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드로스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14
플라톤 지음, 김주일 옮김 / 이제이북스 / 201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2012년에 선물 받은 책이었다. 고맙게도 증정 사인도 있었다. 하지만 『파이드로스』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고, 플라톤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4년이 지나고 이제야 읽었다. 얼마 전에 『향연』을 읽었고, 내용도 내용이지만 소크라테스의 까칠한 말솜씨가 매우 흥미로워, 잊고 있었던 『파이드로스』를 기억해 냈다. 『향연』을 읽게 된 것은 작년 말부터 읽기 시작한 『철학으로서의 철학사』 덕분이다.

 

한국사와 세계사를 함께 한 스터디 팀과 기어이 철학 공부를 시작했다.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많았고 여전히 많지만, 다행히 이번 주로 5회인데 손들고 나간 분은 별로 없다. 모두들 머리를 쥐어뜯으며 글자만 읽고 온다고 고개를 흔들지만 또 스터디 시간에는 눈을 반짝이며 집중들을 한다. 처음 계획보다 진도는 훨씬 느리다. 한 주에 20쪽 정도 밖에 못한다. 강유원 선생님의 <2012 서양 철학사> 강의 파일을 얻게 되어 엄청 도움이 된다. 우리 교재는 강유원 선생님의 교재와는 다르지만 수록된 철학자와 순서는 거의 비슷한 것 같다. 진행을 맡은 나는 『철학 고전 강의』와 『세계 철학사』도 참고 한다. 그러다보니 여기 저기 주워 읽고 들은 것이 보태져서 교재에 있는 것보다 많은 말을 하게 된다. 우리 교재에 맞추어 미리 정리를 하는데, 이 작업도 만만치가 않다. 토요일을 꼬박 투자하고 나면 머리에서 말 그대로 쥐가 나는 것 같아, 이 나이에 왜 이 짓을 하고 있나 하면서도, 좋다. 다만 혼자 되는대로 이 책 저 책 읽은 경험만 가지고, 철학사 스터디를 진행해도 되는지 수시로 되물어보게 된다. 책에서 읽은 것만, 강의에서 들은 것만 말하자고 다짐해도 내 머릿속에 들어온 것들은 내 이해력 안에서 재조합되고 윤색되기 마련이다. 부디 내 독해가 심각한 오독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파이드로스』는 약간 충격적인 이야기로 시작한다. 물론 당대 희랍세계가 아니라 우리에게 그렇다. 소년 애인과 그를 사랑하는 혹은 그와 육체적 관계를 원하는 어른 남자에 관한 대화이기 때문이다. 희랍세계에서 이런 관계는 매우 당연하고 바람직한 일이기도 한 모양이다. 『파이드로스』의 주제는 소피스트애 대한 비판인 것 같은데 철학사에 인용된 대목은 영혼에 관한 부분이다. 플라톤 편을 공부하면 ‘형상 상기설’이라는 것이 나온다. 영혼이 육신으로 추락하기 전에 이데아를 보았고, 그때 본 이데아를 우리가 갈망한다는 것이다. 이데아의 그림자인 사물은 우리에게 이데아 즉 형상을 상기시킨다.

 

「그러므로 앎은 우리 바깥에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와는 반대로 우리 안에 있는 것을 상기하는 것이다. 사물들은 그저 우리가 그것들을 폐기하고 우리의 사유를 이데아들로 고양하게끔 하는 자극일 뿐이다. p92, 철학으로서의 철학사」

 

그렇다면 영혼은 어떻게 이데아를 볼 수 있었던 것일까? 『파이드로스』에 아주 자세한 설명이 있다. 믿기진 않지만 플라톤 철학과 관련하여 읽으면 매우 흥미롭기도 하다. 길지만 주요 부분을 옮겨 놓겠다. 아, 참, 플라톤의 대화편은 말 그대로 대화 형식이라 이것이 철학인가 싶을 정도인데 그냥 이야기책처럼 읽어도 재미있다. 다 그런지는 모르지만 향연이 그렇고 파이드로스가 그렇다. 몇 년 전에 읽은 국가도 분량이 많고 이름값이 무거워서 마음먹기가 힘들지 읽기는 어렵지 않았다. 『파이드로스』를 선물했던 지인에게 이제야 감사 인사를 한다.

 

 

 

1. 246a ~ 246e

 

혼이 본래 한 멍에에 매인 날개 달린 말들과 마부가 합체된 능력을 닮았다고 해 보자고. 그런데 신들의 말들과 마부들은 모두가 그 자체로도 훌륭하며 태생도 훌륭한 반면, 다른 쪽들의 경우엔 섞여 있지. 그러니까 첫째로 우리 쪽의 다스리는 자는 한 쌍의 말을 몰며, 둘째로 말들 중 한쪽은 아름답고 훌륭하며 태생도 그런 반면, 다른 쪽은 그 반대고 태생도 반대지. 그러니 우리 경우에 전차 몰기는 어쩔 수 없이 어렵고, 애먹이는 것일 수밖에 없지. 자, 그럼 어떻게 해서 살아 있는 것이 사멸한다고도 불리고 불사한다고도 불리게 되었는지를 말해 봐야지. 모든 혼은 혼이 없는 것 전부를 돌보고 천계 전체를 순례하지. 그때그때 다른 모습을 하고서 말이지. 그리하여 혼이 완전하고 날개가 나 있으면, 드높은 하늘을 가르며 우주 전체를 관장하지만, 깃털이 빠진 혼은 쓸려 다니다가 단단한 뭔가를 붙잡아 거기에 정착하여 흙으로 된 몸을 취하고, 몸은 혼의 능력 덕에 자신이 자신을 움직이는 것처럼 여겨져, 혼과 몸이 달라붙은 전체가 살아 있는 것이라 불리며, 사멸하는 것이란 명칭을 얻었지. 반면에 불사한다는 것은 논증이 된 그 어떤 이야기에도 토대를 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신을 보지도 못했고 충분히 깨닫지도 않았으면서, 한편으로는 혼을 갖고 다른 한편으로는 육체를 갖고 있으면서 본래 이것들을 영원히 합체시킨 불사하는 것이자 살아 있는 것이라고 신을 형상화하지. 그렇지만 그런 것들이야 그 사실이 어떻든 신의 마음에 들어야 하고, 또 신의 마음에 드는 방식으로 이야기되어야 하겠지. 반면에 깃털들이 혼에서 떨어져 나가게 하는, 깃털들의 상실의 원인은 우리가 파악해 보자고. 그건 다음과 같은 어떤 것이야.

 

본래 날개의 힘은 무거운 것을 공중으로 올려 신들의 종족이 사는 곳으로 이끌어 올리는 것으로, 어떻게 보면 육체와 관련되는 것들 중에서는 신적인 것에, 즉 아름답고 지혜롭고 훌륭하며, 그 밖의 모든 그러한 신적인 것에 가장 크게 관여하지. 바로 이것들에 의해서 혼의 깃털이 가장 많이 양육되고 자라며, 그것들과 반대되는 추하거나 나쁜 것 등에 의해서는 쇠퇴하고 소멸하지.

 

 

2. 247b ~ 248e

 

그렇기는 하지만 잔치와 만찬을 위해 갈 때면, 천계를 떠받치는 맨 꼭대기 궁륭으로 가파르게 나아가는데, 거기서 신들이 타는 것들은 고분고분해서 균형을 잡고 쉽게 나아가지만, 다른 자들이 타는 것들은 겨우겨우 나아가지. 나쁜 본성에 참여하는 말은 몸이 무거워 땅으로 쳐지면서 마부들 중 말을 제대로 기르지 못한 마부를 힘겹게 하거든. 바로 거기서 극도의 고난과 다툼이 혼 앞에 놓이지. 사실 우리가 불사자라 부르는 혼들은 꼭대기에 이를 때면, 밖으로 나아가 천계의 등마루에 서게 되는 한편, 회전운동은 서 있는 그들을 돌리고, 그들은 천계 밖의 것들을 관조하지.

 

하지만 천계 바깥 자리를 이제껏 이 세상의 어떤 시인도 노래한 적이 없었고, 언젠가 그에 걸맞게 노래할 날도 없을 거야. 하지만 그곳은 이렇지. -최소한 참된 것만큼은 우리가 과감히 말해야 하고 우리가 진리를 주제로 삼아서 말할진대, 특히 그러해야 하니까- 색깔도 형체도 없으며 만져지지도 않는, 있는 것답게 있는 실재가, 즉 혼의 키잡이인 지성에만 관조되고, 참된 앎의 부류가 관계하는 실재가 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그리하여 순수한 지성과 앎에 의해 양육되는 신의 생각, 그리고 자신에게 적합한 양식을 섭취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는 모든 혼의 생각은 때가 돌아오면 회전운동이 빙 둘러 제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시간 간격을 두고 실재를 보고 반기며, 참된 것을 관조하여 양식을 얻고 즐거워하지. 그 궤도에서 그것은 정의 자체를 목격하고, 절제를 목격하며, 앎을 목격하지. 그런데 그 앎은 생성이 곁들여지지 않은 앎이요, 오늘날 우리가 있는 것들이라 부르는 것들 중 어떤 다른 것과 관련될 때마다 달라지는 앎이 아니라, 있는 것답게 있는 실재인 것에 관계하는 앎이지. 있는 것답게 있는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 같은 식으로 관조하고 잔치를 즐기고서, 그것은 다시 천계의 안으로 들어가 집으로 돌아갔지. 그것이 돌아오면, 마부는 구유에 말들을 세우고 신찬을 먹이로 주고 더해서 신주를 주어 마시게 했지.

 

이것이 신들의 삶이야. 한편 다른 혼들의 경우, 가장 훌륭하게 신을 따르고 닮은 혼은 바깥 자리로 마부의 머리를 들어 올리고 회전운동을 신과 함께 돌지만, 말들로 인해 소란을 겪어 실재들을 어렵사리 목격하는 한편, 말들에 휘둘려서 어떤 것들은 보았고 어떤 것들은 보지 못했지. 그런 한편 또 다른 혼들은 모두 윗 세상에 집념하여 따르지만 능력이 없어서 표면 아래에서 함께 도는데, 서로를 밟고 깔아 뭉개 가며, 서로 앞서 있으려 하지. 그리하여 극도의 소란과 힘겨루기와 진땀나는 일이 벌어지는데, 바로 이 와중에 마부의 무능함 때문에 많은 혼들이 불구가 되는가 하면, 또 많은 혼들이 날개를 많이 다치지. 하지만 그 모든 혼은 많은 고난을 겪고도 실재의 관조에 입교하지 못한 채 떠나고, 떠나서는 의견을 양식으로 삼지. 그런데 진리의 평원이 어디에 있는지 보고자 하는 대단한 열의의 이유는 혼의 최상의 부분에 제격인 여물이 거기 있는 목초지에서 나며, 혼을 들어 올리는 날개의 본성이 그것으로 양육되기 때문이지.

 

또한 아드라스테이아의 법칙은 다음과 같지. 신의 수행자가 되어 참된 것들 중 어떤 것을 목격한 혼은, 또 다른 주기 전까지 비탄에 빠지지 않을 것이며, 그 혼이 때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언제까지나 해를 입지 않으리라는 것이지. 반면에 따라갈 능력이 없어서 보질 못하고, 어떤 불운으로 말미암아 망각과 무능으로 가득 차 무거워지는가 하면, 무거워져 깃털이 빠지고 땅에 떨어질 때면, 그때 이 혼은 첫 출생부터 야생의 존재에 심기는 게 아니라, 가장 많이 본 혼은 장차 지혜를 사랑하거나 아름다움을 사랑하거나, 혹은 시가나 사랑을 따르게 될 사람의 싹에 심기며, 두 번째는 법치를 하는 왕이거나 전쟁을 잘하는 지휘관 같은 왕의 싹에, 세 번째는 정치에 맞거나 한 집안의 경영에 맞는 사람, 또는 사업에 맞는 사람의 싹에, 네 번째는 운동을 사랑하는 체육가거나 육체의 치료에 관여할 사람의 싹에 심길 것이고, 다섯 번째는 예언가의 삶이거나 입교의식을 따르는 어떤 삶을 가지리라는 것이 그 법칙이지. 여섯 번째 혼에게는 시를 따르는 삶이거나 모방에 관련된 사람들의 그 밖의 다른 삶이 어울릴 것이고, 일곱 번째 혼에게는 만들거나 농사를 짓는 삶이, 여덟 번째 혼에게는 소피스트거나 민중 선동가의 삶이, 아홉 번째 혼에게는 참주의 삶이 어울릴 것이라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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