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카뮈 - 지중해의 태양 아래에서 만난 영원한 이방인 ㅣ 클래식 클라우드 16
최수철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월
평점 :
한 작가나 예술가들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한 권의 책으로 편안하게 앉아서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작품을 읽으면서 잘 이해하지 못해서 답답했던 마음이 환해지기도 하고 아직 읽지 못한 작품은 어떤 시선과 관점으로 읽으면 되겠구나 생각을 하면서 오롯이 그 작가와 대화할 수 있는 길을 터주기 때문이다. 카뮈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양복 차림에 말끔한 스타일의 짧은 머리, 담배를 물고 있는 시니컬한 표정이다. 왠지 상냥할 것 같지는 않은 지식인의 모습으로 각인된다. 카뮈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오롯이 담은 이 책을 읽고 그 많은 역경을 이겨냈구나 싶어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고 그 모습도 나름 멋이 느껴졌다. 사람이 살면서 그가 속해있는 환경이나 생각 등 여러 요소가 그 사람을 만든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카뮈의 작품 『페스트』를 고1때 읽었는데 오래되어 가물가물하지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아수라장이 된 상황에서도 일말의 희망을 갖고 헤쳐 나가려는 긍정적인 성격의 주인공이 있었기 때문일까. 요즘 신종 코로나 전염 확대로 인해 시끄러운데 처음으로 이 사실을 알리고 자신은 환자에게 전염되어 세상을 떠났다는 중국인 의사가 떠올라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세상에 알렸다고 당국에 처벌을 받기도 했다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자국의 이익을 챙기려고 애쓰는 그들의 모습에서, 이것도 카뮈가 말하고자했던 세상의 부조리의 단면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삶 자체가 ‘반항’이며 “부조리에 걸려들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더 이상 부조리로부터 발을 빼지 않는 것이다.”(P142)『작가수첩2』는 카뮈의 말이 계속 뇌리에 남는다.
이 책의 저자 최수철은 1981년 《조선일보》신춘 문예에 「맹점」이 당선되면서 작가의 길로 들어섰으며, 그동안 이상문학상, 윤동주문학상, 김유정문학상 등을 다수 수상하였고, 『고래 뱃속에서』등 다수의 장편소설과 카뮈의 대표작 『이방인』을 직접 번역하기도 했다. 한 작가를 좋아하게 되는 계기는 다소 평범하게 시작되는 것 같다. 프랑스 문학을 전공한 이 저자도 처음엔 카뮈가 특별히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연이어 『이방인』『페스트』『전락』을 읽으면서 강한 인상으로 남았고 그 다음에는 저자가 소설쓰기에 대한 어려움을 느끼고 있을 무렵 자신의 장편소설 『페스트』를 쓰면서 카뮈의『페스트』를 다시 읽기를 통해서 카뮈의 삶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왔다고 한다. 풍부한 사진 자료와 작품 읽기를 통해 함께 하는 여행처럼 실감나고 재미있게 읽혀서 좋았다.
카뮈는 프랑스 이민자 3세대로 알제리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생후 8개월에 1차 세계대전에 징집된 아버지가 사망하고 나서 카뮈의 어머니는 가정부 일을 하면서 가족들의 생계를 꾸려나간다. 그야말로 가난과 온갖 역경과 싸워야 하는 삶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성장기를 보냈던 알제리의 벨쿠르, 자신이 지향하는 삶을 발견했던 카빌리, 청년시절에 자주 들러 명상에 잠겼던 티파사, 카뮈의 피난처이자 『페스트』의 배경지가 되는 오랑과 예술과 정치 활동의 정점을 찍었던 프랑스 파리, 평생 카뮈를 힘들게 했던 폐병으로 요양을 하면서 보냈던 파늘리에, 연극 축제가 열렸던 앙제, 말년의 거처가 있었던 루르마랭 까지 돌아보는 여정이다. 이 여정은 카뮈의 여러 작품 속의 주인공들을 불러낸다. 작품마다 카뮈의 분신과 함께 호흡하는 듯 더욱 실감나는 여행으로 만들어주었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워 주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가르침을 주었던 루이 제르맹 선생을 만날 수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가족들 대부분이 문맹이었고, 어머니는 선천적으로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데가 남편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으로 말을 더듬고 거의 침묵으로 일관했던 스페인 출신 여성이었다. 집 안에 책이나 잡지 한 권도 없는 문화적 진공 상태에서 살았던 카뮈가 파리의 지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를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뒷받침한 스승의 사랑이 기초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의무교육만 마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할 처지였던 카뮈에게 있어 커다란 삶의 은총이었다. 학교는 책과 더불어 지적 욕구를 마음껏 채울 수 있는 자유의 공간이었지만 집에 오면 낯선 세계처럼 이방인이 되었고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가 안 계셔서 어려운 집안 환경이 부끄럽고 그것을 부끄러워하는 자신이 용납되지 않는 모순 속에서 반전이 일어나는데...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 위로 내리쬐던 그 아름다운 햇볕 덕분에 원한이라는 감정을 품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이 부분에서 햇볕 때문에 살인을 했다는 주인공 뫼르소가 떠올랐다. 한 번 더 읽는다면 카뮈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좀 더 명쾌하게 알 수 있지 않을까. 빈곤 속에서 살았지만 즐거움을 만끽할 줄도 알았다니 아마도 선천적인 활기를 갖고 있었던 듯하다.
아직 읽어보지 않은 작품인데 『작가 수첩』에 대한 언급이 꽤 많이 나온다. 카뮈가 1935년 5월부터 1953년 12월까지 일곱 권의 공책에 쓴 것인데, 이것을 모두 모아 출간하면서 그 제목을 붙인 것이라고 한다. 『작가 수첩』은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작품 구상도 아니지만 그 두 가지가 합쳐진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걸 나도 써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뮈는 자기의 삶이 숨김없이 드러나는 걸 싫어했는데 이것은 나중에는 조금 경향이 바뀌기도 했다.『이방인』을 두 번 읽었지만 같은 제목의 시가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바로 보들레르의 시 <이방인>이라고 하는데 카뮈는 스무 살 무렵부터 이 시를 암송했다고 한다.
수수께끼 같은 친구여, 말해보게.
너는 누구를 가장 사랑하는가? 아버지, 어머니, 누이, 형제?
나에겐 아버지도, 어머니도, 누이도, 형제도 없소
친구들은?
당신은 이날까지도 내가 그 의미조차 모르는 말을 하는 구려.
조국은?
그게 어느 위도 아래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모르오.
미인은?
불멸의 여신이라면 기꺼이 사랑하겠지.
황금은 어떤가?
당신이 신을 싫어하듯, 나는 황금을 싫어하오.
그렇군! 그렇다면 너는 도대체 무엇을 사랑하는가, 별난 이방인이여?
나는 구름을 사랑하오…… 흘러가는 구름을…… 저기…… 저 신
비로운 구름을!
-샤를 보들레르, 「이방인」-
마치 카뮈를 위해 지은 시 같지 않은가!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고 벙어리처럼 살았던 어머니의 존재, 프랑스와 알제리 가운데서 정체성의 고민이 끊이지 않았던 영원한 이방인으로 살아야했던 카뮈의 고독감,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아내의 배신 등 삶 자체가 온통 부조리였던 카뮈를 온전히 떠올릴 수 있는 시여서 묘한 신비감이 느껴졌다.『이방인』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후에도 파리 지식인들 사이에서의 냉담한 분위기는 사라지지 않았고 그 후유증으로 밀실 공포증을 겪기도 한다.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주의의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비판으로 사르트르와의 결별 등 파리의 좌파 지식인 사회에서 고립된다. 이런 마음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연극 활동에 주력하며, 지식인들 사이에서보다는 연극을 하는 사람들과 더 진한 동지애를 느꼈으며 직접 몸으로 뛰면서 축구를 할 때 살아있는 자신을 느꼈다. 카뮈는 자신의 얼마 안 되는 윤리도 축구 경기장과 연극무대에서 배운 것이라고 할 만큼 애정을 쏟았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시대가 급변하여 카뮈의 정치적 신념이 옳았음이 인정되었고 짧은 생을 치열하게 살며 실천한 지식인으로 추앙받기에 이른다.
루르마랭에 있는 카뮈의 집. 지금은 그의 딸 카트린이 살고 있다고 한다.
루르마랭에 있는 카뮈 묘석.
자신의 남은 삶을 어느 정도 통제하고 예측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되면 자신의 삶을 미완성인 채로 놓아두고 떠나지는 않을 텐데. 1960년 미셸 갈리마르의 차를 타고 루르마랭에서 파리로 가던 중 가로수를 들이받는 사고로 마흔 일곱의 짧은 삶을 마치게 된다. 그때 튕겨 나간 가방 속에서 『최초의 인간』미완성 작품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가난과 폐병, 두 나라의 정체성 사이에서 고독감, 냉대를 극복하고 ‘사랑’을 이야기하려 했던 그 작품은 미완성으로 남는다. 좀 더 오래 살아남아서 온전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면 우리도 또 하나의 감동적인 메시지를 듣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행이다. 카뮈의 딸 카트린의 노력으로 『최초의 인간』이 34년 만에 출간될 수 있어서. 인생이란 언제나 연습이 없고 미완성으로 끝난다. 작품의 뒷이야기는 살아남은 우리가 잘 살아냄으로써 찾아야하는 몫이 아닐까. 아직 읽지 못한 카뮈의 많은 작품을 만날 생각을 하니 기대감으로 설렌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