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외롭다 - 김규항 아포리즘
김규항 지음, 변정수 엮음 / 알마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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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외롭다'라는 제목의 김규항 아포리즘이란다.

김규항이 짓고 변정수가 엮었단다.

 

개인적으로 김규항의 글들을 완전 좋아하는지라,

이 책도 그러할 줄로 알았다.

한손에 들어오는 크기도 그렇고,

리본끈으로 만든 책끈도 그렇고,

하드 커버의 장정도 좋았다.

 

그런데 몇 장을 넘겨 읽다가,

이 글들이 언젠가 어디선가 읽었던 글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고 해야겠지만,

.

.

.

철푸덕~OTL

그렇지 않았다.

 

김규항의 책을,

아니 그의 글을 몇 편이라도, 읽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의 글은 응축되고 집약되었으며 단정하다.

그의 '문장론'의 일부만을 봐도 그의 글쓰기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간결함, 리듬, 그리고 쉬움 같은 문장에 대한 내 모든 태도들은 오로지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명료하게 드러내기 위해서 존재한다. 나는 이오덕 선생이 말씀한 ‘삶을 가꾸는 글쓰기’를 믿는다. 모름지기 글은 그런 것이라고 믿는다. 글을 씀으로서 내 일상의 에피소드들은 비로소 내 생각으로 정리되며 그렇게 정리된 생각들은 다시 내 일상의 에피소드에 전적으로 반영된다. 내 삶과 내 글은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순환한다. 내 삶을 더 낫게 만들지 않는다면, 나라는 인간을 더 낫게 만들지 않는다면 내 글은 아무 것도 아니다. 결국 문장에 대한 내 태도는 삶에 대한 내 태도와 같다.

                                                                                                     -  '김규항'의 '나의 문장론'중 일부 -

 

물론 이런 그의 글쓰기 방식이 하루 아침에 사라지는 건 아니라서, 이 책도 좋았다.

아포리즘이라는 격언이나 잠언집의 형태도 맘에 들었다.

그런데 그의 홈페이지나 다른 책들에서 보았던 글에는 연도와 날짜가 있었고,

제목이 있어서,

얘기하고자 하는 논점을 명확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던 반면,

이 책에서는 글을 쓴 연도와 날짜, 제목도 없어서,

격언이나 잠언집이라는 함의는 알겠는데,

어떤 일이 있을 때 어떤 얘기를 하고자 쓰여진 글인지,

전달하는 바가 모호해진다.

 

그동안은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어서 좋았는데,

요번 책은 앞, 뒤 자르고 중간만 뭉뚱그리는 식이다.

어느 사안과 관련됐던 글인지 내 기억을 더듬는데,

내 몹쓸 기억력은 가물거리는 걸로 부족해서 좀처럼 기억나지 않는다.

 

친구에게 이런 하소연을 하며, 김규항 홈피의 이 글을 보여주었다.

이게 좌파 아닌가 했더니,

 

우리나라에 좌파는 없다.

좌파가 설 자리가 없다.

좌파는 설 여지가 있어야 생기는 거다.

김규항의 저런 정도 사고는 건전한 보수다.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이런 걸 묻길 기다렸던 듯 이런 얘기도 했다.

 

건전한 보수가 나라를 더 바로 세울 수 있어야 하는데 걱정이다.

건전한 보수가 망하면 좌파는 죽는다.

심상정의 정의당처럼 건전한 보수를 세우는데 일조해야지

날을 세우는 건 좌파가 지금 할일이 아니다.

 

열변을 토하는데, 내가 뭐라고 했나?--;

 

고독과 외로움에 대한 구분도 좋았지만,

내가 가장 좋았던 구절은 다음과 같다.

예수전을 쓴 그의 저력에 미루어 종교적으로 해석해도 좋겠고,

나처럼 그냥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완전 좋다.

 

기도하지 않아도 좋은 사람은 없다.

사람에겐 가진 소중한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유지하는 능력이 없다.

형식이 무엇이든 기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세상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건

위험하거나 적어도 섣부르다.(7쪽)

 

어느 단계부터 인간이라 할 수 있는가? 수정란, 아니 난자 한 개라도 함부로 다루어선 안 될 생명이지만, 진정한 인간은 '부끄러움을 아는 단계'부터다.

사회적 이견을 가진 사람은 존중할 수 있지만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을 존중할 순 없다.(10쪽)

 

내가 김규항을 '이게 좌파가 아닌가'했던 것은 오랫동안 보아 온 아래 글과 관련해서 이다.

 

세상은 '청년 시절에나 하는 운동'으로 바뀌는 게 아니라 일생에 걸쳐 지속되는 신념들로 바뀐다.

사람은 누구나 좌파로 살거나 우파로 살 자유가 있지만 중요한 건 그런 선택을 일생에 걸쳐 일상 속에서 지키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한정하는 일인 것 같다. 좌파로 사는 일은 우파로 사는 일에 비할 수 없이 어려우며, 어느 시대나 좌파로 살 수 있는 인간적 소양을 가진 사람은 아주 적다. 우파는 자신의 양심을 건사하는 일만으로도 건전할 수 있지만, 좌파는 다른 이의 양심까지 지켜내야 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21쪽)

 

친구가 하는 얘기를 이해 못 하겠는 것은 아니었지만,

또 다른 용어를 만들어 내는 건 결사반대다.

 

좌파도, 우파도 내겐 너무 어렵기만한 고로,

난 쪽파든 대파로 살아야겠다.

 

암튼 종교나 파를 가지고 한쪽으로 치우쳐서 읽어도 좋았을테고,

아무 생각없이 그냥 읽어도 좋았다.

 

이렇게 저렇게 넘기며, 한구절씩 외워두었다가,

격언이나 좌우명처럼 한번씩 써먹어야겠다.

 

입안에서 궁글리며 묵히고 벼려야겠다.

 

                    

2005/08/12 11:422005/08/12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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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4 20: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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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6 08: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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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6 09: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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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6 09: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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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6 09: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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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시선 408
안미옥 지음 / 창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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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Insure safety distance'로 바꾸었지만, 원래 내 서재의 타이틀 명은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나서다'였다.

있는지도, 실체도 알 수 없는 마음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쩌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대략 난감이 아니고, 대략 꿀꿀이었던 터여서,

'오즈의 마법사'의 '양철나무꾼'처럼 그렇게 찾아나서면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마음이란 것이 찾아나선다고 하여 찾을 수 있는게 아니란 걸 깨닫게 되었다.

내가 누구인지, 는 고사하고,

나를 객관화시킬 수 없는 데,

내 마음이란 것을 어디서, 어떻게 찾는다는 말인가?

 

'사랑한다는 것으로 새의 날개를 꺽어 너의 곁에 두려 하지말고 가슴에 작은 둥지를 만들어 쉬고 날아갈 힘을 주어야 하리라.'라고 노래하던 서정윤의 시 한구절처럼,

곁에 둔다고 해서 '마음'의 실체를 찾게 되는 게 아니란걸 깨닫게 되었다.

마음이란 건 사랑과 마찬가지로 곁에, 가까이 있을수록 해치고 상처입힐 수도 있으니,

적절하게 밀어내고 끌어당기는 자기장처럼,

안전 거리를 확보할 필요가 있겠다, 는 것이 요즘의 깨달음이다.

 

이 시집의 제목만해도 그렇다.

제목은 '온'이라고 하여 '전부의, 모두의'라는 의미를 갖고 있겠지만,

1부부터 4부까지의 목차를 쭈욱 모아놨을때에야, '온'으로 읽힌다.

1부, 진짜 마음을 갖게 될 때까지,

2부, 어떤 기억력은 슬픈 것에만 작동한다,

3부, 무엇이 만들어질지 모를수록 좋았다,

4부, 부서지고 열리는 어린잎을 만져본다,

로 되어있다.

 

한때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나서다'고 했으니,

'진짜 마음을 갖게 될 때까지'를 놓고 고민을 했던 것이 사실이고,

이 시집은 나의 그런 과거 마음을 엿보기라도 한듯,

시집 곳곳에 '마음'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시집 속의 '마음'은 '온'이라고 하여 '전부의, 모두의'라든지,

'진짜'라고 하여 모든 것을 아우르는 듯 여겨지지만,

자세히 시집을 읽다보면 'all or nothing'이고,

'진짜'이지만 동시에 '허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런 허허로움은 꿈의 형태로 드러나고,

일기의 형태로 독백되어진다.

 

한 사람이 있는 정오

 

어항 속 물고기에게도 숨을 곳이 필요하다

우리에겐 낡은 소파가 필요하다

길고 긴 골목 끝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작고 빛나는 흰 돌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지나가려고 했다

자신이 하는 말이 어떤 말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진짜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반복이 우리를 자라게 할 수 있을까

진심을 들킬까봐 겁을 내면서

겁을 내는 것이 진심일까 걱정하면서

구름은 구부러지고 나무는 흘러간다

구하지 않아서 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나는 구할 수도 없고 원할 수도 없었다

맨손이면 부드러워질 수 있을까

나는 더 어두워졌다

어리석은 촛대와 어리석은 고독

너와 동일한 마음을 갖게 해달라고 오래 기도했지만

나는 영영 나의 마음일 스밖에 없겠지

찌르는 것

휘어감기는 것

자기 빼를 깎는 사람의 얼굴이 밝아 보였다

나는 지나가지 못했다

무릎이 깨지더라도 다시 넘어지는 무릎

진짜 마음을 갖게 될 때까지

 

이 시를 읽으면서 언젠가 읽었던 마이클 코넬리의 '로스트 라이트'가 생각났다.
'로스트 라이트'는 이렇게 시작했었다.

"There is no end of things in the heart."

그러니까 사람의 마음을 두고 '전부'나 '모두'라던가 '진짜'라는 말 자체가 무의미한게 아닐까?

'끝'이 없고 '다함'이 없는 거,

그게 사람의 마음이 아닐까?

 

불 꺼진 고백

 

  너의 말이 진짜라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하는 것에 마음이 간 적 없었다. 고요를 알기

위해선 나의 고요를 다 써버려야 한다고. 가두어둔 물. 멈

춰 있는 몸.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

  버티기 위해선 버틸 만한 곳이 필요했다. 눈동자가 흔들

릴 때. 몸은 더 크게 흔들린다. 중심을 잡기 위해 비틀리는

몸짓. 몸은 더 크게 흔들린다. 중심을 잡기 위해 비틀리는

몸짓. 거울이 나를 도와주진 않는다. 노크하기 직전의 마

음을. 울 수 없는 마음을. 나는 불 꺼진 창을 본다.

 

 

조언

 

  벽돌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림자를 빛으로 생각한 적

이 많다 어제의 날씨는 아주 오래전에 지나간 일 같고

 

  멀리 있는 단어들을 느닷없이 만나게 되는 날이 있다 적

도 생몰연도 부탁 비스킷 소원처럼

 

  누군가는 계속해서 문을 열어놓는다

 

  울퉁불퉁한 기침과 기울어진 위불 위

  노란색으로 된 달력을 갖게 될 때까지

  모과 냄새는 썪지 않는다 잠깐이라는 말을 모른디

 

  네가 붉은빛 금붕어의 얼굴로 듣고 있어서

  오늘은 더 많은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동물원 퍼레이드 바이올린 두발자전거

  그림 속 개구리들이 점점 더 짙은 색으로 변하고

 

  큰 옷은 내일 입고 싶다고 말하게 될 때

  아프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지

 

  정면에는 흐르는 나무가 있다

  가끔은

  나를 좋아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벽돌을 매개로 만들어내는 그림자는 빛이 있어야 만들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모든 그림자 속엔 빛이 들어있다.

벽돌은 매개일 수 있지만,

빛과 그림자 사이에선 기준점일 수도 있다.

 

정면에 흐르는 나무도 마찬가지이다.

나무를 바라보며,

나를 객관화시킬 수도 있고,

그래야 비로소...나를 좋아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할 것이다.

 

좋은 시들이 여럿 있었지만,

나는 '불 꺼진 고백'과 '조언'을 되풀이해서 읽었다.

 

그랬더니 마음은 쓸쓸해져 오는데,

알 수 없는 충만함으로 마음이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었다.

결국 쓸쓸함으로 충만해져서 어쩌지 못하겠고,

난 그런 마음을 잘 다독여, 느낌을 몇 자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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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7 23: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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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2 09: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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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1 03: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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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2 09: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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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2 15: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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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배신 - 베테랑 번역가도 몰랐던 원어민의 영단어 사용법
박산호 지음 / 유유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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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산호 님은 나를 모르겠지만, 나는 박산호 님을  아는것 같다.

소싯적 장르소설을 즐겨 읽을 당시 로렌스블록, 마이클 코널리와 스튜어트 맥브라이드 등의 역자로 알게 되었고,

난해하다던 '콰이어트 걸'을 통해서 완전 애정하고 신뢰하게 되었다.

'페터 회'는 스밀라도 그랬지만, '콰이어트 걸'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역자가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고 행간의 뉘앙스까지 번역해 내지않는다면,

독자가 이해는 고사하고 읽기조차 쉽지 않은 책이었으니까 말이다.

(돌이켜 보면 완전 영광인데, 그때 내 리뷰에 뭐라고 비밀 댓글을 달아주시기도 했었다, ㅋ~.)

 

그렇게 역자 박산호 님과 나는 각자의 삶을 살아왔고,

단어의 배신이라는 이 책을 통해서 조우하게 된 셈이다.

 

실은 젊은 시절의 나는,

장르소설이 좋아도 너무 좋은데,

읽다보면 너무 날림인 번역들을 만나곤 해서,

'그렇다면 내가 번역을 해봐?'하는 허무 맹랑한 꿈을 꿨었던 터라,

'콰이어트 걸'의 탄탄한 번역이 참 좋았었고,

그런 역자에게 무한 애정을 가지고 신뢰하게 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이 책에는 박산호 님이 그동안 번역하며 만난 단어중에 다양한 의미와 흥미로운 역사를 지닌 100개가 소개됐다.

다 알고있는 듯 여겨지는 단어였지만,

읽다보니 의미와 역사에 대해선 모르는 것들도 있었다.

 

무엇보다 이 책의 방식이 좋았던건 단어를 무조건 외우도록 소개하는게 아니라,

이해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단어와 뜻을 연결시켜서 설명하는 방법을 취한다.

하나의 뜻에서 꼬리를 물고 다른 뜻을 유추해낼 수 있도록,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연결을 한다.

그렇다고 수다스럽거나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 깔끔하다.

 

예를 들면 fix를 설명하면서,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속성 다이어트를 해야한다고 하면서 상황 속에 의미를 이해하기 쉽게 끼워넣는 식으로 말이다.

책의 내용은 한 단어에 한장을 할해해서 설명하고 적절한 예문을 나열하는 식으로 좋은데,

아쉬운 점이라면,

편집이라고 해야 할까,

단어를 배치하는 방식과 글씨체가 낯설다.

단어가 앞에 나오는게 아니라,

발음기호와 단어의 뜻이 나열되고,

본문 내용 중에 검은 원 안에 단어가 등장하는데,

그 단어가 또 멋을 부린 글씨체다.

 

영문을 보게 되면,

우리가 흔히 인쇄체와 필기체라고 알고 있는 글자들이 섞여 있다.

g나 y같은 것도 그렇지만 못 알아먹을 정도는 아닌데 s는 좀 심하다.

 

영문과 번역문에서 그 단어가 어떤 의미로 사용됐는지 확인 하기 쉽게,

그 단어를 돌출시키는 방법으로 필기체를 사용한 예문에 익숙했던 터라,

이 책에서도 그런건가 자꾸 쳐다보게 된다.

 

어찌 되었건 이렇게 얇고 가벼우면서도,

단어의 다양한 의미와 역사를 흥미롭게 써내려간 책을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이 책의 머릿말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인공지능이 번역 시스템에 도입된 시대에 우리가 갖춰야 할 것은 단어를 폭넓게 이해하는 능력이 아닐까? 세계 각국의 사람과 수월하게 의사소통하기 위해 영어 단어에 담긴 여러 갈래의 뜻을 음미하며 원서를 읽고 섬세하게 사유하며 고른 단어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능력을 갖춘다면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힘이 될 것이다.(11쪽)

비단 외국어의 번역에만 국한된 건 아닌것 같다.

내가 내뱉는 말이나 쓰는 글들이 얼마나 상대방을 생각하고 배려한 것인가 라고 한다면,

글쎄다, 상대방 보다는 내 편할대로, 내 위주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번역에 있어선 외국어 능력도 중요하지만,

번역된 내용을 읽을 독자들을 위해서 제대로 된 국어실력도 중요하다.

 

그렇게 단어에 담긴 여러 갈래의 뜻을 음미하고,

섬세하게 사유하며 고른 단어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며,

번역을 하고 글을 썼는가는,

작품이 대신 말해주는 것이다.

부디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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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30 19:30   좋아요 0 | URL
생각해보니까 제가 번역 관련 책을 한 번도 안 읽어봤어요. 그동안 제가 번역본 비교질했던 것에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

양철나무꾼 2017-06-02 17:08   좋아요 0 | URL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cyrus님처럼 우리말을 구사하시는 분이라면,
번역본을 가지고 비교질 하는 거,
충분히 용서할 수 있습니다.
모든 언어는 궁극적으로 하나로 통하니까요~^^

나와같다면 2017-05-30 22:16   좋아요 0 | URL
fix.. 마음이 상했을때 콜드플레이 <Fix You> 를 들려줬던 사람이 생각나네요..
켜놓은 향초 때문인듯..

양철나무꾼 2017-06-02 17:13   좋아요 0 | URL
아, 이 노래 알아요.
기네스 팰트로랑 관련된 노래지요?

마음이 상했을때 ‘Fix You‘를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옆에 ‘Fix‘해 놓으셔야죠.
‘들려줬던‘이란 과거형에 제 마음도 아립니다.
아마도 향초의 냄새가 여기까지 전해지는 듯 해서요~--;

서니데이 2017-05-31 23:11   좋아요 0 | URL
번역하는 분들은 외국어도 잘 해야하지만, 우리말 어휘도 많이 알아야 될 것 같아요.
이게 무슨 뜻인지는 알 것 같은데, 말로 옮겨지지 않을 때도 있으니까요.^^
양철나무꾼님, 좋은하루되세요.^^

양철나무꾼 2017-06-02 17:15   좋아요 1 | URL
때로 그런 경우도 있잖아요.
상황을 말로 표현해 내려면 말문이 콱 막혀버리는 경우요.
그런데 그렇지 않더라도 나이가 드니까 어휘 수가 확 줄어드는것 같아요.
작은 사전이라도 하나 끼고 살아야 할까봐요~^^

AgalmA 2017-06-06 01:50   좋아요 0 | URL
저도 스밀라만큼 콰이어트걸 좋았는데 박산호 번역가님의 노고란 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네요^^;

양철나무꾼 2017-06-07 17:02   좋아요 0 | URL
전 아무래도 페터 화가 어려웠나 봐요.
수잔 이펙트인가, 새로운 작품이 나왔는데,
엄두가 안나는거 있죠~--;
 
당신의 자리 - 나무로 자라는 방법 아침달무늬 1
유희경 지음 / 아침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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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두렵다.

아니 나이를 먹어가며 책을 읽는다는 것이 두려워진다.

좀 더 자세히 얘기를 해보자면 책이 내가 나이를 먹는 것보다 더디게 나이를 먹거나,

내가 책과 더불어 나이 들지 못하는 것이 두렵다고나 할까.

 

시인의 예전 시집이 참 좋았어서 새로운 시집이라 혹하였다.

'오늘 아침 단어'를 읽고 리뷰를 올린게(<==링크) 2011년 7월이니까 한 6년정도 됐는데,

시인은 여전히 그 자리 그대로인데, 나만 나이를 먹은 느낌이었다.

새로운 시집을 읽고 싶었는데,

예전 시집을 읽으면서 느꼈던 느낌이 치기어린 젊은날의 추억마냥 고스란히 살아나서 좀 당황했다.

 

그러다가 6개월도 아니고 6년인데,

나이를 먹고 생각이 여물어가고, 의 문제가 아니라도,

그때의 시나 지금의 시가 같게 느껴지면, 같은 느낌이 든다면,

그건 또 읽는 나만의 문제는 아니지 싶었다.

 

시집을 다 읽고,

지난 '오늘 아침 단어'의 리뷰를 찾아 읽다보니,

그 시집 속의 시랑 중복되는 시도 있고,

(제일 앞에 나오는 '당신의 자리' 같은거, ㅋ~.)

자주 사용하는 시어와,

생각의 자취들이 비슷해서 느낌이 비슷하다보니 그 시가 그 시 같은 것도 있었다.

 

나이 먹고, 여물고, 무르익고, 하지 않고,

6년 전에 머물며 청춘을 또는 젊음을 돌이킨다고 해도,

겉돌기는 마찬가지다.

 

시인에게 시가 얼마나 가볍거나 무거운 건지 잘 모르겠지만,

단어가 가진 제 각각의 무게를 가늠하고,

그에 맞춰 시를 썼으면 좋겠다.

 

이러구러한 시가 여럿 있었고,

난 이 시가 좋아 여러번 소리내어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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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9 17: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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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9 18: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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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9 20: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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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30 16: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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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29 19:01   좋아요 2 | URL
시집을 맨 처음 읽었을 때 느꼈던 감정, 몇 년 지나서 똑같은 시집을 읽었을 때 느꼈던 감정을 서로 비교하면 약간의 차이가 있어요. 나이를 먹을수록 시에 대한 반응이 점점 달라져요. 과거에 눈여겨보지 않았던 시 한 편이 몇 년 지난 후에는 좋게 느껴질 수도 있고요. ^^

양철나무꾼 2017-05-30 17:36   좋아요 0 | URL
시집 뿐 아니라 모든 책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달리 읽히는것 같아요.
같은 책을 두고 나이 들어 읽으면 달리 읽히는 것으로 나이듦이나 성숙 따위를 점 칠 수 있을까요?

전 나이 먹어도 시집 한권 읽고, 시 한편 욀 수 있는 감수성은 갖고 싶은데,
어쩌면 죄다 까먹어 시 한편 욀 수 없는 날이 오는건 아닐까 두렵기도 합니다.

이 시집은 6년만의 시인의 두번째 시집이라는데,
짜깁기를 해도 너무 했지 싶습니다.
그게 아쉬웠었습니다.
 
산책자 - 로베르트 발저 작품집
로베르트 발저 지음, 배수아 옮김 / 한겨레출판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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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넷 상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참모진과 함께 청와대를 산책하는 사진 한장이 화제였다.

사진 한장을 놓고도 다방면에서 여러가지 정치적인 언급이 나올 수 있겠지만 차치하고,

산책이 주는 풋풋함이랄까, 삶의 활력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싶다.

그리고 로베르트 발저의 이 책 '산책자'를 읽었다.

 

실은 책을 읽다가 몇번을 집어던질뻔 하였다.

뭐, 특별하게 바쁜 일도 없고,

그렇다고 '바빠~'를 버릇처럼 입에 달고 사는 부류도 아닌데,

독백조의 너무 느린 호흡이 답답했다.

그걸 상대에게 말을 거는 것이 아니라, 혼자 읊조리듯이 쏟아낸다.

호흡이 느리긴 하지만 생각의 전개방식과 어조가 느긋한 것이고,

내용은 뒷부분의 '산책'을 제외하고는 한호흡에 내달린 것처럼 짧다.

글을 읽으면서 감정이입을 해야지 하고 페이지를 넘기면 어느새 끝이다.

중심에 다다르지 못하고 변죽을 울리는 꼴이다.

글이 그렇다는게 아니라, 읽는 내가 그러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벌써 끝이 나 있다.

 

 

로베르토 발저는 어찌보면 이솝우화를 닮았다.

간결하면서도 해학적이다.

독일어 특유의 어떤 운율을 구사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말로 번역된 글만을 놓고봤을때는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다.

 

암튼 이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저자는 때때로 우울한것 같고,

어떤 때는 우울이 몰고온 슬픔 속에 침잠하는 것 같다.

이 책 속의 글들은 소설집이라고 되어있지만, 어찌보면 수필같기도 하고 꽁트 같기도 한데,

정작 발저가 생각하는 이상향은 '시인'이었나 보다.

ㆍㆍㆍㆍㆍㆍ아주 드물게 슬픔이 나를 방문했다. 때때로 보이지 않는 무모한 무용수처럼 구석진 내 방으로 불쑥 뛰어드는 바람에 웃음이 터진 적도 있었다. 나는 아무도 아프게 하지 않았고,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 역시 아무도 없었다. 나는 참으로 멋지게 그리고 보기 좋게 옆으로 비껴나 있었다.(8쪽)

이 글의 제목은 '시인'이고, 곳곳에 보이게 보이지않게 '시인'에 대한 예찬이 이어진다.

그는 '시인'에서.

자연이나 시간, 주변의 모든 사물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지만,

사람들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8쪽)

고 표현하고 있다.

 

아무려나,

그는 간결하고 건조한 문장들을 구사하지만,

그래서 글들이 가볍고 경쾌하지만,

글 속에 담긴 내용은 무게감이 있다.

 

그래서일까,

그에게 있어서 산책이란 단순히 발을 내딛어 걷는 것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와 '붓 가는대로 쓰는' 수필이라는 형식의 결과물로 등장한다.

 

발저에게 있어서 산책은 '여러 가지의 번쩍이는 발상이 번개처럼 동시에 떠올라 한꺼번에 마구 밀려오는 것이 보통이니까. 그래서 생각을 차분히 정리를 좀 해보려고(309쪽)' 하는 것이다.

 

'산책'의 앞부분엔 이런 구절도 나온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오로지 내 길을 갈 뿐입니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당사자는 바로 나 자신이니까요. 겉으로 보이는 외양이란 진실과는 다른 모습일 경우가 흔하고, 그러니 어떤 사람을 판단하는 일은 그 사람 자신에게 맡겨두는 편이 가장 좋겠지요. 어떤 사람을, 더구나 이미 충분한 경험과 식견을 쌓은 사람을 그 사람 자신보다 더 잘 안다고 자신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물론 나는 종종 안개 속에 갇힌 채 불안에 휩싸이고 수천 가지의 곤경을 겪으며 방황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비참하게 혼자 남겨졌다는 느낌을 받은 적도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런 투쟁의 시간을 소중하다고 여깁니다. 남자가 긍지를 얻는 원천은 기쁨이나 쾌락이 아닙니다. 남자가 영혼 깊숙이 긍지와 희열을 느끼는 것은 큰 어려움을 담대하게 극복하고 끈질긴 집념으로 고통을 견뎌냈을 때뿐입니다. (289쪽)

그가 글을 쓰는 이유, 산책의 의미를 알 수 있다.

 

이 책이 충분히 좋기는 하지만,

그의 이력을 잘 모르거나,

그의 다른 작품을 읽어서 사전지식이 있는 상태가 아니라면, 좀 지루할 수도 있겠다.

 

무릇 산책이란 어떤 목적도 띠지 않는 것이고,

그리하여 좀 지루할 수도 있는 법이라고 하면,

내 또 할말은 없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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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16 21:33   좋아요 1 | URL
내 길 알아서 잘 가고 있는데, 그거 대해서 말 많은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 때문에 내가 가는 길에 의심이 생겨요.

양철나무꾼 2017-05-17 14:33   좋아요 1 | URL
전 때론 고집불통이고 때론 팔랑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가는 길이 외롭지 않은건 오지랖 넓은, 바꾸어 말하면 말 많은 그 사람들 때문인것 같아요.
나이를 먹을수록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랬는데, 자꾸 반대로 하고 싶어져 큰일이예요~--;

서니데이 2017-05-17 15:26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즐거운 오후 되세요.^^

양철나무꾼 2017-05-23 17:10   좋아요 1 | URL
오후되니까 좀 꾸물거리고 빗방울이 떨어져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일이라서 그런가 봐요~--;

2017-05-23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23 19: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23 1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