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책들
 이동진.김중혁 지음 / 예담 /

 2016년 11월

 

1,

이 책의 서문에서 김중혁은 '어릴 때부터 질문이 많은 아이였다'고 시작하는데,

나는 어릴때부터 의심이라고 썼다가 지우고, 의문이 많은 아이였다.

이 말은 김중혁의,

'세계의 이치를 캐묻는 질문은 전혀 없었고, 사소하고 자질구레한 물음이 대부분이었다. 물어보면 대답해주지 않았다. 어른들은 바빴다."넌 대체 왜 그런 게 궁금하니?"라든가 "그런 건 나중에 차차 알게 된단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많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어른들도 답을 몰랐던 거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시지. 답을 피했던 어른들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답을 해주어야 하는 처지의 어른이 되었건만, 답을 해주는건 별로 재미있는 일이 아니다. 알고 있는 걸 대답해줄 때도 난처하긴 마찬가지다. 가끔 누군가의 질문에 답을 할 때마다 드는 생각은, '내가 말하고 있는 게 정말 답이 맞을까? 다른 답은 없을까? 또 다른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라는 것이다. 답을 하면서도 질문을 하고 있는 셈이다.(4쪽)

라는 구절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고 반박이기도 하다.

나의 의문이라는 것은 이를테면 저 먼 우주를 향해 망원경을 펼치는 것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주변에 일일이 현미경을 들이대는 소심한 작업이었으니까 말이다.

예를 들면 사람 몸의 땀구멍은 몇 개인가 부터 시작해서,

머리카락의 갯수는 몇개인가 따위,

다른 사람이 봤을때 하나도 중요하거나 심각하지 않을 것들이 궁금했다.

때문에 대놓고 누구에게 물어보지도 않았지만,

행여 의문문의 형태를 띄었더라도 대답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이쯤에서 질문과 의문은 비슷한 형태를 취하지만,

질문은 누군가에게 하는 것이고, 의문은 자기 자신의 안에다 품는 것이다, 는 점에서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한때 질문의 답을 구하기 위해 책을 읽었던 적이 있다.

책에 모든 해답이 들어있으리라 생각하고 책을 읽었으나,

답을 얻지 못할 때도 있었고,

선문답마냥 내가 원하는 것과는 다른 형태의 답이어서,

그게 답인지도 모르고 지나쳤던 적도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니, 질문들은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졌다.

그걸 김중혁은 이렇게 얘기한다.

'빨간책방'을 함께하면서 질문하는 법에 대해 많이 배웠다. 답을 구하지 않는 물음이더라도 질문은 정교해야 한다는 걸 배웠고, 질문의 꼬리를 무는 질문을 묻는 법도 배웠다. 어쩌면 가장 즐거운 대화는 답도 없이, 밤새도록 질문하는 방식일지 모른다. 시간제약이 없었다면, 그리고 배가 고프지만 않았더라면, 목이 말라 맥주 생각만 나지 않았더라면, 차라리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방송을 했었더라면 밤을 새울 수도 있었다.(5쪽)

그러고 보면 책을 읽는다는것은 질문이든 의문이든 무언가를 하는 것이고,

질문을 부풀리며 바깥으로의 세계를 확장하든, 의문을 품어 안으로의 세계를 공고히 하든 것이든,

답을 찾는게 목적이 아니라, 더 많은 질문이 생겼으면 좋겠는 것이라는 걸 알겠다.

바로 다음 장,

이동진은 서문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그러니까, 좋은 책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좋지 않은 책은 간단하고도 명확한 답변을 자신있게 제시하지만, 좋은 책은 늘 에둘러 가고 머뭇거리다가 결국 긴 꼬리를 가진 질문을 남긴다. ㆍㆍㆍㆍㆍㆍ그러니 부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제기된 물음에 연이어서 물을 수 있기를. 물음에 물음을 얹어가며 치열하게 물을 수 있기를. 물음의 연쇄 속에서 지치지 않고 계속 물을 수 있기를. 그리고 물음의 반향에 서로 귀 기울여가며 함께 물을 수 있기를.(6~7쪽)

 

그러면서 여러권의 책을 소개하는데,

그중 내가 건드린 책은 '총, 균,쇠',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정도이고,

읽은 책은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 '작가란 무엇인가'

8권 중 4권이면 선방이지 싶다.

뒀다가 나머지 4권을 읽을 때마다 들여다봐도 좋겠다.

 

2,

어르신 한 분이 며칠째 내 책상 앞을 떠나가지 않으시면서 쌓아 놓은 책을 눈여겨 보시더니,

"책을 참 많이 읽으시네요."

하면서 말을 걸어온다.

"아, 네에~"

하고 말끝을 흐리자, 작정을 하고 달려드신다.

"내가 박정희 대통령에 관한 책을 선물받았는데, 읽어볼라우?"

라고 하시길래,

"제가 책 편식이 심해서요, 책은 제가 직접 골라 읽어요."

라고 했더니,

"그래도 박정희 대통령 각하 때문에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됐고..."

어쩌고 하는 일장연설을 하시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어떻게든 참으려고 했다.

그런데, 벌써 몇 주째 박사모 집회에 참여했으며, 요번주에도 참여할 거라고 하시면서,

그런 의미에서 박정희 대통령에 관한 책 몇권을 갖다 주시겠다는 거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른데, 강요하시는  건 아니죠~!"라고 했더니,

몇번 더 이렇게 저렇게 말을 부치다가 삐쳐서 가버리셨다.

 

3.

 

 

 

 

 당신의 정원 나무 아래
 프레드 바르가스 지음, 양영란 옮김 /

 비채 / 2016년 9월

 

프랑스 소설은 좀체로 안 읽는데, '프레드 바르가스'는 좋았던 기억이 있다.

'당신의 정원 나무 아래'라는 이 책은 예전에 '죽은자들이여 일어나라'의 개정판이다.

 

얘기가 될려고 그랬겠지만,

이 책속의 남편은 아내 소피아가 없어졌는데도 심드렁해서 찾지 않는다, 오히려 '쥘리에트'가 열심이다.
개인적으론 '소피아'란 캐릭터가 매력적이어서,

좀 더 오랫동안 등장했으면 싶었는데 너무 일찍 죽어버려 안타까웠다.
책을 읽어가며 관심은 자연스럽게 '소피아'에게서 '쥘리에트'에게로 옮아갔는데,

'소피아와 친구가 될 수 있었겠냐'고 의심하는 형사들에게 책을 많이 읽어서라고 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책을 읽는 건 어쩌면 다른 뭔가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곤 했죠.'

라고 소피아의 말을 인용하는 부분에서 관심이 더해졌다.

한가지 혼란스러웠던건, 

프레드 바르가스의 다른 책을 읽으면서도 들었던 생각인데,

그녀의 가정사를 의심하여야 할지 프랑스란 나라의 가정사가 원래 이런 것이지 혼란스러웠는데,

제대로 된 가정이나 가족이 없다.

해체된 가정이나 가족관계가 일반적인 것처럼 등장한다.

인간 관계 따위, 배려와 소통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면 이런 살인 사건은 일어나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싶어 아쉬웠다.

쥘리에트를 빌어,
'...고독하게 살던 몇 년동안 그놈의 고독과 씨름하기 위해 내가 수천 페이지의 책을 읽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단 말이예요...'
라고 하는 부분에서 한 때 고독했었을 작가의 내면을 엿볼 수 있었다.

 

암튼 쥘리에트가 책은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제대로 된 책읽기엔 실패하지 않았나 싶다.

사회적 신분상승을 위해 읽은 책으로 지식습득은 되었을지 모르지만,

인격형성에서는, 적어도 고독과의 씨름에서는 실패하였으니 말이다.

고독과 맞서든 고독과 친구가 되든 각자의 몫으로 남겨놓고,

알라딘 서재가 좋은 건 이런 이유에서다.

 

알라딘 서재 이곳에서 수많은 알라디너들을 만난다.

때로 리뷰나 페이퍼를 읽다보면,

겉으로는 당차고 씩씩함을 가장하나,

뭐라도 한마디 하려고 다가가려 하면,

급정색을 하고 방어막을 치는 걸 보게 된다.

그건 댓글과 덧글에서도 나타난다.

나도 양쪽에 가변적으로 적용된다.

 

지식습득을 위해서라면,

책을 읽으면 되고,

책을 읽으면서 꾸준히 '질문을 하면 된다'고 얘기하는 책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지레 방어막을 치게 되면,

그 방어막에 차단 당하는 입장에선,

한걸음 다가가야지 싶다가도 부질없지 싶어 안으로 움추러들게 된다.

내 나이가 일부러 누군가에게 싸움을 걸거나 방어막을 부수려 달려들 나이는 아니다.

 

그러고보면, 책이고 음악이고 그림이고 그냥 읽고 듣고 보기만 해서 되는게 아니라,

그런 것들중 어느 것이고 어떻게든 자연스럽고 자발적으로  마음을 울리게 되어,

변화시키는데에서 의미를 찾아야 겠다.

더디고 미미할지라도~!

 

오늘의 '1일 1그림', 제목은 '이쁜 그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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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1-16 14:48   좋아요 0 | URL
ㅎㅎ 박사모가 추천하는 책이 박정희 밖에 더 있겠습니까요..ㄷㄷㄷㄷ

양철나무꾼 2017-01-17 17:13   좋아요 0 | URL
별게 다 있던걸요, 그네의 말과 글...어쩌구~하는 것들~^^

북프리쿠키 2017-01-16 14:57   좋아요 0 | URL
유대인의 자녀공부법 ‘하브루타‘를 떠올리게 하네요. 학교에서 뭘 배웠는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뭘 질문했는가에 큰 가치를 두는...
tv에서 하버드대 토론장을 방영했는데
끼리끼리 엄청 떠들더라구요
끊임없이 주고 받는 토론들.
느낀점이 많더군요.

참 박사모 할부지 얘긴 넘 웃겼어요.
한편으론 그들도 피해자란 생각이 들기도 해서 처량한 기분이 듭니다.~
양철나무꾼님의 단호한 말투가 떠올라
귀엽기도 했구요ㅋㅋ

그림의 모델 누구신지
˝이쁜그녀˝맞네요ㅎㅎ
더디고 미미할지라도 그림솜씨가
날로 발전하십니다^^;



양철나무꾼 2017-01-17 17:24   좋아요 1 | URL
유태인이나 하버드까지 않고도 말이죠,
전현무가 사회를 보는 비정삼회담 같은 것만 봐도.
세계 각국 젊은이들의 독특한 개성을 엿볼 수 있어서 좋더라구요.
그들을 보면서 느낀건 우리나라만 빼놓고,
토론 할 줄을 안다는 거였습니다.
다름을 인정하고 쿨하게 받아들인다고 해야 할까요.

그 할아버지는 박사모라는 말을 붙이기가 민망할 정도의,
어찌보면 우리나라의 보수를 대표하는 무명씨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사모가 아니라도,
그 또래의 중산층 이상의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생각을 가지고 게시더라구요.
그 분 같은 경우, 솔직히 자기 표현을 하신거지만,
다른 사람들의 시선 속에 숨어서 그리 행동하시는 분들도 좀 있으시더라구요.

아닌 줄 알게 되면, 늦더라도 바꾸면 되는데,
왜 눈 감고 귀닫고 사는 것인지, 원~(,.)

항간에 떠도는 말에 식초를 먹으면 유연해진다고 하잖아요.
그런 분들께 식초 한 사발 씩 대접하고 싶어지는 요즘입니다~--;

그림솜씨가 나아진다고 해주셔서,
완전 신났습니다~^^

cyrus 2017-01-16 15:14   좋아요 0 | URL
이러다가 정말 지하철 타다가 박사모 어르신들이 돌아다니면서 박정희가 진리라고 떠들고 다니겠어요.

양철나무꾼 2017-01-17 17:26   좋아요 0 | URL
님은 대구라고 하셨나요?
대구는 더 흔하겠어요.
어르신들 많이 타는 지하철 타지마시고,
버스를 타세요, ㅋ~.

너무 소심한 대책인가요?^^

cyrus 2017-01-17 17:37   좋아요 0 | URL
외출할 때 지하철보다 버스를 이용해요. 버스가 편해요. 창 밖을 구경할 수 있어서 좋아요. ^^

CREBBP 2017-01-16 15:54   좋아요 0 | URL
그럴 땐 답례로 줄만한 다카키 마사오의 친일 행적 10가지 뭐 이런 책 없나요? 제대로된 근대사 책 몇권만 읽어도 그리 행동하지는 않을텐데 말이죠. 질문을 정교하게 하는 과정에서 대부분 답이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고로 스스로 질문하거나, 대화를 깊이 있고 정교하게 하거나가 필요할 거 같아요

양철나무꾼 2017-01-17 17:31   좋아요 0 | URL
여러 토론프로그램을 봐도 그렇고,
지인들과의 간단한 수다도 그렇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토론을 싸움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청문회 같은걸 봐도, 소리지르고 윽박지르는 사람들만 등장하고,
정말 목소리 큰 넘이 이기는, 일종의 싸움인가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저부터 조리있게 질문하고, 토론을 통하여 생각을 모두어 가는,
그런 훈련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근데, 저부터 역사는, 게다가 제대로 된 근대사 쪽으로는 완전 구멍이예요.
분발해야 겠어요~^^

서니데이 2017-01-16 16:33   좋아요 0 | URL
오늘 그림, 주인공 누구신가요.
왜인지는 잘 모르지만, 마리옹 코티아르가 생각났어요.^^;

책선물 어려워요. 서로 다른 관심사가 있기도 하고, 또 읽은 책을 선물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어서요.
(제가 고르는 책도 절반 이상은 예상했던 것과 다를 때가 있는데, 다른 분 선물은 참 쉽지 않아요.)

오늘 저녁에는 조금 덜 추웠으면 좋겠어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


양철나무꾼 2017-01-17 17:36   좋아요 1 | URL
마리옹 코티아르가 누군지 몰라서 검색창의 도움을 받았어요.
진짜 분위기가 닮은 듯도~^^

요즘은 저마다의 개성이 강해서,
내지는 결정 장애가 있어서,(저부터~^^)
책뿐 아니라 선물은 다 어려워요.

그러니까 선물을 하는 쪽도, 받는 쪽도 그 부분을 감안해야 할 것 같아요.

오후로 접어들면서 날이 좀 풀린 것 같아요.
님 감기는 좀 나으셨죠?^^

푸른희망 2017-01-16 18:34   좋아요 0 | URL
오늘 그림은 왠지 불란서 여배우 같아요~
제옆에 궁금한게 많고 그래서 먹고싶은 것도 많은 녀석이 있는데 간혹 그입 꿰매고싶을 때가 있어요 ㅜㅜ

양철나무꾼 2017-01-17 17:40   좋아요 0 | URL
다들 불란서 여배우라고 하시네요.
올케가 좀 이쁘긴 하지만,
올케가 들으면 좋아하겠네요, ㅋ~.

저희집에서,
궁금한게 많아서 먹고싶은 것도 많은 부류는 저인데,
직장에서 하루종일 떠들다보면 것도 딱 싫고,
남편이랑 아들은...완전 과묵한 편입니다.
전 오히려 님의 복덩이 스탈이 좋은데 말이죠~^^

다크아이즈 2017-01-16 23:25   좋아요 0 | URL
빨간책방에서 영민한 해설과 담백한 배려를 오가는 이동진이 부럽고 좋아요~
영민함과 배려는 어쩐지 상충 되는 이미지인데 조화를 이루니 신기하기도 하구요~

저 이쁜이는 누구일까요? 양철님 이미지도 보여요~~




양철나무꾼 2017-01-17 17:49   좋아요 0 | URL
전 빨간책방에서는 오히려 김중혁이요~^^
이동진은 뭐랄까, 애늙은이까진 아니어도 중늙은이 같달까요.
상대방을 배려하는 결이 다른거 같은데, 그런 배려들이 불편하고 부담스러워요.
철학적인 것도,
죽음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도, 그렇구요.
김중혁은 노력하고, 적당히 관조하는 힘을 가진 것이 좋아요.
덕분에 둘을 듣고 있으면 소화불량에 걸리진 않을 수 있어요~^^


AgalmA 2017-01-18 04:49   좋아요 0 | URL
빨간책방 본격 소개보다 이동진 씨가 읽고 싶은 책으로 언급하는 책이 더 좋을 때가 많아요ㅎ 제 친구도 빨간책방 소개책은 다 좋진 않고 50% 정도라고. 빨간책방 소개로 읽은 책 중에 저는 호모 라피엔스가 가장 좋았던 듯.

양철나무꾼님이랑 저랑 이동진과 김중혁에 대한 평이 좀 상반적인 듯ㅎ?
이동진은 자기가 개인주의자라는 걸 피력하지만 위치상 배려를 하게 되는 피곤한 상황으로 보인다면, 김중혁은 쿨한 듯 보이지만 제겐 그리 느껴지지 않거든요. 험담이 될까봐 구체적인 건 생략. 암튼 두 사람 다 제 취향은 아님ㅎ; 살아 있는 사람 중에 그런 사람 있을까 싶기도 하고ㅎㅎ 이미 저부터도 다른 사람에게 그러하니까.

양철나무꾼 2017-01-18 17:08   좋아요 0 | URL
저도 몇번 팟캐스트를 들어서 무슨 얘기인지 알겠어요.
혼자 읽고 소개하는 책과 함께 읽고 얘기하는 책은 다를 수밖에 없을 거예요.
전 언제부턴가 팟캐스트를 열심히 듣지 않아요.
팟 캐스트를 열시히 들으면, 책이 심드렁 해지더라구요~^^

암튼 전 죽음이랑 자살에 대해서 얘기하는 게 왠지 편치가 않아요.
그런 얘기들을 자꾸 아무렇지도 않고 밀도있게 다루는 이동진을 외면하게 되나 봐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량감 있는 책들을 소개해주는 ‘빨간책방‘을 외면할 수는 없죠~^^
 
라요하네의 우산
김살로메 지음 / 문학의문학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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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이상이었다, 하지만 다 읽고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느낀 충격도 고스란히 내몫이었다.

 

언제던가 1박2일이라는 텔레비전 프로에서 멤버들의 정신연령 테스트를 하는 것을 본 일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배우 윤시윤(본명 윤동구)의 정신 연령을 42세로 평가했는데,

이는 실제나이보다 10살이나 높은 수치로,

전 멤버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이기도 했다.

 

전문가는 그를 향해

'한마디로 애늙은이'라며 '어린 나이에 자꾸 참는다. 자꾸 참으려고 하면 홧병이 생길 수 있다'

고까지 조언했다.

 

온라인에서의 관계는 시뮬라크르, 시뮬라시옹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야말로 익명성에 의지하는 피상적인 관계라는 생각을 하던 터에,

내가 좋아하는 알라딘 서재 이웃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소설 단편집을 내셨다.

그동안의 서재 글들을 봤을 때 자신의 이름을 건 작품집은 당연한 수순 같았지만,

그게 소설의 형식을 띤건 좀 의외였다.

 

책의 표지를 처음 봤을때의 느낌은 화려하다거나 강렬한 것이 아니라,

은은하고 아련한 것이 안개 속을 헤매이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알라딘 서재에서 봤을때는 섬세하게 배려하는 말투와 아름다운 문장들에 취해있었나 보다.

오히려 소설들은 은은하지도 아련하지도 않고,

적절한 계기와 에피소드를 투영하여, 하고 싶은 말들을 '전부 다'는 아니어도 명확하게 쏟아낸다.

아니다 싶으면  말줄임표로 대신 하듯 열린 결말로 대신한다.

 

읽으면서 일반적이지 않은 것이 좀 특별하다고 해야할까, 독특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독특한것은 그니가 구사하는 문체가 아니라,

책 속 소설들의 내용이 그러한 것이었다.

내용은 어느 하나 온전하지 않고, 어긋나고 찌그러지고 병든 것 같은데,

그게 이상하거나 특별한 것들이 아니라 우리 일상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처럼 묘사된다.

인터넷 대형 포털 사이트의 여성들의 고민상담 사이트를 업어온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바로 전에 읽은 '시체읽는 남자'에서는 전형적인 등장인물인데도 쉽게 감정이입을 할 수가 없어 괴로웠는데,

요번 소설집에는 어느 한 사람, 한 장면 소외시키지 않고 감정이입을 할 수 있겠는데,

그럴 정도로 남의 일 같지는 않은데,

뭐랄까, 내 버선 목을 뒤집어 보이는 듯 하여 창피하고,

경계를 걷는 듯 느껴지는 것이 위태롭고 불안하다.

 

희한하다. 에세이를 쓰고 있으면 거짓말쟁이가 되는 기분이지만, 소설을 쓰고 있으면 어쩐지 솔직해지는 감정이 몰려왔다. 아마 내 안의 위선과 진실, 내 안의 악마성과 순진성 사이에 소설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 두 옷자락의 경계를 즐거이 또는 위태롭게 스쳐간 여정이 소설의 흔적으로 남았다. 새벽이 올 때까지, 제법 긴 그 마법의 시간을 좋아한다. 몇 시간이라도 한 시간처럼 몰입하며 쓸 수 있되, 착하게 쓰지 않아도 되는 그 소설적 시간을 사랑한다. 착한 마음도 못된 소설도 '버려야' 잘 써진다는 것도 깊은 밤이 가르쳐준 지혜였다. 이 소설집을 계기로 마음이 흐르는 대로 소설이 오는 대로 받아 적기로 한다. 소설이란 살아내는 사람의 자연스런 방식 안에서 말해지는 거니까.(317쪽, '작가의 말'중에서)

그니는 작가의 말을 통해 이렇게 얘기한다.

 

다시 이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

전문가는 윤동구를 향해

'한마디로 애늙은이'라며 '어린 나이에 자꾸 참는다. 자꾸 참으려고 하면 홧병이 생길 수 있다'

고 하는 순간, 나는 쾌재를 불렀었다.

'참지 말고 하고 싶은대로 하라'는 내 마음 속의 '진단과 처방'과 일치하는 조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집을 다읽고 마지막에서야 '작가의 말'을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니 나름의 소설작법에 대해서 얼마든지 열렬히 응원해줄 수 있겠다.

 

그동안 나는 나와의 친밀도나 관심 분야를 막론하고,

작가가 직접 책을 보내주겠다고 하면 사양을 했었다.

나의 주관적인 견해가 책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 일은 드물겠지만,

아무래도 선물 받은 책을 향하연 리뷰 한 글자, 별표 하나 보태거나 빼는 것도 신경이 쓰이기 때문이었다.

요번에도 마찬가지로 보내주시겠다는 것을 사양했었다.

내가 직접 사서 읽고,

이렇게 별 다섯개를 빽빽하게 채워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아니, 느낌적으루다가...별 다섯 개가 좀 부족한 느낌이 든다.

 

아참참, 일부러 그런것인지 오타인지,

2쇄에서 바로 잡아지길 기대하며 옮겨 적는다.

 

조아주는->조여주는(24쪽)

컸나 보나->컸나 보다.(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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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7-01-13 16:47   좋아요 1 | URL
저는 책을 보내주시겠다는 작가님이 딱 한 분 계셨지만 ㅎㅎ 저도 양철나무꾼님처럼 직접 사서 읽겠노라고 말씀드리고 구입했던 기억이 납니다. ㅎㅎ 이 소설이 별표 5개를 넘어서는 애정이시라니 못내 내용도 무척 궁금해지고요. 글 잘 읽고 갑니다 즐거운 금요일 오후 시간 보내세요^^

양철나무꾼 2017-01-16 14:09   좋아요 1 | URL
저는 정말 좋았어요.
저의 장르소설적 취향과 맞물려서 더 좋았던 걸 수도 있고요~^^

님은 주말 잘 지내셨나요?
날은 좀 시원하지만,
그래도 또 다른 일주일의 시작이니다, 아자~!^^

지금행복하자 2017-01-13 17:31   좋아요 1 | URL
내용이 궁금해지게 하는군요~ 조만간 장바구니를 털게 될지도..

양철나무꾼 2017-01-16 14:11   좋아요 1 | URL
내용은 정말 기발하면서도 우리 주변의 일들이어서 더 쉽게 몰입돼요.
문장도 친근하면서 가독력 있구요~^^

장바구니를 털어도, 후회하지 않으실듯~^^

[그장소] 2017-01-13 18:22   좋아요 0 | URL
리뷰가 넘 좋아서 ~~ 우아~~ !!^^ 다크아이즈님도 기쁘시겠어요. 전 별점 ㅡ크게 생각 않는데, 아는 분이다 싶으면 더 냉정하게..써버리는 못된 버릇이 있어요.. ㅠㅠ

양철나무꾼 2017-01-16 14:14   좋아요 1 | URL
저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쓰려고...제가 사서 읽는거죠.
아무리 가리우려고 해도 좋은 책은 어떻게든 반짝이게 마련이죠.
전 오히려 별 서개미만이다 싶으면 리뷰를 쓰다가도 페이퍼로 돌려버리는 경향이 있어요~^^

님의 리뷰도 기대됩니다, 어서요~^^

[그장소] 2017-01-17 15:41   좋아요 0 | URL
아..그런 방법을 쓰시는군요..^^
리뷰에서 페이퍼로 전환 ~
읽기는 하고있어요 . 그런데 요즘 간신히 간신히 리뷰를 써요 . 탈진 같아요 . ㅎㅎㅎ 웃기죠?
좀 천천히 쓰고싶어요 . 이 리뷰는 ..억지로 조각조각 글 맞추는 게 싫어서요 ..^^ 다크 아이즈님 이해해주시겠죠?
얼른 마음 회복이 되면 좋겠어요 .. ㅜㅜ

양철나무꾼 2017-01-17 17:10   좋아요 1 | URL
너무 조바심 가지지 않으셔도 좋아요.

‘제가 님의 리뷰도 기대됩니다, 어서요‘라고 말씀 드린건,
일종의 ‘잘해보자‘는 cheer up같은 의미였어요.

제가 한때, 어쩜 지금도 그 한가운데일지 모르는데,
책이 안 읽혀서 엄청 고생했었어요.
좋아하는 책을 골라읽어도,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읽어도,
뜨문뜨문이고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어서,
힘들었어요.

그래서 그림도 그려보고,
그냥 책을 베껴 써보기도 하고,
음악도 듣고, 영화도 보고,
제가 엄청 좋아하는 손으로 꼬물거리기...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아니, 시간이 나를 통과하여 그렇게 흘러가는 듯 느껴지기도 해요.

이 책은 말이죠~,,
우리 둘 사이의 얘기인데 말이죠~, 속닥.
또 다른 내 자신을 보는 것 같아서 버거웠어요...실은~.
그래도 침잠하고 아래로 가라앉으려 들지않고,
문제를 제기하고 더디더라도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가려해서 좋았어요.
님도, 그리고 저도 그럴 수 있으리라 믿어요.
그리고 꼭 리뷰의 형식을 갖춘 것이 아니더라도,
님 만의 기발하고 경쾌한 그런 코멘트의 방식으로도 좋을거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다크아이즈님은 아니지만,
다크아이즈 님도 충분히 그렇게 생각하실 거라고 믿습니다~^^

[그장소] 2017-01-17 20:59   좋아요 0 | URL
아아, 고맙습니다~^^
저만 그런게 아니라니 (응?) 이상한 위로 방식이죠? 다들 겪는 일인가보다 하니..좀 마음이 놓여요 . 양철나무꾼님 설명하신 딱 상태가 그런데~ 저..ㅎㅎㅎ
응원 감사하고요 . 뭣보다 제가 그냥 푹 쉬고싶다 ㅡ그걸 원하는 것같아요 . 근데 쉬어도 쉰 것 같지않으니..이 쉼에 대한 갈증 같은게 남아서 그게 꼭 가려운델 못 긁고 주변만 긁는 기분 ..이랄까요?
넘 답답해요 . ㅎㅎㅎ
계속 그런 상태면 차라리 복구나 되서 다시 쓰기가 되면 좋은데 , 써지지도 않고요. ㅋㅎ
뭘 또 대단한걸 한다고 ..이러는지 .. 그냥 웃기죠..뭐~
덕분에 좀 맘이 편해 졌네요 .
책이 주는 느낌이 ㅡ그러셨군요. ^^
저도 슬슬 기운내 볼게요!^^ 힘주셔서 감사감사~^^

2017-01-13 1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6 14: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프리쿠키 2017-01-13 21:25   좋아요 1 | URL
기대되는 소설입니다.
꼭 사보고 싶네요.
말씀처럼 이웃분들이 책을 내면
앞으론 몇권 주문해서 지인분들
선물해야겠다는 ...철이 드는가봅니다ㅎ
그게 작가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싶어요
여태 그러진 못했지만~-

양철나무꾼 2017-01-16 14:23   좋아요 2 | URL
기대하셔도 좋을 거예요.
언젠가 꼭 읽어보시길~!^^

푸른희망 2017-01-14 08:51   좋아요 1 | URL
저도 궁금해지는군요^^

양철나무꾼 2017-01-16 14:25   좋아요 1 | URL
네, 그동안 서재에서의 푸른희망 님 스타일로 미루어 충분히 재밌게 읽으실 수 있을거예요.
고전적인 재미,
개성있는 문체,
장르소설적 흥미진진함,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아요~^^
 
시체 읽는 남자
안토니오 가리도 지음, 송병선 옮김 / 레드스톤 / 2016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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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빵빵한 광고에 혹하여 친구에게 사 내라고 하여 읽게 되었다.

이곳에 광고가 처음 뜰 무렵에 구입하였으나 이제야 읽게 된건,

광고가 흐지부지인 것도 있지만,

책을 읽은 사람들의 평이 그냥저냥이었던 것도 한 몫을 했다.

 

책을 읽으면서 처음 송나라 때 판관 포청천도 잠깐 떠올랐고,

그동안 내가 읽은 무협소설과 무협 영화나 드라마 따위가 오버랩 되듯 스쳐지나갔다.

송자의 세원집록을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갈무리하였는지 모르겠지만,

저런 것들을 좀 본 내가 보기엔 조악한 짜깁기란 생각밖에 안 들었다.

프랑스나 스페인에 이런 동양의 법의학서가 있다는 것을,

대중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한데서 의의를 찾아야 할듯.

 

책이 가볍고 쉽게 읽히는 것도 사실이고,

표피적 즐거움을 주는것도 사실인데,

주인공 자에게 감정이입이나 몰입을 할 수 없어서 아쉬웠다.

 

책의 끝에 가면 작가의 말이 나오는데,

그가 얘기하는 소설쓰기의 지난함마저 내겐 투덜거림으로 읽혔다.

송자의 '세원집록'을 바탕으로 열정적일 뿐만 아니라, 절대적으로 현실에 충실한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등장인물이 입체감있고 열정적으로 그려졌다는게 아니라,

작가의 과한 의욕을 그리 표현한것 같다.

 

'1247년에 간행된 5권짜리 법의학 전서'인 '세원집록'이라고 표현되는데,

세원집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원서는10권이었고, 명나라이후에 4권본만 전해진다고 한다.

물론 적지않은 주석본과 증거본이 있겠지만 말이다.

 

아무리 작가의 열정이 대단하다고 해도, 책은 열정으로만 쓰여지지 않는다.

더우기 공학을 전공했다는 약력은 장르소설에서 개연성에 계속 실패하는 과정에선, 마이너스적 요소이다.

추리 소설의 묘미를 살리고 싶었다면,

송자에서 '과학적 수사방법'을 끄집어 내지 말던지, 옛날 옛적에 식의 서술은 피했어야 하지 않을까.

 

세원집록에 나오는 피묻은 칼에 파리가 몰려드는 걸로 범인을 유추한 예화는 유명하지만,

소설에서는 개연성에 실패한 장면이 아닐까 싶다.

무더운 여름 시체에 구더기가 필 정도여서 칼에 파리가 몰려드는건 그럴듯 해보이지만,

다음 설정인 산사태를 정당화하기 위해, 폭우가 내린다는 설정을 만든다.

과연 폭우속에서 파리가 날라다닐 수 있을까?

이밖에도 소금과 화약, 수총 따위와 관련된 얘기가 산만하게 어지러져 있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하여 너무 많은 얘기를 하려 한건 아닐까.

작가후기에서 순수문학과 장르소설, 좋은 소설과 나쁜 소설에 대하여 입장을 표명하려 하는데,

순수문학과 장르소설, 좋은 소설과 나쁜 소설 따위는 본인이 자기 입으로 얘기하는게 아니라,

나중 사람들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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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7-01-12 12:48   좋아요 0 | URL
판관 포청천,을 tv에서 보았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전체적으로는 읽지 않아도 됨~~ 으로 읽히는데 제가 바로 이해한 것 맞나요? ㅎㅎㅎ

양철나무꾼 2017-01-13 16:33   좋아요 0 | URL
써놓고도 제가 의사전달을 제대로 했나 싶었는데,
님의 댓글을 보니 안심이 됩니다~^^

서니데이 2017-01-12 16:17   좋아요 0 | URL
이 책 쓴 분은 세원집록에 대한 문헌정보가 잘못 나온 책을 참고했나봅니다.
그래도 스페인에서 중국의 법의학서는 특이한 소재였을것 같아요.^^

양철나무꾼 2017-01-13 16:40   좋아요 1 | URL
암튼, 장르소설이라고 하기엔 개연성에서 많이 부족해요.
차라리 작가가 잘 아는 자기나라의 상황과 인물들을 가지고 썼더라면 설득력이 있었을 듯 해요.

물론 이 책이 작가의 나라에선 물론이고,
프랑스 등 유럽에서 각광을 받았다는 걸 보면,
그들에게는 인기요소가 될만한 특이한 소재였을 듯 합니다~^^

2017-01-12 1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3 16: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3 17: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3 17: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식가의 허기 - B급 주방장 박찬일 에세이
박찬일 지음 / 경향신문사 / 2016년 12월
평점 :
품절


내 'B급좌파'라는 말은 좀 들어봤지만 B급 주방장이란 말은 또 처음이다.

솔직히 그동안 그의 글이고 말이고, 를 자주 접했지만 정치적 색깔이나 사회적 이슈를 두드러지게 다룬다고 느껴본 일이 없었기에 더 낯설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도 'Prologue'에서 부터 '먹고살자는 문장을 쓴다'고 하며 살짝 무게감 있게 접근하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그가 정치적, 또는 사회적 이슈를 얼마나 두드러지게 다루는지,

오랜 기억을 어떻게 끄집어내어 문장을 만드는지, 실감을 하지 못했었다.

차례를 볼 것 같으면 겨울에서 가을로, 여름으로, 봄으로 맛을 거슬러 올라가며 회귀한다.

 

제목은 '미식가의 허기'이지만,

음식에 대한 찬양과 숭배라기 보다는,

'먹고사는 것'에 대한 숭고함 이랄까, 그의 경건함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제 택시비는 있지만, 밤을 도와 한잔 술에 얼굴이 붉어지던 그 친구들은 또 어디 갔을까.

  그 녀석들, 다 불러모아 뜨거운 국물에 차가운 소주를 한잔 사고 싶다. 너희들 덕에 그래도 이 험한 세상, 그럭저럭 살아왔노라고 떨어놓고 싶다. 얼마나 힘들었니, 늘 마음이 겨울인데 겨우살이 준비는 했는지 묻고 어깨를 감싸 주고 싶다. 그런 세상이다.ㆍㆍㆍㆍㆍㆍ얇은 주머니사정 때문에 공짜 국물만 연신 청하던 젊은이들에게 슬쩍 넉넉하게 꼬치를 주문해주던 맘씨 좋은 아저씨들도 있었. 어묵 냄비처럼 깊고 뜨거운 날들이 있었다. 어깨는 시렸지만 마음은 뜨겁던 기운이 거기 있었다.(14~15쪽)

 

그는 이런 방법으로 추억을 소환하는데, 짠하고 눈물겹던 과거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반성하고 미래를 내다보고 궁리한다. 그게 좋았다.

과거는 잘 다져진 디딤돌 역할을 한다.

 

점심시간이 살짝 지난 시간대에 의미 있는 손님들이 찾아든다. 머리가 허연 은퇴 노인들이다. 동창회도 있고, 향우회도 있을 것이다. 느긋하게 둘러앉아 탕 같은 음식에 소주를 돌린다. 점심은 요릿값도 싸고, 자리가 한적해서 일부러 찾는 듯하다. 나는 이런 시간대에 그들과 나란히 앉아 음식 먹는 일이 좋다. 묵직한 어른들과, 겸상은 아니지만, 더운 김이 솟는 음식을 한 공간에서 나눈다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한때 미워했던 아버지 세대에 대한 작은 친근감이 피어난다. 나도 이젠 나이가 들어간다는 뜻이겠다.ㆍㆍㆍㆍㆍㆍ대개 서울 강북의 노포에서 종종 그런 광경을 목도한다. 부축을 받거나 휠체어를 탄 노인이 자식들의 부축을 받아 아마도 지상 최후의 외식이 될 음식을 받는 장면이다. 외식할 근력조차 없어지면, 그들은 힘들게 살아낸 한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 내 숟가락질도 느려지고, 마음은 경건해진다. 우리는 먹기 위해서 태어났고, 곡기를 끊음으로써 숨도 놓게 된다. 한 삶의 퇴장에 바치는 한 그릇의 음식이 가진 비장함! 곁에 앉아서 시중드는 자식들의 애틋한 표정을 읽으면서 나는 삶이란 무엇인가 곱씹어보곤 한다.(42~43쪽)

이 구절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는데,

그의 음식을 대하는 태도 또한, 이렇게 경건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가 아무래도 서비스 업종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러저러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그런 것들이 다 일리가 있다.

 

'가능하십니다'라는 주어가 불분명한 말을 쓰는 상황이나, 무릎을 꿇고 테이블에 턱을 붙이고 주문을 받는 따위, 등을 얘기를 하며,

말은 정신을 규정한다. 어떤 말을 쓰는가에따라 그 사람의 내용이 만들어진다.(59쪽) ...면서 일침을 가하는데, 유난히 서늘하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그 음식과 관련된 추억을 소환하는 행위라는 생각도 들었다.

분홍색 소시지나 부산어묵 따위들은 더 맛나고 품질 좋은 것들이 나오는 지금 먹으면 덜 할지도 모르지만,

개개인의 추억과 어우러져 맛이 있는 음식이니까 말이다.

그러면서,

돼지는 농사짓는 지역에서 원래 자라났다. 인간과 비슷한 음식을 먹는지라, 그 부스러기가 생겨야 기를 수 있었다. 어떤 이는 돼지는 인간과 먹이 경쟁을 하기 때문에 닭처럼 더 광범위하게 퍼져나가지 않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라고 하는데,

언젠가 우리나라 역사 책을 보면서 궁금했었던 부분과 엮여져 고개를 주억이게 된다.

 

요즘 호스피털리티라는 말이 크게 유행이다. ㆍㆍㆍㆍㆍㆍ안락한 서비스를 하겠다는 정도에서 이제는 거의 영혼까지 편안하게 만드는 완전한 평화를 제공하겠다는데까지 이른다. 호스피털리티야말로 보이지않는 비즈니스의 완전판이라고 일컫는다.

  이쪽 업계의 한 선배는 서비스 잘하기로 알아주는 유명인이다. 그는 좀 엉뚱한 데가 있어서 농담도 잘한다. "진짜 서비스는 상대방이 '야, 저 친구가 내게 개인적으로 마음이 있어서 이렇게 잘해주는가 보다'고 생각할 정도로 하는게 진짜다"라거나 "제대로 된 호스피털리티는 서글프게도 우리나라에선 룸살롱이 최고다. 그래서 엄청난 이권이 걸린 비즈니스 접대는 다수가 그런 곳에서 이루어지지 않나"고까지 농담한다. (113쪽)

 

이쪽 업계 선배의 말을 '농담'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 없는 이유는,

농담이라고 하기엔 너무 사실적이고 그럴듯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소금을 우려하는 의사나 영양학자들도 '싱겁게란 엄밀히 말해서 소금 총 섭취량을 줄이라는 뜻이지요.'(129쪽)같은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겠다.

 

가장 서글프면서도 감동적이었던 부분은 요리사들이 뭘 먹는지 궁금해하는 분이 많다...로 시작하는 글이었다.

 

간혹 잡지사에서 '요리사들의 단골집'을 취재하는 경우가 있는데, 박찬일의 단골집은 '문 연 집'이란다.

 

  한번은, <스시효>의 안효주 주방장에 대한 평을 들었다. 그곳에서 일했던 정호영 세프의 경험이었다.

  "늘 최고의 재료를 사서 직원들 식사를 하라고 하는 분이었어요. 그러기 쉽지 않거든요."

안 주방장의 인격을 느꼈다. 나도 그렇게 따라 하려고 한다. 아직 모자라다.(243쪽)

 

요즘 유행하는 셰프란 말보다 '주방장'이란 말을 더 사랑한다는 그,

내가 그의 음식을 한번도 먹어보지 못했으면서도,

그가 쓴 책들을 읽고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하는 얘기만을 듣고서도,

그를 훌륭한 요리사라고 하는 이유는,

'먹고 살자'고 하는 비루한 행위들에 숭고한 가치를 부여하고 품격있게 끌어올릴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산다는 건 조금쯤 비루한 일일지 모르지만,

그렇기 때문에 조금쯤 눈물나지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겠는가?

 

책 곳곳에 오탈자가 눈에 띤다.

이런 오탈자는 책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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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9 18: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09 19: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1-09 22:10   좋아요 0 | URL
음식을 먹는 행위와 관련된 추억이 가장 오래 남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때 그 순간이 뚜렷하게 떠올릴 수 있어요. ^^

양철나무꾼 2017-01-12 12:24   좋아요 0 | URL
그래서 일까요?
매번 맛난 음식의 순간은 행복한 추억으로 연결되니까 말예요~^^
 
흥, 손철주의 음악이 있는 옛 그림 강의
손철주 지음 / 김영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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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저녁 퇴근길이었다.

지역국회의원이 수행원들을 데리고 나와, 의정활동보고서를 돌리고 있었다.

난 그를 지역의 젊은 양심 일꾼 정도로 생각했었던터라,

의정활동 보고서 한가득 차지하는 설정된 사진들에도 분개했지만,

제대로 보지도 않고 던져 버리는 의정활동보고서를,

그렇게 좋은 종이를 써서 컬러풀하게 만들어야 했나 싶어서 더 화가 났다.

그게 다 국민들의 세금인데,

사거리 교차로 한편에는 후원금 모집 현수막을 크게 걸어놓고서는,

의정활동보고서를 그렇게 럭셔리하게 만들어 내는 저의가 궁금했지만,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라고 한다면 할말이 없을 뿐이다.

 

이 책을 야금야금 아껴 읽었다.

끝까지 다 읽은 후 '감사하는 말'에 이르러 완전 빈정이 상하고 말았다.

 

2015년 여름 두달 동안 재계CEO와 함께 옛 그림과 옛 음악을 공부하고 감상하는 자리가 마련됐는데,

국악과 그림이 어울려 강의를 하며 연주를 곁들였다고 한다.

그 강의를 책으로 묶은 게 이 책이다.

 

저자는  음악이 그림 속에 들어와 앉은 양식을 소개하면서,

은일(숨어사는것)과 아집(우아한 모임)과 풍류라고 하는데,

다른건 차치하고라도, 재계 CEO에게 은일이라니 가당키나 하냔 말이다.

 

그래도 마냥 툴툴거릴 수 없음은,

재계 CEO들이 아니었다면 손철주가 하는 강의를 성사시킬 수 없었을 뿐더러,

그런 강의에서 그냥 음악 감상도 아니고 국악 연주를 곁들이는 럭셔리함이 가당키나 했겠나 말이다.

나 같은 소시민이 봤을땐 눈꼴셔도 국악을 활성화시켜서 국악의 대중화에 기여할 수 있다면 감수할 수밖에~--;

 

그런데 백번 양보해도,

재계 CEO들인데, 최순실 정유라 모녀도 아니고 '숨어살기', '은일'을 얘기하는 것은 좀 심하지 않을까?

암튼 이 책의 1장은 '숨어 산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어떤 즐거움도 마다하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여기서 '줄 없는 거문고를 타고 소리없는 음악에 취하다'를 얘기하게 된다.

그러면서 <주역>과 비교할 만한 대목이 나오는 <악학궤범>의 한구절을 인용한다.

 

악(樂)이란 하늘에서 나와 사람에게 붙인 것이요, 허(虛)에서 발(發)히여 자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사람의 마음으로 느끼게 하여 혈맥을 뛰게 하고 정신을 유통케 한다. 느낀 바가 같지 않음에 따라 소리도 같지 않게 되니, 기쁜 마음을 느끼면 그 소리가 날아 흩어지고 노한 마음을 느끼면 그 소리가 거세고 슬픈 마음에는 그 소리가 애처롭고 즐거운 마음에는 그 소리가 느긋하게 되는 것이니ㆍㆍㆍ(21쪽)

 

아집(우아한 모임)은 또 어떠한가 말이다.

다음 글은 <홍길동전>의 작가 허균이 친구들과 피서 풍류를 즐기고 싶은 마음에 '여인'이라는 호를 쓰는 이재영에게 보낸 편지이다.

처마 끝에 빗물은 졸졸 떨어지고, 방 안의 향로에서 향내음이 솔솔 풍기는데, 친구 서넛이 소매를 걷고 서안(書案)에 기대어 하얀 연꽃을 바라보며, 참외를 깎아 먹으며, 여름날의 번뇌를 씻어보려 하네. 이러한 때에 여인 그대가 없어서야 되겠는가? 자네 집안의 암사자가 으르렁대며 자네 얼굴을 고양이 상판으로 만들겠지만, 늙을수록 두려움에 떨거나 위협을 받아 위축되어서는 안 될 걸세. 빨리 오시게. 자네 집 문 앞에 하인이 우산을 들고 기다리고 있으니 가랑비를 피하는 데는 족할걸세. 만나는 일이 늘 있는 일은 아니라네. 또한 이러한 모임인들 어찌 자주 있을까. 헤어지고 나면 뒤늦게 후회해도 아무 소용 없을 걸세.(121쪽)

하얀암사자의 대처법까지 알려주는 허균의 취지는 아름답다.

허균은 엄청 미식가여서 귀향가서도 '도문대작'이라는 글을 쓴 것으로 알고 있다.

 

아집(우아한 모임)의 전제조건이 되는 우정이나 소통에 대해서는 지난번 페이퍼-'고맙다, 친구야~^^'(=>링크)에서 정리했었고,

13명의 중인이 모여서 만든 '옥계시사'라는 모임의 규약을 일부분만 인용해 보겠다.

 

"장기와 바둑으로 사귀는 모임은 하루를 가기가 어렵고, 술과 야색으로 사귀는 모임은 한 달을 가기 어렵고, 잇속을 따져서 모이는 모임은 1년 가기 어려우니, 살아서 평생 갈 수 있는 모임은 문장을 남기는 모임이다."(151쪽)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필요로 하는 인간다움과 고격의 삶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인문적 향기와 예술적 풍아가 물씬한 그런 모임, 그것이라야만 평생을 끌고 갈 수 있다, 고 얘기하는데,

 

내가 이곳에 부족하나마 리뷰와 페이퍼를 올리는 이유와도 상통하겠다.

 

정치도 그렇고 경제도 마찬가지다.

주제파악을 못하고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다보면 가랑이가 찢어진다.

정치가들도 그렇고 경제인들도 그렇고 주제파악을 하는 지름길은,

우정이나 소통을 회복하는 일,

낮게 아래에서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눈높이를 맞추는게 아닐까.

재계 CEO들 덕에 우리는 이런 책을 접하는 수혜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니,

이것으로 족하다 싶지만,

그들만의 리그이고,

강 건너 불구경이다 싶은 생각이 문득문득 드는 것을 어쩔 수 없다~ㅠ.ㅠ

 

아주 좋은 책이지만,

전에 다른 책이랑 겹치는 내용들이 있어서, 그들만의 리그이지 싶어서, 별 하나는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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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5 17: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05 18: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1-05 18:38   좋아요 0 | URL
조선 시대의 풍류를 CEO들의 호화스러운 유희와 동일시하는 논리가 억지스러워요. 저자가 강연에 참석한 CEO들 비워 맞춰주려고 그럴싸하게 말한 것 같습니다.

양철나무꾼 2017-01-06 18:47   좋아요 0 | URL
그란것 같죠~?^^

2017-01-05 2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06 18: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06 1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06 1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