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장안에서 나라까지 굽이치는 동아시아
1. 통일로 가는 유목 세계와 농경 세계
한나라 멸망이후 등장하는 삼국시대는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중국 역사이다. 위·촉·오를 이끌었던 조조, 유비, 손권이 천하를 두고 다투는 이야기는 얼마나 흥미진진했던가. 삼국지를 몇 번이나 읽었는가를 놓고 서로 뽐내기도 하고, 남자는 적어도 세 번은 혹은 열 번은 읽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여하튼 삼국의 패권은 조조가 잡았으나, 정작 삼국을 통일한 것은 위나라를 이은 진나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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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는 그렇게 강력하지 못했는데, 그 틈을 타서 유목민들이 나라를 세우기 시작했다. 원래 유목민들은 만리장성 바깥에 살았으나 한나라 말기에 장성 아래로 내려와 한족과 섞여 살기 시작했다. 중국인들은 이 유목민들을 오랑캐라는 의미의 ‘호족’이라고 불렀다. 진나라가 허약해지자 중국의 북쪽지방은 다섯 호족이 16개의 국가를 세워 서로 경쟁하는 5호16국의 시대가 되었다. 중국 땅에 유목민들이 자신들의 둥지를 튼 것이다. 진나라는 이들에게 쫓겨 남쪽으로 내려가 동진을 세웠다.
사진에서 ‘푸른색’ 왕조들이 정통 한족이 세운 나라들이고, ‘연두색’ 왕조들은 호족들의 나라들이다. 한족의 나라들을 남조, 호족의 나라들을 북조라 부른다. 한나라가 멸망한 이후, 삼국시대부터 수나라가 다시 중국을 통일하기 이전까지의 360여 년간의 혼란기를 위·진·남북조 시대라고 한다.
수나라를 세운 문제는 호족과 한족을 융합하여 중국을 하나의 세계로 만들었다.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농경민인 한족과 유목민인 호족이 서로 섞이는 호·한 일체의 세계가 마련된 것이다. 이 수 문제는 물론 고구려를 침공했던 그 수 문제이다.
2 .말 달리는 한반도, 일어서는 일본
이 시기의 한반도도 삼국시대였다. 패권 다툼의 중심지는 한강이었는데, 한강 유역을 차지한 나라가 가장 강성했다 할 수 있다. 백제는 4세기에, 고구려는 5세기, 신라는 6세기에 각각 한강을 차지했다.
고구려는 한반도를 벗어나 북방의 중국 땅으로 영토를 드넓혀 감으로써, 동북아시아의 최강국으로 우뚝 자리 잡았다.
일본은 백제의 문물에 많은 영향을 받았고, 유교와 불교를 받아들여 아스카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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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과 장수왕 때 고구려의 팽창>
3. 백강에서 겨루는 동아시아 삼국
7세기에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다. 신라의 통일은 군사력보다는 외교력에 의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백제와 치열한 다툼을 벌이던 신라는 고구려와 연합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협상이 깨지자 신라의 김춘추는 당나라로 건너갔다.
수나라를 이은 당나라에게도 고구려는 골칫거리였다. 수나라의 문제가 살수에서 을지문덕 장군에게 대패한 이후, 당나라의 태종도 안시성에서 대패하고 말았다. 요동과 만주 등지로 세력을 넓혀 오는 고구려는 무서운 위협이었다.
고구려를 쓰러뜨려야 하는 당 나라와 고구려와 백제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야 했던 신라는 재빠르게 손을 잡았다. 양국은 나·당 연합군을 결성하고, 660년 백제를, 668년 고구려를 무너뜨렸다.
그러나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 들여 통일을 하는 바람에, 우리 민족의 전체 역사에서 보았을 때 고구려가 차지하고 있던 동북의 막대한 영토가 중국의 손에 넘어가 버리는 뼈아픈 결과가 발생했다. 당시에는 삼국이 한 민족의 개념이 아니라 서로 존폐를 놓고 다투는 경쟁국의 관계에 있었으므로, 신라의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이었으나, 오늘의 우리 입장에서는 못내 아쉬움을 떨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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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와 고구려가 망하자 당나라는 한반도를 지배하려는 야욕을 드러냈고, 6년간에 걸친 나·당 전쟁이 시작되었다. 676년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 부흥군의 도움을 받아 당군을 격퇴시키고, 통일을 마무리 지었다.
통일 후 신라는 부처의 가르침에 따르는 불교의 나라를 꿈꾸었다. 한편 통일의 대가로 당나라에 넘긴 옛 고구려 땅에서 고구려 유민들이 끈질기게 저항하였다. 대조영이 만주에 ‘진’나라를 세웠는데, 이것이 발해이다. 8세기 후반에는 당과 발해, 신라가 서로 견제하며 세력 균형을 이루었다.
4. 비단길에 실려 온 당나라의 봄바람
당나라는 측천무후에 이은 현종 때에 세계적인 문화의 꽃을 피웠다. 수도 장안은 인구 100만의 국제도시로, 많은 학자와 예술가가 배출되었다. 한나라 시대에 개척한 비단길과 바닷길을 통해 페르시아와 아라비아의 상인들까지 왕래하였다.
당나라에는 여러 국가에서 온 수많은 인재가 활약하였는데, 신라의 최치원, 장보고, 혜초 등이 당에서 이름을 떨쳤다. 장보고는 당에서 귀국 후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여 해적을 소탕하고 해상무역을 독점하였다. 유학승인 혜초는 인도를 순례하고 <왕오천축국전>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