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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딘 신간평가단을 하면서 언제나 봄은 내게 신간평가단 첫 추천 페이퍼를 쓰는 것으로 시작되곤 했다. 그렇게 남들에겐 3월일지 몰라도 내게 봄은 4월이다. 오늘 그렇지 않아도 정독도서관에 다녀왔는데 벚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도서관은 바야흐로 벚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연인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는데 다들 얼마나 생기있어 보이던지 정말 봄이 오긴 왔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날 밤에 난 또 이렇게 신간 추천 페이퍼를 쓴다. 뭔가 피할 수 없는 운명 같다. 아무튼 다섯 권의 인문 시간을 이렇게 추천해 본다.

 

 

 1. 정념의 기호학 - 알지르다시 쥘리엥 그레마스와 자크 퐁타뉴 공저/ 강

 

  알지르다스 쥘리엥 그레마스..

 얼마만에 다시 들어보는 이름인지. 한 때는 언어학이나 기호학 책만 펴들면 보게 되는 이름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것의 팔할은 반가움 때문이다. '정념의 기호학'은 그의 제자인 자크 퐁타뉴와 함께 쓴 책이다. 그레마스가 죽기 1년 전에 발표된 책으로 주로 '담화'에 대한 분석을 보여주는 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특히나 3장에서 전개될 '질투'가 흥미롭다.

 들뢰즈에 따르면 질투는 대표적인 타자에 대한 경험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질투란 어디까지나 그 대상에 대해 자신이 아무 것도 할 수 없음, 즉 절대적 무기력을 나타내는 감정인데 때문에 타자의 윤리학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이것이 통사론적으로는 어떻게 분석될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 책의 마지막엔 질투를 상호주체적 관점에서도 분석하고 있는 것 같아서 더욱 관심이 간다.

 

 

 2. 살아있는 한국 신화 - 신동흔 /한겨례

 

 

 예전 우리나라의 무속 신화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거기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우리나라 무속인들이 주문 외우듯 하는 말들이 그냥 평범한 주문인 것이 아니라 알고보니 우리나라의 창세 신화를 말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원래 '오디세이아'나 '일리아드'도 호메로스가 말로 사람들에게 들려주었던 것들이다. 즉 호메로스 생전에는 문자로 쓰여지지 못하고 기억력에 의존하여 구전되다가 어느 시점에 문자로 정착되었다고 알고 있다. 무속인들이 말하는 창세 신화가 그와 같았다. 문자화되지 못했던 우리나라 고유의 창세 신화가 이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자들의 기억 속에서 그렇게 대대로 구전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지금 나온 책은 개정판이다. 서점에서 실물을 보았는데 외관이 참으로 근사하다. 그동안 살면서 잊어버린 것도 많은데 다시금 옛 기억을 떠올리며 읽어보고 싶다.

 

 

 3. 키치, 달콤한 독약 - 조중걸 / 지혜정원

 

 

  키치는 확실히 밀란 쿤데라의 말대로 순응주의의 산물이다. 이 책의 부제가 달콤한 독약인 것은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이를테면 막장 드라마도 키치라고 할 수 있다. 멜로 드라마를 정착시킨 더글라스 서크의 영화들은 연인들이 끝내 계층적 차이로 맺어지지 못하게 하거나 설령 맺어지더라도 그것이 현실에서는 전혀 일어날 수 없는 일인 것처럼 묘사하여 현실에서는 그러한 계급적 화해가 절대 불가능한 것으로 관객들이 여길 수 있도록 했다. 영화는 그렇게 관객들에게 자신의 처지를 사유하게 만들었고 현실에 분명하게 가로놓인 계급적 장벽들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멜로 드라마로부터 파생된 막장 드라마에겐 그런 것들이 없다. 있는 것은 다만 현실에서 느낀 좌절과 분노를 쏟아낼 수 있는 변기 뿐이다. 악인은 언제나 처벌받고 갈등은 성공적으로 봉합되어 보는 이들은 속편하게 자신의 일상으로 다시 돌아간다. 그들은 남들도 다 저렇게 지지리 궁상으로 사는구나 여기면서 정작 모두의 삶을 그렇게 만드는 이유에 대해서는 생각해보려 하지 않는다. 키치는 그렇게 사유의 사각지대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그 사각지대야말로 사실은 진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공간이다. 키치를 사유함은 분명 우리를 둘러싼 오늘의 현실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볼 수 있게 만드는 필터가 될 수 있다. 이 책은 키치의 모든 것을 분석하고 있다고 한다. 하여, 읽어보고 싶다.

 

 4. 세계문제와 자본주의 문화 - 리처드 로빈스 / 돌베개

 

 

  현대는 일찌기 장 보드리야르가 이야기했듯이 '소비의 시대'다. 무엇을 살 수 있는가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시대인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명품을 욕망하고 되도록 남에게 과시할 수 있는 무언가를 구입하고 싶어한다. '브랜드'가 실제 상품보다 더 중요하게 취급되는 것도 그래서다. 그 브랜드가 정말로 이탈리아 장인이 한 땀 한 땀 하는 식으로 디자인이나 실제 상품의 만듦새가 다른 것들보다 월등히 뛰어나서 사람들이 찾는 게 아니다. 단지 그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그 브랜드를 남들이 알아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프로이트가 말했듯 소비의 시대란 '도착증의 시대'다. 나의 필요가 아닌 남이 욕망하는 게 무엇인가가 전부인 시대.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면 이렇게 어리석은 세상은 또 없을 것 같은 시대.

 

 리처드 로빈스의 이 책은 그러한 시대가 어떻게 해서 우리에게 도래했는지 임마누엘 윌러스타인의 세계체제론을 가져와 분석한다. 거기에 가장 많은 역할을 바로 '국민국가'가 했다고 그는 보고 있고 그것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는데 그 점에서 국민국가를 '네이선'이라 부르며 로빈스와 비슷하게 바라보았던 가라타니 고진이 떠오르기도 한다. 812쪽의 방대한 분량이지만 바로 오늘을 낱낱이 훑어주는 책이므로 기꺼이 뛰어들고 싶다.

 

 5. 반란의 도시 - 데이비드 하비 / 에이도스

 

 

    데이비드 하비라는 이름은 '포스트 모더니티의 조건'으로 처음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졌지만 그의 주 종목은 어디까지나 공간의 정치경제학이다. 누구나 마르크스의 한계를 말하고 있을 때 그는 그래도 마르크스를 버리지 않았으며 다시금 새롭게 바라봄으로 그 한계를 돌파해 나갔다. 대표작 '자본의 한계'가 그랬다. 신자유주의가 창궐하던 당시에는 '맑스 자본 강의'를 펴내기도 했다. 늘 자신의 이론에 가장 충실한 밑바탕이 되어주었던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다시금 읽고 해석한 책이었다. '반란의 도시'는 그 이후의 하비를 보여주는 책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아닌 신자유주의에 지배되어버린 도시의 의미를 탐색하고 월가의 점령 운동을 통해 그 공간을 탈환하기 위한 방법들들을 사유한다는 게 이채롭게 느껴진다. 모더니티의 공간으로서 파리가 프랑스 대혁명을 일으켰던 대중의 저항을 전략적으로 배제하기 위해 만들어졌듯이 신자유주의의 대표적 공간인 런던과 뉴욕은 또 어떤 기획을 통해 만들어졌을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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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4-04-07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는 다른 쪽 책을 보게 되셨군요 마음에 드는 책, 보고 싶은 책 보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읽어보지 못한 책에 대해 말하기 쉽지 않을 텐데 그런 것도 잘하시는군요 이것은 전부터 알고 있던 거군요 어떤 책을 보다가 그리스 로마 신화뿐 아니라 우리나라 신화도 알아야 할 텐데 했습니다 하지만 보고 싶은 것을 보다보면 그렇게 생각한 것은 다 잊어버리고 맙니다 실제 경험하면서 알지 못해도 책을 보고라도 알면 좋을 텐데, '몰라도 사는 데 문제없잖아' 하는군요^^


희선

ICE-9 2014-04-07 00:26   좋아요 0 | URL
책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저 중에 그레마스와 하비는 좀 알고 있는 학자들이라서 주저리 늘어놓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사실 이 글은 원래 썼던 것에서 한참 줄인 것이라서 좀 문맥이 다소 맞지 않는 것도 있을 것 같네요(그래서 다시 읽어보지 못하겠어요ㅠ ㅠ)아무튼 이번 신간평가단은 좀 새롭게 해보려는 마음으로 과감히 파트도 바꿔봤습니다. 잘 될지 지켜봐주세요^ ^
만일 우리나라 신화가 선정된다면 희선님이 별도로 책을 읽지 않아도 되도록 아주 자세히 리뷰하겠습니다.^ ^
몰라도 사는 데 문제는 없지만 알아서 우리 삶이 더욱 풍요로워질 수는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어차피 공수레공수거가 인생이라면 얼마나 진정으로 가치 있고 좋은 덤을 많이 가져가는가가 삶의 가치를 나타내는 척도가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