넓어지는 것이 아닐까.


  

                    내가 이 여행을 통해 실제로 얻게 될 소득은

                       다소 진부한 깨달음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세상에 집만 한 곳이 없다는 사실이다.

                                             -213P-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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