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라이징 레드 라이징
피어스 브라운 지음, 이원열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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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어스 브라운의 2014년작 , '레드 라이징'은 레드 라이징 삼부작의 첫 권이다. 인류가 태양계의 다른 혹성들을 식민지로 만든 지 700년 정도 지난 시점의 이야기로 SF다. 공간적 배경은 화성. 하지만 '마션' 보다는 화성의 광산을 다루고 있는 영화  '아웃랜드'에 더 가깝다.



 '레드 라이징'이란 제목을 서투르게 번역하자면 '봉기하는 레드'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한다. 제목에 왜 '레드'가 들어가냐면 이 시기 지구는 계급에 따라 색깔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신라에서는 관리들이 성골이냐 진골이냐 혹은 6두품이냐에 따라 서로 다른 색깔의 옷을 입었다고 한다. 그것을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다스리는 지배 계급은 '골드'라 불리고, 골드의 곁에서 치안을 책임지는 이들은 '그레이'라 불리며 골드에게 신체적 혹은 정신적으로 위안을 주는 이들은 '핑크'라 불린다. 그리고 그들의 가장 밑바닥, 그들이 호위호식 할 수 있도록 죽을 때까지 저임금으로 노동력을 제공해야 하는 이들을 '레드'라 칭한다. 레드는 말 그대로 노예다. 가장 힘들고 가장 위험한 작업은 모조리 레드 차지이다. 소설은 그런 세상이다.


 이런 세계가 읽는 동안 내게는 꽤나 피부에 와 닿았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도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 우스개 소리로 말한 '수저계급론'. 태어날 때 부터 누구는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고 또 누구는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며 또 누구는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다. 이젠 이 말을 들으면서 웃을 수 없을 것 같다. 그야말로 우리의 적나라한 현실이 되고 있으니 말이다. '레드 라이징'의 세계는 이걸 좀 극단화시켰다 뿐이지 우리의 세계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이대로 가다간 조만간 진짜 그렇게 될 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쩌면 만사를 제쳐두고 읽어햐 하는 책이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흙수저인 대다수의 우리들은...


 주인공은 대로우. 나이는 십대. 그는 '레드'다. 화성의 지하 광산에서 골드에게 필요한 자원을 캐는 일을 한다. 아주 고되고 위험한 노동이다. 주어지는 임금은 쥐꼬리 십 분의 일 정도. 매일 먹을 빵조차 가지고 있기 곤란하고 설탕은 어마어마한 사치품이다. 과일? 그건 전설에나 존재한다. 아버지는 레드의 처지에 반발해 저항했다. 그러다 체포되었고 교수형을 당했다. '레드'에게 교수형은 방식이 좀 다르다. 집행관이 하지 않고 가족들이 한다. 자녀나 부모 그리고 형제 혹은 자매가 스스로 교수형 당하는 이의 발을 끌어내리는 것이다. 대로우도 그 일을 했다. 그 때 잡았던 아버지 발의 감촉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저항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에겐 '이오'란 아내가 있기 때문이다. 그녀도 레드다, 이오는 노래를 부른다. 레드에겐 금지된 노래를. 그 노래엔 이오의 꿈이 담겨 있다.


 "그냥  '어떤 꿈'이 아니야, 대로우. 나는 내 아이들이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날 거라는 꿈을 위해 살아. 내 아이들이 자기가 원하는 존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꿈. 아이들이 자기 아버지가 준 땅을 가지게 될 거라는 꿈."(p. 69)


 그 꿈을 보여주기 위해 이오는 대로우에게 밤하늘의 별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별을 보고 노래를 불렀다는 이유로 이오는 교수형을 당한다. 그녀는 죽기 직전 이 한 마디를 했다.


 "사슬을 끊어요."(p. 90)


 대로우는 끊었다. 작은 것에 만족하고 안정만 추구하는 삶을, 이전에는 사슬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레드'의 삶을 끊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 결심을 이오의 시체를 묶고 있던 사슬을 끊어 끌어내리는 것으로 행동에 옮겼다. 교수형 당한 자의 시체를 멋대로 끌어내리는 자도 교수형이다. 대로우는 죽는다. 그리고 다시 태어난다. 이전부터 이 체제에 저항하고 있던 '아르고스의 아들들'에 의해.


 그들은 대로우를 골드로 만들 것이라 한다. 골드가 되어 힘을 가진 다음 그들의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도록. 이오의 복수를 원하는 대로우는 쾌히 응한다. 그렇게 '레드 라이징'으로 가는 발걸음이 떼어졌다.


 하지만 골드가 된다고 해서 힘이 그저 주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커다란 힘을 가지기 위해선 그것을 받을 자격이 된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해 보여야 했다.


 "세 종류의 사람이 졸업해. 흉터를 입은 비할 데 없는 자, 졸업생, 치욕을 당한 자. 비할 데 없는 자들은 사회에서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어. 졸업생도 올라갈 수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비교적 제한되어 있고, 졸업생은 반드시 흉터를 얻어야 해. 치욕을 당한 자는 명왕성 같은 멀고 힘든 식민지로 가서 지구화의 첫 몇 년을 감독해야 해."

 "어떻게 하면 비할 데 없는 자가 되죠?"

 "랭킹 시스템이 있는 것 같아. 아마 경쟁을 하겠지. 나도 몰라. 하지만 골드는 정복을 기반으로 하는 종족들이야. 경쟁에 정복이 포함될 법 하지."(p. 199)


 어디든 경쟁이다. 골드도 예외는 아니다. 정복이 골드의 속성인 것을 보니 작가는 아마도 '로마'를 모델로 레드 라이징의 세계를 설계한 것 같다. 그렇지만 랭킹 시스템은 스파르타의 것을 가져왔다. 스파르타도 아이들은 맹수가 드글거리는 계곡에 보내어져 거기서 생존하는 것으로 일원의 자격이 있음을 인정받았다. 골드들도 그렇다. 졸업을 앞둔 이들은 화성의 매러디스 계곡으로 가서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상대 골드들을 정복하여 승자가 되어야 한다. 이 승자가 바로 '비할 데 없는 자'이다. 이제 대로우는 마르스 하우스에 소속되어 아폴로, 미네르바, 플푸토, 머큐리, 다이아나, 세레스, 바커스, 주노 하우스들과 싸워야 한다. 이야기의 중후반은 모두 여기에 할애되어 있다.


 '레드 라이징'을 읽다보면 이거 어디서 봤는데 하는 설정이 많다. 일단 대로우가 자신의 육체를 완전히 바꿔 골드가 되는 과정은 에단 호크 주연의 영화 '가타카'가 떠오르고 단 하나의 승자가 되기 위해 겨루는 장면은 이게 집단 간의 전투이고 전략을 쓰면서 이뤄지기 때문에 오슨 스콧 가드의 '엔더의 게임'이 연상된다. 거기다 각 하우스마다 감독관이 프록터가 있어 일종의 하우스 스폰서가 되는데 그것은 또 '헝거게임'과 비슷하다. 이런 식으로 소설은 우리들에게 익숙한 설정을 여기저기 따오고 있는데 그렇다고 식상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것이 바로 작가 피어스 브라운의 역량이 아닌가 한다. 익숙한 재료도 조리법에 따라서 처음 맛보는 맛을 낼 때가 있는데 바로 그런 것을 작가가 여기서 하고 있는 것 같다. 서스펜스를 바탕으로 배치의 묘미를 살리고 캐릭터들간의 갈등과 대결 구도를 적절하게 가미하는 등 자기 것으로 만드는 재주가 능수능란하다. 분위기도 진행에 따라 일변한다. 이오의 죽음과 더불어 대로우가 혁명을 각성하게 되는 초반은 절절하고 본격적으로 하우스에 소속되어 최고의 골드가 되기 위해 싸우는 부분은 긴장이 넘친다. 거기다 프록터마저 가담한 음모까지 펼쳐져 더욱 페이지를 빨리 넘기게 된다.


 분명 '레드 라이징'은 엔터테인먼트 적으로 좋은 작품이다. 하지만 주는 것은 결코 재미만이 아니다. 이 작품은 점점 수저계급화 되어가는 현세계의 단면을 극명하게 재현하고 있으며 거기서 인간답게 사는 것은 어떤 것인가를 질기게 쫓고 있다. 사실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을 때는 인간답게 사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포기해야 할 것이 적기에 순수하게 옳은 것만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가진 권력이 커지고 보다 많은 이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휘두를 수 있게 되면 배덕의 유혹도 그만큼 커지게 마련이다. 룰은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만 존재하고 타인은 그저 자신을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게 보는 때가 오는 것이다. 무엇보다 최고의 권력자 중의 하나인 총독 네로가 그것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그래도 대로우는 그 유혹을 뿌리치려 한다. 이오의 꿈을 기억하려 한다. 그 유혹은 이오의 꿈을 부수는 것이므로. 그래서 머스탱이 전쟁에 진 아이들을 노예로 만들자고 했을 때 이렇게 말하면서 거부한다.


 "우리는 이보다는 나은 사람이어야 하잖아. 비할 데 없는 자들이라면 그래야 하는 것 아니야. 더 약한 컬러들을 노예로 만들려는 충동은 초월해야지."(p. 520)


 그러나 유혹도 그리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 대로우가 더 큰 자리에 오르자마자 더욱 더 커다란 유혹을 해 오는 것이다. 그것은 끊임없이 속삭인다. 너만 생각하라고, 괴물이 되라고.


 과연 점점 커져만 가는 유혹 안에서 대로우는 이오의 꿈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앞으로 이어질 레드 라이징 속편을 바라보는 내 관점이 될 것 같다. 자신의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한 분투. '레드 라이징'에서 '레드'가 진정 가리키는 것은 바로 '인간'이 아닐 지. 왜냐하면 대로우 앞에 서 있는 세계란 골드부터 레드까지 모든 것을 오로지 경쟁으로만 관철하는, 그리하여 사람들을 이기적 탐욕 밖에 없는 괴물이 되거나 자아 없이 상위 권력에 굴복하는 기계로 만드는 곳이기 때문이다. 모든 이들을 비인간화 시키는 세계. 그러니 그것의 전복은 동시에 인간다움의 회복이 될 수밖에 없을 터. 그런데 그러한 대로우의 세계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기도 하다. 여기저기에서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파렴치한 짓도 서슴지 않는 괴물들이 하루가 멀다 않고 마구 나타나고 생각하는 것을 관두고 그저 거수기가 되어버린 자들조차 심심치 않게 보이는 요즘이 아니던가. 괴물과 사람을 놓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만 간다. 사정이 이러하니 2권인 'GOLDEN SON'이 이미 2015년 1월에 발간되었다고 하는데 어서 번역되어 나와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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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3 02: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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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5 0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