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스트레인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리틀 스트레인저
세라 워터스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핑거스미스'의 집이 생각났다.

 여주인공 모드를 가두고 있던 집. 그녀는 거기서 삼촌에게 속박당한 채, 삼촌의 명령으로 자신이 혐오해마지 않는 음란 서적을 대필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집은 감옥이었고 탈출은 염원이었다. 얼른 '리틀 스트레인저'의 캐럴라인과 겹쳐진다. 그녀 역시 자신이 사는 헌드레즈홀을 감옥이라 여기고 있으며 하루라도 빨리 거기서 자유롭게 되기를 갈구한다. 그녀가 페러데이를 사랑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가 자신을 거기서 데리고 나가주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페러데이는 '핑거스미스'의 사기꾼을 닮았다. 작품에선 그를 '젠틀맨'이라 부른다. 물론 그에게 있어 '젠틀은 어디까지나 여자를 유혹하기 위한 덫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  배를 불리기 위해서라면 어떤 파렴치한 짓이라도 하는 악인 중의 악인, 그가 바로 젠틀맨이다.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한 매개로 여자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페러데이도 젠틀맨과 비슷하다. 물론 페러데이는 자신의 사랑을 순수하다 생각하지만 캐럴라인이 헌드레즈홀의 딸이 아니었다면 그처럼 사랑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소설은 캐럴라인이 그다지 끌릴만한 인물이 아님을 누누히 강조하고 있으니까. 페러데이는 오래도록 선망의 대상이었던 헌드레즈홀에서 살 수 있기에 캐럴라인을 원했던 게 틀림없다. 한 예로 캐럴라인이 헌드레즈홀이 지긋지긋하다며 빨리 떠나버리고 싶다고 말하자 페러데이는 놀라며 그녀를 말린다. 왜 그러는 지 자신은 도통 이해할 수 없다고 하면서. 그건 물론 자신을 '헌드레즈홀'과 깊은 인연을 맺게 해 준, 베키에게도 마찬가지다. 베키는 그 저택의 유일한 하녀다. 그녀는 거기서 벗어나려고 꾀병을 부렸고 그러다 임시로 불려온 페러데이에게 그사실을 간파당한다. 페러데이가 왜 꾀병을 부리는지 이유를 묻자 그녀는 저택이 정말 싫다고 대답하고 페러데이는 역시나 베키의 그런 마음을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고 보니 베키는 '핑거스미스'의 '수'를 닮았다. 젠틀맨을 도와 모드를 유혹하기 위해 저택의 하녀로 들어갔던 여자. 베키가 헌드레즈홀의 하녀로 일하게 된 것도 남자 때문이었다. 바로 그녀의 아버지가 억지로 거기로 데려다 놓은 것이다. 베키는 원래 공장 노동자가 되길 원했다. 하녀 같은 건 시대에 뒤떨어진, 촌스런 직업이라 생각했으니까. 이렇게 자꾸만 은근슬쩍 겹치니까 '리틀 스트레인저'를 '핑거스미스' 옆에 놓고 싶어진다. 비교를 위해서. 물론 둘은 시대적 배경이 다르다. '핑거스미스'는 빅토리아 시대고, '리틀 스트레인저'는 1948년이니까. 그렇지만 어떤 연속성이 느껴진다. 바로 집에 관해서다.


 '핑거스미스'에서 집은 군림의 존재였다.

 그것은 여성 위에 군림했다. 항상 남성이 지배자의 자리에 앉아 있었던 그 집은 그래서 그대로 가부장제의 구현체였다. 하지만 '리틀 스트레인저'에서 집은 더이상 군림의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쪼그라들어 있다. 페러데이는 몇 십년만에 다시 찾은 헌드레즈홀이 목책으로 된 울타리로 포위되어 있음을 본다. 바로 중간 계급들을 위한 집을 짓느라 부지 확보차 세워진 울타리였다. 그렇게 헌드레즈홀은 자기보다 아래 계급들에 의해 포위되어 있었다. 쇠락의 징후는 저택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기 살고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가문의 장남인 로더릭은 전쟁에서 입은 부상과 정신적 후유증으로 상당히 쇠약해져 있었다. 에어즈 부인 역시도 심신이 많이 약해진 상태였다. 날이 갈수록 어려워져만 가는 헌드레즈홀을 꾸려가기엔 몹시 힘겨워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헌드레즈홀에게 닥쳐오는 어려움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기만 한다. 집은 더이상 견고하지 못했다. 그것은 계속 부식되고 있었다.


 이러한 집의 변화는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그것은 물론 외부 상황이다. 둘 사이에 있었던 거대한 전쟁. 바로 세계 2차 대전이다. 본디 전쟁은 많은 것을 바꿔 놓는다. 영국에게도 변화가 찾아왔다. 그것도 엄청난 변화가. 정치적 환경이 급변한 것이다. 1881년에 창당한 노동당은 단 한 번도 보수당을 이겨본 적이 없다. 그들은 늘 2인자였다. 하지만 전쟁은 그들의 운명을 변화시켰다. 전쟁이 끝난 1945년. 전후에 처음으로 치른 총선거에서 노동당은 놀랍게도 보수당에게 압승했다. 과반이 넘는 의석을 차지한 것이다. 이제 노동당은 단독으로 내각을 수립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말은 보수당의 도움 없이 독자적으로 정책을 만들고 집행도 가능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바야흐로 흔한 말로 좌파 정권이 들어선 것이다. 지금의 내겐 얼마나 부러운 상황인지.


 이런 상황의 변화는 예전의 계급 질서를 크게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직격탄은 젠트리 계급에게 가장 많이 떨어졌다. '리틀 스트레인저'에서도 한 인물의 입을 빌려 공공연히 언급하지 않았던가. 젠트리 계급 중 열에 여덟은 하루가 멀다하고 사라져가고 있다고. 헌드레즈홀의 쇠락은 그런 현실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소문도 좀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헌드레즈홀의 외관 때문에 사람들이 흥미를 잃었을 것이다. 당연히 이제 정원은 도저히 손쓸 수 없을 만큼 수풀이 우거졌고, 테라스는 잡초에 가려 보이지도 않았다. 아이들이 벽에 낙서를 해대고 창문에 돌을 던지는 바람에 헌드레즈홀은 혼돈 한 가운데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상처입고 피폐한 짐승처럼 보였다.(p. 705)


이것은 어린 시절의 그를 매혹시켰던 저택의 모습과 얼마나 다른가? 하지만 그 때조차 저택은 그에게 감히 범접하지 못하는 곳이었다. 그는 내부조차 들어가지 못했다. 그런데 세라 워터스는 어린 그를 정말로 매혹시켰던 것이 무엇이었나를 아무렇지도 않게 슬쩍 드러낸다. 이렇게.


나는 대체로 어른 말을 잘 듣는 아이였다. 그러나 그날만큼은 아니었다. (...) 메이드가 살며시 복도 한쪽으로 사라지자 나는 대담하게 그 반대쪽으로 몇 걸음 내디뎠다. 엄청난 전율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단순히 몰래 침입했기 때문이 아니라 집 자체에 대한 전율이었다.(p. 13)


금기의 위반. 고착된 계급이 부여한 규율의 무시. 그것을 감행하게 했던 공간이기에 그는 헌드레즈홀에 매혹된 것이었다. 즉 그가 소설에서 그토록이나 저택을 선망하는 이유는 그곳이 자신을 뛰어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는 이보다 조금 전에 나타나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거꾸로 보강된다.


그때 훨씬 더 신나는 일이 벌어졌다. 아치형 통로 벽 높은 곳에 전선과 종들이 어지럽게 걸린 배선함에서 종이 하나 울렸다. 위층의 호출이었다. 호출받은 팔러메이드를 따라간 나는 저택 후미와 본관을 분리하는 성긴 초록색 모직 커튼 사이로 집안을 훔쳐볼 수 있었다.(p.12~13)


 이 장면은 뒤이어 나오는 페러데이의 금기 위반에 대한 선망을 더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나중에 페러데이의 어머니에 관한 사실이 하나 밝혀지는데 페러데이의 어머니도 바로 이 저택에서 유모로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호출 종이 울리면 무조건 거기로 가야했다. 따라서 호출하는 종은 엄마의 순종을 강요하는 고정된 계급의 상징이며 그 어머니는 그런 계급에 종속되어버린 존재라 할 수 있었다. 저택에서 어머니의 위치가 하필이면 유모가 된 것도 이런 계급 상황을 재생산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며 이것은 저택에서 나온 엄마가 계속 유산하는 바람에 더 이상 아이를 낳지 못했다는 것으로 더욱 부각된다. 호출 종에 대해서는 소설 중반에 유령이라 추정되는 것들이 호출 종에 혼선을 일으켜 그 종을 더이상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명확화 한다. 이런 면에서 넘어선 안 될 선 안쪽으로 들이민 페러데이의 한 발이 가지는 의미는 엄마의 처지와 대비되어 더욱 선명해지며 이렇게 하여 페러데이는 전후에 달라진 계급의 위치를 약호화하는 역할을 떠맡는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저택에서 도토리 조각 하나를 몰래 가지고 온다. 아마도 이 도토리는 캐롤라인에 대한 복선일 것이다. 끝내 이 도토리는 현 계급 관계에 포섭되어버린 엄마에게 빼앗겨 재가 되어버리는데 이 역시 캐롤라인과의 암울한 결말을 암시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소설에서 유령을 가리키고 있는 '리틀 스트레인저'의 존재는 다름아니라 막을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을 나타내는 게 아닌가 한다 즉 경계의 침범이요, 무시 혹은 와해시키는 모든 것들이다. 제목이 그런 존재를 뜻하는 '폴터가이스트'가 아니라 굳이 '리틀 스트레인저'가 된 것은 세라 워터스가 여기에 페러데이도 포함시키고 싶었기 때문인 것 같다. 헌드레즈홀의 벽에서 도토리를 훔친 어린 시절의 페러데이 역시도 '리틀 스트레인저'이기 때문이다. 그가 냈던 집의 균열을 현재의 유령들이 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령들은 페러데이의 분신 혹은 계승자라고 할 수 있다. 즉 유령은 페러데이 욕망이자 더  나아가선 젠트리 계급을 굴복시켰던 계급 평등 욕망의 대변자들인 것이다. 이들은 헌드레즈홀에서 오랜만에 열린 무도회처럼 저택이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려 할 때마다 나타나서는 훼방을 놓고, 존재를 지속시키려 애쓰는 로더릭을 정신적 공황 상태로 몰고간다. 그 유령들은 현실에 있는 카운티 의회와 조응한다. 물질적으로는 카운티 의회가 그들을 압박하고 정신적으로는 유령들이 그들을 두려움과 신경쇠약으로 몰아간다. 이제 더 이상 혈통이나 가문이 아무 것도 보장해 주지 못하는 시간이 점점 임박해 온 것이다.


 이런 식으로 세라 워터스의 다섯 번째 소설 '리틀 스트레인저'는 2차 대전 후에 급격하게 일어난 계급 변화를 고딕 스타일로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페러데이와 캐럴라인의 로맨스는 그런 면에서 계급 사이에 작용하는 역학 관계의 변화로 읽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랬기에 이 소설은 참 흥미로웠다. 뭔가 세라 워터스가 담고자 하는 지평이 보다 확대되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빅토리아 시대 3부작은 어디까지나 고립된 여성의 은밀한 욕망이라는 개인적 지평 위에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것을 넘어 사회적 변화를 세심하게 포착하려 하는 것이다. '리틀 스트레인저'와 비슷하게 고딕 스타일로 된 '끌림'에 견주어 본다면 변화는 더욱 뚜렷해지는 것 같다. 이 같은 변화, 왜 이렇게 하는 것인지 그 동기가 내겐 참 흥미롭고 궁금한데 그래서 '핑거스미스'와 '리틀 스트레인저' 사이에 존재하는 '나이트 워치'가 정말 읽고 싶다. 본격적인 변화는 '나이트 워치'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 작품 역시 '리틀 스트레인저'처럼 전후의 40년대 시간을 다룬다. 그녀가 왜 이 시대에 천착하는지 그 진짜 이유는 바로 거기서 알 수 있을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순서대로 읽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랬다면 '리틀 스트레인저'를 더욱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결국 세라 워터스의 이야기는 타자를 중심으로 주체가 새로이 형성되는 것임을 '리틀 스트레인저'로 깨닫게 되었다. 얼른, 2014년의 '페잉 게스트'까지 나와서 타자의 현대적 연대기를 보다 완전체로 경험하고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드 라이징 레드 라이징
피어스 브라운 지음, 이원열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피어스 브라운의 2014년작 , '레드 라이징'은 레드 라이징 삼부작의 첫 권이다. 인류가 태양계의 다른 혹성들을 식민지로 만든 지 700년 정도 지난 시점의 이야기로 SF다. 공간적 배경은 화성. 하지만 '마션' 보다는 화성의 광산을 다루고 있는 영화  '아웃랜드'에 더 가깝다.



 '레드 라이징'이란 제목을 서투르게 번역하자면 '봉기하는 레드'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한다. 제목에 왜 '레드'가 들어가냐면 이 시기 지구는 계급에 따라 색깔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신라에서는 관리들이 성골이냐 진골이냐 혹은 6두품이냐에 따라 서로 다른 색깔의 옷을 입었다고 한다. 그것을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다스리는 지배 계급은 '골드'라 불리고, 골드의 곁에서 치안을 책임지는 이들은 '그레이'라 불리며 골드에게 신체적 혹은 정신적으로 위안을 주는 이들은 '핑크'라 불린다. 그리고 그들의 가장 밑바닥, 그들이 호위호식 할 수 있도록 죽을 때까지 저임금으로 노동력을 제공해야 하는 이들을 '레드'라 칭한다. 레드는 말 그대로 노예다. 가장 힘들고 가장 위험한 작업은 모조리 레드 차지이다. 소설은 그런 세상이다.


 이런 세계가 읽는 동안 내게는 꽤나 피부에 와 닿았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도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 우스개 소리로 말한 '수저계급론'. 태어날 때 부터 누구는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고 또 누구는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며 또 누구는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다. 이젠 이 말을 들으면서 웃을 수 없을 것 같다. 그야말로 우리의 적나라한 현실이 되고 있으니 말이다. '레드 라이징'의 세계는 이걸 좀 극단화시켰다 뿐이지 우리의 세계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이대로 가다간 조만간 진짜 그렇게 될 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쩌면 만사를 제쳐두고 읽어햐 하는 책이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흙수저인 대다수의 우리들은...


 주인공은 대로우. 나이는 십대. 그는 '레드'다. 화성의 지하 광산에서 골드에게 필요한 자원을 캐는 일을 한다. 아주 고되고 위험한 노동이다. 주어지는 임금은 쥐꼬리 십 분의 일 정도. 매일 먹을 빵조차 가지고 있기 곤란하고 설탕은 어마어마한 사치품이다. 과일? 그건 전설에나 존재한다. 아버지는 레드의 처지에 반발해 저항했다. 그러다 체포되었고 교수형을 당했다. '레드'에게 교수형은 방식이 좀 다르다. 집행관이 하지 않고 가족들이 한다. 자녀나 부모 그리고 형제 혹은 자매가 스스로 교수형 당하는 이의 발을 끌어내리는 것이다. 대로우도 그 일을 했다. 그 때 잡았던 아버지 발의 감촉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저항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에겐 '이오'란 아내가 있기 때문이다. 그녀도 레드다, 이오는 노래를 부른다. 레드에겐 금지된 노래를. 그 노래엔 이오의 꿈이 담겨 있다.


 "그냥  '어떤 꿈'이 아니야, 대로우. 나는 내 아이들이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날 거라는 꿈을 위해 살아. 내 아이들이 자기가 원하는 존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꿈. 아이들이 자기 아버지가 준 땅을 가지게 될 거라는 꿈."(p. 69)


 그 꿈을 보여주기 위해 이오는 대로우에게 밤하늘의 별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별을 보고 노래를 불렀다는 이유로 이오는 교수형을 당한다. 그녀는 죽기 직전 이 한 마디를 했다.


 "사슬을 끊어요."(p. 90)


 대로우는 끊었다. 작은 것에 만족하고 안정만 추구하는 삶을, 이전에는 사슬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레드'의 삶을 끊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 결심을 이오의 시체를 묶고 있던 사슬을 끊어 끌어내리는 것으로 행동에 옮겼다. 교수형 당한 자의 시체를 멋대로 끌어내리는 자도 교수형이다. 대로우는 죽는다. 그리고 다시 태어난다. 이전부터 이 체제에 저항하고 있던 '아르고스의 아들들'에 의해.


 그들은 대로우를 골드로 만들 것이라 한다. 골드가 되어 힘을 가진 다음 그들의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도록. 이오의 복수를 원하는 대로우는 쾌히 응한다. 그렇게 '레드 라이징'으로 가는 발걸음이 떼어졌다.


 하지만 골드가 된다고 해서 힘이 그저 주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커다란 힘을 가지기 위해선 그것을 받을 자격이 된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해 보여야 했다.


 "세 종류의 사람이 졸업해. 흉터를 입은 비할 데 없는 자, 졸업생, 치욕을 당한 자. 비할 데 없는 자들은 사회에서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어. 졸업생도 올라갈 수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비교적 제한되어 있고, 졸업생은 반드시 흉터를 얻어야 해. 치욕을 당한 자는 명왕성 같은 멀고 힘든 식민지로 가서 지구화의 첫 몇 년을 감독해야 해."

 "어떻게 하면 비할 데 없는 자가 되죠?"

 "랭킹 시스템이 있는 것 같아. 아마 경쟁을 하겠지. 나도 몰라. 하지만 골드는 정복을 기반으로 하는 종족들이야. 경쟁에 정복이 포함될 법 하지."(p. 199)


 어디든 경쟁이다. 골드도 예외는 아니다. 정복이 골드의 속성인 것을 보니 작가는 아마도 '로마'를 모델로 레드 라이징의 세계를 설계한 것 같다. 그렇지만 랭킹 시스템은 스파르타의 것을 가져왔다. 스파르타도 아이들은 맹수가 드글거리는 계곡에 보내어져 거기서 생존하는 것으로 일원의 자격이 있음을 인정받았다. 골드들도 그렇다. 졸업을 앞둔 이들은 화성의 매러디스 계곡으로 가서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상대 골드들을 정복하여 승자가 되어야 한다. 이 승자가 바로 '비할 데 없는 자'이다. 이제 대로우는 마르스 하우스에 소속되어 아폴로, 미네르바, 플푸토, 머큐리, 다이아나, 세레스, 바커스, 주노 하우스들과 싸워야 한다. 이야기의 중후반은 모두 여기에 할애되어 있다.


 '레드 라이징'을 읽다보면 이거 어디서 봤는데 하는 설정이 많다. 일단 대로우가 자신의 육체를 완전히 바꿔 골드가 되는 과정은 에단 호크 주연의 영화 '가타카'가 떠오르고 단 하나의 승자가 되기 위해 겨루는 장면은 이게 집단 간의 전투이고 전략을 쓰면서 이뤄지기 때문에 오슨 스콧 가드의 '엔더의 게임'이 연상된다. 거기다 각 하우스마다 감독관이 프록터가 있어 일종의 하우스 스폰서가 되는데 그것은 또 '헝거게임'과 비슷하다. 이런 식으로 소설은 우리들에게 익숙한 설정을 여기저기 따오고 있는데 그렇다고 식상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것이 바로 작가 피어스 브라운의 역량이 아닌가 한다. 익숙한 재료도 조리법에 따라서 처음 맛보는 맛을 낼 때가 있는데 바로 그런 것을 작가가 여기서 하고 있는 것 같다. 서스펜스를 바탕으로 배치의 묘미를 살리고 캐릭터들간의 갈등과 대결 구도를 적절하게 가미하는 등 자기 것으로 만드는 재주가 능수능란하다. 분위기도 진행에 따라 일변한다. 이오의 죽음과 더불어 대로우가 혁명을 각성하게 되는 초반은 절절하고 본격적으로 하우스에 소속되어 최고의 골드가 되기 위해 싸우는 부분은 긴장이 넘친다. 거기다 프록터마저 가담한 음모까지 펼쳐져 더욱 페이지를 빨리 넘기게 된다.


 분명 '레드 라이징'은 엔터테인먼트 적으로 좋은 작품이다. 하지만 주는 것은 결코 재미만이 아니다. 이 작품은 점점 수저계급화 되어가는 현세계의 단면을 극명하게 재현하고 있으며 거기서 인간답게 사는 것은 어떤 것인가를 질기게 쫓고 있다. 사실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을 때는 인간답게 사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포기해야 할 것이 적기에 순수하게 옳은 것만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가진 권력이 커지고 보다 많은 이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휘두를 수 있게 되면 배덕의 유혹도 그만큼 커지게 마련이다. 룰은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만 존재하고 타인은 그저 자신을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게 보는 때가 오는 것이다. 무엇보다 최고의 권력자 중의 하나인 총독 네로가 그것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그래도 대로우는 그 유혹을 뿌리치려 한다. 이오의 꿈을 기억하려 한다. 그 유혹은 이오의 꿈을 부수는 것이므로. 그래서 머스탱이 전쟁에 진 아이들을 노예로 만들자고 했을 때 이렇게 말하면서 거부한다.


 "우리는 이보다는 나은 사람이어야 하잖아. 비할 데 없는 자들이라면 그래야 하는 것 아니야. 더 약한 컬러들을 노예로 만들려는 충동은 초월해야지."(p. 520)


 그러나 유혹도 그리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 대로우가 더 큰 자리에 오르자마자 더욱 더 커다란 유혹을 해 오는 것이다. 그것은 끊임없이 속삭인다. 너만 생각하라고, 괴물이 되라고.


 과연 점점 커져만 가는 유혹 안에서 대로우는 이오의 꿈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앞으로 이어질 레드 라이징 속편을 바라보는 내 관점이 될 것 같다. 자신의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한 분투. '레드 라이징'에서 '레드'가 진정 가리키는 것은 바로 '인간'이 아닐 지. 왜냐하면 대로우 앞에 서 있는 세계란 골드부터 레드까지 모든 것을 오로지 경쟁으로만 관철하는, 그리하여 사람들을 이기적 탐욕 밖에 없는 괴물이 되거나 자아 없이 상위 권력에 굴복하는 기계로 만드는 곳이기 때문이다. 모든 이들을 비인간화 시키는 세계. 그러니 그것의 전복은 동시에 인간다움의 회복이 될 수밖에 없을 터. 그런데 그러한 대로우의 세계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기도 하다. 여기저기에서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파렴치한 짓도 서슴지 않는 괴물들이 하루가 멀다 않고 마구 나타나고 생각하는 것을 관두고 그저 거수기가 되어버린 자들조차 심심치 않게 보이는 요즘이 아니던가. 괴물과 사람을 놓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만 간다. 사정이 이러하니 2권인 'GOLDEN SON'이 이미 2015년 1월에 발간되었다고 하는데 어서 번역되어 나와주었으면 좋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5-12-13 0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15 0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9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홉수라는 말도 있다지만 나쓰메 소세키의 아홉번째 소설 '문'은 그의 소설 중 가장 어두운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갱도라는 더 극한의 암울한 공간을 배경으로 한 '갱부'도 있고 '문'에 나오는 부부의 후일담이라고도 볼 수 있는 '마음'도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역시 가장 어두운 이야기는 '문'인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엔 미래가 없다. 그저 낮고 조용하고 암울하면서 추운 현재만이 내내 고인 물처럼 웅크리고 있을 뿐이다.


 소스케와 오요네 부부에게 바깥으로 나가는 문은 결코 열리지 않는다. 열리지 않고, 열 수도 없는 문 앞에서의 조용한 체념과 절망. 이것이 소설 '문'이 가진 세계다.




 나쓰메 소세키는 왜 이런 소설을 썼던 것일까? 읽다보면 들지 않을 수 없는 의문이다. '문'이 신문에 연재되었던 것은 1910년. 우리는 이 해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잘 알고 있다. 바로 조선이 일본에게 강제 병합 되었던 것이다. 일본의 제국주의 야욕이 그야말로 만천하에 본격적으로 드러났던 시기. 나쓰메 소세키는 한 때의 정욕에 눈이 멀어 친한 친구를 배신한 까닭에 내내 한 겨울 연못 속의 잉어들만큼이나 낮고 조용하며 고립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부부의 이야기를 썼다. 일본이 자꾸만 밖으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할 때, 거꾸로 안으로, 내부로 계속해서 침잠해 가는 삶을 말이다.


 그들이 처음부터 일반 사회에 흥미를 잃어서가 아니었다. 사회가 그들 둘 만을 떼어내고 차갑게 등을 돌린 결과일 뿐이었다. 외부를 향해 성장할 여지를 발견할 수 없었던 두 사람은 내부를 향해 깊이 뻗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의 생활은 넓이를 잃음과 동시에 깊이를 얻었다. 그들은 6년간 세상과 산만한 교섭을 찾지 않은 대신 그 6년의 세월에 걸쳐 서로의 가슴에 파고들었다.(p. 169)


 왜 이런 삶일까? 그들의 성향이 원래 그랬던 것은 아니다. 적어도 소스케만은 지금과 아주 달랐다. 6년 전의 소스케는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자신의 앞길을 착실히 개척해 나가는 존재였다. 그를 아는 이마다 과거의 그는 더없이 자기 주장이 강하고 활달했다고 입을 모은다. 소스케에겐 고로쿠란 동생이 있는데 그는 자기가 원하는 바를 솔직히 말하는 성격이다. 소스케는 그런 고로쿠를 보며 옛날에 내가 저랬었지 생각한다. 그런 그였다. 그런데 지금은 해야 할 일을 미루고, 하고 싶은 말도 우물쭈물 삼키며 한없이 수동적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 급변이 아닐 수 없다.


 왜 이렇게 변했을까? 물론 이유가 있다.

 지금의 아내 오요네는 원래 야스이란 친구의 여자였다. 야스이를 만나러 갔던 소스케가 그만 오요네에게 반해 야스이를 배신하고 빼앗았던 것이다. 야스이는 그로 인해 커다란 상처를 입고 그 때까지의 삶에서 완전히 일탈에 이제는 일본을 떠나 먼 이국의 땅을 방황하고 있다.


 그 이후로 두 사람은 야스이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걸 피했다. 굳이 떠올리려고도 하지 않았다. 야스이가 중도에 학교를 그만두게 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고 병에 걸리게 하고 어쩌면 만주로 내몬 죄에 대해 아무런 회한의 고통을 거듭한다고 해도 그들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처지에 있었기 때문이다. (p. 210)


 당시만 해도 그런 배신은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모든 것을 잃었다. 친구도 가족도. 숙부는 패륜을 저질렀다고 말하고 하나 뿐인 동생과는 소원해졌다. 고향인 도쿄로 올라올 수 없었기에 아버지가 남긴 유산도 허망하게 잃어버렸다. 욕망에 충실한 것에 대해 그가 지불해야 할 대가는 아주 컸던 것이다. 사회와 미래 모두를 상실하고 말았다. 왜 미래마저 상실한 것이냐고? 아이가 없기 때문이다. 임신이 불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벌써 세 번이나 자식을 가졌었다. 결혼한 지 6년 동안 그들은 히로시마, 후쿠오카 그리고 도쿄 그렇게 세 번이나 거처를 옮겼다.(나중에 따로 말하겠지만 이 지명들은 이 소설을 이해하는데 정말 중요하다.) 그 때마다 그들은 자식을 가졌다. 하지만 히로시마에선 임신 다섯 달만에 유산되었고 후쿠오카에서는 미숙아로 태어나 오래 살지 못했다. 그리고 도쿄에서는 임신 중에 오요네가 그만 이끼에 미끄러져 넘어지는 바람에 태아의 목에 탯줄이 감겨 죽은 채로 태어나고 말았다. 그들이 거하는 곳 어디서도 그들은 미래를 낳을 수 없었다. 그러니 미래도 잃어버렸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내일은 없다. 봄도 오지 않는다.


 가혹하다. 소세키는 왜 이들을 이토록 혹독하게 대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아무래도 1910년에 일어난 조선의 강제 병합 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소설 초반에 이토 히로부미의 암살이 나오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그 소식을 가져오는 것은 고로쿠다. 동생 고로쿠의 첫 등장과 동시에 그 이야기도 나오는 것이다. 고로쿠는 한 겨울의 동굴 속 너구리처럼 사는 소스케에게 일종의 곤경을 가져오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이대로 영영 자신의 영역에만 머물며 살아가려는 소스케를 자꾸만 바깥으로 내모는 매운 연기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소설 초반, 그는 동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속 스스로 원하지 않는 관계를 맺고 움직여야 한다. 고로케는 소스케와 오요네만이 거하는 조용한 조각배를 뒤흔드는 파도다. 그런 고로쿠가 이토 히로부미의 암살을 들고 소스케의 집으로 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한다. 재정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자신은 조선과 만주로 갈 것이라고. 그러다 후반에 가서 소스케는 야스이가 자기 앞에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기가 세들어 살고 있는 집 주인이 알고 보니 야스이의 친구와 아는 사이였던 것이다. 그 친구가 야스이와 함께 만주에서 여기로 온다는 말을 들은 것이다. 소스케는 행여나 야스이와 만나게 될까봐 엄청 두려워한다. 병까지 얻게 될 정도로 심하게. 바로 그 야스이가 만주에 있는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가 암살된 곳. 그를 암살한 안중근이 있던 그 곳에.


 이런 접점으로 소스케와 오요네를 이런 식으로 생각하게 된다.

 사실 소스케와 오요네는 일본과 식민지가 된 조선을 뜻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것을 뒷받침 하는 근거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소스케가 오요네와 맺어지는 과정을 야스이에게서 빼앗은 것으로 그렸다는 것. 이것은 그대로 일본이 조선을 강제로 식민지로 만든 것과 닮아있다. 이렇게 보자면 오요네는 조선의 독립 주권의 상징이며 야스이는 그 주권을 상실한 조선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소스케는? 두 말할 것도 없이 일본 제국주의를 나타낸다.


 소세키가 이것을 염두에 두었음은 바로 두 번째의 근거에서 밝혀진다.

 바로 야스이를 파멸로 내몰고 난 뒤, 소스케와 오요네가 같이 살았던 곳이다. 앞에서 말했듯, 거기는 히로시마, 후쿠오카 그리고 도쿄다. 이 지명과 순서가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다. 이 세 지명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일본 제국주의가 비롯되고 정착되며 완성된 곳으로 그러니까 일본 제국주의의 궤적을 그린다는 사실이다.


 일본이 제국주의가 되기까지 두 가지가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 하나는 청일전쟁이고 다른 하나는 러일전쟁이다. 일본은 두 전쟁에서 승리했기에 제국주의를 완성할 수 있었다. 히로시마와 후쿠오카가 바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나타낸다. 히로시마는 청일전쟁 당시 전쟁을 진두지휘하는 대본영이 있었던 곳이고 후쿠오카는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인 쓰시마 해전과 가까운 도시다. 이렇게 히로시마와 후쿠오카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상징하는 도시인 것이다. 소스케는 바로 그 곳들을 거쳐 현재 제국주의의 수도인 도쿄에 이르렀다. 일본 제국주의가 걸어온 경로 그대로.


 그러므로 소스케 부부는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모든 도시에서 그들은 아이를 잉태하나 하나는 유산되고 다른 하나는 미숙아로 태어나 오래 살지 못했으며 마지막엔 사산했다. 아마도 이 아이들은 일본의 근대화를 열어젖혔던 메이지 유신에서 천명했던 메이지 정신을 의미하리라 본다. 편협한 제국이 아닌 공존과 조화의 세계를 꿈꾸었던 정신말이다. 이런 식으로 소세키는 지금의 일본은 원래의 정신을 배반했으며 결국 지금 일본 제국주의가 부르짓는 밝은 미래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며 오직 폭력과 고통으로 가득한 현재만이 영원히 되풀이 될 것이라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즉 지금 소스케 부부의 현재는 장차 다가올 일본 제국주의의 미래이며 소세키의 예언인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작품 중, 가장 어두운 이야기가 되고 말았으리라. 소세키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어두운 미래였기에.

 여기에 대해선 소설의 여러 군데서 발견된다. 도쿄에서 소세키 부부가 머무는 곳은 골목의 가장 후미진 곳으로 햇볕이 잘 들지 않는 곳이며 게다가 집 바로 앞에는 위태롭게 보이는 절벽마저 있다. 오래도록 그 지역에 살았다는 노인은 예전엔 거기가 대나무 밭이었으나 이제는 하나도 자라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부부, 소생이 불허된 공간. 더하여 거기는 온기가 거의 없다. 유일하게 따스했던 방은 같이 살게 된 동생 고로쿠가 차지한다. 사회에서도, 자연에서도 버림받은 그들. 그들에겐 오로지 상대방 밖에는 없었다.

  

 소스케 부부는 세상의 햇빛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견딜 수 없는 추위에 서로 껴안아 몸을 녹이는 식으로 서로를 의지하며 살았다. 어려울 때에는 언제든지 요오네가 소스케에게,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하고 말했다. 소스케는 오요네에게,

 "참아야지 뭐." 하고 말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체념이나 인내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으나 미래나 희망의 그림자는 거의 비치지 않는 듯이 보였다. 그들은 과거의 일을 그리 자주 말하지는 않았다. 때로는 약속이나 한 듯이 피하는 분위기조차 있었다. 오요네가 때로,

 "머지않아 또 좋은 일이 있을 거예요. 그렇게 나쁜 일만 계속되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하고 남편을 위로하듯이 말하는 일이 있었다. 그러면 그것이 소스케에게는 진심 어린 아내의 입을 빌려 자신을 농락하는 운명의 독설처럼 느껴졌다. 소스케는 그런 경우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씁쓸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래도 눈치를 채지 못한 오요네가 뭔가 말을 계속하면,

 "우리는 그런 좋은 일을 기대할 권리가 없는 사람들 아닐까?" 하는 말을 과감히 내뱉는다. (...) 그들은 자업자득으로 자신들의 미래를 덧칠해버렸다. 그러므로 자신들이 걷고 있는 앞길에서는 화려한 색채를 볼 일이 없을 거라며 체념하고 오직 둘이서 손을 잡고 나아갈 생각이었다.(p. 51)


 하지만 상황은 점점 그것만으로는 견디기 힘들게 되어간다. 고로쿠 문제가 일어나고 요오네는 갑자기 앓게 되며 그리고 드디어 소스케 부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야스이가 찾아오는 것이다. 만주에서. 이것은 앞으로의 일본이 결코 순탄하지 않을 것이라는 소세키의 경고다.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힘들게 될 것이라는 저주다. 아니나 다를까 요오네만으로 견디기 힘들어진 소스케는 결국 신앙에 기댈 생각을 한다. 실제 소세키의 슈젠사 요양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절에서의 이야기는 천황에 대한 신앙으로 일본 국민의 파시즘 무장을 획책하던 일본 제국주의의 모습을 암시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곳에서조차 구원의 문은 열리지 않는다.


 "두드려도 소용없다. 혼자 열고 들어오너라." 하는 목소리가 들렸을 뿐이다. 그(소스케)는 어떻게 해야 이 문의 빗장을 열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수단과 방법을 머릿속에서 분명히 마련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열 힘은 조금도 키울 수 없었다. 따라서 자신이 서 있는 장소는 이 문제를 생각하기 이전과 손톱만큼도 달라지지 않았다. (p. 252)


 마침내 소스케는 아무 결실도 없이 절을 나서게 된다. 그를 배웅하는 큰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도쿄는 아직도 춥겠지요?"하고 큰스님이 말했다. "조금이라도 실마리를 찾았다면 돌아가고 나서도 좀 편할 텐데, 애석한 일이군요." (p. 253)


 제국주의의 중심 도쿄는 여전히 춥다. 구원의 온기는 어디서도 소스케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다. 온기는 자신의 변화에서 발화되는 것인데 소스케는 스스로 변하려는 노력은 없이 자꾸만 외부에서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 완고함, 타자를 인정하지 않는 제국주의의 편협함을 닮은 그 모습이 정말은 자신의 삶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는 지도 모른다.


 '문'은 이런 이야기였다. 조선 강제 병합에서 한껏 드러나버린 일본의 민낯. 그것을 낱낱이 봐버린 소세키의 우려와 경고가 짙게 투영된 소설이었다. 물론 지금의 우리는 너무나 잘 알듯이 소세키의 우려와 경고는 그대로 일본의 현실이 되어버렸다. 소스케도, 일본도 자신이 나오는 문만 있었을뿐, 타인을 맞이하는 문은 없었다. 공존을 위해 자신을 먼저 바꾸려는 태도는 없었다. 그런 소스케, 일본이 걷는 길은 불안과 고독의 연속이었지만, 내내 추위에 떠는 삶이었지만 바꾸려 하지 않았다. 그저 그런 불안과 외로움 그리고 추위를 피하기에 급급했을 뿐.


 그의 머리를 스쳐 가려던 비구름은 간신히 머리에 닿지 않고 지나간 듯했다. 하지만 이와 유사한 불안이 앞으로도 몇 번이고 여러 가지 수준으로 되풀이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어딘가에 있었다. 그것을 되풀이하게 하는 것은 하늘의 일이다. 그것을 피해다니느 것은 소스케의 일이다.(p. 260 ~ 261)


 하지만 피하는 것에도 한계는 있다. 천라지망이라는 말도 있듯이 결국은 하늘의 벌을 받게 되었다. 꼭꼭 닫혀있었던 일본의 문은 그 문을 아예 날려버리는 거대한 화염을 맞게 되었다. 제국주의를 향한 침략의 발톱이 처음으로 드러났던 히로시마가 일본 패망의 직접적 계기가 되었던 원폭을 맞게 되었던 것은 어쩌면 운명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만한 경험을 했으면서도 현재의 일본은 여전히 그 때의 잘못을 반복하고 있다. '문'의 마지막 장면에서 소스케는 봄이 왔다는 오요네의 말에 이렇게 대꾸한다.


 "하지만 또 금방 겨울이 오겠지."(p. 264)


 이것이 우리가 오늘도 소세키의 '문'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소설에서 소스케 부부가 어떤 삶을 보냈는 지를 뇌리에 단단히 새겨두어야 하는 것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5-12-10 0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어느새 12월. 정신없이 바쁘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가는 지도 모르겠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오늘이 신간 추천 마지막 날이었다.

 부랴부랴 읽고 싶은 책들을 골라본다.



 반가웠다. 오래도록 한 번 읽고 싶었던 작품이었다.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 중에 '킬프 군단'이라는 게 있다.

 그 소설의 주인공이 읽고 있던 책이 바로 이 '오래된 골동품 상점'이었다. 오에의 그 소설은 '악'이라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바로 이 '오래된 골동품 상점'을 텍스트로 해서 말이다. 그래서 제목도 킬프가 된 것이다. 킬프는 원래 다니엘 퀼프로 소설에서 주인공 넬을 처절한 비극으로 내모는 장본인 격이 되는 악인 중의 악인이다. 디킨스는 그렇지 않아도 어둠과 악을 그리는 데 능한데 그 중에서도 퀼프는 악인의 가장 선명한 모습을 보여준다. 어쩌면 그래서 오에는 이 소설을 가지고 악에 대해 사유하는 '킬프 군단'을 쓰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읽고 싶은 이유도 오에와 크게 다르지 않다. 넬의 비극 보다는 악에 대한 관심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어딘가에 정말로 킬프 군단 같은 것이라도 있는지 요즘 우리 주위에서 날로 증가하고 있는 퀼프의 분신들을 보노라면 말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이승우의 초기작 '독'도 읽어보고 싶다.

 디킨스와 이승우의 악에 대한 생각을 비교해 읽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다.













 크리스토퍼 이셔우드는 영화 '싱글맨' 때문에 관심을 갖게 된 작가였다. 

 영화가 마음에 들어 원작까지 읽어보았는데 원작 역시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그랬기에 이렇게 그의 대표작이라고 평가받는 베를린 이야기 2부작이 나오게 된 것이 반갑지 않을 수 없다.

 특별히 '노리스 씨 기차를 갈아타다'를 선택한 것은 이번 12월달에 내가 속한 독서모임에서 '베를린이여 안녕'을 읽기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책이 중복되면 곤란하므로 여기서는 '노리스 씨 기차를 갈아타다'를 선택한다.

 어쨌든 크리스토퍼 이셔우드는 정말 매력적인 작가다.

 부재에 관한 것을 이만큼 더 잘 그릴 수 있는 작가가 있을까 싶다. 앞으로 더 많은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모스 오즈의 개인사를 토대로 한 작품이라 궁금하다.

 1권이 500페이지가 넘고 2권도 그만큼 된다. 오즈의 작품으로서는 상당한 분량이다. 이만한 장편에서도 오즈가 자신의 장점을 그대로 고수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그래서 읽어보고 싶은 작품이다.











 만켈은 왜 여생을 아프리카에서 보냈던 것일까? 그의 작품을 읽으며 늘 궁금했었던 사항이다.

 어쩌면 그 궁금증을 이 소설에서 풀 수 있지 않을까 싶어진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스웨덴 여성은 만켈의 분신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기에 더욱 그렇다.












 세이초의 시대소설이라니, 그것만으로도 읽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든다.

 에도 시대의 호모 사케르들을 그리는 이 소설은

 우리의 오늘과도 그리 다르지 않아 보이기에 더욱 벗해보고 싶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녀고양이 2015-12-11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된 골동품 상점의 표지를 보면서 저는 새만 보였답니다.
그 안의 소녀 얼굴은 보이지 않았던 거죠. 왜 그랬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마도 처연해 보이는 저 얼굴이 그다지 끌리지 않았나 봐요, 그저 자유로운 날개짓의 새만 보려고 해여, 제가. ^^
헤르메스님 글로 인해 저 책을 접하네요, 장바구니에 넣었답니다.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상실의 시대다. 작년엔 세월호, 올해는 메르스. 반복된 상실. 늘어나는 상처. 도래하지 않는 치유. 웃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애도와 우울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떠나간 자들을 애도하면 할수록 그들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나는 우울하기만 하다. 희망은 누구의 주머니에 들어있기에 이리도 보이지 않는 걸까? 모든 것이 겨울의 해변처럼 공허하다. TV를 보고 싶지도 않고 음악을 듣고 싶지도 않다. 한겨울의 숲처럼 침묵만 쌓여가는 시간 속에서 난 책만 벗하였다. 그리고 하루키.

 그의 '여자 없는 남자들'을 읽었다. 단편집이다. 비틀즈의 노래 제목에서 따온 '드라이브 마이카'와 '예스터데이'를 비롯하여 표제작인 '여자 없는 남자들'까지, 무지개도 아닌 것이 7개의 단편을 한 곳에 모아두고 있었다. 제목 그대로 이 모든 단편 속의 남자들에겐 여자가 없다. 과거에 없었거나 현재에 없는 자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한 마디로 상실의 거주자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자'라는 대상이 아니다. '없다'는 상황이다. 수면 위로 던져진 돌처럼 문득 도래한 상실. 그것이 그리는 내면의 파문. '불모의 행성'과도 같은 상실한 자들의 그 모든 '황폐한 광경'을 궤도 위성이 사진을 찍듯 멀리서 조용히 담아내는 것. 그것이 바로 여기 집합한 단편들에게 주어진 임무다. 

 그러니 이렇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상실로 가득한 거대한 수영장 밑바닥에서 그 무게에 짓눌려 있는 나와 같은 자들을 위한 이야기라고.

 그러자 갑자기 소설은 눈감고 귀막고 그저 내부의 호흡만 느끼고 있을뿐인 내게로 하루키가 내려와 대화나 하자면서 어깨를 툭치는 것으로 변했고 그가 가후쿠와 기타루, 도카이와 하바라, 기노와 잠자 그리고 엠에 대해 마치 능숙한 바텐더가 컵을 닦듯이 조금은 무심한 어조로 들려주었을 때 나는 깨달았다. 내가 그들의 동료라는 것을. 나 역시 그들과 똑같은 거주지에 세들어 살고 있다는 것을. 상실로 인한 무력감과 죄책감을 임대료로 치뤄 가면서.

 그들의 실수는 나의 실수였다. 그들의 오해는 나의 오해였다. 그들의 잘못은 나의 잘못이었다. 가후쿠와 기타루처럼 나는 나를 너무 특별하다 생각했다. 그들이 정말 잃었던 것은 아내와 아키라는 대상이 아니었다. 실은 아내와 아키의 배신으로 이제 더 이상 특별하게 존재할 수 없게 된 자기 자신이었다. 더 이상 그런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그들을 정말 아프게 했던 것이다.

 그렇다. 나는 이제 조금 깨닫는다. 왜 하루키가 이런 언질을 하필이면 연애를 통해 보여주는 지를 말이다. 사랑이야말로 자신을 특별하게 여기도록 만드는 가장 대표적인 감정이 아니던가. 사랑으로 우리는 그렇고 그런 사람들 중 하나라는 '보편'에서 유일한 나라는 '특수'로 전이한다. 나는 태양과 같은 항성이 된다. 어제까지는 세상에 끌려다니기만 했던 나였다. 하지만 오늘부터는 사랑으로 인해 세계가 나를 중심으로 돌게 된다. 누구나 빛이 되려하지 그늘이 되려 하지는 않는 법. 언제까지나 중심에 있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지속의 열망은 중독을 낳는다. 그것을 우리는 집착이라 부른다. 도카이와 하바라가 그랬듯이. 그러므로 상실의 고통은 상대가 아니라 실은 나와의 결별에서 온다. 더이상 그런 나가 될 수 없기에 나를 사랑한만큼 고통받는 것이다. 결별의 아픔이란 갑작스런 금단에 따르는 후유증에 다를 바 없다. 하바라는 고백한다.

 "그건 병 비슷한 게 아니라 분명 진짜 병이었어. 병 때문에 한참동안 열에 들떠 착란상태였던 거지."(p. 211)

 그러니 이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 지가 분명해진다. 기노처럼 나를 떠나는 것이다. 더이상 웅크리지 말고 일어나 나를 내던지듯 위로 활짝 팔을 펴 드는 것이다. 그가 이불 속에서 벌레처럼 몸을 웅크리고 가장 공포에 떨고 있을 때, 정작 그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장본인은 바로 자신이었다. 그 웅크림은 나의 집착이 구현된 체위였다. 하지만 집착이 가져온 것은 더 큰 공포 뿐이었다. 그 때서야 기노는 비로소 타자를 생각했다. 나 아닌 다른 것들을. 나를 내어주고 세상의 새를, 회색 암고양이를, 가게 앞에서 조용히 흔들리던 늙은 버드나무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고 깨달았다.

 진짜 사랑이란 내가 아니라 타인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려는 마음인 것을. 더불어 나도 각성한다. 내가 가진 상실의 아픔은 떠나버린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연민에 불과하다는 것과 정말 그들의 상실을 아파한다면 나를 내려놓고서 이전보다 더 강하게 세상을 껴안아야 한다는 것을.

 더이상의 말이 필요할까? 
 하루키는 말한다. 이제 네 안의 무게를 비워봐. 잠자와 엠이 그랬듯이. 너를 비우면 비울수록 상실은 또 하나의 문이 되어줄 거야. 그리고 넌 더 넓은 곳으로 갈 수 있겠지. 이제 곧 저 높은 수면 위로 부상하게 될 너처럼. 그런걸까? 그럴 지도 모른다. 엠이 말한 스페이스가 기억난다. 그녀는 음악의 취향은 스페이스의 문제라고 했다.

 "이런 음악을 듣고 있으면 내가 아무것도 없는 드넓은 공간에 있는 기분이 들거든. 그곳은 정말로 넓고, 칸막이 같은 것도 없어. 벽도 없고 천장도 없어. (...) 단지 그 곳에 있기만 하면 돼. 그냥 눈을 감고 스트링스의 아름다운 음악 소리에 몸을 맡기면 돼.(p. 334)

 나는 끄덕인다.
 지금 내가 가진 '연한 색 카펫에 흘린 레드 와인 얼룩' 같은 상실의 아픔을 희석시킬 수 있는 건 오로지 더 큰 세상에 나를 내맡기는 것 밖에는 없다고. 뒤로 걷고 싶은 마음이 들수록 앞으로 나가야 한다고. 눈과 귀를 막는 대신 더 많이 보고 들어야 한다고. 손가락을 하나하나 천천히 펴듯 마음에 새겨 나간다. 그리고 떠오를 생각을 한다. 나는 하루키에게 엄지를 들어 보이며 말한다. "그러고 보니 내겐 당신이 '드라이브 마이카'의 미사키인 셈이로군요."
 물론 과묵한 그는 대답하지 않는다. 가후쿠처럼 나도 그 침묵에 감사했다.
 바닥이 조용히 멀어져 간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양이라디오 2015-11-02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ㅠ 감동적인 리뷰 잘 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
<여자없는 남자들> 다시 읽어보고싶어지네요.

오드득 2015-12-08 13:43   좋아요 1 | URL
아앗! 고양이라디오님 말씀 정말 고맙습니다.
그동안 제 눈이 어딜 향해 있었던 걸까요? 이 댓글을 이제서야 보다니...
이런 기분 좋음을 안고 잠시 좀 하늘을 날다 오겠습니다^^


고양이라디오 2015-12-08 13:48   좋아요 0 | URL
여행떠나시나요ㅎ??
하늘 기분좋게 날고오세요ㅎ

2015-11-21 0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08 1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5-12-11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 맘에 들었어요, 오랜만에 하루키의 소설을 다시 보게 해준 시발점이었죠.
이후 마음 편하게 하루키의 소설을 사들이고 있습니다.. ㅋㅋ

오드득 2015-12-15 02:27   좋아요 0 | URL
역시 마녀고양이님과 저는 통하는 게 있다니까요^^
하루키의 최근 소설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참으로 힘이 되는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