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드로스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14
플라톤 지음, 김주일 옮김 / 이제이북스 / 201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2012년에 선물 받은 책이었다. 고맙게도 증정 사인도 있었다. 하지만 『파이드로스』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고, 플라톤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4년이 지나고 이제야 읽었다. 얼마 전에 『향연』을 읽었고, 내용도 내용이지만 소크라테스의 까칠한 말솜씨가 매우 흥미로워, 잊고 있었던 『파이드로스』를 기억해 냈다. 『향연』을 읽게 된 것은 작년 말부터 읽기 시작한 『철학으로서의 철학사』 덕분이다.

 

한국사와 세계사를 함께 한 스터디 팀과 기어이 철학 공부를 시작했다.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많았고 여전히 많지만, 다행히 이번 주로 5회인데 손들고 나간 분은 별로 없다. 모두들 머리를 쥐어뜯으며 글자만 읽고 온다고 고개를 흔들지만 또 스터디 시간에는 눈을 반짝이며 집중들을 한다. 처음 계획보다 진도는 훨씬 느리다. 한 주에 20쪽 정도 밖에 못한다. 강유원 선생님의 <2012 서양 철학사> 강의 파일을 얻게 되어 엄청 도움이 된다. 우리 교재는 강유원 선생님의 교재와는 다르지만 수록된 철학자와 순서는 거의 비슷한 것 같다. 진행을 맡은 나는 『철학 고전 강의』와 『세계 철학사』도 참고 한다. 그러다보니 여기 저기 주워 읽고 들은 것이 보태져서 교재에 있는 것보다 많은 말을 하게 된다. 우리 교재에 맞추어 미리 정리를 하는데, 이 작업도 만만치가 않다. 토요일을 꼬박 투자하고 나면 머리에서 말 그대로 쥐가 나는 것 같아, 이 나이에 왜 이 짓을 하고 있나 하면서도, 좋다. 다만 혼자 되는대로 이 책 저 책 읽은 경험만 가지고, 철학사 스터디를 진행해도 되는지 수시로 되물어보게 된다. 책에서 읽은 것만, 강의에서 들은 것만 말하자고 다짐해도 내 머릿속에 들어온 것들은 내 이해력 안에서 재조합되고 윤색되기 마련이다. 부디 내 독해가 심각한 오독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파이드로스』는 약간 충격적인 이야기로 시작한다. 물론 당대 희랍세계가 아니라 우리에게 그렇다. 소년 애인과 그를 사랑하는 혹은 그와 육체적 관계를 원하는 어른 남자에 관한 대화이기 때문이다. 희랍세계에서 이런 관계는 매우 당연하고 바람직한 일이기도 한 모양이다. 『파이드로스』의 주제는 소피스트애 대한 비판인 것 같은데 철학사에 인용된 대목은 영혼에 관한 부분이다. 플라톤 편을 공부하면 ‘형상 상기설’이라는 것이 나온다. 영혼이 육신으로 추락하기 전에 이데아를 보았고, 그때 본 이데아를 우리가 갈망한다는 것이다. 이데아의 그림자인 사물은 우리에게 이데아 즉 형상을 상기시킨다.

 

「그러므로 앎은 우리 바깥에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와는 반대로 우리 안에 있는 것을 상기하는 것이다. 사물들은 그저 우리가 그것들을 폐기하고 우리의 사유를 이데아들로 고양하게끔 하는 자극일 뿐이다. p92, 철학으로서의 철학사」

 

그렇다면 영혼은 어떻게 이데아를 볼 수 있었던 것일까? 『파이드로스』에 아주 자세한 설명이 있다. 믿기진 않지만 플라톤 철학과 관련하여 읽으면 매우 흥미롭기도 하다. 길지만 주요 부분을 옮겨 놓겠다. 아, 참, 플라톤의 대화편은 말 그대로 대화 형식이라 이것이 철학인가 싶을 정도인데 그냥 이야기책처럼 읽어도 재미있다. 다 그런지는 모르지만 향연이 그렇고 파이드로스가 그렇다. 몇 년 전에 읽은 국가도 분량이 많고 이름값이 무거워서 마음먹기가 힘들지 읽기는 어렵지 않았다. 『파이드로스』를 선물했던 지인에게 이제야 감사 인사를 한다.

 

 

 

1. 246a ~ 246e

 

혼이 본래 한 멍에에 매인 날개 달린 말들과 마부가 합체된 능력을 닮았다고 해 보자고. 그런데 신들의 말들과 마부들은 모두가 그 자체로도 훌륭하며 태생도 훌륭한 반면, 다른 쪽들의 경우엔 섞여 있지. 그러니까 첫째로 우리 쪽의 다스리는 자는 한 쌍의 말을 몰며, 둘째로 말들 중 한쪽은 아름답고 훌륭하며 태생도 그런 반면, 다른 쪽은 그 반대고 태생도 반대지. 그러니 우리 경우에 전차 몰기는 어쩔 수 없이 어렵고, 애먹이는 것일 수밖에 없지. 자, 그럼 어떻게 해서 살아 있는 것이 사멸한다고도 불리고 불사한다고도 불리게 되었는지를 말해 봐야지. 모든 혼은 혼이 없는 것 전부를 돌보고 천계 전체를 순례하지. 그때그때 다른 모습을 하고서 말이지. 그리하여 혼이 완전하고 날개가 나 있으면, 드높은 하늘을 가르며 우주 전체를 관장하지만, 깃털이 빠진 혼은 쓸려 다니다가 단단한 뭔가를 붙잡아 거기에 정착하여 흙으로 된 몸을 취하고, 몸은 혼의 능력 덕에 자신이 자신을 움직이는 것처럼 여겨져, 혼과 몸이 달라붙은 전체가 살아 있는 것이라 불리며, 사멸하는 것이란 명칭을 얻었지. 반면에 불사한다는 것은 논증이 된 그 어떤 이야기에도 토대를 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신을 보지도 못했고 충분히 깨닫지도 않았으면서, 한편으로는 혼을 갖고 다른 한편으로는 육체를 갖고 있으면서 본래 이것들을 영원히 합체시킨 불사하는 것이자 살아 있는 것이라고 신을 형상화하지. 그렇지만 그런 것들이야 그 사실이 어떻든 신의 마음에 들어야 하고, 또 신의 마음에 드는 방식으로 이야기되어야 하겠지. 반면에 깃털들이 혼에서 떨어져 나가게 하는, 깃털들의 상실의 원인은 우리가 파악해 보자고. 그건 다음과 같은 어떤 것이야.

 

본래 날개의 힘은 무거운 것을 공중으로 올려 신들의 종족이 사는 곳으로 이끌어 올리는 것으로, 어떻게 보면 육체와 관련되는 것들 중에서는 신적인 것에, 즉 아름답고 지혜롭고 훌륭하며, 그 밖의 모든 그러한 신적인 것에 가장 크게 관여하지. 바로 이것들에 의해서 혼의 깃털이 가장 많이 양육되고 자라며, 그것들과 반대되는 추하거나 나쁜 것 등에 의해서는 쇠퇴하고 소멸하지.

 

 

2. 247b ~ 248e

 

그렇기는 하지만 잔치와 만찬을 위해 갈 때면, 천계를 떠받치는 맨 꼭대기 궁륭으로 가파르게 나아가는데, 거기서 신들이 타는 것들은 고분고분해서 균형을 잡고 쉽게 나아가지만, 다른 자들이 타는 것들은 겨우겨우 나아가지. 나쁜 본성에 참여하는 말은 몸이 무거워 땅으로 쳐지면서 마부들 중 말을 제대로 기르지 못한 마부를 힘겹게 하거든. 바로 거기서 극도의 고난과 다툼이 혼 앞에 놓이지. 사실 우리가 불사자라 부르는 혼들은 꼭대기에 이를 때면, 밖으로 나아가 천계의 등마루에 서게 되는 한편, 회전운동은 서 있는 그들을 돌리고, 그들은 천계 밖의 것들을 관조하지.

 

하지만 천계 바깥 자리를 이제껏 이 세상의 어떤 시인도 노래한 적이 없었고, 언젠가 그에 걸맞게 노래할 날도 없을 거야. 하지만 그곳은 이렇지. -최소한 참된 것만큼은 우리가 과감히 말해야 하고 우리가 진리를 주제로 삼아서 말할진대, 특히 그러해야 하니까- 색깔도 형체도 없으며 만져지지도 않는, 있는 것답게 있는 실재가, 즉 혼의 키잡이인 지성에만 관조되고, 참된 앎의 부류가 관계하는 실재가 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그리하여 순수한 지성과 앎에 의해 양육되는 신의 생각, 그리고 자신에게 적합한 양식을 섭취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는 모든 혼의 생각은 때가 돌아오면 회전운동이 빙 둘러 제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시간 간격을 두고 실재를 보고 반기며, 참된 것을 관조하여 양식을 얻고 즐거워하지. 그 궤도에서 그것은 정의 자체를 목격하고, 절제를 목격하며, 앎을 목격하지. 그런데 그 앎은 생성이 곁들여지지 않은 앎이요, 오늘날 우리가 있는 것들이라 부르는 것들 중 어떤 다른 것과 관련될 때마다 달라지는 앎이 아니라, 있는 것답게 있는 실재인 것에 관계하는 앎이지. 있는 것답게 있는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 같은 식으로 관조하고 잔치를 즐기고서, 그것은 다시 천계의 안으로 들어가 집으로 돌아갔지. 그것이 돌아오면, 마부는 구유에 말들을 세우고 신찬을 먹이로 주고 더해서 신주를 주어 마시게 했지.

 

이것이 신들의 삶이야. 한편 다른 혼들의 경우, 가장 훌륭하게 신을 따르고 닮은 혼은 바깥 자리로 마부의 머리를 들어 올리고 회전운동을 신과 함께 돌지만, 말들로 인해 소란을 겪어 실재들을 어렵사리 목격하는 한편, 말들에 휘둘려서 어떤 것들은 보았고 어떤 것들은 보지 못했지. 그런 한편 또 다른 혼들은 모두 윗 세상에 집념하여 따르지만 능력이 없어서 표면 아래에서 함께 도는데, 서로를 밟고 깔아 뭉개 가며, 서로 앞서 있으려 하지. 그리하여 극도의 소란과 힘겨루기와 진땀나는 일이 벌어지는데, 바로 이 와중에 마부의 무능함 때문에 많은 혼들이 불구가 되는가 하면, 또 많은 혼들이 날개를 많이 다치지. 하지만 그 모든 혼은 많은 고난을 겪고도 실재의 관조에 입교하지 못한 채 떠나고, 떠나서는 의견을 양식으로 삼지. 그런데 진리의 평원이 어디에 있는지 보고자 하는 대단한 열의의 이유는 혼의 최상의 부분에 제격인 여물이 거기 있는 목초지에서 나며, 혼을 들어 올리는 날개의 본성이 그것으로 양육되기 때문이지.

 

또한 아드라스테이아의 법칙은 다음과 같지. 신의 수행자가 되어 참된 것들 중 어떤 것을 목격한 혼은, 또 다른 주기 전까지 비탄에 빠지지 않을 것이며, 그 혼이 때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언제까지나 해를 입지 않으리라는 것이지. 반면에 따라갈 능력이 없어서 보질 못하고, 어떤 불운으로 말미암아 망각과 무능으로 가득 차 무거워지는가 하면, 무거워져 깃털이 빠지고 땅에 떨어질 때면, 그때 이 혼은 첫 출생부터 야생의 존재에 심기는 게 아니라, 가장 많이 본 혼은 장차 지혜를 사랑하거나 아름다움을 사랑하거나, 혹은 시가나 사랑을 따르게 될 사람의 싹에 심기며, 두 번째는 법치를 하는 왕이거나 전쟁을 잘하는 지휘관 같은 왕의 싹에, 세 번째는 정치에 맞거나 한 집안의 경영에 맞는 사람, 또는 사업에 맞는 사람의 싹에, 네 번째는 운동을 사랑하는 체육가거나 육체의 치료에 관여할 사람의 싹에 심길 것이고, 다섯 번째는 예언가의 삶이거나 입교의식을 따르는 어떤 삶을 가지리라는 것이 그 법칙이지. 여섯 번째 혼에게는 시를 따르는 삶이거나 모방에 관련된 사람들의 그 밖의 다른 삶이 어울릴 것이고, 일곱 번째 혼에게는 만들거나 농사를 짓는 삶이, 여덟 번째 혼에게는 소피스트거나 민중 선동가의 삶이, 아홉 번째 혼에게는 참주의 삶이 어울릴 것이라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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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두명이 함께 했습니다.

 

오늘은 아리스토텔레스, 첫 시간이었습니다.

모든 분들이 '플라톤은 쉬웠던 거야' 라고 입을 모을만큼

어려운 내용이었습니다.

 

 

학문적 체계를 수립하고 

그의 시대 이후 철학이 걸어갈 (혹은 걸어가고 있는) 길을 규정했다고

평가받는 아리스토텔레스인만큼

다양한 분과 학문과 개념들이 등장합니다.

 

이제 철학사를 읽는 초보자로서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 기초적으로 알아두어야 할 몇 가지 내용 중 

오늘은 앎의 층위들과 usia(실체)에 대해 주로 공부하였습니다.  

 

 

앎의 층위들이란 우리가 사물을 이해해내는 각 단계들로

'있는 것으로서의 있는 것' 즉  usia(실체)에 대한 궁극적 앎에 도달하는 과정입니다. 

 

첫 단계로는 사물에 대한 감각적 앎에서 시작하여 기억과 경험을 거쳐 기술적 이해에 도달합니다. 더 깊은 탐구를 통해 그 사물의 원리와 원인을 논증하는 에피스테메 즉 논증적 앎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그 사물을 완전히 알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원인은 또 다른 원인을 갖고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데 사물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궁극의 원인, 제1원인이 필요합니다. 이 제1의 원인은 논증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누스를 통해 직관적으로만 알 수 있습니다.  에피스테메와 누스가 결합된 것이 바로 소피아입니다. 하지만 소피아는 인간이 도달하기는 힘든, 엄밀히 말해서 신만이 도달할 수 있는 궁극의 앎입니다. 

 

앎의 층위는 앎이란 누적적이라는 뜻입니다. 사물에 대한 감각과 경험 등을 통하지 않고서 우리는 사물의 본질에 바로 도달할 수 없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사물에 대해 깊이 탐색한 이유는 아마도 형상에 대해 스승 플라톤과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 듯합니다.

 

플라톤은 사물은 형상(이데아)의 그림자나 모방일 뿐이며 

형상은 사물의 세계 밖에 실재하는 진리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른바 형상 실재론입니다. 플라톤에게 사물은 오히려 이데아에 대한 앎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여겨진 듯 합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견해를 거부했습니다. 사물을 사물답게 만드는 것이 형상이라면 그 형상은 사물의 밖이 아니라 안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생각을 실체 즉 우시아라는 개념을 통해 전개하였습니다. 

 

실체는 말 그대로 우리가 만지고 보고 들을 수 있는 각각의 구체적 사물입니다. 그런데 이 실체에는 그 사물의 형상이 온전하게 내재해 있습니다. 홍길동이라는 구체적 사물 안에는 인간의 형상이 그대로 들어있어야합니다. 홍길동이 인간일 수 있는 것은 인간의 형상이 홍길동이란 사물 안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즉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홍길동도 실체이고 홍길동 안에 있는 인간이란 형상도 실체입니다.  두 개의 실체가 있고 그것을 각각 제1 실체와 제2 실체라고 합니다. 구체적 사물의 측면에서 보았는가 아니면 형상의 측면에서 보았는가에 따라 제1 실체와 제2 실체를 나누었지만, 사실 그것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실체입니다. 이 분리될 수 없는 실체를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시아라고 하였습니다. 형상의 측면에서 말하자면 플라톤은 이데아,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시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유원 선생님은 철학사 강의에서 우시아를 이렇게 정의하였습니다. :

"형상을 내재한 각각의 사물"  이것을 형상 내재론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 스타디 후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형이상학』 의 첫 문장입니다.

 : "모든 인간은 본성적으로 알고자 한다."

거꾸로 말하면 앎을 추구하지 않으면 사람도 아니라는 말?

 

아리스토텔레스는 물론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까지 모두

앎을 인간 최고의 행위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탁월함 즉 아레테를 '앎' 이라고 하였습니다.

플라톤은 에로스의 사다리에서 이데아 그 자체의 아름다움 바로 아래 단계가 앎의 아름다움이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이 앎이라는 뜻과도 같습니다. 앎의 결핍에 목말라하고 앎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철학자입니다. 플라톤이 최고의 인간으로 규정한 철학자는 앎을 향해 나아가는 자입니다. 그리고 이 앎은 좋음을 향한 앎이어야 합니다.

 

 

이렇게 오늘은 꼬박 세 시간 가까이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 허우적대었습니다. 그 중에서 무엇이 머리에 남았나 생각하다가 후기에 뜻하지 않게 너무 전문적인 (ㅋㅋㅋ;;) 내용을 너무 대담하게 적었습니다. 스타디 시작할 때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의 공부는 어디 다른 곳에 가서 플라톤이 이렇다 저렇다 해서는 절대로 안되는 아주아주 초보적이고 오류투성이일 가능성이 농후한 단계라고 해놓고는 누구나 볼 수 있는 블로그에 요렇게 무식이 용감함임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ㅡ.ㅡ;;

 

 

흠흠...

다음주는 아리스토텔레스, 두 번째 시간입니다.

아마도 다음주 주제는 오늘보다 열 배는 쉽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그 다음주는 <인문 고전 강의>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할 예정입니다.

다음주에는 <2012 서양철학사> 강의 파일은 따로 없고,

"니코마코스 윤리학" 강의는 1시간짜리 8개이므로 미리 조금 듣고 오시면 더 좋을 것도 같습니다.

다음주 철학사 내용에 윤리학이 포함되니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참고로 반 정도 들어보니 이 강의는 아주 쉽고 재미있습니다.

 

여하튼 다음주 읽어오실 분량은 아래와 같습니다.

 

<철학으로서의 철학사>

P135~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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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모임을 가졌습니다.

열 한명이 참석했고요.

 

먼저 지난주에 이어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을 자세히 짚어 보았습니다.

플라톤의 대표 저작인 <국가>와 <향연>을 중심으로

앎과 실천의 문제,

좋음의 이데아로 나아가는 에로스의 사다리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다음주에는 아리스토텔레스를 공부하겠습니다. 

 

<철학으로서의 철학사>  

Ⅳ  아리스토텔레스 p110~153 

 

<강유원의 2012 서양 철학사> : file 11   

 

 

 

 

 

 

 

 

 

 

 

 

 

 

 

 

오늘 플라톤의 <향연> 중 읽어 드린 부분을 덧붙여 놓겠습니다.

첫 인용은 에로스의 탄생과 그에 따른 에로스의 타고난 본성에 관한 내용,

두 번째 인용은 디오티마가 소크라테스에게 가르쳐 준 에로스의 사다리에 관한 내용입니다.

 

 

1. 에로스의 탄생 (203b ~ 204C)

 

‘그런데 그는 어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나왔나요?’ 내가 말했네.

‘그건 이야기가 꽤 깁니다. 하지만 어쨌거나 당신에게 말해 줄게요. 아프로디테가 태어났을 때 신들이 잔치를 열었는데, 다른 신들도 있었지만 메티스(계책)의 아들 포로스(방책)도 있었지요. 그런데 그들이 식사를 마쳤을 때, 잔치가 벌어지면 으레 그러듯 구걸하러 페니아(곤궁)가 와서는 문가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포로스가 넥타르에 취해 (술은 아직 없었거든요.) 제우스의 정원에 들어가서 취기에 짓눌려 잠이 들게 되었지요. 그러자 페니아가 자신의 방도 없음 때문에 포로스에게서 아이를 만들어 낼 작정을 세우고 그의 곁에 동침하여 에로스를 임신하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에로스는 아프로디테의 추종자요 심복이 되었지요. 그녀의 생일날 생겨났고 게다가 본래부터 아름다운 것에 관해 사랑하는 자인데 아프로디테가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포로스와 페니아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에로스는 다음과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되었답니다. 우선 그는 늘 가난하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섬섬하고 아름다운 것과는 전혀 거리가 멀며, 오히려 피부가 딱딱하고 거칠며 맨발에 집도 없습니다. 늘 땅바닥에서 요도 없이 누워 있고 문가와 길섶에서 하늘을 지붕 삼아 잠이 들지요. 어머니의 본성을 갖고 있어서 늘 결핍과 함께 삽니다. 그런가 하면 또 아버지를 닮아서 아름다운 것들과 좋은 것들을 얻을 계책을 꾸밉니다. 용감하고 당차고 맹렬하며 늘 뭔가 수를 짜내는 능란한 사냥꾼이지요. 분별을 욕망하고 그걸 얻을 기략이 풍부합니다. 전 생애에 걸쳐 지혜를 사랑하며, 능란한 마법사요 주술사요 소피스트입니다.

그리고 그는 본래 불사적이지도 가사적이지도 않습니다. 단 하루 사이에 전성기를 누리면서 사는 때가 있고 (방도를 잘 갖추고 있을 때가 그렇지요.) 또 죽어j가는 때가 있고, 그러다가 아버지의 본성 덕택에 다시 살아납니다. 그런데 그가 갖추고 있는 방도는 늘 조금씩 새어 나갑니다. 그래서 에로스는 아예 방도가 없지도 않고 부유하지도 않고, 또 지혜와 무지의 사이에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상태거든요. 신들 가운데 아무도 지혜를 사랑하지 않고 지혜롭게 되기를 욕망하지도 않습니다. 이미 그렇기 때문이지요. 또한 다른 어느 누구라도 지혜로운 자라면 지혜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런가 하면 무지한 자들도 지혜를 사랑하지 않고 지혜롭기 되기를 욕망하지도 않습니다. 무지가 다루기 어려운 건 바로 다음과 같은 점에서거든요. 즉 아름답고 훌륭한 자도 분별 있는 자도 아니면서 자신을 만족스럽게 여긴다는 것 말입니다. 자기가 뭔가를 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는 자기가 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그것을 욕망하지 않습니다.‘

‘ 그럼 그 지혜 사랑하는 자들이란 누굽니까? 지혜로운 자도 무지한 자도 아니라면 말입니다.’ 내가 말했네.

‘이쯤 되면 적어도 이것 정도는 어린애한테조차도 분명할 겁니다. 이 둘 사이에 있는 자들이고, 또 그 가운데 에로스도 속한다는 것 말입니다. 지혜는 그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것들에 속하는데, 에로스는 아름다운 것에 관한 사랑(에로스)이지요. 그래서 에로스는 필연적으로 지혜를 사랑하는 자일 수밖에 없고, 지혜를 사랑하는 자이기에 지혜로운 것과 무지한 것 사이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기원이 바로 이것들에게도 원인 노릇을 합니다. 아버지는 지혜롭고 방도를 잘 갖추고 있지만 어머니는 지혜롭지 못하고 방도가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이게 그 신령의 본성입니다. 친애하는 소크라테스, 하지만 에로스가 누구인가에 대해 당신이 말한 것들로부터 추정컨대 당신은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받는 것이 에로스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때문에 당신에게는 에로스가 아주 아름답게 보인 거라고 난 생각합니다. 사실 사랑받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고 우아하며 완벽하고 복 받았다 여겨지는 것이지요. 반면에 사랑하는 것은 다른 모습을, 즉 내가 죽 이야기했던 것과 같은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2. 에로스의 사다리

 

1) 210a ~ 210e

 

이 일을 향해 올바르게 가려는 자는 젊을 때 아름다운 몸들을 향해 가는 것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끄는 자가 올바로 이끌 경우 그는 하나의 몸을 사랑하고 그것 안에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낳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그는 어느 한 몸에 속한 아름다움이 다른 몸에 속한 아름다움과 형제지간임을 깨달아야 하며, 종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한다고 할 때, 모든 몸들에 속한 아름다움이 하나요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주 어리석은 일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걸 파악하고 나면 모든 아름다운 몸들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 하나의 몸에 대한 이 열정을 무시하고 사소하다 여김으로써 느슨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그는 몸에 있는 아름다움보다 영혼들에 있는 아름다움이 더 귀중하다고 여겨야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미미한 아름다움의 꽃을 갖고 있더라도 영혼이 훌륭하다면 그에게는 충분하며, 이자를 사랑하고 신경 써 주며 젊은이들을 더 훌륭한 자로 만들어 줄 그런 이야기들을 산출하고 추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이번에는 그가 행실들과 법들에 있는 아름다움을 바라보도록, 그리고 그것 자체가 온통 그것 자체와 동류라는 것을 보도록 강제될 것이고, 그럼으로써 몸에 관련된 아름다움이 사소한 어떤 것이라고 여기게 될 것입니다.

이끄는 자는 그를 행실들 다음으로 앎들로 이끌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그가 이번에는 앎들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게 되고, 또한 이제는 아름다움 여럿을 쳐다보고 있기에, 더 이상 어리디 어린 소년이나 특정 인간이나 하나의 행실의 아름다움에 흡족하여 종처럼 하나에게 있는 아름다움에 노예 노릇 하면서 보잘것없고 하찮은 자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름다움의 큰 바다로 향하게 되고 그것을 관조함으로써, 아낌없이 지혜를 사랑하는 가운데 많은 아름답고 웅장한 이야기들과 사유들을 산출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결국 거기서 힘을 얻고 자라나서 어떤 단일한 앎을, 즉 다음과 같은 아름다움에 대한 것으로서의 앎을 직관하게 됩니다.

그러니 이제 할 수 있는 한 최대의 주의를 기울이도록 노력해 보세요. 아름다운 것들을 차례차례 올바로 바라보면서 에로스 관련 일들에 대해 여기까지 인도된 자라면 이제 에로스 관련 일들의 정점에 도달하여 갑자기 본성상 아름다운 어떤 놀라운 것을 직관하게 될 것입니다. 소크라테스, 앞서의 모든 노고들의 최종 목표이기도 했던 게 바로 이겁니다.

 

2). 211c

 

.... 마치 사다리를 이용하는 사람처럼 그는 하나에서부터 둘로, 둘에서부터 모든 아름다운 몸들로, 그리고 아름다운 몸들에서부터 아름다운 행실들로, 그리고 행실들에서부터 아름다운 배움들로, 그리고 그 배움들에서부터 마침내 저 배움으로, 즉 다름 아닌 저 아름다운 것 자체에 대한 배움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마침내 그는 아름다움 바로 그것 자체를 알게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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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디 교재에다가

강유원의 <서양 철학사> 파일까지 확보하고 나니,

부작용이 생겼습니다. ^^

진도가 잘 안나갑니다.

 

오늘 72쪽부터 93쪽까지

즉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 모두 그리고 플라톤을 반정도 읽으려고 했는데,

85쪽까지 밖에 못했습니다.

플라톤은 도입부만 보고 본론은 시작도 하지 못했네요.

강유원 선생님이 강의에서 워낙 많은 말씀을 하셔서

거기에 따라 진행하다보니

우리 스타디도 플라톤을 얼마나 오래하게 될지 예단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

 

소크라테스에 관해서는

변증술과 아레테에 대해 중점적으로 알아보았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본인이 남겨 놓은 저작물이 없고

플라톤은 대부분의 저작물에 소크라테스를 등장시켜 논의를 전개하기 때문에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사상을 구분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오늘 소크라테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우리도 플라톤의 책에 나온 이런저런 내용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예를 들면 변증술 이야기를 하면서

<향연>에 나오는 에로스 이야기를 미리하였습니다. 

 

플라톤은 다음주부터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됩니다.

오늘은 플라톤의 생애와 저술 그리고 

강유원 선생님이 강의 파일7에서 정리해 준 

'이데아'에 대해 개략적인 개념을 살짝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열두명이 함께 하였습니다.

처음으로 아리수님과 오랑쥬님 그리고 한비도 출석하여

더욱 좋은 스타디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주에 읽고 듣고 생각하고, 다음주에 논의할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철학으로서의 철학사> p85~109

 

읽고 왔지만 오늘 논의하지 못한 플라톤의 이데아부터 플라톤 끝까지 입니다.

물론 다음주에 다 공부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습니다만,

일단 읽고는 오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두 번, 세 번 읽어도  처음 읽듯 새로울 것이니 ^^ 

 

<2012 서양 철학사> 강의 파일 

 

파일 7 : 플라톤의 이데아 

파일 8 : 플라톤의 <국가>

파일 9 : 플라톤의 <향연>

파일 10 : 플라톤의 <향연> 

 

파일7은 이미 들으셨을 것 같습니다. 

파일 8,9,10 모두 듣고 오시면 좋고요. 

안되면 파일 8을 우선으로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주에 공부하고 여러분의 의견을 들어 

<향연>을 같이 읽어 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향연>에 대해서는 또 다른 파일도 있습니다.

강유원 선생님이 CBS 라디오에서 방송한 내용입니다.

10회나 되지만 회당 25분 정도밖에 되지 않아

철학사 강의의 분량이나 라디오 방송 분량이나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라디오 강의가 훨씬 차분하기는 하지만, 조금 더 일반적입니다.

 

https://itunes.apple.com/kr/podcast/gang-yuwon-ui-ladio-inmunhag/id576954501?mt=2&ign-mpt=uo%3D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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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놈입니다.

 

 어떤 분에게는 구토를 일으키고,

 어떤 분에게는 단단한 베개가 되어주고,

 어떤 분에게는 사람들로부터 너무 낯선 눈길을 받도록

 만든 것이. 

 

 저도 주말 내내 걱정을 가득 싸안고 

 이 책과 씨름을 했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것을 어떻게 진행할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것보다는 

사실을 고백컨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을 많이하게 될까 두려웠습니다. 

처음 읽는 분들께 

저의 미숙한 이해가 미숙한 것으로 인지되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오류를 습득하게 만들까 걱정이 많았습니다. 

 

가능하면 책에 있는 것들로만 이야기를 진행하려 했으나

워낙 무슨 말인지 이해가 어려운 것들은 

또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어떤 사례들을 드는 것이 쉬운 방법인지라

소위 '감각'으로 인지되는 것들로 '누스'로만 알 수 있는 실재의 세계를

비유해 보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

짜~잔 우리의 오랑쥬님께서 좋은 강의를 찾아 주셨습니다.

강유원 선생님의 철학 강의를 인터넷에서 발견했습니다.

여기에 링크를 다시 한번 걸어 놓겠습니다.

마침 딱 알맞게도 <서양 철학사> 40주짜리 강의가 있어

엄청 엄청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책은 대충 한번 읽어 보고 이 강의를 들으면 아주 잘 이해가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도 아직 강의를 듣지는 않았거든요. ㅎ

 

https://m.mediafire.com/folder/kyggah4ubuy69/강유원

 

 

오늘은 모두 열 명이 모였습니다.

중간에 일이 있어서 가신 분들이 부디 지겨워서 도망가신 것은 아니기를 흑 ^^;

 

다음주는 본격적인 희랍철학에 들어가겠습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입니다만, 실은 플라톤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명성에 비해서는 철학 자체의 내용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사상을 정리한 것이 플라톤이라고 하니 플라톤 안에 소크라테스가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철학으로서의 철학사>

 

Ⅱ. 소피스트들과 소크라테스 p72~82

 

Ⅲ. 플라톤 p83~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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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12-19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럽습니다, 말리 님..

말리 2016-12-19 17:50   좋아요 0 | URL
아~ 오랜만입니다.
사람들이랑 공부한다고 요즘은 책을 잘 읽지도 못하고,
다른 분들의 글도 잘 읽지 못하고 있습니다.
곰곰님의 멋진 글들도 요즘은 읽지 못했네요. ㅎ;
댓글 주셔서 아주 기쁘고 반갑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