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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레스토랑 Less Than Nothing 시리즈 1
슬라보예 지젝 지음, 조형준 옮김 / 새물결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서문 ... 그래도 그것은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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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것은 돈다’

 

 

 

 

1. 『또라이를 위한 헤겔 가이드』

 

 

  이런 구분이 있기는 한가 보다. 우리말로 옮기면 좀 그렇고, 영어 그대로 하자면, ‘ idiot (IQ 0~25) - imbecile (IQ 26~50) - moron (IQ 51~70) ’

그래도 좀 그러니 우리말로 옮긴 건, ‘ 천치 - 또라이 - 얼간이 ’

 

  imbecile은 부정형이다. ‘im-becile' : 영어에서 becile 은 긍정 형태 단독으로 쓰이진 않지만, 어원을 따져보면 라틴어 baculum(막대기,지팡이,자루) 정도 된다. 그러니 imbecile은 ‘지팡이 없이 돌아다닐 수 있는 사람’ 쯤 되겠다. 그런데 지팡이 없는 사람이 왜 또라이가 될까?

 

  baculum 을, (만약 우리가, 말하는 존재로서 우리 모두가 의지해야 하는) “이 막대기를 언어로, 상징적 질서로, 즉 라캉이 큰타자라고 부르는 것으로” 생각해 보자. 그러면 또라이는 “지팡이의 도움 없이 돌아다닐 수 있는 사람” . 말하자면, 상징적 질서 따위 상관하지 않는 놈이다. 우리도 보통 관습이나 교양과 담 쌓은 놈을 ‘또라이’ 라 부른다. 남들이 ‘예’라 할 때, 뭐라고 답할지 예측이 안 되는 놈이 또라이다. 그렇다고 완전 미친놈은 아니고.

 

 

  여하튼 ‘지팡이가 큰타자’라면, 세 종류의 바보들이 있다.  

  ① idiot 천치 : 그야말로 혼자, 큰타자 바깥에 있다. 말하자면 미친놈.

  ② moron 얼간이 : 큰타자 내부에 (멍청하니 언어 속에 거주하면서) 있다.

                           뭐, 우리 정상인으로 불리는 것들이다.

                           주어진 세계에 적응하려 아등바등하는 혹은 태생적 엄친

                           아 유형.

  ③ imbecile 또라이 : 둘 사이에 있다. 큰타자가 필요하다는 건 알지만

                             그것에 의존하지 않고, 그것을 불신한다.

                             급진적 혁명가, 정신분석에서의 분석가. 삐딱한 놈.

 

  지젝은 이런 구분을 전제로, 이 책을 『또라이를 위한 헤겔 가이드』로 정의한다. 큰타자를 믿는 우리 표준적(정상적) 얼간이들을 위한 책은 아니다. 대타자를 의심하고, 뭔가 삐딱하게 보는 또라이들을 위한 책이다.

 

  그런데 우리는 보지 못하고 이 또라이들만 볼 수 있는 것은 도대체 뭘까? 『또라이를 위한 헤겔 가이드』를 따라 가보면, 알 수 있을까? 그 전에 우리는 먼저 또라이가 되어야 할까? 이 가이드를 따라 가다보면, 우리도 또라이가 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2. less than nothing

 

 

  데리다가 애용하던 유대농담이다. :

 

  유대인들이 회당에 모여서 신에게 우리 모두는 아무짝에 쓸모없는 놈이라고 고해하는 중이다. 먼저 랍비 왈, “오, 신이여, 저는 제가 아무것도 아님을 압니다.”  다음 부유한 장사꾼 왈, “오, 신이여, 돈에 환장한 저 또한 아무것도 아닙니다.”  마지막 평범한 유대인 왈, “오, 신이여,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자 부자 장사꾼이 랍비를 쿡 찌르며 하는 말, “오만방자한 새끼! 제가 뭔데 아무것도아니라는 게야!!”

 

 

  평범한 유대인은 nothing 이 아니라 less than nothing 이라는 걸까? 알아먹지도 못하는 농담은 농담도 아니다만, 지젝이 덧붙이는 말은 이것이다.

 

  “실제로 순수한 없음에 이를 수 있으려면 이미 무엇인가여야 한다. 그리고 이 책은 이처럼 기묘한 논리를 양자 물리학부터 정신분석에 이르는 극히 이질적인 존재론적 영역, 상이한 수준에서 찾아내려고 한다.”

 

  less than nothing은 그냥 nothing이 아니다. ‘이미 무엇인가’ 이다. 이 ‘이미 무엇인가’ 를 탐색하는 작업, 그것이 이 독해의 긴 여정이 될 것 같다.

 

 

 

 

3. 헤겔의 반복

 

 

  난생 처음 보는 이상한 번역이다. 누구나 한 번씩 비웃는 제목이야 그렇다 치

고, 왜 멀쩡한 책 한권을, 두 권으로 나눠버렸나? 1권, 2권 이렇게 나눈 것이 아니라, 아예 별개의 책인 것처럼 제목을 따로 붙여 놓았다. 『라캉 카페』를 보고 누가 『헤겔 레스토랑 2』 라고 생각할까?

 

 

 

 

 

 

 

 

  어쨌거나, 이 책은 헤겔에 관한 책이다. 물론 이 책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헤겔에 관한 부분과 ‘헤겔의 반복’으로서의 라캉에 관한 부분이다. (그렇다고 책 제목을 저렇게 나누냐?;;)  이 책의 목표가 단순히 헤겔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철저히 키르케고르적 의미에서 ‘헤겔을 반복’하는 것이 그 목표이다.

 

  지젝은 지난 10년 동안 ‘라캉을 통해 헤겔을 읽는 것’ 이 그들 작업의 중심축이자, 넘어설 수 없는 지평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에 헤겔과 라캉 둘 다에서 한계를 보았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 한계의 돌파는 그 지평의 너머에 있는 다른 것은 아닌 것 같다. 여전히 그들의 탈출구는 ‘헤겔의 반복’ 이다.

 

 

  “나는 정신분석과 헤겔 변증법이 상호작용 (라캉을 통해 헤겔을 읽고 거꾸로 헤겔을 통해 라캉을 읽는 것)을 통해 서로를 구출하리라는 것에, 익숙해진 허물을 벗고 전혀 예기치 못한 새로운 모습으로 출현하리라는 것에 내기를 걸었다.(지금도 마찬가지다)”

 

 

  지젝이 ‘익숙해진 허물’을 벗고 어떤 ‘새로운 모습’으로 출현하고 있는지, 이제 확인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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