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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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lowing 61, followers 46. 내 트윗이다. 트윗을 한다기 보다는 가끔 들여다보는 수준이다. 언젠가, 멘션이 강처럼 흐른다 혹은 비처럼 내린다는 표현을 듣고는 얼마나 신기했던지. 내 멘션창은 항상 정지상태다. 그런데도 나는 종종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공적 발언을 주로 하던 트친께서 어느 밤 느닷없이 사생활 생방을 시작하면, 벌컥 열어 제친 화장실에서 벗은 몸을 목격한 것처럼 부끄럽고 황망하다. 이런 내밀한 것까지 보아도 되는 건지, 몰래 훔쳐보는 느낌에 몹시 껄끄럽다. 감정에 겨운 트친께서 느낌표까지 남발할 때면 어쩔 수 없이 언팔을 해버린다. 『투명사회』의 저자 한병철이 말하는 것처럼 그것은 일종의 포르노다. 그 사람과 더 가깝고 더 친밀해 지는 것이 아니라, 더 멀고 더 낯설어 진다. 공적 영역에서 쌓인 아우라가 한순간에 무너지며, 신뢰와 존경도 사라진다. 선생님도 똥을 누지만, 똥 누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는 없다.

 

 

 

『투명사회』는 재미없다. 한병철의 전작 『피로사회』를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우선 읽기가 쉽지 않다. 100쪽도 거의 안 되는 짧은 글이지만, 한 페이지 넘기기가 그리 녹록치 않다. 미주가 99개니, 한 페이지에 한 개꼴로 주석이 붙었다. 그만큼 문장이 압축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 압축 속에는 플라톤을 비롯하여 벤담, 헤겔, 니체, 라캉, 하이데거, 벤야민, 슈미트, 바디우, 아감벤 등 이름은 들어본 철학자들과 거기에 더해, 들어보지도 못한 숱한 사상가들이 도사리고 앉아있다. 한 문장을 통째로 이해하려면 철학자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투명사회』는 어렵다.

 

『투명사회』에 난무하는 현란한 사상들 중 딱 하나의 핵심어를 고르라면 그것은 단연 헤겔의 ‘부정성’ 이다. 이 책에서 ‘투명성’은 이 단어가 가진 일반적 의미의 긍정성과는 정반대로 철저히 부정적인 함의를 지닌다. 이에 반하여 헤겔의 ‘부정성’은 그 자체가 최고의 긍정성을 의미한다.

 

「긍정사회는 변증법과 해석학에 작별을 고한다. 변증법의 바탕은 부정성에 있다. 그리하여 헤겔의 ‘정신’은 부정적인 것에 등을 돌리지 않고, 부정적인 것을 감당하고 그 속에서 자기를 보존한다. 부정성은 ‘정신의 생명’에 양분을 준다. 자기 속의 타자는 부정의 긴장을 촉발하며, 이로써 정신의 활력을 유지한다. 헤겔에 따르면 정신이 “힘”이 되는 것은 오직 “부정적인 것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그 곁에 머무를 때”뿐이다. 이러한 머무름이야말로 “부정적인 것을 존재로 역전시키는 마법”이다. p20」

 

헤겔은 『정신 현상학』서문에 이렇게 밝히고 있다.

 

「정신이란 그 자신이 절대적인 분열 속에 몸담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가운데 진리를 획득하는 것이다. 정신은 부정적인 것에서 눈길을 돌려 긍정적인 쪽으로 쏠림으로써 힘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 주어졌을 때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쓸모없는 것이라고 하면서 당장 고개를 내저으며 다른 쪽으로 마음을 돌리는 것은 정신이 취할 자세가 아니다. 참으로 정신이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바로 부정적인 것을 직시하며 그 곁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따돌리지 않고 그 곁에 함께 머무르는 바로 그 때, 여기에 부정적인 것을 존재로 전화되게 하는 마력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 마력이란 앞에서 주체라고 일컬어졌던 것과 동일한 것이다. 즉 주체란 자기가 관여하는 범위 안에 있는 내용에 독자적인 존립을 부여함으로써 추상적이고 직접적인 존재 일반을 지양하여 실체를 진리로 이끌어 가는 것이다. 부정이나 매개를 외부에 맡겨 놓다시피 한 무기력한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분열과 매개를 행하는 존재만이 주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다. p71~2」

 

정신이 힘을 발휘하고, 주체가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은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무르기’ 를 할 때이다. 부정과 부정의 부정을 통해 자기의식은 절대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헤겔의 『정신 현상학』을 정신이 나간 상태로 읽고 그 의미의 한 자락이라도 이해했다고 말 할 수는 없다. 어쨌든 헤겔 변증법의 핵심에는 부정성이 있고, 한병철은 투명사회가 몰아내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부정성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투명사회』가 예로 들고 있는 부정성은 가령 이런 것이다. 진리. 진리는 부정성이다. 왜냐하면 진리는 자기 자신 이외의 다른 모든 것을 부정함으로써, 자신을 진리로 정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짓 없는 참이 있을 수 없다. 그림자가 없는 빛이 없는 것처럼. 에로티시즘. 의미의 불명확함이 없는 것, 지시적인 명백성은 포르노다. 에로틱한 매력에는 알 수 없는, 신에게조차 비밀로 남아 있어야 할 무엇인가가 있다. 사랑의 부정성. 신뢰. 투명성이 신뢰를 만들지 않는다. 신뢰가 없는 곳에 투명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신뢰는 지와 무지의 중간 상태에서 가능한 것이다. 낱낱이 까발려진 것은 믿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아는 것이다. 상대의 알지 못하는 부분, 그 부정성을 신뢰로서 긍정하는 것이다. 이런 한병철의 ‘부정성’이 헤겔의 ‘부정성’ 과 같은 것인지는 모르겟지만, 저자는 이렇게 부정성을 투명성과 대립시킨다. 소제목으로 나열한 ‘긍정사회, 전시사회, 명백사회, 포르노사회, 가속사회,친밀사회,정보사회,폭로사회,통제사회’ 에 결핍된 것이 바로 부정성이다.

 

한병철에게 부정성의 반대는 ‘외설성’ 이다. 투명사회는 외설적이다. SNS는 모든 것을 노출한다. “배고파!” 도 “졸려..” 도 전시된다. 저자가 투명사회를 디지털 파놉티콘이라 정의하는 것도 이 포르노적 외설성 때문이다.

 

「오늘날 감시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자유에 대한 공격”이라는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 스스로 자발적으로 파놉티콘적 시선에 자기를 내맡긴다. 사람들은 자기를 노출하고 전시함으로써 열렬히 디지털 파놉티콘의 건설에 동참한다. 디지털 파놉티콘의 수감자는 피해자이자 가해자이다. 여기에 자유의 변증법이 있다. 자유는 곧 통제가 된다. p102」

 

벤담의 파놉티콘은 합리주의가 극단적 방식으로 제도화된 사례다. 디지털 파놉티콘은 어떤 가치관의 결과일까? 포스트 정치, 포스트 진리, 포스트 이데올로기 등등의 ‘포스트- ’ 사회. 차라리 가치 자체가 없는 사회의 슬픈 귀착지가 아닐까? 진리는 없고 사실만 있는, 신뢰는 없고 정보만 가득한, 에로티시즘은 없고 포르노만 넘치는, 투명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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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 2014-06-14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정성이란 커피의 카페인 같은것. 투명사회가 추구하는 것은 카페인 없는 커피, 니코틴 없는 담배.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1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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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셀 투르니에의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을 읽었다고 하려면,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도 읽어야 할 것이다. 완역본으로 추정되는 펭귄 클래식판 『로빈슨 크루소』의 존재를 확인했으나, 아쉽게도 읽지 못하고,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에 실린 <작품해설>을 통해 개략적 정보를 얻었다.

 

문학 해설에서는 보기 드물게도 김화영은 도표를 그려 두 작품과 그것들의 모델이 된 사건을 비교해 놓고 있다.

   

 

 

 

실존인물인 셀커크라는 선원은 1703년에 무인도에 혼자 남았고, 디포의 로빈슨과 투르니에의 로빈슨은 각각 1659년과 1759년에 무인도에 난파되었다. 다니엘 디포가 소설을 발표한 것은 1719년, 미셸 투르니에는 1966년 이다.

 

디포의 시대는 17C의 과학 혁명을 거쳐 18C 말의 산업 혁명으로 넘어가는 시기다. 서구 사회가 이성과 과학을 바탕으로, 자신감에 넘치던 때이다. ‘산업사회의 탄생’을 상징하는『로빈슨 크루소』가 탄생하기에 가장 적절했던 시기인 셈이다. 이에 반해 1,2차 세계 대전을 겪은 20C 중반의 서구는 근대 합리주의의 폐허 위에 포스트모던의 이상을 세우고 있었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이 『로빈슨 크루소』를 뒤집어야 했던 것은 역사의 마땅한 귀결인 셈이다. 그러므로 『로빈슨 크루소』가 자연에 대한 문명의 지배를 역설한 반면,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이 문명에 대한 자연의 귀환을 그리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다.

 

모던, 근대는 주체의 시대이다. 디포의 로빈슨은 섬을 지배하고 다스린다. 섬은 지배의 대상일 따름이다. 인간 프라이데이 역시 철저히 대상화된 타자, 야만적 노예일 뿐이다.

 

포스터 모던은 주체를 타도의 대상 또는 해체의 대상으로 본다. 주체가 물러나고 타자가 등장한다. 『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철학』에서 변광배는 포스트모던을 “서구철학사에서 중심을 차지했던 ‘일자’의 폭력으로 인해 주변부로 밀려났던 ‘타자’가 그 중심을 향해 획책한 반란p18” 이라고 정의한다. 샤르트르에서 시작해서 메를로-퐁티, 레비나스, 라캉, 리쾨르, 들뢰즈에 이르기까지, 20세기 중후반의 인문학 담론을 특징짓는 하나의 현상이 바로 타자이다. 타자에 대한 이들 철학자들의 담론은 물론 제 각각이다. 그러나 타자가 더 이상 주체를 위한 단순한 대상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투르니에의 로빈슨에게도 처음에 섬은 단순한 대상일 뿐이었다. 섬은 개척과 지배의 대상으로, 창조주인 로빈슨 자신에 의해 질서를 부여받아야 했다. 그러나 디포의 로빈슨과는 달리 투르니에의 로빈슨의 마음속에는 다른 가능태로서의 섬의 모습이 순간순간 떠올랐다 사라지곤 했다. 그리고 방드르디가 왔다. 처음에 방드르디는 무시무시한 의식을 거행하는 야만적 타자들의 일원이었다. 자신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목숨을 구해주게 된 방드르디는 부려야할 노예 - 타자였다. 그러나 방드르디는 그 천진성과 무구함으로 로빈슨이 섬에 이루어 놓았던 모든 질서를 날려버리고 동료 혹은 타로 카드가 예언한 대로 쌍둥이가 된다. 타자는 주체와 하나가 된 것이다. 로빈슨과 방드르디, 로빈슨과 섬은 모두 원소들로 화하고, 주체와 객체, 나와 타자가 구분되지 않는 한 덩어리, ‘태양의 로빈슨’으로 태어난다. 사실 세계의 모든 것은 우주가 폭발할 때 발생한 원소들로 이루어진 것이니 말이다. 유기체와 무기물, 주체와 객체, 하늘과 땅, 모두 동일한 입자들에서 탄생했으므로, 결국에는 하나이다.

 

 

 

주체는 타자와 하나이지만, 동시에 주체의 바깥에 존재해야 한다. 무인도에 난파한 후 곧 로빈슨은 혼자만의 삶에 진저리치며 타자의 존재를 갈망한다. “시각적 환상, 허깨비, 착란, 눈뜨고 꾸는 꿈, 몽환, 광기, 청각의 교란 등에 대항하는 가장 확실한 성벽은 우리의 형제, 우리의 이웃, 우리의 친구 혹은 원수, 하여간 그 누구, 오 하느님, 그 누구인 것이다! p 67~8 ” 마지막 12장의 ‘죄디’ 역시 타자의 존재가 삶의 동력임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방드르리가 화이트버드호를 타고 떠나 버린 것을 안 후 로빈슨은 죽으려고 동굴을 찾아 간다. 거기서 뜻밖에 화이트버드호에서 탈출한 어린 소년을 만난다. 로빈슨은 그 소년의 손을 잡고 언덕 꼭대기로 올라 바다를 내려다보며, 소년에게 목요일이란 뜻의 ‘죄디’란 이름을 붙여준다. 죄디는 로빈슨에게 새로운 삶을 준 것이다.

 

   

 

추기 :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의 원제는 'Vendredi ou les Limbes du Pacifique' 이다. 불어 ‘Limbes’는 카톨릭에서 말하는 림보이다. 천주교 자체를 접하지 못했던 사람들이나 세례를 받지 못한 아이들이 사는, 천국과 지옥 사이의 중간지대이다. 말하자면 죄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사는 곳이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은 자연의 무구한 상태 그대로다. 디포의 산업사회가 파괴된 곳 위에 투르니에는 림보라는 이상향을 세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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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 2014-06-06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루소가 <에밀>에게 권한 최초의 책이 <로빈슨 크루소> 라 한다. 투르니에가 1759년을 시작으로 삼은 이유다. 그런데 루소가 왜? <로빈슨 크루소> 를 어떤 시각으로 본 걸까? 청교도적 자본주의 윤리와 식민지 개척을 옹호한 책인데. 하긴 프랑스 혁명의 모델이 로크가 기초한 영국 자본주의 국가였다니.. 루소의 자유, 평등 개념도 비슷했을지도 모르겠다.

말리 2014-06-06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장 쓸모 있는 기술은 가장 빈약한 보수를 받고 있다...반면 한가한 사람과 부자만을 위해 일하는 소위 에술가라는 작자들은 불필요한 물건에 엄청한 가격을 매긴다... 부자가 그러한 것을 중시하는 이유는 유용성 때문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적인 유용성과 무관한 엄청난 비싼 가격을 보고, 어떤 물건이 값이 비쌀 수록 가치가 없다면, 그들 기술의 진정한 가치와 사물의 현실적인 가치에 대해 어떤 판단이 가능할 것인가.. 로빈슨은 쓸모없는 장신구보다 도구를 훨씬 더 아끼고 도구를 만드는 사람을 존경한다. <에밀>

말리 2014-06-06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빈슨 크루소는 고도에서 아무의 도움도 받지 않고 아무런 도구도 없이 자신을 보호하고, 나아가서 어느 정도 행복까지도 얻고 있었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경우에 필요한 것을 단순히 책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자신이 경험하여 좀더 자세히 배우기를 바란다. <에밀>

말리 2014-06-06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분의 블로그에 보니 루소는 <로빈슨 크루소>를 통해 인간에게 실용적인 것을 가르치라고 했다고.

말리 2014-06-09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에서 검색한것 :

로빈슨 크루소와 마찬가지로 에밀은 끊임없이 산책하고 공터를 돌아다니면서 자연 가운데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며 떠오르는 태양, 별자리를 관찰하면서 자연의 법칙도 깨닫게 된다.
로빈슨 크루소가 스스로 숙련된 기술로 자신이 필요로 하는 도구를 만들어 충족 했던것처럼 에밀은 공예 기술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다.
동시에 공예 기술은 다수의 협력이 필요하며 사회를 필요조건으로 한다는 것을 깨닫고 에밀은 직업기술을 배운다.

직업을 배우는데 있어서 우선 극복해야 할 것은 그것을 경시하는 편견이다.
루소는 이 시기를 육체 노동, 수공업적 기술 습득과 연결된 직업 교육에 힘쓰는 시기라고도 할 수 있으나 여전히 이론적 지식은 금기이며 오로지 모든실험을 일종의 연역에 의해 연결시키면서 올바른 지식을 깨닫게 해야 한다.
이렇게 형성된 육체의 교육은 앞으로 행해질 감성 교육의 토대를 이룬다.
 
페스트 알베르 카뮈 전집 7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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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에 의하면 『이방인』과 『시지프의 신화』, 『페스트』와 『반항인』은 각각 하나의 쌍을 이룬다. 앞의 쌍은 부조리 즉 부정의 계열, 뒤의 쌍은 반항 즉 긍정의 계열에 속하는 작품이다. 그러나 독자로서 눈에 딱 들어오는 단순한 구별 방법도 있다. 앞의 쌍은 책이 얇은 반면, 뒤의 쌍은 두껍다. 거의 두 배 정도 차이가 난다. 그런데 읽기는 오히려 『페스트』와 『반항인』이 쉽다. 『이방인』과 『시지프의 신화』가 운문 같다면, 『페스트』와 『반항인』은 산문이다. 특히 『페스트』는 카뮈가 이렇게 술술 읽혔나 싶을 만큼 편안하다. 『이방인』을 덮고 뭔가 잡힐 듯하면서도 아련하다면, 『페스트』를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훨씬 명료한 카뮈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페스트』는 전체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페스트 발병, 2부는 페스트를 대하는 사람들의 자세, 3부는 페스트에 의해 파괴된 삶, 4부는 페스트와 싸우며 변화하는 사람들, 5부는 페스트의 종말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전체적인 구성은 최근에 베스트셀러로 이름을 떨친 정유정의 『28』과 비슷하다. 그러나 내용은 전혀 다르다. 『28』이 장르 소설의 형식을 따르며 사건의 전개에 치중한다면, 『페스트』는 페스트가 발생했다는 사실 이외에는 별달리 극적인 사건은 없다. 폭동도 거의 없고, 대단한 혼란도 없다. 현대 재난물의 공식인, 재앙의 발병원인이 인간의 탐욕이라는 식의 반성적 도입부도 없다. 평온하고 따분하던 일상에 쥐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하고 곧바로 페스트가 창궐한다. 소설 『페스트』가 집중하는 것은 오직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어떻게 페스트에, 죽음에 대항하는가? 『페스트』는 전쟁, 특히 나치가 일으킨 전쟁에 대한 비유이지만, 인간 실존의 조건인 죽음 그 자체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서술자가 주목하는 인물들의 태도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초월적 태도, 도피적 태도, 투쟁적 태도이다. 그러나 이들의 태도는 페스트가 진행됨에 따라 변화한다. 폐쇄된 도시에서 그들의 운명은 결국 하나로 수렴되기 때문이다.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랑베르는 파리의 신문기자다. 취재차 왔다가 억류된 이방인이다. 랑베르는 어떻게 해서든 오랑을 빠져 나가려고 한다. 자신은 이 도시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의사 리유에게 페스트에 감염되지 않았다는 증명서를 부탁하지만, 거절당한다. 리유 자신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리유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감수해야 한다고 달랜다. “하지만 나는 이 고장 사람이 아닌데요!” “지금부터는 유감입니다만, 선생은 이 고장 사람입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페스트와 무관한 사람은 없다. 죽음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처럼. 하지만 랑베르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도시를 탈출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시도한다. 거듭된 좌절 끝에 마침내 기회가 찾아온다. 그 때 랑베르는 돌연 떠나지 않겠다고 말한다. “나는 늘 이 도시와는 남이고 여러분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고 생각해왔어요. 그러나 이제는 볼대로 다 보고 나니, 나는 내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이 곳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이 사건은 우리들 모두에게 관련된 것입니다.p282”

 

파늘루 신부는 페스트가 발병하자, 신의 징벌이며, 겪어 마땅할 불행을 겪는 것이라 설교한다. “오늘 페스트가 여러분에게 관여하게 된 것은 반성할 때가 왔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사람들은 조금도 그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악한 사람들이 떠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주라는 거대한 곳간 속에서 가차 없는 재앙은 짚과 낟알을 가리기 위해서 인류라는 밀을 타작할 것입니다. ... p135” 그렇다고 파늘루 신부가, 몇 년 전 동남아시아의 쓰나미를 두고 신을 믿지 않기 때문에 죄를 받은 것 운운했던 우리나라의 목사라는 인간들과 같은 부류는 아니다. 파늘루 신부는 보건대에 자원하여 페스트에 대항해 함께 싸운다. 페스트가 절정에 치달았을 때, 카스텔이라는 의사가 죽어가는 어린 아이의 몸에 혈청을 주사한다. 새로운 혈청을 개발하기 위해서이다. 이 어린 아이는 자원 보건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다 죽는다. 리유는 파늘루 신부에게 말한다. “허, 이애는, 적어도 아무 죄가 없었습니다. 당신도 그것은 알고 계실 거예요! p293” 파늘루 신부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대답하지만, 그 역시 어린 아이의 고통을 어떻게 의미화해야 하는지 혼란에 빠진다. 두 번째 설교에서 파늘루 신부는 고백한다. 그 아이를 기다리고 있는 영생의 환희가 그 고통을 보상해 줄 것이라 말해버리는 것이 쉽겠지만, 실상은 그 점에 대해서는 자기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그리고 외친다. “여러분, 드디어 때는 왔습니다. 모든 것을 믿거나, 모든 것을 부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대체 우리들 중의 누가 감히 모든 것을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p301” 페스트는 이제 그 누구보다 파늘루 신부 자신에 대한 신의 ‘타작’ 인 셈이다. 어린아이의 죽음 앞에서, 파늘루 신부는 신에 대한 사랑이냐 혐오냐의 선택을 강요받는다. 그는 선택하지 못한다. 타루의 말에 의하면 “죄 없는 사람이 눈알을 잃게 될 때, 한 기독교인으로서는 신앙을 잃거나 눈알이 빠지거나 해야 마땅하죠. 파늘루 신부는 신앙을 잃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러니 그는 갈 때까지 갈 거예요. 그가 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p308” 파늘루 신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 그런데 그의 사인은 ‘미상’ 이다. 의사는 페스트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그 증세에 이름을 붙이지 못한다. 죽은 아이에게 유죄를 선언할 수도 없고, 신을 부정할 수도 없던 파늘루 신부는 스스로 페스트에 걸려 죽어야 했던 것이다. 신부는 아마도 상상임신처럼 상상의 페스트를 앓았을 것이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죽음뿐이었다.

 

타루는 자원 보건대를 만든 사람이다. 열일곱 살 때 아버지가 재판에서 한 남자에게 사형선고 하는 것을 목격한 타루는 가출한다. 고생과 성공을 맛본 그는 언제나 뇌리를 떠나지 않던 사형선고에 맞서 싸우기로 하고 정치 운동에 뛰어든다. 인간은 누구도 다른 인간을 죽일 권리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형선고와 싸우고 있다고 생각해 온 자신 역시 그 싸움을 통해 오히려 사형선고에 동참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내가 간접적으로 수천 명의 죽음에 동의한다는 것, 숙명적으로 그러한 죽음을 가져오게 했던 그런 행위나 원칙들을 선이라고 인정함으로써 그러한 죽음을 야기시키기까지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딴 사람들은 그런 것으로 속을 썩이는 것 같지 않았고, 적어도 자발적으로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결코 없었습니다. .... 그들은 나에게 붉은 제복이 옮음을 인정하는 태도는 곧 그들에게 사형선고를 전적으로 일임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일단 한번 양보하게 되면 끝도 없이 양보를 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역사는 내 생각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주었습니다. 오늘날에 있어서는 많이 죽이는 자가 승리하는 모양이니 말이예요. 그들은 모두가 살인에 미친 듯이 열중해 있습니다. 달리 어쩔 도리가 없기 때문이지요. p336”

 

타루의 말은 『반항인』에서 까뮈 자신의 주장과 같다. 붉은 제복은 레닌-스탈린주의에 대한 유비로 볼 수 있다. 또한 프랑스 혁명정부에서 이름을 떨친 ‘죽음의 대천사’ 생 쥐스트 이기도 하다.

 

「유럽 정신은 전 인류와 함께라면 신에 대항하여 투쟁할 수 있으리라고 오랫동안 믿어온 연후, 이제 스스로 소멸되지 않으려면, 도리어, 인간들에 대항하여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죽음에 항거하여 몸을 일으켜, 인류 위에 억센 불멸성을 세우고자 했던 반항자들은, 이번에는 그들 자신이 살인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을 보고 기겁을 한다. 만일 그들이 후퇴한다면, 그들은 죽기를 받아들여야 한다. : 만일 그들이 전진한다면, 그들은 죽이기를 받아들여야 한다. 반항은, 그 기원으로부터 이탈되고 파렴치하게 변장된 채, 온갖 차원에서 희생과 살인 사이에서 동요하고 있다. 배분적 정의이고자 했던 반항의 정의는 요약적 정의가 되고 말았다. 은총의 왕국은 정복되었다. 그러나 정의의 왕국 역시 붕괴되고 있다. 유럽은 이 실망으로 죽어가고 있다. 유럽의 반항은 인간의 무죄성을 변호했었다. 그러더니 이제 자기 자신의 유죄성에 대하여 완강하게 버티고 있다. 반항이 전체성을 향해 몸을 던지자마자, 반항은 가장 절망적인 고독을 자기 몫으로 받는다. 반항은 전 인류의 공동체 속으로 들어가고자 했었다. 그런데 이제 반항은 통일성을 향해 나아가는 고독자들을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오랜 세월에 걸쳐 모아가는 희망 외에 다른 희망을 갖고 있지 않다.『반항인』p308」

 

반항은 통일성을 요구하지만, 역사적 혁명은 전체성을 요구한다. 전체주의에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 혁명은 도래할 유토피아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기를 강요한다. 정의의 왕국을 위해 살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혁명은 반항의 정신을 배반한다. 반항은 불가피한 살인은 어쩔 수 없다 해도, 논리적인 살인은 결코 허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만으로 세계를 통일하고 정의를 실현할 수는 없다. 반항자는 반항을 포기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살인하지 않으리라고 주장할 수 없다. 반항자는 살인에 동의할 수도 없고, 전적으로 거부할 수도 없다.

 

「반항자는 그러므로 휴식을 찾을 수 없다. 그는 선을 알고 있지만 본의 아니게 악을 행한다. 그를 지탱하는 가치는 결코 그에게 결정적으로 주어지지 않으며, 그는 이 가치를 끊임없이 유지시켜 나가야 한다. 그가 획득한 존재는 반항이 다시 그것을 지탱해 주지 않으면 무너져버린다. .. 암흑 속에 빠진 그의 유일한 미덕은 암흑의 어지러운 현기증에 굴복하지 않는 데 있다. : 악에 얽매인 그의 유일한 미덕은 집요하게 선을 향하여 나아가는 데 있다.『반항인』p314」

 

반항자는 휴식을 취할 수 없다. 그는 밀어 올리면 굴러 떨어지고, 또 밀어 올리면 또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끊임없이 밀고 올라가는 시지프이기 때문이다. 반항자는 아름다운 영혼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카뮈는 반항자의 손이 깨끗할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반항은 선과 악의 긴장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전적인 선을 추구할 때 반항은 무력해 지며, 악의 효율성에 손쉽게 넘어갈 때 반항은 살인이 된다. 악의 중력에 대항해 비상하려는 그 노력만이 반항인의 유일한 덕이다.

 

타루는 모든 살인을 거부한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을 죽게 하는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타루는 이 모순 속에 마음의 평화를 잃고 말았다고 고백한다. “그러다 보니 나는 내가 이 세상에 대해서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 죽이는 것을 단념한 그 순간부터 나는 결정적인 추방을 선고받은 인물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역사를 만드는 것은 다른 사람들입니다. 나는 또한 내가 그 사람들을 표면적으로 비판할 수도 없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나에게는 이성적인 살인자가 될 자질이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그것은 우월성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제 나는, 본래 있는 그대로의 내가 되기로 했고 겸손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다만 나는 지상에 재앙과 희생자들이 있으니 가능한 한은 재앙의 편을 들기를 거부해야 한다고 말하렵니다. 아마 좀 단순하다고 보실지 모릅니다. 단순한지 어떤지 나는 잘 모르지만, 아무튼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너무 여러 가지 이론들을 들어서 머리가 돌아버릴 뻔했고 그 이론들 때문에 실제로 다른 사람들은 살인 행위에 동의할 정도로 머리가 돌아버렸어요. 그래서 나는 인간의 모든 불행은 그들이 정확한 언어를 쓰지 않는데서 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정도를 걸어가기 위해 정확하게 말하고 행동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p339” 타루가 추구하는 것은 결국 성인이 되는 것이다. 신을 안 믿지 않느냐는 리유의 물음에 타루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 내가 아는 단 하나의 구체적인 문제는 사람은 신이 없이 성인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p341 ”

 

인간이 성인이 될 수 있을까? 타루는 페스트가 패퇴하여 물러갈 즈음에 페스트에 결려 죽는다. 타루를 보는 카뮈의 시선은 복합적이다. 타루를 반항인의 전형으로 묘사하는가 싶으면, 실패한 반항인의 씁쓸한 모습을 그린 것처럼도 보인다. 페스트에 대항해 자원 보건대를 앞장서서 꾸리며 열심히 싸우지만, 그는 마치 모든 사람들을 다 이해한 듯 옳고 그름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가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사형선고 뿐이다. 타루는 성인이 될 수 없으므로 죽어야 한 것일까? 죽어서 성인이 된 것일까?

 

『페스트』는 알제리의 오랑시를 몇 개월 간 휩쓸었던 페스트에 관한 기록물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이 충실한 기록의 서술자는 마지막에 가서야 밝혀지는데 의사 리유이다. 리유는 맨 먼저 페스트의 징후를 알아채고, 시 당국에 적절한 조치를 요구하고, 타루의 자원 보건대를 이끌며 페스트와 직접 맞서 싸운 중심인물이다. 처음 보건대 조직을 위해 리유를 찾아갔을 때 타루는, 신을 믿지도 않으면서 왜 그렇게 헌신적이냐고 리유에게 묻는다. “ .. 만약 어떤 전능한 신을 믿는다면, 자기는 사람들의 병을 고치는 것을 그만두고 그런 수고는 신에게 맡겨버리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심지어는 신을 믿는다고 생각하는 파늘루까지도, 그런 식으로 신을 믿는 이는 없는데, 그 이유는 전적으로 자기를 포기하고 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며, 적어도 그 점에 있어서 리유 자신도 이미 창조되어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거부하며 투쟁함으로써 진리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p176” 리유는 페스트가 어떻게 될지, 다음에 무엇이 올지 알 수 없지만 자신은 당장 해야 할 일, 환자를 돌보는 일을 할 뿐이라고 말한다. 리유와 타루의 오랜 이야기 끝에 타루는 “그 모든 것을 누가 가르쳐 드렸나요, 선생님?” 이라고 묻고, 리유는 “가난입니다.” 라고 답한다. 리유는 타루처럼 고뇌하는 인간도 아니고 대단한 사상을 가진 인물도 아니다. 그저 눈앞의 현실에 맞서 싸우는 평범한 의사이다. 그러나 이 페스트의 지옥에서 조용히 투쟁하고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바로 리유이다.

 

 

리유는 카뮈의 마음속에 있던 반항인의 참된 모습이 아닐까 싶다. 리유는 신을 믿지도 않고, 성자가 되기를 바라지도 않는, 의사이다. 의사는 끊임없이 죽음과 싸우는 사람이다. 의사란 죽음을 막을 수는 없지만, 결국은 패배하리라는 것을 알지만, 포기하지 않고 인간의 편에 서서 죽음과 싸워야 하는 직업(소명)이다. 파늘루 신부도 타루도 죽었지만 리유는 살아남아 이 기록물의 서술자가 된 것은 바로 리유가 의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카뮈가 말하고자 하는 반항인이란 죽음과 싸우는 의사이다.

 

하지만 타루의 보건대 없이는 리유 역시 페스트와 맞서 싸우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리유와 타루는 서로를 보완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렇다고 둘을 합치면 완전한 이상형이 되는 것은 아니다. 통일된 세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통일을 향한 인간의 투쟁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완전한 반항인이 아니라 참된 반항인이 되고자 하는 다수의 반항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소설『페스트』는 이런 반항에 대한 하나의 증언이다. : “다만 공포와 그 공포가 가지고 있는 악착같은 무기에 대항하여 수행해나가야 했던 것, 그리고 성자가 될 수 없고 재앙을 용납할 수도 없기에 그 대신 의사가 되겠다고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개인적인 고통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수행해나가야 할 것에 대한 증언일 뿐이다. p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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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장안에서 나라까지 굽이치는 동아시아

 

1. 통일로 가는 유목 세계와 농경 세계

 

한나라 멸망이후 등장하는 삼국시대는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중국 역사이다. 위·촉·오를 이끌었던 조조, 유비, 손권이 천하를 두고 다투는 이야기는 얼마나 흥미진진했던가. 삼국지를 몇 번이나 읽었는가를 놓고 서로 뽐내기도 하고, 남자는 적어도 세 번은 혹은 열 번은 읽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여하튼 삼국의 패권은 조조가 잡았으나, 정작 삼국을 통일한 것은 위나라를 이은 진나라였다.

  

 

 

 

 

진나라는 그렇게 강력하지 못했는데, 그 틈을 타서 유목민들이 나라를 세우기 시작했다. 원래 유목민들은 만리장성 바깥에 살았으나 한나라 말기에 장성 아래로 내려와 한족과 섞여 살기 시작했다. 중국인들은 이 유목민들을 오랑캐라는 의미의 ‘호족’이라고 불렀다. 진나라가 허약해지자 중국의 북쪽지방은 다섯 호족이 16개의 국가를 세워 서로 경쟁하는 5호16국의 시대가 되었다. 중국 땅에 유목민들이 자신들의 둥지를 튼 것이다. 진나라는 이들에게 쫓겨 남쪽으로 내려가 동진을 세웠다.

 

사진에서 ‘푸른색’ 왕조들이 정통 한족이 세운 나라들이고, ‘연두색’ 왕조들은 호족들의 나라들이다. 한족의 나라들을 남조, 호족의 나라들을 북조라 부른다. 한나라가 멸망한 이후, 삼국시대부터 수나라가 다시 중국을 통일하기 이전까지의 360여 년간의 혼란기를 위·진·남북조 시대라고 한다. 

 

수나라를 세운 문제는 호족과 한족을 융합하여 중국을 하나의 세계로 만들었다.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농경민인 한족과 유목민인 호족이 서로 섞이는 호·한 일체의 세계가 마련된 것이다. 이 수 문제는 물론 고구려를 침공했던 그 수 문제이다.

 

 

2 .말 달리는 한반도, 일어서는 일본

 

이 시기의 한반도도 삼국시대였다. 패권 다툼의 중심지는 한강이었는데, 한강 유역을 차지한 나라가 가장 강성했다 할 수 있다. 백제는 4세기에, 고구려는 5세기, 신라는 6세기에 각각 한강을 차지했다. 

 

고구려는 한반도를 벗어나 북방의 중국 땅으로 영토를 드넓혀 감으로써, 동북아시아의 최강국으로 우뚝 자리 잡았다.

 

일본은 백제의 문물에 많은 영향을 받았고, 유교와 불교를 받아들여 아스카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때 고구려의 팽창>

 

 

3. 백강에서 겨루는 동아시아 삼국

 

7세기에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다. 신라의 통일은 군사력보다는 외교력에 의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백제와 치열한 다툼을 벌이던 신라는 고구려와 연합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협상이 깨지자 신라의 김춘추는 당나라로 건너갔다.

수나라를 이은 당나라에게도 고구려는 골칫거리였다. 수나라의 문제가 살수에서 을지문덕 장군에게 대패한 이후, 당나라의 태종도 안시성에서 대패하고 말았다. 요동과 만주 등지로 세력을 넓혀 오는 고구려는 무서운 위협이었다.

고구려를 쓰러뜨려야 하는 당 나라와 고구려와 백제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야 했던 신라는 재빠르게 손을 잡았다. 양국은 나·당 연합군을 결성하고, 660년 백제를, 668년 고구려를 무너뜨렸다.

 

그러나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 들여 통일을 하는 바람에, 우리 민족의 전체 역사에서 보았을 때 고구려가 차지하고 있던 동북의 막대한 영토가 중국의 손에 넘어가 버리는 뼈아픈 결과가 발생했다. 당시에는 삼국이 한 민족의 개념이 아니라 서로 존폐를 놓고 다투는 경쟁국의 관계에 있었으므로, 신라의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이었으나, 오늘의 우리 입장에서는 못내 아쉬움을 떨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백제와 고구려가 망하자 당나라는 한반도를 지배하려는 야욕을 드러냈고, 6년간에 걸친 나·당 전쟁이 시작되었다. 676년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 부흥군의 도움을 받아 당군을 격퇴시키고, 통일을 마무리 지었다.

 

통일 후 신라는 부처의 가르침에 따르는 불교의 나라를 꿈꾸었다. 한편 통일의 대가로 당나라에 넘긴 옛 고구려 땅에서 고구려 유민들이 끈질기게 저항하였다. 대조영이 만주에 ‘진’나라를 세웠는데, 이것이 발해이다. 8세기 후반에는 당과 발해, 신라가 서로 견제하며 세력 균형을 이루었다.

 

 

4. 비단길에 실려 온 당나라의 봄바람

 

당나라는 측천무후에 이은 현종 때에 세계적인 문화의 꽃을 피웠다. 수도 장안은 인구 100만의 국제도시로, 많은 학자와 예술가가 배출되었다. 한나라 시대에 개척한 비단길과 바닷길을 통해 페르시아와 아라비아의 상인들까지 왕래하였다.

 

당나라에는 여러 국가에서 온 수많은 인재가 활약하였는데, 신라의 최치원, 장보고, 혜초 등이 당에서 이름을 떨쳤다. 장보고는 당에서 귀국 후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여 해적을 소탕하고 해상무역을 독점하였다. 유학승인 혜초는 인도를 순례하고 <왕오천축국전>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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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서 2014-06-16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중국 역사는 따분하게만 느껴졌는데 우리 나라의 역사와 조합해서 생각하며 읽어 보니 재미있고 혜초 얘기도 나와서 재미있었다.
 

6. 영혼의 강 인도, 바다로 열린 동남아시아

 

 

 

1. 힌두 세계의 울타리를 세우다

 

기원후부터 AD 1,000년 사이의 인도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와 큰 관련이 없어, 사실 책의 내용이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느 지역에서나 그러했듯이 왕조들의 흥망이 있었고, 나름의 전통과 문화를 만들어 살아왔다. 카스트 제도는 더욱 강화되어 신분의 벽은 더욱 단단해졌다.

 

굽타왕조 때 힌두교가 만들어졌다. 힌두는 인더스 강 끄트머리의 ‘신드’라는 지방에서 비롯된 말로 신드가 힌두로 바뀌고, 힌두가 다시 인도라는 그리스 식 이름으로 바뀌었다. 간단히 말해 힌두교란 인도의 종교라는 의미다. 힌두교는 전통적인 브라만교에다 불교와 민간 신앙이 합쳐진 것으로, 인도인에게는 종교적 의미를 넘어서 인도인의 생활 방식이자 힌두 문화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인도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는 ‘영’의 발명이다. 비어있다는 개념을 바탕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 즉 ‘無’에 ‘0’이라는 기호를 부여하여 존재하게 함으로써, 수학의 역사에 엄청난 발전을 가져왔다. 무한대∞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것도 이 시기의 인도인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아라비아 숫자 역시 인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2. 인도에 찾아 온 이슬람 세력

 

10세기 말 중앙아시아 튀르크 계통의 이슬람 세력이 인도 쪽으로 와서 나라를 세웠다. 아프카니스탄에 터를 잡은 이들은 틈틈이 인도를 침입하였고, 북인도 지역은 하나씩 이슬람 세력에 넘어갔다. 현재의 이란과 인도 사이에 있는 아프카니스탄과 파키스탄도 이때부터 이슬람교 지역으로 편입된 것 같다. 아프카니스탄 반군으로 뉴스에 가끔 등장하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뿌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초창기 이슬람 세력은 힌두교 신전을 파괴하고 약탈을 일삼았다. 그러나 전시가 아닌 평상시에는 개종을 강요하거나 힌두사원을 공격하지는 않았고, 힌두교 행사를 관대하게 눈감아 주기도 했다. 이런 관용 정책에 힘입어 인도의 하층민들은 이슬람 세력을 반겼다. ‘알라 앞에 누구나 평등하다’는 인간 평등의 정신은 힌두교와 카스트 제도의 신분 차별에 신음하던 하층민들에게 해방의 기쁨을 가져다 주었다.

 

3. 더 넓은 인도를 찾아서

 

남인도 지역은 기원전 6세기부터 상업이 활발하였다. 인도 상인들은 인도차이나 지역의 금은과 중국이나 페르시아 지역의 향나무, 상아 등을 가지고 무역 활동을 했다. 특히 후추를 비롯한 향료 무역이 유명했다. 콜럼버스가 인도를 찾아 떠난 이유가 바로 이런 발달한 교역과 문화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인도양 교역권>

 

 

4. 뭍과 바다를 품은 동남아시아

 

유럽인들은 동남아시아를 인도차이나라고도 부른다. 인도와 차이나 사이에 위치하고 있고, 이 두 문명권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동남아시아 지역>

 

그러나 동남아시아 지역은 유교문화와 힌두교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인 고유문화를 유지하였다. 모계 중심 사회가 계속되었고, 카스트 제도 같은 신분 제도도 멀리하였다.

 

베트남은 동남아시아의 중심국가로서, 13세기까지도 여성의 사회 활동이 매우 활발하였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 지역은 인도 상인들을 통해 인도인과 매우 자주 교류하면서 결혼도 많이 하였다. 인도네시아란 말 자체도 ‘인도인 의 섬’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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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서 2014-05-27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라비아 숫자와 인도 숫자를 비교할 수 있어서 좋았고
이슬람 세계에 대해서도 나와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