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독서회는 방학이 있다. 아이들의 방학에 맞추어 겨울에 두 달, 여름에 한 달 방학을 한다. 처음에는 이상했는데 이제는 이해가 간다. 애들 키우고, 집안일 하고, 파트타임 일도 해가면서 일주일에 한권씩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내가 봐도 놀랍다. 방학이 되면 아이들에게 가는 손이 두 배는 늘어나니 책을 손에 쥘 시간은 그만큼 줄어든다. 좋아서 읽는 책이지만, 방학이 다가오면 회원들의 얼굴에 살짝 안도감이 실리기도 한다. 내내 쫒기듯 읽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그럴만도 하다.
올 한해 우리 독서회는 36권의 책을 읽었다. 소설이 27권, 인문학 4권, 에세이 3권, 기타 2권 이다. 소설은 고전이 10권, 현대소설이 17권이다. 지역별로 보면 국내소설 8권, 영미소설 8권, 그외 외국소설 11권이다.
올해 읽은 책들에 대한 회원들의 평가를 알아보기 위해 간단한 조사를 했다. 제일 재미있었던 책, 가장 유익했던 책 그리고 최악의 책을 뽑았다.
'재미'로는 3명이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뽑아 주었고, 그외 <소년이 온다>를 비롯 7권이 각 1표씩을 얻었다. 취향이 참 다양하다. 재미있는 책으로 선정된 8권의 책은 모두 소설이다.
'유익'으로는 <피로사회>, <프루스트가 우리 삶을 바꾸는 방법>, <팔레스타인> 이 모두 두표씩을 얻어 공동 1위를 차지했다. 그 외 <소년이 온다>를 비롯 5권이 각 1표씩을 얻었다. 가장 유익했던 3권의 책은 모두 소설이 아니다. 그런데 매우 재미있는 것은 <피로사회>,와 <프루스트가 우리 삶을 바꾸는 방법>은 최악의 책에서도 1위를 먹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아주 유익한 책이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 어려워 읽기 힘들었던 것이다. 1표씩을 얻은 5권의 유익한 책 중에 4권이 소설이고, 1권이 여행 에세이다.
최악의 책은 <피로사회>, <프루스트가 우리 삶을 바꾸는 방법>그리고 <정글만리> 가 각 3표씩을 얻어 공동 1위에 올랐다. <피로사회>와 <프루스트가 우리 삶을 바꾸는 방법>은 어려워서 읽기 힘들었다는 이유로, <정글만리>는 너무 실망했다는 이유로 선정되었다. 그 외 각 2표씩을 얻은 책 두 권이 최악의 책에 이름을 올렸다.
<피로사회>와 <프루스트가 우리 삶을 바꾸는 방법>은 올해 우리 독서회의 문제적 책이라 할 수 있다. 극명하게 호불호가 갈리는데, 이 사실 자체가 독서회의 난제를 드러내주고 있다. 독서회는 평균 10명을 넘던 참석자가 하반기에 와서 점차 줄어 들어 최저 5명이 참석하는 날도 있었다. 새로운 일을 찾아 떠나는 사람도 늘어났지만, 한 편에는 너무 어렵다는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떤 회원들은 독서회가 친목 위에 가벼운 책을 얹기를 바라고, 또 어떤 회원들은 혼자 읽기는 약간 벅찬 책을 함께 읽을 수 있는 장이 되기를 바란다. 전자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독서회의 의미가 퇴색하고, 후자에 비중을 두면 버거워하는 회원이 생겨난다. 그런데 대개 목소리가 큰 회원은 후자에 속한다. 독서회의 목소리란 읽을 책을 많이 추천하는 것이다. 어디서나 발언하는 자가 권력을 쥔다. 그러다 보니 참석자가 줄어드는 문제가 발생했다.
어떻게 해야할까? 사실 평가 설문을 한 것도 이 때문이다. 회원들의 성향을 파악하여 내년 독서회의 방향을 잡는 기본 자료로 사용하려 했다. 그런데 한눈에 보이는 결과는 참 취향들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재미에 대한 기준도 다 다르다. 유익과 어려움 사이에는 절충의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 최고이지만, 적어도 큰 어려움 없이 유익하게 읽을만한 차선의 책을 선택하기도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매번 재미만 있는 책을 읽을 수는 없는 것이 아닐까? 재미있는 책은 혼자서 읽어도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 재밌어~~ 외에 할 말이 없는 책을 가지고 독서회라는 이름을 걸고 만날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한편 사람이 먼저라고 생각하면, 누구나 쉽게 읽고 가볍게 이야기할 수 있는 책을 골라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그러면 나는 별로 참석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