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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하는 습관 - 위대한 창조의 순간을 만든 구체적 하루의 기록
메이슨 커리 지음, 이미정 옮김 / 걷는나무 / 2020년 1월
평점 :
리뷰어클럽 이벤트에서 이 책을 접했을 때 두근두근 설렜다. 이름만 봐도 울렁거리는 버지니아 울프부터 프리다 칼로까지 지난 400년간 이름을 알린 소설가, 안무가, 화가, 영화감독 등 131명의 예술가들의 은밀한 일상의 루틴을 소개하는 이야기라고 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이 평등하게 주어지지만 살아가는 모습은 모두 다르다. 똑같은 시간을 살면서도 어떤 사람은 성과를 내면서 성공을 이루어내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전이나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어디에서 차이가 나는 것일까. 그 답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궁금한 건 어쩔 수 없다. 위대한 작가와 예술인들은 영원한 우리들의 우상이 아닌가. 우리는 소위 성공했다는 사람을 부러워하지만 감추어진 노력은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단조로운 일상의 루틴을 따랐던 사람도 있었고, 불규칙하지만 영감을 받아 폭풍처럼 일을 했던 이들도 있었다. 많은 이들이 아침을 커피 한 잔으로 시작했다는 공통점이 흥미로웠다.
작가나 에디터,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들의 하루에 관심이 많았던 메이슨 커리는 2013년에 ‘데일리 루틴’이라는 자신의 블로그를 만들어 그동안 모은 결과물을 토대로 『리추얼』을 출간했다. 하지만 그 책에 소개한 161명 중 여성은 단 27명뿐인 성비 불균형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더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기울인 결과 『예술하는 습관』이 탄생했다 한다.
작가는 물론이고 화가, 작곡가, 저널리스트, 시인, 복식 디자이너, 사회운동가, 극작가, 사회학자, 싱어송라이터 등 정말 다양한 일에서 성공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나왔다. 한마디로 말하면 거저 성공을 거머쥔 경우는 없었다. 좋은 배경의 집안에서 성공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그들의 열정과 땀으로 성취해낸 삶이었다. 아무래도 나는 작가들의 이야기에 더 관심이 쏠렸다.
첫째 장의 ‘쓰는 사람들의 집필 습관’에서 『작은 아씨들』의 작가 루이자 메이 올콧을 만나게 된다. 올콧의 글쓰기가 얼마나 맹렬했는지 알게 되었다. 창의적 에너지가 쏟아질 때는 식사도 건너뛰고 잠도 거의 자지 않고 쓸 정도여서 오른 손에 쥐가 나서 왼손으로 쓰는 법을 익혀야 했다고 한다. 작품 속 주인공 조에게 글쓰기용 모자가 있었다면 올콧에게는 ‘기분 베개’가 가족과의 소통을 연결해주는 도구였다. 인기 있는 아동서의 수익성을 바라는 편집자와 아버지를 즐겁게 해 주려고 썼던 작품이 순식간에 돌풍을 불러일으켰다니 놀라웠다. 생계를 위해 일하면서 오랜 시간 무명 시절을 버텨야 했으니 독자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고 돈이 잘 들어왔기 때문에 그 일을 했다는. 그 덕분에 전업 작가가 되었지만 야망은 도리어 사그라졌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널리 읽히는 작품이지만 정작 작가 자신은 영감을 느끼지 못했던 작품이라니 재미있는 아이러니다.
엄격하게 루틴을 지키는 작가도 있었다. 죽음을 앞둔 할아버지에게 쓰기 시작한 편지로 첫 소설 『영혼의 집』을 출간한 이사벨 아옌데의 루틴은 얼마나 황당하고 재미있었는지.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커피를 마시고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하고 하이힐을 신는 등 ‘차려입고’ 글을 쓴다는 것이다. 잠옷을 입은 채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예술을 하는 사람들의 자유분방한 면을 자주 들어와서 인지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아옌데의 경우는 외관을 갖춤으로써 글쓰기에 필요한 정신을 무장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개성이 남다른 이들의 색다른 루틴을 만나는 것도 신선한 기쁨을 주었다.
좋은 날이든 나쁜 날이든 언제나 쓰는 버지니아 울프가 있는가 하면 습관적 삶은 따분하다는 프랑수아즈 사강도 있었다. 겨우 열여덟 살에『슬픔이여 안녕』으로 놀라운 데뷔를 한 그녀에게 우리는 천재 작가라는 칭호를 아끼지 않는다.
“같은 환경에서 같은 것들을 겪으며 살아가는 습관적 삶에 빠지고 싶지 않아요. 전 항상 이사를 다녀요. 광적일 정도죠. 일상생활의 물질적 문제들은 따분하기 그지없어요.”(321)
그 작품을 아무런 준비 없이 하루에 두세 시간씩 써서 두세 달 만에 그 작품을 끝냈다고 한다. 하루에 쓸 분량을 정해놓고 규칙을 지키는 이들도 있지만 사강의 경우는 몰입을 활용해서 작업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방법이든 두 경우 모두 그것을 해 내고야 말겠다는 열정과 신념이 공통분모였던 것이다.
정신이 녹슬기 시작하면 대책 없이 심각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매일 글을 쓰는 게 중요한 것이다. 더없이 한탄스러운 허튼 소리를 쓸 수도 있지만 결국에는 매일 글을 쓰지 않았다면 얻지 못했을 한두 쪽의 글이 나온다. 그러므로 계속 글을 써야 한다. 그것이 레이스 드기를 제외한 여성의 유일한 희망이다.(P196)
20세기 모더니즘 영문학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동성애를 주제로 한 대표작『나이트우드』를 쓴 주나 반스(Djuna Barnes 1892-1982)의 말이다. 매일 써야 한다는 글쓰기의 중요성에 공감이 간다. 보통 사람인 우리가 얼마나 영감을 받을 일이 있을까 생각하면 기분이 좋든 나쁘든 매일 쓰는 습관이야말로 자신을 돌아보고 성장시키는 요소라고 생각되었다.
화장실, 배, 제트기, 헛간,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를 오가는 기차나 파리에서 마드리드로 가는 기차에서도 글을 썼어요. 침대에 누워서, 혹은 병원의 기계장치에 기대어 글을 썼고, 호텔과 지하창고, 모텔, 자동차 안에서도 글을 썼죠. 건강하든 아프든, 행복하든 절망적이든 상관하지 않고 항상 글을 썼어요.”(P296)
스물한 살 때부터 생을 마칠 때까지 매일 아침 9시에 일어나 하루 천 단어를 목표로 글을 썼다는 에드나 페버의 이야기다. 그녀는 일반근로자는 주 5일을 일하지만 작가는 일주일 내내 일해야 한다고 했다. 그 매일의 힘이 소설 12권과 단편소설집 12권, 연극 각본 9개, 자서전 2권을 내면서 50년의 집필 경력을 이루었던 것이다. 작가를 부러워하면서도 글을 쓸 시간이 없다는 둥 글을 쓰는 분위기 조성이 안 된다는 핑계의 무덤 속으로 파고들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어떤 환경이든 언제든 하고자 하는 열정만 있다면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에드나 페버의 성취로 배울 수 있다.
“우리의 일치된 존재감을 보여주는 영웅적인 시기였어요. 작업 환경이 열악했지만 우리는 아주 행복했어요. 우리는 하루하루를 그 실험실에서 보냈죠. 그 허름한 창고에는 깊은 평온이 감돌았어요. 우리는 때때로 몇몇 실험을 지켜볼 때 현재와 미래의 작업에 이야기하며 왔다 갔다 했죠. 추위가 느껴지면 난로 근처에 놓아둔 뜨거운 차 한 잔으로 추위를 달랬어요. 마치 꿈속에 있는 것처럼 한 가지에 사로잡혀 지냈죠.”(P411)
마리 퀴리가 남편과 함께 방사능 연구를 하여 최초의 방사성 원소 폴로늄과 라듐을 발견한 이야기는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이야기다. 자신의 일에 몰입하는 행복은 성취로 이어지고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도 한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신념으로 버텨내며 성취해 낸 이들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그들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쉽게 미루고 포기하곤 했던 것이 떠올라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여성들의 이야기라서 더욱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집안일은 어떻게 했는지, 어떻게 육아를 하며 그 많은 일들을 해냈는지, 위기는 어떻게 극복해나갔는지 궁금한 마음을 안고 읽어나갔다. 예술을 위해서 평범한 삶과 결혼을 거부한 이사도라 덩컨을 비롯한 몇몇의 이야기도 있었다. 그런가하면 설거지를 끝내고 나서야 작업에 몰입할 수 있었다는 화가 캐럴리 슈니먼이 있었고, 정신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아침을 제일 힘든 일로 시작했던 줄리아 워드 하우 같은 작가도 있었다. 그녀는 남편 몰래, 남편의 허락 없이 『시계꽃』을 출간하여 남편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당시 여성의 사회 참여가 어려웠던 상황을 상기할 때, 주변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성취 해낸 열정과 도전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또 일요일도 아까워하며 일과 치열하게 연애를 한 게 아닐까 할 정도로 일 중독자였던 코코 샤넬 이야기 등 잘 알지 못했던 많은 예술인의 루틴을 읽으면서 마음이 뜨거워졌다. 여성에게 있어 일상의 삶과 자신의 일을 균형 있게 양립해 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충인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지만, 무엇에 우선하느냐에 따라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일상 루틴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루틴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다면 이전에 비해서 얼마나 성장했는가. 보완할 점은 없는가, 등등... TV를 끊은 지 수 년이 되었는데도 나는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 다독하는 편도 아니고 한 달에 영화 한 편 보는 것도 어려울 만큼 시간에 쫓기고 있는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잠은 일곱 시간을 자야 하는 것을 고정관념으로 갖고 있는 나... 그래서 다짐했다. 나도 좀 아침형인간이 되어보자고. 어려운 조건하에서도 훌륭한 업적을 이루었거나 성과를 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주었다. 다른 건 몰라도 시간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 똑같은 시간을 살면서도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어떤 마법이 펼쳐지고 있었던 것일까. 131인의 다양한 예술인들의 삶을 들여다보니 마법 같은 이야기는 없었다. 그것을 성취하고 싶다는 열정과 신념만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위대한 작가와 예술가들의 루틴을 따라한다고 해서 당장 삶의 변화가 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생활 습관을 점검하고 재고하면서 동기부여를 갖게 되면 이전보다 성장하는 삶이 되지 않을까. 나는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서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싶은 로망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밤에는 그런 의욕으로 가득하지만 아침이 되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약한 멘탈을 가졌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매일은 힘들겠지만 일주일에 몇 번이라도 도전해보고 싶다는 강한 의욕을 느꼈다. 꼭 예술가를 지향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어제보다 오늘이 더 나은 삶이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라면 이들 131인의 루틴 이야기가 좋은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나태함이 내 안에 파고들 때마다 자주 펼쳐 보게 될 책이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