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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요하네의 우산
김살로메 지음 / 문학의문학 / 2016년 12월
평점 :
기대 이상이었다, 하지만 다 읽고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느낀 충격도 고스란히 내몫이었다.
언제던가 1박2일이라는 텔레비전 프로에서 멤버들의 정신연령 테스트를 하는 것을 본 일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배우 윤시윤(본명 윤동구)의 정신 연령을 42세로 평가했는데,
이는 실제나이보다 10살이나 높은 수치로,
전 멤버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이기도 했다.
전문가는 그를 향해
'한마디로 애늙은이'라며 '어린 나이에 자꾸 참는다. 자꾸 참으려고 하면 홧병이 생길 수 있다'
고까지 조언했다.
온라인에서의 관계는 시뮬라크르, 시뮬라시옹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야말로 익명성에 의지하는 피상적인 관계라는 생각을 하던 터에,
내가 좋아하는 알라딘 서재 이웃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소설 단편집을 내셨다.
그동안의 서재 글들을 봤을 때 자신의 이름을 건 작품집은 당연한 수순 같았지만,
그게 소설의 형식을 띤건 좀 의외였다.
책의 표지를 처음 봤을때의 느낌은 화려하다거나 강렬한 것이 아니라,
은은하고 아련한 것이 안개 속을 헤매이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알라딘 서재에서 봤을때는 섬세하게 배려하는 말투와 아름다운 문장들에 취해있었나 보다.
오히려 소설들은 은은하지도 아련하지도 않고,
적절한 계기와 에피소드를 투영하여, 하고 싶은 말들을 '전부 다'는 아니어도 명확하게 쏟아낸다.
아니다 싶으면 말줄임표로 대신 하듯 열린 결말로 대신한다.
읽으면서 일반적이지 않은 것이 좀 특별하다고 해야할까, 독특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독특한것은 그니가 구사하는 문체가 아니라,
책 속 소설들의 내용이 그러한 것이었다.
내용은 어느 하나 온전하지 않고, 어긋나고 찌그러지고 병든 것 같은데,
그게 이상하거나 특별한 것들이 아니라 우리 일상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처럼 묘사된다.
인터넷 대형 포털 사이트의 여성들의 고민상담 사이트를 업어온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바로 전에 읽은 '시체읽는 남자'에서는 전형적인 등장인물인데도 쉽게 감정이입을 할 수가 없어 괴로웠는데,
요번 소설집에는 어느 한 사람, 한 장면 소외시키지 않고 감정이입을 할 수 있겠는데,
그럴 정도로 남의 일 같지는 않은데,
뭐랄까, 내 버선 목을 뒤집어 보이는 듯 하여 창피하고,
경계를 걷는 듯 느껴지는 것이 위태롭고 불안하다.
희한하다. 에세이를 쓰고 있으면 거짓말쟁이가 되는 기분이지만, 소설을 쓰고 있으면 어쩐지 솔직해지는 감정이 몰려왔다. 아마 내 안의 위선과 진실, 내 안의 악마성과 순진성 사이에 소설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 두 옷자락의 경계를 즐거이 또는 위태롭게 스쳐간 여정이 소설의 흔적으로 남았다. 새벽이 올 때까지, 제법 긴 그 마법의 시간을 좋아한다. 몇 시간이라도 한 시간처럼 몰입하며 쓸 수 있되, 착하게 쓰지 않아도 되는 그 소설적 시간을 사랑한다. 착한 마음도 못된 소설도 '버려야' 잘 써진다는 것도 깊은 밤이 가르쳐준 지혜였다. 이 소설집을 계기로 마음이 흐르는 대로 소설이 오는 대로 받아 적기로 한다. 소설이란 살아내는 사람의 자연스런 방식 안에서 말해지는 거니까.(317쪽, '작가의 말'중에서)
그니는 작가의 말을 통해 이렇게 얘기한다.
다시 이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
전문가는 윤동구를 향해
'한마디로 애늙은이'라며 '어린 나이에 자꾸 참는다. 자꾸 참으려고 하면 홧병이 생길 수 있다'
고 하는 순간, 나는 쾌재를 불렀었다.
'참지 말고 하고 싶은대로 하라'는 내 마음 속의 '진단과 처방'과 일치하는 조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집을 다읽고 마지막에서야 '작가의 말'을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니 나름의 소설작법에 대해서 얼마든지 열렬히 응원해줄 수 있겠다.
그동안 나는 나와의 친밀도나 관심 분야를 막론하고,
작가가 직접 책을 보내주겠다고 하면 사양을 했었다.
나의 주관적인 견해가 책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 일은 드물겠지만,
아무래도 선물 받은 책을 향하연 리뷰 한 글자, 별표 하나 보태거나 빼는 것도 신경이 쓰이기 때문이었다.
요번에도 마찬가지로 보내주시겠다는 것을 사양했었다.
내가 직접 사서 읽고,
이렇게 별 다섯개를 빽빽하게 채워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아니, 느낌적으루다가...별 다섯 개가 좀 부족한 느낌이 든다.
아참참, 일부러 그런것인지 오타인지,
2쇄에서 바로 잡아지길 기대하며 옮겨 적는다.
조아주는->조여주는(24쪽)
컸나 보나->컸나 보다.(2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