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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명작이라 평가받는 작품이라 할지라도 모든 사람에게 호평을 받는 것은 아니다. 어떤이에게는 혹평을 받으며 쓰레기 취급을 받기도한다. 또 어떤이에게는 최대의 찬사를 받기도한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장편소설 '그리스인 조르바'가 바로 그런 작품이다. 알라딘에 올라와 있는 서평을 보면, 많은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지만,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혹평을 받는다. 이 책을 처음 펼쳐들었을 때, 나도 혹평을 하는 사람 중에 하나였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생각에 잠겼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자전적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어떻게 평가해야할지 난감했다. 그래서 다양한 관점에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바라보기로 했다.
1. 색골(色骨) 그리스인 조르바
'그리스인 조르바'를 집어들었을 때, 진정한 자유인으로서의 조르바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는 자유인이기 보다는 색골이다. 여성의 육체에 탐닉하는 전형적이 색골이다. 이 책을 넘기며 2~3페이지 마다 조르바은 여성에 육체, 그중에서도 엉덩이와 가슴에 탐닉한다.
"조르바가 저 과부는 누구인가요?"라고 묻자, 콘도마늘리오는 "씨받이 암말이지요." -114쪽
"두목, 저것 좀 보쇼 저 잡년이 궁둥이 흔드는 것 좀 봐요. 삐뚤빼뚤! 꼬랑지에 기름 잔뜩 오른 암양같군"-38쪽
"애야, 내가 저렇게 많은 계집아이들은 남겨 놓고 죽어간는데 울지 않게 생겼니?"-92쪽
이러한 말들은 조르바가 직접하거나 조르바가 자신의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면서 내뱉은 말들이다.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여긴다. 철저히 마초적인 그리스인 조르바를 어떻게 자유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의 머리는 혼란에 빠져들었다. 조르바와 같은 마초가 자유인이라면, 내가 알고 있는 자유인은 너무도 많다. 특히 군대에서 그러한 인간들을 많이 만났다. 여자를 성적 대상으로 여기며 노골적인 표현을 섞어 여자를 후리고 다닌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새로운 여자와 잠자리를 갖게 되면 새로운 훈장을 받은 것마냥 자랑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생각하는 자유인이 바로 색골들이란 말인가!
조르바는 여성 중에서도 과부에게 유난히 집착한다. 과부는 언제나 정복 가능하며, 그녀들을 혼자 밤을 지내도록하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라는 조르바의 주장은 황당하기까지하다. 여성에 대한 존중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기 힘든 조르바의 표현은 듣기에 거슬린다. 그런데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러한 조르바를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고 표현해야 옳을 것이다.
"조르바, 내 몽당 당신에게 주고 말고요. 당신이 한것 ... 여자 꿰어 차고, 머리를 물들이고, 돈을 쓰고 한거. 당신이 다가져요. 노래나 부릅시다.!"-207쪽
돈많은 갑부의 허세가 녹아 있는 문장이다. 계집질하며 자신의 돈을 허락도 없이 낭비한 조르바를 좋아하는 작가는 과연 정상적인 인간인지 의문이든다. 자신의 성적 욕망에 충실한 조르바! 그리고 주인이 없기에 쉽게 성적 대상으로 정복할 수 있는 대상으로 과부를 탐닉하는 조르바! 돈많은 갑부의 환심을 사서 그의 돈을 마음대로 유용하는 조르바! 그를 자유인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인생을 무계획적으로 사는 망나니로 보는 것이 합당하지 않을까?
2. 이드(조르바)와 슈퍼에고(화자) 사이
'그리스인 조르바'는 실존 인물 조르바를 모델로 쓰여졌다. 화자가 갈탄을 채굴하러 크래타에 간 것도 실제 있었던 일이라 한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이상한 점이 있다. 그리스인 조르바에 대한 화자(작가)의 관계는 너무도 친밀했다. 조르바가 하는 모든 행동을 그는 사랑스러운 관점에서 묘사하고 긍정했다. 심지어는 자신의 돈을 유용했음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화내지 않고 조르바와 노래를 불렀다. 그때 불현듯, ‘그리스인 조르바와 화자가 같은 인물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조르바와 화자는 두명이 아니라 한몸에 있는 두가지 존재라고 보면 이 책의 서술이 쉽게 이해된다. 조르바는 화자의 가슴 속에 꿈틀되고 있는 욕망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이드라고 한다. 그리고 화자는 자아(에고)나 슈퍼에고(도덕 등)에 해당하는 존재이다. 화자는 티베트 승려의 수행에 관한 책들을 읽으며 본능을 억누르려한다. 그러나 자신의 저 밑바닥에서 꿈틀대는 욕망의 물결은 잠재울 수 없다. 즉 조르바는 세상의 윤리를 비웃으며 자유롭게 여성들을 탐닉한다. 윤리에 갖힌 자아와 욕망에 충실한 조르바 사이에서 갈등이 펼쳐진다.
정신분석학적 입장에서 살펴본다면, 이러한 싸움은 욕망(조르바)의 승리로 끝날 수밖에 없다. 결국, 화자는 과부를 안아주라는 조르바의 충고를 실천에 옮긴다. 그리고 화자의 몸에서 풍기는 과부의 비누냄새를 맡은 조르바는 기뻐한다. 욕망의 승리인 것이다.
모든 만남은 영원할 수 없다. 조르바와 화자는 헤어진다. 욕망이 충족되었으니 욕망에 대한 갈망은 전처럼 강할 수는 없다. 조르바와 헤어진 화자는 조르바가 독일에 올 것을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조르바를 찾아가지 않는다. 결국 조르바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화자는 욕망에서 해방된다. 계율을 어겼다고 모두가 파계승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계율을 어기고 더 위대한 스님이 된 원효처럼 화자는 과부와 잠자리를 가지고 나서 욕망으로부터 해방되었다.
3. 전쟁 트라우마를 겪는 조르바
그리스 독립을 위해서 목숨을 걸었던 존재가 바로 그리스인 조르바이다. 그리스 독립을 위해서 자신의 적인 신부를 죽였다. 그런데, 거리에서 그 신부의 자녀를 마주치자 조르바는 자신이 가진 돈과 바구니까지 그 아이들에게 준다. 조르바는 그리스 민족주의 열풍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지만, 민족주의라는 열풍이 때로는 불쌍한 아이들의 아버지를 살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조르바는 적들에게 쫓기다가 어느 과부의 집에 들어간다. 그리고 과부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건졌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육체도 탐닉한다. 과부가 다음에 또 오라고 말했다. 조르바는 그 마을에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불을 질렀다. 그때 그 과부도 죽었을 것이라고 조르바는 추측한다.
아마도 조르바는 이때 과부의 목숨을 살리지 못한 죄책감에 유난히도 과부에 탐닉하는지도 모른다. 성적으로만 과부를 탐닉한 것이 아니다. 맨손으로 칼을 쥔 놈을 상대로 결투를 했다. 과부를 살리기 위해서 말이다. 성당에 들어가려하는 과부를 크래타의 남자들이 돌을 던지며 죽이려했다. 그녀가 성당에 들어가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다면 그녀를 내쫓으면 될 것을 죽일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광기에 사로잡힌 크래타 남성들은 과부를 죽이려했다. 목숨을 걸고 그녀를 위해서 싸운 것은 조르바였다. 그는 승리했으나 그녀를 살리지 못했다. 조르바는 다시 한번 과부를 살리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치유할 결정적 기회를 잃어버렸다.
조르바가 사랑했고, 미래까지 약속한 부블리나 부인이 죽어갔다. 물론 그녀도 과부이다. 그녀는 "죽고 싶지 않아! 정말 죽고 싶지 않아"를 외친다. 그런데, 크래타 사람들은 냉혹했다. 그녀 앞에서 "자, 어서 서둘러, 어서 죽어야지. 이여편네야"라고 말하고, "그래야 우리도 뭐하나 가져갈 것 아닌가"라는 말을 죽어가는 부블리나 부인 앞에서 말한다. 그녀가 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크래타 사람들은 그녀의 물건과 가축들을 하나둘 가져갔다. 크래타인들에게 과부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기 보다는 그녀의 물건을 가져갈 수 있는 기회라며 기뻐했다. 인간이길 포기한 사람들의 집단 거주지가 크래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스 독립 전쟁 과정에서 과부를 살리지 못한 그는 목숨을 걸고 한명의 과부를 살리려했다. 그러나 그는 살리지 못했다. 심지어는 자신과 미래를 약속한 과부의 죽음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조르바에게 과부는 성적 욕망의 대상이기 보다는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서 사랑해야만하는 존재였다.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어야 갖혀있는 자신의 영혼을 해방시킬 수 있었다. 고등 교육을 받지 못한 그이기에 고상한 표현을 사용하지 못했고, 그래서 노골적인 뒷거리의 용어로 그녀들을 묘사했을 뿐이다.
조르바는 성당을 싫어했다. 조르바와 화자가 하룻밤 묵었던 수도원에서는 살인 사건까지 일어났다. 조르바는 수도사를 저주했고, 수도사의 소굴인 수도원을 격멸했다.
"그래요 두목, 내 수중에만 들어오면 수도원은 기적의 공간이 될 겁니다."-319쪽
위선적인 수도승을 바라보며 타락할대로 타락한 그들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심지어 조르바는 자하리아에게 수도원에 불을 지라고 부추긴다. 자하리아는 수도원에 불을 질렀다. 그리고 죽음을 맞이한다. 조르바는 아마도 과부를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크래타인의 저변에는 크리스트교의 왜곡된 윤리의식이 자리하고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랬기에 수도승과 수도원은 저주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한편, 화자는 곳곳에 불교적 언어를 사용해서 크리스트교를 우회적으로 공격했다. 겉으로는 고상한척, 사랑으로 세상을 이끄는 존재인척하지만, 실제로는 불쌍한 중생을 착취하는 크리스트교의 윤리에서 맞서서 조르바는 싸웠다. 그는 자유인이기에 그것이 가능했다.