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의 층위들이란 우리가 사물을 이해해내는 각 단계들로
'있는 것으로서의 있는 것' 즉 usia(실체)에 대한 궁극적 앎에 도달하는 과정입니다.
첫 단계로는 사물에 대한 감각적 앎에서 시작하여 기억과 경험을 거쳐 기술적 이해에 도달합니다. 더 깊은 탐구를 통해 그 사물의 원리와 원인을 논증하는 에피스테메 즉 논증적 앎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그 사물을 완전히 알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원인은 또 다른 원인을 갖고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데 사물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궁극의 원인, 제1원인이 필요합니다. 이 제1의 원인은 논증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누스를 통해 직관적으로만 알 수 있습니다. 에피스테메와 누스가 결합된 것이 바로 소피아입니다. 하지만 소피아는 인간이 도달하기는 힘든, 엄밀히 말해서 신만이 도달할 수 있는 궁극의 앎입니다.
앎의 층위는 앎이란 누적적이라는 뜻입니다. 사물에 대한 감각과 경험 등을 통하지 않고서 우리는 사물의 본질에 바로 도달할 수 없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사물에 대해 깊이 탐색한 이유는 아마도 형상에 대해 스승 플라톤과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 듯합니다.
플라톤은 사물은 형상(이데아)의 그림자나 모방일 뿐이며
형상은 사물의 세계 밖에 실재하는 진리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른바 형상 실재론입니다. 플라톤에게 사물은 오히려 이데아에 대한 앎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여겨진 듯 합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견해를 거부했습니다. 사물을 사물답게 만드는 것이 형상이라면 그 형상은 사물의 밖이 아니라 안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생각을 실체 즉 우시아라는 개념을 통해 전개하였습니다.
실체는 말 그대로 우리가 만지고 보고 들을 수 있는 각각의 구체적 사물입니다. 그런데 이 실체에는 그 사물의 형상이 온전하게 내재해 있습니다. 홍길동이라는 구체적 사물 안에는 인간의 형상이 그대로 들어있어야합니다. 홍길동이 인간일 수 있는 것은 인간의 형상이 홍길동이란 사물 안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즉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홍길동도 실체이고 홍길동 안에 있는 인간이란 형상도 실체입니다. 두 개의 실체가 있고 그것을 각각 제1 실체와 제2 실체라고 합니다. 구체적 사물의 측면에서 보았는가 아니면 형상의 측면에서 보았는가에 따라 제1 실체와 제2 실체를 나누었지만, 사실 그것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실체입니다. 이 분리될 수 없는 실체를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시아라고 하였습니다. 형상의 측면에서 말하자면 플라톤은 이데아,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시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유원 선생님은 철학사 강의에서 우시아를 이렇게 정의하였습니다. :
"형상을 내재한 각각의 사물" 이것을 형상 내재론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 스타디 후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형이상학』 의 첫 문장입니다.
: "모든 인간은 본성적으로 알고자 한다."
거꾸로 말하면 앎을 추구하지 않으면 사람도 아니라는 말?
아리스토텔레스는 물론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까지 모두
앎을 인간 최고의 행위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탁월함 즉 아레테를 '앎' 이라고 하였습니다.
플라톤은 에로스의 사다리에서 이데아 그 자체의 아름다움 바로 아래 단계가 앎의 아름다움이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이 앎이라는 뜻과도 같습니다. 앎의 결핍에 목말라하고 앎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철학자입니다. 플라톤이 최고의 인간으로 규정한 철학자는 앎을 향해 나아가는 자입니다. 그리고 이 앎은 좋음을 향한 앎이어야 합니다.
이렇게 오늘은 꼬박 세 시간 가까이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 허우적대었습니다. 그 중에서 무엇이 머리에 남았나 생각하다가 후기에 뜻하지 않게 너무 전문적인 (ㅋㅋㅋ;;) 내용을 너무 대담하게 적었습니다. 스타디 시작할 때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의 공부는 어디 다른 곳에 가서 플라톤이 이렇다 저렇다 해서는 절대로 안되는 아주아주 초보적이고 오류투성이일 가능성이 농후한 단계라고 해놓고는 누구나 볼 수 있는 블로그에 요렇게 무식이 용감함임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ㅡ.ㅡ;;
흠흠...
다음주는 아리스토텔레스, 두 번째 시간입니다.
아마도 다음주 주제는 오늘보다 열 배는 쉽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그 다음주는 <인문 고전 강의>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할 예정입니다.
다음주에는 <2012 서양철학사> 강의 파일은 따로 없고,
"니코마코스 윤리학" 강의는 1시간짜리 8개이므로 미리 조금 듣고 오시면 더 좋을 것도 같습니다.
다음주 철학사 내용에 윤리학이 포함되니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참고로 반 정도 들어보니 이 강의는 아주 쉽고 재미있습니다.
여하튼 다음주 읽어오실 분량은 아래와 같습니다.
<철학으로서의 철학사>
P135~ 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