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의 상상력 - 어느 민주공화국의 역사
심용환 지음 / 사계절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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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역사가 그 나라의 헌법을 만든다’(p35)

이 책은 우리나라의 헌법이 그 동안 아홉 차례에 걸쳐 바뀌어온 과정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를 미국, 독일, 일본, 프랑스, 칠레, 북유럽의 헌법의 역사적 배경과 비교하고, 동서양의 철학과 역사를 비추어 쓴 글이다.


 1948년 7월 17일 제헌헌법 이후 1987년 9차 개헌으로 현재의 헌법은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여러 가지 혼란과 위기를 겪으면서 ‘제헌헌법’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면서 각광을 받는 이유는 우리 역사 유래에서 찾기 힘들 정도로 헌법의 의미를 고민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했던 국회의원들의 헌신적인 열정의 결과라고 한다.(p42)


 권력 분립의 문제로 볼 때는 대통령중심제인가 의원내각제인가의 문제가 된다.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자유․ 평등․ 노동․ 복지에 관심을 보이겠지만, 모든 정치인은 경쟁을 통해서 권력을 확보하는 것이 최고의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승만이 정치적 승리를 거두면서 제헌헌법은 대통령중심제로 확정된 것이다. 애초에는 제헌헌법의 원안은 의원내각제였다고 한다.


‘최대의 자유에서 참주가 탄생하며 가장 부당하고 가혹한 노예상태가 생깁니다.’(p71)

키케로의 『국가론』에 나오는 말이다. 참주정은 요즘의 독재정권과 비슷한 개념으로 인민에게 부여된 자유가 왜곡되고 낭비될 때 독재자가 등장한다고 한다. 달리 말하면 무책임한 시민의식이 만연하면 독재의 토양이 된다는 말이다. 오랜 독재를 경험했던 우리 정치 현대사에서 꼭 기억해야 할 부분이 될 것이다.

국가는 법에 의해 운영된다. 법이 정의를 이루는 수단으로 바로 서 있고, 국민은 도덕과 정의를 추구할 때 올바른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주권(통치권)과 정무직(관료), 헌법(법률)과 집행자(행정부)는 세상을 존속케 하는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이것들 없이 문명이 유지된 적은 없습니다.’(p74) 키케로는 구체적인 법률을 기술했으며, 공화정을 지키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2차 삼두정치를 이끈 군인정치가 안토니우스에 의해 죽고 만다. 현실은 언제나 헌법을 배반하려고 하며, 헌법만으로 현실을 통제할 수 없다는 아이러니에 봉착한다. 헌법을 수호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걸맞는 현실을 제도적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이유다.


 독일의 ‘바이마르 헌법’은 헌법학자 휴고 프로이스가 헌법 기초안을 마련하는데, 국민주권․ 국민평등․ 의회주의․ 법치주의에 기초하여 완성한다. 우리나라의 제헌헌법은 이 바이마르 헌법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며, 매우 이상적인 헌법으로 인정을 받는 실정이라고 했다. 현대법과 내용면에서 가장 유사하다고 하는데, 바이마르공화국만큼 허약한 나라 또한 찾기 힘들다고 한다. 히틀러 시대가 도래 했기 때문이다. 우리 또한 1950년 대한민국 신생 정부가 만들어지고 2년 만에 끔찍한 전쟁이 일어나고 두 차례나 헌법이 수정된다. 그것은 헌법이 훌륭하다고 해서 좋은 나라로 저절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고 현실에서 뒷받침 되어야만 같이 상승효과로 작용한다는 증거다.


 이승만 정권의 사사오입개헌, 네 번째 선거에서 심각한 부정선거 저지른 끝에 4․19혁명으로 인해 무너지고 만다. 권력을 무제한 독점하기 위하여 꼼수를 쓰는 등 정권에 대한 야욕 뒤에는 국민들이 신음한다. 그냥 내버려 두지 않고 반드시 혁명이 뒤따르게 되는 것이다. 그 후로 유신정권, 1980년 5․17군사쿠데타에 이어 들어서는 새 정권도 다시 헌법 개정이 확정된다. 명분이야 언제나 뻔한 것이다. 권력을 독점하고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기 위해서다. 전 정권과 다를 것 같지만 비슷한 양상으로 되풀이 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면서도 사회복지 관련 조항이나, 제119조부터 제127조까지 경제조항의 거의 모든 주어가 ‘국가’로 되어 있는 점은 독재 권력 시대의 잔재라고 한다. 주권자 중심으로 서술되어야 함이다. 또한 사법부 관련 조항도 대통령의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70년 동안 헌법은 9번 바뀌었고, 대부분이 정권 연장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된 점, 헌법을 왜곡했던 주체는 대통령이었다. 시대는 많이 변화하였으며, 2016년 촛불혁명을 통해 민주주의의 질적인 성숙도가 확연히 나타난다. 저자는 이제 우리의 역사에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며, 우리가 꿈꾸는 현실을 반드시 ‘헌법 속에 담아내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다. 이 책은 ‘그동안 수입품에 머물러 있던 우리 헌법이 이제 이 땅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며 시민들의 일상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시민들에게 헌법의 역사를 이렇게 쉽게 알려주는 책이 나온 게 고마울 뿐이다.’(추천사/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라고 할 만큼 친절하게 여러 나라의 헌법의 역사와 비교하여 설명하고 있다. 정의로운 나라, 복지국가를 꿈꾸는 국민이라면 한 나라의 운영의 근본이 되는 헌법을 알고자 힘써야 할 것이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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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왜 대통령다운 대통령을 뽑지 못하는가? - 우리가 지도자를 판단하는 명확한 기준
이연주 지음 / 슬로디미디어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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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시국이 어찌하여 이러한 결과가 되었는지 분석하고 공부해야 할 딱 맞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지은이 이연주는 인적자원개발학을 전공했고, 행동과학훈련원과 한국리더십훈련원에서 기업과 조직구성원을 대상으로 20년 이상 교육프로그램 개발 및 강의 활동을 해왔다. 주로 코칭 리더십, 인간유형이론 및 DISC, 갈등 관리와 커뮤니케이션 통로 구축 등의 강의를 한다.


 우리가 매번 정치에 실망하는 이유는 바람직한 지도자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언론이 보여주는 모습(p14)을 보고 선택하기 때문이다. 최선은 아니라도 최악이 아닌 대통령을 뽑으려면 최소한 2가지 기준이 필요한데, 하나는 지난 과거를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알아야 하고, 두 번째는 얼마나 정직한지 알아야 한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DISC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정치지도자의 성격유형을 분석한다. 이것은 환경에 대한 인간의 인식으로부터 인간행동을 이론화한 윌리엄 몰턴 마스턴(William Moulton Marston) 박사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미국의 세계적인 교육기관인 칼슨 러닝(Carlson Learning)사와 존 가이어(John Geier) 박사 연구팀이 개발한 인간유형이론이다. 인간을 4가지 유형(주도형, 사교형, 안정형, 신중형)으로 분류하여 그 유형의 일반적 성향과 행동 특성, 추구하는 가치, 스트레스 상황에서의 행동 등을 예측한다.(p17)


 4가지 유형을 간단히 살펴보자.

주도형(D형)은 1970~1980년대 경제성장을 이끈 리더들의 모습이 대표적이고, 도전정신이 강하고 결단력으로 목표를 달성하는 유형이다. 사교형((I형)은 외향적이고 솔직한 소통을 중요시 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존재감과 영향력을 확인하려 하고 이미지와 역할 중시한다. 안정형(S형)은 내향적이지만, 타인들에게 관심이 많고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노력한다. 솔선수범하고 겸손한 자세로 영향력을 발휘한다. 신중형(C형)은 내향적이고 일을 중시한다. 높은 전문성과 논리성을 바탕으로 자기 확신이 강하다. 주변의 비판이나 감정에 잘 흔들리지 않는다.


  DISC는 7가지의 행동 특징에 대한 설명으로 정치지도자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통찰도 갖게 해준다고 한다. 그 7가지 항목은 1.동기가 무엇인가? 2.두려움은 무엇인가? 3.선호하는 환경은 무엇인가? 4.갈등상황에서 어떻게 하는가? 5.남용현상은 무엇인가? 6.의사소통 방식은 무엇인가? 7.효과증진책은 무엇인가? 이다. 각 유형의 지도자의 행동특성에 따라 추진하는 국가정책의 성공 여부, 국가의 안보문제가 걸려있는 대북관계 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하겠다.


 한 국가의 지도자는 국가와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직성이 요구된다. 정직성이 낮으면 2가지의 큰 해악이 따른다. 그런 지도자의 주변에는 똑같이 정직성이 낮은 관료와 아첨하는 무리들의 권력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 들 것이다. 또 국민이 정치지도자를 불신하듯이 국민들 간의 신뢰가 약해지고 공권력 약화와 도덕적 해이를 초래한다. 그러므로 지도자의 정직성은 복지국가로 가는 제일의 조건이다. 우리나라의 현 시국의 상황을 야기한 박근혜 · 최순실 사태는 정치지도자의 정직성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결과이다.


 정직성과 관련하여 그 높고 낮음을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 정직성이 낮은 단서들을 보면, 차별적인 발언을 내뱉는 사람들, 범죄 및 뇌물수수, 횡령 등 범죄경력, 거짓말하는 사람, 물질만능주의와 선별적 태도,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이다. 그 중 정치인의 거짓말에 대한 “모든 정치인은 거짓말을 한다. 그런데 유독 더 심한 사람이 있다.”(2015년 뉴욕타임스)라는 재미있는 칼럼이 실렸는데, 정치인의 일반화된 특성을 잘 표현해 주는 말 같다. 또 정치권에서 흔히 사용하는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p40)는 것에서 대체로 보수가 진보보다 덜 정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직성이 높은 단서들은 자신보다 약자를 어떻게 대하는지, 법을 잘 지키는지, 돈과 시간을 어디에 어떻게 쓰는지 살펴야한다는 것이다. 이 밖에 높은 지위와 신분, 세련된 옷차림과 매너, 종교적 신실함과 공개적 기부 등은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하지만 정직성과는 큰 관련이 없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주도형(D형)-Dominance

사교형(I형)-Influence

안정형(S형)-Steadiness

신중형(C형)-Conscientiousness


 위의 유형은 바람직한 정치지도자를 선출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는 도구이다.

DISC로 분석한 박근혜와 최순실의 관계를 분석한 글은 참 명쾌하고 재미있다. 박근혜는 신중형이다. 박근혜 스타일이라는 헤어스타일과 옷의 디자인이 일정한 것은 신중형의 모습을 잘 보여준 예라고 한다. 일정한 규칙이 있는 삶, 자기만의 신념이나 원칙의 수호자가 된다. 깊이를 추구하기 때문에 관심사항이 넓지 못하고 다양하지 않다. 가까이서 지켜본 전여옥은 그녀가 지적수준이 높지도 않고 독서의 폭도 한정되어 있다고 한다. 청와대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자란 탓에 실패나 문제 해결의 다양한 경험도 제한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장 배경은 신중형이 좁은 소견을 갖게 되므로 가장 피해야 할 리더의 조건이라는 것이다. 반면 최순실의 유형은 주도형이다. 최순실이 미르재단, K스포츠, 비덱 등 여러 재단과 사업체로 권한을 확대한 점, 대통령의 지위를 호가호위하여 인사권까지 휘두르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 점이 그 예다. 결국 가장 피해야 할 리더가 국가의 리더가 된 결과 우리는 현 시국을 맞이하였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대통령이나 정치지도자 후보에 대한 책이 다수 출간되고 있다. 이러한 책이 좀 더 일찍 출간되어 국민들 사이게 널리 읽혀졌다면 좀 더 바람직한 지도자를 뽑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 텐데. 이 책이 나온 것도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시국 덕분이 아닐까. 국민 각자가 언론에 비치는 후보자를 그대로 믿을 것이 아니라 한 나라의 살림을 온전히 수행하고 성장하는 국가 기틀을 마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인지 잘 분석하는 힘을 키워야 할 것이다. ‘헬조선’ 이라는 단어가 그냥 나온 것은 아닐 것이다. 정치권의 불신과 그로 인한 삶의 녹록치 않은 것도 악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요즘 언론에 자주 노출되는 주요 후보들의 행동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신문, 잡지의 기사, 뉴스기사, 인터뷰 등 방대한 자료를 참고하여 주요 정치리더 후보들의 삶의 행적, 행동 특징을 표현한 글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인간은 잘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외형적인 특성은 일정한 패턴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습관화되어서 미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아쉽지만, 이제라도 널리 알려져 차후에 제대로 된 정치지도자를 뽑는데 중요한 단초를 제공하는 책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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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처럼 신화 - 스토리텔링 세계신화 아시아클래식 7
김남일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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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는 신화라면 인간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우리 인간 세계와는 좀 먼 세계의 이야기로 생각했는데,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다시금 들었던 생각은 신화란 알게 모르게 우리 삶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참 신기하다. 아스라한 기억 저편에 유년의 기억이 떠오른다. 새벽녘 어스름에 장독대 앞에서 두 손을 모아 무언가 빌고 계시던 엄마의 모습. 까맣게 잊고 있던 기억이 책을 읽으며 되살아나는 것도 경이로움이다. 그렇게 신화는 우리의 삶에 면면히 이어져 왔고 우리의 마음속 깊이 각인되어 왔던 것이다.


 과학기술 문명의 발달로 첨단을 달리고, 우주선을 발사하는 이 시대에 신화가 통하는 세상인가 의아하기도 하다. 하지만,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여보면 신화의 그림자는 여전히 우리가 사는 세상 가까이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의 편리한 발이 되어주는 생활필수품 자동차의 이름에 신의 이름이 들어있고, 가장 많이 팔리는 자양강장제도 바카스신의 이름이 붙어 있다. 뿐만 아니라 인도가 최근 개발했다고 발표한 대륙간 탄도미사일 아그니-5 조차도 막강한 위력을 지닌 불의 신 아그니에서 비롯되었단다. 마치 소유하는 물건에도 신의 능력을 빌어 강하고 완벽하게 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반영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신화란 우리 인간세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임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다루는 신화는 그 수도 다양하고 폭이 넓다. 동서양의 건국신화, 영웅신화 등을 아우르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중에는 익히 알고 있던 것도 있지만, 처음 알게 되는 이야기도 있어 신화의 세계가 이렇게 이야기가 풍부하구나, 감탄하게 된다.


 제 2신화 이렇게 읽어도 된다에서 중남미 3대 문명 중 하나인 마야 문명을 대표하는 신화 역사서 포폴 부에 전해지는 신화를 소개한다. 여기서 오늘날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공동주택 층간소음의 뿌리를 신화에서 연상할 수 있다는 것이 참 놀라웠다. 마야 문명 사회에서 공놀이 할 때의 소음을 농부들이 농지를 정리할 때 내는 소란스러움으로 해석하여 그 소음이 지하세계의 신들을 분노케 만들었다는 논리다. 이렇듯 신화의 세계를 알면 현실의 생활에서도 이웃과 다툴 일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어떤 세계를 알고 이해한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을 가질 수 있고, 그만큼 포용력 있는 인간으로 성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신화는 과학적인 잣대로 비교할 수 없다. 깃털이 몸속으로 들어가 임신을 하게 되거나, 유화가 햇빛을 받아 주몽을 낳는 일, 알란 고아가 달빛의 정기를 받아 임신하는 몽골 신화가 어떻게 과학적인 논리로 설명 할 수 있겠는가. 신화란, 사실이냐 아니냐의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쓸모가 있느냐 없느냐의 여부다. 세계적인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죽는다는 것은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거기에 두려워할 만한 것은 없다.”(p25)고 했다. ‘죽음이야말로 신화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근거이며 원천임에도 간단히 무시하고 마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신화는 상징과 은유의 언어이기 때문에 과학의 사실적 언어로는 읽을 수 없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이 책을 통해서 새롭게 느꼈던 부분은 신들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온갖 부정적인 모습, 이를테면 질투, 근친상간,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 살인 등 도덕성의 부재에 대한 점이다. 신들은 인간 위에 군림하면서 이렇게 행동해도 되는 걸까.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하는 건 아닐까. 신화를 통해서 대립과 갈등이 무수히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우리 인간세상을 들여다보며 참조 할 수 있다. 누구나 행복하고 기쁜 일만 있는 태평성대 일 수만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온갖 사술(邪術)과 무질서의 범람은 피할 수 없는 인간세상의 조건임을 알 수 있다. 신화 또한 인간의 상상 속에서 나온 이야기니 어쩌면 인간세상과 다를 바 없는 우리의 삶과 닮은꼴 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신들이 하던 노동을 대신 시키기 위해서 인간을 탄생시켰다는 메소포타미아 신화는 차라리 솔직하다.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신을 만들었지만, 인간이 늘어나자 덩달아 불평불만도 늘어났을 것이다. 인간들이 불평하는 소리에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게 되자, 인간들을 없애버리려고 홍수를 일으킨다. 가장 유명한 것이 <노아의 방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신화나 인간세상의 이야기나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것 같다. 인간들끼리 싸움을 벌이고 여러 가지 이념을 내세워 테러를 일으키고 수많은 인명이 살상되는 세상이다. 신이라고 해서 따뜻하지도 않다. 오히려 불같은 성격에 한 치의 너그러움도 없다.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내세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모두 제거한다.


 흔히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동일선상에 있다고 한다. 신화에서도 그러한 징후를 찾을 수 있다. 사체화생(死體化生)신화 라고 할 수 있는 하이누웰레 신화가 그것이다. 하이누웰레가 죽은 후 시신을 묻은 곳에서 구근이 자란다. 죽음은 또 하나의 생명을 창조한 셈이다. 인간에게 유용한 작물이 말이다. 북미 인디언들에게 가장 귀한 두 가지 작물인 옥수수와 담배의 기원에 관한 신화도 그렇다. 그렇게 죽음 뒤에 소생하는 생명, 생물의 창조 이야기가 결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고,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왠지 무시할 수 없는 그 무엇은 인류에게 심어진 신들에의 경배가 면면히 이어져 온 때문이 아닐까. 이러한 사체화생(死體化生) 신화는 농경신화 뿐만 아니라, 세계의 무수한 창세신화 중에도 그런 모티프를 찾을 수 있다니 신기하기만 하다.


 신화가 지닌 스토리텔링은 이제 국가적인 문화유산으로도 내세울만한 무기가 된 것 같다. 서사시에 관한 한 풍부한 전승을 보이지 못했던 중국이 오늘날은 사시와 장편서사시가 풍부한 나라가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중국 내 많은 소수민족을 중국의 이름으로 포함했기 때문이다. 수 천 년 간 주변의 오랑캐로 업신여기던 그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취한 행동이다. 장족(티베트족)<게세르>, 키르기스족의 <마나스>, <장가르>를 중국 민족의 3대 서사시로 간주하고 앞의 두 가지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고 하니 그 약삭빠름이 놀라울 따름이다. 또 악몽의 신화라 불리는 현대의 신화나치즘을 언급한다. ‘다른인간과 자연에 대한 자신들의 지배와 억압을 정당화하기 위한 합목적적 도구였다.


 신화는 도처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학작품, 영화, 음악 등 우리가 누리고 있는 각종 예술 작품에 끊임없이 재현되고 있다. 사라져가거나 잊혀져가는 신화적 유산인 문화재를 되살리는데 시인, 예술가, 철학자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특히 켈트의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는 아일랜드 신화와 전설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쿠훌린에게 대단한 애착을 보였다. 다름 아닌, 영웅 쿠훌린을 통해 아일랜드 민중의 집단적 정체성을 환기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인문학이 시대의 흐름을 타고 되살아나듯이 신화 또한 꽃처럼활짝 피어날 것이다. 과학 문명은 첨단에 첨단을 달리고 있는 시대이지만, 인류에게서 이야기를 빼앗아 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저자의 해박하고 다양한 신화에 대한 지식에 다시 한번 놀라고, 상상의 즐거움은 덤이다. , 이건 말도 안 돼, 하면서도 몰입하는 자신을 본다. 신들은 멀리 있지 않다. 항상 우리들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풍성한 상상력의 세계로 안내하는 신화의 세계에서 삶의 지혜와 의미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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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 (무선)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시리즈 5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박혜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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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구에 별로 관심이 없는 내가 작년인가 야구가 나오는 일드를 본 적이 있었다. 회사에 소속된 야구팀들이 시합을 벌이는 장면이 많이 나왔는데, 야구선수를 좋아하는 연인의 이야기가 어울려 더욱 흥미로웠다. 이참에 야구에 대해 공부해 볼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럴만한 기회도 갖지 못한 채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여기서는 야구만이 아니라 별 관계없을 것 같은 생뚱한 다른 이야기도 나온다. 좀 능청스럽고 빤하다고 해야 할까. 소년이 들어서는 안 되는 좀 야한 이야기도 서슴없이 대화하는 장면이 있어 당황스럽기도 하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인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작품의 초반부는 그래서 더욱 지루한 느낌이다. 분명히 한글인데, 의미는 모르겠고 글자만 겨우 읽어내는 기분? 이다. 내가 우리의 작가 이상의 작품을 읽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계속 읽을 수밖에 없고. 좀 시간이 지나면 그런대로 견딜 만하다. 온통 야구 이야기다.


 배경은 1985, 만년 꼴찌 신세이던 일본의 한신 타이거스가 일본 시리즈에서 우승하는 이변이 생겼는데, 어이없게도 선수들이 줄줄이 그만두면서 야구가 세상에서 사라져버린다는 설정이다. 야구를 좋아하는 광팬들에게는 실로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겠지. 이렇게 야구가 없어진 세상에서 가상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야구에 대한 일곱 가지 단편이 들어있다. 900편 쓰기, 포르노 100편 보기에 도전하는 초등학생, 카프카야말로 열렬한 백업 포수였다고 믿는 노인이 있고, 일본 야구 창세기 기담 등 오로지 야구에 대한 기상천외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창세기 기담의 발 빠른 닭배고픈 늑대이야기는 지루할 만큼 길게 이어지면서도 재미있다. 시와 포르노가 야구와 무슨 관계가 있기에 그것에 열중하는 것일까, 의아하기만 하다. 모더니즘 소설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 문제작이라는 평처럼 일반 소설과는 매우 다르다. 우리가 읽던 익숙한 문체의 언어가 아니다. 새로 언어를 구축했다고 할까. 읽어나가는 도중 당황스런 부분이 꽤 있다.


 야구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침대씬 이야기로 넘어간다. 그러다 약간의 철학적 사고를 엿볼 수 있는 문장이 툭 튀어나오기도 한다. 야구를 소재로 한 소위 갖추어진소설이 아닌, 마치 야구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 쓴 글 같은 느낌이다. 마치 공부를 하다가 자꾸 딴 생각의 세계로 넘나드는 상상의 세계처럼. 위대한 작가와 철학가를 등장시키면서 거침없는 이야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나에게 야구를 가르쳐주신 큰아버지가 곧잘 말씀하셨어요. ‘연결이 끊어지면 끝이야하고.

너는 아직 알 수 없겠지만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연결이야.’(P96)

연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돌고 돌아가는 게임의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 매끄러운 연결의 동작이야말로 경기에서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테크닉이 아닐까. 야구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야구 용어를 검색하여 뜻을 알아야 했다. 참으로 많은 규칙과 용어가 존재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마찬가지다. 그것들로 우리는 연결되고 사회의 시스템은 원활하게 작동하는 것이다.


 정신병원을 전전하던 소년의 큰아버지는 소년에게 야구를 가르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속임수란다. 이걸 할 수 없으면 일류 야구 선수하고 할 수 없다는데. 이 세상에서 야구와 관계없는 건 하나도 없다고도 하고. 이것 또한 거꾸로 말하면 야구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축소판이라고도 해석할 수도 있다. 야구선수가 되기 위해 힘든 단련을 한다. 어떤 날은 야구에 대한 ()를 두 시간 내에 900개를 짓기도 하고. 선수가 아니어도 우리는 힘든 단련을 하며 살아간다. 하루하루의 삶에서 꼭 승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 많은 것을 참고 견딘다. 그것 또한 단련이다. 힘든 단련. 이쯤 되면 야구와 인생은 닮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일단은 야구광들의 이야기임에는 틀림없다. 긴 것으로 둥근 것을 친다는 게임. 하지만, 책의 제목처럼 절대로, 우아하고 감상적이지는 않다. 단지 그들의 열정적인 야구 사랑을 제목에 담아본 것은 아니었을까 짐작할 뿐이다. 야구가 없어진 가상의 현실에서 야구에 관한 이야기를 책에서 찾아 모으는 사람, 야구를 배우기 위한 소년 등 여러 사람을 등장시켜 야구 이야기를 이어간다. 저자는 이 작품을 필립 로스의 <멋진 미국 야구>의 번역본을 읽고 이 작품의 모티프로 삼은 것 같다. 원제목은 위대한 미국 문학(The American Novel)'이었다는. 야구 규칙을 몰라도 재밌게 읽은 이 책의 팬들이 많은 모양이다. 하긴 우리가 읽는 세상의 많은 책들의 어떤 분야에 대해서 다 알고 읽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모르기 때문에 읽고 배우는 것이 아닐까. 제목과 다른 내용의 이야기가 색다른 매력이 될 수도 있겠다. 야구 이야기 속에서 일본인들의 속마음도 조금은 알 수 있지 않을까.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다면 직접 확인해 보기 바란다. 황당한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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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픽 미스터리
다비드 포앙키노스 지음, 이재익 옮김 / 달콤한책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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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독자를 넘어서 자신의 책을 출간하고 싶은 꿈이 있다. 작가지망생은 차고 넘치지만, 한 권의 책으로 내는 일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래도 옛날에 비하면 자비출판의 방법도 있어서 출판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었지만, 순수하게 작품성을 인정받아 책으로 나오기까지는 미미하다고 하겠다. 이 작품은 책을 소재로 하여 벌어지는 미스터리다. 미스터리라고 해서 공포를 느끼는 이야기는 아니다. 미심쩍은 사건을 다른쪽 시선에서 전말을 파헤치기 위해 추적하는 이야기다.

 

 이야기의 도입은 미국 작가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작품 <임신중절>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남자 주인공인 도서관 사서가 나오는데 그 도서관은 출판사들이 거절한 모든 책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그의 생각은 열혈 독자에 의해 누구도 원하지 않은 책들의 도서관은 실현된 모양이다. 정말일까 의심스럽기도 하지만,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것을 모티브로 하였을까.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에 크로종 시립도서관이 생긴다. 재미있는 구성으로 몰입하며 읽을 수 있다. 대사도 얼마나 맛깔 나는지 읽다가 쿡쿡 웃게 한다. 출판되지 못한, 그러니까 거절당한 원고를 모두 받아준다는 기상천외한 프로젝트를 계획한다. 이 도서관의 관장인 구르벡이 그 프로젝트의 기획자다. 이 아이디어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방불케 하는 여정이 이어진다. 그렇게 십 년이 지나면서 천 권에 달하는 원고가 쌓인다. 구르벡은 원고에 파묻혀 지내가다가 중병에 걸려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아내가 있었는데, 단 몇 주 만에 집을 나가고. 아무도 왜 나갔는지 모르며, 소문만 무성한 가운데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구르벡이 이 미스터리의 열쇠를 쥐고 있는 걸까. 궁금증이 폭발하며 다음 장을 넘기느라 바쁘다.

 

 어릴 때부터 꿈꾸던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는 델핀은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닌 매력적인 아가씨다. 작가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낀다. 그런 그녀는 젊은 작가 프레드 코스카의 데뷔 소설을 발견하여 강렬한 촉을 느끼면서 둘은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이들의 관계는 급속도로 진전하여 프랑스 서쪽의 땅끝 마을 델핀의 고향으로 휴가를 보내러 갔다가, 크로종 도서관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뼛속까지 편집자의 임무에 충실한 델핀이 그렇게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흘려 들을 리가 없다. 단짝이 된 프레드와 함께 탐방한 도서관에서 걸작을 발견했다며, 흥분한다. 책 제목은 <사랑의 마지막 순간들>이며, 글쓴이는 앙리 픽. 여기서 가장 백미는 사랑의 마지막 순간을 푸시킨의 임종 순간과 교차시켜 묘사했다는 것. 푸시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이 언급된다. 이 작품을 보니 발레리나 강수진이 떠오른다. 강수진의 은퇴작인 <오네긴>은 러시아의 문호 푸시킨의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에 차이코프스키의 서정적인 음악을 더한 <오네긴>으로, 자유분방하고 오만한 오네긴과 순진한 시골 처녀 타티아나의 비극적인 사랑을 담은 작품이라고 한다. 이처럼 실명으로 언급되는 작가와 작품의 이야기도 지적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앙리 픽은 평생을 피자 요리사로 살다가 2년 전 죽은 인물로 밝혀진다. 미망인 마들렌 할머니와 딸 조세핀을 만나 인터뷰하며 야단법석이다. 설마 진짜 앙리가 소설을 썼을까 의아해 하다가 달리 방법이 없으니 모두 믿는 분위기로 휩쓸린다. 언론, 방송의 홍보 효과를 얻은 이 사건은 엄청난 파급력으로 당사자들과 주변을 흥분시킨다. 고전문학을 읽다보면 주인공이 갑자기 생각지도 않던 친인척의 거대한 재산을 상속받는 상속자가 되는 꿈같은 횡재가 종종 들어있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황상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고인(故人)이 소설을 남겼다니, 믿기 어렵지만 작품의 내용에서 자신들의 자취를 찾아낸다. 이건 내 이야기다 라며 짜 맞춘다. 약간의 억지가 엿보이는 장면이다. 이런 상황이면 집 나갔던 남편도 돌아온다. 바로 조세핀의 전남편 마르크. 아내를 배신하고 떠난 마르크의 속셈은 뻔하다.

 

 한편, 믿기 어려운 이 사건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한때 악명 높은 문학평론가로 일했던 기자 출신 루슈가 등장한다. 여러 단서를 모으기 위해 조세핀에게, 또 조세핀의 가게로 찾아가는 등 진실을 밝히기 위해 열정적이다. 앙리의 친필 편지를 입수하는 순간 어느 정도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낸 듯하다. 이것은 어떤 반전으로 이어질까.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찡한 감동도 있다. 아버지 생전에는 그다지 친밀감도 느끼지 못했던 조세핀은 과거를 떠올린다. 아홉 살 때 받은 편지를 찾으면서 많은 음반을 뒤적이고 거기서 추억을 되새긴다. 부친 사후(死後)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소설을 쓴 아버지가 위대하게 느껴진다. 이렇듯 물질만능의 태도 또한 여실히 드러난다. 진실의 여부는 안중에 없고 세상을 다 얻은 것 같다. 평범한 사람들이 예상치 않은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면 우쭐하면서도 남의 옷을 입은 듯 마음은 불편하다. 마들렌과 조세핀도 차츰 평정을 되찾으려 한다. 진실을 알아야겠다며. 구르벡의 뒤를 이어 도서관장이 된 마갈리 등 주변 인물들의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심경의 변화도 흥미롭다.

 

 결국 초반에 잠깐 출현했다가 죽은 구르벡은 미스터리를 제공한 셈인가. 그것을 집요하게 파헤치려는 루슈. 루슈와 조세핀의 조합은 의외로 잘 어울린다. 애써 찾은 진실을 외면하고 적절한 선에서 현실과 타협하고 안주하려는 인간의 본성 역시 들어있다. 구르벡은 왜 자신의 이름으로 하지 않고 앙리의 이름을 빌렸을까. 단 몇 주를 함께 살았던 마리나를 사랑했지만, 붙잡지 못한 그 안타까운 마음을 책으로 남겼고,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하는 마음에서였을까. 풀리지 않는 궁금증을 안고 벌써 후반부에 다다르게 된다.

 

 몇 개의 반전으로 이렇게 마무리되는 건가 싶었는데...

, 이건 또 뭐지? 더 큰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서 인간의 이기심이 보인다. 책으로 성공하고 싶은 작가와 작품을 발굴해서 유명세를 타고 싶어 하는 편집자를 비롯한 출판계의 인물들.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더니, 트릭이 들어 있었다. 여우가 자기 꾀에 넘어간다고 하는 상황과 흡사하다. 영문도 모른 채 이들의 마케팅 전략에 평범한 마들렌 할머니와 딸 조세핀은 휘말렸던 것인가. 책 한 권을 베스트셀러로 만들기 위해 온 역량을 쏟는 출판사와 평론가 영업대리인들의 역할을 보는 것은 흥미로웠다. 잊을만하면 표절 시비에 휘말리는 사건이 나온다. 이것은 더 큰 사건이다. 실제로 이러한 이야기가 있을까, 의아하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미스터리다.  단지 재미있게 읽고 약간의 교훈과 감동의 여운이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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