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9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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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홉수라는 말도 있다지만 나쓰메 소세키의 아홉번째 소설 '문'은 그의 소설 중 가장 어두운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갱도라는 더 극한의 암울한 공간을 배경으로 한 '갱부'도 있고 '문'에 나오는 부부의 후일담이라고도 볼 수 있는 '마음'도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역시 가장 어두운 이야기는 '문'인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엔 미래가 없다. 그저 낮고 조용하고 암울하면서 추운 현재만이 내내 고인 물처럼 웅크리고 있을 뿐이다.


 소스케와 오요네 부부에게 바깥으로 나가는 문은 결코 열리지 않는다. 열리지 않고, 열 수도 없는 문 앞에서의 조용한 체념과 절망. 이것이 소설 '문'이 가진 세계다.




 나쓰메 소세키는 왜 이런 소설을 썼던 것일까? 읽다보면 들지 않을 수 없는 의문이다. '문'이 신문에 연재되었던 것은 1910년. 우리는 이 해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잘 알고 있다. 바로 조선이 일본에게 강제 병합 되었던 것이다. 일본의 제국주의 야욕이 그야말로 만천하에 본격적으로 드러났던 시기. 나쓰메 소세키는 한 때의 정욕에 눈이 멀어 친한 친구를 배신한 까닭에 내내 한 겨울 연못 속의 잉어들만큼이나 낮고 조용하며 고립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부부의 이야기를 썼다. 일본이 자꾸만 밖으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할 때, 거꾸로 안으로, 내부로 계속해서 침잠해 가는 삶을 말이다.


 그들이 처음부터 일반 사회에 흥미를 잃어서가 아니었다. 사회가 그들 둘 만을 떼어내고 차갑게 등을 돌린 결과일 뿐이었다. 외부를 향해 성장할 여지를 발견할 수 없었던 두 사람은 내부를 향해 깊이 뻗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의 생활은 넓이를 잃음과 동시에 깊이를 얻었다. 그들은 6년간 세상과 산만한 교섭을 찾지 않은 대신 그 6년의 세월에 걸쳐 서로의 가슴에 파고들었다.(p. 169)


 왜 이런 삶일까? 그들의 성향이 원래 그랬던 것은 아니다. 적어도 소스케만은 지금과 아주 달랐다. 6년 전의 소스케는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자신의 앞길을 착실히 개척해 나가는 존재였다. 그를 아는 이마다 과거의 그는 더없이 자기 주장이 강하고 활달했다고 입을 모은다. 소스케에겐 고로쿠란 동생이 있는데 그는 자기가 원하는 바를 솔직히 말하는 성격이다. 소스케는 그런 고로쿠를 보며 옛날에 내가 저랬었지 생각한다. 그런 그였다. 그런데 지금은 해야 할 일을 미루고, 하고 싶은 말도 우물쭈물 삼키며 한없이 수동적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 급변이 아닐 수 없다.


 왜 이렇게 변했을까? 물론 이유가 있다.

 지금의 아내 오요네는 원래 야스이란 친구의 여자였다. 야스이를 만나러 갔던 소스케가 그만 오요네에게 반해 야스이를 배신하고 빼앗았던 것이다. 야스이는 그로 인해 커다란 상처를 입고 그 때까지의 삶에서 완전히 일탈에 이제는 일본을 떠나 먼 이국의 땅을 방황하고 있다.


 그 이후로 두 사람은 야스이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걸 피했다. 굳이 떠올리려고도 하지 않았다. 야스이가 중도에 학교를 그만두게 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고 병에 걸리게 하고 어쩌면 만주로 내몬 죄에 대해 아무런 회한의 고통을 거듭한다고 해도 그들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처지에 있었기 때문이다. (p. 210)


 당시만 해도 그런 배신은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모든 것을 잃었다. 친구도 가족도. 숙부는 패륜을 저질렀다고 말하고 하나 뿐인 동생과는 소원해졌다. 고향인 도쿄로 올라올 수 없었기에 아버지가 남긴 유산도 허망하게 잃어버렸다. 욕망에 충실한 것에 대해 그가 지불해야 할 대가는 아주 컸던 것이다. 사회와 미래 모두를 상실하고 말았다. 왜 미래마저 상실한 것이냐고? 아이가 없기 때문이다. 임신이 불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벌써 세 번이나 자식을 가졌었다. 결혼한 지 6년 동안 그들은 히로시마, 후쿠오카 그리고 도쿄 그렇게 세 번이나 거처를 옮겼다.(나중에 따로 말하겠지만 이 지명들은 이 소설을 이해하는데 정말 중요하다.) 그 때마다 그들은 자식을 가졌다. 하지만 히로시마에선 임신 다섯 달만에 유산되었고 후쿠오카에서는 미숙아로 태어나 오래 살지 못했다. 그리고 도쿄에서는 임신 중에 오요네가 그만 이끼에 미끄러져 넘어지는 바람에 태아의 목에 탯줄이 감겨 죽은 채로 태어나고 말았다. 그들이 거하는 곳 어디서도 그들은 미래를 낳을 수 없었다. 그러니 미래도 잃어버렸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내일은 없다. 봄도 오지 않는다.


 가혹하다. 소세키는 왜 이들을 이토록 혹독하게 대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아무래도 1910년에 일어난 조선의 강제 병합 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소설 초반에 이토 히로부미의 암살이 나오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그 소식을 가져오는 것은 고로쿠다. 동생 고로쿠의 첫 등장과 동시에 그 이야기도 나오는 것이다. 고로쿠는 한 겨울의 동굴 속 너구리처럼 사는 소스케에게 일종의 곤경을 가져오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이대로 영영 자신의 영역에만 머물며 살아가려는 소스케를 자꾸만 바깥으로 내모는 매운 연기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소설 초반, 그는 동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속 스스로 원하지 않는 관계를 맺고 움직여야 한다. 고로케는 소스케와 오요네만이 거하는 조용한 조각배를 뒤흔드는 파도다. 그런 고로쿠가 이토 히로부미의 암살을 들고 소스케의 집으로 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한다. 재정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자신은 조선과 만주로 갈 것이라고. 그러다 후반에 가서 소스케는 야스이가 자기 앞에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기가 세들어 살고 있는 집 주인이 알고 보니 야스이의 친구와 아는 사이였던 것이다. 그 친구가 야스이와 함께 만주에서 여기로 온다는 말을 들은 것이다. 소스케는 행여나 야스이와 만나게 될까봐 엄청 두려워한다. 병까지 얻게 될 정도로 심하게. 바로 그 야스이가 만주에 있는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가 암살된 곳. 그를 암살한 안중근이 있던 그 곳에.


 이런 접점으로 소스케와 오요네를 이런 식으로 생각하게 된다.

 사실 소스케와 오요네는 일본과 식민지가 된 조선을 뜻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것을 뒷받침 하는 근거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소스케가 오요네와 맺어지는 과정을 야스이에게서 빼앗은 것으로 그렸다는 것. 이것은 그대로 일본이 조선을 강제로 식민지로 만든 것과 닮아있다. 이렇게 보자면 오요네는 조선의 독립 주권의 상징이며 야스이는 그 주권을 상실한 조선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소스케는? 두 말할 것도 없이 일본 제국주의를 나타낸다.


 소세키가 이것을 염두에 두었음은 바로 두 번째의 근거에서 밝혀진다.

 바로 야스이를 파멸로 내몰고 난 뒤, 소스케와 오요네가 같이 살았던 곳이다. 앞에서 말했듯, 거기는 히로시마, 후쿠오카 그리고 도쿄다. 이 지명과 순서가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다. 이 세 지명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일본 제국주의가 비롯되고 정착되며 완성된 곳으로 그러니까 일본 제국주의의 궤적을 그린다는 사실이다.


 일본이 제국주의가 되기까지 두 가지가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 하나는 청일전쟁이고 다른 하나는 러일전쟁이다. 일본은 두 전쟁에서 승리했기에 제국주의를 완성할 수 있었다. 히로시마와 후쿠오카가 바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나타낸다. 히로시마는 청일전쟁 당시 전쟁을 진두지휘하는 대본영이 있었던 곳이고 후쿠오카는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인 쓰시마 해전과 가까운 도시다. 이렇게 히로시마와 후쿠오카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상징하는 도시인 것이다. 소스케는 바로 그 곳들을 거쳐 현재 제국주의의 수도인 도쿄에 이르렀다. 일본 제국주의가 걸어온 경로 그대로.


 그러므로 소스케 부부는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모든 도시에서 그들은 아이를 잉태하나 하나는 유산되고 다른 하나는 미숙아로 태어나 오래 살지 못했으며 마지막엔 사산했다. 아마도 이 아이들은 일본의 근대화를 열어젖혔던 메이지 유신에서 천명했던 메이지 정신을 의미하리라 본다. 편협한 제국이 아닌 공존과 조화의 세계를 꿈꾸었던 정신말이다. 이런 식으로 소세키는 지금의 일본은 원래의 정신을 배반했으며 결국 지금 일본 제국주의가 부르짓는 밝은 미래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며 오직 폭력과 고통으로 가득한 현재만이 영원히 되풀이 될 것이라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즉 지금 소스케 부부의 현재는 장차 다가올 일본 제국주의의 미래이며 소세키의 예언인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작품 중, 가장 어두운 이야기가 되고 말았으리라. 소세키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어두운 미래였기에.

 여기에 대해선 소설의 여러 군데서 발견된다. 도쿄에서 소세키 부부가 머무는 곳은 골목의 가장 후미진 곳으로 햇볕이 잘 들지 않는 곳이며 게다가 집 바로 앞에는 위태롭게 보이는 절벽마저 있다. 오래도록 그 지역에 살았다는 노인은 예전엔 거기가 대나무 밭이었으나 이제는 하나도 자라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부부, 소생이 불허된 공간. 더하여 거기는 온기가 거의 없다. 유일하게 따스했던 방은 같이 살게 된 동생 고로쿠가 차지한다. 사회에서도, 자연에서도 버림받은 그들. 그들에겐 오로지 상대방 밖에는 없었다.

  

 소스케 부부는 세상의 햇빛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견딜 수 없는 추위에 서로 껴안아 몸을 녹이는 식으로 서로를 의지하며 살았다. 어려울 때에는 언제든지 요오네가 소스케에게,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하고 말했다. 소스케는 오요네에게,

 "참아야지 뭐." 하고 말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체념이나 인내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으나 미래나 희망의 그림자는 거의 비치지 않는 듯이 보였다. 그들은 과거의 일을 그리 자주 말하지는 않았다. 때로는 약속이나 한 듯이 피하는 분위기조차 있었다. 오요네가 때로,

 "머지않아 또 좋은 일이 있을 거예요. 그렇게 나쁜 일만 계속되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하고 남편을 위로하듯이 말하는 일이 있었다. 그러면 그것이 소스케에게는 진심 어린 아내의 입을 빌려 자신을 농락하는 운명의 독설처럼 느껴졌다. 소스케는 그런 경우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씁쓸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래도 눈치를 채지 못한 오요네가 뭔가 말을 계속하면,

 "우리는 그런 좋은 일을 기대할 권리가 없는 사람들 아닐까?" 하는 말을 과감히 내뱉는다. (...) 그들은 자업자득으로 자신들의 미래를 덧칠해버렸다. 그러므로 자신들이 걷고 있는 앞길에서는 화려한 색채를 볼 일이 없을 거라며 체념하고 오직 둘이서 손을 잡고 나아갈 생각이었다.(p. 51)


 하지만 상황은 점점 그것만으로는 견디기 힘들게 되어간다. 고로쿠 문제가 일어나고 요오네는 갑자기 앓게 되며 그리고 드디어 소스케 부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야스이가 찾아오는 것이다. 만주에서. 이것은 앞으로의 일본이 결코 순탄하지 않을 것이라는 소세키의 경고다.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힘들게 될 것이라는 저주다. 아니나 다를까 요오네만으로 견디기 힘들어진 소스케는 결국 신앙에 기댈 생각을 한다. 실제 소세키의 슈젠사 요양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절에서의 이야기는 천황에 대한 신앙으로 일본 국민의 파시즘 무장을 획책하던 일본 제국주의의 모습을 암시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곳에서조차 구원의 문은 열리지 않는다.


 "두드려도 소용없다. 혼자 열고 들어오너라." 하는 목소리가 들렸을 뿐이다. 그(소스케)는 어떻게 해야 이 문의 빗장을 열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수단과 방법을 머릿속에서 분명히 마련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열 힘은 조금도 키울 수 없었다. 따라서 자신이 서 있는 장소는 이 문제를 생각하기 이전과 손톱만큼도 달라지지 않았다. (p. 252)


 마침내 소스케는 아무 결실도 없이 절을 나서게 된다. 그를 배웅하는 큰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도쿄는 아직도 춥겠지요?"하고 큰스님이 말했다. "조금이라도 실마리를 찾았다면 돌아가고 나서도 좀 편할 텐데, 애석한 일이군요." (p. 253)


 제국주의의 중심 도쿄는 여전히 춥다. 구원의 온기는 어디서도 소스케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다. 온기는 자신의 변화에서 발화되는 것인데 소스케는 스스로 변하려는 노력은 없이 자꾸만 외부에서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 완고함, 타자를 인정하지 않는 제국주의의 편협함을 닮은 그 모습이 정말은 자신의 삶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는 지도 모른다.


 '문'은 이런 이야기였다. 조선 강제 병합에서 한껏 드러나버린 일본의 민낯. 그것을 낱낱이 봐버린 소세키의 우려와 경고가 짙게 투영된 소설이었다. 물론 지금의 우리는 너무나 잘 알듯이 소세키의 우려와 경고는 그대로 일본의 현실이 되어버렸다. 소스케도, 일본도 자신이 나오는 문만 있었을뿐, 타인을 맞이하는 문은 없었다. 공존을 위해 자신을 먼저 바꾸려는 태도는 없었다. 그런 소스케, 일본이 걷는 길은 불안과 고독의 연속이었지만, 내내 추위에 떠는 삶이었지만 바꾸려 하지 않았다. 그저 그런 불안과 외로움 그리고 추위를 피하기에 급급했을 뿐.


 그의 머리를 스쳐 가려던 비구름은 간신히 머리에 닿지 않고 지나간 듯했다. 하지만 이와 유사한 불안이 앞으로도 몇 번이고 여러 가지 수준으로 되풀이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어딘가에 있었다. 그것을 되풀이하게 하는 것은 하늘의 일이다. 그것을 피해다니느 것은 소스케의 일이다.(p. 260 ~ 261)


 하지만 피하는 것에도 한계는 있다. 천라지망이라는 말도 있듯이 결국은 하늘의 벌을 받게 되었다. 꼭꼭 닫혀있었던 일본의 문은 그 문을 아예 날려버리는 거대한 화염을 맞게 되었다. 제국주의를 향한 침략의 발톱이 처음으로 드러났던 히로시마가 일본 패망의 직접적 계기가 되었던 원폭을 맞게 되었던 것은 어쩌면 운명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만한 경험을 했으면서도 현재의 일본은 여전히 그 때의 잘못을 반복하고 있다. '문'의 마지막 장면에서 소스케는 봄이 왔다는 오요네의 말에 이렇게 대꾸한다.


 "하지만 또 금방 겨울이 오겠지."(p. 264)


 이것이 우리가 오늘도 소세키의 '문'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소설에서 소스케 부부가 어떤 삶을 보냈는 지를 뇌리에 단단히 새겨두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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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0 0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