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방 예찬 - 나무를 다듬고, 가죽을 꿰매고, 글을 쓰는 남자의 기록
이승원 지음 / 천년의상상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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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과 보대끼며 상처를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하며 생활하는 내게,

공방은 거창하고 추상적이지만 포기할 수 없는 꿈이다.

꿈이라고 쓰고 숨을 쉬는 통로라고 읽는다.

 

공방을 꿈꾸긴 하지만,

공방과 관련된 무엇을 펼쳐놓을 여건은 안되어 주시고,

시간을 쪼개 할수 있는 일은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것이다.

리뷰는 글의 형태일때도 있고, 어쭙잖게 그림이나 수공예품 따위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 책 '공방예찬'을 읽기 시작하게 된게,

'공방'이라는 두 글자 때문이었는지,

'나무를 다듬고, 가죽을 꿰매고, 글을 쓰는 남자의 기록'이라는 부제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무언가를 다듬고 꿰매고 글을 쓰기도 하는 게 나랑 닮아서 인지, 잘 모르겠다.

책 날개 안쪽을 보게 되면 바늘에 실을 꿰는 섬세한 손이 나오는데, 한참을 쳐다봐 주시고, ㅋ~.

 

'나무를 다듬고, 가죽을 꿰매고,'...이런 것들을 다 하면서 글을 쓰는 남자라니 '좀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진송의 '목수일기'를 떠올렸었는데 내가 너무 앞서간듯 여겨지기도 하지만서도~--;

 

사진 바로 그 밑에,

나무꾼도 갖바치도 아닌데 가구와 가방을 만든다. 아무것도 속일 수 없는 정직한 직업이다. 가장 원초적인 근육을 움직이면서 창조적 노동에 참여하는 희열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순정한 기쁨이다. 무엇보다 내 몸이 바뀌었다는 것, 내 노동과 능력이 누군가에게 선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커다란 축복이다. 가끔은 여행을 떠나 사진을 찍고, 주로는 대학에서 문학과 글쓰기를 가르친다.

라고 되어있는 프로필도 멋지다.

 

'작가의 말'을 보게 되면 이런 구절들이 나온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마는 10년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졌다. 때론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기도, 상처를 주기도 했다. 좋은 날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기다림이 너무 힘들어 나무를 다듬고 가죽을 꿰맸다. 무언가를 만들고 또 만들었다. 그러다 보면 진짜 좋은 날이 올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그렇게 나는 어쩌면 내 삶의 가장 빛났을 수도, 가장 어두웠을 수도 있었을 10년을 견뎌냈다. 몸이 녹초가 되고 나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으니. 공방은 내 오랜 견딤의 동반자였다.(9쪽)

이 구절을 읽는데 내가 엄청 좋아하는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 중 '지옥은 신의 부재'라는 단편 소설이 생각났다.

'지옥은 신의 부재'가 왜 생각났는지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나의 경우를 놓고보면,

직장이란 것이 공방이라고 부를 수 있는 취미활동들을 기꺼이 할 수 있는 밑천이 된다.

직장이 있기에 취미활동을 통하여 쉴 수도 있고, 위로받을 수도 있고, 재충전의 필요성도 느끼는 것이지,

공방활동만을 하거나 공방활동이 직업이 된다면 쉬거나 위로받는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천국과 지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신의 부재가 곧 지옥이라는 명제만큼의 울림이었다.

 

암튼 그는 그런 글들을, 그리고 사진들을...블로그에 일상을 올리듯 덤덤히 늘어놓는다.

일기라고 하기엔 덜 사사롭고,

수필이라고 하기엔 주제가 하나로 모아지지 않을뿐 더러 지나치게 사변적이다.

글쓰기 방식도 문장 단위로가 아니라, 읽기 좋게 끊어놓는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다.

간간이 메모해놓은 글들을 펼쳐놓는다.

글의 밑그림을 그린다.

쪽글과 쪽글을 실로 꿰듯이 연결한다.

불필요한 문장은 과감하게 깎아버린다.

깎고, 다듬고, 꿰매서 글을 완성한다.

 

가구와 가방을 만드는 일은 글쓰는 일과 비슷하다.

무언가를 만들고 짓는 일은 얼추 비슷하게 진행된다.

ㆍㆍㆍㆍㆍㆍ

『혼불』의 작가 최명희였다.

평생 대하 장편소설 『혼불』에만 매달렸던 작가는

원고 쓰는 일을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일이자

온 마음을 사무치게 갈아

온 생애를 기울여 한 마디 한 마디

글을 파나가는 것이라 말했다.(36쪽)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 선생님, 바느질은 에르메스급이야!

물론 그 칭찬 속에는 다른 과정도 꼼꼼히 하라는

속 깊은 충고가 담겨 있었을 게다.

조사 중에서 하필이면 '은'을 썼으니 말이다.

원장님의 농담 같은 칭찬을 듣고 난 후

나의 바느질은 춤을 췄다.(105쪽)

이런 글들을 보게 되면 작가가 섬세하고 결이 고운 사람이라는 걸 금세 알 수 있다.

 

프로이트 박물관을 구경하는 내내 조금 음산하고 우울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통가죽으로 정성스럽게 만든 프로이트의 여행가방과 - 물론 왕진 가방일 수도 있겠으나 - 휴대용 술병 케이스를 보았다. 우울한 프로이트 선생님인 줄 알았는데, 쫌 놀 줄도 알았겠군, 하는 기분이 들었다. 특히 'S.F.'라는 이니셜을 보고 픽 웃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라! 알겠다고요, 프로이트 선생님. 그런데 나는 자꾸 불경스럽게도 'Science Fiction('공상' 과학 소설)'이 떠올랐다.(108쪽)

이 부분을 읽으면서 한참을 낄낄거렸는데,

'S.F.'에서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떠올리는 사람은 많지 않을테니까 말이다.

Science Fiction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로버트 실버버그의 두개골의 서'를 읽었던 나는,

역자 최내현처럼 social fantasy 라고 거들먹거리고 싶은 걸 꾹 참게 된다.

그러고 보면 모든 Science Fiction은 어떤 의미로는 social fantasy 가 되는게 아닐까 싶다.

 

작가가 어떤 목공에품과 가죽 작품을 지향했는지는,

한스 베그네르를 인용한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보는 의자가 아니라 앉는 의자'를 추구했단다.

예술이 아니라 실용을 중시했다는 말일 테다.

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의 의자는 에술 작품이 되었다.

한스 베그네르는 자신의 의자가 대량 생산될 수 있게 고안했다.

아무리 대량 생산될 수 있는 그의 의자라지만

서민들이 쉽게 넘보기는 어려운 의자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편하게 앉을 수 있는

아름다운 의자를 만들려고 노력했던

그의 정신만은 값지다.

북유럽 스타일의 정신만은 고이 간직할 일이다.(215쪽)

하지만 옥에도 티가 있다고 모든게 완벽하지는 않다.

상처는 죽 떠먹은 자리처럼 흔적없이 사라지지 않았다.

상처는 마음 깊은 곳에

겹겹의 나이테가 되어 또렷이 자리 잡는다.(111쪽)

이 문장은 그럴듯 하지만, 적절하지 않다.

상처가 났던 자리엔 옹이가 남는다.

나이테는 상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계절에 따라 세포분열의 속도가 달라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내가 이 부분을 캡쳐한 이유는 '바느질의 정석'을 표현한 저부분이 맘에 들어서 이기도 하지만,

책의 제본상태가 불량하여 벌어지고 급기야 낱장으로 떨어진다.

책이 소모품이긴 하지만,

책을 소중히 다루는 내게 와서 이 정도이면 허술해도 한참 허술한 것이다.

 

220쪽 안데르센 마을을 보러 가잖다.

이 부분은 '가잔다'의 오타이다.

 

사진들은 그가 만든 목공예품이나 가죽 작품들을 많이 보여줬으면 싶은데, 작품 사진에 가깝다.

책이라는 제한된 공간이 다 담아내지 못할 것을 생각하지 않고 너무 욕심을 부린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을 좋다고 설레발치는 것은,

'나무를 다듬고, 가죽을 꿰매'기도 하지만,

글을 쓰는 남자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남자 특유의 섬세함과 고운 성정이 글 곳곳에 묻어난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손으로 매만지고 쓰다듬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좀 더 아름다워지고,

우리는 좀 더 나아질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예감이 예감적으루다가 들기 때문이다, ㅋ~.

 

아내가 망가뜨린 물건을 차일피일 미루며 내버려두자

그녀는 공방까지 다니면서 뭘 이런 것도 고치지 못하냐며 투덜댄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쏟아낸다.

장인이 뭐 별거야.

물건만 잘 만들면 장인이야?

장인은 우리의 망가진 삶을

우리의 찢어진 마음을 꿰매고 수선하는 게 장인이야.

물건을 고치고 수선하는 것은

단순히 물건에 생명을 불어넣는 게 안야.

그건 그 물건을 사용하던 사람의

삶을 생명을 마음을 꿰매고 수선하는 거야.

알았어?

 

아내의 말을 찬찬히 들어보니,

다 옳다.

누구에겐가 자랑하려고 가구나 가방을 만들지는 않았다.

만드는 것 자체가 좋았다.

내 손이 닿을 때마다 망가진 물건이 되살아나는 느낌도 좋았다.

저마다의 물건에는 저마다의 삶의 흔적이 남아 있다.

ㆍㆍㆍㆍㆍㆍ

그래도 어쩌겠나.

아내는 나를 '자기만의 맥가이버'로 생각하고 있는데,

그것이 얄밉지만,

그래도 가끔은 뿌듯하다.

나는 때로는 목수가 되고,

때로는 갖바치가 되고,

때로는 신기료장수가 되고,

때로는 무두장이가 되어,

누군가의 망가진 추억을

다독이고 매만지고 위로하고 싶은 게다.(258~259쪽)

 

무엇보다 저자는 이 모두를 글로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글로 치유할 수 있는 사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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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5-11 16:41   좋아요 0 | URL
그야 말로 저술이 겸비되는 장인이었군요.^^..

양철나무꾼 2017-05-11 17:35   좋아요 1 | URL
대학에서 문학과 글쓰기를 가르치는 것이 본업이고,
나무랑 가죽은 겸업인 셈이니까,
어째 살짝 바뀐것 같은데죠.^^

어쨌거나 전 님의 글과 시진들이 좀 그립습니다.
시험 어여 끝내고 왠만하면 빨랑 복귀하시죠~!

박균호 2017-05-11 16:44   좋아요 1 | URL
호기심이 가는 책이네요.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2017-05-11 17: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11 1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11 19: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균호 2017-05-11 19:10   좋아요 2 | URL
하마터면 살뻔 ㅎㅎ
 
엄마의 골목 - 진해 걸어본다 11
김탁환 지음 / 난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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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천 소재의 숄더백을 샀다.

천으로 만든 숄더백이 갖고 싶었던 터라 남편에게 설레발을 치며 자랑을 했더니,

남편에게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사람들이 슬금슬금 너를 피하지 않니?"

"왜?"

"도를 아십니까 인 줄 알고."

봄을 맞이하여 좀 걸어보겠다고 편안한 신발과 가벼운 숄더백을 장만한걸 가지고 놀려대는 남편이라니~--;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일뿐만 아니라, 산책의 계절인가 보다.

내가 참 좋아하는 김탁환 또한 고향인 진해를 걷고 책을 낸걸 보면 말이다.

혼자 걸은게 아니고 엄마와 함께 걷는데, 가끔 남동생이 식사자리에 합류하기도 한다.

그 여정을 글로 옮겼다.

아니 책으로 나올걸 계획한게 먼저이겠다.

매일 하모니카를 부는 엄마가 하모니카를 밟고 다치셔서 한번,

그리고 김탁환이 중간에 세월호 관련 책들을 만드는라 또 한번,

엄마와의 산책은 연기되기도 하고 중단되기도 한다.

하지만 내용은 뜨문뜨문하거나 단절된 기색이 없는 것이,

한편의 소설이라고 해도 좋을정도로,

단어 하나, 문장 하나 하나, 적당한 온기를 지닌 것이 따뜻했다.

책 겉표지 안쪽에 등장하는 지도는 동생의 찬조 작품이다.

엄마의 골목이라는 말로는 뭔가 부족한 느낌, 가족의 골목이라고 해야 할까, 가족의 거리라고 해야 할까.

 

이 책을 읽으면서 곳곳에서 눈물을 흘렸다.

내 자신의 일로는 입을 앙 다물고 눈물을 참지만, 책을 읽다가 우는 일은 흔하다.

보통은 책 내용과는 상관없는 상념이 몰려오고, 그런 상념들이 연결되어 눈물이 나올라치면 책을 빙자하여 울게 된다.

그리고 가끔 아주 가끔이지만, 아름다워서 울때도 있다.

이 책의 경우, 처음엔 상념이 눈물을 불러왔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후자였다.

 

함께 골목들을 걸으며 엄마는 얘기를 하고 아들은 글을 쓴다.

그러니 글은 아들이 쓰지만 엄마의 인생을 대필하는 것이다.

이런 글들을 보면 가족의 인생을 대필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가족의 인생이 너무 아름다워서 부러웠고 약이 올랐다.

삶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계획도를 아무리 근사하게 만들어도, 매일매일을 그대로 지키긴 어렵다. 몇 번 엄마에게 거짓말을 한 후 친구들과 놀러 다니다가 들키기도 했다. 엄마는 나를 집 밖으로 데리고 나가 벾에 세웠다. 창원군에 살 땐 집 앞에 나무들이 무성한 언덕이 있었다. 어둠이 깔린 숲을 혼자 보고 있노라면, 무서웠다. 먼저 낯선 소리들이 밀려왔고 뒤이어 알아보기 힘든 형체들이 일렁거렸다. 눈을 감거나 귀를 막아도 그 소리와 형체는 사라지지 않았다. 동생과 함께 벌을 설 때도 있었는데, 동생은 15분도 넘기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ㆍㆍㆍㆍㆍㆍ나는 견뎠다. 겨울에는 추위와도 싸워야 했지만, 엄마에게 먼저 용서를 구하진 않았다. 차라리 숲으로 들어가서, 그 숲의 일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엄마 대신 문을 열고 나와선 나란히 섰다. 내 눈길을 따라 어둠을 쳐다보며, 아버지는 짧게 물었다. 그럴 땐 이상하게도 평안도 사투리가 슬쩍 얹혔다.

"뭐이가 있나?"

니는 피하지 않고 견디는 중이라고 답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단정한 문장이 떠오르진 않았다. 아버지가 내 야윈 어깨를 감싸며 덧붙였다.

"담부턴 그러지 말라우."(35~36쪽)

 

그래서 때로 글들은 필자의 인생만큼이 아니라 화자의 인생만큼의 통찰이 담겨 있다.

 

엄마는 자신의 뜻을 밝히고 일을 만들어가는 대신, 말을 아끼고 일을 지우는 쪽을 택했다. 하모니타를 배우기 시작한 것 외에 일흔 살을 넘긴 후 엄마가 벌인 일은 없었다.(59쪽)

나도 무언가를 사고 들이고 일을 새로 시작하는 것보다는 버리고 나눠주고 일을 줄이고 잉여로워지는 쪽을 택하고 싶다.

아무것도 없이 허허롭게 살고싶지만 현실적으론 힘들겠고, 가방 하나에 들어갈 정도였으면 좋겠다.

언제고, 어디고 상관없으니 가벼운 산책 하듯 그렇게 움직일 수 있게 말이다.

 

"어떻게 그 많은 이야기를 품고만 살았어요?"

"하고픈 이야길 다 하고 살아, 그럼?"

"그건 아니지만ㆍㆍㆍㆍㆍㆍ"

"나이를 먹는다는 게 뭔지 아니? 일흔 살을 넘기며 늙어간다는 게 뭔지 아느냐고."

"ㆍㆍㆍㆍㆍㆍ"

"이야기가 많아진다는 거야. 차곡차곡 이 가슴에 쌓이지. 그렇다고 그걸 전부 누군가에게 말해야겠단 생각은 안 들어. 다만 이야기할 기회가 가끔 찾아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야. ㆍㆍㆍㆍㆍㆍ그렇게 누군가를 만나면 그 사람과 나눈 이야기가 떠올라. 그럼 이야길 하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안 하는 거고."(156~157쪽)

 

나 또한 어르신들과 대화를 나누는게,

아니 어른신들이 하는 얘기를 듣는게, 직업이다 보니,

(엄밀하게 말하면 얘기의 행간을 파악하는 거지만~.)

어르신들을 좀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런 분들도 계시다니 놀랍다.

 

때론 어르신들의 얘기에 '네에~.', '그래서요~?' 따위의 추임새를 넣기만 할뿐,

제대로 된 문장을 발음해보지 못하고 하루를 마감하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가슴 속에 이야기를 품고 살고 싶지는 않다.

예전엔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도 상대방을 배려하느라 상대방이 불편할 얘기는 하지 않고 말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 상태에 집중한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일단 하고 본다.

대신 감정적으로 앙금을 남기진 않는다.

사람에게 할 수 없으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대숲에라도 털어놓는다.

 

여기서 나는,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의 농담 아닌 진담을 슬쩍 끼워넣었다.

"정글에서 자연사는 잡아먹히는 겁니다. 엄마는 절대 자연사하실 일 없습니다."

"그게 그렇게 되니?"

"네, 그렇게 되니까, 살 만큼 살았으니 죽고 싶단 소린 하지 마세요."

"ㆍㆍㆍㆍㆍㆍ맘에 걸렸어?"

"살 만큼 살았단 엄마 이야길 듣고 맘 편한 아들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요?"(170쪽)

 

사실 나이로 따진다면 나는 엄마보다는 아들에 가깝다.

두살 정도 어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보다는 엄마 신자 여사가 한 말들에 심정적으로 동의하겠다.

그래서일까?

누군가를 만나고 인연을 만드는 것 또한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이렇게 하려고 노력한다.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점점 가벼워지는 것 같아. 깃털처럼, 그래 깃털처럼. 만나긴 분명 만났는데, 만나고 나면 그의 표정도 목소리도 걸음걸이도 떠오르질 않아. 만나 다행이지만 만나지 않았대도 불행하진 않다는 그런 느낌도 들고."

"곧 올게요, 정말."

"난 요즘 내가 꼭 낙엽이랑 비슷하단 생각을해. 특히 노란 은행잎들, 나무에 매달려 있을 땐 참 고와서 눈을 뗄 수 없는데, 땅에 떨어진 노란 것들은 쳐다보기도 힘들어지더라고."(172쪽)

 

나이가 한살 더 먹을때마다 좀 더 홀가분해질 수 있기를,

그래서 산책하듯 가볍게 떠날 수 있기를, 꿈꾼다.

 

그리고 그 산책은 걸어서 할 수도 있지만,

때론 이런 책 한권을 통해서 글 속을 누비듯 일 수도 있겠다.

나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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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04-26 16:03   좋아요 0 | URL
패브릭 소재 가방 편하고 좋아요. 일단 가벼워서 좋고요. 나중에 세탁도 가능해서 좋아요.^^
봄에 잘 어울리는 밝은 색 신발과 가방도 잘 어올릴것 같은데, 갑자기 도를 아시는 분(?)으로.^^;
책 표지가 벚꽃핀 날의 밤 같네요.
양철나무꾼님 좋은하루되세요.^^

양철나무꾼 2017-04-26 16:24   좋아요 1 | URL
리뷰 본문에서 명확하게 밝히지 못했지만,
제가 어릴때부터 엄마 없이 커서 그런가,
엄마와의 케미 그 부분이 완전 좋았고,
저도 아들이랑 그런 관계가 되어야지 ‘불끈~!‘했습니다.

서니데이 님표 가방들도 귀요미 조카가 잘 쓰고 있습니다~^^

yureka01 2017-04-26 16:33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양철나무꾼님도 이렇게 서재에 이야기를 풀어내시지 않습니까요..
이야기는 풀어야지 품어서 쌓이게 하면 답답해지잖아요.ㅎㅎㅎ
오늘도 잘 풀어 내셨습니다..휘리릭 읽었습니다..~~^^..

양철나무꾼 2017-04-29 10:27   좋아요 0 | URL
이야기를 풀어야 하는게 맞죠.
그런데 자기안에 품어두지 않는다고,
품으면 병이 된다 싶어서,
자기 할 말만 마구 하면,
할때는 모르겠는데...나중에 괜히 공허해 지더라구요.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건,
어찌보면 사랑처럼 밀고 당기는 ‘밀.당.‘이 묘미인것 같아요~^^

서니데이 2017-04-26 16:46   좋아요 0 | URL
1.중간에 인용이 있는 글은 서재에 다시 와서 읽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어느 부분이 인용인지 잘 모를 때도 있거든요.
2.리뷰 읽으면서 전에 읽었던 룽잉타이의 책이 생각납니다.
3.우리는 자연사하지 않는 사람들일거예요. 그러니 심장이 뛰는 방향으로 원하는 인생을 즐겁게 살면 좋겠습니다.^^


양철나무꾼 2017-04-29 10:34   좋아요 0 | URL
1.그런 의미에서 북플도 서재에서처럼 보여졌으면 좋겠어요.
그게 힘들다면 인용문을 돌출시키는 방법을 쓰던지 말예요.^^
2.저도 룽잉타이 책 3권 가지고 있는데 아직 읽어버지 못해서,
코멘트는 좀~--;
3.심장이 뛰는 방향이라는 말을 들으니,
‘바람 피기 좋은 날‘이란 영화가 생각났어요.
거기서 윤진서가 막 뛰던 장면 말예요. 저도 그렇게 심장 두근거리게 뛰어본 적이 언제던가 싶어서 말예요.
4. 날이 너무 좋아요.
다들 밖으로 소풍 나가 버려서,
조용한 것이...공부하기에 딱 좋은 날들입니다~^^


2017-05-01 0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02 1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잘 지내나요? - 나, 너, 우리를 향한 이해와 공감의 책읽기
이유경 지음 / 다시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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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다락방 님의 새 책 '잘 지내나요?'를 읽었다.

지난 번 책 속에 언급된 책들은 나도 읽은 책들이 많았고 쉽게 교집합이 형성되고 공감이 쉬웠었던 반면,

요번엔 내가 읽은 책들이 거의 없다.

안 읽은 책들이라도 공감을 할 수는 있지만,

내가 나이가 들어 공감 능력을 잃어버린 것일까?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감정들이,

그녀가 울고 웃고 행복해하고 절망했던 모든 순간들이,

(여자라면 더 격하게 와닿았을 수많은 감정들이, 그녀에 의해서 부추김을 받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그녀를 통해서 나오면 사랑이고, 인간을 인간일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되었다.

 

그런 그녀의 글들이 담긴 책이 요번엔 힘들었다.

로맨스를 꿈꾸기엔 너무 나이들어 버린 것일까.

그럴싸한 로맨스를 꿈꾸기에는 지금의 내 삶이 너무 소중하고 안정적이어서,

포기할 마음이 없다.

 

덕분에 오래간만에 봄바람 가슴에 가득 든 처녀마냥,

설레이고 아슴아슴한 마음을 주체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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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4-22 10:43   좋아요 0 | URL
안 읽은 책에 대한 소개글을 읽으면서 공감을 느끼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제가 안 읽어 본 책의 리뷰를 쓰는 분들의 글을 ‘좋아요‘만 누르고 가는 일이 그 글에 공감했다는 의미를 전달하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제가 다른 분들의 리뷰를 ‘좋아요‘ 많이 눌러도 그 리뷰에 소개된 책들을 많이 읽지 않았어요.

양철나무꾼님과 다락방님의 리뷰를 읽으면 리뷰에 소개된 책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고, 실제로 그 책을 읽어보는 분들이 많아요. 그만큼 두 분의 리뷰는 독자들의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양철나무꾼 2017-04-26 16:06   좋아요 0 | URL
저는 리뷰고 페이퍼에 ‘좋아요‘를 누를때 ‘잘 읽었습니다‘정도의 의미를 부여해요.
그 책 내용은 말할 것도 없고, 리뷰나 페이퍼 내용 만으로도 기억하고 담아두려면 과포화 상태 아닐까요?
저는 틀림없이 폭발하고 말거에요~ㅠ.ㅠ

다락방 님 책 리뷰여서 그렇겠지만 같이 묶여서 완전 영광입니다~^^

초딩 2017-04-24 17:19   좋아요 0 | URL
우앗 책 제목 보고 깜딱 반가워합니다~

양철나무꾼 2017-04-26 16:07   좋아요 0 | URL
이게 얼마만인 겁니까?
잘 지내시는 겁니까?
이제 좀 자주 뵐 수 있는 겁니까요~ㅅ?^^
 
스님, 절밥은 왜 그리도 맛이 좋습니까 - 요리사 박찬일의 순수 본류의 맛 기행
박찬일 지음 / 불광출판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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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저녁 밥상머리에서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는데 이윤석이 나왔다.

저질체력을 증명이라도 하듯 영혼 탈출한 좀비의 모습으로 어기적거리고 있었다.

입맛이 없다면서 밥 대신 알약 하나 먹고 말았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사람에게 먹는 즐거움이 얼마나 대단한데 그걸 포기하겠다는 것일까 싶었었다.

아내가 얼르고 달래 한술 뜨는둥 마는둥 방으로 들어가더니,

이번엔 숨겨놓았던 과자를 한가득 꺼내,

'그래, 이 맛이 바로 천상의 맛이야'

하는 표정으로 먹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어 나도 모르게 혀를 끌끌거리자 같이 보던 남편이,

"엊그제까지만 해도 편의점 신상 터는 재미로 살던 니가 그러면 안되지."

하는 바람에 화들짝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슴슴하고 음식의 재료가 가진 본연의 맛을 살린 음식이 좋다고 하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음식의 맛을 제대로 모르고 인스턴트식품이나 자극적인 음식을 입에 달고 살았었다.

때문에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스님, 절밥은 왜 그리도 맛이 좋습니까' 만 하더라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소재는 아니었다.

거기다가 쿡방이니 먹방이라고 하여 재빨리 음식을 만들어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익숙했던 터라,

음식이 나는 산지의 취재에서부터 시작해서 음식을 만드는 과정, 밥상에 오르기까지,

그 품과 정성이 영겁의 시간으로만 느껴져,

그 시간을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고행이고 수행이 아닐까 싶었었다.

 

암튼,

박찬일은 새 책이 나왔다고 하면 무조건 들이고 보는 작가 중에 한명이다.

글솜씨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안에 녹아있는 사상도 건강하여,

그가 쓴 글을 읽을라치면 맛깔스런 음식을 먹고 건강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런 그가 아무 맛도 없고 슴슴한 사찰음식이라니 아이러니컬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박찬일이 아니라면 누가?'라고 질문의 방향을 바꾸니,

그에게 맞춤한 질문과 답이라는 걸 알겠다.

내 이런 생각을 들여다 본듯 '여는 글'에서 이렇게 밝히고 시작한다.

누군가는 말한다. 수도하는 이들에게 미각이 무엇이며 요리법의 고민이 무슨 사치냐고. 나도 그 말에 절반쯤 수긍하던 때가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 시선은 한참 본질에서 빗나간 것이다. 만물을 알뜰히 먹는 일은 수행의 고갱이다. 들과 산, 밭에서 얻은 것들을 다듬고 갈무리하고 불(火)과 장을 입혀 요리하는 일은 가장 숭고한 수도다. 그것을 맛있게 요리해서 수도하는 이들과 대중에게 내는 일보다 더 '수도승'다운 일이 무엇인지 내게 말해 달라. 수행에는 각기 다른 방식이 있되, 일상의 수행은 하루 세 번의 끼니에서 출발한다. 왜 아니겠는가. 인간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이 종교 아니던가.(7쪽)

 

그러고보면 음식이라는건 여러 거창한 이유 이전에 뭔가를 살리고 제 목숨을 일구어야 하는데(17쪽),

난 이런저런 조리과정을 거친, 현란한 맛이나 뭔가 요란한 솜씨를 자랑하는 요리만을 음식과 동격으로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반성을 한번 해주시고~--;

아무 맛도 없고 슴슴한 사찰음식이라고 하여 조리과정마저 간단한 것이 아니란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요즘은 격식에 좀 자유로워서 그렇게 까다롭게 가리지않는 분파도 있겠지만,

일단 육류와 더불어 파, 마늘, 부추, 달래, 흥거 오신채를 먹지 않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하얀 설탕처럼 가공되거나 정제된 재료를 모두 배제하기도 한단다.

 

그러고보면 사찰의 스님들만 수행을 하고 도를 닦는게 아니라,

음식을 만드는 모든 사람들이 숭고한 경지에 이른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박찬일 이분처럼 음식과 글, 양쪽으로 도를 닦고 경지에 이른 분들도 계실테고 말이다.

 

봄철 음식인 냉이를 얘기하면서,

뭐, 김훈의 남한산성을 (안 읽은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가장 극적이고 진중한 표현으로 골라놓고선 '더 절실하고 아프다'고 한다.

묵은 눈이 갈라진 자리에 햇볕이 스몄다. 헐거워진 흙 알갱이 사이로 냉이가 올라왔다. ㆍㆍㆍㆍㆍㆍ언 땅에서 뽑아낸 냉이 뿔리는 통째로 씹으면 쌉쌀했고 국물에서는 해토머리의 흙냄새와 햇볕 냄새가 났다. 겨우내 묵은 몸속으로 냉이국물은 체액처럼 퍼져서 창자의 먼 끝을 적셨다.(17쪽)

 

봄철 명이 편에선 단식에 대해 얘기를 한다.

나와 대여섯 살 정도밖에 나이 차이가 안 나는데,

춘궁기와 보릿고개 따위를 아는지 단식에 대한 공포를 얘기한다.

나는 단식에서 공포를 떠올린다. 허기에 대해 무너지는 마음이 가엾고, 참아내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불만, 그리고 공황에 가까운 공포.(63쪽)

라는 글은 곧 이런 성찰로 이어진다.

비워서 얻는 것, 그것이 어디 단식뿐이랴. 사람들은 이 사바에서 비우지 못해 결국 죄짓고 상처입는다. 비우는 것에 대한 화두 하나를 얻는다.(64쪽)

 

이 책을 다 읽은 뒤 다시 여는 글로 가니,

'스님, 절밥은 왜 그리도 맛이 좋습니까'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을 박찬일 스스로 적어놓은게 보인다.

감자는 원래 하늘의 별이었다고 했던가. 그 감자가 밭에서 태어나는 순간은 여름의 초입이어야 가능하고, 토마토가 맛있는 건 미리 따지 않고 끝까지 열매에서 붉은색을 완벽하게 얻을 때이다. 맛있는 된장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한시절을 옹기 안에서 보내야 하며, 시금치의 뿌리는 대지의 마음과 동일하다는 것도 스님과 함께 걸으면서 얻은 교훈이었다. 뿐이랴. 미역에 제 맛이 드는 것은 시린 바람과 바닷물의 깨질 듯한 수온을 견뎌낸 선물이었다. 콩나물이 숨소리를 쌕쌕거리며 일주일을 버텨야 비로소 비리지 않고 고소한 맛을 준다는 것도 움식일 수 없는 상식이었다.(5~6쪽)

 

절밥만 맛있는건 아닐 것이다.

제철,

원 재료의 맛을 해치지 않을 정도로 최소한의 가미를 하여,

정성스럽게 차려놓은 그런 음식이라면 다 맛이 좋지 않을까?

 

그런대로 좋았지만 한가지 아쉬운게 있다면,

'사찰음식레시피23'이라고 하는데 사진도 선명하지 않고 레시피가 중간 생략이 많아 친절하지 않다.

음식을 만드는 재주가 메주인 나에게만 그렇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얼마전 읽었던 한창훈은 '그래야 구석구석 살조각까지 살뜰히 먹어진다. 나는 이게 예의라고 생각한다.'고 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니 허투루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원재료를 적절히 사용하여, 이 한가지를 추가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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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0 15: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21 14: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20 16: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21 14: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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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0 16: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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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1 14: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7-04-20 16:54   좋아요 0 | URL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면 아름답고, 맛있는 것이군요^^:

양철나무꾼 2017-04-21 14:41   좋아요 1 | URL
그렇게 따지면,
세월이 가는 것도 그렇고,
나이를 먹는 것도 그렇겠죠.

아름다운게 멋있기도 하고, 그리고 맛있기도한 이유인가봐요~^^

cyrus 2017-04-20 17:29   좋아요 0 | URL
감자가 우주의 기운을 받고 자란 채소였군요.. ㅎㅎㅎㅎ

양철나무꾼 2017-04-21 14:43   좋아요 0 | URL
감자가 하늘의 별이라네요.
은하수는 하늘을 흐르는 강이고 말예요.

근데 감자 뿐만 아니라,
우리들도 우주의 기운을 받고 자라지 않나요?@@
쿨럭~--;

cyrus 2017-04-22 08:49   좋아요 1 | URL
네. ‘그네‘만 빼고요. ㅎㅎㅎ

양철나무꾼 2017-04-26 16:01   좋아요 0 | URL
놀이터에선 그네 빼면 고무줄 끊긴 빤쭈인데요?ㅋㅋㅋ~.
 
숨은 신을 찾아서 - 신념 체계와 삶의 방식에 관한 성찰 성찰 시리즈
강유원 지음 / 라티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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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헤닝만켈의 '사람으로 산다는 것'의 연장선 상에서 읽게 되었다.

강유원의 책들을 그동안 몇 권 읽은지라,

그에 대한 내 생각을 얘기하라면 반듯하지만 좀 지루한 글을 쓰는 사람으로 인식되었었다.

인간 내면에 대한 통찰이나 삶의 본질 따위를 연구하는 철학자인 그가 '숨은 신을 찾아서'란 제목의 책을 들고 나왔으니,

얼핏 생경하였었다.

 

"1"장에서 그동안 그가 뜸했던 이유가 나오는데, 이같은 제목을 쓴 이유도 엿볼 수 있었다.

태평양과 이어지는 동해 바닷가 도시의 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있었다. 일반 병실로 옮겨진 뒤 복도 끝까지 걸어서 바다를 볼 수 있었다. 좌절은 없었다. 삶을 손에 쥐지도 못했고, 어디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하였다. 운명이라든가, 믿음이라든가, 그런 말들도 떠오르지 않았다. 병원을 서둘러 나왔다.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을 할 뿐이라는 허겁지겁만이 전부였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무기력이 밀려 들어왔다. 아니, 그 무기력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고 해야 옳겠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절망絶望, 즉 희망을 끝는 일이다.

야욕과 절망 사이에는 10년 정도의 시간이 놓여 있었다. 그 시간은 인간 존재의 하찮음을 가르쳐주었다.(7쪽)

 

10여년 정도 많이 아팠었나 보다.

많이 아프거나 나이 들어 죽음을 예비하게 될 때 삶을 돌아보게 마련인데,

그는 삶을 돌아보는 방식으로 책을 택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과 '데카르트'의 '성찰' 따위,

위대한 사람들의 저서 속 삶을 엿보는 방식으로 자신의 신념 체계를 구축함과 동시에 성찰한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아우구스티누스, 데카르트, 파스칼, 키에르케고어 따위를 시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으나,

펼쳐서 몇 장을 넘기기도 전에 지레 겁을 먹었던 경험이 있는지라,

그가 독서법을 가장하여 자상하게 설명해주는 것이 좋았다.

 

논점이 명확하고,

그 명확한 논점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예는 자상하게 들되, 중언부언 군더더기가 없다.

 

헤닝만켈'은 '사람으로 살기 위해' 꾸준히 내면에게 묻기를 강조했었는데,

강유원은 신앙의 필수적 전제 조건으로 얘기되는 '자아성찰'과 '자기반성'을 언급한다.

신앙을 갖지 않아도 도덕적으로 건전한 삶을 산다면 훌륭한 삶을 산 것이라는 상식도 있다. 참으로 논박하기 어렵다. 그들에게 초월적 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라고 권유하거나 인간의 모든 행위는 헛된 집착에서 나온 것이니 적극적 행위를 포기하라고 설파하는 것은, 망동과 망언으로 간주된다. 그들에게 세계관의 전회를 요청할 수는 없다. 그저 그들의 삶의 방식을 존중해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렇지만 한 가지를 그들에게 물어볼 여지는 남아 있다. 자신들의 도덕적 신념은 확고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가? '그렇다'는 대답을 들으면 우리는 물러나야 한다. 그러한 물음이 그들 자신의 신념 체계에 대한 잠깐의 회의라도 불러일으켜 그들을 더 깊은 의심에서 제기되는 물음들로 나아가게 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더 물어볼 수 있을 것인가.(30~31쪽)

 

헤닝만켈도 그랬고, 강유원도 그렇다.

인간에 대해 끊임없는 의문을 제기하고 생각을 한다.

신에 대해, 그리고 자신에 대해, 그리고 우주에 대해...끊임없이 묻는다.

헤닝만켈은 자신이 좋아하는 책들을 다시 읽는다고 표현하면서 자신의 사상과 입장을 표명하는 반면,

강유원은 '신'이라고 불리우고 신념이라고 불리울 수 있는 유명인들과 그들의 저서를 인용하는 방식을 취한다.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 세계는 우주의 티끌들의 우연한 결합이라는 걸 그대는 알지 않는가, 그대의 몸은 언젠가는 티끌로 되돌아갈 것임을 그대는 알지 않는가, 그대의 정신이 탐욕스럽게 읽고 있는 책들이 모두 한순간의 응축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대는 알고 있지 않은가, 그대가 그렇게도 소중하게 여기는 만년필은 하찮은 물건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그대는 알지 않은가, 그대가 몹시도 사랑하는 그 모든 것들이 찰라에 스러져버릴 것들임을 그대는 알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대는 왜 그것들에 그렇게 집착하는가, 그대는 존재의 진상을 알면서도 왜 자신을 기독교도라 말하고 신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가.(146~147쪽)

 

슬픔을 이기려면.

  내가 멈춰 선 곳에 신이 있다고 확신한다.(151쪽)

고 얘기한다.

 

그의 방식은 죽음을 거부하거나 저항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삶을 사는 방식을 통하여 죽음을 예비하자는 얘기가 아닐까.

 

그는 이렇게 얘기하며 이 책을 끝맺는다.

우리는 이들의 삶을, 텍스트를 내재적으로 읽거나 삶의 배경 맥락을 읽거나, 증거를 찾아 구축하여서, 해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그저 다 덧없는 것이라 여겨 놓아두거나.(157쪽)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검색해 보니, 제주 어디에서 그의 강의가 몇 번 있다.

제주라는 섬이 치유하기에 좋은 곳인가 보다.

덩달아 나도 제주에서 그의 강의나 찾아들으며 일 년만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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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3-29 16:25   좋아요 1 | URL
오늘도 주제가 묵직한데도 불구하고, 꼭 한번쯤은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듯합니다..잘 읽었습니다...

양철나무꾼 2017-03-31 15:01   좋아요 0 | URL
그동안 강유원의 글들은 체화한 글이라는 느낌이었는데,
요번엔 감정은 자신의 것인데 내용은 여기저기서 짜깁기한 느낌이랄까요?
아픈게, 두려워 하는게 고스란히 들어나서 좀 안쓰러웠어요~--;

단발머리 2017-03-29 19:51   좋아요 0 | URL
오늘 아침까지 읽었던 <슬픈 불멸주의자>가 떠오르네요. 그 책에서는 죽음과의 타협을 제안했어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자신의 죽음 앞에서 성숙하고 결연하기 보다는... 처음 겪는 일이니까요. 그 다음을 말해줄 사람이 없으니까요.
꼭 알아야하는 이야기지만 ‘죽음‘의 이야기는 참... 부담이 되기는 합니다.
강유원,이라는 작가 이름을 기억해야겠어요^^

양철나무꾼 2017-03-31 15:05   좋아요 0 | URL
저 님의 ‘슬픈 불멸주의자‘리뷰 봤어요.
좋았어요~^^

죽음도 그렇고, 죽음의 애도도 그렇고 ...껄끄럽지만 집고 넘어가야할 문제겠죠.
강유원은 님이 애정해 하시는 강신주와 더불어 제가 참 좋아하는 철학자예요.
강신주에 비해 탈렌트 기질이 좀 떨어지는 듯 하지만,
그간의 저작들을 봤을때, 전 애정할 수밖에 없었어요.
님도 그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17-03-29 19:59   좋아요 0 | URL
강유원이 이런 책도 썼군요.
덕분에 좋은 책 소개 받았습니다. ^^

양철나무꾼 2017-03-31 15:07   좋아요 1 | URL
인문고전강의, 역사고전강의, 철학고전강의와 더불어 이 책도 가볍게 접근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님도 분명히 좋아하실 거예요, 불끈~!^^

잠자냥 2017-03-30 13:42   좋아요 0 | URL
아, 강유원 씨가 아픈 줄은 몰랐네요. 이 책 출간 소식 듣고 반가웠는데, 그런 일을 겪으며 나온 책이군요. 도서관에 신청해서 읽어보려 했는데, 왠지 사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하하......

양철나무꾼 2017-03-31 15:12   좋아요 1 | URL
한 10여년 편찮으신 후인가 봐요.
당신의 글 같지 않고, 좀 자신감이 떨어지는 느낌이 있는데,
힘내시라고, 응원하는 의미루다가,
별 다섯을 꽉꽉 눌렀습니다~^^헤헤~...

2017-03-31 1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31 15: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04 15: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05 1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07 17:5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