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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무명 철학자의 유쾌한 행복론
전시륜 지음 / 행복한마음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주부 독서회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책 선정이다. 스무명 가까이 되는 회원들의 입맛을 고루 맞추기는 불가능하다. 어떤 책이든 한쪽 구석에서는 비명이 터져나온다. 아~ 어려워!! 아~ 이게 뭐야!! 그러니 책 추천하기도 만만치 않고 해놓고도 신경이 계속 쓰인다.
전시륜의『어느 무명 철학자의 유쾌한 행복론』을 추천한 회원이 카톡을 보내왔다. "읽고나서 문자 주세요. 어떤 저자가 추천했길래 제안했는데, 읽고 나니 토론할만한 책인지 의문이예요... 저자의 단상들일 뿐이고...ㅇㅇ씨도 '쩝~'하는데, 바꾸는데 동의하신다면 그렇게 해볼까 싶어서요." 나는 아직 읽지 않았다며 나중에 말씀드리겠다고 답했다.
이 책은 7월 첫째주에 예정되어 있었으나, 7월 마지막으로 순서가 밀렸다. 도서관에 책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중소도시에는 시립도서관을 비롯해 부설 작은 도서관까지 10여개의 도서관이 있다. 고전이나 베스트셀러의 경우 왠만하면 빌려 읽고 토론하기가 어렵지 않은 환경이다. 가끔 어느 도서관에도 없는 책일 경우, 담당사서가 신청해 주기도 한다. 이 책도 신청중이라고 한다. 그런데 책을 읽고나니 조금 미안했다. 신청해서 구비해 놓을만한 책은 아닌 것 같아서..
전시륜은 1932년 생이다. 6.25 때문에 대학을 중단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철학과 물리학을 공부하고,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중년 이후에는 글쓰는 일과 관련된 일을 했다고 소개되어 있다. 미국시민권을 가지고 있으며, 1998년에 작고했다. 이 책은 저자의 말년에 쓴 글로 사후에 발간되었다. 육십대 노철학자의 인생 경륜담인 셈이다. 그런데 이 책에는 '철학' 이라고 할만한 내용은 사실 없다. 삶 속에 녹여낸 철학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 인생철학이라는 것이 토론할만해 보이지는 않는다. 아버지, 엄마, 삼촌, 고모 누구에게나 있는 그런 종류의 철학이다. 입담이 뛰어나지만 월간지의 인기 칼럼을 넘어서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럼에도 토론거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30년 전쯤의 아메리칸 드림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건너간 지식인들이 어떻게 친미주의자가 되는지도.
히치하이커를 할 때, 차를 태워 주고 밥까지 사준 미국 청년이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왜 그리도 많은 외국인들이 반미 감정을 가지고 있을까요?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미국 사람들은 나그네에게도 호의를 베풀고 후대해 주는데, 수많은 신생국들이 미국을 비판하고, 심지어는 미국 유학생들이 본국에 돌아가서 반미 감정을 표현하는 사실에 대해 미국 청년 뿐만 아니라 저자 역시 난감해 한다. 심지어 그 유학생들은 미국 시민이 낸 세금으로 장학금까지 받아가며 공부를 하는데 말이다. 저자의 생각은 이렇다. 외국 유학생들이 진짜 미국을 모르고 귀국하기 때문이라고. 미국 가정을 방문해 보면 그들이 얼마나 좋은 사람들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자신의 미국 가정 편력기를 나열하면서, 유학생들은 캠퍼스에서 공부만 할 것이 아니라 미국 가정을 방문하라고 권유한다.
저자를 비판하기 전에 참 해맑은 할아버지란 생각이 먼저 든다. 미국인 개인의 인간성 혹은 한 가정의 따뜻함을 곧 제국주의 미국과 동일시할 수 있는 것은 어린아이들 뿐이 아니겠는가.
마침 이번 주 독서회 선정작은 현기영의 『지상에 숟가락 하나』이다. 미군정의 발포로 촉발된 4.3 사건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아마 전시륜은 미국이 자유와 평화를 위해 한반도에 개입했다고 믿을 것이다. 그에게 4.3은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 '수많은 신생국' 들이 왜 미국을 비판하고 항거하는지 그는 정말 모르는 것일까? 비록 '무명' 이지만 철학자를 자처하는 사람이,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 어떻게 세계의 역사와 제국주의 정책에 그렇게 감감할 수 있을까? 나도 그 미국의 착한 청년에 못지 않게 궁금하다. 그리고 그 착한 미국 청년에게는 미국이 제3세계에 어떤 일들을 해왔는지, 조금만 공부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아메리칸 드림은 처음부터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