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칠웅
리산 지음, 이기흥 옮김 / 인간사랑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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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는 전국시대, 중국 역사상 ‘대분열’과 ‘대통합’을 아우르며 나아가는 과정이며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때보다 거의 40년 전 진나라와 조나라의 장평(長平) 전쟁까지의 시기를 담고 있다. 춘추시대에는 모두 140여 개의 제후국이 있었는데, 전국시대에 이르러서는 몇 개의 약소국을 비롯한 일곱 개의 큰 나라 제(齊) 초(楚) 연(燕) 한(韓) 조(趙) 위(魏) 진(秦) 이 패권을 두고 겨루는 형국이 된다. 기원전 5세에서 기원전 3세기에 이르는 시기다. 지금으로 보면 참으로 까마득한 옛날이야기다. 이 시기는 중국 2천여 년의 정치와 사회, 경제와 문화의 토대를 마련했기 때문에 ‘중요’하고, 중국 역사적으로 다른 시기와 비교할 때 ‘특별’함이 있기 때문에 이 책이 집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국시대 이전의 역사는 신권(神權)에 의지한 정신적인 힘으로 통치했으며, 부모 형제간의 기본적인 인륜이 바탕이 되었다. 그런데, 전국시대에서는 이러한 총체적인 사회 구조가 무너졌다. 전국시대는 권모술수와 속임수,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였으니 그야말로 인간지옥이었다. 또 전쟁 법칙의 변화와 새로운 인물의 등장도 전국시대의 특징이다. 춘추오패는 싸움을 벌여도 기본적인 예의(禮義)를 지켰는데, 전국시대의 원칙은 직계가 방계를 제거해야 했고, 주먹의 원칙으로 포악한 자가 승리를 거머쥐었다. 출신 성분이 아닌 자신의 재간을 바탕으로 집안을 일으켰던 책사(策士)들의 활략이 두드러짐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인물들은 소진, 상앙, 오기, 장의 범저 등이다. 그들은 변법을 주관하며 군사적 투쟁을 이끌고 종횡가로서 유세를 벌이며 계책을 내놓기도 했다.

 

 전국시대는 삼가분진(三家分晋)과 전진찬제(田陳纂齊)라는 두 사건으로 구분 지으며, 그 기점은 기원전 453년이다.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비교한다면, 전자는 ‘혼란’, 후자는 ‘변화’라고 할 수 있으며, 전국시대는 ‘변화’와 ‘혼란’이 공존했다. 삼가분진(三家分晋)은 진(晋)이 한(韓), 조(趙), 위(魏) 세 나라로 갈라진 것이다. 전진찬제(田陳纂齊)는 진(陳)나라에서 제나라로 망명한 공자(公子) 완(完)은 전씨(氏)로 불렸고, 이 완(完)의 후손이 제나라 왕의 자리를 빼앗은 사건이다. 이 두 사건에 써 먹었던 수법의 공통점은 ‘큰 말로 빌려주었다가 작은 말로 되돌려 받으면서 사람들의 환심을 사며 정권을 찬탈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환심 사기’였다. 어르고 달래고 백성의 지지를 받아, 권력을 손에 쥐고 나서 그때부터 태도가 달라져 거둬들이는 것이다. 당시 공교롭게도 위나라를 거쳐, 제나라에 갔던 맹자가 본 것은 ‘들판에는 굶어죽은 이들의 주검이요, 마구에는 토실토실 살진 말’이었다 하니 당시 상황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칠웅 가운데 첫 번째 강자로 우뚝 선 위나라를 시작으로 나머지 여섯 나라의 흥망성쇠(興亡盛衰) 과정과 그에 기여한 인물들을 보여준다. 위문후(魏文候)는 신용을 중시했으며, 현명하고 덕망 있는 사람을 예의와 겸손으로 대했다. 공자의 제자인 복자하를 스승으로, 자공의 제자인 전자방을 친구로, 단간목을 예(禮)로써 맞았으니 나라는 잘 다스려졌고 자신은 한가하고 편안했다는 구절이 『여씨춘추』에 기록되어 있다. 제일 먼저 훌륭한 통치로 위세를 떨치던 위나라의 패업은 70년 간 계속되는데, 달도 차면 기울듯이 위무후(魏武候)에 이어 손자 양혜왕(梁惠王) 때에 이르면 상황의 반전을 맞는다. 위무후(魏武候)때 오기는 초나라로, 상앙은 진나라로 가버렸다.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이 없었던 것이다. 둘 중 하나라도 붙들어서 잘 썼다면 역사의 방향은 바뀌지 않았을까.


 영웅적인 군주였던 제위왕은, 재위 30여 년 동안 제나라를 최고의 강대국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현명하고 덕망 있으며, 음악에도 정통한 추기는 거문고의 대현과 소현을 군주와 대신들의 비유로 치국(治國)의 이치를 설명한다. ‘온화하고 듬직함’은 군주의 덕목이고 ‘깨끗하고 맑으며 예리하여 그 분명함’은 대신들의 덕목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에도 이렇게 음악을 깊이 이해할 줄 아는 관리가 지도자에게 현명한 조언을 할 수 있다면 좀 더 화합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또 고대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군사전문가인 손빈(孫臏)이 있다. 손빈은 위나라 양혜왕 밑에서 동창인 방연과 함께 있다가 방연의 시기와 미움을 사서 폐인이 된다. 질투는 사사로운 개인 간에도 불협화음을 부르지만, 국가 중대사가 걸린 문제 상황에서는 패망을 부르기도 한다. 폐인이 된 손빈은 인재를 알아보는 제위왕에 의해 신임을 얻어, 자신의 변법으로 방연을 죽이고 위나라의 패업을 끝장을 낸다. 반전과 반전이 거듭되는 역사의 이야기 참 재미있고도 안타까운 일이 많다.


 상앙은 야심 많은 진효공을 만나서 좌서장에 임명되고 상앙의 변법은 시작된다. 상앙의 변법을 요약하면 ‘이출일공(利出一孔)’ ‘구농귀전(驅農歸戰)’이다. 백성이 부귀를 얻고 토지를 얻으려면, 전쟁터에 나가 싸우는 방법 단 한 가지만 있다는 뜻이다. ‘구농귀전(驅農歸戰)’은 소농(小農)을 중시하고 상공업에 타격을 가하여 세원을 증가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얼마나 주도면밀하고 빈틈이 없었는지 아무도 그 제도를 빠져나갈 수 없었다. 2단계 변법은 사람의 머리수대로 세금을 걷는 인두세(人頭稅)였다. 적의 목을 벤 공훈을 앞세웠던 ‘잔인한 나라’라는 심각한 역사적인 결함을 갖게 되었다. 잔혹하고 인정사정없는 이상(理想)으로 진나라를 강성하게 만들었지만, 최후에는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혓바닥’만 있으면 된다는 장의는 초나라를 속이고, 소진은 연나라 연왕의 원수를 갚아주기 위해 제나라를 구렁텅이에 빠뜨린다. 지혜가 넘쳤던 전단(田單)은 화우진(火牛陳)으로 죽어가는 제나라를 되살린다. 상대방의 성격을 꿰뚫어보는 능력을 지닌 책사들은 온갖 계략을 동원하여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목숨을 부지했다. 가족마저도 지위나 재산에 따라 사람을 대하는 소인배였으니, 살아남기 위하여 물불을 가리지 않았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조나라 조무령왕의 ‘호복기사’를 추진하여 군사강국으로 되는 과정은, 적절한 개혁이 국가의 성장에 기반이 되는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다. 재상 인상여의 대담한 용기와 속 깊은 재치를 알게 된 염파 장군 이야기는 뭉클한 감동이다. 국익을 위해 관리들 간의 화합은 필요하다는 것도. 하지만, 속 좁은 염파는 ‘입과 혀’로 공을 세우는 인상여를 시샘하였고, 소통능력이 없었다. 조효성왕을 설득시키지 못하고 자기 계책만 좇다가, 지위를 박탈당하고 조나라 병사 40만은 포로로 잡혀 생매장되는 비극을 부르게 된다. 장군이 훌륭하면 국가가 안전하지만, 장군이 훌륭하지 못하면 국가는 재앙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부분이다.


『전국 칠웅』은 리산 교수의 중국 CCTV-10 <백가강단> 최고 인기강의라고 한다. 강의 를 듣는 것처럼 귀에 쏙쏙 들어오는 이야기와 번역의 글맛도 읽는 즐거움을 더해 주는 매끄러운 문장이었다. 변화무쌍한 격동의 전국시대를 살다 간 다양한 인물들이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드라마를 본 것처럼 생생하다. 먼 옛날의 이야기지만, 지금도 재현되고 있는 인물 군상(群像)의 이야기다. 개인, 나아가서는 국가 통치자의 처세와 소통, 적재적소의 인재등용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배울 수 있다.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어떻게 처참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 인생의 덧없음도 깨닫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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