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가의 허기 - B급 주방장 박찬일 에세이
박찬일 지음 / 경향신문사 / 2016년 12월
평점 :
품절


내 'B급좌파'라는 말은 좀 들어봤지만 B급 주방장이란 말은 또 처음이다.

솔직히 그동안 그의 글이고 말이고, 를 자주 접했지만 정치적 색깔이나 사회적 이슈를 두드러지게 다룬다고 느껴본 일이 없었기에 더 낯설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도 'Prologue'에서 부터 '먹고살자는 문장을 쓴다'고 하며 살짝 무게감 있게 접근하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그가 정치적, 또는 사회적 이슈를 얼마나 두드러지게 다루는지,

오랜 기억을 어떻게 끄집어내어 문장을 만드는지, 실감을 하지 못했었다.

차례를 볼 것 같으면 겨울에서 가을로, 여름으로, 봄으로 맛을 거슬러 올라가며 회귀한다.

 

제목은 '미식가의 허기'이지만,

음식에 대한 찬양과 숭배라기 보다는,

'먹고사는 것'에 대한 숭고함 이랄까, 그의 경건함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제 택시비는 있지만, 밤을 도와 한잔 술에 얼굴이 붉어지던 그 친구들은 또 어디 갔을까.

  그 녀석들, 다 불러모아 뜨거운 국물에 차가운 소주를 한잔 사고 싶다. 너희들 덕에 그래도 이 험한 세상, 그럭저럭 살아왔노라고 떨어놓고 싶다. 얼마나 힘들었니, 늘 마음이 겨울인데 겨우살이 준비는 했는지 묻고 어깨를 감싸 주고 싶다. 그런 세상이다.ㆍㆍㆍㆍㆍㆍ얇은 주머니사정 때문에 공짜 국물만 연신 청하던 젊은이들에게 슬쩍 넉넉하게 꼬치를 주문해주던 맘씨 좋은 아저씨들도 있었. 어묵 냄비처럼 깊고 뜨거운 날들이 있었다. 어깨는 시렸지만 마음은 뜨겁던 기운이 거기 있었다.(14~15쪽)

 

그는 이런 방법으로 추억을 소환하는데, 짠하고 눈물겹던 과거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반성하고 미래를 내다보고 궁리한다. 그게 좋았다.

과거는 잘 다져진 디딤돌 역할을 한다.

 

점심시간이 살짝 지난 시간대에 의미 있는 손님들이 찾아든다. 머리가 허연 은퇴 노인들이다. 동창회도 있고, 향우회도 있을 것이다. 느긋하게 둘러앉아 탕 같은 음식에 소주를 돌린다. 점심은 요릿값도 싸고, 자리가 한적해서 일부러 찾는 듯하다. 나는 이런 시간대에 그들과 나란히 앉아 음식 먹는 일이 좋다. 묵직한 어른들과, 겸상은 아니지만, 더운 김이 솟는 음식을 한 공간에서 나눈다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한때 미워했던 아버지 세대에 대한 작은 친근감이 피어난다. 나도 이젠 나이가 들어간다는 뜻이겠다.ㆍㆍㆍㆍㆍㆍ대개 서울 강북의 노포에서 종종 그런 광경을 목도한다. 부축을 받거나 휠체어를 탄 노인이 자식들의 부축을 받아 아마도 지상 최후의 외식이 될 음식을 받는 장면이다. 외식할 근력조차 없어지면, 그들은 힘들게 살아낸 한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 내 숟가락질도 느려지고, 마음은 경건해진다. 우리는 먹기 위해서 태어났고, 곡기를 끊음으로써 숨도 놓게 된다. 한 삶의 퇴장에 바치는 한 그릇의 음식이 가진 비장함! 곁에 앉아서 시중드는 자식들의 애틋한 표정을 읽으면서 나는 삶이란 무엇인가 곱씹어보곤 한다.(42~43쪽)

이 구절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는데,

그의 음식을 대하는 태도 또한, 이렇게 경건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가 아무래도 서비스 업종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러저러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그런 것들이 다 일리가 있다.

 

'가능하십니다'라는 주어가 불분명한 말을 쓰는 상황이나, 무릎을 꿇고 테이블에 턱을 붙이고 주문을 받는 따위, 등을 얘기를 하며,

말은 정신을 규정한다. 어떤 말을 쓰는가에따라 그 사람의 내용이 만들어진다.(59쪽) ...면서 일침을 가하는데, 유난히 서늘하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그 음식과 관련된 추억을 소환하는 행위라는 생각도 들었다.

분홍색 소시지나 부산어묵 따위들은 더 맛나고 품질 좋은 것들이 나오는 지금 먹으면 덜 할지도 모르지만,

개개인의 추억과 어우러져 맛이 있는 음식이니까 말이다.

그러면서,

돼지는 농사짓는 지역에서 원래 자라났다. 인간과 비슷한 음식을 먹는지라, 그 부스러기가 생겨야 기를 수 있었다. 어떤 이는 돼지는 인간과 먹이 경쟁을 하기 때문에 닭처럼 더 광범위하게 퍼져나가지 않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라고 하는데,

언젠가 우리나라 역사 책을 보면서 궁금했었던 부분과 엮여져 고개를 주억이게 된다.

 

요즘 호스피털리티라는 말이 크게 유행이다. ㆍㆍㆍㆍㆍㆍ안락한 서비스를 하겠다는 정도에서 이제는 거의 영혼까지 편안하게 만드는 완전한 평화를 제공하겠다는데까지 이른다. 호스피털리티야말로 보이지않는 비즈니스의 완전판이라고 일컫는다.

  이쪽 업계의 한 선배는 서비스 잘하기로 알아주는 유명인이다. 그는 좀 엉뚱한 데가 있어서 농담도 잘한다. "진짜 서비스는 상대방이 '야, 저 친구가 내게 개인적으로 마음이 있어서 이렇게 잘해주는가 보다'고 생각할 정도로 하는게 진짜다"라거나 "제대로 된 호스피털리티는 서글프게도 우리나라에선 룸살롱이 최고다. 그래서 엄청난 이권이 걸린 비즈니스 접대는 다수가 그런 곳에서 이루어지지 않나"고까지 농담한다. (113쪽)

 

이쪽 업계 선배의 말을 '농담'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 없는 이유는,

농담이라고 하기엔 너무 사실적이고 그럴듯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소금을 우려하는 의사나 영양학자들도 '싱겁게란 엄밀히 말해서 소금 총 섭취량을 줄이라는 뜻이지요.'(129쪽)같은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겠다.

 

가장 서글프면서도 감동적이었던 부분은 요리사들이 뭘 먹는지 궁금해하는 분이 많다...로 시작하는 글이었다.

 

간혹 잡지사에서 '요리사들의 단골집'을 취재하는 경우가 있는데, 박찬일의 단골집은 '문 연 집'이란다.

 

  한번은, <스시효>의 안효주 주방장에 대한 평을 들었다. 그곳에서 일했던 정호영 세프의 경험이었다.

  "늘 최고의 재료를 사서 직원들 식사를 하라고 하는 분이었어요. 그러기 쉽지 않거든요."

안 주방장의 인격을 느꼈다. 나도 그렇게 따라 하려고 한다. 아직 모자라다.(243쪽)

 

요즘 유행하는 셰프란 말보다 '주방장'이란 말을 더 사랑한다는 그,

내가 그의 음식을 한번도 먹어보지 못했으면서도,

그가 쓴 책들을 읽고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하는 얘기만을 듣고서도,

그를 훌륭한 요리사라고 하는 이유는,

'먹고 살자'고 하는 비루한 행위들에 숭고한 가치를 부여하고 품격있게 끌어올릴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산다는 건 조금쯤 비루한 일일지 모르지만,

그렇기 때문에 조금쯤 눈물나지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겠는가?

 

책 곳곳에 오탈자가 눈에 띤다.

이런 오탈자는 책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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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9 18: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09 19: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1-09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식을 먹는 행위와 관련된 추억이 가장 오래 남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때 그 순간이 뚜렷하게 떠올릴 수 있어요. ^^

양철나무꾼 2017-01-12 12:24   좋아요 0 | URL
그래서 일까요?
매번 맛난 음식의 순간은 행복한 추억으로 연결되니까 말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