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영혼의 강 인도, 바다로 열린 동남아시아

 

 

 

1. 힌두 세계의 울타리를 세우다

 

기원후부터 AD 1,000년 사이의 인도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와 큰 관련이 없어, 사실 책의 내용이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느 지역에서나 그러했듯이 왕조들의 흥망이 있었고, 나름의 전통과 문화를 만들어 살아왔다. 카스트 제도는 더욱 강화되어 신분의 벽은 더욱 단단해졌다.

 

굽타왕조 때 힌두교가 만들어졌다. 힌두는 인더스 강 끄트머리의 ‘신드’라는 지방에서 비롯된 말로 신드가 힌두로 바뀌고, 힌두가 다시 인도라는 그리스 식 이름으로 바뀌었다. 간단히 말해 힌두교란 인도의 종교라는 의미다. 힌두교는 전통적인 브라만교에다 불교와 민간 신앙이 합쳐진 것으로, 인도인에게는 종교적 의미를 넘어서 인도인의 생활 방식이자 힌두 문화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인도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는 ‘영’의 발명이다. 비어있다는 개념을 바탕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 즉 ‘無’에 ‘0’이라는 기호를 부여하여 존재하게 함으로써, 수학의 역사에 엄청난 발전을 가져왔다. 무한대∞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것도 이 시기의 인도인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아라비아 숫자 역시 인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2. 인도에 찾아 온 이슬람 세력

 

10세기 말 중앙아시아 튀르크 계통의 이슬람 세력이 인도 쪽으로 와서 나라를 세웠다. 아프카니스탄에 터를 잡은 이들은 틈틈이 인도를 침입하였고, 북인도 지역은 하나씩 이슬람 세력에 넘어갔다. 현재의 이란과 인도 사이에 있는 아프카니스탄과 파키스탄도 이때부터 이슬람교 지역으로 편입된 것 같다. 아프카니스탄 반군으로 뉴스에 가끔 등장하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뿌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초창기 이슬람 세력은 힌두교 신전을 파괴하고 약탈을 일삼았다. 그러나 전시가 아닌 평상시에는 개종을 강요하거나 힌두사원을 공격하지는 않았고, 힌두교 행사를 관대하게 눈감아 주기도 했다. 이런 관용 정책에 힘입어 인도의 하층민들은 이슬람 세력을 반겼다. ‘알라 앞에 누구나 평등하다’는 인간 평등의 정신은 힌두교와 카스트 제도의 신분 차별에 신음하던 하층민들에게 해방의 기쁨을 가져다 주었다.

 

3. 더 넓은 인도를 찾아서

 

남인도 지역은 기원전 6세기부터 상업이 활발하였다. 인도 상인들은 인도차이나 지역의 금은과 중국이나 페르시아 지역의 향나무, 상아 등을 가지고 무역 활동을 했다. 특히 후추를 비롯한 향료 무역이 유명했다. 콜럼버스가 인도를 찾아 떠난 이유가 바로 이런 발달한 교역과 문화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인도양 교역권>

 

 

4. 뭍과 바다를 품은 동남아시아

 

유럽인들은 동남아시아를 인도차이나라고도 부른다. 인도와 차이나 사이에 위치하고 있고, 이 두 문명권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동남아시아 지역>

 

그러나 동남아시아 지역은 유교문화와 힌두교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인 고유문화를 유지하였다. 모계 중심 사회가 계속되었고, 카스트 제도 같은 신분 제도도 멀리하였다.

 

베트남은 동남아시아의 중심국가로서, 13세기까지도 여성의 사회 활동이 매우 활발하였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 지역은 인도 상인들을 통해 인도인과 매우 자주 교류하면서 결혼도 많이 하였다. 인도네시아란 말 자체도 ‘인도인 의 섬’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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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서 2014-05-27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라비아 숫자와 인도 숫자를 비교할 수 있어서 좋았고
이슬람 세계에 대해서도 나와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