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 BOOn 2호 - 2014년
RHK일본문화콘텐츠연구소 편집부 엮음 / RHK일본문화콘텐츠연구소(월간지)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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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혹시나 알고 있는지?
 2014년 1월부터 격월로 'BOON'이란 잡지가 나오고 있다. 폭발음의 'BOOM'이 아니다. 'BOON'이다. 유쾌함을 뜻하는 말로 '문화'의 일본어 음독인 분카에서 '분'이란 발음을 차용한 말이다. 발간한 곳은 RHK일본문화콘텐츠연구소. 즉 이 잡지는 '일본문화전문잡지'라는 것이다.  하지만 무겁지 않고 '분'이라는 말처럼 가볍게, 그렇지만 가쉽이 아니라 깊이 있게 일본 문화를 뜯어보는 것. 그것이 바로 'BOON'의 정체라 할 수 있다.



 이 잡지의 창간 소식을 들었을 때, 개인적으로 반가웠다. 예전부터 일본 소설 리뷰 하면서 일본 소설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려 줄 채널 하나 정도는 있었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실제 나오리라고 기대하기엔 우리나라 출판 상황이 좋지 않았다. 나날이 책을 읽는 이들은 줄어들고 있고 그런 상황에서 아무래도 예전만큼은 관심이 높지 않을 일본 문화에 대해 이렇게 전문적으로 다룬 잡지를 낸다는 건 무리한 도전일 것 같아서였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 법인데 이번만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렇게 마치 저 위의 누군가가 나를 좋아한 것처럼 떡하니 나와 주었으니까. 더구나 이번 호는 내 눈이 더욱 휘둥그레질만한 아이템이 특집으로 편성되어 있었다. 바로 '흔들리는 대지'라는 제목의 특집이다. 분명 루치오 비스콘티의 영화에서 따왔을 제목이지만 영화에 대한 것은 아니다. 사실은 3. 11의 여파(AFTERMATH)에 관한 것이다. 아시다시피 2011년 3월 11일 동일본은 '흔들리는 대지'였다. 쓰나미가 몰려왔고 원전이 붕괴되었다. 전후 최고의 재난 중 하나였고 게다가 그건 아직도 진행 중이다. 무시무시한 방사능이 어디까지 퍼졌고 얼마나 일본을 오염시켰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는 생각한다. 문화라는 것도 사회라는 국물 안에 있는 건더기와 같다고. 그렇게 그것들이 속해 있는 국물이 한 번 크게 흔들리면 건더기는 아무래도 영향 받기 마련이다. 독일의 철학자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그것을 이런 말로 표현했다. '아우슈비츠 이후에는 시를 쓰는 일이 결단코 불가능하다!'

 그것이 남긴 상흔, 아픔을 무시하기란 불가능하다. 아니, 그건 작가의 태도가 아니다. 예전 풀리처 수상작이었던 사진이 논쟁을 일으켰다. 그 사진은 아프리카에서 굶어죽어가고 있던 소녀를 찍은 것이었는데 독수리가 그 소녀가 굶어죽기를 머리 맡에서 기다리고 있어서 더욱 비극성을 강조했다. 아프리카의 처참한 현실을 제대로 포착했다고 풀리처 상까지 수상했지만 결국 작가는 거센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사진기를 치우고 소녀부터 구했어야 하지 않느냐는 비난이었다. 그렇게 죽어가는 소녀를 그저 피사체로만 본 작가에게 사람들은 '보도 기자의 사명을 버렸다.' '비인간적이다'라고 비난을 해댔고 결국 그 작가는 자살했다. 이 사건은 사람들이 작가에 대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사회에 대해 어떤 책임을 질 줄 아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작가의 모습이라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라면 3. 11에 대해 어떻게든 자신의 작품에다 반영하기 마련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3. 11 이후에 나온 일본 미스터리 소설들을 리뷰할 때면 그런 입장에서 쓰기도 했었다. 물론 거기에 대해서 난 전공도 아니고 지극히 아는 바도 적었기에 자주 한계를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당연히 3.11과 그 여파에 대해서 좀 제대로 말해줄 수 있는 텍스트가 있었으면 했었다. 바로 그걸 이 'BOON' 2호에서 본 것이다. 어찌 不亦樂乎, 不亦樂乎 하지 않겠는가! 

 특집은 파트1과 파트2로 나뉘어져 있다. 파트1에는 주로 일본 드라마와 음악 그리고 '레이디코믹'에 나타난 3. 11의 여파를 추적했고 파트2에서는 후쿠오카 도미오카마치를 직접 답사하여 3. 11 이후의 일본 현실이 생생한 모습을 보여주는 르포를 비롯 보다 문화 바깥으로 초점의 영역을 확대하여 일본 사회와 과학 그리고 사회 운동 차원에서 3. 11이 남긴 영향들을 보여준다. 한 마디로 안과 밖, 모두를 폭넓게 조명해주는 특집이라 하겠다. 특집에 실린 글들은 모두 읽을만하다. 드라마 '가정부 미타'와 '아마짱'을 가지고 현재 일본이 3. 11에 대처하는 상반된 경향을 보여주는 이솔아의 글도 좋았고 3. 11 이후 음악에서 나타난 저항 운동을 보여준 임경화의 글도 좋았으며 특이하게도 레이디스 코믹에 집중해서 3. 11의 영향을 밝힌 김효진의 글도 인상깊었다. 특히 김효진의 글을 3. 11이 꽤 세부적인 장르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깨닫게 해 주었다. 괴수 고질라를 중심으로 역시나 원자력에 대한 일본이 양가적 입장을 살펴보는 다카하시 도시오의 글은 괴수물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깨우쳐 주었으며 그와 연계되어 일본 과학의 입장을 서술한 서동주의 글도 흥미로웠다. 특집은 과연 특집답게 나역시 천착하고 있던 3. 11에 대하여 많은 것들을 다시금 깨닫고 알려주었다. 특집 아이템만 보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손에 들었던 나로서는 지극히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외 발견이라면 역시 소설신초와 공동으로 연재하고 있다는 히구치 유스케의 소설 '어항, 그 여름날의 풍경'이라 할 것이다. 이건 가공의 미래를 바탕으로 한 것인데 지금 일본의 거센 우익화 경향을 반영하듯 좀 파시즘화된 일본을 그리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공격으로 여론은 타자에 대한 배려를 주장하는 좌파에게 등을 돌리고 일본 우익이 지배력을 공고히 하게 된다. 그들은 재일교포가 많이 있다는 생활보호대상자제도를 폐지하고 복지의 사각시대로 갑자기 몰려나게 된 극빈자들을 저임금의 잉여노동력으로 흡수한다. 값싼 저임금 제도가 아무런 저항없이 자리잡게 되고 그리하여 저임금을 찾아 중국으로 몰려갔던 기업들이 일본으로 들어온다. 정말 터무니 없는 임금으로 과중한 노동을 해야하는 이들의 인권은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일본은 제2의 호황기를 누리고 있다. 소설은 그런 시대를 배경으로 하다. 제목의 어항은 그렇게 정말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고 적당히 만족하고 살고 있는 일본을 은유하고 있는 듯 하다. 이 소설은 그대로 현재 일본에 대한 묘사인만큼 어쩌면 히구치 유스케는 지금의 일본이야말로 '어항'이라고 여기고 있는 지도 모른다. 소설은 전반적으로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많이 풍기고 있는데 희생이 되고 있는 청년 세대와 그것을 대가로 누리고 있는 노년 세대의 시선이 서로 교차하면서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다. 아직 2회밖에 연재되지 않았지만 지금의 이야기만으로도 뒷 이야기가 기다려지는 걸 어쩔 수가 없다.

 이외에도 나역시 번역되길 바라지만 결코 불가능할 나카자토 가이잔의 '대보살고개'에 대한 소개가 있어서 좋았고 최근 '침묵의 거리에서'를 발간한 오쿠다 히데오에 대한 글도 재밌게 읽었다. 알라딘 전자책 MD로 있다는 김재욱은 글에서 정말 만만치 않는 내공을 은근히 드러냈는데 다음엔 또 어떤 절기를 시전할 지 자못 궁금해진다.

 아무튼 너무나 반가웠던 잡지였다. 일본 문화에 대해서 나름대로 느끼고 있었던 갈증을 좀 해갈한 듯한 기분이었다. 좀 더 여력이 있다면 한 회분의 특집으로만 그치지 말고 자꾸만 가지를 뻗어나가 별도의 책으로도 만들어져 나오면 좋겠다. 그럴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오래도록 나와 주었으면 좋겠다. 3호도 무조건 기대하며 늘 응원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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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알라딘 신간평가단을 하면서 언제나 봄은 내게 신간평가단 첫 추천 페이퍼를 쓰는 것으로 시작되곤 했다. 그렇게 남들에겐 3월일지 몰라도 내게 봄은 4월이다. 오늘 그렇지 않아도 정독도서관에 다녀왔는데 벚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도서관은 바야흐로 벚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연인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는데 다들 얼마나 생기있어 보이던지 정말 봄이 오긴 왔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날 밤에 난 또 이렇게 신간 추천 페이퍼를 쓴다. 뭔가 피할 수 없는 운명 같다. 아무튼 다섯 권의 인문 시간을 이렇게 추천해 본다.

 

 

 1. 정념의 기호학 - 알지르다시 쥘리엥 그레마스와 자크 퐁타뉴 공저/ 강

 

  알지르다스 쥘리엥 그레마스..

 얼마만에 다시 들어보는 이름인지. 한 때는 언어학이나 기호학 책만 펴들면 보게 되는 이름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것의 팔할은 반가움 때문이다. '정념의 기호학'은 그의 제자인 자크 퐁타뉴와 함께 쓴 책이다. 그레마스가 죽기 1년 전에 발표된 책으로 주로 '담화'에 대한 분석을 보여주는 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특히나 3장에서 전개될 '질투'가 흥미롭다.

 들뢰즈에 따르면 질투는 대표적인 타자에 대한 경험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질투란 어디까지나 그 대상에 대해 자신이 아무 것도 할 수 없음, 즉 절대적 무기력을 나타내는 감정인데 때문에 타자의 윤리학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이것이 통사론적으로는 어떻게 분석될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 책의 마지막엔 질투를 상호주체적 관점에서도 분석하고 있는 것 같아서 더욱 관심이 간다.

 

 

 2. 살아있는 한국 신화 - 신동흔 /한겨례

 

 

 예전 우리나라의 무속 신화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거기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우리나라 무속인들이 주문 외우듯 하는 말들이 그냥 평범한 주문인 것이 아니라 알고보니 우리나라의 창세 신화를 말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원래 '오디세이아'나 '일리아드'도 호메로스가 말로 사람들에게 들려주었던 것들이다. 즉 호메로스 생전에는 문자로 쓰여지지 못하고 기억력에 의존하여 구전되다가 어느 시점에 문자로 정착되었다고 알고 있다. 무속인들이 말하는 창세 신화가 그와 같았다. 문자화되지 못했던 우리나라 고유의 창세 신화가 이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자들의 기억 속에서 그렇게 대대로 구전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지금 나온 책은 개정판이다. 서점에서 실물을 보았는데 외관이 참으로 근사하다. 그동안 살면서 잊어버린 것도 많은데 다시금 옛 기억을 떠올리며 읽어보고 싶다.

 

 

 3. 키치, 달콤한 독약 - 조중걸 / 지혜정원

 

 

  키치는 확실히 밀란 쿤데라의 말대로 순응주의의 산물이다. 이 책의 부제가 달콤한 독약인 것은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이를테면 막장 드라마도 키치라고 할 수 있다. 멜로 드라마를 정착시킨 더글라스 서크의 영화들은 연인들이 끝내 계층적 차이로 맺어지지 못하게 하거나 설령 맺어지더라도 그것이 현실에서는 전혀 일어날 수 없는 일인 것처럼 묘사하여 현실에서는 그러한 계급적 화해가 절대 불가능한 것으로 관객들이 여길 수 있도록 했다. 영화는 그렇게 관객들에게 자신의 처지를 사유하게 만들었고 현실에 분명하게 가로놓인 계급적 장벽들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멜로 드라마로부터 파생된 막장 드라마에겐 그런 것들이 없다. 있는 것은 다만 현실에서 느낀 좌절과 분노를 쏟아낼 수 있는 변기 뿐이다. 악인은 언제나 처벌받고 갈등은 성공적으로 봉합되어 보는 이들은 속편하게 자신의 일상으로 다시 돌아간다. 그들은 남들도 다 저렇게 지지리 궁상으로 사는구나 여기면서 정작 모두의 삶을 그렇게 만드는 이유에 대해서는 생각해보려 하지 않는다. 키치는 그렇게 사유의 사각지대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그 사각지대야말로 사실은 진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공간이다. 키치를 사유함은 분명 우리를 둘러싼 오늘의 현실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볼 수 있게 만드는 필터가 될 수 있다. 이 책은 키치의 모든 것을 분석하고 있다고 한다. 하여, 읽어보고 싶다.

 

 4. 세계문제와 자본주의 문화 - 리처드 로빈스 / 돌베개

 

 

  현대는 일찌기 장 보드리야르가 이야기했듯이 '소비의 시대'다. 무엇을 살 수 있는가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시대인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명품을 욕망하고 되도록 남에게 과시할 수 있는 무언가를 구입하고 싶어한다. '브랜드'가 실제 상품보다 더 중요하게 취급되는 것도 그래서다. 그 브랜드가 정말로 이탈리아 장인이 한 땀 한 땀 하는 식으로 디자인이나 실제 상품의 만듦새가 다른 것들보다 월등히 뛰어나서 사람들이 찾는 게 아니다. 단지 그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그 브랜드를 남들이 알아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프로이트가 말했듯 소비의 시대란 '도착증의 시대'다. 나의 필요가 아닌 남이 욕망하는 게 무엇인가가 전부인 시대.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면 이렇게 어리석은 세상은 또 없을 것 같은 시대.

 

 리처드 로빈스의 이 책은 그러한 시대가 어떻게 해서 우리에게 도래했는지 임마누엘 윌러스타인의 세계체제론을 가져와 분석한다. 거기에 가장 많은 역할을 바로 '국민국가'가 했다고 그는 보고 있고 그것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는데 그 점에서 국민국가를 '네이선'이라 부르며 로빈스와 비슷하게 바라보았던 가라타니 고진이 떠오르기도 한다. 812쪽의 방대한 분량이지만 바로 오늘을 낱낱이 훑어주는 책이므로 기꺼이 뛰어들고 싶다.

 

 5. 반란의 도시 - 데이비드 하비 / 에이도스

 

 

    데이비드 하비라는 이름은 '포스트 모더니티의 조건'으로 처음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졌지만 그의 주 종목은 어디까지나 공간의 정치경제학이다. 누구나 마르크스의 한계를 말하고 있을 때 그는 그래도 마르크스를 버리지 않았으며 다시금 새롭게 바라봄으로 그 한계를 돌파해 나갔다. 대표작 '자본의 한계'가 그랬다. 신자유주의가 창궐하던 당시에는 '맑스 자본 강의'를 펴내기도 했다. 늘 자신의 이론에 가장 충실한 밑바탕이 되어주었던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다시금 읽고 해석한 책이었다. '반란의 도시'는 그 이후의 하비를 보여주는 책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아닌 신자유주의에 지배되어버린 도시의 의미를 탐색하고 월가의 점령 운동을 통해 그 공간을 탈환하기 위한 방법들들을 사유한다는 게 이채롭게 느껴진다. 모더니티의 공간으로서 파리가 프랑스 대혁명을 일으켰던 대중의 저항을 전략적으로 배제하기 위해 만들어졌듯이 신자유주의의 대표적 공간인 런던과 뉴욕은 또 어떤 기획을 통해 만들어졌을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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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4-04-07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는 다른 쪽 책을 보게 되셨군요 마음에 드는 책, 보고 싶은 책 보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읽어보지 못한 책에 대해 말하기 쉽지 않을 텐데 그런 것도 잘하시는군요 이것은 전부터 알고 있던 거군요 어떤 책을 보다가 그리스 로마 신화뿐 아니라 우리나라 신화도 알아야 할 텐데 했습니다 하지만 보고 싶은 것을 보다보면 그렇게 생각한 것은 다 잊어버리고 맙니다 실제 경험하면서 알지 못해도 책을 보고라도 알면 좋을 텐데, '몰라도 사는 데 문제없잖아' 하는군요^^


희선

오드득 2014-04-07 00:26   좋아요 0 | URL
책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저 중에 그레마스와 하비는 좀 알고 있는 학자들이라서 주저리 늘어놓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사실 이 글은 원래 썼던 것에서 한참 줄인 것이라서 좀 문맥이 다소 맞지 않는 것도 있을 것 같네요(그래서 다시 읽어보지 못하겠어요ㅠ ㅠ)아무튼 이번 신간평가단은 좀 새롭게 해보려는 마음으로 과감히 파트도 바꿔봤습니다. 잘 될지 지켜봐주세요^ ^
만일 우리나라 신화가 선정된다면 희선님이 별도로 책을 읽지 않아도 되도록 아주 자세히 리뷰하겠습니다.^ ^
몰라도 사는 데 문제는 없지만 알아서 우리 삶이 더욱 풍요로워질 수는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어차피 공수레공수거가 인생이라면 얼마나 진정으로 가치 있고 좋은 덤을 많이 가져가는가가 삶의 가치를 나타내는 척도가 아닐까요?^ ^
 
삶을 견디는 기쁨 - 힘든 시절에 벗에게 보내는 편지
헤르만 헤세 지음, 유혜자 옮김 / 문예춘추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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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따스하다.

고양이는 베란다에 늘어지게 누워 그 햇살을 온 몸으로 음미하는 중이다.

문턱에 앉아 발가락 끝으로 고양이 수염을 살살 간지르며 책을 읽고 있다.

헤르만 헤세의 '삶을 견디는 기쁨'을...





 문득 시선이 머문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내 인생을 바라보면 나는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또 착각인지는 몰라도 그렇게 불행했던 것 같지도 않다. 사실 행복과 불행에 대해 묻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누구나 인생을 돌아보면 즐거웠던 날보다 불행했던 날이 더 오래 기억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선하고 악한 것을 제대로 느끼며, 겉으로 보이는 것 말고도 내면적이고 실질적이며 우연이 아닌 운명을 감당하는 것이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기준이라면 내 인생은 별로 불쌍하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사람은 사람을 외면할 수 있지만 운명은 그렇지 못하다. 오직 신만이 주관하는 외적인 운명이 나를 스치고 지나간다면, 달콤함이든 참담함이든 내게 주어진 시간은 나 혼자 짊어지고 책임져야 한다. ('외로운 밤' 첫 부분)


 이래서 내가 헤세를 좋아하는구나 하고 생각한다. 내가 삶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던 것, 하지만 얼른 말로 되어나오지 못했던 것을 헤세는 이렇게 정확하게 딱 집어내 언어로 표현하고 있으니. 그래, 삶의 길을 누가 대신 걸어줄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힘겹게 사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다 외로운 밤을 되도록 적게 보내기 위해서는 아닐까? 사람들은 되도록 삶이 언제나 이렇게 환하고 다사로운 햇살 속에 있기를 바란다. 지금도 마음껏 햇살을 누리고 있는 한가로운 고양이처럼 되기를...


 정작 헤세는 그런 외로운 밤을 많이 보냈던 것 같다. 이런 말을 하고 있으니, 


 인간의 삶은 어둡고 슬픈 밤과 같아서 가끔 번개라도 쳐서 잠시나마 주변의 어두움을 당당하게 물리친 것처럼 보이게 해 주지 않으면 잘 견뎌 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경험이 바탕되지 않으면 쉽게 나올 것 같지 않을 문장 같다. 어린 날의 헤세는 힘겨웠던 것으로 알고 있다. 많은 두렵고 외로운 밤을 보냈던 아이. 얼마나 그런 어둔 밤을 많이 보냈으면 다른 아이들이라면 무서워서 이불 속에 들어가도록 했을 번개를 자신을 견디게 해 준 힘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굶주려서 무작정 사람을 따라오는 고양이를 바라보는 것처럼 애잔하기도 하다.




-헤세의 산문집을 이렇게 두 번째로 만난다. 표지의 그림들은 모두 헤세가 그린 그림에서 발췌한 것으로 책에는 헤세가 그린 그림들이 사이사이에 일러스트처럼 실려있다. - 


 하지만 그렇다고 헤세가 외로운 밤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밤을 숱하게 보낸 그이지만 오히려 그런 밤이야 말로 제목처럼 삶을 견디게 만드는 기쁨이라고 보고 있다. 왜냐하면 그런 밤은 바쁘고 떠들석한 일상 속에서는 잘 할 수 없었던 나의 내면으로 침잠하여 깊이 생각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깊이 생각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는 사소한 일도 즐거워하고 그것을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특별한 다른 것을 원하지 않는다.(p. 64)


 이 앞에 있는 '잠 못 이루는 밤'이라는 글에도 이와 비슷한 구절이 있다.


 잠은 자연이 주는 귀중한 선물이자 친구이며, 피난처이고 마법사이자 나를 따스하게 위로해주는 손길이다. 오랫동안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잠깐 조는 정도만으로도 만족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보면 나는 너무 가슴이 아프다. 그렇지만 또한 평생 동안 잠 못 이루는 밤을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도 절대 사랑할 수 없을 것 같다.(p. 45)


 '삶은 견디는 기쁨'은 '힘든 밤을 지새우고, 사랑에 외면당하고, 선의를 짓밟히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위로가 되고 버틸 수 있는 힘을 주려는 시와 산문들로 이루어져 있다. 헤세에게 있어 그것은 자신을 두려움과 외로움에 떨게 했던 밤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이다. 그 밤을 사랑하게 만든 것은 텅 빈 무위의 시간 속에서 낮에는 일상의 소음 속에 가려져 있었던 사물들의 새로운 모습들을 발견하게 되는 경이였으며 그 경이감이 가져온 낯선 경험을 헤아리는 가운데 이윽고 그 전에는 내려가보지 못했던 깊은 자신의 내면 속으로 타고 내려갈 수 있게 만든 사유의 사다리였다. 헤세는 그 사유를 '한밤중에 떠나는 행군'이라고 보는 듯 하다. 그는 그걸 제목으로 시를 지었는데 거기서 그는 사유라는 한밤중에 떠나는 행군이 우리를 어디로 데리고 갈 것인지에 대해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영혼이여, 영혼이여, 준비하라!

먼 형제가 부르는 소리.

시간의 어둠 속에서

황금 계단으로 그대를 부르네.


영혼이여, 영혼이여, 신호를 받아들여라!

드넓은 광활함에 몸을 씻어라!

신이 너의 어두운 길을

환한 길로 인도하리니.

(p. 69)


 간단히 말하자면 '삶을 견디는 기쁨'은 헤세가 했던 것처럼 우리 삶을 부정적으로 여기게 만드는 것들을 받아들이고 오히려 사랑하게 만드는 책이다. 불면, 외로움, 고통이 닥쳐왔다면 피하거나 숨고 내치려 하지만 말고 가만히 품어보라는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이전에는 몰랐던 그 이면에 놓인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른다고.


 가벼운 감기로 인해 어느 날 갑자기 푹 쓰러지는 사람은 언제나 '건강하기만'한 사람들이며 고통받는 것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다. 고통은 사람을 부드럽게도 만들고, 강철처럼 단단하게도 만들어 준다.(p. 67)


 '내게는 둘과 같은 이야기'라는 시에서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아픔과 쾌락은 이제 내게

하나가 되어 스며들었다.

그것이 나를 편안하게 하든, 아프게 하든

둘 다 하나가 되어 버렸다.

(p. 118)


 어떤 초연함. 무엇이 찾아오든 껍질이 없어서 신경 다발이 훤히 다 노출된 갑각류처럼 먼저 화들짝 놀라기 보다는 암탉이 알을 품듯 내부에서 천천히 헤아려 보는 것. 그 모든 것들을 다른 것도 아닌 온전한 사유의 시간으로 초대하는 것. 나는 이것이 바로 헤세가 이 책에서 들려주려는 '삶을 견디는 기쁨'이 아닌가 싶다.


 다시 밝은 빛을 보고자 한다면 슬픔과 절망을 뚫고 나가야만 한다.(p. 167)


 그러고 보니, 헤세를 읽는 데 어울리는 시간은 이런 한낮이 아니라 밤인 것 같다. 이왕이면 다락방 같은 곳에서 초생달 하나 덩그마니 뜬 밤하늘이 올려다보이는 들창 앞 앉은뱅이 책상에서 작은 스탠드 조명 하나를 켜두고 읽으면 더욱 어울릴 것 같다.


 아얏! 고양이가 엄지발가락을 깨문다. 수염을 자꾸 건드려 화가 났나 보다. 헤세의 조언대로 아프지만 이 고통도 사랑해야지. 물었던 너도 사랑하고.


 마지막으로 꼭 인용하고픈 헤세의 시


  -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 -


 화요일에 할 일을

목요일로 미루는 일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사람이 나는 불쌍하다.

그는 그렇게 하면 수요일이 몹시 유쾌하다는 것을

아직 알지 못한다.

(p. 280) 


 내 말이. 역시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작가라니까,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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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정도전의 바람이 거세다. 정도전을 주인공으로 한 대하 드라마가 방영 중이고 그에 대한 책들도 잇달아 나오고 있다. 그 숱한 정도전에 관한 책들 중에 김탁환의 '혁명'을 들어야 한다고 한다면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먼저 김탁환이라는 이름에 있을 것이다. 굳이 따로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그 이름은 이제 역사 소설에 있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 중 하나가 되었으니까. 대부분 가장 혼돈스러웠던 역사적 시기에 그 역사적 소용돌이의 아슬아슬한 경계선 위에 서 있는 인물들을 주로 그리면서 그들의 선택과 그 여파를 그려왔던 그의 소설들은 늘 재미와 깊이를 모두 보장한다고 정평이 나 있었던 바였다. 그런 그가 조선 건국이라는 역시나 거센 소용돌이 속에서 그동안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던 정도전을 그리고 있으니 일부러라도 들춰보지 않을 까닭이 없다.



 하지만 과연 작가의 그 이름 뿐인가? 굳이 그것이 아니라도 상관없다고 생각된다. 설사 그 이름을 괄호치더라도 이 소설을 읽을 가치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이게 작가의 이름보다 더 큰 이유가 되리라고까지 생각한다. 거기에 대한 설명을 그 설명을 먼저 이렇게 시작해 보자.


  이 소설은 거대한 행보의 첫 발걸음이다. 어쩌면 아주 길지도 모를 행군을 앞두고 처음 올리는 봉화라 해도 무방하다. 현재 김탁환은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다. 유네스코가 세계 유산으로 인정할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은 조선왕조실록을 모두 60권의 소설로 형상화하겠다는 바로 그 꿈이다. 정도전처럼 그도 참으로 거대한 꿈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제 우리도 발자크의 '인간 희극'에 버금가는 방대한 분량의 소설을 가지게 될 지도 모르겠다. 지금 나온 '혁명'은 바로 그러한 꿈의 시작인 것이다. 


  '혁명'은 제목 그대로 조선이 건국되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말했을 경우 당신이 예상할 수 있는 것에서 이 소설은 살짝 벗어나 있다. 혁명이 이루어지는 그 과정 전체를 보여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조선 건국에 대한 실록 기록 모두를 소설이 형상화하고 있지 않는다는 말이다. 정확히 소설이 담는 시간은 겨우 18일이다. 정도전이 새로운 나라에 대한 이상을 가지고 이성계를 만나 혁명에 대한 꿈을 심어주고 포은 정몽주와 더불어 신진사대부 세력의 주축이 되어 조선을 건국해가는 시간은 그보다 훨씬 길었지만 소설은 이성계가 낙마하고 정몽주와 정도전이 서서히 갈라지고 결국 정도전으로서는 예상 밖으로 정몽주가 이방원의 손에 참살되고  이성계가 왕위에 올라 신하들의 간언에 따라 고려의 왕족인 왕씨를 모두 살해하기까지의 기간만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김탁환이 이 소설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온전히 드러나는 듯 하다. 소설의 부제는 광활한 인간 정도전이지만 사실 김탁환이 보여주고자 하는 건 정도전이라는 인물이 아니다. 솔직히 여기서 정도전이란 인물은 주축이라기 보다는 관찰자에 더 가깝다고 본다. 자기가 꾸었던 원대한 꿈, 뜻이 맞은 동지들이 함께 꾸었던 커다란 이상이 권력 획득을 위한 현실 논리에 빛이 바래지고 처참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는 관찰자.


 어쩌면 순전히 개인적인 느낌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꾸만 눈에 들어오는 것은 꿈의 변질이다. 현실을 이길 수 없는 이상의 무력함 같은 것. 그렇게 두터웠던 신의마저 현실적 계산 앞에서 여지없이 허물어지는 것을 보는 씁쓸함. 


 왜 이런 말을 하느냐고?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었던 바와는 달리 정도전과 정몽주는 서로 반발하는 사이가 아니었다. 목은 이색 아래에서 같이 동문수학 했었던 그들은 그 어떤 이보다 더 가깝게 지냈던 사이였다. 조선의 백아와 종자기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그들은 나라를 새롭게 바꾸겠다는 이상을 가지고 있었고 그 꿈을 위해 같이 노력했다. 세상 그 어떤 유대보다도 더 긴밀한 유대가 그들 사이엔 있었다. 이는 뒤늦게 그들의 관계에 동참한 이성계도 마찬가지였다. 서로의 됨됨이, 포부를 잘 알았고 설사 정적이 되었더라도 그 깊은 이해를 통해 서로를 포용해줄 줄 아는 그릇들이었다. 사실 정도전이 꿈꾸던 세상도 그런 것이 아니었던가? 무력으로 타자를 다스리기 보다는 말로 서로를 설득하여 합의를 도출해나가는 나라. 그런 토론이 그가 꿈꾸던 재상 국가의 바탕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그랬던 정도전이 흔들린다. 아무 것도 없었던 시절엔 꿈 하나로 모든 것을 믿고 의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곧 뭔가가 손아귀에 들어온다고 느껴지자 사소한 것 하나도 오해를 낳는 이유가 되고 두려움에 젖게 할 근거가 되며 해치워야 할 당위가 되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든 것인가? 꼭 이것이어야만 한다는 고집. 남의 길을 헤아리지 않는 아집. 목표의 실현이 가까워질 수록 시야는 좁아져 이제 자기 발 아래의 것 밖에는 보지 못한다. 나여야 한다. 나만이어야 한다. 조화와 균형이 주축이 된 이상은 그렇게 폐허가 되고 정도전은 끝내 지우지 못할 상처로 남을 실수를 하고 만다.


 포은 정몽주의 죽음. 그것은 지울 수 없는 얼룩이다. 정도전이 자신의 이상대로 아무리 훌륭한 나라를 세우더라도 그것은 대들보를 무너뜨리고 서까래를 부술 것이다. 그것은 내내 자신에게 물을 것이다. "이게 바로 네가 세우고자 한 나라였나? 나의 죽음을 무릎쓰고서라도?"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정도전은 내내 침묵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매와 망량. 소설은 자주 그들을 언급한다. 정도전은 이매망량전을 쓴다. 그 이매와 망량은 정도전과 정몽주의 관계를 보여주는 또 다른 모습이다. 같은 꿈을 꾸고 한 몸처럼 같이 활동했던 그들은 결국 한 몸은 죽고 다른 한 몸은 헛되이 살아남아 갈라진다. 정몽주와 정도전이 그랬듯이. 이매와 망량의 파국은 정도전의 실패를 말하는 것이며 그것은 그의 이상이 투영된 조선의 실패를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다른 이를 널리 포용하지 못하는 이상은 연약한 마른 풀처럼 권력이라는 현실의 잔바람에게 쉬이 넘어지게 마련이었다. 이방원은 바로 그 차디찬, 자신 밖에 모르는 권력의 냉엄한 바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존재였다. 이방원이 조선의 미래를 장악하려 하고 있었다. 정몽주의 죽음으로 인하여 생긴 균열은 계속 커지고 있는 형국이었다. 정도전은 그것을 본다. 그리고 예감한다. 결코 다시는 온전한 형태로 그 꿈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걸. 그저 넘어지려는 대들보를 등으로 힘겹게 버티고 있는 게 할 수 있는 전부란 걸. 부서지는 서까래를 그 때 그 때 임시 변통으로 수리하는 게 자기가 할 수 있는 전부란 걸. 그 뻔히 보이는 지난한 과정 앞에서 그는 모든 걸 내려두고 낙향하려 한다. 포은의 무덤을 함께 찾아가자고 했던 이성계는 포은의 길도 괜찮지 않았을까 정도전에게 묻는다. 그렇다 한들 이제 어쩌랴. 이미 늦었는 걸. 자신의 옹졸한 두려움이 모든 걸 망쳐 버렸는 걸. 그저 할 수 있는 건 나날이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 혁명의 적, 이방원을 조심하라고 말하는 것 뿐.


 스산한 가을 풍경 속으로 걸어가는 나그네의 등을 거칠게 내미는 바람처럼 씁쓸함이 갈수록 고이는 이 소설은 그렇게 바래져 버린 혁명의 주검들을 어떻게 보면 부검의의 시선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었다. 거기서 거꾸로 우리들은 '혁명'이라는 걸 생각해 보게 되는 듯 하다. 타산지석이라고나 할까? 아무리 거창한 이상도 결국 남을 포용하지 않고 자신의 것만 집착하다간 속절없이 쓰러지게 마련이라는 것을. 또한 한 번 믿음을 준 이를 가볍게 여기기 보단 그 됨됨이를 믿는다면 중요한 기로의 순간 내 판단 보다는 먼저 그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의 편에서 생각해보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거창하게 혁명까지 나아갈 것도 없이 삶에서도 얼마든지 필요한 그 말들, 마음들을 헤아리게 된다.


 꿈은 광활했으나 거기에 걸맞는 그릇이 되지는 못했던 정도전. 김탁환의 이 소설은 결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닐 이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광활함에 대하여 반추하게 한다. 결국 진정한 혁명이란 남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바꾸는 일이다. 그렇게 부단히 나의 경계를 남을 더많이 포용할 수 있게 넓혀 가는 것. 그런 의미에서 광활하게 되는 것이 곧 혁명의 다른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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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성공 - 더 가치있게 더 충실하게 더 행복하게 살기
아리아나 허핑턴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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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뉴스 애그리게이터로 미국에서 유명하던 허핑턴포스트가 이제 전세계에 그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될 사건이 벌어졌다. 바로 디지털 미디어 기업으로서는 최초로 미국 최고 권위의 언론상인 풀리처상을 수상한 것이다. 이건 비단 허핑턴포스트만의 경사는 아니었다. 일간지에 비해 늘 2인자로 취급받던 디지털 미디어가 이제 그들과 대등한 존재가 되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사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향력은 이미 압도하고 있다고 보아도 좋았다. 그 해, 허핑턴포스트는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정치 사이트 1위에 랭크되었을뿐 만 아니라 방문자 수 또한 미국의 유명한 주요 일간지들의 방문자 수를 넘어서고 있었으니까. 누구도 이런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줄 몰랐다. 그것을 현실로 만든 오늘의 허핑턴포스트를 낳게 한 이가 바로 아리아나 허핑턴이다.




 
 이번에 나온 '제3의 성공(THRIVE)'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출간되는 그녀의 책이자 1950년에 그리스 아테네에서 태어나 1973년에 처음으로 책을 집필했던 그녀가 2014년인 올해 14번째로 내놓는 책이다. 원래 아리아나 허핑턴은 정치 성향이 강했고 그리스인답게 투사 기질도 있는 편이었다. 그녀의 적극적이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격이 오늘의 허핑턴포스트를 낳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하지만 '제3의 성공'을 들춰본다면 이런 내 말이 의아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책에는 그러한 그녀의 성향이나 기질을 전혀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 그녀는 변했다. 허핑턴포스트를 초기부터 보아왔던 사람들도 그런 평가를 내렸다. 그녀는 보수적이 되었다. 관심도 정치에서 삶으로 이동했다. '어떻게 하면 보다 제대로 된 삶을 살 것인가?' 이제 이것이 그녀의 화두가 되었다. 그 계기가 있었다. 때는 2007년 4월 6일. 그녀는 사무실 책상에서 일어서려다 갑자기 쓰러졌다. 쓰러지면서 책상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혔고 광대뼈가 부러지면서 기절해버렸다. 허핑턴포스트의 성공을 위해 너무 자신을 몰아세운 나머지 과로와 수면 부족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녀는 그걸 경고라 생각했고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그 때, 그녀는 이미 타임지에서 세계에서 가장 영량력 있는 100인 중 한 사람으로 뽑을 정도로 성공한 삶을 살고 있었으나 그 사건은 지금의 삶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그 시각 속에서 그녀는 지금의 삶을 성공적이라 말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렇다면 어떤 삶이어야 그것이 가능할까를 추구했다. '제3의 성공'은 바로 그런 노력의 결실이라 할 수 있는 책이다.
 

 나도 잘 안다. 성공한 사람의 삶에 대한 이야기처럼 식상하고 지루한 책도 또 없다는 것을. 아무리 그 아리아나 허핑턴의 책이라고는 하지만 이 책을 들었을 때, 그런 걱정이 전혀 없었다고는 말 못 하겠다. 앞에서 내가 아리아나 허핑턴이 변했다는 말까지 하지 않았나? 하지만 지금 나는 이렇게 분명히 말한다. 그건 기우였다고. '제3의 성공'은 흔한 성공한 자들의 삶에 대한 조언과는 다르다. 잠깐 비교를 해볼까? 대부분 성공한 자들의 조언은 말 뿐인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부지런히 살아야 한다'고 그들이 말한다면 그냥 그것 뿐인 것이다. 온갖 미사여구가 동원되고 미문으로 차고 넘치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 그 근거에 대한 것은 정작 빠져있다. 아니, 있긴 있다. 그래, 자기 이야기. 자기가 이래저래 해서 이렇게 성공했으니 잔말말고 그대로 따르라는 식이다. 이런 책에서 느끼는 식상함, 지루함은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교과서적인 말만 잔뜩 늘어놓고 기껏 근거를 댄다는 것이 자기 자랑 밖에는 없으니까.

 하지만 아리아나 허핑턴은 다르다. '제3의 성공'은 다른 책에서는 생략된 그 근거에 오히려 집중한다. '번창하다'라는 뜻을 가진 'THRIVE'라는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이 책은 어떻게 하면 그렇게 좋은 삶을 살 수 있을 지 알려주는 책이다. 미리 말해두는데, 그것에 대해서 아리아나 허핑턴이 지금까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어떤 기발한 해답을 내놓을 것이라 기대한다면 그만두는 게 좋다. 여기엔 좋은 삶을 살아가는데 당신이 예상했던 대답을 벗어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솔직히 흔한 말로 '뻔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를테면 첫 파트가 되는 '웰빙'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 아라아나 허핑턴이 제안하는 것들을 한 번볼까? '명상하기', '충분히 수면하기',' 걷기' 그리고 '반려동물 기르기'다.  처음 듣는 것이 있는가? 너무 뻔해서 어째 '피식'하고 헛웃음이 날 지경이 아닌가? 그렇다. 여기에 별로 새로울 것은 없다. 오히려 흔하디 흔만 것만 있을 뿐. 그렇다면 나는 왜 이리 주저리주저리 이 책에 대해 쓰고 있을까?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데. 그러니 답은 바로 나온다. 이 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력으로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여타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와는 다르게 전개되는 이 책의 매력에 대해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글이 이만한 길이에 이를 때쯤엔 어쩌면 날지도 모르는 당신의 짜증을 무릎쓰고서라도 여기까지 떠들어온 것이다. 그렇게 당신을 이처럼 수고롭게 만들면서까지 말해야 했던 이 책의 매력이 바로 '근거에 대한 집중'이다. 아리아나 허핑턴은 해답 보다는 과정을, 그렇게 명령 보다는 이유를 독자들에게 더 이해시키려는 책이다. 그래서 다른 책들과 다르고 앞에서 말한 것처럼 뻔한 말들이지만 오히려 더욱 설득적이다. 그것을 독자들에게 충분히 납득시키기 위해 과학적 연구 결과, 다른 학자들의 이론, 다른 이들의 삶이나 말까지 모조리 가져와 근거로 제시하기 때문이다. 명상, 수면, 걷기, 반려동물을 비롯하여 모두가 다 그렇다. 당신은 여기서 참 많은 것들을 듣게 될 것이다. 심리학도, 진화학도, 생물학도, 사회학도, 경제학도, 철학도. 탈무드 식으로 말하자면 이 책은 당신을 성공이라는 물가로 억지로 끌고가지 않는다. 그 많은 근거와 사려깊은 설명을 통해 스스로 그 물가로 가도록 만든다. 그러니 다르다. 그래서 이렇게 수다스럽게 된다.

 그 물가로 당신 스스로 걷게 만들기 위해 아리아나 허핑턴은 '웰빙', '지혜', '경이' 그리고 '베풂', 이렇게 네 개이 장에다 필요한 당근들을 무던히도 놓아 두었다. 물론 그 당근들은 우리가 너무 익히도 아는 것들이다. '지헤'만 해도 혼자 조용히 머물며 마음의 균형을 찾는 것,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나쁜 습관을 깨뜨리는 것 등인데 다 어디서 많이 본 것들이 아니던가?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보았다면 잘 알겠지만 그 처절한 약육강식의 미국 언론 시장에서 무명의 존재였던 '허핑턴포스트'를 업계 1위로 만들고 14권의 책까지 쓴(게다가 그녀는 오랜 편집자 경력 또한 있다.), 시쳇 말로 그 바닥에서 잔뼈가 굵을 대로 굵은 아리아나 허핑턴이 초등학생이 보기에도 하품이 날만한 말을 들려주려고 이 책을 썼을 리는 만무하다. 당연히 이 책엔 그 이상의 것이 있다. 꺼진 불도 다시 보듯이 그 단순한 진리를 다시 보게 만드는 것, 바로 그것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새롭게 보기'다. 흔히들 좋은 삶을 위한 진리들은 단순하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살면서 알아야 할 모든 것들은 유치원에서 다 배웠다고 말 할 정도다. 사실 아라아나 허핑턴이 성공적인 삶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들에 우리들 역시 인정한다. 다만 우리가 인상을 찡그리게 되는 것은 그 말들이 너무 원론적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우리가 이런 책을 찾는 것은 딱 하나다. 지름길이 있지 않을까 기대하기 때문이다. 독창적이고 기발한 방법에 대한 기대도 사실은 그것이다. 그 독창적이고 기발한 방법들이 원론적이라서 너무 더딘 걸음들을 단축시켜 주리라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허다한 자기개발서를 읽었어도 여전한 우리 모습을 보면서 확실히 깨달았듯이 그런 지름길은 없다. 축지법도 없다. 그저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가는 것 말고는. 진리는 참으로 단순한 것을.

 하지만 그 길은 늘 보는 익숙한 풍경을 계속 보고가는 것과 같다. 단순한 진리이기에 새로울 게 없고 식상한 풍경에 지루한 길이다. 그래서 아리아나 허핑턴은 새롭게 보기를 이 책에서 제안하는 것이다. 같은 풍경이라도 시선의 방향을 바꾸면 전혀 다르게 보게 된다. 그녀는 그 익숙한 길을 아주 새로운 풍경으로 보도록 이끈다. 바로 그 많은, 그리고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근거들을 통해서다. 그것은 마치 단색으로 칠해져 있던 벽의 페인트를 벗기고 그 안에 원래 있었던 화려하고 다양한 색깔들을 드러내는 것과 같아서 우리는 그 식상한 진리에 그토록 많은 합당한 이유가 존재함에 놀라게 되고 그러함으로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거구나 납득하게 된다. 걸어야 하기 때문에 억지로 걸어가는 길이 아니라 스스로 마음 속으로부터 수긍한 가운데 걷는 길이라 이제 그 길은 남의 길이 아니며 나의 길이며 그래서 걸음은 좀 더 가볍고 여정의 풍경은 새롭게 보이게 된다. 그게 바로 '경이'다. 익숙한 삶을 전혀 새롭게 바라보게 만드는 낯선 경험. 아리아나 허핑턴은 이 경이를 이 책에서 독립한 장으로 만들어 따로 설명할만큼 중요하게 생각했다. 바로 그 경이를 그녀는 처음으로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를 보고 놀라는 신랑처럼 우리가 아주 식상한 진리라고 생각했던 것에다 주려고 한 것이다. 제목 그대로 그녀가 가져다 준 새로운 햇살과 비 그리고 바람을 통해 우리가 죽죽 성장이라는 잔가지를 뻗어 무성한 나무가 되도록.

 '제3의 성공'은 바로 그러한 책이다. 에필로그의 마지막에서 그녀는 이렇게 당부한다.

 당신도 설 자리를 찾아라. 지혜와 마음의 평화와 장점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라.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당신이 규정한 성공의 기준에 따라 당신의 생각대로 세상을 다시 만들어보라. 그럼 우리 모두가 번영하고, 지금보다 더 품위 있고 더 즐거운 삶, 또 다른 사람들과 더 교감하고 감사하며 사랑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위로! 내면으로! (P. 323)

 나도 그렇게 되길 바란다. 제대로 깊이 뿌리내릴 대지와 햇살과 비를 아낌없이 베풀어줄 하늘을 찾게 되길. 그리하여 무성한 나무가 되어 넓은 그늘 아래 사람들을 쉬게 할 수 있게 되기를. 모두가 그렇게 되어 거대한 숲을 이룰 수 있으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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