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으로 산다는 것 - 삶의 끝에서 헤닝 만켈이 던진 마지막 질문
헤닝 만켈 지음, 이수연 옮김 / 뮤진트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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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66세에 암진단을 받고 67세에 타계하였다.

난 그의 죽음이 좀 놀라웠는데,

66세여도 그렇지만, 67세라고 해도 죽음을 맞이하기에 너무 이른 나이이기 때문이었다.

옛날과 다르게 의학이 발달하였고 여러가지 치료방법이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운명 앞에서 속수무책이라는 사실이 엄중하게 다가왔다.

진단은 아주 분명했다. 상태는 심각했다. 불치 상태인 듯했다. 나는 허탈한 얼굴로 물었다. 그렇다면 이제 집에 돌아가 마지막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냐고. 의사가 대답했다. "옛날 같으면 그랬겠죠. 하지만 요즘엔 여러 치료방법이 있습니다."(17쪽)

 

그의 소설들을 다 들였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것은 읽은 것이었고,

어떤 것은 읽었다고 착각하고 있거나, 읽었으되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이순신이 선조에게 '신에게는 아직 열두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라고 했던 심정으로 그의 소설들을 아껴 읽다가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미니멀 라이프에 관심을 가졌지만,

소극적으로라도 미니멀 라이프에 동참하게 된 것은,

일본의 지진 같은 대참사를 만나게 된다든지,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죽을 병을 발견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태어나는 것은 순서가 있지만, 죽는 건 순서가 없다고,

갑작스런 죽음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었을때,

그때는 자신의 상태에 집중하느라고 주변을 정리할 수 없다고 하니까 말이다.

그렇게 깔끔한 성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헤벌레 벌려놓은 채로 생을 마감하고 싶지도 않다.

 

이 책은  2015년 헤닝만켈이 암진단을 받은 이후에 쓰여졌다는데,

그는 죽음을, 죽음에 대한 공포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담담하게 적고 있다.

그 과정에서 그는 과거 어린시절로 돌아가곤 한다.

돌아갈 추억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소설들에서도 그랬지만,

이 책에서도 그는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제 목소리를 낼 줄 안다.

 

개인적으로  박용하의 '오빈리 일기'나 '시인일기' 따위에 열광했던 이유가 시인적 감수성 때문이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맨날 맥주나 까먹은 알콜리즘으로 비춰졌을지도 모르지만,

내겐 그러한 것들이 사회적 문제들을 향하여 섬세하게 깨어있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졌고,

그건 곧 소신이라고 읽혔다.

 

그는 암에게서 신경을 돌리기 위해 독서, 명화 감상, 음악 감상을 택한다.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 같은 경우 암은 아니고 비교하기도 민망한 노안이지만, 책을 읽으면 눈이 쉬이 피로해져서 괴로웠었다.

가지고 있는 책의 몸집을 줄이려고 했었다.

 

그런데 이 책엔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내 책상 위에는 항상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이 놓여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지금껏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내가 아직 읽지 않은 새로운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내가 항상 좋아했던 작가들의 책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일체의 새로운 것, 모르는 것을 소화할 수가 없었다. 새로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마치 탐험을 하듯 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글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저 이리저리 헤매기만 했다. 한 쪽을 읽으면 거기에 쓰인 내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ㆍㆍㆍㆍㆍㆍ

 이미 여러 번 읽은 책을 펼지자 단어들의 문이 다시 열렸다. 내가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은 새로운 것, 미지의 것이었다. 내가 예전에, 아마도 각각 다른 여러 상황에서 읽었던 글들은 여전히 언제나처럼 효과가 있었다. 나는 열심히 책을 읽었고 그렇게 암에게서 생각을 돌릴 수 있었다.(188쪽)

 

그는 2015년 10월 5일 월요일 이른 아침, 잠에서 깨지 못한 채 67세 나이로 영면하기까지 '사람으로 살'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던 사람이었다.

책 속엔 이런 구절도 나온다.

많은 사람들은 묻기를 포기하거나 중단하고, 마치 더이상 알고 싶거나 궁금한 것이 없는 듯이 어깨를 한번 으쓱거리고는 일상을 이어나간다. 어떤 사람들은 어린 나이에 이미 질문을 그만두고, 어떤 사람들은 늙어서까지 고집스럽게 묻기를 계속한다. 그러나 결국엔 잘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움츠리며 철학적 사고를 포기하게 된다.이해가 된다. 지구상에 사는 수십억 명의 사람들 대다수에게 사고할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사치이기도 하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 존재하는 가장 통탄스러운 불평등에 속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생각할 시간이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럴 가능성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은 당연한 권리로서 세계인권선언에 들어가야 한다.(285쪽)

 

이 책을 읽으면서, 곳곳에서 나는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울고나서는 카타르시스에 이른 것 마냥 훌훌 떨어내는 경험을 한다.

이것은 버리거나 비우는게 아니라,

말 할 수 없는 작은 입자들로 변화해 자연의 일부로 스며드는 경험이다.

이렇게 지연의 일부로 스며드는 그런 것이라면,

죽음이 두렵기는 하지만 나이듦의 연장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리고 이걸 헤닝 만켈은 '죽음을 감추면 결국엔 삶도 이해할 수 없다'(317쪽)는 말로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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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7-03-28 21:11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도 죽음.. 소멸.. 생.. 삶.. 존재.. 에 대해서 민감하고 섬세하신 것 같아요..

양철나무꾼 2017-03-29 15:49   좋아요 0 | URL
어르신들과 보대끼는 직업 탓이기도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그딴것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다가오는 듯 여겨져요~^^

2017-03-28 2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7-03-29 15:53   좋아요 1 | URL
맞아요~^^
집착하는 제자신이 안타깝지만,
한편으론 집착도 물욕도 없으면 도통한거지 하고 자위해요~^^

‘부드럽게 잘~ 변하는 거‘...그게 미립이 나는게 아닐까요?^^

2017-03-28 2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7-03-29 16:02   좋아요 0 | URL
그러셨군요, 힘드셨겠습니다.
다독 다독~((__))

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해요.
거기에 하나 더 사람의 생명만이 소중한 건 아닐거예요.
무가치적으로 사람 말고 모든 생명있는 것은 소중할 거에요.
그렇게 생각하면 삶의 연장선 상에서의 죽음도 그렇게 두렵진 않을 것 같아요~^^

저도 지금 이 순간을 재밌게 사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는데, 우린 찌찌뽕~?^^

AgalmA 2017-03-28 23:31   좋아요 0 | URL
피나 바우쉬는 암선고 받은지 5일만에 사망하고 말았죠. 하루, 5일, 1년 6개월, 30년이라고 해도 우리에겐 모두 부족할 시간일 겁니다.
한순간이더라도 나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고 받아들이고 세상을 볼 때 이거로 된 거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에서 앞으로의 삶에 대한 용기도 얻게 되고요.

양철나무꾼 2017-03-29 16:05   좋아요 0 | URL
피나 바우쉬는 저도 왕 애정하는데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Agalma님의 얘기이기도 하고 헤닝만켈의 얘기이기도 하고 강유원의 얘기이기도 하네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지금 이 순간을 사는데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요~^^
 
나스타샤
조지수 지음 / 지혜정원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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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시작하기 전에는 소설인데 굳이 필명을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었다.

다 읽은 지금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소설로만 읽히지 않는 것이,

老학자의 '젊은 날의 회고록' 정도, 자전적인 요소가 강해서 그랬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남들은 참 좋았다고 하는데 난 힘들게 읽었다.

소설 한 권을 10여일에 걸쳐 읽는 건 안나 까레리나 이후 처음인것 같다.

안나 까레리나는 3권짜리이기라도 했지~--;

 

다 읽은 지금도 사람들을 그렇게 열광하게 만든 힘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인문학적, 지연과학적, 예술적 기지와 통찰을 뿜어내고 있는 듯 하지만,

너무 만연체로 늘어지다 보니 알아 먹을 수 없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고,

사랑 받아본 사람이 사랑을 할 수 있다고,

내 관심사가 한쪽으로 치우친 편협한 것이어서 그런가,

이렇게 넓은 분야를 전반적으로 두루 아우르고 따라가기엔 역부족이었다.

 

그걸 이 책에선 이렇게 얘기한다.

사랑스러움은 사랑받은 사람에게서만 나온다. 사랑하는 것도 배워야 하는 것처럼 사랑받는 것도 배워야 한다. 그리고 이 배움은 경험에 의해서만 가능한 종류이다. 많이 사랑받으며 어린시절을 보낸 사람은 사랑스러움을 간직한다. 절제와 훈육이 함께한다면 사랑은 클수록 좋다. 어린아이는 자랄 때 그들이 본질적으로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자란 사람들은 유년 시절에는 그 사랑스러운 애교로 우리 보살핌에 보답하고 성인이 되었을때에는 이제 다른 사람을 사랑함에 의해 우리 사랑에 보답한다.(147쪽)

 

이 책이 버거웠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우리말을 사용할 줄 아는 작가이긴 하지만,

영어권에서 오랜 시간 살다보니 그 문화와 정서, 어순에 익숙해져서 그런 것 같다.

 

인문학적, 지연과학적, 예술적 기지와 통찰이 곳곳에 포진해 있는 것이 백과사전 같은 박학다식한 책이지만,

기교적인 면에서 잘 쓰여진 소설은 아닌 듯 싶다.

 

소설의 기교나 작법적인 요소들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내가 쭈욱 읽어온 소설들만큼 세련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다 읽게 만드는 힘은 소설적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그 이면의 자전적인 요소 때문이 아닐까 싶다.

 

포기와 관용은 한쌍의 상관적인 개념이 된다. 누구도 포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 관용하지는 않는다. 자신이 포기할 수밖에 없는 문제에 대해서만 관용한다. 이제 많이 늙어서 많은 것을 포기하게 될 때 많은 것을 관용하게 된다. 이것이 구교가 개신교보다 더욱 인간적이고 미신적이고 관용적인 이유다. 개신교는 엄격하다. 언제라도 싸울 태세가 되어 있고, 용서할 수 없는 문제가 많고, 정립해야 하고 준수해야 하는 원칙이 너무도 많다.(107쪽)

처음에 개신교, 구교를 넘나들때는 오강남을 떠올렸다.

좀 더 읽다보니, 오강남은 아니다.

친구가 알려준 사람의 이력을 찾아보니 그 사람이 맞는 것 같다.

 

읽으면서 여러 작가들이 떠올랐는데 '브로크백 마운틴'과 '시핑 뉴스'의 애니프루도 생각났고,

언젠가 읽었던 '노먼 매클린'의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책도 생각났다.

 

나도 작가처럼 20대 초반의 짧은 기간을 외국에서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외국 생활이 우리나라에 대한 애국심을 돈독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외국 사람들 보다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서 공감할 수 있는 요소를 찾으려 했었고,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그곳보다는 우리나라의 이름없는 동네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만 갔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래에 나오는 이런 문장들에는 공감하기가 힘들다.

눈에 사랑의 콩깍지가 씐 그 인물이 등장하기 전이라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멜리사, 그 책이나 논문은 어쩌면 내가 미혼이었기 때문에 쓸 수 있었을 거야. 행복한 사람은 글을 쓸 수 없어. 가정적 행복은 학자의 죽음이야. 멜리사, 아직은 더 써야 해. 당신과 행복한 채로 어떻게 책을 써? 나는 가족을 부양할 만큼 벌고 있지도 않아. 교수는 준실업자야. 테뉴어를 못 받으면 실업수당을 받아야 해.ㆍㆍㆍㆍㆍㆍ(152쪽)

 

이런 문장도 완전 멋지다.

그녀는 이곳에 살면서도 이곳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고 있다. 이곳은 외로움의 보상을 아름다움으로 한다. 외로움에도 중독될 수 있다. 아름다운 정경이 함께 한다면.ㆍㆍㆍㆍㆍㆍ(228쪽)

 

모르겠다, 저자의 사랑이 아름답다고 설레발치기에는 마음의 움직임이 미미하다.

그냥 세상에는 이런 사랑도 있다... 정도로 일갈하는 수밖에.

 

나스타샤는 내게 무엇인가 할 말이 있다. 그러나 두려워하고 있다. 내 눈치를 살피고 있다. 직감으로 느껴진다. 사랑은 이성과 논리로 상대를 파악하지 않는다. 사랑은 분석하지 않는다. 그것은 공감과 일치이다. 나스타샤의 마음이 내 마음을 파고들어서 내 마음에 공감의 반향을 일으킨다. 이때 둘 사이의 거리는 존재하지 않게 되고, 마음의 벽은 일거에 허물어진다. 언어는 마음을 드러내기에는 부적절한 도구이다. 언어가 끝나는 데에서 사랑이 시작된다. 사랑은 보여지는 것이지 말해지는 것이 아니다.(483쪽)

  우리는 점점 말을 잃어가고 있었다. 말은 유기적인 협조를 위해 요구된다. 그것은 문명을 가능하게 만든다. 여자들은 대화를 요구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 외에 다른 소통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대화를 통해 요구하는 것은 어떤 목적의 달성은 아니다. 단지 소외와 무관심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여자의 대화는 언어를 위한 언어일 뿐이다. 그녀들은 명제를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나스타샤와 나 사이에는 대화를 위한 대화조차도 필요 없어져 가고 있다.

  여기 둘만의 세계에서 우리는 전적으로 서로에게 속해 있다. 눈을 뜨는 순간 서로 바라보게 되고, 하루 종일 어깨와 등을 맞대고 있고, 머리를 맞대고 잠을 청하는 우리에게 언어는 필요없는 것이 된다. 나는 이 침묵이 편하다. 둘 사이에는 어떠한 소외도 없고 어떠한 섭섭함도 남아 있지 않다. 미소와 침묵과 솔직함이 모든 단어를 대신하게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전체 세계이다. 나스타샤는 내게 전체 우주이다.(502쪽)

 

언어말고도 다른 소통 수단이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은 나도 때때로 한다.

그동안 나는 상대방을 미루어 짐작하고 속속들이 안다고 착각을 했었다.

하지만 내가 상대방이 아니고, 상대방이 내가 아닌 이상,

노력하여도 어긋나는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때로는 소리내어 얘기하는 것이 소통에 이르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둘 사이에 어떠한 소외도 없고 어떠한 섭섭함도 없는 침묵이 뭔지 알 것도 같지만,

아직까진 그런 영혼의 쌍둥이를 만나지 못한 탓인지,

나는 때론 너무 수다스럽고 때론 너무 말을 아끼는 것 같다.

 

이 책을 통틀어서 이 부분이 제일 좋았다.

때로 억지로 웃는 사람, 눈만 웃는 사람, 얼굴까지 웃는 사람 따위를 만나지만,

전 인격을 통틀어 자기 자신이 되어 웃는다는 것은,

경험하기 쉬운 일은 아니다.

나 자신부터 말이다.

그녀는 웃음에 의해 한층 아름다운 모습이 되었다. 나는 그렇게 아름다운 웃음을 본 적이 없었다. 이 여자는 자기 자신이 될 줄 안다. 표정만 웃는 모습은 아름답지 않다. 미소에 의해 자신의 전 인격이 웃을 때 거기에는 아름다움을 넘어선 고결함까지 있다. 티 없는 웃음은 따뜻함과 친근함을 불러온다. 스스로가 될 줄 아는 사람만이 그런 웃음을 짓는다. 그러한 사람은 순수하고 선량하고 솔직하다.(212쪽)

 

좋은 책인듯 하지만,

내가 제대로 읽을 깜냥이 아니어서 일까?

쉽게 감정이입을 할 수 없었고,

때문에 누군가에게 용기있게 권하기 좀 애매한 책이다.

나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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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3-27 17:27   좋아요 0 | URL
그런말이 생각나네요..사랑을 책으로 배우든가 ..연애를 책으로 배우면 발생하는 그 온도차이를....감당할 수 있겠는가라는 것들 말이죠..

양철나무꾼 2017-03-28 18:20   좋아요 1 | URL
제가 책을 애정하고,
책을 통하여 배우는 걸 즐기는데,
다행히 사랑이나 연애는 아니었어요.

남편이 첫사랑이었으니까 남편을 잘 만난 덕이겠죠?^^

서니데이 2017-03-28 14:24   좋아요 0 | URL
어제 여긴 비가 오지 않았지만, 오후 네 시, 다섯 시 되는 그런 시간에 너무너무 추웠어요.
한밤엔 기온이 1도까지 내려갔습니다. 요즘처럼 일교차 큰 날에는 감기 조심하세요.
양철나무꾼님, 기운나는 오후 보내세요.^^

양철나무꾼 2017-03-28 18:23   좋아요 1 | URL
저는 겨울이면 목을 따뜻하게 해주려고 터틀넥을 즐기는데,
보통 3월 초면 벗었거든요.
올해도 몇 번 시도했다가 다시 찾아 입었어요.
한밤에 1도라면 아직 멀었네요~--;

서니데이 님도 감기 조심하셔야 합니다~!
따뜻한 저녁 드시구요~^^
 
오래된 새 책 - 절판된 책에 바치는 헌사
박균호 지음 / 바이북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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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탄핵이 인용되었을 때의 일이다.

로비에서 텔레비전을 보시던 할머니 한 분이 '그래도 불쌍하고 안 된다'며 혀를 끌끌 차시더니 이내 눈물 바람을 하셨다.

그걸 본 중년 남성이 할머니를 향하여,

'길거리에서 그런 말 하시면 몰매 맞을 수 있으니, 어서 곧장 집으로 가시라'고 하였다.

중국 동포들을 대상으로 무슨 강의를 하는 남편은 '오늘은 닭먹는 날'이라고 했다가,

수강생 한 명이 '지금 중국동포를 대상으로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거냐?'고 항의를 하길래,

강의를 재밌게 하기 위한 워밍업이라고 얼버무리고 말았단다.

 

지극히 당연한 사안을 두고 이렇게 양가적 감정이 존재할 수 있다니 어찌 생각하면 아이러니컬 하지만,

그런 다양함이 공존하는 곳이 세상이니,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다.

 

그걸 이 책에선 이렇게 얘기한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고, 책을 보는 기준도 다르다. 그러나 나는 다른 사람의 취향이 재미있다. 사람마다 취향이 같다면, 이 세상은 거대한 하나의 기계 덩어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30쪽)

 

알라딘 서재, 이곳도 마찬가지이다.

지극히 일반적이고 보편적이지 싶은데 분명 나와는 다른 입장들이 존재한다.

일반적인 것들로 묶였을때는 알라디너라는 소속감이 따뜻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때로 다른 입장인데도 한데 뭉뚱그리면 버겁다.

이럴땐 '냅둬, 이대로 살다 죽게~(,.)'라고 하며 내 '스스로' 를 '따'(스.따.)시켜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버린다.

혼자일때는 소속을 그리워하고, 더불어 있을 때는 그런 식으로 일탈을 꿈꾼다.

 

어찌되었건, 알라딘 서재 이곳에 적을 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독서인을 꿈꿀 것이다.

나도 독서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동안의 통계 자료를 찾아보니 책을 소장하는데 열을 올리는 장서인에 가까웠다.

이곳에서 서재활동을 시작한건 2010년 5월10일 '책의날 기념 10문 10답' 이벤트부터니까 얼추 7년이 되어간다.

1년에 한100권정도 읽는 내가 그동안 알라딘을 통해 사들인 책은 1964권,

거기다가 이런 저런 이벤트에 당첨되거나,  선물받은 책도 만만치 않다.

그동안 책을 읽는데 목적을 둔게 아니라, 장서에 목숨을 건 꼴이다.

 

그렇다고 장서를 염두에 두고 책을 들였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가지고 있고, 읽은 책들이 '오래된 새책'의 목록과 많이 겹치는 걸 보면,

저자가 권하는 책들이 소장 가치 있는 책들로 편향되기 보다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비슷한 연배들에게 두루 읽혔던 책들이라고 조심스럽게 유추해볼 수 있겠다.

 

이 책을 읽고나니 '독서만담'과 맞물려서 저자가 참 똑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만담 때는 유머코드 때문에 간과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니 본인도 책 속에서 생각을 깊고 넓직하게 펼쳐내고 있으며,

자신이 고르고 읽고 소장하는 책들을 자기주도적으로 관리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책을 고르고 읽고 소장하는 방법들을 사람들에게 설득력있게 전달함으로써,

소장한 책들의 격을 올린다.

 

책이 안 읽히고 안 팔리는 시대라고 체념하고 방관하지 않고,

책으로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 외의 출판 영업, 마케팅, 홍보, 광고 등에까지 적극적이다.

 

똑똑하지만 얍삽하지 않다.

책이 사람을 위한 것이지만 사람 위에 군림하는 것은 아님을 알고,

인간적인 냄새, 적당한 온기, 따뜻함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

 

결국 저자가 말하는 '오래된 새책'이란 절판본이지만 독자들에게 꾸준히 회자되어 재출간 되는 책들을 말한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고, 출판 시장이 얼어 붙은 세태이지만,

책이 절판되어 사라지는 것도, 재출간되는 것도, 상당한 부분 독자의 몫이라고 얘기한다.

나 또한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책들을 개정판으로 읽었다.

저자의 표현대로 하면 '오래된 새책'의 형태이다.

 

이 책은 나온지가 좀 되었다.(초판 1쇄 2011년 9월23일, 초판2쇄 11월10일)

그 무렵 절판본이어서 어렵게 구해야 했던 많은 책들이 재출간되었고,

책 속의 내용들도 사실 여부가 바뀐 것도 있다.

사진집 '천장' 같은 경우도 그때는 '천장'이라는 풍습을 담은 유일한 책이었겠지만,

지금은 더 있는 것으로 안다.

 

이 책 전체를 통틀어 저자의 책에 대한 가치관을 엿볼 수 있어 저자가 짱 멋져보였던 순간이 있었다.

ㆍㆍㆍㆍㆍㆍ그 책은 어찌됐든 누군가에게 읽혀지고 활용되어져야 했다. 날개가 필요한 것은 새만은 아닌 것 같다. 책도 날개가 필요하며 항상 읽혀져야 한다. 그래서 나는 그다지 열성적이지는 않지만 어찌됐든 나에게 필요가 없고, 반복해서 읽거나 참고할 책이 아니라면 인커넷 카페 등의 책 나눔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59쪽)

 

'우물있는집'에서 나온 《괴테자서전》을 읽고 소장하는 이유는 순전히 아름답고 고급스러우면서도 튼튼한 장정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한 국내에서 출간된 책 중에서 가장 장정이 훌륭하고 아름다운 책 중의 하나다.(85쪽)

책의 자태와 위용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도 나와 닮았다.

 

이 책의 끝부분 '책 수집가를 위한 변명'을 보게 되면, 내 속에 들어왔었나 싶게 나랑 일치하는 구석이 있다.

책의 가장 큰 기능이 '장식'에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음이 심란하고 우울할 때 내 서재에 꽂힌 책들을 바라보면 어느 정도 마음이 푸근해지고, 안정을 찾게 된다. 이것은 단지 책이 지적 욕구의 충족이나 학문적 필요로만 기능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반증이다.(255쪽)

 

저자 자신이 좋아서 책을 읽고 또 수집하고 하는 것이겠지만,

이렇게 꼼꼼하고 착실하게 책을 소개하고 권해주면 읽지않고 배길 수 있겠는가 말이다.

 

'독서만담'때도 느낀 것이지만 독서처방사 같은 직업이 있다면 명품 처방으로 이름을 날릴 것 같다.

파릇파릇한 떡잎이나 새싹도 아니고,

나보다 나이가 많을 중년의 앞날이 어떻게 펼쳐질지 이렇게 궁금해 보기는 처음이다.

건필을 기원한다, 고 했다가 글로만 한정시키는 것 같아 아쉬워 이렇게 바꿔본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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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7-03-14 15:30   좋아요 3 | URL
독서만담에서 느낀게 저와 비슷하네요.
신변잡기를 끌어다가 웃기지만,
결국엔 삶이란게 뭐 그리 대단한건 아니야~ 잡다하고 구질구질한 총체 아니겠냐는
묵직한 메세지를 주는 거 같은 느낌.

똑똑하지만 밉살스럽지 않은,
얕게 얕게 글을 쓰는 듯 하지만
읽을수록 점점 더 깊어지는 맛.

박균호님의 매력을
글로 잘 풀어낸 양철나무˝꾼˝님도
˝꾼˝입니다. 역시👍

양철나무꾼 2017-03-14 21:45   좋아요 2 | URL
님~, 어케 리뷰를 쓴 저보다 제 글을 잘 해석하십니까?
개떡같이 말해도 콩떡이나 찰떡 같이 알아주는 님같은 뷴이 계셔서...알라딘 서재를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완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꾼은 맞는데 나무를 잘하는 나무꾼~, 아니 심장을 잃고 사랑을 갈구했던 사랑꾼이었나? 쿨럭~(,.)

박균호 2017-03-14 15:52   좋아요 3 | URL
차마 좋아요를 누르기가 참 민망하네요. 첫 책이라 지금보다 글이 더 엉망이었던 시절이라서요. 그냥 책을 좋아하는 한 아재의 이런 저런 생각이라는 정도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 책속의 책들과 늙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오래된 새 친구‘ 같은 느낌요 ㅎㅎ 나무꾼님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나스타샤의 리뷰가 정말 기다려져요.

양철나무꾼 2017-03-14 21:41   좋아요 0 | URL
북플에서 쓰니까 댓글이 저 밑으로 내려가 버렸습니다. 다시 끄집어 올리려니 잘 안되어서~, 삐질~‘‘

서니데이 2017-03-14 16:40   좋아요 3 | URL
양철나무꾼님의 구매리스트도 책이 적지 않으시군요. 예전에는 관심이 생겨 보관함에 담았지만, 계속 나오는 새 책으로 인해 계속 책이 늘어나는 것 같아요.
오늘 오후도 잘 지나가네요.
좋은하루되세요.^^

양철나무꾼 2017-03-14 21:26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 님~^^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봄볕이 너무 좋아서, 봄바람이 살랑 불어서,
또는 아지랭이가 아른거려서 힘들진 않으십니까?
매년 같은 봄이지만 또 다른 봄이라고 생각하면...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책을 읽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요~--;

cyrus 2017-03-14 17:52   좋아요 1 | URL
박균호님의 책을 읽으면서 저도 헌책방에서 만난 책들도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이런 일이 가능하려면 정말 부지런해야 합니다. 그리고 실천하려는 의지도 높아야 하고요. 저는 헌책방에서 책만 잔뜩 사놓고, 계속 방치해두고 있습니다. ^^;;

양철나무꾼 2017-03-14 21:21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님은 필요 충분 조건을 갖추셨습니다.
저는 예전에는 헌책은 물론이거니와 누가 먼저 읽은 책도 좀 버거워했었는데, 친구를 잘 만난 덕에 이제는 많이 나아졌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인연이 있듯 책과도 그런 인연이 있는것 같습니다.
엄청 게으른 저도 때론 운명 같은 책을 만나기도 하는 걸 보면 말예요~^^

2017-03-14 1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7-03-14 19:02   좋아요 1 | URL
어떡하죠?
제가 지금 벌려놓은 책들이 많아서 책 선물 받는거 자제하고 있습니다.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죠~^^

2017-03-14 19: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7-03-14 21:15   좋아요 1 | URL
거절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셔서 감사합니다. (삐질~‘‘)
여러 분들이 책선물을 해주시겠다는데 누구 건 받고 누구 건 안 받을 수 없어서 말예요.
제가 좋아하는 책읽기가 짐이 되어선 안 될 것 같아서 힘들게 말씀드렸는데, 이해해 주시니 더 감사드립니다~^^

양철나무꾼 2017-03-14 21:36   좋아요 2 | URL
지나친 겸손은 공손이 아니라 오만불손이라고 합니다~ㅅ!
개인적으로 독서만담보다 훨씬 더 좋았습니다. 책들의 자태도 사진으로 알현하는 영광도 누리고 말이죠.
예전에 그런 옷 광고 있었는데...참 좋았급니다. ‘막 사입어도 10년 된 듯한 옷, 10년을 입어도 막 사 입은 듯 한 옷‘이던가요?
책도 사람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양철나무꾼 2017-03-14 21:40   좋아요 1 | URL
북플에서 쓰니까 댓글이 저 밑으로 내려가 버렸습니다. 다시 끄집어 올리려니 잘 안되어서~, 삐질~‘‘

박균호 2017-03-14 21:41   좋아요 0 | URL
ㅎㅎㅎ 다 읽었어요 감사해요

해피북 2017-03-16 22:09   좋아요 1 | URL
우앙~~ 양철나무꾼님의 글을 만날 수 있다는게 서재의 즐거움이기도 하지만 작가님과 의견을 나누고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도 실로 큰 즐거움이네요 ㅎㅎ 댓글 포함 잘 읽고 갑니다 ㅋㅋ

양철나무꾼 2017-03-17 09:50   좋아요 1 | URL
작가 분들이 서재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독자와 소통하려 한다는 건 독자 입장에선 행운이지만,
작가 입장에선 엄청난 스트레스를 감내하는 일일 거예요.
기꺼이 누릴밖에요~^^
 

한반도에 사드 배치하는 것과 관련 중국의 보복이 수위를 높이고 있다.

남편은 중국과 관련된 일을 해서 연일 울상이다.

 

이쯤에서 중국이란 나라가 궁금해지는데,

그렇게 고매한 동양철학의 본거지인 중국에서 이런 일로 보복을 한다고 하나 하는 것과,

보복의 방법이 어떻게 그렇게 유치찬란 할 수 있나 하는 것이다.

 

그런 중에 이 책을 시작했다.

 

 

 탁월한 사유의 시선
 최진석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1월

 

최진석은 '생각하는 힘, 노자인문학'으로 만나게 되었는데, 완전 좋았었다.

앞서 얘기했던 동양철학의 본류라고 하면 중국을 떠올리는 것과 관련,

이 시대의 구루 쯤으로 얘기되는 최진석의 입장이 궁금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2015년 건명원에서 한 5회의 강의를 묶은 것이라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서문'이 충격적이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철학 수입국으로 살았다. '보통 수준의 생각'은 우리끼리 잘하며 살았지만, '높은 수준의 생각'은 수입해서 산 것이다. 다른 사람이 한 사유의 결과를 숙지하고 내면화하면서도 스스로 '생각한다'고 착각해왔다. 수입된 생각으로 사는 한, 독립적일 수 없다. 그렇게 하면 당연히 산업이든 정치든 문화든 가장 근본적인 면에서는 종속적이다. 이런 삶을 벗어나고 싶다. 훈고에 갇힌 삶을 창의의 삶으로 비약시키고 싶다.ㆍㆍㆍㆍㆍㆍ남이 해놓은 생각의 결과들을 내면화하는 일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이 책의 내용이 철학적인 논의가 아닌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이 책은 철학에 관한 책이지, 철학 자체가 아닐 수도 있다. 철학이 아니어도 된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삶의 독립성을 확보하느냐 확보하지 못하느냐다. 무엇으로 불려도 좋으나, 우리의 삶을 각성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보려고 덤빌 수만 있다면 그만이겠다. 최소한 자기가 자기의 주인이 아니었다는 감춰진 사실만이라도 스스로에게 노출되면 좋겠다.(7~8쪽)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중국이나 동양철학을 공부한 사람들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사대주의가 골수에 박힌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최진석은 주체성에 대해서 얘기한다.

중국의 그것으로 대변되는 동양철학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내면화된 사유를 확장시키는 의미로서의 '주체성'을 얘기하고 있다.

개념이 모호하면 혼란스러울 수 있는데, 명확한 개념 정리로 접근하기 쉽고 그러다보니 이해도 된다.

 

해를 해로만 보거나 달을 달로만 보는 것을 '知'라고 하는데, '明'자는 그런 구획되고 구분된 '지'를 뛰어넘어 두 개의 대립면을 하나로 장악할 수 있는 능력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ㆍㆍㆍㆍㆍㆍ여기서 내적공력이란 '명'자처럼 대립된 해와 달을 동시에 품는 공력, 다시 말해 '대립의 공존'을 장악하는 힘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이 대립의 공존을 장악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아름답고 좋기 때문이 아니라 우선 그것이 실용적이기 때문입니다.(20~21쪽)

이렇게 의미의 우선 순위를 정하는 방식도 논리적이다.

 

흔히 그림자가 있기 때문에 '빛'이 나는 것이고,

어둠이 있기 때문에 밝은 거라고 하지만,경계가 모호하다.

경계에서 한쪽으로 아슬아슬 넘어가기는 쉽지만,

이 둘을 하나로 장악학고 아우르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그것을 美나 善에서 구하지 않고 실사구시한다.

철학은 그 '내용' 자체로 규정된다기보다는, '사유' 즉 살아 있는 '활동'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제일 처음 1장의 내용으로 등장하는게 서양의 산업혁명이다.

서양의 산업혁명만을 다루지 않고 그와 시기를 같이한 중국의 아편전쟁, 난징조약, 베이징조약 따위를 애기하고 있다.

이쯤 되면 세계사에 쥐약인 나는 머리가 뽀글거리고 읽기가 싫어질 수도 있다.

그런데 최진석은 역쉬 구루라서 전지전능, 내 속에 들어왔다 갔는지, 이런 얘기를 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산업혁명이 마무리되는 시점과 아편전쟁의 발동 시기(1839년 혹은 1840년)가 일치하고 있지요. 이 일치 속에 은밀하게 담긴 많은 이야기는 흥미 차원을 넘어섭니다. 모름지기 역사에 책임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지성적인 예민함으로 무장해 이를 깊고도 자세하게 음미해야 할 것입니다.(39쪽)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역사의 한 페이지라는 걸 안다면 역사적 책임감에 몸서리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과거사를 몰랐다면 중국의 유치한 보복 꼼수를 이해할 수도 없었을 뿐더러, 대처 방안도 모색해 보기 어려웠을 것 같다.

중국이 이렇게 아픈 과거사를 가지고 있으니 예민할 수밖에 없었겠구나 싶으니,

맥락이나 심정적으로 이해된다.

 

앞으로 어떤 얘기들이 펼쳐질지 완전 기대된다.

암튼 오래간만에 책을 읽으면서 눈이 맑아지고 밝아지는 느낌이다.

책을 시작하기 전엔 '탁월한 사유의 시선'이라는 제목이 너무 어렵고 무겁게 느껴졌는데,

읽기 시작하니까 탁월하다.

제목을 탁월하게 잘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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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3-08 19:28   좋아요 1 | URL
중국은 자신들 국가적 위상을 높일려고 할 때 ‘공자‘ 사상을 언급하는 것 같아요.

양철나무꾼 2017-03-14 15:01   좋아요 1 | URL
공자의 그것이 위상을 드높일만한 것은 틀림없지만,
공자도 성인이기 이전에 인간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 치 앞도 모르면서
남덕현 지음 / 빨간소금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남덕현의 '충청도의 힘'을 제법 재밌게 읽었던 터라 이 책도 그럴 줄 알고 단숨에 들였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재밌긴 재밌는데, 이상하게 내겐 말장난을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웃음도 그렇지만 깨달음 또한 강요한다고 되는건 아닐 것이다.

이 책은 어르신들의 일상에 밀착렌즈를 들이대듯 사소한(이라고 쓰고 자세하고 세세한 이라고 읽는다) 데서 웃음을 끄집어내려는 것이 지나쳐서 깨달음을 강요하는듯 여겨진다.

웃음코드의 타겟은 사투리인데,

그건 어르신들의 일상이니까 자연스러운데, 거기서 깨달음을 끄집어내려는게 작위적이다.

책을 읽고 깨달음에 이르는 것은 책을 쓴 작가의 몫이 아니다.

같은 물을 마시고도 소는 우유를 만들고 뱀은 독을 만들듯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받아들이고 체화하기에 달린게 아닐까.

 

삶이 통속적인 것은 맞지만,

풍자와 해학으로 표현되는 웃음을 두드러지게 하기 위하여 사투리를 사용하는 건 좀 비겁한 일 같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풍자와 해학으로 드러나는 따뜻함을 잘 장착하였다.

풍자와 해학을 장착한 글로 봤을 때도 손색이 없지만,

그냥 봤을 때 잘 벼리고 톱아낸 한편의 수필 같기도 하고 산문시 같기도 하다.

  동네 마실 나갔다가 어르신들 이야기에 말려들어 심판을 보게 생겼다.

  한동네에서 태어나 칠팔십 년을 함께 살고, 별일 없으면 한동네에서 생을 마치는 인연들이다. 짐작컨대 오늘 말고도 누누이 같은 얘기를 주고받으며 티격태격했을 것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대화의 목적이 아님은 자명하다. 서로의 소리를 듣는 것이 목적이라면 목적이지. 그들은 언어의 의미를 전달하는 매개체가 아니라, 고유한 소리를 내는 악기에 가깝다. 그들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수단으로서의 언어의 발화자가 아니다. 언어에서 의미체계를 걷어내고 오로지 소리만을 건져 즐기는 지음(知音)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이다. 그들이야말로 언어의 의미체계로부터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을 극복한 존재들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맞수답게, 서로 질세라 최선을 다해 한 편의 아름다운 합주를 펼친다.(9쪽)

 

내가 이곳 알라딘 서재에서 관계맺는 방법도 마찬가지이다.

말로도 그러하지만,

글로는 한술 더 떠 시시비비를 가리는 글을 쓸 깜냥이 아니기도 하지만,

내가 이곳에서 관계를 형성하는 방식, 즉 네트워킹을 하는 방식 자체가 옳고 그름을 가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관심이 있고 없고,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고, 의 취향을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때문에 웃자고 하는 얘기에 죽자고 달려들면 대략난감할 따름이다.

 

"화투판이만 있구 정치판이는 읎는 게 있는디 뭔 중 아는감?"

ㆍㆍㆍㆍㆍㆍ

"그려 독박. 독박은 노상 궁민덜이 대신 쓰니께! 정치허는 것덜은 마냥 고, 궁민덜은 노상 독박!"

"그러믄 지비는 이번 슨거이서 워디를 밀거사는겨?"

"쌍눔의 개갈 안 나는 화투판 치다두 안 볼 참이니께! 내 세금으루 판돈 걸구선 마냥 고 허는 꼬라지 보는 것두 환장허겄는디, 옆이서 누구 이겨라, 누구 져라 응원까장 혀줄 일 있남?"

"그려두 슨거는 안 혀야 써?"

"참말루, 츤하에 무식헌 소리 허구 있네. 허믄 뭐헌댜?  저것 덜 뽑아놔봤쟈 다 비광이여, 비광! 서루 잡아먹을드끼 으르렁 그르렁허는 거 같어두, 겔국 서루 붙어먹으야 삼점 나는 비광들이라니께! 허, 쌍눔의 화투판!"

  살아온 내력이 진실을 직관하는데, 드잡이면 어떻고 막무가내면 어떠랴.

시골평론만 한 정치평론을 일찍이 들어본 역사가 없나니.(78~79쪽)

요즘 대통령 탄핵과 맞물려서 시국이 말이 아니다.

다른 것을 향하여선 서울과 시골, 수도권과 변두리를 나누지 않지만,

정치는 생물이라고 정치적인 사안을 향하여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분명 계파 간의 갈등이 존재하고, 지방색이라고 할까...지역마다 특색이 존재한다.

'드잡이면 어떻고 막무가내면 어떠랴'라는 말은 '목소리 큰넘이 이긴다'는 자조와 다를 게 무엇인가.

 

"다 헛꽃이지 뭐. 헛꽃 피는 게지 안 그려? 헛꽃 지는 디두 눈물 나는 게 사램이구."

북어대가리 삶는 냄새는 구수해도 아궁이 연기는 매운지라, 어르신도 나도 눈물을 질금거린다.

"나이 오십에 이깐 눔의 연기에 우는겨?"

"어르신도 우시면서 뭘 그러세요."

"나는 우는 거 아닌디?"

"그럼요?"

"속이서 새루 눈물이 나오야 우는 걸루 치는 거 아녀?"

"그런데요?"

"나는 속이서 새로 눈물 나온 지가 원젠지 까마득햐."

"그럼 지금 눈물은 어디서 나오는 건데요?"

"워디서 새루 나오는 눔이 아니라니께? 예즌부텀 배까티 매달려 있든 눔덜이 인자서 녹어 흐르는겨."

"옛날에 울었던 눈물이 아직까지 밖에 매달려 있어요?"

"잉. 사람이 한꺼번에 다 울구 마는 게지, 슬플 때마덤 새루 우는 중 아남? 사람 사는 일이 다 거기서 거기구, 애통이구 절통이구 난리를 치나마나 다 뻔한 일인디, 뭐가 맨날 새루 슬프다구 그띠마다 새루 눈물이 난댜? 사램이 맨날 새루 우는 중 알지만서두 내가 볼 띠는 한번이 다 울구 마는겨. 울기는 다 울었는디 미련이 남아설랑 차마 다 못 떨구구선 장 매달구 사는 게지. 우는 게 일인중 아느니, 우는 건 일두 아닌겨! 매달려 있는 눔의 거 미련 읎이 다 떨구구 가는 게 일이지. 아, 정 붙이는 게 일인겨, 정 띠구 가는 게 일인겨?"(247쪽)

"워떤 낭구가 수월허게 꽃을 떨구는가 알어?"

"글쎄요."

"속이 텅 빈 눔이 꽃두 잘 떨구는겨. 이따 산이 가서 아무 낭구나 손바닥으루다 두들겨봐. 속이 꽉 찬 눔은 암만 두들겨두 손바닥만 아프지 꽃이 고대루 매달려 있는디, 우덜맨치 늙어서 속이 텅 빈 낭구는 한 번 두들기믄 우수수 꽃을 떨구니께. 왜 그런 중 알어?"ㆍㆍㆍㆍㆍㆍ"제갈공명 말구는 내가 아는 공명이 읎어서 지비가 말허는 공명이 뭔 중은 모르겄지만서두  서루 속으로 생각허는 건 한거질겨. 속이 빈 눔을 켜야 깽깽이두 속으루 울어서 소리를 떨구는 거 아녀? 같은 이친겨. 사램두 늙어서 속이 텅 비야 시방 맹키루 허깨비 같은 연기가 스쳐두 속이 울믄서 눈물을 수월허게 떨구는 거니께. 그눔의 거 얼렁 떨구구 가야지 원제까장 그 무거운 눔의 걸 달구 댕기믄서 용을 쓸겨, 안 그려?"(249쪽)

마당 벚나무가 그 위로 꽃잎을 떨군다. 속이 텅 빈 나무가 틀림없다. 그렇다면 저것들은 벌써 진 꽃잎이 아니던가. 이미 다 울어서 오래 전 매달아놓은 눈물이나 다 떨구고 가는 것이 사람의 한 생이라면, 저것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벌써 진 꽃잎들이 매달려 있다가 이제야 지는 것이 아닌가.(250쪽)

하지만 이러쿵 저러쿵 해도 내가 두 엄지를 척하고 추켜세울 수밖에 없는건 이 구절때문이다.

인생을 앞서 살아간 사람 특유의 기지와 해학이 넘쳐난다.

그걸 벼리어낸 작가도 멋지다.

 

밑도 끝도 없는 싱거운 소리만 늘어간다. 오랫동안 열어야 할 것은 닫고, 닫아야 할 것은 열고 살았다, 그래서 '열다'와 '닫다'는 나에게 실패한 언어다. 실패한 언어의 의미, 실패한 언어의 은유와 비유와 상징을 버리는 길은 침묵뿐이다. 그러나 참지 못하고 실패한 언어를 입에 담을 때에는 의미를 제거하고 소리만 내고 싶고, 그리하여 싱거워진다.(266쪽)

 

이런 문장도 너무 좋다. 사족이 될줄 알면서도 옮겨적지않을 도리가 없다.

  새벽으로 치자니 당겨 쓸만한 아침이고, 아침으로 치자니 남은 새벽이 억울할 즈음에 스님이 돌아오셨다. 얼굴을 말똥소똥 쳐다봐도 뭐 하다 오셨는가 한 말씀이 없고, 왔느냐 언제 가느냐 한 물음도 없다. 그러더니 내가 어제 일망타진한 참외 꼭지 세 개를 보고는 입을 쩍 벌리신다.(272쪽)

 

여기 저기서 심플 라이프, 미니멀 라이프를 외친다.

버리고 비워 홀가분해지는 홀쭉한 삶에 유형의 물건들 말고,

내가 뱉어내는 말들, 생각을 옮겨낸 여물지 않은 글이나 그림 따위도 있다는 것까지 생각이 미치자 숙연해진다.

더 많이 비우고 줄여야 할텐데...생각만으로 잉여이다, 행동으로 옮기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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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17-03-06 14:50   좋아요 1 | URL
양철나무의 리뷰는 항상 재미나고 생기가 넘쳐서 좋아요. 그런데 저는 충청도 사투리를 참 읽기가 힘들더라구요.

양철나무꾼 2017-03-06 16:06   좋아요 1 | URL
좋다고 해주셔서 저도 좋아요~^^
전 서울 토박이인데, 일하면서 각 지방 사투리를 구사하는 어르신들을 만나다보니 어느새 익숙해지더라구요.
올해 9세인 제가 이뻐라 하는 조카는 ‘불어라 미풍아‘의 여파로 북한 사투리를 구사하는데,
너무 귀여운거 있죠.

yureka01 2017-03-06 15:05   좋아요 1 | URL
요즘 나이 오십에 찰지게 사투리하는 사람 거의 본적이 없었어요.ㅎㅎㅎㅎ

양철나무꾼 2017-03-06 16:15   좋아요 1 | URL
저희 남편 대학때 학교방송국에서 아나운서를 했을 정도로 표준어를 구사하는데,
초등학교 동창회에 나가면 사투리가 너무 진해서 제가 못 알아먹습니다.
아마도 사투리도 마주치는 손뼉처럼 상대가 있을때 케미가 폭발하는가 봅니다~^^

북프리쿠키 2017-03-06 17:16   좋아요 0 | URL
상대방의 취향에 관심가져주는 것은 인간관계에서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물론 대단한 애정이 있어야겠지만서도ㅎ


양철나무꾼 2017-03-08 09:45   좋아요 2 | URL
용케 취향이 겹치면 말 그대로 케미가 폭발하겠지만,
적어도 자신의 취향을...자기가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있는 그대로, 의 그 사람을 존중해 주는 거 어려운 일일까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봤을땐 제가 그런 밥맛으로 보일 수도 있겠죠~--;

세실 2017-03-06 23:04   좋아요 0 | URL
호호 사투리 정감있네요.
저는 나름 표준말을 쓴다고 생각하는데 가끔 ˝ 그려, 그런겨, 그랴 ˝ 가 튀어 나옵니다.
알라딘에서 논쟁은 싫어요.

양철나무꾼 2017-03-08 10:01   좋아요 0 | URL
전 ‘응.팔.‘이 유행할땐 그게 어디 사투리인지도 모르면서 응팔의 사투리를,
요즘은 ‘불어라 미풍아‘의 여파로 북한 사투리를 구사하고 있습니다.
옆에서 듣던 조카가 하려면 제대로 하라면서 시범을 보이기까지 하고 말이죠~^^
세실 님은 선이 곱고 단아하셔서 사투리도 표준어 하듯 하실 것 같아요~^^

저는 일상에서의 논쟁도 버겁기 때문에 알라딘에서의 논쟁은 사절이예요.
쉬고 재충전을 위한 독서이고 글쓰기인데,
논쟁이 되어버리면 일터, 전쟁터가 되어버리죠~ㅠ.ㅠ


2017-03-07 15: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7-03-08 10:08   좋아요 1 | URL
아하~, 너무 과찬에 몸 둘바를 모르겠네요.
제가 ‘이건 이래서 싫어!하고 딱 선을 긋기보다 그 선 넘어로 보이는 것들을 유연하게 풀어내는 삶과 안목‘을 지녔다기 보다는 포기가 빠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전 좋은 것과 중간까지는 좋은건데, 한번 아니다, 싫다 하면 놓아버리는 버릇이 있습니다.
제 그릇의 소박함을 인정하고 받아 들이는 거지요.
그릇 안에 담을 수 있는 것만 담고 아니면 포기해 버리세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저도 성격이 안달루시아과여서 님한테 이런 말 할 처지는 아니지만서두~(속닥~``)

우리 적당히 포기하고 느슨해지자구요~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