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대서양을

     헤쳐 나가는

     유럽

 

 

 

 

 

 

 

1. 바다로 나서는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1492년은 콜럼부스가 서인도제도에 도착한 날이다. 이 사건이 세계사의 한 획을 그은 이유는 단지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유럽과 아시아의 위상이 뒤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가 하나로 통합되면서 수탈과 착취를 기반으로 하는 제국주의 시대가 열렸던 것이다. 15세기까지만 해도 유럽 국가들은 야만에 가까웠고, 발달된 과학과 눈부신 문명은 동양에서 만개하였다. 몽골의 대도를 찾아서, 인도와 중국의 진귀한 물품들을 구매하기 위해, 유럽의 종교인, 학자, 상인들이 아시안 드림을 꿈꾸며 먼 길을 가로질렀던 것이다.

 

 

포르투갈이 아프리카의 희망봉을 돌아 인도 남쪽의 캘리컷으로 연결되는 항로를 열었던 것도 이슬람 상인이 차지하고 있는 육로를 피해 직접 인도에 가서 값진 향료를 사오기 위해서였다. 에스파냐의 입장에서는, 육로는 이슬람에, 인도양 항로는 포르투갈에 가로막힌 상황에서, 인도로 가는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밖에 없었는데, 지구가 둥글다면 서쪽으로 가도 결국은 인도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서쪽 항로를 개척하게 되었다. 서쪽 바다 즉 대서양을 가로지르던 콜럼부스는 거기가 어딘지도 모른 채, 1492년 아메리카 대륙에 도달하게 되었고, 지구의 지리적 구조에 무지했던 15세기 유럽인들은 그곳을 서인도, 처음 도착한 섬들을 서인도제도, 그곳에 살던 원래 주민들을 인디언이라고 이름 붙였다.

  

 

에스파냐인들이 도착한 멕시코 및 남아메리카 대륙에는 아스텍, 마야, 잉카라는 오래된 문명과 거대한 제국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도 확연히 밝혀지지 않은 몇몇 이유들로, 이 찬란했던 문명은 겨우 수 백 명의 에스파냐 침략군에 허무하게 무너졌고, 그 이후 대부분의 지역이 에스파냐의 식민지가 되어 무자비하게 착취당했다. 남미의 많은 국가들이 스페인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브라질만이 스페인어 대신 포르투갈을 사용하고 있다. 그들이 매일 사용하고 있는 언어 자체가 치욕의 역사를 아프게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도 한글을 소중하게 지켜 낸 우리민족은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요즘에 와서는 모든 국민들이 영어에 목을 매는 희한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지만, 후대에 가면 아마도 이 비정상적인 시대는 희화되어 한낱 웃음거리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여하튼 남미 고대 문명의 몰락에 대해서는 총, 칼을 만들 수 있는 철기 문화가 발달하지 못했다는 점, 원주민 내부의 갈등이 극심했던 시기라는 점, 그리고 유럽인들이 가져온 전염병에 전혀 내성이 없었다는 점들이 그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에스파냐는 뜻하지 않게 남미대륙을 차지하고 수많은 은광을 독점하면서 16세기 유럽 세계의 최강자가 되었다. 식민지의 부를 바탕으로 스페인의 무적함대, 아르마다는 대서양을 호령하며, 스페인 제국의 위용을 자랑하였다.

 

 

2. 유럽의 새 강자, 영국과 프랑스

 

에스파냐의 지배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세기가 바뀌며 유럽의 강자도 바뀌어 갔다. 16세기가 에스파냐였다면, 17세기는 네덜란드가, 18세기는 프랑스와 경쟁하던 영국이 최종 승자가 되었다.

 

  

 

그 많은 영토와 은광을 가졌던 에스파냐는 왜 몰락했을까? 에스파냐는 국내 공업을 발전시키지 않고 동양의 사치품과 다른 가의 공산품을 사들이는데 막대한 부를 낭비했다. 그러나 더 큰 원인은 펠리페 2세의 극단적인 종교 탄압에 있었다. 펠리페 2세는 카톨릭교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유럽에서 벌어지는 온갖 종교 전쟁에 끼어들었다. 또 에스파냐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살았는데, 펠리페 2세가 이들을 추방하면서 상업과 금융이 붕괴했다.

 

한편 네덜란드는 펠리페 2세의 종교 탄압에 대항한 끈질긴 투쟁 끝에 독립을 쟁취하고 유럽에서 가장 자유로운 국가가 되었다. 사상과 종교 문제로 탄압받던 유럽의 지식인들과 과학자, 종교 지도자 그리고 에스파냐에서 쫓겨난 유대인들이 대거 네덜란드로 모여들었다. 데카르트, 스피노자 등의 근대철학자들도 네덜란드에서 출판 활동을 했다. 또한 유대인들의 선진 금융기법과 다이아몬드 세공 등의 기술을 바탕으로 네덜란드는 상업과 금융 중심지로 일약 발돋움 하였다. 조선술도 발전하여 유럽의 다른 나라에 비해 1/3 정도의 비용으로 상선을 건조해 내었다. 그 결과 전체 유럽 상선의 3/4을 가진 유럽 최대의 해운국이 되었다. 조선으로 표류하여 온 하멜이 하필 네덜란드 사람인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유럽 한 귀퉁이의 조그마한 나라가 단번에 유럽 패권을 쥐게 된 것은 사상과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자 유럽의 우수한 인재들이 한꺼번에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과학과 철학은 물론 상업, 금융, 출판 등 다양한 분야의 뛰어난 인재들이 이루어낸 성과야말로 네덜란드가 17세기 유럽의 강자로 군림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이었다.

 

영국은 에스파냐의 무적함대를 격파하면서 유럽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초기 영국은 네덜란드와 연합하여 에스파냐에 대항하고, 네덜란드 독립을 지원하였다. 그러나 네덜란드가 유럽 최대의 해운국이 되자 두 나라는 몇 차례의 전쟁을 통해 패권을 다투었다. 17세기 중후반 무렵부터 네덜란드는 위축되기 시작했고, 영국이 우위를 차지했다.

 

17세기 후반에는 프랑스가 유럽의 패권을 두고 영국과 치열한 다툼을 벌였다.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는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해외 식민지를 개척하며 국력을 신장했으나, 이후 재정의 고갈로 쇠약해졌다. 이후 유럽의 패권은 영국이 완전히 차지하게 되었다.

 

 

3. 서유럽을 따르는 중·동부 유럽

 

러시아는 그리스 정교와 비잔티움 문화를 수용하며 유럽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며 발전했다. 러시아가 유럽의 일원으로 등장한 것은 18세기 초 표트르 대제 때부터다. 표트르는 서유럽의 정치·경제·군사 제도를 본보기 삼아 러시아를 개혁하였다.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등의 중·동부 유럽도 프랑스의 절대왕정과 서유럽의 정치,경제 체제를 받아들여, 국력을 키워나갔다.

 

그러나 이들 중·동부 유럽 국가들은 서유럽과는 달리 농노제가 여전히 기승을 부렸다. 서유럽은 봉건제가 붕괴하고, 부르주아가 성장하고, 근대정신과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서서히 근대적 국가로 발전해 나간 반면, 서유럽을 압축적으로 뒤따른 중·동부 유럽은 철저한 체질 개선을 이루지 못한 채 외양만 쫓아갔던 것이다. 그 부작용으로 농노들의 삶은 더욱 힘들어졌다.

 

 

4. 유럽을 살찌운 대서양 무역

 

16세기 이후 서유럽 국가들은 눈부시게 발전하였다. 아시안 드림을 꿈꾸던 야만적 국가에서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주의 국가로 변신하였다. 보통 17세기는 과학의 시대, 18세기는 산업혁명의 시대, 19세기는 부르주아의 시대로 불린다. 뉴턴과 갈릴레이, 증기기관과 방직기계의 발명이 자본주의시대를 선도해 낸 것이다.

 

그런데 이 연구 개발의 막대한 자금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콜럼부스 이래 서유럽 여러 국가들이 앞 다투어 침탈한 식민지의 희생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남아메리카의 은광과 대규모 농장, 그리고 아프리카 노예가 오늘날 서구 문명의 밑거름이 되었다. ‘신사의 나라’로 통하는 영국의 이면에는 ‘노예무역’ 이라는 잔혹성이 감추어져 있다.

 

  

 

대규모 은광시대가 끝나자, 유럽 열강은 아메리카 각지에서 담배, 커피, 면화, 사탕수수 등의 대규모 농장을 운영하여 막대한 이득을 취하였다. 그런데 아메리카 원주민들만으로는 노동력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사냥해 와서 강제 노역을 시켰다. 그러자 노예 자체가 커다란 상품이 되었고 유럽 각국은 노예무역에 뛰어들었다. 사람이 상품이 된 것이다.

 

삼각무역은 세 대륙, 유럽에서 출발한 상선이 아프리카와 아메리카를 거치며 어떤 상품들을 거래하는지 잘 보여준다. 유럽에서 총기와 잡화를 실은 배가 아프리카 해안에 도착하면, 실어온 물건들을 아프리카의 노예와 맞바꾼다. 노예를 실은 배는 다시 아메리카에 상륙해서, 대농장에서 노예들이 생산한 설탕과 면화 등을 다시 실어온 노예와 맞바꾼다. 유럽의 공업제품과 아프리카의 노예, 아메리카의 설탕 등을 엮는 삼각무역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 삼각무역으로 가장 덕을 본 나라는 영국이었다. 영국은 17세기 후반부터 150년 동안 340만 명의 흑인 노예들을 실어 날랐다. 영국 산업혁명의 종자돈은 바로 이 아프리카 흑인들의 눈물이었던 것이다. 2차 세계대전에서 유대인 학살, 전쟁의 책임 등에 대한 독일의 사과를 당연시하는 이들 근대 유럽 열강들은 그러나 아직도 아프리카 노예들의 희생, 남아메리카 원주민 학살 등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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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7-02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월드컵을 보니 남미 국가들은 서로 말이 통해서 ( 스페인어를 사용해서 ) 전반전 끝나고 들어갈 때 한바탕 싸우고 그랬죠. 말이 통해니 서로 욕하는 게 다 들리는 겁니다. ㅎㅎㅎㅎ. 새삼 한국어'가 소중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말리 2014-07-03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떨때는 전세계가 단일한 언어를 사용한다면 언어를 둘러싼 별 미친짓거리도 없을라나 싶다가... 글케되면 그게 지구제국화 되는 거겠죠 ㅎ;;

2018-01-26 16: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50부작 드라마 <정도전> 이 어제 끝났다. 인터넷 기사들은 이 보기 드문 드라마에 일제히 ‘명품사극’이란 수식어를 붙였다. 나는 드라마에도 문학처럼 고전이 있다면, <정도전>이야말로 첫 손에 꼽아야 할 고전이라 말하고 싶다. 그 다음으로 <뿌리 깊은 나무>, <선덕여왕>, <추적자>, <황금의 제국> 정도가 우선 떠오른다. <모래시계>나 <여명의 눈동자> 같은 작품들은 불행히도 TV를 볼 여유도 없이 바삐 살던 시절의 것들이라 나로서는 잘 알지 못한다. 드라마를 유심히 보기 시작한 것은 아마 <내 이름은 삼순이>를 할 무렵인 것 같다. 드라마의 주 전공이라 할 멜로물에서 볼만한 작품들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하더니, 최근에는 드디어 사극에서도 좋은 작품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 드라마의 성장 역시, 어떤 천재의 갑작스런 출현보다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탄 난쟁이처럼, 드라마의 역사가 쌓아온 통찰과 인식 그리고 표현력의 발전에 힘입은 탓이 클 것이다. 일 년에 한 편 정도만 고전으로 꼽을 만한 작품이 나온다면, 우리 드라마의 미래는 밝을 것이고, 드라마를 즐기는 우리들에겐 대단한 즐거움이 될 것이니, 나는 대중문화를 사랑하는 속인으로서 좋은 드라마를 열렬히 기대한다.

 

 

 

 

 

<정도전>은 정통 사극이다. <대장금> 이래 MBC가 주도했던 ‘팩션사극’의 틀에 박힌 공식과 역사왜곡의 논란을 벗어나, 비교적 사료에 충실하게 전개된 사극이란 의미이다. 물론 드라마라는 형식상 사실로만 구성될 수는 없었겠지만, 여말선초의 주요사건들과 실존인물들의 기본 가치관과 행위는 사실로 받아들여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드라마 이외에 정도전에 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하더라도, 나는 기꺼이 정도전을 ‘민본 사상’을 실현한 혁명가라고 규정하려 한다. 혁명가란 ‘가슴에 품은 불가능한 꿈’을 이루어낸 사람에게 꼭 어울리는 이름일 것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통해 정도전이란 인물을 흥미롭게 보게 된 것은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를 다룬 <뿌리 깊은 나무>를 통해서가 먼저이다. 한석규가 ‘지랄’ 을 찰지게 내뱉으며 욕쟁이 세종을 멋들어지게 만들어낸 <뿌리 깊은 나무>는 왕권정치와 신권정치의 대립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정도전>의 마지막 회 장면인, 송현정에서의 이방원과 정도전의 최후 논쟁에 두 입장의 차이가 뚜렷하게 개진되었다. 이방원은 국왕이 모든 권력을 독점하는 강력한 왕권체제를 구축하려 했던 반면, 정도전은 왕은 존재하나 실질적인 통치권은 재상에게 있는 재상총재제도를 조선의 정치제제로 확립하려 하였다. 이방원은 정도전이 추진하고자 했던 정책들, 사병혁파, 요동정벌, 토지개혁 등을 모두 받아들이겠다면서 다만 재상총재제도를 포기하고 함께 대업을 완성시키자고 회유했다. 그러나 정도전은, 민본정치는 재상총재제도 안에서만 달성될 수 있다고 믿었기에,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왕은 하늘이 내리지만, 재상은 백성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왕가에는 언제든 폭군이 나올 수 있지만, 재상은 누구든 능력 있고 덕망 있는 인재를 뽑아 쓸 수 있다. “이 나라의 성씨를 모두 합쳐서 뭐라 하는지 아느냐? 백성이다! 왕은 하늘이 내리지만 재상은 백성이 내린다! 해서, 재상이 다스리는 나라는 왕이 다스리는 나라보다 백성에게 더 가깝고, 더 이롭고, 더 안전한 것이다.”

 

원칙적으로 정도전의 재상총재제도는 입헌군주제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다. 하늘이 성군을 내리기만 기도하는 것 보다는 제도를 확립하고 이에 따라 통치하는 것이 더 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반론도 만만치가 않다. 고려 말의 허약한 왕권은 강력한 권문세가의 출현을 막아내지 못하고, 이인임과 같은 부패한 권신이 국정을 농단하고, 백성을 수탈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조선의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폭군이 훌륭한 재상을 쓸 리는 거의 없다. 폭군은 정언직설이 아니라 감언이설을 좋아하기 마련이었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는 이 딜레마에서 시작했다. <뿌리 깊은 나무>는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과 비슷한 느낌을 주며 일종의 추리 사극의 형태를 띠었다. <정도전>과는 달리 정통사극 보다는 퓨전사극에 가깝다는 말이다. 정도전과 그 후손에 관한 사실도 조금은 왜곡되어 있었다. 실제 이방원은 정도전의 장남을 살려 주었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 나주목사로 복권시켰으며, 이후에 후손들도 관직에 나가 명성을 누렸다. <뿌리 깊은 나무>가 주요 갈등으로 그렸던 것과 같은 탄압은 없었다.

 

그럼에도 드라마의 기본 갈등 구도를 위해서 고심 끝에 내린 왜곡이었을 것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정도전>의 후반부에 드러난 대립 구도를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다. 물론 드라마 방영 순서로는 <정도전>이 <뿌리 깊은 나무>의 프리퀼 격이지만 말이다. 우연인지 이념 대립을 다룬 드라마들의 당연한 결과인지, <뿌리 깊은 나무>의 마지막 회도 정도전의 조카 정기준과 이방원의 아들 세종 사이의 최후 논쟁으로 깊은 울림을 주었다. 정기준은 외형적으로는 정도전의 가치관을 되풀이 했다. 세종이 성군임을 인정하면서도, 그 다음, 또 그 다음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되물었다. 세종의 답은 바로 훈민정음이었다. 백성이 글을 알면 왕이나 사대부에게 이용당하지 않고 스스로 힘을 갖게 될 것이라고 응수했다. 정기준은 훈민정음이 오히려 백성의 독이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백성을 속일 수 없는 것은 돌이나 나무를 속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인데, 글을 깨친 백성들은 이제 교언영색으로 쉬이 속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 개탄했다. ‘백성을 속일 수 없다’는 말은 정도전이 조선경국전에 남긴 것이다. “백성은 약하지만 힘으로 위협할 수 없고 어리석지만 지모로 속일 수 없다.” 정기준의 해석은 글을 가진 백성은 지모를 갖게 되고, 지모는 지모에 의해 속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말인 듯하다. 아쉽게도 <뿌리 깊은 나무>는 지모를 갖게 된 백성이 왜 더 잘 속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지에 관한 별 다른 해석을 내놓지 않고 막을 내렸다. 이에 대해 세종은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때 또 백성은 스스로 길을 찾을 것이라 낙관했다. <뿌리 깊은 나무>에서 그리는 세종은 백성을 아이처럼 보살피는 성군이 아니었다. 백성 스스로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그 무기인 문자를 만들어 주려 했던 왕이었다. 이렇게 훈민정음 창제의 바탕에는 ‘민본사상’ 이 깔려 있다. 백성이 힘을 가지지 못하고서는, 폭군이 되었건 탐관오리가 되었건, 착취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이방원은 왕권으로, 정기준은 신권으로 이를 견제하려 했지만, 제도에 집착한 나머지 민본의 가치 자체는 오히려 등한시 되어 버렸다. 물론 드라마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뿌리 깊은 나무>의 세종이야말로 정도전을 계승한 진정한 인물이었다. 세종 스스로도 정도전이었다면 훈민정음에 찬성했을 것이라 확신했다. 민본을 위해 그가 할 수 있었던 최고의 업적이 바로 훈민정음이기 때문이다. 훈민정음 서문에는 이런 세종의 뜻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세종의 민본사상의 요체가 훈민정음이라면, 정도전의 그것은 ‘계민수전 計民授田’ 이다. 고려 말 이성계가 정권을 장악하자, 정도전은 모든 토지를 국유화하여 백성의 수대로 골고루 나누어 주고자 하였다. 계민수전이라 이름붙인 이 혁명적인 토지제도는 그러나 권문세가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혀 실행되지 못했다. 대신 정몽주가 제안한 과전법이 실행되었는데, 모든 토지에 대한 세금을 국가가 걷어 들이도록 하여, 고려 말 권문세가의 가혹한 조세 수탈로부터 백성을 보호하였다. 이후 쌀밥에 이밥이라는 별칭이 붙었는데, 조세제도의 개혁으로 쌀밥을 먹을 수 있게 된 백성들이 감사의 뜻으로 이성계의 李자를 붙여 ‘이밥’이라 불렀던 것이다. 정도전이 꿈꾸었던 민본사상의 핵심이 바로 이것, ‘밥’이었다. 밥을 먹여주지 못하는 나라는 나라도 아니기 때문이다.

 

클린턴의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는 동서고금을 통튼 모든 국가의 핵심적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덧붙여져야 할 것이 있는데, 지젝이 말한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 이다. 모든 것의 바탕에는 경제가 있지만, 그 경제를 바꾸는 것은 정치이다. 조선건국은 계민수전을 위해 정도전이 반드시 해내어야 했던 대업, 바로 정치였다. 고려 안에서는 진정한 대업을 이루어낼 수 없었기에 정도전은 평생의 지기인 정몽주와 극한의 대결을 벌여야만 했던 것이다.

 

현대의 우리에게도 이것은 마찬가지의 진실이다. 정치와 경제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믿음은 이제 깨어졌다. ‘보이지 않는 손’ 자체가 이미 장막 뒤에서 은밀히 움직이는 정치적 손이다. FTA라는 정치적 협상을 통해 신자유주의적 경제는 더욱 맹렬히 우리의 농업을 파괴하고,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자영업을 무너뜨렸다. 88만원 세대는 이제 잉여사회의 잉여물이 되어 SNS에서 온갖 분노와 증오를 쏟아 내거나, 일거수일투족을 현시하며 시시껄렁한 모든 것들을 예술로 승화시키려 노력중이다. 이 경제적 무력감을 삼성이 해결할 수 없다. 경제 구조를 바꾸는 것은 경제가 아니라 정치이다. 경제적 투쟁은 정치의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권력은 자본에 넘어갔다던 고 노무현 대통령의 한탄은 외견상 사실처럼 보였어도, 섣부른 포기였고, 무능함에 대한 변명이었을 따름이다. 불행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봉하의 고향마을에서 뒤늦게 후회했지만, 더 깊은 성찰을 이어갈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여전히 권력은 국가에 있고, 헌법 제 1조가 보장하는 대로 국가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드라마 <정도전>의 마지막 메시지는 500년 전의 조선의 백성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들을 직접적으로 겨냥하고 있다. 말하자면 헌법 제 1조를 믿어라. 우리 자신의 권력을 믿어라, 라고 번역할 수도 있을 것이다. 

 

“두려움을 떨쳐라. 냉소와 절망, 나태와 무기력을 혁파하고 저마다 가슴에 불가능한 꿈을 품어라. 그것이 바로 그대들의 대업, 진정한 대업이다.”

 

요즘 어디 가서 청년들에게 이런 소리를 하다가는 엿 사탕 세례를 받기 십상이겠지만, 그래도 이것 외에 출구는 없을 것이다. 불가능한 꿈을 품어라..... 불가능성의 가능성을 사유할 수 있을 때, 이 꽉 막힌 현실을 깨뜨릴 조약돌 하나라도 쥐어볼 수 있지 않을까. 맹자를 빌어 정도전은 말했다. “불위야 비불능야 不爲也 非不能也” 하지 않는 것이지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덧붙임 : 사람들의 말처럼 <정도전>의 연기자들은 너무 훌륭했다. 조재현, 유동근, 박영규 모두 자연인으로서는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니지만, 그 흠결들이 전혀 거슬리지 않을 만큼 멋진 연기를 해주었다. 특히 유동근의 함경도 사투리와 넋 들린 연기에는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제 <정도전>을 능가하는 여말선초의 드라마가 나오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다. <정도전>과 비록 팩션 혹은 퓨전 사극이나마 <뿌리 깊은 나무> 에 의해 조선의 건국이념과 태조에서 세종까지의 우리 한국사의 요체가 완성되었다 할 수 있지 않을까. 누구의 말대로 이조 오백년이 허송세월이 결코 아니었음을, 백성이 잘 사는 나라를 위해 치열하게 사유하고 목숨 걸고 투쟁했던 조상들이 있었음을 자부해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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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털리 부인의 연인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5
D.H. 로렌스 지음, 이인규 옮김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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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전까지만 해도 소설을 별로 읽지 않았다. 20대까지는 열심히 읽었는데, 30대를 넘어서자 소설이 점점 재미가 없어졌다. 십여 년이 훌쩍 지나도록 잘해야 한 해에 한두 권정도 읽었는데, 지방 소도시로 내려와 독서회에 가입하면서, 한 달에 두세 권씩 읽게 된 것이 벌써 일 년 째다. 현대 소설 반, 고전이 반 정도 되는데, 예전에 읽었던 고전을 다시 읽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읽을 때 마다 이것이 내가 읽었던 그 책인가 싶다. 그 사이 민음사나 펭귄 클래식 등 여러 출판사에서 완역본들이 많이 나왔고, 번역자의 수준도 한층 높아졌다. 원어로는 읽지 못하지만, 원작에 가깝게 읽을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고전이 전혀 다르게 읽히는 이유는 책 자체에도 있지만, 그 동안 나의 책읽기 방식도 많이 변했기 때문이다. 소설을 놓으며 책과도 좀 뜸해졌는데, 우연한 기회에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동양철학하면 사주팔자가 떠오르고, 서양철학하면 소크라테스 어쩌고 밖에 모르던 처지에, ‘주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접하게 된 것이다. 주체가 ‘나’지, 이까짓 걸로 무슨 학문을 하나, 처음엔 웃기네 했는데 어쩌다 보니 이 책 저 책 손을 대고 철학에 조금씩 빠져들게 되었다. 그래봤자 어설픈 교양도 안 되지만 여하튼 그 재미를 살살 알게 되었다. 그러다 작년에는 강유원의 <라디오 인문학> 을 계기로 역사에도 흥미를 갖게 되었다. 역사 자체 보다는 역사적 눈으로 고전을 읽는 방식을 배웠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소설을 읽으면서도 줄거리나 캐릭터 자체 보다는 그것들을 구성하고 있는 철학적 역사적 배경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시대의 패러다임은 무엇이었는지, 주인공은 어떤 가치관을 구현하고 있는 것인지 따위가 더 흥미로웠다. 그런 면에서 현대 소설보다는 고전이 훨씬 재미있다. 고전이란 “시대를 뛰어넘어 변함없이 읽을 만한 가치를 지니는 것” 이지만, 또한 당대의 시대상과 문제의식을 가장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예전에 고전은 사건과 지문을 중심으로 읽었다면, 요즘은 다소 장황한 사변과 배경 묘사에 집중해 읽는다. 그러니 다시 읽는 고전은 예전의 그 고전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물론 문학작품을 그렇게 읽는 것이 좋은 것인가요?,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자신 있게 답할 수는 없다. 가끔 나도 그런 의문이 든다. 가슴으로, 직관적으로 느끼지 않고, 분석하고 곱씹으면서 읽는 것이 좋은 것일까? 그렇다면 번거롭게 문학작품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그런데 확실한 것은 하나 있다. 내가 변했다는 것이다. 이제 10, 20대의 감성은 작동하지 않는다. 감수성으로 읽는 책은 더 이상 재미가 없다. 그런데 철학적, 역사적 눈으로 작품을 뜯어보는 것은 매우 재미있다. 작가가 가치관을 형상화하는 방식에 경탄하기도 하고, 그 시대의 구조적 틀이 개인을 옥죄이고 파멸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전율하기도 한다. 문학이 구체화 해내는 철학과 역사는 학문으로서의 철학과 역사 그 자체가 갖지 못한 감동과 힘이 있다. 내게는 그것이 문학의 힘으로 느껴진다. 누군가에게는 도식적 책읽기로 비칠 수 있겠지만, 내게는 이것이 가장 즐거운 책읽기인 이유이다. 감수성을 잃었지만, 희미하나마 눈 하나 얻었으니, 아직은 문학작품에서 기쁨을 발견할 수 있어서, 좋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막상 철학적, 역사적 배경이 확연히 드러난 작품은 또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인물이나 사건 속에 녹아들지 않고, 저자가 생목으로 내질러 버리는 가치관은 지루하고, 힘이 없다. 차도르로 온몸을 휘감은 이슬람 여성은 발뒤꿈치만 보여도 육감적이라는데, 해변의 비키니는 금방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기 마련이다. D.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말하자면 비키니다. 전체적으로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닌데, 그 유명한 ‘~부인’ 시리즈의 원조인데 어떻게 재미가 없을 수 있겠는가, 작가의 목소리가 너무 노골적이라 매력의 반을 잃어버렸지 싶다. 아쉽다.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읽을 수 있다. 출판 금지와 삭제의 험난한 역사가 보여주듯, 노골적이고 화끈한 섹스 묘사에 눈을 반짝이는, 감각적 방식이 하나이다. 어릴 때 그 고리타분한 우리 근대문학에서도, 입을 맞추거나 몸을 더듬는 장면이 나오면, 그것만 찾아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동아일보가 그 명성이 짱짱하던 80년대에, 아침 등굣길에 대문 앞에 떨어져 있던 신문을 남몰래 주워, <어우동>이란 연재물을 열에 들떠 읽기도 했다. 십대는 그런 때고, 그 시대는 영상보다는 활자가 더 성에 접하기 쉬운 때였다. 10대 청소년들에게 『채털리 부인의 연인』이 최고의 고전으로 기억된다면, 아마도 단연 여덟 번이나 되는 그 숨 막히는 장면들 덕분일 것이다. 어쩌면 요즘 10대들에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벗고 노는 포르노물 보다 지루한 문학 작품 속의 성적 묘사는 분명히 더 매혹적인 면이 있다. 차도르에서 살짝 비어져 나온 발뒤꿈치처럼, 관능적이다. 물론 로렌스나 로렌스 전공자들은 무척 억울해하고, 왜곡된 읽기라고 주장하지만, 일차적으로 감각을 자극하는 것은 분명하고, 그 자극성으로 치자면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따라올 고전은 없을 것이다. 고전이 이렇기만 하다면, 청소년들은 그리고 우리 독서회원도 그러리라 짐작되는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통째로 사서 읽으려 덤빌지도 모른다.

 

로렌스가 이렇게 파격적인 섹스를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이유는 이 원초적 자연성을 산업사회, 기계화된 사회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읽는 두 번째 방식은, 그리고 로렌스가 가장 좋아할 방식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읽는 것이다. 사실 로렌스의 의도는 논의의 필요조차 없을 만큼 명백하다. 심지어 상징적이거나 비유적이지도 않고, 섹스 묘사만큼 노골적이다. 민음사 판 작품해설을 인용해 보면 『채털리 부인의 연인』의 주제 의식은 이렇다. “그것은 기계적 관념성과 물질적 탐욕에 사로잡힌 자본주의 산업 사회의 비인간성에 대한 철저한 비판과 거부이며 이에 대응할 구원적 가치로서 살아있는 인간적 관계의 회복 가능성이다. p328"

 

채털리 경인 클리퍼드는 자본주의 사회의 비인간성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채털리 부인인 코니와 그녀의 연인인 사냥터지기 멜러즈는 인간성의 회복 가능성을 보여주는 구원적 인물로서의 한 쌍이다. 이 대립 구도는 기독교도들의 선과 악만큼 뚜렷하다. 모든 것을 우스꽝스럽게 생각하면서도, ‘성공의 암캐 여신’이 가져다주는 명성에 집착하는 클리퍼드는 처음에는 작가로서의 명성에, 코니 부인의 영향을 받은 이후에는 사업가로서의 명성에 광적으로 집착한다. 클리퍼드는 두 가지 명성을 모두 얻지만, 혼자서는 산책조차 하지 못하는 하반신 불수이며, 점점 아이처럼 퇴화한다. 육체는 마비되고, 정신만 비정상적으로 발달한다. 그 정신이란 것은 모든 것을 비웃거나 모든 것을 공허하게 여길 뿐이며, 내면에는 불안이 도사리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우리는 누구나 그렇다. ‘資本자본’, 재물-돈이 근본이 되는 사회에서 인간은 누구나 불구다. “젊은이들은 미칠 지경인데, 그것은 바로 쓸 돈이 없기 때문이라오. 그들의 삶은 전부 돈을 쓰는 것에 의존하고 있는데, 지금 그들에게 그 쓸 돈이 한 푼도 없는 것이오. 그게 바로 우리의 문명과 교육의 실체라오. 즉 돈을 쓰는 것에만 완전히 의존하게끔 대중을 가르치고 길러놓는데, 그러고 나면 돈이 떨어져버리고 마는 거요. 2권 p315)”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는 사람은 누구나 불구다. 그리고 돈이 있는 사람 즉 자본가는 더욱 불구다. 성공의 암캐 여신이 그를 돈 버는 기계로 만들기 때문이다. 돈의 노예라는 면에서 클리퍼드는 탄광의 노동자들과 다름없다. 돈을 위해 클리퍼드의 육체는 불구가, 불능이 될 수밖에 없다. 실패한 명작, 드라마 <황금의 제국> 이 분명하게 보여주었듯이, 제국의 왕좌는 모든 인간성을 제거한 돈의 노예에게만 허락된 자리이다.

 

채털리 부인의 애인인 사냥터지기 멜러즈는 로렌스 자신이다.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거부, 그리고 대안을 제시하는 주인공이다. 채털리 부인은 사실 보조적 인물이다. 멜러즈의 이상을 완성하기 위한 필수적 동반자이지만, 그 이상의 틀을 짜는 것은 멜러즈 이다. 채털리 부인, 코니는 스스로 이렇게 말하지만, 그것은 멜러즈에 의한 각성이다. “하지만 지성만 고도로 발달하고 몸뚱이는 죽은 시체인 삶보다는 훨씬 나아요. 게다가 당신의 말은 틀렸어요! 인간의 육체는 이제야 비로소 진정한 생명으로 태어나고 있을 따름이라고요. 육체는 그리스인들에게서 아름다운 불꽃을 한번 깜빡여 보았지만, 그 뒤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그걸 밟아 꺼버렸고, 이어 예수가 나타나서는 완전히 끝장내 버리고 말았지요. 하지만 이제 육체는 진정한 생명으로 태어나고 있다고요. 정말로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 일어나고 있다고요. 그리고 마침내 아름다운 우주 속에서 아름다운, 그야말로 아름다운 생명으로 피어날 거예요. 인간의 육체는 말이죠. 2권 p167”

 

로렌스의 대안은 기형적으로 발달한 정신적 삶에 대비되는 육체적, 자연적 삶이다. 데카르트는 ‘res cogitans 레스 코기탄스’, ‘생각하는 실체’만을 주체로 보았고, 그 이외의 모든 것 심지어는 주체의 육체마저도 사물과 같은 대상으로, ‘res extensa 연장’ 로 보았다. 데카르트의 코기토는 근대정신의 출발점으로 그 영광과 오욕의 대명사이다. 근대의 개인주의, 합리주의, 이성중심주의 뿐만 아니라 자연을 타자화해 지배의 대상으로 삼은 산업문명과 물질문명의 시원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리고 1차, 2차 대전으로 위대했던 근대는 파국을 맞았고, 그 주범으로는 데카르트가 지목되었다.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1928년, 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 대전 사이에 출판되었다. 로렌스의 비판은 자본주의 산업사회뿐만 아니라 그 근간이 되는 근대정신 전체를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정신적 삶에 대한 육체적 삶의 찬양은 데카르트의 ‘res cogitans 레스 코기탄스’에 대한 근본적 비판이자, 철저한 거부이다. 로렌스가 육체적 삶, 관능적 환희에 대해 그토록 집착하는 것은 데카르트의 근대정신과 철저히 단절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육체적 삶이 혹은 자연적 삶이 자본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작품해설을 통해 옮긴이 이인규는 “로렌스의 그러한 비판과 모색은 그렇다면 과연 얼마나 타당성과 설득력을 가지는 것인가? 나아가 그의 비판과 모색은 21세기에 접어든 이 시대에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얼마만큼 현재성과 실효성을 가질 수 있는가? 2권 p336”를 묻는다. 이인규는 문명비판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육체와 성의 중요성에 관한 로렌스의 주장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간주한다. 이제 성이 인간성 해방의 상징이 되기에는, 너무 개방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성적 억압에 시달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을 즐기라는 압력에 시달린다. 성은 권리가 아니라 일종의 의무로 취급된다. 남자들의 의무방어전에 대한 스트레스는 그들의 남근을 점점 위축시키고 있다. 그런데 육체적 삶에 대한 로렌스의 주장을 말 그대로 ‘육체적’, ‘성적’ 관점에서만 비판해야 하는 것일까? 로렌스의 대안이 로렌스의 시대, 즉 성적 억압에 시달리던 시대에는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있었던 것일까?

 

영화 <아바타>는 로렌스 주장의 현대적 판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거대한 기계문명에 의한 판도라 행성의 파괴. 그 첨병 역을 맡은 전직 해병대원 제이크 또한 하반신이 마비된 불구다. 그런데 제이크는 여기서 일종의 일인이역을 하고 있다. 전반부에서는 채털리경인 클리퍼드의 역할을, 후반부에서는 사냥터지기인 멜러즈의 역을 맡는다. 이 변화에는 판도라 행성의 나비족, 네이티리가 있다. 네이티리는 채털리 부인인 코니 역을 맡지만, 제이크와의 관계는 전도되어 있다. 나비족인 네이티리가 기계문명에 찌든 제이크를 자연적 삶, 순수한 육체적 삶으로 이끌어 낸다. 그런데 자연적 삶으로 돌아간 제이크가 지구인의 구원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우리 현대인은 여기서 물질문명을 끝장내고 일제히 자연적 삶으로 되돌아 갈 수 있을 것인가?

멜러즈의 주장을 읽고 있자면, 16세기 에스파냐를 비롯한 서구 문명인들에게 짓밟힌 아메리카 인디언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들이야말로 자연에 동화되어 건강한 육체적 삶을 살았다. 자본 - 돈이 중심이 된 것도, 인본 - 인간만이 중심이 된 것도 아닌, 자연인으로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망했다. 그들이 나빠서 망한 것은 아니지만, 발달된 기계문명의 총칼과 인간의 무한한 욕망 앞에 멸망했다. 그리고 돈의 노예가 아니라 글자그대로 노예가 되었다.

또 다른 예도 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유럽의 고전문학을 읽다보면 뭔가 굉장히 쇠락한 느낌이 든다. 『채털리 부인의 연인』도 그렇다. 명성을 얻지만 공허하고, 지식인들이 모여 떠들지만 알맹이는 없고, 세상의 모든 일들은 조롱과 풍자의 대상이 된다. 나는 이것을 기울어져 가는 대영제국의 노쇠함이 아닌가했는데, 영국문학을 하는 지인께서, ‘제국의 피로감’ 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그 유명한 데카당스 문학이 출현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제국의 피로감’, 그것이 주는 우울함이나 허무 따위 말을 들으면, 제3 세계 피식민지인의 후손으로 참 기분이 더럽다. 피식민지인을 앞에 두고, 그들의 눈앞에는 보이지 않았겠지만, 제국민이 피로감을 운운하면, 피식민지인들, 노예들은 차라리 눈을 감아야 한다. 여하튼 그 피로한 제국의 멋진 후예들 몇몇은 새로운 이상향을 찾아, 공동체 같은 것들을 만들었는가 보다. 그런데 그것들은 모두 그들만의 이상향이었다. 제국은 더욱 강고해지고, 자본은 더욱 악랄해지고, 사람들은 더욱 예속되었다. 자본주의적 사회 제도 밖에 세운 유토피아는 결국 도피적· 은둔적 삶에 지나지 않는다. 제도 자체, 권력 자체를 변화시키지 않는 한, 궁극적 변화는 없다. 로렌스는 사회주의를 은근히 비꼬고, 볼키를 비난한다. 볼키 역시 기계적 삶을 추구하며, 인간성을 말살한다는 것이다. 볼키가 어땠건, 현실 사회주의가 어땠건 그들은 적어도 권력을 장악하여 시스템 전체를 변화시키려 했다. 숨지도 도망가지도 않고, 짓이겨진 삶 한가운데서 투쟁했던 것이다. 모두가 망하든지 모두가 구원받든지 함께 새로운 체계와 새로운 권력 구조를 만들려고 했다. 나는 어떤 유토피아도 세계의 밖이 아니라 세계의 안에서, 그 내부에서, 낡은 것을 무너뜨리고 세워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야만 우리의, 우리 모두의 세계가 되기 때문이다. 정신이 문제이면 정신을, 물질이 문제이면 물질을 바꾸어 내어야 한다. 그럴 때에야 우리의 삶은 육체와 그리고 자연과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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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무명 철학자의 유쾌한 행복론
전시륜 지음 / 행복한마음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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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독서회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책 선정이다. 스무명 가까이 되는 회원들의 입맛을 고루 맞추기는 불가능하다. 어떤 책이든 한쪽 구석에서는 비명이 터져나온다. 아~ 어려워!! 아~ 이게 뭐야!! 그러니 책 추천하기도 만만치 않고 해놓고도 신경이 계속 쓰인다.

전시륜의『어느 무명 철학자의 유쾌한 행복론』을 추천한 회원이 카톡을 보내왔다. "읽고나서 문자 주세요. 어떤 저자가 추천했길래 제안했는데, 읽고 나니 토론할만한 책인지 의문이예요... 저자의 단상들일 뿐이고...ㅇㅇ씨도 '쩝~'하는데, 바꾸는데 동의하신다면 그렇게 해볼까 싶어서요." 나는 아직 읽지 않았다며 나중에 말씀드리겠다고 답했다.

 

이 책은 7월 첫째주에 예정되어 있었으나, 7월 마지막으로 순서가 밀렸다. 도서관에 책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중소도시에는 시립도서관을 비롯해 부설 작은 도서관까지 10여개의 도서관이 있다. 고전이나 베스트셀러의 경우 왠만하면 빌려 읽고 토론하기가 어렵지 않은 환경이다. 가끔 어느 도서관에도 없는 책일 경우, 담당사서가 신청해 주기도 한다. 이 책도 신청중이라고 한다. 그런데 책을 읽고나니 조금 미안했다. 신청해서 구비해 놓을만한 책은 아닌 것 같아서..

 

전시륜은 1932년 생이다. 6.25 때문에 대학을 중단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철학과 물리학을 공부하고,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중년 이후에는 글쓰는 일과 관련된 일을 했다고 소개되어 있다. 미국시민권을 가지고 있으며, 1998년에 작고했다. 이 책은 저자의 말년에 쓴 글로 사후에 발간되었다. 육십대 노철학자의 인생 경륜담인 셈이다. 그런데 이 책에는 '철학' 이라고 할만한 내용은 사실 없다. 삶 속에 녹여낸 철학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 인생철학이라는 것이 토론할만해 보이지는 않는다. 아버지, 엄마, 삼촌, 고모 누구에게나 있는 그런 종류의 철학이다. 입담이 뛰어나지만 월간지의 인기 칼럼을 넘어서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럼에도 토론거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30년 전쯤의 아메리칸 드림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건너간 지식인들이 어떻게 친미주의자가 되는지도.

히치하이커를 할 때, 차를 태워 주고 밥까지 사준 미국 청년이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왜 그리도 많은 외국인들이 반미 감정을 가지고 있을까요?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미국 사람들은 나그네에게도 호의를 베풀고 후대해 주는데, 수많은 신생국들이 미국을 비판하고, 심지어는 미국 유학생들이 본국에 돌아가서 반미 감정을 표현하는 사실에 대해 미국 청년 뿐만 아니라 저자 역시 난감해 한다. 심지어 그 유학생들은 미국 시민이 낸 세금으로 장학금까지 받아가며 공부를 하는데 말이다. 저자의 생각은 이렇다. 외국 유학생들이 진짜 미국을 모르고 귀국하기 때문이라고. 미국 가정을 방문해 보면 그들이 얼마나 좋은 사람들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자신의 미국 가정 편력기를 나열하면서, 유학생들은 캠퍼스에서 공부만 할 것이 아니라 미국 가정을 방문하라고 권유한다.

저자를 비판하기 전에 참 해맑은 할아버지란 생각이 먼저 든다. 미국인 개인의 인간성 혹은 한 가정의 따뜻함을 곧 제국주의 미국과 동일시할 수 있는 것은 어린아이들 뿐이 아니겠는가.

마침 이번 주 독서회 선정작은 현기영의 『지상에 숟가락 하나』이다. 미군정의 발포로 촉발된 4.3 사건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아마 전시륜은 미국이 자유와 평화를 위해 한반도에 개입했다고 믿을 것이다. 그에게 4.3은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 '수많은 신생국' 들이 왜 미국을 비판하고 항거하는지 그는 정말 모르는 것일까? 비록 '무명' 이지만 철학자를 자처하는 사람이,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 어떻게 세계의 역사와 제국주의 정책에 그렇게 감감할 수 있을까? 나도 그 미국의 착한 청년에 못지 않게 궁금하다. 그리고 그 착한 미국 청년에게는 미국이 제3세계에 어떤 일들을 해왔는지, 조금만 공부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아메리칸 드림은 처음부터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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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 숟가락 하나 - MBC 느낌표 선정도서, 개정판
현기영 지음 / 실천문학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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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영의 『지상에 숟가락 하나』는 무난한 책이다. 그런데 나는 읽기가 쉽지 않았다.  제주 4.3 사건이 배경이라기에 극적인 전개와 격한 감정 따위를 예상했지만, 책은 예상밖에 잔잔했다. 유년의 풍경을 아스라이 그려내는 수채화 같은 느낌이었다. 기억이 시작되는 곳에서부터 중3까지의 이야기지만, 성장소설이 아닌 회고담, 기억의 수묵화라 할 수 있다. 엄마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듣듯, 아스라하고 안온한데도, 책이 술술 넘어가지 않아 애를 먹었다. 약속시간에 늦었는데, 눈치없이 하릴없는 넋두리를 늘어놓는 할머니에게 붙들린듯, 마음이 다른곳으로 널을 뛰었다.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지, 책이 눈에 안들어와 마음이 산란한지 잘 모르겠다. 점점 서정적인 책들을 읽기가 어려워진다. 눈이 뻑뻑해지는 것처럼, 마음도 뻑뻑해지는 것일까... 너무 많이 보아버려, 이제 아무 감흥이 없는 나이가 되어버린 것일까...

 

여든이 넘은 엄마는 남루한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몇 년전에 강풀 원작의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함께 보았는데, 엄마는 조금 언짢아 했다. 쪼글쪼글 늙은 것들이 연애질하는 것도 보기 흉하고, 치매 걸린 마누라와 자살하는 늙은 부부의 이야기도 심란하다고 했다. 오히려 나는  보지 않는 아이돌들의 춤을 더 좋아한다. 언뜻 생각하면 노인들 눈에 망칙해 보이지 않을까 싶은데, 엄마는 그 터질듯한 생명력에 매혹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오래전에 홍상수의 첫 번째 영화 <생활의 발견> 을 보았을 때, 나도 그랬다. 내가 살던 곳과 너무 닮아, 너무 끔찍하게 현실적이라, 너무 영화같지가 않아 지루했다. 운동화 두짝만 질질 끌고 나가면 보게 되는 풍경을 굳이 스크린에서 또 봐야 하다니, 짜증이 일었다. 영화는 영화니까, 드라마는 드라마니까, 소설은 소설이니까 보는데....

 

『지상에 숟가락 하나』를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미 너무 많이 보아버린 회고담이다. 작가들은 나이가 들면 그렇게 유년의 기억들로 돌아가나 보다. 독서회에서 몇 달 전에 읽은 『관촌 수필』도 그렇고, 지금은 책 이름도 금새 기억해 내지 못하지만, 젊은 시절 읽었던 여러 책들이 이런 유형의 회고담들이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이 책 『지상에 숟가락 하나』는 유난히 담담하다. 유년에 겪은 4.3이 그저 스치듯 지나가버리니, 독자를 빨아들이는 극적인 사건이 따로 있을리가 없다. 평양냉면의 밋밋한 맛 같다고나 해야할까. 내게도 이 정도의 이야기는 있는데 하는 생각이 이 책을 소설이 아니라 회고록처럼 읽게 한 것 같다. 나는 회고록을 좋아하지 않는다, 평양 냉면의 맛을 모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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