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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심리 상자 - 우리가 몰랐던 일본인의 24가지 심리 코드
유영수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8월
평점 :
유튜브 "롯본기 김교수"를 보다보면, '일본이 과연 그럴까?'라는 의문이 들정도로 일본은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벌어지는 나라이다. 일본의 역사를 공부하면 할 수록, 일본 문화를 알아가면 알수록 일본이 이해되지 않았다. 가깝지만 너무도 먼 나라 일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와 문화만을 공부해서는 한계가 있음을 절감했다. 그래서 일본인의 심리 구조를 명확히 설명해 줄 수 있는 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심리학이라는 도구를 사용해서 일본의 심리구조를 이해하고 싶었다. 그 때, "일본인 심리 상자"가 눈에 띄였다. 심리학을 전공한 기자가 일본에 특파원으로 파견되어 겪었던 생생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저술했기에 책에 신뢰감이 들었다. 책이 쉽고 재미있었기 때문에 빠른 시간내에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1. 얼굴을 감추는 일본 문화.
혼자 밥먹는 것이 두려워 변소에서 식사를 하는 일본 대학생이 있다는 사실은 무척 놀랍다. 매우 특이한 일일 것이라는 주장을 뒤엎기라도 하듯이, 후속 조사에서 일본 대학생의 적지 않은 수가 화장실에서 식사를 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대인 관계 공포증, 교제 공포 증후군에 시달리는 일본 대학생들을 보면 딱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대인 관계의 어려움은 일본인의 생활 문화 곳곳을 파고들었다. 일본의 '노'나, '가부키'를 부면 진한 화장을 한 일본여성의 얼굴은 가면을 쓴 것과 같았다. 얼굴 표정을 알 수 없는 일본 배우의 모습에 아름다운 일본문화라는 생각보다는 이해할 수 없는 묘한 문화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것은 자신의 얼굴을 감추는 일본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자신의 감정 혹은 마음을 드러내는 것을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일본인은 화장을 할 때도, 한 듯 안한듯 하거나, 갸르 화장처럼 두껍게 화장을 해서 화장속에 자신의 얼굴을 숨긴다. 각종 재해로 인해서 가장 소중한 가족을 잃은 일본인들이 대중앞에서 울지 않는다. 심지어는 웃음을 보기기 까지 한다. 타인에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된다는 불문율이 일본사회에 작동하고 있다. 외국인들이 '한국인들은 화난 얼굴을 하고 있다.'라는 말을 하는데, 일본은 "표정이 없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일본인들의 얼굴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데 필사적이라 할만하다.
군중 속에 개인을 숨겨야만 안정된 군중속의 삶이 보장되는 것일까? 일본인들은 '보통을 선호'한다. 일본인이 말하는 보통사람은 보통사람이 아닌 '수퍼맨'을 뜻한다. 반면 보통 아닌 사람은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을 뜻한다. 무채색 패션이 난무하는 도쿄 거리, 가방까지 획일화하는 일본의 초등학생의 모습에서 개인의 개성은 찾아볼 수 없다.
보통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개성을 무시하는 획일화된 교육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일본의 교육은 한국 교육보다 심각했다. 오히려 일본교육에 비해서 한국교육이 양호하다는 생각이든다. 개인의 개정이 무시되고, 토론을 싫어하는 일본 사회에서 어떻게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더 나아가서, 일본보다는 더 개방적인 한국사회에서 노벨평화상을 제외하고서는 아직도 노벨상 수상자가 없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유튜브 '롯본기 김교수'에서 김교수는 일본에 많은 정신병원을 소개한 적이 있다. 개인이 철저히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살아야하는 일본사회에서 정신병자가 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비정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본심을 뜻하는 '혼네'와 겉으로 드러내는 모습을 뜻하는 '다테마이'를 처음 알게 되었을때, 일본인들이 교활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일본인 심리 상자"를 읽으며 일본인들이 '혼네'와 '다테마이'를 갖지 않고서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감정을 철저히 숨겨야하는 일본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서 일본의 부모는 자신의 자녀를 강하게 교육시킨다. 모성이 결여된 일본의 어머니와 엄하고 권위주의적인 일본의 아버지 사이에서 교제 공포 증후군과 대인관계 공포증으로 고통을 겪는 자녀가 자라난다. 일본의 수많은 정신 병원과 어느날 갑자기 스스로 실종되는 사람들, 변소 식사를 하는 일본인들을 세상밖으로 나오게 할 수 있는 첫걸음은, 일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따뜻한 손길로 자녀를 끌어안고, 관용적이며 자율적으로 자녀를 키우는 것이다. 일본 사회는 병들어 있다. 심각하게 병들어 있다. 이를 일본만의 독특한 문화라고 보기에는 일본 사회는 너무도 심각하게 병들어 있다.
2. 거대한 정신 병원, 일본
64세 노인이 유모차를 탄 1세 아이를 폭행하고 도망치다가 붙잡혔다. 경찰에서 그가 한 말은 유모차가 자신의 보행에 방해가 되었기에 화가나서 범행을 저질렀다 말한다. 한적한 지하철에서 유모차가 보행을 방해했을리 없다. 심리학적으로 살펴보면, 일본인들은 자신의 사적 공간을 침해 받는 일에 강한 반감을 갖는다고 한다.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일본인들의 사고방식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 지하철에서 유모차를 용납하지 않는 일본에서 출산장려 정책이 성공할리 없다. 게다가 일본에서는 육아는 여성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이 뿌리 깊게 퍼져있다. 이러한 일본여성은 병들어간다. 가정폭력이 증가하고, 가정폭력으로 가정의 아이들이 살해되기도 한다. 인구대비로 비교해 보았을 때, 일본의 가정폭력은 한국의 3배에 달한다.
일본인들이 자신의 사적 공간과 사적 시간을 침해받길 싫어하는 병적인 집착은 고립주의로 변질된다. 실제로 일본에는 중년 동정남이 다수 존재한다. '성진국'이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는 일본에서 '중년 동정남'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는 일본 중년 동정남이 존재하는 이유는 실패에 대한 공포, 완벽한 사랑을 추가하는 것이 원인이라 진단한다. 어찌 한가지 사건에 원인이 한가지 일수 있는가? 완벽한 사랑을 추구하고, 실패에 대한 공포가 '중년 동정남'의 증가를 가져온 한가지 요인일 수 있다. 여기에 사적 공간을 침해받길 싫어하는 일본의 병적인 집착도 기여했을 것이다. 때로는 서로의 영역에 끼어들며 청춘 남녀간의 '작업'이 이뤄지지 않는가! 서로의 영역을 지나치게 존중하니, 남녀간의 '작업'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일본에는 '중년 동정남'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일명 '원피스 세대'가 존재한다. 원피스 세대는 나카마(강한 동료애)를 중시하며, 공기파악 능력(살벌한 분위기 파악)을 중시하는 세대이다. 대인관계에서 실패하기 싫어하기에 이들은 깊은 관계도 유지하지 못한다. 고통이 싫기에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하는 일본인들은 현실의 고통을 '직면'할 용기가 없어 보인다. "고통없는 삶이란 카페인 없는 커피"라는 도이 다카요시의 말처럼, 인간이 살면서 사소한 다툼과 헤어짐의 고통은 필연적으로 감수해야한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고통을 직면할 용기가 없다. 그러니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대세에 순응하며,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하는 영혼없는 인간을 양산하게 된다. 일본인이여! 삶의 고통을 직면하자! 도망치지 말자! 무서워서 도망친 곳에 천국이란 없다.!!
3. 자폐아가 되어버린 일본!
얼굴은 몰라도 아무로 나미에의 이름은 들어보았다. 아무로 나미에가 천황이 주최한 피로연에서 기미가요를 제창하지 않았다. 일본 우익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로 나미에가 일본천황을 위한 노래이자,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를 제창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녀가 오키나와 출신이기 때문이다.
오키나와는 류큐라는 독립왕국이 1879년 메이지 정부에 의해서 오키나와 현으로 일본에 편입되면서 일본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나, 일본은 오키나와인을 일본인으로 대해주지 않았다. 오키나와인에게 황국신민화교육을 강요하면서도 그들이 미군에 항복하면 군사기밀을 미군에 알려줄까봐 옥쇄를 강요했다. 수많은 오키나와 사람들이 오키나와 전투에 죽어갔다. 그후, 오키나와는 미군에 양도되어 미군기지가 지금까지 존재한다. 일본으로 복귀하면 미군범죄도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으나, 일본은 오키나와에 관심이 없었다. 일본천황이 오키나와를 방문했을 때, 화염병 세례를 받은 것도 이러한 오키나와의 역사에서 연유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오키나와에 사죄하지 않는다. 마치 일본이 한국에서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해서 아직도 사죄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본인들은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기에 너무나도 매마른 감정을 가졌다. 한국어를 배우는 일본인들이 곤혹스러워하는 일은 일본어보다 한국어가 감정표현이 세밀하다는 것이다. 일본인의 감정 표현 단계는 5단계인데, 한국인의 감정 표현 단계는 10단계라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일본 아이의 공감능력 발달이 평균 4~11개월 늦다는 것이다. 일부 연구에서는 무려 2년 가까이 늦다고 한다. 이렇게 공감능력이 부족한 일본인이 타민족에게 난징대학살, 일본군 '위안부' 등의 만행을 저지르고 반성하지 않는 것도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를 직시하고, 자신의 잘못을 반성할줄 모르는 일본은 '사무라이 재팬'을 탄생시켰다. 일본 야구 대표팀의 다른 이름은 '사무라이 재팬'이다. '무사도 야구', '목숨걸고 하는 야구'를 만들어 낸 일본은 유독 정신력을 강조한다. 비효율적 연습과 체벌이 관행이된 일본 야구의 모습은 일제 강점기 일본군의 못습을 보는 듯하다. 정해진 매뉴얼 대로 야구를 목숨걸고 하는 비효율적인 일본야구는 자율성이 사라지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일본 축구 감독을 했던 투루시에가 일본 축구 대표팀에게 하루 동안의 휴식을 주고, 호텔의 식당을 닫았다. 그러나 구체적인 지시가 없어 일본 축구 대표팀은 그냥 굶었다고 한다. 투쟁심과 협동성을 높지만, 예측력과 판단력, 자신감이 부족한 일본의 축구를 보면서, 천황의 명령을 받고, 상관의 명령에 따라 민간인을 학살하는 생각할 줄 모르는 전쟁기계 즉, 황군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나의 지나친 상상일까?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에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고 총통의 명령에 따라 행동하는 아이히만은 다정한 남편이었고, 착한 이웃이었다.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지 못하는자는 히틀러의 충실한 살인 기계가 되었다. 천황의 명령에 따라서, 상관의 명령에 따라서 전쟁범죄를 저지른 일본인들이 이제는 스스로 생각하며, 스스로 참된 가치관을 정립하며 살아가길 바란다. 그럴 때만이 동아시아의 평화가 깃들 수 있을 것이다.
자연재해가 많은 일본은 개성적인 사람보다는 중앙의 통제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을 선호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기에 과대 협력자를 억제하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특출난 한명이 과대한 성과를 성취하면 조직원들 사이에 불화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란다. 일본의 무서운 왕따 문화와 신뢰도가 낮은 일본사회를 바라보며, 도저히 인간이 살아갈 수 없는 사회라는 답답함이 밀려온다.
이제는 자연 재해와 인재가 겹쳐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났다. "이제 전후가 아니라 재후다."라는 말이 일본에서 유행한단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에 수많은 가족을 잃었으며,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일본땅이 방사능에 오염되었다. 이로인해서 일본사회는 급속도로 보수화되고 있다. 일본을 찬양하는 방송이 늘어나고, 카리스마형 지도자의 인기까 치솟는다. 애국심과 자원봉사, 기부가 활성화된다. 과연 과거의 아픔을 통해서 일본사회는 새로운 사회를 모색할 수 있을까? 아니면,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삼고, 만주와 중국을 참략하며 미국과 전쟁을 벌였던 과거로 회귀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