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 손철주의 음악이 있는 옛 그림 강의
손철주 지음 / 김영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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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저녁 퇴근길이었다.

지역국회의원이 수행원들을 데리고 나와, 의정활동보고서를 돌리고 있었다.

난 그를 지역의 젊은 양심 일꾼 정도로 생각했었던터라,

의정활동 보고서 한가득 차지하는 설정된 사진들에도 분개했지만,

제대로 보지도 않고 던져 버리는 의정활동보고서를,

그렇게 좋은 종이를 써서 컬러풀하게 만들어야 했나 싶어서 더 화가 났다.

그게 다 국민들의 세금인데,

사거리 교차로 한편에는 후원금 모집 현수막을 크게 걸어놓고서는,

의정활동보고서를 그렇게 럭셔리하게 만들어 내는 저의가 궁금했지만,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라고 한다면 할말이 없을 뿐이다.

 

이 책을 야금야금 아껴 읽었다.

끝까지 다 읽은 후 '감사하는 말'에 이르러 완전 빈정이 상하고 말았다.

 

2015년 여름 두달 동안 재계CEO와 함께 옛 그림과 옛 음악을 공부하고 감상하는 자리가 마련됐는데,

국악과 그림이 어울려 강의를 하며 연주를 곁들였다고 한다.

그 강의를 책으로 묶은 게 이 책이다.

 

저자는  음악이 그림 속에 들어와 앉은 양식을 소개하면서,

은일(숨어사는것)과 아집(우아한 모임)과 풍류라고 하는데,

다른건 차치하고라도, 재계 CEO에게 은일이라니 가당키나 하냔 말이다.

 

그래도 마냥 툴툴거릴 수 없음은,

재계 CEO들이 아니었다면 손철주가 하는 강의를 성사시킬 수 없었을 뿐더러,

그런 강의에서 그냥 음악 감상도 아니고 국악 연주를 곁들이는 럭셔리함이 가당키나 했겠나 말이다.

나 같은 소시민이 봤을땐 눈꼴셔도 국악을 활성화시켜서 국악의 대중화에 기여할 수 있다면 감수할 수밖에~--;

 

그런데 백번 양보해도,

재계 CEO들인데, 최순실 정유라 모녀도 아니고 '숨어살기', '은일'을 얘기하는 것은 좀 심하지 않을까?

암튼 이 책의 1장은 '숨어 산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어떤 즐거움도 마다하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여기서 '줄 없는 거문고를 타고 소리없는 음악에 취하다'를 얘기하게 된다.

그러면서 <주역>과 비교할 만한 대목이 나오는 <악학궤범>의 한구절을 인용한다.

 

악(樂)이란 하늘에서 나와 사람에게 붙인 것이요, 허(虛)에서 발(發)히여 자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사람의 마음으로 느끼게 하여 혈맥을 뛰게 하고 정신을 유통케 한다. 느낀 바가 같지 않음에 따라 소리도 같지 않게 되니, 기쁜 마음을 느끼면 그 소리가 날아 흩어지고 노한 마음을 느끼면 그 소리가 거세고 슬픈 마음에는 그 소리가 애처롭고 즐거운 마음에는 그 소리가 느긋하게 되는 것이니ㆍㆍㆍ(21쪽)

 

아집(우아한 모임)은 또 어떠한가 말이다.

다음 글은 <홍길동전>의 작가 허균이 친구들과 피서 풍류를 즐기고 싶은 마음에 '여인'이라는 호를 쓰는 이재영에게 보낸 편지이다.

처마 끝에 빗물은 졸졸 떨어지고, 방 안의 향로에서 향내음이 솔솔 풍기는데, 친구 서넛이 소매를 걷고 서안(書案)에 기대어 하얀 연꽃을 바라보며, 참외를 깎아 먹으며, 여름날의 번뇌를 씻어보려 하네. 이러한 때에 여인 그대가 없어서야 되겠는가? 자네 집안의 암사자가 으르렁대며 자네 얼굴을 고양이 상판으로 만들겠지만, 늙을수록 두려움에 떨거나 위협을 받아 위축되어서는 안 될 걸세. 빨리 오시게. 자네 집 문 앞에 하인이 우산을 들고 기다리고 있으니 가랑비를 피하는 데는 족할걸세. 만나는 일이 늘 있는 일은 아니라네. 또한 이러한 모임인들 어찌 자주 있을까. 헤어지고 나면 뒤늦게 후회해도 아무 소용 없을 걸세.(121쪽)

하얀암사자의 대처법까지 알려주는 허균의 취지는 아름답다.

허균은 엄청 미식가여서 귀향가서도 '도문대작'이라는 글을 쓴 것으로 알고 있다.

 

아집(우아한 모임)의 전제조건이 되는 우정이나 소통에 대해서는 지난번 페이퍼-'고맙다, 친구야~^^'(=>링크)에서 정리했었고,

13명의 중인이 모여서 만든 '옥계시사'라는 모임의 규약을 일부분만 인용해 보겠다.

 

"장기와 바둑으로 사귀는 모임은 하루를 가기가 어렵고, 술과 야색으로 사귀는 모임은 한 달을 가기 어렵고, 잇속을 따져서 모이는 모임은 1년 가기 어려우니, 살아서 평생 갈 수 있는 모임은 문장을 남기는 모임이다."(151쪽)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필요로 하는 인간다움과 고격의 삶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인문적 향기와 예술적 풍아가 물씬한 그런 모임, 그것이라야만 평생을 끌고 갈 수 있다, 고 얘기하는데,

 

내가 이곳에 부족하나마 리뷰와 페이퍼를 올리는 이유와도 상통하겠다.

 

정치도 그렇고 경제도 마찬가지다.

주제파악을 못하고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다보면 가랑이가 찢어진다.

정치가들도 그렇고 경제인들도 그렇고 주제파악을 하는 지름길은,

우정이나 소통을 회복하는 일,

낮게 아래에서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눈높이를 맞추는게 아닐까.

재계 CEO들 덕에 우리는 이런 책을 접하는 수혜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니,

이것으로 족하다 싶지만,

그들만의 리그이고,

강 건너 불구경이다 싶은 생각이 문득문득 드는 것을 어쩔 수 없다~ㅠ.ㅠ

 

아주 좋은 책이지만,

전에 다른 책이랑 겹치는 내용들이 있어서, 그들만의 리그이지 싶어서, 별 하나는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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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5 17: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05 18: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1-05 18:38   좋아요 0 | URL
조선 시대의 풍류를 CEO들의 호화스러운 유희와 동일시하는 논리가 억지스러워요. 저자가 강연에 참석한 CEO들 비워 맞춰주려고 그럴싸하게 말한 것 같습니다.

양철나무꾼 2017-01-06 18:47   좋아요 0 | URL
그란것 같죠~?^^

2017-01-05 2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06 18: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06 1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06 1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