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이야기 11 - 초한쟁패, 엇갈린 영웅의 꿈 춘추전국이야기 11
공원국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오늘날 중국’의 기틀이 되었다고 볼 수 있는 춘추전국시대란 기원전 770()나라가 융족에 밀려 동쪽 낙양(낙읍)으로 옮겨온 시대부터 ()이 전국을 통일한 기원전 221년까지 대략 550년의 기간을 의미한다. 그 중 이 작품은 진시황 2(영호해)의 실정으로 혼란해진 진나라 말기부터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는 과정의 영웅들의 피비린내 나는 각축전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일전에 <전국칠웅>을 통해서 춘추전국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 참혹한 전쟁으로 점철되었고, 다양한 인물 군상이 활약했음을 알 수 있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하듯이, 이는 시대적 요구였다.


 열 한 권의 시리즈로 구성된 작품 중 맨 마지막 권인 이 작품은 역발산기개세의 항우와 유방의 불꽃 튀는 대접전 초한쟁패의 결정적 순간들을 담아 놓았다. 피상적으로만 알았던 항우와 유방의 대결을 세세히 알게 되었다. 다른 역사서와 달리 저자의 의견과 해석이 언급되어 있는 점이 색다르다. 그는 관중이든 유방이든 옛 왕조 시대의 지도자들은 본질적으로 착취자들이라고 하면서 인류의 역사를 바꾼 이들은 무결한 成人(성인)들이 아니라 사리를 취하면서도 가끔 공익을 생각했던 사람들, 바로 次善(차선)의 인물들이라고 말한다. 이를 대변해 주듯이, 유방의 성품은 오만방자했다고 한다. 법을 어기는 것도 부지기수였고. 반면, 신의가 있고 실질을 숭상했으며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었다. 그런 유방에게는 인재가 많았다. 살림꾼 소하, 번쾌와 조참, 판세를 읽을 줄 아는 장량과 역이기, 또 소하의 간청으로 천하의 명장 한신이 들어온다. 한신의 출병으로 조와 연을 장악하고, 역이기로 하여금 제를 항복시키는데. 승승장구하는 장수 옆에는 항상 이를 시기하는 자가 있다. 책사 괴철의 꼬드김에 넘어간 한신은, 이미 항복을 받은 제를 공격하고, 애꿎은 시기는 역이기를 죽게 했으며, 왕으로 봉해 달라는 속내를 내보인다. 이로써 한신은 유방에게 불신의 씨앗을 남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항우는 질투심이 강하고 의심이 많으며, 성품이 포학하기 이를 데 없었다. 화가 나면 더욱 통제하지 못하고 사람 죽이는 것을 밥 먹듯 하였다. 맹약을 어기고 의제를 시해했으며, 신안에서 항복한 진의 병사 20만 명을 파묻었다. 이 들 다수는 여산의 형도였거나 노비의 자식들로서 군공을 세워 양민이 되어 새 출발을 하고 싶었던 사람들이다. ‘사람의 마음을 잃으면 천하를 잃는다는 진리를 가벼이 여긴 항우의 만행은 관중 사람들과 철천지원수가 된다. 공이 있으면 기억하지 않으면서 죄가 있으면 잊지 않고 원한을 갚는 등 상벌을 공정하게 처리하지 않았다. 위나라 위문후 때, 오기와 상앙이 떠났듯이 인재는 떠나기 마련이다.


상앙의 철저한 법가(法家)적 설계를 바탕으로 최초의 천하 통일을 했던 진()은 왜 망했을까. 가의는 진의 잘못을 이렇게 꾸짖는다.


(중략) 천하를 한 집으로 아우르고 효산과 함곡관을 궁으로 삼은 진이 일개 필부가 난을 일으키자 7대의 묘당이 무너지고 마지막 황제는 남의 손에 죽음을 당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왜 그랬던가? 어진 마음으로 베풀지 않았기 때문이요, 공격할 때와 지킬 때의 형세가 달랐기 때문이다.”

진은 전국을 통일하고 천하의 왕 노릇을 하면서도 전국시대의 방식을 바꾸지 않고 그대의 정치를 바꾸지 않았다.”


 오랜 전쟁으로 지친 인민들을 아낄 줄 몰랐고, 윗사람은 도리를 버렸으며 의심했다. 의심은 배반을 낳고 그렇게 안에서 무너진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으면 그 각오에 맞게 마음가짐도 바꾸어야 하는데, 옛날의 나쁜 버릇을 고수하는 경향이 있다. 썩을 대로 썩은 악습과 폐습을 버리지 않으면 그것을 백성이 그냥 두지 않는다. 봉기를 일으켜서 세상을 뒤집는 것이다.


 함양에 입성한 유방은, 진의 가혹한 법에 시달린 백성을 위하여 유방은 약법삼장을 선포한다. 이는 한나라 400년의 기반이 되었으며 당대 인민들의 염원을 대표하는 표어였다. 진의 지배 세력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흡수했으며, 점령자 보다는 해방자의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항우와 대비되는 유방의 관용을 베풀었다. 진을 무너뜨린 주역은 항우였지만, 새 시대의 주역은 유방이다. 이렇게 유방이 사람의 마음을 사는 방식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자신을 던져버림으로써, 그 감화(感化)로 운명을 같이 하는 공동체가 된다는 것이다.

 

(중략)내가 천하를 얻고 항씨가 천하를 잃은 까닭이 무엇인가?”라고 유방이 묻자, 고기(高起)와 왕릉은 폐하는 군공을 세운 자에게 이익을 같이 했지만, 항우는 능자를 시기하며 공이 있는 자를 해치고 현명한 자를 의심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에 유방은,


공들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다. 대저 군막 안에서 계책을 운용하여 천 리 밖에서 승리를 결정하는 일이라면 내가 자방보다 못하다. 국가를 안정시키고 백성을 다독여 군량을 공급하고 양도가 끊어지지 않게 하는 일이라면 내가 소하만 못하다. 100만 병력을 운용하여 싸우면 반드시 이기고 공격하면 반드시 취하는 바는 내가 한신보다 못하다. 이 셋은 모두 인걸이나 내가 능히 쓸 수 있었기에 천하를 취한 것이다. 항우는 범증 하나가 있었으나 그마저 쓰지 못했으니 나의 포로가 되었다.”(P253)고 대답한다 유방은 출신을 묻지 않고 남의 험담에 솔깃하지 않았으며, 제환공의 풍모를 갖고 있었다. 이것도 어찌 보면 평민 출신이었던 유방의 대담한 성격과 포용력이 좋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혼자서 모든 정치를 맡아서 해낼 수는 없다. 또 도덕적으로 고결한 인품만으로 정치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그와 더불어 전문가의 혜안과 결단력을 갖추었다면 금상첨화라고 할 수 있지만. 그 분야의 전문가를 적재적소에 기용할 수 있는 인재등용의 방법을 알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혁신적인 이는 그의 수하들이 아니라 유방 자신이었다는 것.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먼저 변화시키는 것이 가장 빠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평범이란 다수의 마음이고 절대 다수는 영원히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결국 유방은 평범함 속에 비범함을 갖춘 위대한 인물이었다. 맨 마지막 장의 법으로 본 진()과 한()’의 본질적인 차이를 진한(秦漢) 제국의 법제사를 다루는 논문들의 예를 언급하며 비교분석하는 부분도 매우 유익하다고 생각된다.


 상상과 허구를 바탕으로 쓴 역사소설은 아니다. 한서,고제기등을 비롯한 다양한 역사적 사료와 철저한 고증과 더불어 저자 관점의 해석으로, 기존의 역사를 다른 시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 장점이 이야기 속으로 파고드는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 군데군데 오자(誤字)와 탈자(脫字)가 보이는 것도 아쉬움이다. 이 시리즈를 완성하기 위해, 7년이나 되는 긴 시간 동안 공을 들였다고 한다. 저자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춘추전국 시대를 살았던 다양한 인물 군상들의 삶이 생생하게 재현되어 있다. 세월은 흘렀어도 고래(古來)의 전쟁터 같은 삶의 현장은 외관만 조금 달라졌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가혹하고 지난한 역사 속에서 인생을 읽어내는 단초가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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