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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견디는 기쁨 - 힘든 시절에 벗에게 보내는 편지
헤르만 헤세 지음, 유혜자 옮김 / 문예춘추사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따스하다.
고양이는 베란다에 늘어지게 누워 그 햇살을 온 몸으로 음미하는 중이다.
문턱에 앉아 발가락 끝으로 고양이 수염을 살살 간지르며 책을 읽고 있다.
헤르만 헤세의 '삶을 견디는 기쁨'을...
문득 시선이 머문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내 인생을 바라보면 나는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또 착각인지는 몰라도 그렇게 불행했던 것 같지도 않다. 사실 행복과 불행에 대해 묻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누구나 인생을 돌아보면 즐거웠던 날보다 불행했던 날이 더 오래 기억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선하고 악한 것을 제대로 느끼며, 겉으로 보이는 것 말고도 내면적이고 실질적이며 우연이 아닌 운명을 감당하는 것이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기준이라면 내 인생은 별로 불쌍하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사람은 사람을 외면할 수 있지만 운명은 그렇지 못하다. 오직 신만이 주관하는 외적인 운명이 나를 스치고 지나간다면, 달콤함이든 참담함이든 내게 주어진 시간은 나 혼자 짊어지고 책임져야 한다. ('외로운 밤' 첫 부분)
이래서 내가 헤세를 좋아하는구나 하고 생각한다. 내가 삶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던 것, 하지만 얼른 말로 되어나오지 못했던 것을 헤세는 이렇게 정확하게 딱 집어내 언어로 표현하고 있으니. 그래, 삶의 길을 누가 대신 걸어줄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힘겹게 사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다 외로운 밤을 되도록 적게 보내기 위해서는 아닐까? 사람들은 되도록 삶이 언제나 이렇게 환하고 다사로운 햇살 속에 있기를 바란다. 지금도 마음껏 햇살을 누리고 있는 한가로운 고양이처럼 되기를...
정작 헤세는 그런 외로운 밤을 많이 보냈던 것 같다. 이런 말을 하고 있으니,
인간의 삶은 어둡고 슬픈 밤과 같아서 가끔 번개라도 쳐서 잠시나마 주변의 어두움을 당당하게 물리친 것처럼 보이게 해 주지 않으면 잘 견뎌 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경험이 바탕되지 않으면 쉽게 나올 것 같지 않을 문장 같다. 어린 날의 헤세는 힘겨웠던 것으로 알고 있다. 많은 두렵고 외로운 밤을 보냈던 아이. 얼마나 그런 어둔 밤을 많이 보냈으면 다른 아이들이라면 무서워서 이불 속에 들어가도록 했을 번개를 자신을 견디게 해 준 힘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굶주려서 무작정 사람을 따라오는 고양이를 바라보는 것처럼 애잔하기도 하다.
-헤세의 산문집을 이렇게 두 번째로 만난다. 표지의 그림들은 모두 헤세가 그린 그림에서 발췌한 것으로 책에는 헤세가 그린 그림들이 사이사이에 일러스트처럼 실려있다. -
하지만 그렇다고 헤세가 외로운 밤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밤을 숱하게 보낸 그이지만 오히려 그런 밤이야 말로 제목처럼 삶을 견디게 만드는 기쁨이라고 보고 있다. 왜냐하면 그런 밤은 바쁘고 떠들석한 일상 속에서는 잘 할 수 없었던 나의 내면으로 침잠하여 깊이 생각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깊이 생각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는 사소한 일도 즐거워하고 그것을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특별한 다른 것을 원하지 않는다.(p. 64)
이 앞에 있는 '잠 못 이루는 밤'이라는 글에도 이와 비슷한 구절이 있다.
잠은 자연이 주는 귀중한 선물이자 친구이며, 피난처이고 마법사이자 나를 따스하게 위로해주는 손길이다. 오랫동안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잠깐 조는 정도만으로도 만족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보면 나는 너무 가슴이 아프다. 그렇지만 또한 평생 동안 잠 못 이루는 밤을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도 절대 사랑할 수 없을 것 같다.(p. 45)
'삶은 견디는 기쁨'은 '힘든 밤을 지새우고, 사랑에 외면당하고, 선의를 짓밟히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위로가 되고 버틸 수 있는 힘을 주려는 시와 산문들로 이루어져 있다. 헤세에게 있어 그것은 자신을 두려움과 외로움에 떨게 했던 밤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이다. 그 밤을 사랑하게 만든 것은 텅 빈 무위의 시간 속에서 낮에는 일상의 소음 속에 가려져 있었던 사물들의 새로운 모습들을 발견하게 되는 경이였으며 그 경이감이 가져온 낯선 경험을 헤아리는 가운데 이윽고 그 전에는 내려가보지 못했던 깊은 자신의 내면 속으로 타고 내려갈 수 있게 만든 사유의 사다리였다. 헤세는 그 사유를 '한밤중에 떠나는 행군'이라고 보는 듯 하다. 그는 그걸 제목으로 시를 지었는데 거기서 그는 사유라는 한밤중에 떠나는 행군이 우리를 어디로 데리고 갈 것인지에 대해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영혼이여, 영혼이여, 준비하라!
먼 형제가 부르는 소리.
시간의 어둠 속에서
황금 계단으로 그대를 부르네.
영혼이여, 영혼이여, 신호를 받아들여라!
드넓은 광활함에 몸을 씻어라!
신이 너의 어두운 길을
환한 길로 인도하리니.
(p. 69)
간단히 말하자면 '삶을 견디는 기쁨'은 헤세가 했던 것처럼 우리 삶을 부정적으로 여기게 만드는 것들을 받아들이고 오히려 사랑하게 만드는 책이다. 불면, 외로움, 고통이 닥쳐왔다면 피하거나 숨고 내치려 하지만 말고 가만히 품어보라는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이전에는 몰랐던 그 이면에 놓인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른다고.
가벼운 감기로 인해 어느 날 갑자기 푹 쓰러지는 사람은 언제나 '건강하기만'한 사람들이며 고통받는 것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다. 고통은 사람을 부드럽게도 만들고, 강철처럼 단단하게도 만들어 준다.(p. 67)
'내게는 둘과 같은 이야기'라는 시에서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아픔과 쾌락은 이제 내게
하나가 되어 스며들었다.
그것이 나를 편안하게 하든, 아프게 하든
둘 다 하나가 되어 버렸다.
(p. 118)
어떤 초연함. 무엇이 찾아오든 껍질이 없어서 신경 다발이 훤히 다 노출된 갑각류처럼 먼저 화들짝 놀라기 보다는 암탉이 알을 품듯 내부에서 천천히 헤아려 보는 것. 그 모든 것들을 다른 것도 아닌 온전한 사유의 시간으로 초대하는 것. 나는 이것이 바로 헤세가 이 책에서 들려주려는 '삶을 견디는 기쁨'이 아닌가 싶다.
다시 밝은 빛을 보고자 한다면 슬픔과 절망을 뚫고 나가야만 한다.(p. 167)
그러고 보니, 헤세를 읽는 데 어울리는 시간은 이런 한낮이 아니라 밤인 것 같다. 이왕이면 다락방 같은 곳에서 초생달 하나 덩그마니 뜬 밤하늘이 올려다보이는 들창 앞 앉은뱅이 책상에서 작은 스탠드 조명 하나를 켜두고 읽으면 더욱 어울릴 것 같다.
아얏! 고양이가 엄지발가락을 깨문다. 수염을 자꾸 건드려 화가 났나 보다. 헤세의 조언대로 아프지만 이 고통도 사랑해야지. 물었던 너도 사랑하고.
마지막으로 꼭 인용하고픈 헤세의 시
-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 -
화요일에 할 일을
목요일로 미루는 일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사람이 나는 불쌍하다.
그는 그렇게 하면 수요일이 몹시 유쾌하다는 것을
아직 알지 못한다.
(p. 280)
내 말이. 역시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작가라니까, 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