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쿠라 진다 - 전후 70년, 현대 일본을 말하다
우치다 타츠루.시라이 사토시 지음, 정선태 옮김 / 우주소년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꽃은 사쿠라, 사람은 사무라이"라는 말이 있다. 일본인들은 '사쿠라'를 좋아한다. '사쿠라'는 '사무라이'와 함께 일본을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그런데, 일본을 상징하는 '사쿠라'가 진다니, 무슨 뜻일까?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은 '첨단 기술과 번영하는 일본'이라는 가면을 벗고 일본의 민낯을 보는 계기를 만들었다. 기술이 뛰어난 일본에서 원전사고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단언했지만, 일본의 첨단 기술은 허황된 신기루였다. 자연재해에 대비해서 정밀한 매뉴얼을 준비하고 안전한 일본을 만들었다는 고정관념도 허울 좋은 망상이었다는 사실을 목도했다. 그렇게 사쿠라는 지고 있다.

  "영속패전론"을 읽고 일본의 민낮을 본 이후, 시라이 사토시의 다른 책을 읽고 싶어졌다.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에 살지만, 너무도 다른 일본인들의 정신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 "사쿠라 진다."를 꺼내 들었다. 거리의 철학자 우치다 다쓰루와 "영속패전론"이라는 명저를 쓴, 시라이 사토시의 대담을 통해서 현대 일본의 민낯을 보자. 


1. 스스로를 파괴하는 일본인

 아베가 그토록 고대하던 '2020 도쿄 올림픽'이 연기되었다. 그러나, 도쿄 올림픽이 올해 열릴 가능성은 아베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분들에게 무릎 꿇고 사과할 가능성보다 낮다. 아베는 '2020 도쿄 올림픽'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극복한 일본'이라 포장하여 세계에 선전하려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종결된 사건이 아니라, 현재 진행중인 재앙이다. 도쿄까지 고농도 방사능 오염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특정비밀보호법으로 언론을 통제하면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종결되었다며 일본 국민을 속이고 있다. 빨리 도쿄 올림픽을 손절매하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진실을 알려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피해를 줄이려 노력해야함에도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덮으려고만 한다. 일본속담에 "냄새나는 것에 뚜껑을 덮다.(臭いものに蓋をする くさいものにふたをする)"라는 말이 있다. 일본은 덮을 수 없는 것을 덮으려한다. 시간이 지나면 후쿠시마 원전의 재앙은 더욱 커지고 섬나라 일본은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될 것이다. 왜? 일본은 스스로를 파괴하는 일을 하는 것일까?

  우치다 다쓰루는 재미 있는 일화를 소개한다. 2대 혹은 3대째 이어져 내려오는 여관의 주인이, 지역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기 위해서 내려온 젊은이를 미워하고, 지역 경제를 소생하는 일을 방해한다. 결국 여관은 도산하고, 여관 주인은 타여관의 지배인이 되거나 연금 생활을 한다. 그런데, 도산한 여관의 주인은 더욱 행복한 모습이라고 한다. 왜일까? 여관일을 하고 싶지 않지만, 가업이기에 자기 손으로 여관을 문닫게 할 수 없었다. 여관주인은 차라리 지역 경제가 나빠져 도산을 한다면, 여관일을 그만해도 되기에 오히려 여관이 도산하기를 고대했다고 한다. 

  우리는 10대째 가업을 잇는 일본인을 바라보며, '전통과 가업을 중요시하는 일본의 장인정신'이라 칭찬한다. 하지만, 그러한 칭찬을 하기 이전에 가업을 넘겨 받는 사람이 진정으로 원해서 가업을 잇는지 물어보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가업을 잇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것과 과업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보통의 한국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일을 선택한다. 그러나 일본인은 가업을 선택한다.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타인의 바람에 부응해서 삶을 사는 노예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일본에서 찾을 수 있다. 교토의 "시미센"을 보면서 '전통을 사랑하고 지키는 일본인'의 아름다운 모습이라 생각하기 이전에, 자신의 바램과 의지를 꺽고 전통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야하는 일본인의 노예적 삶을 생각해야했다. 

  '전통의 노예'가 되어 파산하기를 고대하는 일본인의 모습을 일본 엘리트들에게서도 볼 수 있다. 아베정권의 실정을 지적하며 아베를 권좌에서 끌어내야하는 일본 엘리트들은 자신의 책무를 방기하고 오히려 아베의 눈치만 보고 있다. 시라이 사토시와 우치다 다쓰루가 지적했듯이, 일본 엘리트들에게는 '파괴 본능'이 있는 것 같다. 마치 미국과의 전쟁은 자멸의 길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상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면서도 1945년 8월 15일 폐허가 된 제국의 수도를 바라보면서 전쟁이 끝났다며 환한 표정을 지었다는 다수의 일본 국민들을 보는 듯하다.

  건강상의 문제로 아베는 권좌에서 물러났지만, 아베의 뒤를 이은 스가는 아베의 우경화 정책을 계승하고 있다. 아니,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후쿠시마 오염수를 방류하겠다며 태평양을 방사능으로 오염시키려하고 있고, '한일 위안부 합의'와 '한일 협정'을 근거로 한국과 역사 갈등을 증복 시키고 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는 섬나라 일본은 물론이고, 지구의 바다를 오염시키는 일이다. 이는 물고기 소비량 세계 1위인 일본인의 건강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지구의 바다를 오염시키는 일이라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강제 징용 문제 부정은 한국은 물론이고 아시아 국가들의 정신을 오염시키는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본의 우경화 정책은 일본군부가 침략전쟁을 확대시키다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을 맞고 패망했듯이, 일본을 파멸로 몰고갈 것이다. 방사능으로 오염된 바다는 정화할 수 없으며, 역사문제로 신뢰를 잃어버린 국가는 세계의 정의로인 시민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될 것이다. 


2. "대미 종속을 통한 대미 자립"을 추구하는 일본

  2019년 아베는 트럼프에게 275만톤, 약 600억엔(약 6650억원)의 옥수수를 강매당했다. 아베는 “아베 정부가 미국에 아양 떨려고 세금을 마구 쓰고 이를 또 은폐했다”는 비난을 일본 국민들에게 들었다. 한국에게는 너무도 뻔뻔한 일본이, 미국에게는 너무도 작아진다. 이해할 수 없는 일본의 저자세 대미외교를 일본의 우익정치인들은 "대미 종속을 통한 대미 자립"정책이라 말한다. 

  "대미 종속"과 "대미 자립"은 서로 상반된 말이다. 마치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았으나, 음주운전은 아니라는 말과 비슷하다. 일본의 "초사대주의" 외교를 우치다 다쓰루는 오다 노부나가에게 잘보여 출세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예로들어 설명한다. 천한 신분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벼락 출세할 수 있었던 이유는 추운 겨울에 주인의 신발을 가슴에 품으며 오다 노부나가에게 충성을 했기 때문이다. 가게 점원이 열심히 일을 해서 가계 주인에게 잘보이면, 주인이 점원에게 분점을 차려줄 것이라는 헛된 기대를 일본은 하고 있다. "대미 종속을 통한 대미 자립"정책으로 오키나와를 돌려 받았고, 미국의 핵우산 아래 경제 성장을 이뤘다. 이러한 행운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헛된 기대를 일본 우익은 하고 있다. 

  "대미 종속을 통한 대미 자립"을 이루기 위해서 일본은 미국에게 굴욕적인 비밀 조약을 체결했다. 아베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는 CIA 요원으로 일했다. 그뿐 아니다. 점령국 소속 장교(장군)가 자신의 부인이 마음에 든다고 하면, 자신의 아내를 내주기까지 했다. 자신의 침실을 미국 장교(장군)에게 내어주고, 아내를 첩으로 바치면서도 "대미 종속을 통한 대미 자립"을 꿈꾼 것이 일본 우익들이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굴종적인 모습을 일본 국민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미국과 대등하게 겨루는 일본국 대표", "미국은 일본에 변함 없는 애정을 갖고 있다."라는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서 굴종적인 대미외교를 계속한다. 

  미군 점령기 일본의 우익들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미치지 않고서는 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일본 우익들은 이 시기를 참고 견딘다. 칼이 지배하는 천년이 넘는 막부시대를 살아온 그들이기에 분노와 울분을 참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필수적 행동임을 잘 알고 있다. 자신의 상관에게 잘보이려 마음에도 없는 말을 잘하는 사람은 비루해진다. 비루한 사람은 강자에게는 한없이 비굴해지고, 약자에게는 한없이 폭압적으로 굴림한다. 미국에게는 굴종적 저자세 외교를 하지만, 한국과 아시아의 약소국에게는 태평양전쟁시기 일본의 만행을 부정하며 폭압적 외교를 전개는 일본의 모습에서 '비루함'을 엿본다. "대미 종속을 통한 대미 자립"이라는 외교전략을 계속 유지하는 이상 일본의 '비루한' 외교는 계속될 것이다. 


3. 무엇이 프랑스를 전승국으로, 일본을 전범국으로 만들었는가?

  프랑스는 전승국일까? 전범국일까? 드골의 '자유 프랑스'를 처칠과 루스벨트는 처음부터 프랑스의 대표로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비시 괴뢰정권을 프랑스 대표로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리를 드골의 '자유 프랑스'와 레지스탕스가 해방시키고, 샹젤리제 거리를 행진하자, 미국과 영국은 드골을 인정했다. 패텡의 비시정권을 프랑스의 대표로 본다면, 프랑스는 점범국가이다. 반면, 얼마 안되는 드골의 '자유 프랑스'를 프랑스의 대표로 인정한다면, 프랑스는 전승국이된다. "좋은 프랑스인이 모두 일치하여 대독 협력자와 싸워 독일군을 내쫓았다."라는 이야기는 만들어진 신화이다. 사실 레지스탕스가 본격적으로 활동한 것은 독일군의 패전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이며, 독일에 협력했던 상당수의 사람들이 스스로 레지스탕스임을 주장하기도 했다. 

  우치다 다쓰루는 프랑스 이야기를 하면서, 패전을 부인하는 상태를 일컫는 "영속패전"은 프랑스에서도 계속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비시 정권 참여자가 제4공화국에 참여한 프랑스나, A급 전범임에도 전후 일본 수상이 되거나 정치무대 뒤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일본이나 "영속 패전"상태인 점은 비슷하다. 그렇다면, 일본과 프랑스의 차이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무엇이 프랑스를 '전승국'으로 만들고, 일본을 '전범국'으로 만들었을까? 

  우치다 다쓰루와 시라이 사토시는 프랑스와 일본이 "영속 패전" 상태라는 점은 같지만, 그속에서 프랑스와 일본의 다른점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프랑스가 나치에 협력한 자들을 숙청하고 미국의 독주에 대해서 당당히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국가로 인식되는 반면, 일본은 점범들이 다시 정권을 잡고 과거의 잘못에 반성을 하지 않는 비도덕적인 국가로 인식되고 있다. 같은 "영속패전"상태이지만, 프랑스와 일본은 너무도 다른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프랑스와 일본은 무엇이 다를까?

  그차이는 너무도 작은 차이에 있다. 비시정권이 활개칠때, 드골은 "자유 프랑스"를 만들어 독일에 대항했다. 비록 미약하지만 레지스탕스들이 독일에 대항해 투쟁했다. 반면, 일본에는 "자유 프랑스"도 없었고, "레지스탕스"도 없었다. 천황을 부정해야하는 공산주의자들 마져도 눈물을 흘리며 천황제를 버릴 수 없다며 전향서를 썼다. 그리고 일본인들을 그 전향서를 감동 깊게 읽는다. 

  김구 선생 암살범 안두희를 처단한 박기서 의사는 "바다가 썩지 않는 이유는 3%의 소금 때문이다."라는 말을 했다. 바닷물에 녹아 있는 소금의 양은 바닷물에 비하면 너무도 작다. 그러나 3%의 소금이 있기에 바닷물은 썩지 않는다. 프랑스에는 3%의 소금과 같은 존재가 있었지만, 일본에는 소금과 같은 존재가 3%조차 되지 않았다.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우스는 제정 초기 로마 주민들을 "정치적 소신도 없이 물질적 이득과 쾌락만 쫓는다."라고 비판했다. 3%의 소금과 같은 깨어 있는 시민이 없는 로마는 결국 공화정이 무너지고, 제정이 등장했다. 이렇듯, 작은 차이가 폭주하는 일본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영속패전"의 상태로 만들었다. "대중을 다루는데는 빵과 서커스면 충분하다."라는 히틀러의 말이 일본에는 아직도 유효한 명제로 남아 있다. 3%의 소금과 같은 깨어 있는 시민이 없다면, 히틀러의 말은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다.



  영화 "고질라"를 기억하는가! "고질라"는 원래 일본에서 창작된 작품이다. 우치다 다쓰루는 고질라를 "근대 일본 시스템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폭력적 억압, 죽은 자들의 원한, 잃어버린 전통, 더럽혀진 산하와 같이 일본인이 내버린 것들의 복수담"으로 해석한다. 일본이 내다 버린 것에는 아시아 태평양의 수많은 희생자들도 있다. 그렇다면, "고질라"의 출현을 막기 위해서, 수많은 희생자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서 일본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올바로 역사교과서를 서술을하고 이를 일본 학생에게 가르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한다. "냄새 나는 것에 뚜껑을 덮는다."고 냄새가 사라지지 않는다, 뚜껑의 틈을 비집고 냄새는 다시 새어 나온다.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다고 일본이 저지른 전쟁범죄가 사라지지 않는다. 전세계의 소녀상을 없앤다고 일본의 전쟁 범죄가 사라지지 않는다. 일본이 아시아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증대 시키길 원한다면, 과거의 잘못을 직시하고 반성하고 반성을 행동으로 증명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게서 이러한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너무도 요원한 일이다. 과거를 반성하지 않고, 피해국이 약소국이라며 무시하는 일본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다면,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에서 "고질라"가 출현했듯이, 다시 한번 "고질라"가 출현하여 일본 열도를 삼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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